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5 # 나도 재밌었다니 고마워!! 살인마씨 웃음 한번에 삐그덕거리는 것도 너무 귀여웠다고! XD # 알바생씨는 혹시 그 쪽지가 우연히 거기에 떨어지게 된 것은 아닐까, 했거든. 일단 몽타주도 전혀 다르고 말이지. 그러니까 괜히 누명을 쓰게 된 건데 자기가 오해하는 건 아닐까, 해서 일단 신고는 미룰 것 같아. 알바생씨는 (본인은 그렇게 생각 안 하지만) 그런 선한 사람이 맞고, 그래서 살인마씨도 일단 믿으려고 하는 거야. # 괜찮아! 나도 텀 불규칙적이고 그러니까 그냥 서로 시간 날 때 느긋하게 주고 받았으면 좋겠어. 답레가 아니라 썰이나 잡담이어도 좋고 말이야 :> 1:1 환영해줘서 고마워! 그럼 1:1 조율 어장으로 갈까?
>>632 # 더 베스트 ㅋㅋㅋㅋㅋㅋㅋㅋ 그건 너무 악질이라 아무리 티아좋아 어네스티여도 입술 꾹 물었을 듯 해.....벌써부터 나오는 소재에 두근거리는 걸 보니 벌써 심부전증이 왔나보다,,,티아랑 티아참치라는 심부전증이..어릴때 단발인것도 귀엽다 세상에 #나는 좋아.....지금의 템포도 나쁘지 않고 나랑 티아참치 기력에 따라 줄여나가는 것도 좋아! 무엇보다 서로 부담이 없었으면 해.....그리고 잡담에도 쉽게 나가떨어지는 체질이라 어느순간 팍 줄일 수도 있어 흑흑 orz 긍정적인 답변 내줘서 고마워! 그럼 1:1 조율 스레로 넘어가자! 편할 때 조율 스레에 레스 남겨주면 나도 천천히 확인할게! 고마워움쪽
말간 눈동자로 네게 그리 물었다. 작달만한 손엔 작은 토끼풀들이 둥글게 엮여지고 있었고 새들의 지저귐과 작은 동물들의 소리, 바람이 풀잎에 스치는 소리가 담긴 그 들판엔 나와 너, 그 뿐이었다. 아마도 그럴 거다. 토끼풀을 길게 엮어선, 그 사이사이를 예쁘게 장식할 알록달록한 꽃을 찾을 것이다. 보라색이 꼭 들어가면 좋겠어. 소리는 내지 않고 입만 웅얼거리며 다시 고개를 푹 숙이고 토끼풀을 끊기지 않고 엮는데에 집중했다. 그러다가도 햇빛에 비추어 투명하게 빛나는 눈동자는 특유의 사랑스러운 무표정으로 네 얼굴을 가만 바라본다.
웃음을 터뜨리며 네 동그란 정수리를 쓰다듬는다. 일국의 황제라는 지위는 무겁고 또 엄중했으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저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사랑을 논하기에는 네가 아직 어리지 않나 생각하다가도, 또 나이가 무슨 상관이라 싶다. 그래, 궁금한 것을 재깍 물어보는 건 좋은 태도지.
"사랑이라... 어려운 것이지. 보고 있음에도 그리움을 느끼기도 하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또 한없이 사람을 작게 만드는 것. 그게 바로 사랑 아니겠느냐."
네 머리 위에 팔꿈치를 턱 얹고는 짓궂게 웃으며 묻는다.
"왜,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생긴 게야? 옳아, 그럼 그것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려고 만드는 게로구나."
유난히 비가 많이 내리던 날이었습니다. 당신은 어느 동굴에서 깨어납니다. 흐린 시야에 발간 불빛이 아른거립니다. 당신이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것은, 정신을 잃기 전까지 허름한 마차 안에 있었다는 것뿐입니다. 그것이 말이 끄는 마차인지 술을 마시는 포장마차인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의식을 찾은 당신이 켈룩거리며 죽었던 숨을 내쉬자, 화톳불이 일렁이며 누군가가 당신 곁으로 다가옵니다. 개를 닮은 뾰족한 주둥이, 온몸을 덮은 복슬복슬한 털. 인간종은 아니나 묘하게 사람을 닮아있습니다. 그것이 당신을 내려보며 주둥이를 작게 벌립니다.
>>642 어떻게 된 거지? 시장에 사냥한 고기를 내다 팔고 오는 길이었는데, 왜 이런 동굴에... 기억을 되짚어보는 사이, 낯선 생물이 가까이 다가와 작지만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내자, 여성은 흐트러진 은빛 앞머리 사이로 새파란 눈에 경계어린 시선을 담아 낯선 생물을 바라보았다. 어쩐지 인간을 닮아 보이는 외양 때문일까, 그는 스스로가 바보같다고 생각하면서도 가까스로 침착한 목소리를 내어 대화를 시도했다.
"...누구, 세요? 왜 저를... 여기로 데려온 거죠?"
말이 통할 리가. 아까도 으르렁거리는 소리만 냈는데. 그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곤, 조금 비틀거리며 일어나 동굴 입구쪽으로 뒷걸음질쳤다. 그러고는 다시 입을 열어, 조용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 돌아가겠어요. 시간이 늦었고, 집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요."
사람을 닮아있으니 적어도 말귀는 알아듣길. 그렇지 않다 해도 달아나 집에 도달할 힘 정도는 나도 가지고 있어. 그는 경계 어린 시선을 낯선 생물에게서 떼지 않은 채 천천히 동굴밖으로 뒷걸음질 쳤다.
그곳은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수많은 종족이 행복하고 사이좋게 지내고 있는 어딘가의 마을에는 오늘도 활기가 넘쳤다. 마을에 위치한 가게 중 잡화점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보이는 건 하품을 하며 나른하게 자리에 앉아있는 엘프 남성의 모습이었다.
연한 푸른빛 머리카락은 전체적으로 길었으며 그 끝을 묶어 자신의 어깨 위에 살포시 내렸으며 두 손에 하얀 장갑을 끼고 있으며 검푸른 재킷을 입고 있는 그는 딸랑거리는 소리에 눈동자를 올리며 크게 기지개를 켠 후에 제대로 손님을 맞이하려고 했다.
"어서 와요. 뭐 찾는 물건이라도 있어요? 있는 건 있고 없는 건 없어요."
마을 사람이 찾아온 것인지, 아니면 마을 밖에서 찾아온 관광객이 찾아온 것인지는 아직 그가 확인을 하지 못했지만 크게 행동이 달라지진 않았을 것이다. 근처에 놓아둔 물이 담긴 물통을 들어올려 그 내용물을 한 모금 마신 그는 두 팔을 아래로 내리며 그제야 고개를 들어올렸다.
