내가 태어나던 순간을 떠올리려니 상당히 힘드오. 그 당시의 모든 사건들은 혼란스럽고 불분명하오. 기묘한 여러 감각들이 일시에 나를 사로잡았소. 그런 까닭에 나는 동시에 보고 느끼고 듣고 냄새맡았소. 사실, 나는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다양한 감각 작용을 구분할 줄 알게 되었소. 조금씩 더 강렬해지는 빛이 신경을 압박해서 눈을 감아야 했던 기억이 떠오르오. 그렇게 눈을 감자 어둠이 몰려왔고, 나는 불안감에 사로잡혔소. 지금 생각해보니, 다시 눈을 떴고, 그때 내게 빛이 쏟아졌던 거였소. -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 中
손 가는 대로 자른 것처럼 멋대로 층이 난 단발과 핏기없이 느껴지는 창백한 피부, 이따금 형형한 기색을 띠는 푸른색 눈동자만으로도 굳이 그녀에게 다가갈 마음이 들지 않을 이유는 충분하다. 거기에 더해 그녀가 이 년 전 사고로 약혼자를 잃은 불행한 사연의 주인공이라는 걸 알게 된다면, 다가가기는커녕 꽁무늬가 빠지게 달아나도 모자라게 느껴질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벨리타에게는 늘 엷은 우울이 함께 하는 것처럼 보였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은 단순한 피로감 정도로 여기고 멀어졌지만, 그녀를 아는 사람들은 그걸 죽음의 그림자로 생각했다. 그들의 눈에 그 그림자는 전염되는 것이었던 모양이다. 벨리타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나서 완전히 고립되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니,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벨리타는 보통의 사람이다. 지치고 힘든 순간에는 쓰러지지 않게 지지해줄 것이 필요했다. 그러나 벨리타에게는 무엇도 없었고, 그런 순간 빈손으로 홀로 남겨진 사람은 높은 확률로 미치게 된다. 미쳤다는 말로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 벨리타는 비가 오던 날, 사랑하는 사람의 무덤을 파헤쳤다. 썩은 것은 새것으로 바꾸고, 끊어진 건 다시 이어냈다. 자르고 기우는 작업의 반복이었다. 신이라는 작자는 어느 날 갑자기 벨리타의 삶에 커다란 악수를 두고 사라져버린 무책임한 자였으므로 기도는 하지 않았다. 벨리타는 온전한 자신의 힘으로 목적을 이뤄냈다. 멈췄던 심장이, 다시 뛰었다. 그가 다시 눈을 뜨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벨리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제 삶에 스스로가 지독한 악수를 두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저 남자는 다른 사람이다. …아니, 사람이 아니다.
176cm, 평균 신장을 한참 넘는 키와 그에 알맞은 골격. 한때는 왜소한 소년에 가까운 체격이라는 인상도 주었으나 약혼자의 사망 직후부터 '그'의 완성 이후까지 계속해서 살이 내린 탓에, 지금은 체구 자체가 크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비록 관리 되지 않음이 여실히 드러나는 머리카락이지만, 색깔만큼은 아름다운 밀빛이며, 흐릿하게 갈라진 코끝은 오똑하다. 눈썹 역시 짙고, 속눈썹도 길고 촘촘하여 유심히 보면 꽤나 미인이라는 걸 알 수 있다. 한때는 길고 아름다운 갈색 머리카락과 푸른빛 눈동자가 사랑스럽던 시절도 있었으리라. 그러나 모두 한때이며, 그마저도 아득한 과거의 일이다.
1 전체적인 분위기가 무거웠고 시꺼맸다. 검은 머리카락은 이따금 햇빛이라도 받으면 흰색으로 이상한 빛이 났지만 그마저도 햇빛을 받을 때 뿐, 먼지가 진동하는 방 안에 있으면 사람인지 어둑발인지 쉬이 판단할 수 없다. 누구에게서 뜯어왔는지 모를 두 눈깔에도 이채 같은 건 서리지 않으니 판단만 어렵게 만든다. 사실 클리프의 신체부위는 상당수가 출처 불분명이지만 훌륭한 사람*의 손길 아래 정교하게 만들어졌으므로 거슬리는 곳은 찾기가 어렵다. 가까이 가서 손 따위를 잡아보고 비교하면 크기 차이 정도는 알 수 있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겠다. 1-1 그늘과 등진 모습이 참으로 고요하니 풀벌레의 웃음과 울음을 들을 수 있다. 인상이 원체 흐릿하고 웃는 꼴이라고는 얇은 입꼬리를 힘없이 당기는 것 뿐이라 만인총중 눈에 띄지 않는다. 하지만 괴물은 빛을 담아내지 못해 빛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선 역설적으로 눈에 띈다. 혹여 수많은 인파 속 다른 사람들은 사라지고 클리프만이 보인다면 괴물의 꾐에 넘어간 것이니 즉시 그 자리를 떠날 것. 희게 빛나는 머리와 검기만 했던 눈에 첨예한 금색*이 흐른다 해서 일망하지 말 것. 그저 비루먹은 괴물이니.
2 사람이라면 대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문장 하나 정도를 갖고 있는데 괴물은 그러지 않았다. 단 한 문장도 일구어내기가 어려웠다.* 그 사람에게 갈 편지를 쓰며 꽃 한 송이를 꺾은 짓이 다정한 건지 꽃의 생애에 관심이 없는 건지 조차도 명확하지 않았고 오묘한 낯짝으로 세상 이곳저곳을 돌아다닌 일 또한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강력하게 대표할 수 있는 이유도 뚜렷하지 않다. 단지 존재 자체가 환란인 괴물은 세상 모든 것에 관조를 즐겼고 살갗으로 닿는 새로운 것이 좋았다. 괴물이 가는 길마다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이치와 똑 맞아떨어져야 할 것들이 엇갈리니 천공이 크게 노해 벼락을 내릴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괴물에겐 더할나위 없이 화난한 하늘일 뿐이었다. 2-1 인간적임을 추구했다.* 사람의 손때가 묻은 몸으로 어찌 인간적인 것을 추구한다 할 수 있겠냐 만은 괴물에게 소망이라곤 그거 하나밖에 없겠다. 그저 남들과 조금 다른 박동을 가졌을 심장이 평범하게 뛰길 원했고 빛을 담아낼 수 있기를 바랐으며 생각과 감정, 모든 사고를 갈망했다. 죽음 직전까지도 악인의 덕목 중 하나인 욕심을 떨쳐내지 못할 운명이겠지만......
