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피터지게 싸우는 것만이 전략적 열쇠는 아니다. 메딕은 다른 이들과는 달리 치유라는 방법으로 싸움터에 섰다. 오리지늄 아츠는 공격적인 방식뿐만이 아닌 치유적인 방향으로도 발달되었으며, 메딕은 그 힘과 지식을 아군을 보살피는데에 사용한다. 이것은 상당히 고도의 지식이며 그렇기 때문에 메딕의 존재는 희귀하고, 이런 포지션을 도맡으려 하는 자들도 드물지만 절대 이들을 등한시해서는 안된다. 싸움이 길어지며 기세등등했던 동료들이 점점 지쳐갈때, 결국에 찾는 것은 항상 메딕의 존재유무일것이기 때문이다.」
과연 그녀가 주방에 아무도 안들어올거라고 생각했을까? 일단 결론만 놓고 보자면 부정이었다. 하지만 딱히 떠들썩한 날도 아니었고, 벌써 한마리가 완성될 정도인데도 어느 누구 한명 기척을 보인적 없었으니 그저 들를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 때 거짓말같이 등장한 이가 있었으니...
"아... 아하하하~ 안녕~?"
잠깐 어느 손을 들어야 할지 고민하던 그녀는 장갑을 낀 손으로 가볍게 손인사를 해보이다가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는듯 바로 사과를 해오는 그에게 고개를 저으며 웃어보였다.
"미안할거 없어~ 사람은 어차피 먹으려고 사는 건데, 딱히 부끄러운 일도 아니잖아?"
의외의 부분에서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는 건 그녀의 성향 때문일까, 아니면 그만큼 스스럼없는 태도를 보이는 걸까? 어느쪽이건 경계할만한 대상은 아니었기에 그녀는 다리한쪽을 떼내어 그에게 내밀어보였다.
"먹을래? 맛있어~"
지금 보면 그건 칠면조를 넘어 공룡 비스무리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만큼 커다란걸 어디서 구했는지도 알수 없었고, 하지만 그런걸 따질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누군가의 뱃속으로 들어가면 그걸로 충분했으니까?
민감한 사람이라, 확실히 그녀에게 있어 식사라는 것은 교양보단 생존, 목숨밥에 가까운지라 먹거나 즐기는걸 누군가에게 보여 불편해질만한 인물은 아니었다.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해서 상대방을 당황하게 하면 모를까, 그리고 그 사례는 지금껏 충분히 봐왔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앞에 두고 독식하는 건 예의가 아니잖아? 맛있는 건 같이 먹어야 더 즐거운 법이고~"
그렇다고 아무거나 먹는 것도 아니었다. 기왕 먹는 거라면 더 엄선된 재료로, 더 많은 양을, 더 맛있는 조리법으로 먹고 싶은 건 사람으로서 당연한 본능 아닐까?
"에이~ 칠면조가 아니면 설마 타조겠어? ...근데 타조도 맛있어?"
확실히 제아무리 칠면조라 한대도 조금 오버사이즈이긴 한데... 과장 좀 보태서 그쯤이면 공룡고기라 해도 되지 않을까?
"음... 확실히 의외의 수확이었지? 지금 이 시즌엔 이정도 크기는 찾기가 조금 힘들댔나... 그래도 뭐, 그렇기에 더더욱 값진거 아니겠어?"
칼을 들어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칠면조를 반으로 한번에 갈라내자 아직 남아있던 내부의 열기가 바로 빠져나왔다. 이윽고 그 절반을 입속으로 가져가더니... 눈 깜박할 사이에 입 밖으로 나온 건 살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뼈들. 그저 입안에 한번 들락날락 한 것만으로도 이만큼 소화해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에 가까워보였다.
도미닉의 기술에 도나가 제압당한 것은 한순간이었다. 단도를 내지른 팔이 등 뒤로 돌아가 완전히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눈으로 보고 피할 생각으로 달려들었는데, 아무것도 못 해보고 순식간에 당해버린 것이다. 오기가 생긴 도나는 분한 표정으로 발을 동동 굴렀다. '사르곤이었다면...'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이곳은 컬럼비아다. 밀림이 아닌 도시라는 말이다. 야생에서의 싸움법이 몸에 밴 그녀는 이토록 일방적으로 제압당하는 경험이 처음이다. 전력이 아니었다 해도, 일순간 좌절감을 맛본 그녀는 눈빛을 달리했다. 연마되지 않은 날붙이를 예리하게 벼려내는 것이 아르고 에이전시고, 야인이었던 그녀에게 현대적인 전술감각을 입혀내는 것이 소장 도미닉의 역할이다.
"근접전투 정도는 나도 알고 있어요. 나, 그렇게 바보는 아니라구."
도나는 교범에서 보았던 단어를 떠올렸다. 상대의 허를 찌르는 변칙적인 공격은 지형지물이 불규칙하고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한 야생의 환경에서 그 진가를 발휘하지만, 장해물이 없고 사방이 뚫린 도시에서는 완벽한 기본기가 가장 중요하게 작용한다.
"소장님. 나 뭐부터 해야 할지 알 것 같아."
도나는 붙들렸던 어깨를 빙글 돌리며 도미닉을 마주 본다. 순진하기만 했던 눈망울이 열의로 반짝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