/룬 팩토리 계열을 떠올리면서 써보는 선레야. 누가 찾아왔는지는 자유롭게! 너무 뜬금없이 맥커터만 아니면 어떻게 이어도 상관없어. 잔소리를 하러 온 마을 주민도 괜찮고 마을에 놀러온 관광객도 괜찮아! 사실 사전 수요 조사에 살짝 올려봤지만 수요가 전혀 없는 것 같아서 그냥 여기서나 써본다!
가만히 의자에 앉아 상대를 내려보는 눈빛으로 바라본다. 어둠 저편의 상대가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 쌓아올린 지위를 생각한다면 그의 행동은 전혀 부자연스러운 것이 아닐것이다. 가만히 앉아있던 여인이 조용히 와인잔을 기울이다가 턱짓으로 주변의 인물들을 전부 물린 다음에야 조용히 미소를 지어보인다.
"그래서 이곳까지 온 이유는 무엇인가요. 돈? 치기어린 자존심? 아니면...."
복수? 그녀는 평온한듯 하면서도 조금 간드러지는 듯한 목소리로 상대를 도발해보였다. 그녀의 오른손에 그려진 염라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빛나는 듯한건 절대 착각이 아닐 것이다. 한 그룹을 이끄는 자존심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일까, 주변에 아무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왠지모르게 제왕의 자리에 앉은 듯한 분위기마저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 상대의 앞에는 절대 대접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는 듯 다과가 준비되어 있었다.
>>647 그는 붉게 물든 기가 여즉 빠지지 않은 얼굴을 하고서 당신이 있는 공간의 일부를 시선 끝으로 흝었다. 마치 어둠의 편린에서 어둠보다 깊은 것을 보는 듯 검은 눈동자는 잠시간 미동이 없다가 바닥을 향했다. 어쩌면 그 어둠 너머에서 본 것은 그와 같이 지극한 어둠이었는지도 모르지만, 그런 것 치고는 초연한 얼굴로 당신의 부름에 가까이 다가갔다.
"위대하신 분을 뵙습니다. 이렇게 뵙게 되어 지극한 영광입니다."
그때까지도 바닥으로 내리깐 눈을 들어올리지 않는것을 보아 그는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한 모양새였다. 자신보다 높은 지위의 우러러보지도 못하는 상황이 익숙하다는 듯이. 내뱉는 말에서도 형식적인 어조만 묻어날 뿐 깊은 충의나 속셈도 느껴지지 않았다. 요컨데 인형처럼 구는것에 익숙한 남자였다. 그는 당신의 앞에 놓인 자리에 앉고 나서야 당신을 바라보았는데 그 올곧은 시선으로 보아 그가 겁 먹은것이 아닌, 이런 상황에 익숙해 졌음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마치 뻔한 것을 말한다는 듯 표정에 미동도 없이 질문에 답했다.
"사랑, 제 주인께서 저를 지독하게 사랑할 수 있도록 해주셨으면, 처절하고 간절해서 지독하게 끔찍한 사랑을 하게 해주셨으면 합니다."
그 태연한 표정 너머에서 나오는 황당한 요구에도 그는 일말의 망설임 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염라의 문장이 그녀의 손가락 놀음에 따라 꿈틀거린다, 화를 내는 것인지 아니면 웃음을 겨우 참고 있는 것인지 그 의중은 오직 본인만이 알것이다. 하지만 무표정으로 감싼 그녀의 모습은 오직 그만이 알 것이다. 똑똑, 그녀가 손가락을 움직이며 울려퍼지는 소리만이 적막을 깰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마음속은 복잡하기 그지 없었다.
'에? 에에? 으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
30에 가까운 나이, 올해 29세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철혈이라는 별칭까지 붙을 정도로 조직관리에 철저했던 그녀에게 있어서 지금의 상황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수많은 상황을 경험해봤지만 이러한 요구를 하는건 그녀는 이해하지 못했다. 자신에게 요구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그녀는 자신의 귀를 의심한채 머리만을 굴릴 뿐이었다. 아버지가 별세하고 무너지기 직전이었던 그룹을 하나로 묶어내는 동안 일에만 골몰해왔던 그녀였다. 사랑? 그 사랑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그녀였다. 스스로의 지위와 돈을 앞세워 자신에게 다가오는 이들은 많았지만 지금같이, 영문을 모를 듯한 눈빛으로 자신에게 다가온 그의 모습은 그녀를 당황시키기에 충분했으리라.
'이, 이거 농담 하는거 아니지?!'
가만히 손가락을 가지고 장난을 치며—다른 사람이 보기엔 깊은 고민에 빠진듯한—모습으로 천천히 상대방을 바라본다. 이거 진짜 농담하는거 아니지? 하는 눈초리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이 눈앞의 사내를 어떻게 처리할것인지 고민하는것으로 보일것이리라. 그리고 마침내, 그녀의 입술이 천천히 떨어졌다.
"지독히도 아름다운 사랑이라, 당신이 그리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무표정으로 덮혔던 가면과, 숨겨진 뱀의 미소속에서 드러난 마지막 표정은, '난감함'이었다.
>>649 그의 나이는 29으로 아직 30이 채 되지 않은 나이였다. 그는 오랜 시간동안 한 집의 집사로 일해왔는데 말이 집사이지 종살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오랜 시간 그녀의 수모에 응답해 온 것은 그의 집안이 오래된 빚이 있었기 때문인데 이 때문에 그의 어린 동생 역시 다른 집에 팔려가듯 떠나 있는 실정이었다. 그가 바라는 것을 이쯤이면 알 수 있겠지. 그는 자신의 동생과 자유의 몸이 되길 고대하며 몇 년을 개 같이 일했다. 하지만 달라지는 것이라곤 주인 아가씨의 신경질적인 화풀이가 나날이 늘어간다는 사실 뿐, 그의 빚은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그의 동생이 그가 있는 저택으로 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름 아닌 그의 아가씨가 동생을 사들인 것이었는데, 그 기쁜 소식을 듣고 한 달음에 달려나가 본 것은 동생의 손을 짓밟고 서 모욕적인 말을 내뱉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었다. 그는 처음으로 참을 수 없는 감정이 무엇인지 느꼈다. 분노를 뛰어넘는 열기를 느꼈고 주체할 수 없다는 감각을 깨우쳤다. 결국 참지 못하고 달려들었던 그는 크게 얻어맞고는 저택에서 내쫓기게 되었다. 그 모든 원흉인 그녀는 얼마 뒤 약혼식을 올릴 예정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는 이 부조리한 상황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화가 났다. 동생은손뼈가 부러져 한동안 일을 할 수도 없게 되었다. 어쩌면 손에 장애가 생길지도 모른다고도 했다. 그는 문득 깨달았다. 자신이 순간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는 그녀가 파멸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지독하고 철저하게 마음까지 부서져 파멸하기를. 단순한 복수 이상, 내면에서부터 느껴지는 절망을 원했다. 그래서 그는... 그녀의 약혼식에 숨어들기로 결심했다.