[B] 너는 "내가 만든" 괴물이야. 네가 끔찍해. 가장 후회하는 일을 묻는다면 주저없이 너를 만든 일이라 말할 거야. 하지만 네가 세상 밖을 떠돌며 손을 댄 모든 걸 망치는 꼴을 두고 볼 수만은 없어. 다시 돌아와. 아무것도 없이 돌아오라고 해봤자 듣지 않겠지. 조건을 걸게. 돌아온다면 무엇이든 네가 가장 간절히 바라는 것 하나를 들어주겠다고 맹세할게. 네 반려 괴물을 만들어달라면 그렇게 할 거고, 네 손에 순순히 죽어달라 한다면 역시 그렇게 할 거야. 대신 나와 약속해. 어쨌든, 너를 만들었으니까 내게도 하나 정도는 요구할 자격이 있잖아? 네가 원하는 바를 들어줄 테니, 평생 내 곁에 있어. 내가 죽은 뒤에도 네가 만들어진 곳을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해.
[???] 알았어요. 다시 곁으로 돌아갈 테니 초조해하지 마세요. 황급히 소원을 내건 것 보면 당신의 속이 요란한 게 느껴지는데, 제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없으니 머리를 굴리지 마세요. 반려 괴물도 당신의 죽음도 저에게는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도 요즘 세상을 돌아다니고 이것저것 보다 보니 흥미로운 건 하나 생겼어요. ‘이름’이요. 울부짖을 때도 사용하고, 아양을 부릴 때도 사용하고, 여러 방면에서 많이 쓰이던 걸 보았어요. 어떤 자에게 이름의 개념과 정의를 듣다보니 당신이 나를 지칭하는 ‘괴물’이 내 이름이라는 걸 어느정도 확신했지만 역시 그건 좀 별로네요. 이 괴물이라는 단어는 그리 좋은 곳에 쓰이지 않아요. 동화에는 무서운 것으로 묘사되고 사람들은 괴물이 나타났다고만 하면 꽁무니가 빠지게 도망가요. 저 배운 게 많죠? 하지만 역시 아직도 궁금한 건 당신이 그렇게 날 부르면서 느꼈던 기분과 감정이에요. 이상하죠. 아무리 추측하고 생각해도 목만 탈 뿐 당신이란 제게 미지와도 같아요. ‘끔찍하다’라는 말로는 턱없이 부족하니까 답을 알려주세요. 당신은 도망가지도 않았고 죽음까지 대범하게 입에 올리는 걸 보면 일반인과는 거리가 먼, 그러니까 괴물을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 같은데 날 부르며 어떤 기분과 감정이 들었나요? 이 질문에 답해주고 이름을 지어주었으면 해요. 어떻게 아나요? 당신이 직접 지어준 이름이 최고의 족쇄가 될 지.
[B] 그래, 말한대로 배운 게 많은 모양이야. 네가 보낸 답장은 대강 보면 처음부터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으로 교육받은 사람이 쓴 것처럼 보이니까. 하지만 네 본질은 괴물이야. 그건 내가 이름을 붙여도, 네가 그럴듯한 문장과 말로 자신을 꾸며내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지. 당연한 소릴 더 해봤자 이야기만 길어질 테니, 네 요구에나 응하도록 할게. 초조한 건 사실이니까. 널 부를 때 어떤 느낌이 드냐고? 무엇부터 말해야 할까. 가장 먼저 느껴지는 건 두려움에 거세게 뛰는 심장이야. 처음부터 네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네게도 심장이라는 게 있으니 심장이 뛰는 느낌은 알겠지. 뒤이어 긴장에 손발이 차가워지기 시작하고, 너와 눈이 마주칠 걸 생각하면 금방이라도 고개를 돌리고 싶어지지.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누가 목을 죄는 것처럼 괴로워. 이제 내 '끔찍함'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겠니? 넌 내가 괴물을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 같다고 했지만, 네 말은 틀렸어. 나도 똑같이 괴물이 무서워. 남들과 다른 대단한 발명을 할 수 있을 거라 여긴 자만심이 두려움을 누르고 널 만들어낸 것뿐이야. 도망도 가지도 않고, 목숨까지 내놓고 널 부른 건 내 과오에 대한 책임을 져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어. 마지막으로, 네 이름은 클리프Cliff야. 뜻을 알고 싶어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덧붙이자면 '낭떠러지'라는 뜻이야. 부디 이 이름이 족쇄가 되길 바라. 난 약속을 지켰어. 그러니 이제 돌아와, 나의 클리프.
[C] 당신의 말대로 내가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좋았을 텐데. 아직도 가끔씩 바라는 소망이지만 이루어지지 않을 소망임을 알기에 매번 잔잔한 슬픔에 빠져요. 인간적이지 않나요? 진짜 인간처럼 눈물도 막 흘려보고 싶은데, 그러다간 당신에게 괴물이라 불리는 나를 까먹을까 봐 관두었어요. 하지만 이제 클리프라는 낭떠러지도 있으니 눈물이 나왔으면 해요. 당신의 앞에서 눈가가 붉어질 정도로 울면 그제서야 비로소 내 피와 당신의 피 색이 동일해질까? 그때도 당신은 나에게 끔찍함만을 느낀다면 안타깝게도 할 말이 없네요. 자만심이 두려움을 눌렀다고 말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역시 할 말이 없어요. 역시 언어와 문장은 아직도 어렵네요. 표현하고 싶은 건 많은데 반의 반도 담아내질 못 하겠어요. 역시 난 당신을 옆에 두고 많은 걸 배워야 했는데 이런 꼴이 나다니. 지금 첫번째 후회를 느끼고 있어요. 이 후회를 이겨내고자 부탁을 하나 드리고 싶어요. 어차피 나는 당신의 과오고, 죄책감의 이유라면 평생 같이 있어야 할 텐데 그곳에서 단둘이 있는 것 보다는 여행을 다니는 게 낫지 않겠어요? 낭떠러지와 함께 하는 여행도 꽤나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해요. 당신의 클리프는 여행을 좋아하기도 하고요.
