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를 휘둘러 상처를 입히고 적을 제압하라. 가드는 전장에서의 실질적인 전력을 담당하고 있는 포지션이다. 근거리 공격이라는 원시적이고도 고전적인 방법은 오리지늄 아츠와 공학이 고도로 발달한 지금 시대에서도 아주 잘 들어먹히는 방법이며 그래서인지 통계적으로 전세계에서 제일 많은 사람들이 속해있는 포지션이기도하다. 이들은 주로 물리적 공방에 강하며 고작 칼 한 자루로 해냈다고는 믿을 수 없는 성과를 보여주고는 한다. 이들을 대표하는 무장은 검이다.」
그러니까 말이야. 나는 좀..구제불능인 거 같아. 별 거 아닌 일에 이렇게 놀라버렸고. 거기다, 내밀어진 손을 무시하고 벌떡 일어나 버렸어. 꼬리뼈 쪽이 조금 아픈 것 같긴 해. 그보다는 넘어져서 부끄러운 거랑, 좀, 보기 어려운 게.
사람이 태양을 보면 눈이 멀어버린다잖아. 나한테는 수많은 좋은 사람들이 그런거야. 살아가기 힘든 체질이네.
"..괜찮아요.."
나는 중얼거리듯 말했어. 일어나기 전에 말하는 편이 좋았겠지만.. 시야가 높아지니 그녀가 좀 더 잘 보여. 그녀가 나보다 키가 작으니까. 사실 처음에는 장신이 아닐까 했어. 느낌상. 그런데, 아담해서 말이야. 곤란해. 아래쪽까지는 머리카락이 잘 못 가려주니까, 보일 수도 있고, 보면 내가 아플 거 같거든. 좋은 사람은 부러워. 나는 못 되잖아..
잔뜩 위축된 자세로 커피잔을 바라보던 리타가 몸을 움찔였다. —살인자. 강렬하게 귓가를 파고든 그 이름이 머릿 속을 떠나질 않았다. 남자의 목소리를 입은 단어가 리타의 몸을 옥죄인다. 살인자, 나쁜 인간. 리타가 불안한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았다. 남자의 검지는 자신을 향해있다.
" 아, 그, ... "
리타는 무어라 말을 하려는 듯 입을 달싹였지만, 그것이 고작이었다. 무어라 말을 뱉기도 전에 남자의 손가락이 저 스스로를 가르키고, 심장이 떨어지는 듯한 당혹감이 몸을 엄습한다. 리타가 아랫 입술을 꾹 깨물었다. 애써 눈길을 커피잔에 처박으며 상황을 외면해볼래도, 이 공간에 자리한 그녀의 몸뚱이는 아직도 오롯히 남자의 앞에 앉아있다. 마치 상자 안에 머리를 들이밀고 '안전하다' 생각하는 동물처럼, 고작 남자를 피해 시선을 돌리고선 그것으로 위안을 삼는 것이다.
" ... "
리타가 느릿히 숨을 들이켰다. 나빠보이지 않는다니. 혼란스럽다. 식어가는 커피 따위를 신경 쓸 겨를 조차 없다. 남자를 바라보며 그 의미를 되묻고 싶었지만, 리타는 차마 시선을 돌릴 수 없었다. 다시 남자를 마주하면 애써 외면했던 세상이 저를 향해 들이칠까 무서웠기 때문에.
" 익숙... 해지고 싶지 않아요... "
리타가 간신히 입을 열며 말했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에서는 아까의 여유라곤 찾아볼 수가 없다.
" 라샤씨가 말한 대로... 익숙해지는 게 최선이겠지만... "
—살인자라는 이름을 쓴 채로 보이고 싶지 않아요. 리타가 그 말을 삼키며 입을 다물었다. 그 말만은 절대로 꺼내들 수 없었다. 입 안이 온통 가시에 찔려버린 듯 욱씬거렸으나 차마 그것을 뱉어낼 수는 없었다. 목구멍이 찢어지더래도 삼켜야한다. 구역질과 함께 그 말이 몇 번이고 올라온다한들. 눈가가 붉게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졌지만, 이쯤이야 얼마든지 참을 수 있다. 몇 십 몇 백번이고 겪어보지 않았던가. 또 몇 십 몇 백번이고 삼켜넘겨보지 않았던가. 오히려, 견디기 힘든 것은...
" 저, 저때문에 분위기가 이상해졌네요... 그냥 잊어주세요. 괜한 말을 해서... "
리타가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다. 차오르는 나이만큼, 또 도시를 떠돌아다닌 만큼. 표정을 숨기는 것 쯤이야말로 이제는 익숙한 일이었으니.
내민 손이 무안하게 혼자 벌떡 일어나버렸어. 하지만 뭐. 그의 말대로 괜찮은 것 같으니까. 그런데 처음 봤을 때부터 궁금한 게 하나 있어. 그는 왜 이렇게까지 얼굴을 가리고 있는 걸까. 아침에 세수를 안 했나? 눈에 다래끼가 났나? 아님... 내가 불편한가? 휴일인데 시간을 너무 많이 뺏었나? 얼굴 정도는 기억해두고 싶은데.
후드의 안쪽이 궁금했던 도나는 가볍게 뒷짐을 지고서 한 발짝 물러나, 허리를 숙여 머리를 그의 가슴 쪽에 가까이했다. 그녀는 호기심 가득한 얼굴을 그대로 들어 올리려다가,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이 '아!' 하고 소리 내어 말하며 몸을 빙글 돌려 입구 쪽으로 걸어간다.
"저... 제가 시간을 너무 많이 뺏었죠? 이만 가볼게요...?"
처음 문을 열고 들어올 때와는 달리 한결 가벼워진 목소리의 끝에는 어쩐지 물음표가 붙어있었다.
한 치 망설임없는 즉답이다. 그러나 얼마나 아파? 하고 묻는다면 그 질문에는 대답할 생각 없다. 이상하지 않은가. 남의 상처가 자신의 상처보다 더 아프다고 말하는 것은. 자신이 의사나 힐러라도 되고, 다른 모든 이들의 상처가 자신의 상처보다 아프다고 말하면 그건 숭고한 마음의 표출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형태 잡히지 않은 마음을 돌려주기 싫은 것은 에덴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이 컬럼비아에선 나같은 사람들도 생각보다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으니까-"
리아의 미소가 에덴의 망막에 비쳐보인 건 에덴이 고개를 뒤로 빼느라 무방비한 그때였다. 에덴의 눈이 두어 번 깜빡였다. 그녀는 이내 손부채질을 하며 시선을 조금 다른 데로 돌렸다.
"맛있는 걸 먹으러 가거나, 아니면 저번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예쁜 사복을 마련해보는 건 어때요? 언니 예쁘잖아. 무얼 입어도 잘 어울릴 텐데."
하고 애프터 약속을 자연스레 기정사실화하고는, 에덴은 리아가 잡아내린 손으로 맥주캔을 쥐고 리아 쪽으로 밀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