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를 휘둘러 상처를 입히고 적을 제압하라. 가드는 전장에서의 실질적인 전력을 담당하고 있는 포지션이다. 근거리 공격이라는 원시적이고도 고전적인 방법은 오리지늄 아츠와 공학이 고도로 발달한 지금 시대에서도 아주 잘 들어먹히는 방법이며 그래서인지 통계적으로 전세계에서 제일 많은 사람들이 속해있는 포지션이기도하다. 이들은 주로 물리적 공방에 강하며 고작 칼 한 자루로 해냈다고는 믿을 수 없는 성과를 보여주고는 한다. 이들을 대표하는 무장은 검이다.」
그 역시 그녀의 시선을 피하는 것 처럼 고개를 뒤로젖힌채 손가락만 까딱거릴 뿐이었다. 방금보다도 더욱 작아진 목소리, 잔뜩 위축되어 기어들어가는 그녀의 목소리에선 여유따위는 찾아볼 수도 없었을 뿐더러 약간의 두려움마저 느낄 수 있었다.
익숙해지고 싶지 않다. 만약이라도 익숙해져버리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그것은 누구보다도 그가 잘 아는것이 아니었던가.
"맞아. 익숙해지고 싶지 않은게 정상이야. 태어날때 부터 그런 꼬리표를 달고있는게 아니라면... 누구나 두려워하지."
익숙해진다는 건 결국, 그 선을 넘어버린다는 의미도 되어버리니까. 달그락, 달그락. 커피잔을 두들기던 그의 손가락이 멈췄다. 그녀가 조심스레 고개를 듦과 동시에 그 역시 뒤로 젖히고있던 고개를 천천히 들어올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역시 그 눈빛은 생기가 전혀 담겨있지 않았다. 오히려 기운이 없어 금방이라도 스러질 것 같은 눈.
"하지만 그래서 내 눈엔 나빠보이지 않는다는거야. 너는 아직 익숙해지지 않았으니까."
이번엔 그의 시선이 바닥을 향해 내려갔다. 두 눈을 감은채 작게 숨을 들이내쉬며 무슨 말을 해야할까 고민하는듯한 모습을 보였다.
"너무 오지랖 넓었네."
안 그래도 깊게 눌려있던 모자를 더욱 더 깊게 눌러썼다. 그래서인지 더 이상 그의 눈동자가 보이지 않았다.
"ㄱ굼이 아니라고 하니까 진짜 꿈이다아..." 웬 논리가.. 연결망이 이상해지기라도 했나.. 라는 생각이 들지만 넘어갑니다.
"이름이 머에요? 꿈에서 신기한 거 이름 잘 대해줘요" 내가 생각 못하는 이름들 많아요. 라고 고개를 끄덕끄덕거리면 로브의 후드가 펄럭거립니다. 나는 오라클이라고 불려요. 라는 시키지도 않은 자기소개를 하고는 아르고에 왔어요. 한 달차? 라는 또 시키지도 않은 연차소개도 하네요..
한치 망설임 없는 에덴의 말에, 덤덤한 듯한 표정을 하고 있던 오니의 입에서 흘러나온 건 정말로 곤란한 듯한 말이었다. 자신이 다치는 것이 아프다는 에덴에게 자신이 무어라 말할 수 있을까. 아마도 스위치가 들어간 자신이 에덴의 말을 들어주는 것은 힘들다는 건, 수없이 다쳐오며 자란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저렇게 자신을 바라보며 아프다고 말하는 에덴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고민을 하듯 입술을 달싹이던 오니는 에덴의 머리에 얹어져 있던 손을 아주 살짝 내려 에덴의 볼에 가져다 대려 하며 말한다.
" 스위치가 들어갔을 땐, 에덴의 말 못 들어주지만. 언제나, 기억하고 있어. 매번 약속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용서해, 줘. "
느릿느릿하고 중간중간 끊기기도 하는 말투였지만 이 말 만큼은 진심이라는 듯 속삭인 오니는 다시는 에덴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어쩌면 지금은 에덴의 눈을 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인지도 몰랐지만.
" .... 그런 건, 에덴한테 어울릴텐데. 나는 아무거나 입어도.. 괜찮지 않을까. 응, 꾸미는거 자신 없고.. "
어쩐 일인지 갑작스레 손부채질을 하는 에덴을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살짝 기울여 바라보던 오니는 이어진 에프터 약속에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예쁜 사복에 대해선 자신이 없는 듯, 오히려 에덴이 입어보는게 낫지 않냐는 듯한 말을 던지곤 다정한 시선을 던진다. 자신같은 오니보다는 에덴이 충분히 잘 어울릴거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 에덴, 술 잘 못 마시니까. 조금만, 마셔야겠네. "
은근슬쩍 에덴에게 장난스런 말을 던진 오니는 그런 자신이 만족스러운 듯 다시금 찰나의 순간동안 미소를 머금다 맥주캔을 따서 입가로 가져간다. 붉은 빛을 띈 입술이 살짝 열리고 맥주가 흘러들어가고 나니 한껏 윤기를 머금은 입술을 만족스럽게 닫는 오니였다.
