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4그녀는 자신의 태도가 실례라는 건 인지했어도 그로 인해 사내가 무슨 생각을 할지까지는 생각하지 못 했다. 당장 할 말을 생각하고 정리해서 입 밖으로 꺼내는게 고작인데, 상대가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고 생각할지까지 신경쓰기에는 그녀의 의식에 여유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지금도 이렇게, 묻는 말에 겨우 대답하고 가만히 기다리기만 할 뿐이었으니까.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바른 자세로 서 있던 그녀는 사내가 내민 떡을 두 손으로 공손하게 받아들었다. 무색, 단색의 소박한 시골떡과 달리 알록달록 색이 고운 무지개떡은 아직 말랑함을 유지한 채 손에 닿았다. 받은 그대로 떡을 든 그녀는 갈 곳 없는 시선을 떡이 담긴 팩에 향하고 있다가, 잘 부탁한다는 말에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머리카락보단 연한 보랏빛, 자수정빛 눈이 조금 위축된 기색으로 사내를 바라보았다. 몇초간 머무르던 시선은 다시 아래로 내려가며 대신 조용한 말을 내놓았다.
"저보다는, 여기 분들과.. 잘 지내시는게 좋을...거에요... 다들 친절..하시고, 좋으신 분들이시고... 전 타지 사람이라.."
일가친척은 고사하고 지인 한명 없는 그녀보다는 이웃집 할머니처럼 친절한 분들이 사내에게 도움이 될 거다, 라는게 그녀의 말의 의미였는데, 하도 드문드문 말하니 잘 전해졌을지 모르겠다. 중요한 말도 아니니 아무렴 어떠냐고 생각하던 그녀는 집 정비 얘기에 다시 시선을 움직였다. 겉도 겉이지만 이제 이사왔다면 짐이며 청소며 할게 많겠지. 그녀도 이사온 당일엔 종일 짐 정리만 하다가 날을 샜던 걸 기억하고 있었다. 혼자라 별거 없을 거 같지만 혼자이기에 할 일이 더 많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바쁘실텐데, 시간을 끌어버렸..네요. 제가.. 그럼... 저는 이만.."
그녀의 성격상 초면인 사람에게 도와준다던가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그녀가 시간을 너무 뺏어서 미안하다는 의미로 고개를 꾸벅이고 그 자리에서 물러서는 것 밖에 없었다. 그때서야 발도 뜻대로 움직여 천천히 사내에게 등을 돌릴 수 있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