[B] 글쎄, 네가 인간적으로 느껴지는 날이 올까? 애석하게도 네가 말하는 슬픔은 도통 와닿지가 않아. 내가 너를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네가 그걸 이해하지 못하고 뱉는 것처럼 느껴져서야. 어디서 들은 것처럼 흉내낼 수는 있겠지. 하지만 너는 진짜 슬픔이 뭔지 모르는 것처럼 보여. 눈물을 흘리게 되더라도 그게 단지 신체의 반응인지, 진실된 슬픔인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나는 네 눈물에 함께 마음 아파해 줄 자신이 없어. 네가 바라는 바는 감정에 대한 설명과 이름이 전부 아니었어? 이젠 네가 약속을 지킬 차례야. 후회와 부탁이라는 단어로 약속을 어기려는 생각은 말아줘. 너는 충분히 긴 여행을 했고, 네게는 여행이었던 시간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혼란과 공포의 시간이었어. 내가 할 말은 이것뿐이야. 내 곁으로 돌아와.
(뒷면에 동봉된 편지. 수신인은 다른 사람 같다. 군데군데 번진 흔적이 있다.)
미하엘, 당신이 말릴 때 그 말을 들었어야 했어요. 독선과 오만에 가득 찬 과거의 내 행동을 후회해요. 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일인 걸 알아요. 이제 나는 내 모든 과오를 인정하고, 내가 만든 실패작과 나를 영원히 유폐할 생각입니다. 그와 단 둘이 영원히 남기로 한 건 이 이상의 피해를 막기 위함도 있지만, 내가 계속 나로 남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어졌기 때문이에요. 당신이 옳았다는 말밖엔 더 할 말이 없군요. …편지는 불태우고 모든 내용은 잊어주세요. 나와 괴물의 존재까지도요.
[C] 그렇담 둘만의 여행은 미뤄두는 걸로 해요. 기약 없이 천추로 미뤄지는 여행은 싫지만 언젠가 제가 길길이 날뛴다면 당신이 따라와 주겠죠. 협박은 아니고 그냥 해보는 말이니까, 벌써부터 밤잠을 설치지는 마세요. 농담이에요. 마침 제가 지나고 있는 길목 근처에 작은 꽃 하나가 있는데 당신이 생각나서 같이 보내요. 나를 만들어냈을 정도로 비상한 당신이라면 이 꽃의 서식지 정도는 단숨에 떠올리겠죠? 맞아요. 그 숲이에요. 혹시나 이걸 못 맞추셨다면 꽃이 내 손에 닿아 변색되었거나 가루가 되었다고 예상해 볼게요. 오랜만에 이 숲을 거닐어서 좋아요. 정말 당신이 머지않았고 집에 돌아간다는 것이 너무나도 생생하기에 좋아요. 어제나 그저께, 혹은 오늘 당신이 밟았을 흙을 저도 밟고 있어요. 정에 취하다 보니 속도가 느려졌지만 열심히 당신의 곁으로 돌아갈게요. 그리고 발신 과정에 착오가 있었던 것 같은데 미하엘이라는 이름 앞으로 보내진 것이 제게 왔어요. 저는 그걸 보고 당신이 제게 또다른 이름을 지어준 게 아닐까 했지만 내용을 보니 그건 아니더라고요. 혹시 마음대로 봐서 화가 나셨을까요? 당신의 곁으로 가서 지엄하게 혼이 나도 좋으니 답신으로 화내는 것만은 참아주세요. 그저 미하엘이 무엇인지 궁금했을 뿐이니까.
[B] 협박의 뜻을 모르는가봐? 아니면 알고서도 모르는 척하거나. 후자라면 내가 정말 대단한 걸 만들었다 생각해도 되겠어. 그게 최악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만 빼면. 언젠가 네 바람대로 여행을 하며 다니게 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건 네가 '인간답다'고 느껴지는 날이 와야 가능할 거야. 다정한 클리프, 넌 정말 여러 방법으로 날 소름끼치게 하는구나. 꽃은 잘 받았어. 어울리지도 않는 정 같은 건 떼어내고, 쓸데없이 근처를 돌아다니지만 않는다면 곧 도착하겠구나. 도착하거든 문을 세 번 두드려. 인간이 숲 속에서 혼자 지내는 일은 위험해서, 다른 누가 아닌 '네가' 왔다는 사실을 구별할 게 필요해. 다른 사람에게 갈 편지를 네게 보낸 건 실수야. 내 실수니 네게 화내진 않겠어. 미하엘은 한때 내 동료이자 (잉크가 번져 알아볼 수 없다.)였던 사람이고, 널 만들겠다 한 나를 말린 현명한 사람이었지. 하지만 네가 신경 쓸 일은 아니야. 이제 그와는 아무 연관없는 삶을 살아갈 테니까. 나는 너를 기다리고 있어. 문을 두드려. 꼭. 세 번이야.
>>7 나도 그게 쪼꼼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라 어쩌다보니 두루뭉실하게 써부렸네... 그냥 평소엔 검정인데 가끔씩 금색이 보인다고 생각해주면? 될 것 같아! 이게 무슨 눈인지 싶지만ㅠㅠ ㅋㅋㅋㅋ 그리고 둘이서 사는 집이라고 해야하나 암튼 그 건물이 숲 속에 있는 거로 되어버렸는데 어떤 느낌일까..!?
