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6243924> 자유 상황극 스레 2 :: 1001

이름 없음

2020-11-15 00:13:19 - 2021-09-12 23:02:17

0 이름 없음 (/8xYPD6Tn6)

2020-11-15 (내일 월요일) 00:13:19

이 상황극은 5분만에 개그로 끝날수도 있고, 또다른 장편이야기가 될수도 있습니다.(물론 그때는 다른 스레를 만들어주세요.)

아니면 다른 스레의 자캐가 쉬어가는 공간이 될수도 있습니다. 크로스 오버도 상관없습니다.

자유 상황극 스레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603 이름 없음 (nuof3X8ViU)

2021-06-29 (FIRE!) 14:08:28

>>602

어라, 어라라. 그쪽 나 보고 있었어? 우리 되게 금방 눈 마주치지 않았나. '...예?'라는 대답까지, 아주 완벽하게 쳐다보고 있었다고 자백하는 것 같잖아. 내가 좀 시끄럽게 웃기는 했지? 미친 사람으로 보였나, 만취한 주정뱅이로 보였나. 뭐, 사실 어느 이유로 보고 있었든 사실 보고 있던 게 아니든 상관없어. 당신의 그 반응이 우스워 죽겠다는 게 문제지. 아, 안 돼! 이러다 웃다가 숨넘어갈 정도로 웃어버릴지도 몰라!

이죽거리는 입꼬리에서 언제 비실비실 새어 나올지 모르는 웃음을 막기 위하여, 몽타주를 짚고 있는 손가락은 그대로 둔 채 다른 손을 올린다. 다행스럽게도 손은 입을 틀어막는 데 성공했다. 다만 몸이 조금씩 들썩거렸기에 당신을 우스워하고 있는 티까지 감추지는 못하였다.

"미안, 미안해요. 그쪽이 귀여워서 그만."

정말 당신이 귀여웠냐고? 글쎄, 뭐. 초면에 당신 하는 꼴이 우스워서 웃어버렸다고 곧이곧대로 말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아? 귀엽다는 거, 어찌 됐든 칭찬이고 말이야. 나도 애썼다고, 결국 다시 웃지는 않았잖아.

"아무튼, 그렇다니까요? 이렇게 못생기게 말고, 연예인 뺨치게 그려주면 어디 덧나나."

왜, 혹시 모르잖아. 연예인 뺨치게 그려놓은 몽타주를 보고는 용의자들이 기분 좋아져서 자수할지도. 물론 나는 아냐.

맞장구쳐준 당신의 대답에 만족한 듯이 입꼬리를 씨익 올려 보이더니, 친절하고 상냥한 질문에는 몽타주를 짚고 있던 손가락을 내렸다. 맥 하나 없는 듯한 움직임은 흘러내리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런 움직임으로 당신의 시야 바깥으로 움직였다. 과자류가 나열된 진열대 너머로 걸어가면서, 당신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는 일부러 당신을 바라보았다.

"사탕 사려고 왔는데, 뭘 더 사볼까 봐요. 담배 피세요?"

604 이름 없음 (tEfTWYQXek)

2021-06-29 (FIRE!) 16:36:19

>>603

아, 완벽하다. 완벽히 나를 우스워하고 있네.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당신의 몸이 들썩거렸다. 누가 봐도 완벽하게 웃음을 막으려는 행동이었다. 예예, 맘껏 비웃어도 되니 얼른 웃고 나가주세요, 좀, 제발. 내가 편의점 알바생이 아니었다면 당장 이 자리에서 뛰쳐나가는 건데.

"아, 네.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손님."

여전히 서비스업 정신에 걸맞은 상냥하고 친절한 미소로 당신을 응대해주었다. 당연히 당신의 말이 사실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내가 이 알바 하면서 그런 되도 않는 말로 껄떡대는 놈들을 얼마나 많이 봐왔는데. 말에 영혼이 없잖아, 영혼이. 플러팅 점수? 한 3점 드리겠습니다. 더 공부해오세요.

"하하."