그는 당신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그 만나기 어렵다는 철혈 여제를 만나기 까지 얼마나 많은 진흙탕을 굴렀는지 떠올렸다. 조금도, 아깝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달콤함 이상의 복수를 원했고 다시금 제 소원을 정정했다.
"일화 그룹의 아가씨가 저와 사랑에 빠지기를 원합니다. 피눈물을 흘리고, 후회하며 다시는 사랑을 하지 못할 정도로 깊게 빠져서 약혼식에서 망신을 면치 못했으면 합니다."
그룹을 이끌던 외면의 모습과는 다른, 지금 처음으로 고백받은 사내의 모습에 그녀는 오래전부터 잊고 살았던 그 감정들에 대해 혼선을 느끼며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그렇게 자신의 머릿속을 뒤죽박죽이었던걸 정리하면서 그녀는 잠시간 상대방의 말을 떠올렸다. 응? 약혼식? 약혼식이라고? 나한테 그런게 있었나? 그 말에 무슨일인지 그녀가 천천히 손을 뻗어 자신의 핸드폰을 바라본다. 약혼식이라고 하니까 뭔지 감도 안잡히는 것일까, 주르륵 스크롤을 내리면서 하나둘 심각한 표정으로 약혼식이라는 글자들을 하나하나 살펴본다. 그리고 그녀의 표정으로 순식간에 무표정이란 감정과 악랄한 뱀의 미소도 모두 사라지고, 단 하나의 여자라는 존재만이 남아 지금 눈 앞의 남자에게 입을 열었다.
".....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는건지 모르겠네요. 제가 약혼식..... 이라뇨?"
그 말을 내뱉고서야 천천히 기억을 되뇌인다. 저번에 비서하고 이야기를 했을때, 그룹 계열사 임원들(보통 계열사 대표급 인사들은 그룹내의 간부진들로 배치되는 경우가 많다.)의 자녀끼리 약혼식이라고 해서 거기에 초대 받아 가게 되었다고 이야기를 한게 떠오른다. 그러고보니 당시 비서가 주어를 제대로 안말한 탓에 나중에 가서 그녀에게 화를 냈던게 떠오른 것인지, 어벙한 표정—당장 다른 사람들이 그녀의 표정을 봤다면 천연기념물을 본 표정을 지었을것이다—을 보이며 상황 파악이 끝난듯 그를 바라보고 헛기침을 하며 호흡을 가다듬은 뒤 입을 열었다.
"흠, 흠. 어찌됐건, 약속은 약속이고, 또 그것이 소원이라 하였으니.... 아까전에 말씀드린대로 그 약속을 행하도록 하죠."
그리고 천천히 그녀가 몸을 일으킨다. 그녀의 몸매를 여실히 드러내는 검은색 단정한 슈트차림이 달빛에 비춰 한층 더 그녀를 돋보이게 한다. 아마 그도 알 것이다. 그녀가 그리 메이커의 제품을 좋아하지 않는단 것을. 그럼에도 그녀를 감싼 옷은 그 어느 메이커의 복장보다 아름다웠다. 간판이 사람을 따른다는 것은 아마 이런 말을 두고하는 것이리라. 일화 그룹에 속한 그녀가 아니라, 그녀 자신이 바로 일화그룹이고, 그런 그녀의 복장조차 하품의 그것이더라도, 철혈 여제의 몸을 감싸는 갑주라는 사실을 변함없이 상기시키는 것처럼. 뚜벅뚜벅, 그녀가 그에게 다가간다. 길게 내린 렁헤어와 더불어 어딘가 서글서글한 인상을 두면서도 편안한 느낌을 주는 전형적인 미녀의 모습, 그 반면으로 따라오는 차가운 느낌은 어딘지모를 조화로움을 자아내고 있었다. 그렇게 그의 앞에 다가간 그녀가 천천히 손을 뻗어 그녀의 볼을 어루만지며 입술을 열었다.
"그래서 어떻게 제 눈에서 피눈물을 흐르게 하실껀가요? 후회라는 것은..... 어떻게 하게 해주실껀가요?"
정말로 순수하게 궁금한 그녀의 말이었다.
//분명히 복수극이었는데 그쪽으로 무방비한 여자로 캐릭터를 잡아서 졸지에 러브코미디가 되어버렸네요(.....)
>>651 어둠이 가려주던 얼굴이 어스름한 조명 아래에 뚜렷해지자, 그는 뒤늦게 눈치챘다. 자신이 알고 있던 복수의 대상과 그녀는 똑같은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본능적인 거부감에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는 사실도. 복수를 결심하고 나서 '소원을 들어준다는 여자' 앞에 오기까지, 암시장을 전전하며 얻은 수모와 고난조차도 많았으나, 결국 생리적인 불쾌감 앞에 무릎 꿇은 것이다. 자신의 동생에게 장애를 안겨준 여자를 사랑하겠다니 불가능에 가까운 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약혼식을 올린다는 소문을 들은 순간, 오직 그것만이 방법임을 깨달았을 뿐이다.
그는 심리적인 거부감을 뒤로하며 백자처럼 하얀 얼굴을 당신 가까이에 가져갔다. 달콤한 살결의 향기에 문득 묘한 기분을 느끼던 그는 당신의 긴 머리를 만지고 나서야 깨달았다. 복수의 대상은 다른 여성이란 것을. 그녀, 그러니까 복수의 대상은 스모크 향이 나는 담배를 자주 피워댔고, 짧은 머리가 돋보이는 여성이었다. 그는 잠시 눈 앞의 미인을 유심히 살피더니 당신의 어깨를 잡은 손을 내리며 답했다.
"당신이 아닙니다... 일화 그룹의 그 여자는."
그렇게 잠시간 침묵하고 말이 없던 그는 무엇인가 눈치챘는지 날카로운 눈을 가늘게 뜨고 입을 열었다. 당신 가까이로 고개를 기울이고 마치 당신만의 향한 약속을 속삭이듯이 나지막한 음성으로 말을 건냈다.
"만약 제 부탁을 들어주신다면 저만을 위해 약속을 지키겠다고 하실 수 있습니까?"
당신의 자매가 아니라, 오직 자신과의 약속을 위하라는 것. 그건 모든것을 가진 여성에게 내미는 무모한 도전장이었다. 자칫 약속은 커녕 모든것을 잃을수도 있는 순간에 벌이는 무모한 도박. 다만 그는 그 방법밖에 없음도 알고 있었다. 당신이라는 기회를 잃는다면 영영 없을 일이라는걸 알고 있었기에, 그는 일화그룹을 등에 업고, 일화그룹을 적으로 돌릴 생각을 하는 것이다.