왠지 모르겠지만 가까이 오고 있길래, 뒷걸음질 쳤어. 그야..다가오면 보일지도 모르잖아. 얼굴이. 나는 그거 싫어. 그러니까...앞머리를 만져서 아예 아래쪽에서도 안보이게 가려버렸지. 저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내 얼굴을 본다고 화내거나 하진 않겠지. 하지만 싫어. 싫은 건 어쩔 수 없어.
기대가 망가지는 건 익숙해지지 않고. 옛날 이야기라는 건 어쩔 수 없이 머리속에 박혀서 내 인생을 결정한단 말이야.
그래도 다행스럽게도 그녀는 떠나려는 듯 해. 뭔가 좀 이상하지만.. 착각일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어.
"차가워어..?" 뺨의 노란색 무늬에 캔맥주가 닿자 묘하게 핏기가 빠져나가는 것처럼 회색이 섞여나가는 느낌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왜에 차갑지이.." 깨버리는 걸까.. 라고 중얼거리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일어나면 정신을 좀 제대로 차린 것처럼 보입니다. 자기가 뭔 말을 했는지 잘 기억을 못하는 것처럼 류드라..? 라고 고개를 끄덕이며 이름을 들었으니 이름을 소개하는 것처럼 오라클이에요! 라고 말하지만 그건 이름이 아니잖아..
"오라클이라고 불러주세요..." 손가락을 꾸물거리면서 소심하게 말하려 합니다. 그래도 비몽사몽보다는 낫네. 아누트라고 자칭하는 참치 인형은 이제 안 끌어안고 옆에 얌전히 놔뒀네요. 그걸 지적한다면 아니아니아니 아누트씨는 장식이니까요? 라는 삑사리를 들을 수 있을지도?
리타는 묵묵히 라샤의 말을 들었다. 익숙해지고 싶지 않은 것이 정상이다. 꼭 그 말이, 저 멀리 동떨어져있던 자신을 평범한 사람들의 무리 안으로 밀어넣어주는 것만 같았다. 남들과는 다른, 분리된 세상을 걷는 것만 같았던 그녀에게.
리타가 새하얀 눈동자를 마주했다. 떨림이 멎고, 이제는 눈을 마주칠 수 있을 정도로 진정이 된 것이다. 남자의 손가락이 저를 향할 때는 마음이 무척이나 혼란스러웠는데, 이제는 요동이 멈추고 잔잔한 바람결이 불어온다. 단시간에 폭풍이 몰아치고 하늘이 맑아오듯이. 감정의 폭이란 언제나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변덕스러운 것이었다.
아직, 리타가 그 말을 곱씹었다.
" 라샤씨는... "
그녀가 입을 다물었다. 함부로 내뱉어도 괜찮을지 확신이 서지 않은 탓이다. 그저 오매불망 라샤의 눈치만 살피는 꼴이, 오늘 안으로 그 말을 내뱉진 못할 성 싶다. 리타가 커피잔을 만지작댔다. 온기가 사라진 커피에서는 더이상 향이 나질 않았다.
" 아, 아니에요! 오지랖이라뇨... "
리타가 잠시 큰 목소리로 외치다, 큼큼 목을 가다듬으며 목소리를 줄였다. 남자의 눈이 보이지 않는다. 남자의 눈이 보여야할 곳을 물그럼 바라보며, 한참이나 단어를 고르던 그녀가 자세를 바로 고쳐 앉았다.
" 감사해요... 라샤씨가 해주신 말, 이요... "
리타가 입을 달싹였다. 무어라 더 하고픈 말이 있는 모양이었다.
" 오지랖이 아니었어요... "
리타가 목소리를 죽였다. 누군가, 이 세상의 단 한 명이라도, 그녀를 나쁘게 바라보지 않는 이가 있노라면 그녀는 단지 그것만으로도 행복해할 것이다.
이렇게 말해도 결국 자신은 이동 중에 리아에게 몇 번이고 잔소리를 퍼붓고, 전투 중에 리아를 몇 번이고 제지하려 들고, 리아를 따라잡으려 무리하게 날뛰게 되고, 리아가 결국 상처입는 모습을 보고 가슴앓이를 하게 되겠지만... 그래도 결국 에덴은 리아를 다시금 용서할 것이다. 몇 번이라도. 리아의 손이 에덴의 뺨에 닿을 때, 에덴은 자신의 뺨을 리아의 손에 살며시 기댔다.