만족한 듯 입꼬리를 올리는 당신을 보며 이번에도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듯이 웃었다. 당신처럼 우스워하거나 비웃는 웃음이 아니라 '그렇기도 하네요~' 정도의 적당한 동의의 가짜 웃음. 실제로는? 범죄자들의 외모가 뭐가 중요해. 범죄를 저지른 이상, 이미 나쁜 놈들이잖아. 진짜 엄청난 외모 지상주의 손님이네. 그런데 왜 하필 딱 저 용의자의 몽타주를? ...하나도 안 닮았는데. 설마...?

"아니요, 저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답니다. 혹시 찾으시는 담배가 있나요?"

과자류 쪽으로 가는 당신이 시야에서 사라지려 하자 안도하다가도, 눈이 마주쳐지는 순간에는 다시 섬찟했다. 그러나 당연히 당신에게 보여지는 모습은 서비스 정신 10점 만점에 12점짜리 미소였다. 사탕을 고르고 오는 동안 얼른 담배도 찾아두고서 빨리 내보내야지. 소름끼치는 이상한 기분을 억누르고, 뒤로 돌아 담배들을 훑으며 당신에게 물었다.

605 이름 없음 (nuof3X8ViU)

2021-06-29 (FIRE!) 18:53:20

>>604

당신의 감사 인사에 마주 인사를 할 만큼, 서비스업 정신이 깃든 상냥하고 친절한 미소만큼도 친절하지 않은 사람이다. 귀엽다고 했던 그 말에 진심이라고는 1%도 섞이지 않았음을 스스로도 알고 있고, 당신을 꼬실 생각도 없으니 재미없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말했다.

"에이, 재미없네."

하는 말에 하나하나 맞장구를 쳐주는 것은 조금 흥미롭기야 했지만, 당신이 알바생이 아니고 자신도 손님이 아니었다면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다른 흥밋거리를 찾기 위해 진열된 과자 코너 너머에서 힐끗이는 시선으로 CCTV가 있는 곳을 찾았다. 여전히 당신의 시야 밖이지만, 당신이 CCTV의 눈을 빌리면 당신의 시야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아니요, 그쪽이 담배 피면 따라 피우려고 물어봤어요. 그럼~ 좋아하는 술은요?"

내가 필 거는 아니고, 저—기에 나랍시고 붙어있는 몽타주가 피울 거였지만. 근데 내가 담배를 안 피워봐서 말이지, 불붙는 쪽을 입에 무는 거라고 생각하거든. 저 같잖은 그림 쪼가리를 홀랑 태워 먹을 수 있었는데 아쉽게 됐어. 그치?

과자 코너 끝 즈음, 하단에 진열된 사탕을 발견해 자세를 낮춰 쭈그려 앉았다. 상큼하게 청포도 맛 사탕 한 봉지를 일단 품에 안고, 하나 더 안고, 또 하나 더…. 진열된 청포도 맛 사탕을 전부 품에 안았다. 그리고 찾아둔 CCTV를 가만 바라본다.

애를 혼자 뒀을 때 언제 제일 불안한 줄 알아? 조용할 때야, 조용할 때. 조용하면 사고 치는 중이라는 말이지. 난 이 말이 애한테만 통하는 말이라고는 생각 안 하거든. 방금까지 낄낄거리던 사람이 눈앞에서 사라지더니 조용히 하고 있으면 사고 치는 중일 거 같지 않아? 뭐 하고 있는지 CCTV 한번 확인해보고 싶지 않아? 그래서 이쯤 잠자코 있었으면 CCTV 보겠지, 싶을 때 활짝 웃으면서 손 흔들흔들. 사고 안 치고 있다고, 나. 이건 비웃는 거도 놀리는 거도 아니다? 진짜 안심하라고 웃은 거라고. 내가 곧 죽을 사람한테 말고는 이렇게 웃어주는 게 흔한 일이 아니에요, 흔한 일이. ...아, 그쪽 곧 죽이겠다는 뜻은 아니지만. 어쨌든, 내 인사를 봤으면 좋겠지만 안 봤어도 그만이지.

"사탕은 무슨 맛 좋아해요?"