신비롭고 예쁜 눈이네요 🤔...! 넵 그렇게 알아둘게요. 숲 속의 집은 진짜 숲 한가운데 있는 건 아니고, 숲을 지나서 있는 인적 드문 곳의 작은 저택 같은 느낌으로 생각하고 있었어요. 릭먼 가 진짜 집(?)은 도시 근교에 있고 숲 속 집은 별장 개념으로요. 원래는 여름 휴가철 보내는 용도라 북부에 위치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벨리타가 약혼자 사고 이후로 불운을 몰고 다니는 역병이나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아서 유배보내지듯 온 곳이라 지금 있는 건 벨리타랑 클리프뿐이겠네요. 사용인들은 벨리타가 온 지 얼마 안 돼서 다 쫓아냈을 거고요. 그래야 클리프를 만들 수 있으니까요(...) 음, 이러면 자연스럽게 약혼자도 북부 출신이 될 것 같아요. 제가 시트에 무덤을 파헤쳤다는 얘기를 써서... 고향에 묻혀서 근처라는 설정으로... 여기까지 문제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아, 시트 보고 생각한 건데 클리프가 일으킨 사건들은 본인 의지가 아니고, 자연의 섭리를 거슬러서 존재 자체가 환란이 돼서 생긴 일들인가요...? 🥲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다 벨리타주! 😍 아항 릭먼가 찐!! 집은 도시 근교. 숲 속 집은 별장 개념..! 약혼자도 그렇고 딱딱 맞춰지는 설정들이 있어서 신난다 💃🕺🕺💃💃 클리프가 발생시킨 문제들ㅋㅋㅠㅠㅠ은.. 본인 의지도 있고 벨리타주가 말한 것도 있어!! 뭔가 알고싶은 게 많은 애니까 본인 의지로 여러가지ㅋㅋㅋㅋㅋㅠㅠㅠㅠㅠㅠㅠ 해보다가 사고 나거나.. 섭리에 맞지 않는 존재니까 가만히 있어도 사고는 날 듯 싶다!.. ! .. !! 사람들이 클리프를 보고 영향을 받아 이상행동을 할 수도 있는 거고 거리에 까마귀 같은 동물들이 떼죽음 당해 땅바닥에 널부러져 있을 수도 있는 거구.. 이정도면 벨리타가 세간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충분히 판단할 수 있을 것 같어 그리구 벨리타가 처음으로 클리프에게 이상함을 느낀 게 뭐였는지 궁금해!!
처음 이상한 점을 느낀 건 너무 미안해지는데 🥺... 아마 클리프를 정면으로 본 첫 순간이었을 것 같아요. 최대한 비슷한 요소들을 찾아다 만들었다고 해도 약혼자와 똑같지는 않으니까 거기에서 첫 번째로 기이함을 느꼈을 것 같아요. 지가 만들어놓고... 😢 이후의 심리적 괴리감이 커진 것도 이 영향이 있을 거구요. 본격적으로 이상함을 느낀 건 인간이라면 자연스럽게 느낄 만한 것들을 질문했을 때가 아닐까요? 편지에서 끔찍함에 대해서 질문한 것처럼요. 아무리 제 손을 거쳤다고는 해도 처음에는 똑같이 태어나 자란 사람이었고, 떼어다 만든 것도 사람의 것인데 전혀 모르는 것처럼 물어보니까 그때부터는 자기가 실수했다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 또, 떠나기 전부터 편지에서 나왔던 머리 굴리지 말라는 표현이나 벨리타가 여행을 거절한 것에 대한 답신에서 사용한 길길이 날뛴다면~ 같은 언사를 보였다면 그때부터는 공포심도 갖기 시작했을 거고요. 혹시 떠나기 전의 클리프에 대해서도 알 수 있을까요? 떠나있던 중에 일어났던 일이나 그 과정에서 변한 부분이 있다면 그것도요!
지가 만들어놓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ㅠㅠ 흠 떠나기 전에도 지금이랑은 어마어마어마한 차이는 없었을 것 같지만 클리프는 현재를 더 좋아하겠지! 재밌는 것도 많이 보구 신선한 것도 많이 봤으니까. 🥴 클리프의 여행에서 있던 일을 생각하다 보니 벨리타가 클리프에게 바깥에 대하여 어떻게 설명했는지, 바깥과 완전 단절되어서 살았는지, 아니면 종종 심부름으로 왔다갔다 했던 건지 궁금하넹 아무튼 클리프는 여행 중에 진짜 진짜 다양한 걸 많이 경험했을 거야. 본인이 주먹으로 맞아보면 주먹으로 누군가를 때려보고 사기를 당하면 사기를 쳐보고 등등... 지금 예시는 별로 생각이 나지 않지만 굵고 넓게 많은 경험을 했다는 고런 느낌. (선행도 하고 악행도 하고) 이 경험들은 클리프의 궁금증을 많이 해소해줬을 거야~! 글구 다채로운 경험 중 이름은 아주 사소한 거지만 클리프에게는 되게 독특하고 따숩게 느껴졌어.🥺 여행 하면서 가명 같은 것도 많이 썼을 텐데 돌고돌아 벨리타한테 이름 지어달라고 말한 거 보면 여행을 하면서 벨리타 생각도 많이 했겠다. 뭐 자신을 만든 사람이고 유일하게 쓴소리 하는 사람이니 당연할지도 모르지만......