"당신의 자매, 그 사람이 제게 반하게 해주십시오. 그게 제가 거는 약속이며, 조건입니다."
이어지는 말들의 일련의 사고가 한번 더 끊기는 그녀였다. 자신이 아니라 자신의 동생이라고 한다. 그 상황에 잠시간 무슨 상황인지 최대한 이해를 해보려고 하지만 이내 그것을 포기하기로 한 듯 그녀는 살풋 웃으면서 천천히 거리를 벌렸다. 그 웃음은 마치, '그럼 그렇지, 나에게 그런 기적같은 일이 있을리가 없잖아?'라고 말하는 듯 했다. 그리고서는 다시 재차 거리를 벌린다음 천천히 책상에 걸터앉았다. 본래라면 많은 이들이 제지했을 일이지만 지금 이 최상층 플로어에는 자신과 그 밖에 없었다.
"약속을 이행하기 이전에, 일단 먼저 말씀드릴께요. 일화 그룹의 현 총수인 저, 이 혜진이 지금 존대를 쓰는 것부터 말이지요."
이어지는 설명이 천천히 그녀의 입을 타고 구술되어 내려온다. 그것은 일종의 시련이었다. 지금의 남자가 이 곳까지 올라온 것 만으로도 그는 이미 충분히 자격을 가진 셈이었다. 자신의 할아버지대부터 지금까지 손에 꼽을 정도지만 이미 여기까지 올라온 것 만으로도 그 간절함이 극에 달했다는 이야기니까. 그 간절함에 응답하고 또 들어줄 수 있는 선에서 모든 것을 들어두기로 한 것이었다.
"그런 당신은 저에게 존대를 들을 자격이 되고, 또한 저에게 요구를 하실 자격이 되는거에요. 그러니 그 약속도, 지켜트리겠습니다."
그녀의 얼굴에서 천천히 미소가 지워지고 천천히 다시 한 그룹의 총수로서의 모습이 다시 되찾아진다. 여인의 모습이 다시금 여제의 그것으로 갖춰지고, 또 감정을 무표정 안에 뱀의 미소를 집어넣음으로서 수많은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것이리라. 그런 그녀가 사무용 안경을 눈에 걸치고 조용히 남성을 재차 응시한다.
>>658 잠시 후 지독히도 가까웠던 체취가 멀어지며 그의 시선은 정면으로 향했다. 조금의 불안이 두 눈으로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짙은 눈썹은 조금 찌푸린 채 였다. 그러나 그 외에 내색하는 모습은 없어 세심한 사람이 아니었다면 눈치채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그룹의 총수가 되는 사람이 처음으로 자신을 존중한다는 유혹은 제법 컸다. 그리고 그 사람을 등에 업었다는 권능감 또한.
"저는... 김한성 이라고 합니다. 스물아홉, 스물아홉이 될 때 까지는 그녀의 집에서 일을 하는 집사였습니다. 그녀가 행포를 부려 제 동생의 손에 장애를 만들기 전까지는."
표정없는 얼굴이었지만 특유의 매서운 느낌이 없다면 그는 제법 변변한 얼굴에 속했다. 다만 통 웃어본 적 없는듯한 느낌이 그를 더 정 없어 보이게 했을 뿐이었다. 그는 만년필이 종이를 거치며 내는 작은 소음에 반사적으로 은색 만년필을 한 번 보았다. 왜 이 여자는 이상한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일을 자처하게 되었을까. 그 의문은 얼핏 동정이기도 호기심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에 대한 서류가 작성되는 동안에 겨우 긴장이 풀렸는지 잡생각을 하고 있었다.
"저를 약혼식에 들어갈 수 있게 해주시는 것 말고 또 무엇을 해주실 겁니까?"
당신은 대체 누구입니까? 두 번째 질문은 입 안으로 삼켰다. 그는 당신을 향한 불안과 호기심이 공존하는 상태로 그 앞에 서 있있다. 이는 신뢰하지 못하는 마음과 궁금증이 혼재하는 것과 같았다.
무감정하게 써내려가는 만년필의 끝자락, 무표정하고 침착하기 그지 없는 그녀의 모습은 아까전의 여성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대기업에 입사를 희망하는 자를 앞에 둔 면접관, 그이상으로 더욱 냉철한 눈빛이었다. 상대방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자 하는 눈빛부터, 상대방의 일거수일투족을 제대로 관찰하고자 하는 것을 보며 그가 어떠한 존재인지, 또 그가 진정으로 이 곳에 설 자리가 있는 것인지 그것을 판단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가 마지막 말을 언급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네?"
잠시간 그녀의 눈빛이 크게 흔들린다. 도대체 무엇을 저지른 것인가, 자신과 한 핏줄이지만 전혀 다른 성향인것은 진즉부터 알고 있었지만, 쌍둥이라고는 하더라도 9살 이후부터는 완전히 남으로 지내왔다고는 하지만, 자신의 핏줄이고 부모님이 돌아가신 직후부터는 세상에 둘도 없는 혈육이지 않던가. 그의 말이 거짓말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냉철한 눈빛에 한점 거짓도 없는 모습에 그녀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거짓말이 아니었다. 그것은 복수자의 눈빛이었다. 말리고 싶은 생각은 마음속으로 한가득이었지만, 그것은 절대적인 약속이었다. 그녀의 할아버지로부터 내려온 절대적인 맹약. 그리고..... 자신이라고 하더라도 똑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라 생각하며 그녀는 천천히 숨을 몰아쉬고 그의 말에 답하기 시작했다.
"역으로 여쭤보겠습니다. 무엇을 원하시나요? 돈? 명예? 아니면....."
저, 라는 말이 잠시간 목구멍 위로 올라갔다 사라진다.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원수의 핏줄하고는 절대로 그러한 관계를 맺고 싶지 않겠지, 그런 씁쓸한 생각을 하며 그는 천천히 입을 재차 열어보였다.
"궁금한 점에 대해서 여쭤보셔도 괜찮아요. 가령, 제가 왜 이런걸 하고 있는지."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보이고 있었다. 생각을 읽기라도 하는 것일까? 그녀의 질문은 날카롭게 사내의 마음을 꿰뚫기라도 하듯이 입을 열어 보였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서는 진정으로 권좌에 앉은자가 어떠한 태도를 보이는지에 대해 묘사하고 있었다. 그녀의 혈육과는 완전히 다른, 자애로우면서도 강인한 모습이었다.
"속마음을 읽은건 아니에요. 전 초능력자도 아니니까요. 그저 사람을 대해오면서, 어떤 궁금증을 가질지, 또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짐작하고 수를 내리는것 뿐이니까요."