당신을 향한 물음이었고 당신을 바라보기는 했지만, 그것은 CCTV 너머의 당신에게 하는 물음이었다. 당신을 비추었던 검은 눈동자는 규칙적으로 붉게 점멸하는 CCTV를 바라보고만 있다.

606 이름 없음 (E.FKuXYHkY)

2021-06-29 (FIRE!) 19:57:00

>>605

"재미 없어서 죄송합니다, 손님. 일하는 중이니 양해 부탁드려요."

재미 없다는 당신의 말에도 서비스업 미소는 흔들림 없었다. 물론 당신의 말이 진심이 전혀 없었음은 이미 간파하고 있었으므로 더욱 상냥하고 친절한 태도로 당신을 응대했다. 괜히 꼬투리 잡혀서 피곤해지기 싫었다. 아, 이 정도면 편의점 정도가 아니라 호텔에서도 일할 수 있었을텐데. 아니면 승무원이라든가.

"...재미 없는 저로서는 술도 담배도 잘 즐기지 않아서요. 죄송합니다, 손님."

...뭐야, 저 사람? 술에 이어서 이번엔 담배? 무슨 꿍꿍이야, 도대체. 뒤로 돌아 담배를 훑던 손가락이 멈칫 하더니 다시 목소리만큼은 상냥하게 대답했다. 사실 캔맥주를 즐겨 마시지만 굳이 솔직하게 대답할 이유는 없지. 그것도 정체를 알 수 없는 수상하고 낯선 사람에게. 그 정도 교육은 제대로 받았다, 이 말이지.

그런데 왜 이렇게 조용하지. 아, 이 느낌 대충 뭔지 아는데. 왜, 헥헥거리며 여기저기 신나게 돌아다니던 멍멍이들이 갑자기 조용해지면 사고치고 있다고 하는, 그런 거. 애도 그렇다지만 일단 나는 애는 없고 멍멍이는 있으니까 대충 비슷하겠지. 아, 그렇다고 당신이 개 같다는 건 아니지만. 어딜 우리 귀여운 구름이를 당신과 비교하겠어. ...그보다 당신, 진짜 사고치고 있는 건 아니지? 그럼 큰일난다고. 뒷처리, 내가 해야 한단 말이야.

당신의 생각대로 슬쩍 CCTV 화면으로 눈을 돌렸다. 그러자마자 당신이 활짝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서 비명을 지르며 기절할 뻔 했지만. 아니, 저 사람 뭐야!? 왜 하필 딱 이 타이밍에 인사하는 건데?! 일단 사고 치고 있는 건 아닌 것 같으니 다행인데...

"체리맛이요."

괜히 당신의 심기를 거슬러서 좋을 건 없겠지. 보아하니 어딘가 정신 이상한 사람인 것 같은데, 내가 조심해야지. 놀란 가슴을 빠르게 쓸어내리며 당신에게는 상냥하게 대답했다. CCTV 너머로 비춰지는 당신의 검은 눈동자와 당신이 쓸어담은 청포도 맛 사탕을 응시하면서. 아, 저기 매대 채워야겠네. 귀찮게 일이 또 생겼어...

607 이름 없음 (xfp2gi20.Q)

2021-06-29 (FIRE!) 21:23:20

>>606

"에이, 왜 뒷끝 부려요. 재미없다는 말 싫어요?"

쪼잔하게 말이야, '당신이 재미없다고 해서 말해주기 싫어요~'처럼 들리잖아. 아니면 그냥 내가 싫나? 사람을 그렇게 함부로 판단하면 쓰나! 허우대 멀쩡한 놈이 멀쩡한 짓만 하고 다니던가? 아니지! 그럼 이상해보이는 놈이 이상한 짓만 한단 법은 없단 말씀이야. 게다가 사람이 다 거기서 거기 아니겠어, 가죽 한 겹 벗기면 다 똑같지. 바다 너머 말 안 통하는 나라의 높으신 나으리도, 어릴 적 좋아죽던 그 아이도 다 똑같아, 다. ...인간 가죽 벗겨본 적이 있냐고? 귀찮게 그런 걸 왜 해?