클리프가 스스로 현재의 행복을 찾아서(?) 다행이에요. 비록 나쁜 벨리타는 세 번 두드리라 하고 해칠 생각을 했지만... 🥲 처음엔 같이 정원(관리가 안 돼서 여기서부터 이미 약간 숲 같긴 했겠네요.)이나 가까운 숲 정도는 나갔을 것 같아요. 아직 미친 사람 취급받던 여파가 있어서 더 멀리 나가는 건 벨리타도 꺼렸을 거라서요. 그러다 클리프를 이상하게 느꼈을 때부터는 내보내지 않으려 하고 본인도 안 나갔을 거예요. 시선도 묘하게 겁 먹은 것처럼 바뀌기도 하고, 감시하는 것처럼 굴기도 하고요. 주기적으로 필요한 물건 가져다주는 사람이 있었을 텐데, 그 사람 올 때에는 책이나 다른 물건으로 시선 돌려서 못 마주치게 하는 등등 고립시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 하고요. 아니 써놓고 보니까 진짜 못 됐네... 아 ㅋㅋㅋㅋ 사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성공했나요...? 암튼 벨리타가 이러니 클리프는 저택 밖을 나가서 배운 게 더 많을 수밖에 없겠네요 🤔 헉 클리프에겐 이름이 따숩게 느껴졌다니... 애 이름을 낭떠러지로 지어놓고 벨리타아아악 😱!!!!! 클리프가 없는 동안 벨리타도 클리프 생각을 많이 했을 것 같아요. 거의 클리프 생각뿐이었다고 해도 될 것 같네요. 비록 장르에는 약간 차이가 있는 것 같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어떡해 ㅋㅋㅋㅋㅋㅋㅋㅋ 악 넘웃겨ㅜㅜㅜㅜㅠ벨리타아아악 외치는 저 표정도 넘 웃기다구ㅠㅠㅠㅠㅠㅠㅠㅋㅋㅋㅋㅋㅋㅋ헉 둘이 숲정원(?)에 있는 거 좀 분위기 짱인 것 같다.. ☺️ 집에 그 사람 방문할 때 벨리타가 자꾸 자기를 숨기려는 것처럼 그러니까 둘 사이에 미묘한 기운도 흘렀을 것 같구.. 클리프의 바깥 호기심에는 더 불을 붙였겠구나.. 그래두 결국엔 서로가 서로를 생각했네.. ^_^ 지금 말하지만 내가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벨리타주에게 감사.. 감사..👏 사기는 ㅋㅋㅎㅋ.. 성공했을 거야 ㅎㅎㅎㅋㅋㅋ... 아 벨리타는 클리프가 우힣힝 여행 중일 때 별장에서 혼자 뭐했어?
상처주려고 굳이굳이 뜻까지 알려준 거였는데 ㅋㅋㅋㅋ큐ㅠㅠㅠㅠ 저 지금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어요... 정원에서는 벨리타가 클리프에게 꽃이나 나무에 대해서 물어보는 일이 있었을 것 같아요. 약혼자가 그쪽으로 박식했다는 설정을 주섬주섬 넣었기 때문입니다... 벨리타 입장에서는 그 사람 흔적이라도 찾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 같고, 클리프는 아마 몰랐을 것 같은데 그럼 본인이 알려주고 나중에 다시 물어보는 일이 몇 번 반복됐을 것 같아요. 클리프주 잘 말씀해주고 계신데요! 전 지금 제가 tmt 같아서 최대한 자제하려고 노력중인데 잘 안 되네요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기 성공한 클리프 돈 좀 만졌겠는걸요... 바깥 생활 돈 없으면 힘든데 다행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 벨리타는 클리프 찾아다녔어요! 처음에는 주변부터 찾기 시작해서 가까운 인가까지는 직접 가서 뒤져봤을 것 같아요. 한층 더 미쳤다는 소문만 퍼뜨리고 돌아왔겠죠...? 생각보다 멀리 갔다는 걸 안 뒤로는 신문이란 신문은 모조리 뒤져서 이상한 일 안 일어나나 찾아보다 짐작간 곳 몇 군데에 편지 보냈을 거예요. 보낸 것중에 하나가 클리프에게 간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다시 알려주고... 다시 물어보기ㅠㅠㅠㅠㅠㅠㅠㅠㅠ............... 쓰읍하아 너무 짠내다.. ,, , , 🥲 난 tmt인 벨리타주 좋으니까 자주 팡팡 터트려줘.. 그렇지 사기 성공 덕분에 거지꼴은 면했다! ✨✨✨✨✨ 앗 쪼꼼은 행복한 벨리타를 상상하며 클리프 없이 머했으려나~ ( ͡° ͜ʖ ͡°) 했지만 역시 클리프 찾고.. 소문만 커지게 하고 왔구나ㅜㅜ.. 혹시나 취미라도 있을까 했으..
ㅋㅋㅋㅋㅋㅋ 클리프 없이 클리프를 찾아다녔습니다... 원래도 정원 산책하기 좋아하고 방에 박혀서 책 쌓아놓고 읽는 거라 클리프 사라진 후에는 혼자 걷고 종류가 신문으로만 바뀐 게 되겠네요. 물론 신문은 일처럼 읽고 찾았겠지만요. 클리프의 여행과 무관하게 취미(?)에 대해서만 말하자면 사격을 할 줄 알아요. 죽이겠다 마음 먹은 건 의사여서 날카로운 것과 신체 사이의 관계를 잘 아는 것도 있지만, 총을 다룰 줄 안다는 게 더 큰 영향이 있었을 것 같네요... 얘기하면 할수록 진짜 대박 못됐음... 🥲
숲을 거닐며 같은 편지를 몇십 번 읽었다. 고질병 같지만, 이상하게도 벨리타의 편지는 달달 외울 정도로 봐야 내용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도 그럴게 한 번 읽으면 답신이라는 기쁨에 내용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고 두 번 읽으면 마음에 드는 문장에서만 시선이 맴도니 최소 다섯 번은 읽어야 했다. 달콤한 글씨를 완벽하게 곱씹고 편지에 더이상 미련이 남지 않으면 찢어서 날려보냈다. 이 편지도 그렇게 했다. 그녀가 직접 만든 무언가를 찢는다는 게 꼭 자신을 찢는 것 같아 처음엔 어열로 터질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차츰 익숙해졌다. 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지 않던가. 잘게 쪼개진 종잇조각을 봐도 지금은 저 삑삑대는 새소리가 거슬릴 뿐이다.