>>660 그녀의 눈빛이 동요하는 것에 그는 당연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철혈이라고 해도 결국 사람이다. 가족의 문제에 민감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 오히려 그는 지금 그녀가 제 부탁을 포기해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만약 그랬다면 다른 수를 써서라도 복수했을 것이다. 가령 그녀의 집안에 다시 숨어들어 끔찍한 독을 먹인다거나. 그랬으나 그녀는 마치 명령을 따르는 사람처럼 충직하게 거만하지 않은 태도로 역으로 질문해왔다.
"복수, 이런식으로 말해도 결국 원하는 것은 복수입니다. 방식을 설명했을 뿐 결과는 하나뿐입니다."
직후 이어지는 말은 우연 치고는 놀라울 정도로 맞아들어서 그는 순간 곤란한 듯이 미간을 찌푸렸다. 어디서 속내가 드러난 거지? 어디서부터 알아챈 걸까. 그러나 이어지는 말이 지극히 다정해서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녀가 자신의 편을 자처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는 곧 곤란스러움을 얼굴에서 지우고 미동 없는 본래의 얼굴로 되돌아왔다.
"그러니 묻죠. 왜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나서는 거죠? 당신은 그럴 필요가 없을 정도인데..."
그럴 필요 없을 정도로 모든 걸 가졌으면서. 자신이라면 탐내 마지않을 위치와 힘 그리고 돈과 인맥들, 살면서 적도 탈도 많으리란 것은 그가 알지 못하는 영역이었음에도 그걸 제치고서라도 이상하긴 매한가지였다. 이런 선행도 무엇도 아닌 방식으로 남을 돕는것이 대체 무엇인지.
갑자기 뜬구름 잡는 소리였다. 하지만 의자에 몸을 푹 파묻은채 말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 절대로 실없는 말을 할 것은 아니었다. 거만하다고도 할수 있는 자세였으나, 거기서 풍겨져 나오는 분위기나 기백은 오히려 그 모습이 자연스럽게 다가옴을 느낄수 있을것이다. 그 자세 그대로 그를 바라보면서 그녀는 손을 내밀어 보였다. 지금 이곳에서 자신이 앉은 곳을 제외한 가장 윗쪽의 오른쪽 자리, 그 곳에 앉으라고 권하는 것이리라. 그가 앉는 것을 기다리면서 그녀는 재차 말을 이어나갔다.
"잉어는 급류를 거슬러 올라가고 그 거대한 폭포를 오르고서야 그 턱을 넘어서서 용이 된다고들 하는 것이죠.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간절함, 저희는 그저 그 간절함에 대하여 보상을 주는 것일 뿐입니다. 물론 그냥이라고는 하지 않겠죠. 그들이 원해서 일구어낸 것들은 간절함으로부터 온 것이니 스스로를 갈고 닦을 것이고 이는 곧 저희 그룹의 힘이 되는 것이니."
자연스러운 말이었다. 어째서 그녀가 그렇게 말하고 또 왜 그녀의 선대가 그렇게 행해왔는지 알수 있는 대목이었으리라, 그들은 그저 등용문을 내건 자들일 뿐, 그 등용문을 오르는 것은 그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이리라, 그렇게 행해오고 그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그들의 됨됨이를 파악하고 또 그렇게 그들을 거느리는 것이 바로 그들의 진짜 목적이었으리라. 그녀의 말이 끝나고 만족하냐는 듯 살포시 미소가 그려진다. 그리고서는 그녀의 표정이 다시 조심스레 굳어져간다.
"그래서 말씀드릴께요. 복수는 재고해주시죠."
재차 뜬금없는 소리였다. 어째서? 딱히 말리지 않는 태도였는데 이렇게 손바닥 뒤집듯이? 그런 의아함이 들기도 전에 그녀의 입이 재차 떨어져내린다.
"복수가 남기는 것은 결국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 당신의 기분이야 풀리겠죠. 하지만 그거 외에 남는게 무엇이 있는건가요? 그때의 성취감뿐, 그 끝에 이르는 것은 결국 허무감일뿐이겠지요. 당신의 동생이 기뻐할까요? 전혀 아니라고 말할수 있을거 같네요. 복수를 말리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그녀의 말이 다시 한 번, 나즈막히, 하지만 힘있게 방안을 장악하기라도 하듯 울려퍼진다. 여제의 목소리였다.
"다시 한 번만, 고려해주세요. 이것은 명령도, 제안도 아닙니다. 제 혈육을 위해서도 아닙니다."
>>662 그럼 그렇지, 하는 냉정한 시선이 그녀를 향해 박혔다. 결국에는 자신의 혈육을 감싼다는 듯한 냉랭한 시선. 그는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 다시 바닥을 내려보았다. 결코 화낼 수 없는 위치의 사람으로서의 행동이었다. 그는 그렇게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그렇게는 안되겠습니다."
그렇게 간단히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면 그들이 돌아갈 곳이 없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장애를 얻은 이전으로도, 평생을 바쳐 일만 했던 시간을 되돌리기도 힘든 지경까지 온 것이다. 무언가에 집착하게 되는것은 그것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복수밖에 남지 않은 삶이 되고 만 것이다. 그 초연한 얼굴 너머로 누구나가 그렇듯 본래 표정을 감추고 있다면 그의 표정은 분노를 감춘 것이 명백했다. 그 예로 검은 눈동자에는 조용한 분노가 불타고 있었다.
"거절하시겠다면 다른 제안을 하겠습니다. 어쨌건 소원은 이뤄 주시겠단 전제 아닙니까."
한숨 길게 뽑아낸 사내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유독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미간을 찌푸린 채 입을 열었다. 그는 어린애가 아니었고 떼를 쓴다고 사태가 해결되리라 순진하게 믿고 있는것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계속 같은 내용을 말하지는 않았다.
"저를 다시 그녀의 집사로 일하도록 해주십시오."
뒷 일은 알아서 하겠다는 의미겠지. 노골적으로 보이는 요구였다. 복수의 대상 곁에 찾아가 무얼 할 지는 뻔히 보이는 수순이다. 그럼에도 그는 도박처럼 말하는 것이다. 정말 자신을 도울 의지가 있느냐고.
그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아내면서도 그녀는 흔들리지 않았다. 아까웠다. 등룡문을 오르고서 이렇게까지 복수에 집착하는 것은, 그로서도 그녀로서도 아까운 것이었다. 오히려 그가 좀더 자유롭기를 바랬다. 그녀는 천천히 그를 바라보았다. 그제서야 알수 있었다. 분노로 가득찬 집념은 그 간절함이 더해져 더욱 더 변질되어 간다는 것을 말이다. 그의 대답을 들은 그녀는 진심어린 그의 분노를 천천히 담아내며 조용히 표정을 풀었다.
"당신이 복수를 진행한다면 그것을 말리지는 않겠습니다. 제 여동생이 그러한 짓을 했다면 응당히 벌을 받아야겠지요. 하지만, 저는 진심으로 당신이 선을 넘지 않길 바라는 것입니다."