"체리맛..."

당신의 대답을 한 번 중얼거리고, 검은 눈동자는 CCTV와의 눈싸움을 그만두었다. 사탕이 진열된 것을 유심히 쳐다보는 모습을 보면 알겠지만, 체리맛 사탕을 찾기 위해서다. 위에서부터 아래, 왼쪽에서부터 오른쪽.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이지만 끝까지 손은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아, 체리맛 사탕과의 눈싸움에서 패배한 모양이다.

"...없는데. 여기서 팔기는 해요?"

아, 자존심 상하게 정말. 고작 사탕한테 진거야, 나? 숨바꼭질은 많이 해봤는데! 심지어 사탕이나 찾는 숨바꼭질이잖아, 내가 즐겨하는 숨바꼭질은 목숨 걸고 한다고. 서로가 술래인, 먼저 잡히면 죽고, 먼저 찾으면 죽이는 그런 게임이라고.

"팔면 와서 찾아봐요."

당신이 볼 CCTV 영상에는 화면 너머에 있을 당신을 쳐다보며 말한 후에, 다시 체리맛 사탕을 찾는 모습이 담긴다.

608 이름 없음 (YmCHxgJcc2)

2021-06-29 (FIRE!) 22:42:37

>>607

"하하, 뒷끝이라뇨. 그럴리가요. 재미 없다는 건 저도 잘 알고 있는데요, 뭐."

계속 변함없이 상냥하고 친절한 태도지만 뒷끝이 남아있다는 것이 보일지도 모르지. 쪼잔한 사람이라 미안하네요. 하지만 재미 없다는 말을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하물며 당신처럼 수상한 사람이 해주는 말인데. 아, 하지만 이것 가지고 왈가왈부하기엔 피곤하니까 적당히 장단 맞춰주면서 넘어가자. 괜히 말이 길어지면 더 피곤해질지도 몰라.

"......"

설마 했는데, 지금 찾고 있는 거야? 체리맛 사탕을? CCTV 너머로 시선을 맞추던 당신의 검은 눈동자가 사라졌다.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이는 당신을 지켜보고 있자니 다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아니, 진짜 왜 저래? 이미 청포도 맛 사탕을 저렇게 한아름 사놓고, 갑자기 또 사탕을 산다고? 그것도 내가 좋아한다고 한 체리맛을?

정말로 이상한 사람이다. 용의자 몽타주를 보며 미친듯이 웃지를 않나, 나한테 아주 조금도 관심 있어 보이지도 않더니 계속 좋아하는 것을 묻지를 않나. 그러나 머릿속에 떠오른 편의점 알바생으로서 손님을 제대로 응대해야 한다는 점장님의 말씀이 피곤함과 섬찟함 너머로 책임감을 자극했다. 저렇게 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지금 도울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돕지 않는 것도 양심에 찔리고 말이지. CCTV로 계속 체리맛 사탕을 찾는 당신을 지켜보다가 소리 없이 한숨을 내쉬고 카운터를 나와 당신 쪽으로 걸어갔다.

"잠시만 실례하겠습니다, 손님."

상냥하게 인사하고는, 무릎을 굽혀 몸을 한껏 낮췄다. 그리고 제일 아랫칸의 앞 부분이 비어져 있는 공간에 손을 깊숙히 넣었다. 그리고 그 뒤에서 딱 하나 남은 체리맛 사탕 봉지를 꺼냈다. 아, 여기도 채워야겠네. 일거리 하나 더 추가다...

"여기, 체리맛 사탕 찾았습니다, 손님."

당신이 진, 순수하고 귀여운 사탕 찾기 숨바꼭질에서 이겨서 찾아낸 사탕 봉지를 당신에게 내밀었다. 친절한 태도로 환하게 웃는 얼굴이 당신을 향하며 옆으로 살짝 기울여졌다.

"더 찾으시는 물건 없으시면 결제 도와드릴까요?"

결제만 마치면 볼일을 끝낸 당신이 편의점을 떠난다는 사실이 안심되고 좋은지, 서비스업 정신에서 나온 미소가 아니라 정말로 환하게 웃는 첫 표정이었다. 당신은 처음 보았겠지.

