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이 직접적으로 부딪히는 치열한 전장에는 아무리 화력을 쏟아부어도 부족함이 있기 마련이다. 서포터는 바로 그 부족한 부분을 케어한다. 기본적으로 캐스터와 비슷한 마법적 성질을 띄지만 부수적인 면에서 그 궤를 달리한다. 이들이 부리는 마법에는 단순한 원소아츠를 제외하고도 신비한 힘이 깃들어 있어 적들의 발을 묶거나, 조금이나마 메딕의 자리를 대신해주는 등의 신통한 역할을 해준다. 경험있는 지휘관일수록 압도적인 전력보다는 서포터 포지션을 적극적으로 기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런 묘한 양상을 띄는데에는 분명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누군가, 누군가,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네요. 머리를 쓰다듬어주는데, 아니요, 난 그곳에 있지 않아요. 당신은 없어요. 주위에 무언가가 없는 걸요. 파동이 느껴지지 않아요. 그만 가주지 않을래요? 과거는 과거에, 현재는 여기로, 미래는 미래에.
찰박, 그 정도 소리까지는 아니예요. 똑, 똑...그 정도 소리가 들리네요. 미처 꽉 잠구지 못한 수도꼭지에서 한방울씩 물이 새어나오듯이, 장미꽃잎이 걸음걸음마다 하나씩 피는 것처럼, 발이 움직일 때마다 바닥에 흔적을 남기고 있어요. 아프지는 않은 걸까요? 그럴지도 모르죠. 허공을 떠도는 시선은 꿈 속을 걷기라도 하는지 이리저리 떠돌고 있네요.
정처없이 떠도는 발걸음은 어디러 가야 할지를 몰라 멈칫거리고, 잡을 곳 없는 손은 손마디가 하얗게 질리도록 드레스 자락을 쥐고 있어요. 여인은 꿈 속을 헤메고 있나요? 누군가와 춤을 추고 있나요?
걸음을 걷던 칼리가 멈춰선 것은 어딘가에서 엷게 풍기는 냄새 때문이었다. 평소라면 무심코 지나쳤을 엷은 그 냄새에 칼리의 걸음이 멈춰진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피냄새가 나는군?"
칼리는 곧 시선에 닿는 낯익은 사람의 모습을 발견하고 킁- 하고 코를 실룩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다가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떨어지는 피가 걸어온 걸음이 지나친 바닥을 물들이고 있었다. 칼리의 걸음이 다시 재차 움직이며 계속 피를 흘리며 걷고 있는 상대와 거리를 금새 좁히고, 늙은이처럼 혀를 끌끌거렸다.
"이보게. 자네."
본인과 구면이지 않은가? 칼리는 상대의 허리로 팔을 뻗어서, 거부하지 않는다면 어렵지 않게 안아서 들어올리려는 행동을 해보였을 것이다.
"저번에 유리를 밟으려는 걸 도와줬거늘, 자네. 기어코 발을 다치지 않았나. 그 상태로 걸으면 상처가 덧난다네?"
"거기에다가 누군가 뭘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조금 이상한 말이지만, 기분이 정말 좋거든요."
하고 에덴은 밝게 웃었다. "제가 좀더 운이 좋았다면, 어쩌면 전 요리사를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다가 블라디미르가 캐묻는 집요한 질문에, 에덴의 뺨이 한층 더 빨개졌다. "음, 응- 네, 그런 셈이죠. 누구의 이빨자국인지까지는 말하지 않을래요." 하고, 에덴은 얼굴을 붉힌 채로 멍자국을 손끝으로 쓰다듬었다. 그리곤 다시 아직 트레이에 놓여 있는, 구워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치킨커틀릿들로 시선을 옮겼다.
치킨커틀릿을 한 입 베어물면, 바삭한 튀김옷 아래로 닭고기가 입안에서 녹아내리다시피 부드럽게 으스러지는 게 느껴진다. 미리 시즈닝을 해둔 것인지, 으스러지는 고기에서 흘러나오는 육즙에는 스파이스하고도 감칠맛이 나는 풍미가 한가득 배어 있다. 맥주가 한 캔 옆에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 블라디미르가 건넨 말에, 에덴은 다시 그를 돌아보았다.
하고, 에덴은 짐짓 처량한 눈빛을 꾸며서는 리아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도 잠시, 옷을 사러 가자는 말에 리아가 처량하게 반응하자 눈을 치뜨며 전혀 그렇지 않다고 손사래를 쳤다.
"제가 일할 때 입는 옷도 언니가 지금 입는 옷이랑 별다르지 않은걸요. 그리고 전 언니의 옷차림이 별로거나 그보다 아래라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언니는 차분하면서도 와일드하니까, 그런 차림도 예쁘기도 하구요. 오히려 언니 같은 사람이 스타일을 폭넓게 소화할 수 있으니까 부러운걸요."
리아에게 눈길을 고정시킨 채로, 에덴은 말에 열기를 띄어갔다.
"그렇지만, 일할 때 입는 옷은 일할 때 입는 옷이고... 평소에 입는 옷이라는 게 있어서 나쁠 것 없잖아요? 무엇보다, 제가 언니한테 입혀보고 싶은 옷이 있어서..."
열기를 띠어가던 말끝에는 왠지 배시시 웃는 웃음을 덧붙이던 에덴은, 저녁밥의 마지막 숟가락을 뜨다가 리아가 부른 뜻밖의 칭호에 눈을 깜빡였다.
"......?"
숟가락이 공중에 멈춘 찰나. 에덴은 눈을 두어 번 더 깜빡이다가, 마지막 숟가락을 씹지도 않고 꿀떡 삼키고는 물을 한 모금 마시고서 부리나케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리아에게 쫄래쫄래 따라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