알고 있다. 그를 말리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것.... 그렇기에 그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 또한 부모님이 죽은 날 그렇게 하늘을 원망했으니까, 그렇기에 부모님이 남기신 그룹이 붕괴하려 하던 것을 막고 그 슬픔을 이겨낸 것이었다. 부모님이 남기신 흔적을, 조부가 남긴 마지막 자취를 지켜내기 위해..... 그렇게 여자의 몸으로 버텨온 것이었다. 아마 그 또한, 유일한 혈육인 여동생을 위해 그 분노를 태우고 있는 것이겠지. 거기까지 닿는 순간 그녀의 표정이 온화하게 풀어진다. 분노에 일그러진 시선과 온화한 부드러움이 맞부딪히고, 마침내 그녀가 재차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마지막 제안입니다. 단 3달, 정확히는 100일, 저를 위해 일해주세요. 저의 비서이자 집사로."
역으로 제시를 걸었다. 그가 자신에게 도박을 건 것처럼, 자신도 마찬가지로 그에게 도박을 거는 것이었다. 물론 그 복수의 마음이 풀어지길 바라는 것은 아니었다. 아마 그것을 평생토록 간직하며 그를 망칠지도 모르리라, 하지만 그녀는 믿고 싶었다. 아직 그가 마음을 돌리고 조금은 평범한 인생을 지낼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리라.
"그 뒤에도 당신의 마음이 변함 없다면, 그때 당신을 그 집의 집사로 추천해드리겠습니다. 새로운 신분과 함께, 이는 당신에게도 유리할껍니다."
아마 영리한 당신은 이해하겠지, 한 그룹의 총수를 보좌하는 비서이자 집사로서의 경력과 더불어 새로운 신분까지도 마련해주겠다고 했으니까.
>>664 그의 눈이 작게 찌푸려진다. 눈동자에는 낯선 감정이 떠오른다. 분노조차 잊을 정도의 의문이다. 이 여자는 무슨 속셈이지? 하는 무지에서 오는 불안과 걱정이었다. 그러나 도망칠 이유도 수단도 없었다. 그저 앞으로 가는 법 밖에는 모르는 삶이었기에 그는 거절을 택할 수 없었다.
"그게 유일한 방법이라면."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고요한 분노를 가린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서 그는 그녀를 마주보았다. 정확히는 당신의 승인과 명령을 기다리는 것 처럼 보였다. 그게 지금껏 그가 살아온 삶의 방식이었고 습관이 된 것들이었으므로. 차분한 태도에서 더욱 투지가 느껴졌다.
너무 그러지 말라는 듯이 천천히 그녀가 몸을 일으킨다. 등을 돌리자 펼쳐진 유리창 너머로 야경이 비춰진다. 아래를 오시하는 그녀의 시선로 수많은 네온사인들이 형형색색을 뽐내고 있는게 보인다. 욕망만이 가득찬 이 도시에서 어떻게든 위로 올라오려는 이들이 보인다. 그리고 지금 자신의 뒤에 있는 자 또한 그들과도 같은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그는 그 등용문을 올라 섰고 그녀의 곁에 서있었다. 긴장을 풀라는 듯이 가벼운 미소를 지어보이면서 뒤를 돌아본다. 어차피 그를 집사겸 비서로 고용한 것은 그가 이 100여일간 최대한 평범한 생활을 하면서 그 안에 있는 것을 삭혀내기만을 바랄뿐이니까, 복수를 도울지 말지는..... 그 다음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천천히 미소를 그려보였다.
그렇게 말을 한 뒤, 조금 피곤한 듯, 의자에 몸을 파묻으며 그녀가 서류더미로 손을 가져간다. 가면 갈수록 더 쌓여가는 서류더미였지만, 그녀는 쓰러져선 안되었다. 왜냐면 그녀야말로 당대의 총수였으니까, 절대로 쓰러져서는 안될 절대강자로서 이 곳에 군림해야하니까, 아버지와 할아버지에게 이어받은 이 길을 자신이 지켜야 할테니까. 그녀는 그렇게 서류더미에 눈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필요하시다면..... 여동생 분도 데려오세요. 저희 집에서 요양 시켜도 문제 없으니까요."
>>666 그녀는 마치 상대의 속을 꿰뚫어 보듯이 마음을 다독이는 말투로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그 사실이 낯설어서 그 냉정해 보이는 얼굴로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그의 지금까지의 삶과 비교하자면 기적과 같은 처우였다. 자신을 존중하는 상사와 걱정하는 사람과 일할 수 있다는 것은 둘도 없는 기회였으므로. 그러나 오랫동안 쌓아온 의심과 불안의 세월은 사람을 쉽게 믿지 못하게 만들었고, 그녀의 친절에 노골적인 불안의 빛을 내비쳤다.
"그렇습니까,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그러나 그 불안을 내뱉을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았다. 그는 그저 고개를 숙이고 돌아서서 도시의 가장 높은 곳을 지배하는 듯한 건물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둠 너머를 비추는 것은 흐린 헤드라이트와 네온사인의 빛이었다. 그는 그 너머의 분주한 삶이 마치 다른 세상처럼 느껴졌다. 자신과는 달리 평범한 삶을 살던 이들의 바쁘고도 평범한 일상 같았다. 그리고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의 자택으로 이동한 것은 그 다음날이었다. 그를 마중나온 차를 타고 들어가는 것은 난생 처음 겪는 경험으로 마치 다른 세상에 들어온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가 외면하는 시선 너머로 동생의 염려스러운 시선이 따라붙었지만, 그녀의 집으로 가는 중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어쩌면 말을 꺼내기에 서로가 많이 지쳐 있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저 도착했을 때 한 마디 꺼냈을 뿐...
(제국과 연합의 국경지대에 인접해있으나, 제국 진영에 속해있는 숲 속의 작은 오두막, 그 문을 열고 들이닥친 건 연합의 제복을 입은 군인이었다. 온 몸이 피투성이에 성한 곳이 없었고, 피가 눌러붙은 초록빛 머리카락은 숨이 죽어있다. 한 손에 든 권총을 들어, 민간인인 당신을 겨눈다. 방아쇠를 당기고, 그리고. 짧은 순간, 눈동자에 고뇌가 스쳐지나간다.) ...입, 열지마라, 쏜다. (어눌한 제국어를 웅얼거리며, 총을 든 손으로 왼쪽 어깨의 상처를 감싼다.)