609 이름 없음 (EIiogQmnTs)

2021-06-29 (FIRE!) 23:19:26

>>601

...? (후의 즐거움으로 남겨둘까, 라는 말에 아쉬운 감정을 느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의 소환자는 당신의 플러팅─추파─에 이런 아쉬워하는 반응을 보인 적은 없었다.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는 당신의 말에 의문을 표하는 것처럼 당신을 보았다. “왜?” 라고 입 모양이 벌어졌지만, 소리 내어 묻지 않고 다물린다. 제 어깨에 언제 올라왔는지 모를 털 뭉치의 털이 신경 쓰이는지 조심히 내려놓는다. 이 털 뭉치가 어떤 메카니즘으로 이렇게 생겼으며, 왜 털을 뿜고 있었는지─배려라고 생각하지 않았다─조금 신경 쓰이지만, 관심을 두지 않기로 한다. 원치 않아도 관심을 주고 주의를 기울이게 되는 건 당신 하나로 족하고... 하나로도 충분히 골치가 아프다.) ...평생 자각하지 않으면 그건 또 어떻게 되는 건데...? (악마와 계약할 정도로의 갈망이면 차라리 평생 깨닫지 못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죽으면 계약 종료냐고 물어보는 게 악마의 뭔가를 건드렸나 보다.) ...읏. ...그만이라고 했는데 왜 더 하는 거야! (밀어내는 손을 오히려 끌어당기며 손바닥에 입맞춤했을 땐 흠칫했지만, 소환자는 악마에게 더 반항하는 대신에 얌전해졌다. 무언가를 눌러 참는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당신에게 엉클어진 표정을 안 보이려고 애썼다. 죽음에게만큼은 무력하다는 건 진짜인가?) ...그런 건 계약하기 전에 말해줬어야지. 주인이 죽는 게 싫다던가, 날... 아니, 뭔가를 손에 넣으면 놓기 싫어하는 성정이라던가.... 집착이 강하다던가... (사기 계약 당한 것 같다...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하... 깊게 한숨을 쉰다.) 거기에 대해선 노코멘트 하겠어. 추파는 무시할 수 있지만... 만져대는 건 좀 싫은데. 무시하기 힘들어... (장난이든 진심이든 모쏠 아니라고 하면 여태 사귀었던 사람들이 누구인가 꼬치꼬치 캐물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대답을 안 하는 쪽을 선택한다. 손을 놓아주자 의자-혹은 소파?-에 무릎을 올리고 그대로 몸을 둥글게 마는 방어적인 자세를 취한다. 공벌레... 같기도 하다. 고슴도치가 몸을 만 것 같은 자세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어깨를 문질러주자 끙, 앓는 소리는 낸다. 싫다는 표현 같다.) ...객관적인 네 정보를 알고 싶다는 내 질문은 그냥 무시? (그럭저럭 표정 정리가 되었다. 둥글게 웅크린 자세에서 고개만 들어 당신을 보았다. 당신이 만족할만한 정보를 말해주지 않는다면 이름을 말해주지 않을 기세다.)

#삘 오면 쓰고 싶어지는 기분도 알지... 이번 레스도 넘 좋았어! (어깨 쭈물쭈물) 고슴도치 같은 애 귀여워해 줘서 너무 고마워.... ㅠ▽ㅠ* tmi...를 알려주자면, 무언가를 참는 것처럼 고개 숙여 숨긴 표정은 겁먹어서 엉클어진 표정이기도 해. 만약에 악마가 손바닥에 뽀뽀하는 대신 강제적으로 얼굴을 잡아 올려서 표정을 확인하려고 했다면 볼 수 있었을 거야.
#이름...은 .dice 1 2. = 2 1번 티아 2번 센티아 악마에게 주려던 이름 후보에 이노센트에서 따온 이름이고... 다갓이 티아가 이름인지 애칭인지 결정해 주겠지! 성씨는 이름 결정되면 이름에 어울리는 걸로 붙여야겠다
#악마 너무 잘생겼다... 위협적으로 잘생겼다... ㅠㅠㅠㅠ (짤로 대체하는 심정) 나도 어네스티 참치의 취향을 반영하고 싶다...! 반영할 수 없다면 지뢰라도 피하고 싶다! 소환자의 외견에 있었으면 하는 점이랑 없었으면 하는 점 알려줄 수 있을까?