튀김을 앞에 두고 리아가 스스로를 저평가하는 말을 꺼내자, 에덴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진지하게 하는 말인데, 언니는 아르고스의 오퍼레이터가 되지 않았으면 모델이나 가수로 활동하고 있었을걸요."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아르고스 에이전시에 와서 본 사람들은 전부 다 미남 미녀거나, 그도 아니면 자기만의 톡톡 튀는 멋진 특색을 가진 멋쟁이였다. 이따금 출퇴근을 하다 보면 아르고스 에이전시가 PMC인지 연예인 에이전시인지 의아한 순간도 종종 있었으니. 더 기가 막힌 것은 그들 중에서 자신이 미남이나 미녀라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이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눈 앞에 있는 에덴의 멘토, 리아가 그 대표격 중 한 명이었고.
"그건 언니의 주량이 비상식적인 탓이죠. 저도 남들만큼은 마신다구요?"
리아가 장난스레 던진 말에 일부러 입을 삐죽댄 에덴은, 캔을 부딪히고, 맥주를 죽 들이켰다. 거리낌없이 시원한 탄산을 그녀는 벌컥벌컥 들이켰다. 엄밀히 말해 그녀는 아직 법적으로 성인이 아니었지만... 알 게 뭐야. 그러다 리아가 또 장난스레 말을 던지자, 씨익 웃으면서 받아치는 에덴이었다.
뺨에 기댄체 용서하고 있다는 에덴의 말에 살며시 홍조를 띄운 오니는 수줍은 듯 말했다. 누군가에게 용서 받는다는 것은 이렇게 가슴 따뜻해지는 일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면서. 자신의 손에 맞닿은 에덴의 뺨을 몇번인가 살살 쓰더듬어준 오니는 이내 자신이 대범한 짓을 했다고 생각했는지 슬쩍 손을 떼어내곤 헛기침을 한다. 머리 쓰다듬는 것 외에는 너무나도 서툰 오니였다.
" ... 내가 그런 걸 하면.. 말도 안돼. 차라리 에덴이 맞지. 에덴 인기 많지? "
사실 용병들 사이에서 인기가 무슨 소용인가 싶지만, 아직은 어린 에덴이기에 가볍게 추켜세워주는 오니였다. 뭐, 에덴이 확실히 미모가 뛰어난 축에 속했기에 틀린 말도 아니었지만. 에덴이라면 분명 좋은 사람을 만날거라고 생각하고 마는 오니였다. 혈향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은 자신과는 다른 에덴이라면 충분히.
" 에덴은, 분명, 좋은 사람을, 만날거야. 에덴은 그럴 가치가 있는 아이니까. "
에덴은 충분히 빛이 나는 아이였다. 감염이 되어있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것을 제외하고도 핏빛을 띈 자신과는 다른, 눈이 부신 아이라고 생각하고 마는 오니였다. 그러니 더욱 더 에덴이 자신을 따라서 행동하지 않기를 바라게 되는 것이었다. 물론 그 이야기를 하면 화를 낼 것이기에 지금은 굳이 입에 담지 않았지만.
" 무리, 안 시켜.. 딱히, 나도 잘 마시는 건 아니거든. 로우랑 마시다 보면 내가 먼저 취하기도 하고.. 물론 술집은 익숙치 않지만. 저번에도, 주정뱅이가 갑자기 어깨에 손을 대서... "
에덴의 말에 자신도 그렇게 술을 잘 마시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을 하려는 듯 말을 하던 오니는 괜한 말을 꺼냈다 싶었는지 냅다 맥주캔을 입으로 가져가 자신의 입을 막고는 맥주를 홀짝인다. 영 좋지 못한 이야기 였다. 어떻게 주워담을 수 없나, 하는 고민을 하던 오니는 다른 주제를 위해 머리를 굴리기 시작한다.
" ... 튀김 맛있다. "
아직 튀김엔 손도 안 댔으면서 슬쩍 눈을 피하며 작게 중얼거리는 오니였다. 오니의 회화력은 아직은 분발해야할 듯 보였다.
"네에.. 오라클이에요." 고개를 끄덕끄덕 그리고는 방까지 에스코트 해주겠다는 듯한 말을 듣지만 고개를 젓습니다.
"으음... 아뇨! 깼으면 일해야죠?" 쓸데없이 성실하지만 나름대로 월급루팡도 하고 있으니 괜찮겠지..? 사실 따지고 보면 아르고는 성과제에 가까워 보이는...데...는 맞나? 류드라씨는 온 지 얼마나 되셨어요? 일 많이 하세요? 아츠 잘 쓰세요? 라는 삐약이 질문같은 말들을 합니다.
"여기 와서는 많은 사람들이 안 믿어주더라고요..." 그치만 그래도 가리고 있는 걸 벗어던질 순 없으니까요! 라고 말하며 참치씨를 끌어안으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