>>670 (얼어붙어 있는 작은 체구의 은발 여성을 향해 날아가던 총탄은 무언가에 막혀 바닥에 툭 떨어졌고, 뒤이어 군인의 양쪽 관자놀이에는 총구가 겨누어졌다. 오두막 안에는 총에 맞을 뻔한 은발 여성을 포함해 총 네 사람이 있었다. 군인의 오른쪽 관자놀이에 총을 겨눈 짧은 금발의 여성과, 반대편에 서서 군인의 왼쪽 관자놀이에 총을 겨눈 긴 흑발의 청년, 그리고 은발의 여성을 보호하듯 막아선 단풍빛 머리칼의 키가 큰 여성까지) 남의 집에 침입한 주제에 어디서 협박이야?! (총을 든 금발의 여성이 사납게 쏘아붙였고, 군인의 총에 맞을 뻔한 은발의 여성이 걸어 나왔다. 그의 양손에는 화염으로 이루어진 구가 이글거리며 타오르고 있었다) 총은 그쪽이 버리는 게 좋을 거예요, 산 채로 구워지고 싶지 않다면.
그제서야 여인이 흡족한듯 미소를 지어보인다. 총수라는 직책은 최소한 그룹안에서만 듣고 싶었다. 그 무게감을 견디는 것은 자신이 있었지만 최소한 집이라는 공간에서 만큼은 그 무게 따위는 던져버리고 편하게 있고 싶었으니까, 그렇게 아침을 보내며 그녀는 가벼운 식빵 한조각에 샐러드만 조금 먹으면서 일간 보고서를 읽는데 여념이 없었다. 그렇게 자신의 메이드이자 어린시절부터 자신을 지켜왔던 여인을 바라보며 커피를 부탁했고, 메이드는 그런 그녀의 잔을 채우며 천천히 입을 열어보였다.
-"저.... 혹시 시종이 더 필요하셨나요?" "음? 아아." -"이번 결정 말입니다.... 저에게 말씀해두셨으면 진작에....." "아니, 괜찮아. 용을 품에 안으려면, 곁에 두어야지."
아리송한 말에 메이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래전부터 지내왔지만 그녀의 모습은 너무나도 어색했다. 때로는 어린 소녀와 같이 천진난만하기도 했지만 뜻을 품으면 무슨 수를 쓰더라도 원하는 것을 일구어내왔다. 그것이 그녀의 무서운 점이었다. 항상 종잡을수 없을 정도로 행동이 제멋대로였지만 결국의 그 모든것은 퍼즐의 한 조각마냥 이루어지고 또 끼워맞춰져서 종국에는 그녀의 손에 들어 온다는 것. 그런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는 천천히 도착 5분전이라는 이야기에 채비를 시작했다. 언제나처럼 저가의 정장에 도수없는 안경을 착용하고 걸음을 옮긴다. 분명 규모가 제법되는 집이었지만, 한 그룹의 우두머리가 사는 곳이라 생각하면 작다고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지금 도착한 두 사람의 눈에는 분명 어색할지도 모르는 곳이리라. 그리 생각하며 혜진은 문밖으로 나가 직접 그들을 맞이하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서 오세요. 제 시간에 맞춰 오셨네요."
한 그룹의 총수가 직접 사람을 맞이한다는 비현실적인 상황이 눈앞에 펼쳐진다. 하지만 그들은 알까, 이미 그녀는 그들에 대해서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는 것을 말이다. 용과 그 용이 지키는 보물, 그것만으로도 그녀가 이리 행동하는데에는 충분히 그 이유가 된다는 것을 말이다.
>>672 앞으로 100일,3달간 자신의 주인이 될 사람을 보며 한성은 본능적으로 허리를 숙였다. 그의 동생도 몸에 익은것이 있어서인지 금세 허리를 숙여 인사했지만 아직 상황이 낯선 것인지 눈치를 살피는 분위기였다. 다만 낯설고 거대한 저택을 앞에 두었어도 그는 유달리 움츠러들거나 눈치를 보지 않았는데, 몇 년간 저택에서 일했던 기억 탓일수도 있겠지만 천성이 쉽게 표정을 드러내는 부류는 아니었던 것도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이렇게 불러 주셔서 다시한번 영광입니다."
날카로운 눈은 일순 그녀의 눈에 머물렀다가 저택을 짧게 흝었는데 거의 일순이라 본능적인 것에 가까웠다. 그랬으나 아픈 기억ㅇ
>>672 앞으로 100일,3달간 자신의 주인이 될 사람을 보며 한성은 본능적으로 허리를 숙였다. 그의 동생도 몸에 익은것이 있어서인지 금세 허리를 숙여 인사했지만 아직 상황이 낯선 것인지 눈치를 살피는 분위기였다. 다만 낯설고 거대한 저택을 앞에 두었어도 그는 유달리 움츠러들거나 눈치를 보지 않았는데, 몇 년간 저택에서 일했던 기억 탓일수도 있겠지만 천성이 쉽게 표정을 드러내는 부류는 아니었던 것도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이렇게 불러 주셔서 다시한번 영광입니다."
날카로운 눈은 일순 그녀의 눈에 머물렀다가 저택을 짧게 흝었는데 거의 일순이라 본능적인 것에 가까웠다. 그랬으나 아픈 기억이 스쳐 지나가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는지, 그의 동생은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 역시 마찬가지였을까,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그녀를 기쁘게 맞이하지 않는 것은 동일하다 할 수 있었다.
"그럼 동생은 바로 들여보내도 괜찮으십니까? 시키실 일이 있다면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몸에 밴 깍듯함과 철저함이 드러나는 성격인 그는 제법 싹싹하게 보일 정도로 굴었는데, 그 습관된 기억이 오히려 아픈 기억이라는 것이 우습고도 슬픈 일이기도 했다.
>>671 (관자놀이에 총구가 겨눠지는 것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다만 시선은 손에 화염구를 만들어낸 여성의 모습에 향한 채다.) '제국의 개들...' 지금, 전쟁 중. 하지만, 불, 내게 닿지 않았다. 어째서? (연합어로 작게 지껄이고는, 다시 어설픈 연합어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물론 총은 천천히 바닥에 내려놓는다. 어째서 이런 외진 곳에 4명이나? 제복 모자 아래로 눈빛이 흐릿하다. 금방이라도 정신을 놓으면 쓰러지겠지.)
초라한 장례식이었다. 화환은 커녕 영정 사진 앞에 놓인 꽃 몇송이가 전부인 식장은 을씨년스럽기 그지 없었다. 고작 가벽 몇개를 둘러놓은 한 칸짜리 식장은 그 좁은 공간이 무색하게도 텅 비어있었다. 옆칸에서 들려오는 나직한 울음소리가 스며들 정도로 적막한 공간은 너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마치 일상에서 유리되어 떨어져 나간 것만 같은 그 곳에서 네 사진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이 순간은 마치 꿈만 같았다. 깜빡, 또 한 번 깜빡. 아무리 눈을 감았다 떠봐도 흘러가지 않는 이 비현실적인 현실 앞에서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떻게 오셨나요.