인간답다. 다정한 클리프. 내가 왔다는 사실. 널 기다리고 있다. 가는 길에 걸려넘어질 돌부리는 없는지 잘 살펴봐도 모자랄 판에 그녀가 적었던 말이나 중얼대다 그만 아이처럼 휘청했다. 땅을 보았지만 돌부리나 움푹 파인 곳은 없었다. 휘청일 이유가 없는데, 이제야 내 발목에 이름이 채워졌구나. 어째 더 무거워진 것만 같은 몸을 이끌고 익숙한 별장으로 걸어갔다. 작던 집채가 점점 커졌고 마침내 문 앞에 당도했다. 손을 들어올려, 낯설지 않은 문에 노크했다. 정확히 세 박자였다.
벨리타는 폭우가 쏟아지던 날을 기억한다. 머릿 속에 있는 대부분의 날이 그러하듯 파편 같은 기억이 듬성듬성 남아있을 뿐이지만, 그때 느꼈던 감각만큼은 지금까지도 놀라울 만큼 생생했다. 시야가 뿌옇게 보일 정도의 빗줄기는 사람을 집에 처박히게 만드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더는 물러설 곳이 없는 사람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원래도 인적이 드문 곳은 비가 쏟아지자 완전히 숨이 멎은 것처럼 고요했다. 벨리타는 우산도 없이 밖으로 향했다. 돌아올 때는 혼자가 아니었다. 새파란 눈동자에 잠시 이채가 돌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완전히 미쳐버렸다는 소문에 살을 붙이기에 충분한 모습이었으나 본 사람이 없어 그럴 일은 없었다. 저택에는 한동안 약품 냄새가 진동했다. 계속해서 늘어가는 크고 작은 상처에도 개의치 않고, 벨리타는 부지런히 손을 움직였다. 멍청하게도 낭만적인 재회를 꿈꿨다. 멈췄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는 걸 알아차렸을 때, 영영 뜨이지 않을 것 같던 눈꺼풀이 천천히 움직였을 때, 벨리타는 그가 예의 다정한 미소와 함께 자신을 안아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눈이 마주친 순간, 벨리타는 직감적으로 알 수밖에 없었다. 자신은 그를 살려낸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냈다.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을 괴물이라 부르다니. 속으로 몇 번이고 조소했으나 달리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벨리타는 그의 흔적이 없음을 확인할 때마다, 인간이라면 응당 느끼고 알고 있을 것이 결여된 모습을 볼 때마다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차라리 없던 일이라면 좋겠다고 몇 번이나 바라던 차에, 괴물이 자취를 감췄다. 괴물—아니, 이제는 클리프라 불러야 할 것은 그것을 여행이라 불렀다. 그리고 지금, 그 클리프가 돌아오고 있었다. 벨리타는 인간의 어디를 어떻게 찔러야 치명적인지 안다. 총을 사용한다면 더욱 간단하며, 약물을 먹인다면 이후의 지저분한 과정이 필요 없었다. 밑줄을 긋고 접어둔 신문 앞에서 벨리타는 생각했다. 어떤 방식으로 그를 죽일 것인가?
하나, 둘, 셋.
일정한 간격으로 울리는 노크 소리가 스산하게 느껴졌다. 천천히 고개를 돌린 벨리타는 시선에 걸린 날붙이와 총을 외면했다. 약물에 대한 생각도 접었다.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느리게 걸음을 옮긴 벨리타가 한층 느린 손길로 문을 열었다.
“…….”
잠시나마 제가 했던 생각이 끔찍해지는 순간이었다. 내가 네게 생을 선물했으니, 그걸 앗아가도 된다고 할 셈인가? 그렇다면 그 빌어먹을 신과 나는 무엇이 다른가?
“…클리프.”
밸리타는 혼자 몇 번이고 곱씹은 이름을 뱉으며 시선을 들어 클리프와 눈을 맞췄다. 역시나 닮은 구석을 찾기는 어렵다. 분명히 일부는 그의 것인데. 목소리는 이렇게나 비슷한데. 벨리타의 얼굴에 감출 수 없는 실망감이 스쳤다 사라진다.
벨리타가 제 이름을 말했을 때부터 꿈틀거리던 입꼬리가 완벽한 호선을 그렸다. 그녀와 눈을 맞추며 얘기하는 게 얼마 만인가. 여행은 긴 만큼 재밌고 풍부했지만 그 무엇도 저 새파란 눈동자를 대신할 수 없었다. 이렇게 보니 좋은 것을, 좀 더 빨리 돌아올 걸 그랬나 보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심해에 언뜻 보였던 실망감도 뒤로 해, 벨리타의 한 쪽 어깨를 쓰다듬었다. 밥 좀 잘 챙겨 드시지. 작게 읊조렸다. 그리고 나서야 실내에 발을 딛었다. 삑삑대는 새 소리가 흐려졌다.
전등, 탁자, 전부 다 알고 있는 것들이다. 딱 한 가지 눈에 걸리는 점은 누군가 열심히 읽은 것 같은 신문 뭉텅이. 신문 뭉텅이가 있는 곳으로 조금씩 다가갔다. 그쪽으로 다가가다 날붙이와 총이 클리프의 눈에도 자연스레 들어왔지만 일순 시선만 주다 말았다. 저것들은 이전에도 봤던 것이니 낯선 뭉텅이 쪽을 택했다. 가까이서 본 신문은 꽤나 정성스럽게 접어져 있었고 밑줄도 쳐져 있었는데, 표시된 기사들의 공통점이 뭘까 하다가 이내 답을 알아차렸다.
"편지를 이렇게 보냈구나, 대단해요. 이건 나고…… 이건 모르겠고…… 아. 이건 확실히 아냐."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기사들을 짚어보니 오래된 일들이 최근의 일들과 얽히고설켜 아스라하게 떠올랐다. 신문이 자신의 일을 세세하게 기록했으니 여기에 느낌 몇 마디만 쓰면 일기였다. 클리프는 가장 마음에 찬 신문 하나를 집어 들었다. 아무래도 내 여행을 가장 길게 따라온 사람은 부모 잃은 아이도, 얼굴 벌건 취객도 아닌 벨리타겠구나. 신문을 구깃거리며 든 생각이었다.