내게 걸려오는 말이라고는 생각치 못한 채로 멍하니 사진만을 들여다 보던 귓가에 작은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야 돌아간 시선의 끝에는, 너를 닮은 아이가 있었다. 동생이 있다고 했었다. 이제 막 대학교를 졸업했다고 했던가. 둘 뿐인 생활을 이겨낼 수 있었던 건 동생 덕분이라던 너의 말이 떠올랐다. 자신과는 다르게 당차고, 이따금씩 사납게 굴지만 그런 점이 더 귀엽게 느껴진다던 그 아이였다.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듯 찔러오는 시선 앞에서 나는 쉽게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누구라고 하면 좋을까. 직장 동료? 무엇이든 터놓고 지내는 사이였지만 나에 대한 건 쉽게 얘기할 수가 없노라고, 그래서 미안하다고 얘기하던 너였다. 그렇지만 조만간 꼭 소개해 주겠다고도. 내가 너를 대신해서 이야기 해도 될까? 네 언니의 여자친구야, 하고 말한들 받아들여질 리가 만무하다. 몇분이 흐르도록 나오지 않는 나의 대답에 눈썹을 치켜올리는 모습은 과연 너와는 달랐다. 나는 변명하는 투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같이 일하던, 동료예요."
누가 들어도 믿음직하지 못한 떨리는 어투에도 고개를 끄덕이며 고개 숙이는 그녀를 따라 마주 고개를 숙였다. 향을 피우고 꽃을 올리고 난 후에도 식장에는 둘 뿐이었다. 자리에 가만히 앉아 너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온 정신력을 모두 쓰고 있던 나는 다른 곳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다. 교통사고. 그 흔하디 흔한 일은 세상 많은 이들 중에서 기어코 내 옆으로 닥쳐와 비극이 되었다. 충동적인 고백에 후회하고 있는 내 손을 잡으며 수줍은듯 미소 짓던 네 모습이, 짙은 핏자국에 얼룩져 흐려져 간다. 깜빡. 이번에는 놓치지 않기 위해서 다시 눈을 깜빡여 보았지만, 너는.
저기요! 정신 차려요!
다시 눈을 떴을 때, 흐릿한 시야에 네 얼굴이 비췄다. 어떻게 된 걸까. 다 꿈이었나? 한바탕 악몽을 꾼 끝에 너를 마주하게 된 거라면, 아무래도 좋았다. 어깨에 닿아있는 네 손을 끌어당겨 쥔 채로 이름을 불렀다. 한 번, 두 번. 계속해서 되뇌이며 쥔 손에 힘을 주자 네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이 보였다. 어째서, 왜.
"울지 마."
눈가에 매달린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런데도 계속 샘솟는 눈물이 당황스러웠다. 울면 안 되는데. 웃게 해주겠다고 했는데.
그쪽이야말로.
숨을 억누르듯 가라앉은 목소리의 톤이 낯설다. 울고 있는 건, 너잖아. 그제야 나는 내가 울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사실을 깨닫자 오히려 더 멈출 수 없게 된 나는 네 동생의, 너의 손을 붙잡은 채로 울었다. 바닥에 떨어진 눈물은 누구의 것이랄 것도 없이 섞여들었다. 사랑한다고 했는데, 함께 해주겠다고 했는데. 나 혼자, 여기 남아서는. 내뱉을 수 없는 말들이 울음이 되어, 너의 이름이 되어 새어나왔다.
아직 출근까지는 시간이 충분했고, 자잘한 업무 지시는 지금 옆의 메이드만이 있었다. 그래도 일단 일은 시켜야겠는데, 머릿속을 팽팽 돌려가며 지금 이 사람에게 뭘 시켜야 하나 고민에 빠져가기 시작한다. 그 순간 메이드가 살짝 그녀를 건드렸고, 그때서야 자신이 지금 두 눈 앞에 둘을 세워두고 딴 짓을 했다는거를 떠올리며 표정을 진지하게 잡고는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자, 한성씨는 오늘부터 제 전속 집사니까, 오늘 하루, 이 아이에게 인수인계를 받아주시고 내일부터는 저를 따라 움직여주세요. 짐도 풀고 해야하니까....."
그렇게 말하던 그녀가 잠시간 눈을 끔뻑인다. 생각해보니 그러면 오늘은 자기 혼자 출근을 해야하네? 의외의 문제라 생겼다고 생각하던 그녀가 결국 장고 끝에 낸 수단은 다름아닌 의외의 것이었다.
"한성씨는 그냥 저를 따라와주세요. 이전부터 집사일을 하셨다고 하니까, 그래도 어느정도까지는 문제 없을꺼라고 생각해요!" -"아가씨?!" "제 선택에 불만이 있나요? 그래도 한성씨는 저희 일가의 시험을 모두 통과하고 등용문에 오른 남자라고요? 제 눈이 잘못되었더라도, 저희 조부대부터 내려온 그 시험을 통과한 인물인데 충분히 그정도는 가능할꺼 같은데요."
더 이상의 이견은 받지 않는다는 듯 그녀가 그대로 차에 올라탄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한숨을 푹 쉰 빅토리아 메이드 복장의 여인이 천천히 한성에게 다가와 미안하다는 듯이 고개를 숙이고는 무표정한 표정 그대로 조용히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저희 총수님이 보시다시피 안과 밖이 다른 말괄량이라서..... 일단 여동생 분은 제가 모실테니까, 저희 총수님을 데리고 오늘 하루만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러고서는 아주 정중하고도 간결한 태도로 조심스레 소녀의 손을 잡은 메이드가 천천히 집 안으로 들어간다. 그런 한성을, 혜진이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빨리 타라는 무언의 압력인것일까.
>>681 긴장한 듯 경직된 동생과 달리 한성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그 역시 긴장을 안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표정을 겉에 드러내지 않는 처세술 정도야 있는 편이었으며 무엇보다 어떤 일을 시켜도 해낼 자신이 있었다. 그는 그녀의 말에 본능적이다시피 고개를 끄덕였고 입을 여는 순간, 처음으로 당황한 표정이 낯빛에 띄워진다.
갑자기 말을 바꾼것에 필시 당황한 것이다. 그는 네, 하고 나오려던 입을 뻐끔거리다, 알겠습니다 하고 숙였던 허리를 들었다.
조금의 걱정과 미련이 담긴 눈으로 꾸욱 꾹 눌러 밟듯이 제 동생을 바라보던 걱정스런 시선은 그에게 말을 건낸 메이드에게 돌아가며 떼어진다. 그는 낮게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보다가 차에 올라탔다. 이후 그는 긴장된 기색을 지우고 그녀를 마주보며 물었다.
"그럼 지금부터 스케줄에 맞춰 보좌해드리면 되겠습니까? 혹시 스케줄표를 여쭤봐도 괜찮으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