웃는 얼굴에서 기시감과 위화감을 동시에 느꼈다. 편지에 적힌 몇몇 문장과 그가 겹쳐 보였다. 그중 몇 개는 벨리타가 '인간적'이라 정의내린 것들이다. 단지 흉내에 불과하다고 여긴 건 잘못된 생각이 아니었나. 클리프Cliff는 그가 스스로 추락하길 바라며 붙인 이름이다. 그러나 지금은 도리어 제가 절벽 앞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다.
"…그런가? 잘 모르겠네."
결국 벨리타가 먼저 눈을 피했다. 어깨에 닿는 손길이 퍽 다정하게 느껴졌다. 클리프가 먼저 안으로 들어가도록 두고선, 미묘한 얼굴로 그의 손이 닿았던 자리를 쓸었다. 심장이 거세게 뛰고 손발은 차게 식어가기 시작했다. 누군가 목구멍을 틀어쥐고 있는 것처럼 괴롭다. 끔찍함이다. 그러나 지금의 끔찍함은 편지에서처럼 클리프만을 향하지 않았다. 멋대로 그를 괴물로 규정하고, 존재 자체를 없애려 애쓴 순간들을 떠올렸다가 다시 지워냈다. 오판의 가능성은 열어놓되, 자기혐오에 빠지는 일은 없어야 했다. 똑바로 보고 제대로 된 판단을 해야 한다. 미세하게 경직된 얼굴이 평소의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새파란 눈에 기이한 빛이 들었다. 벨리타가 등 지고 서 있던 클리프를 향해 몸을 돌려 걸어갔다. 다시 날붙이와 총기 따위가 시선 안에 들어왔지만, 구태여 눈길을 주지는 않았다. 벨리타는 불친절한 신처럼 굴고 싶지 않다.
"네가 있을 것 같은 곳에 전부 편지를 보냈어. 여기는 절반 정도 확신했던 곳인데 틀렸다니 유감이네."
클리프가 틀렸다 일러준 신문을 집어들며 말했다. 이미 이전에 읽은 내용일 텐데, 시선은 글자를 하나하나 짚어가며 읽는 것처럼 움직였다. 그닥 길지 않은 기사에 빠져든 사람처럼 쳐다보던 벨리타가 돌연 클리프를 바라본다.
"…꽤나 긴 여행이었지. 그동안 즐거웠어?"
내용 자체는 평범한, 혹은 상냥하게 느껴질 법한 말이었으나 어조는 몰아세우는 사람의 것이었다. 다소 거칠게 신문을 내려놓은 벨리타가 클리프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여기는 안전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하지만 밖은 아니야. …대체 왜 떠난 거야? 내가 찾지 않았다면 영영 떠돌며 살아갈 생각이었어?"
투박스레 신문을 내려놓는 벨리타의 행동이 당돌하게 느껴졌다. 말의 내용과 미묘하게 어긋나는 어조, 불쑥 다가오는 발걸음 하나하나 전부 당돌했기에 이해하지 못했다. 괴물을 앞에 두고 두려워하거나 꺼림칙한 기색 따위 눈 씻고 보아도 찾을 수가 없는데 괴물이 무섭다니. 벨리타가 느끼는 감정과 기분은 아직도 미지수였다. 물론 이것은 놈의 생각이기에 제 3자는 다 보았을 수도 있다. 그녀의 끔찍함을.
“당연히, 긴 여행을 충분히 즐기다 돌아왔어요.”
거짓 하나 묻지 않은 순수한 참말이었다. 거짓말이 아니라는 걸 증명할 수 있는 단서는 언제나 그렸던 호선이지만 웃음은 만년 달고 다녔기에 썩 좋은 증거는 되지 못했다. 특히 자신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그녀에겐 혹여 짜증만 유발하는 입술의 경련이 아닐까 무의식적으로 괘념했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이 또한 참이니 거짓된 괘념이다 거짓된 웃음이다 꾸짖기에 뭐하지만 여전히 빙글빙글한 얼굴이다. 웃는 얼굴에 침은 못 뱉더라! 긴 여행 중 광인에게 들었던 말이 걸걸한 목소리와 함께 뇌내에 퍼졌다. 딱히 벨리타에게서 듣는 비난이나 쓴소리가 두려워 웃는 것은 아니었지만 두려워하는 무언가를 廢 급급히 손으로 가려 형체라도 안 보이면 좋겠다는 이유가 있겠다. 반사적으로 나오는 모든 소태가 그러하다.
“벨리타가 그렇게 가리고 싶었던 것이 난지 바깥인지 궁금해서 잠을 잘 수가 있어야죠. 영영 떠돌며 살 생각은 없었고 이맘때 쯤 수소문에 성공해서 날 부르는 편지가 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아직 배움에는 목이 마르지만 벨리타에게 간절히 바랐던 이름을 받았으니...... 떠나는 일은 없을 거예요.”
밀빛의 머리로 눈알이 굴러갔다. 머리칼을 매만지려고 올라간 손은 도중에 멈추며 다시 내려가는 듯 했다. 하지만 눈꼬리를 접으며 피로한 인상을 만들어 낸 클리프는 이렇게 말하며 손바닥이 보이게 손을 뒤집었다.
“피곤한 여행객인데 말로만 하는 환영 말고, 한 번만 잡아주세요. 포옹은 바라지도 않으니.”
벨리타의 질문은 질책이나 나무람과 다르지 않았다. 그에 웃으며 대답하는 클리프를 보는 벨리타는 착잡한 마음이었다. 벨리타의 의도를 알고 했든, 단순한 질문으로 이해하고 진심을 말했든 곤란한 건 다르지 않았다. 벨리타에게 클리프는 제 손으로 만든 판도라의 상자였으며, 그가 세상 밖에 나간 일은 상자가 열린 일과 같았다. 신이 만든 판도라의 상자 밑바닥엔 희망이 있었다고 하지만,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에는?
"나를 잘 아는 것처럼 말하는구나. 궁금증에 대한 답도 알아냈니?"
벨리타는 그를 감추고 싶었다. 그 마음은 여전하며, 당사자인 클리프에게도 숨길 생각이 없다. 편지에 적었던 몇몇 문장은 거의 폭언이었으니 그가 알아채더라도 이상하지 않다. 그럼에도 다시 묻는 데엔 그를 들쑤시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건 다 알려줬다고 생각했는데. 나한테 말을 하지 그랬어. 더군다나 이름이라니. 그런 건 언제든 붙이면 그만이었을걸."
냉담하게 뱉고 나서 뒤늦게 후회했다. 모든 말과 행동에 화풀이성이 짙다는 걸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짧게 얼굴을 찌푸린 벨리타가 움직이는 클리프의 손끝을 따라 고개를 들었다. 올라가던 것은 움직임을 멈추더니 이윽고 앞으로 다가왔다. 제 손으로 꿰매어 이었던 것이다.
"…부탁이 있어. 지금은 피곤할 테니 나중에."
말을 먼저 뱉고 제 손을 올린다. 자잘한 상처와 흉터를 달고 산 지는 오래고, 계속 종이를 짚어가며 글을 읽은 탓에 끝이 다 갈라진 손이었다.
"네가 밖에서 뭘 배웠는지 말해줘. 하루에 한 개씩이라도 좋아."
벨리타는 클리프가 이름에 의미를 두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가 말했듯 이름이 족쇄가 되어 영원히 이곳을 떠나지 못하리라 생각하지도 않으며, 언제든 마음이 바뀌면 훌쩍 떠나버릴 수도 있다고 여긴다. 따라서 벨리타에겐 이름이 아닌 또 다른 족쇄가 필요했다.
"대신 하나도 빼놓지 말고 전부 다 이야기해줘야 해."
벨리타는 상냥한 미소를 짓기 위해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러나 말끝에 들어간 힘과 그를 올려다보는 시선이 그녀의 생각만큼 다정하게 느껴졌을지는 미지수이다.
다양한 것들을 배우기에, 궁금증에 대한 답을 알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여행이라 생각했다. 벨리타가 그렇게 감추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좋은 여행 덕에 확실히 알게 되었지만, 그 답을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누구에게나 득이 될 대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익숙한 무언을 택한다. 정적이 강해질수록 당신의 요란함은 거세져 가고 내 웃음은 진득하게도 달라붙어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게 되지만 그런데도 계속해서 무언을 택한다. 서로 간의 고요함이 불어날수록 낭떠러지에서 추락을 배우는 우리는 서로 많이 닮아있지 않은가? 그녀와 그녀의 괴물인 내가.
성한 곳을 찾기 힘든 손이었다. 제 손도 그리 예쁜 편은 아닌지라 맞잡은 두 손에 위화감은 없었지만 지금 이 모습이 부자연스러워도 좋으니 상처 몇 개만 사라졌으면 좋겠다. 갈라진 부분이 연한 살로 가득했으면 좋겠다. 전부 클리프의 꾸물대는 응어리에서 나온 생각이었다.
“그런 부탁이라면야.”
벨리타의 손의 흠집 하나를 미미하게 쓸다 그녀의 미소가 보이는 순간 행동을 멈췄다. 밖에서 배운 것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알려달라니. 사람 냄새 하나 나지 않는 이곳에서 그렇게나 적적했던 것일까, 아님 다른 이유일까. 어찌 됐든 클리프는 전자를 바랐다. 이유는 없다. 그래도 막상 주위에 아무도 없이 먼지가 나뒹구는 곳의 쓸쓸한 뒤태를 그녀에게 대입하니 이건 이것대로 싫어 눈쌀이 찌푸려졌다. 정말이지 갈대 같은 놈이 따로 없다. 방금 제 눈이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의사를 드러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휴식이 있고나서 벨리타에게 얘기해 줄 여행 이야기들을 추려보기도 하고
어떤 행동은 사람 자체에 새겨진 채 영원히 존재할 수도 있는 걸까. 이미 흉터가 된 자리를 쓸어내는 손짓은 벨리타가 알고 있는 것이다. 클리프는 그였을 때의 기억이 없고, 제 손과 닿는 것 역시 다른 사람의 손인데. 기대를 다 버렸다고 생각한 순간에 익숙한 것이 고개를 처들고 존재감을 피력한다. 그 사이 벨리타는 찌푸린 얼굴이 과거의 무엇을 떠올리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본다. 후하게 쳐도 가능성은 바닥을 기었다. 길어져봐야 좋을 게 없는 환영 인사는 이쯤에서 끝내기로 한다. 벨리타가 천천히 손을 빼내고 창밖으로 고개를 돌린다. 둘뿐인 저택에 입 여는 사람이 없으니 적막하다.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가 크게 들릴 정도였다. 그 사이로 작게 새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아, 그러네."
새가 우는구나, 작게 중얼거린 벨리타가 더 먼 곳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어딘가에 앉아 울고 있는 새를 찾아보기라도 할 셈인 양.
이 레스로 짧게 마무리 할게요~ ☺️ 행복한 3시 보내라고 해주신 덕인지 2시부터 행복했어요! 벨리타 약혼자 얘기는 저도 이번에 굴리면서 생각이 나더라구요 ㅋㅋㅋㅋㅋㅋ큐ㅠㅠㅠㅠㅠㅠㅠ 얘기한 적이 없네요 🥲... 벨리타는 매애애앤 처음에 클리프가 딱 눈 떴을 때 약혼자 이름 부른 것 빼곤 언급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한 건 여기까지라 나머지는 클리프주가 클리프에 맞춰서 정해주시면 감사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