610 이름 없음 (M/ALSBI2So)

2021-06-30 (水) 01:51:37

>>609
허, 허, 하! (나름 빈정이 상해버린 악마는 대놓고 헛웃음을 친다. 여태껏 실컷 유혹하고, 좀 더 당신을 휘두르기 편한 쪽으로 두기 위해 언동을 유도해왔지만 당신에게서 나타난 반응은 단순히 익숙하지 않고, 만져지는 것이 싫어서였던건가? 손가락을 꿈틀거려 고풍스러운 디자인의 손거울을 만들어내, 그것을 들여다보며 분위기를 잡고 표정을 지어보인다. 이 정도면 저렇게까지 무시당할 정도는 아닌데. 손을 휘저어 마술처럼 손거울을 없애고, 팔짱을 끼고 당신을 바라본다.) 주인이여, 내게서 성적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것인가? (어이없는 질문이지만, 더할 나위 없이 당당하다. 하지만 그렇다면 당신의 애매한 스탠스에 대한 이유가 되겠지. 호감을 전제로 계약자를 휘어잡는다. 당연할 정도로 기초적인 악마 지식이다. 이게 안 통하다니.) 평생 자각하지 않으면, 평생 그대로 살게 되지 않겠나? 달라질 일은 없네. 그러니 악마는 가장 간단하고 효율적인 방안을 제시해줄 뿐이지. (당신이 싫다며 밀어내자 이번에야말로 순순히 밀려났다. 그리고 쉴 틈 없이 달려드던 방금 전과는 달리, 데면데면한 입장을 취하며 제 손톱을 만지작거린다.) 주인은 이 몸이 면접이라도 보러온 줄 아는 것인가? 이 계약의 책임은 온전히 주인에게 있네. 난 마계에서 여유롭게 휴식을 취하던 도중이었단 말이지. (엉클어진 표정은 못 본 듯, 옆자리에 앉아있는 당신을 고개만 슬쩍 돌려 옆눈으로 바라보며 공벌레 같다고 생각한다. 등뼈를 손가락 끝으로 훝어주고 싶지만, 분명 이번에도 어깨를 주물러줄 때처럼 곤란해하겠지. 눈이 점점 더 가늘어진다. 대뜸 거리감이 생긴 느낌이다.) 객관적인 정보를 주고 싶어도, 인간의 역사에 새겨진 무수한 이름들은 전부 이 몸의 것일세. 우주에 존재하는 행성 목록을 묻는 것이나 마찬가지이지. (하아, 짧고 소리없는 한숨을 내쉰다. 턱을 괸 채 딴 곳을 쳐다보며 꿍얼거리는 게 삐진 게 틀림없다.) 됐네, 주인의 이름은 얼마든지 알아낼 수 있으니 말이야. 생활하는 데에 더 이상 방해를 할 생각은 없으니 이만 물러가도록 하지. 외로워지면 부르게나. 또한,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면 주인의 일상은 지켜주겠네. (이걸 바라는 게 맞겠지? 사생활을 침해받지 않는 현상 유지말이다. 성향 파악이 됐지만,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다. 아니, 자존심이 상한다. 이런 취급을 받은건…처음이니까. 자리서 일어나, 대뜸 말없이 당신의 얼굴을 가까이서 들여다본다. 무언갈 말하려 했지만 끝내 입을 열지 못하고 굽힌 상체를 도로 폈다. 참는다는 건, 생각보다 힘든 일이라는 걸 깨닫는다.) 식사는 잘 챙겨드시게나. 주인이여.

# 오히려 너무 유능한 나머지 뒷걸음질을 쳐버리는 악마.....이래도 괜찮은건가🙄 숨긴 표정을 일부러 보지 않은 이유는 아마도 몸이 떨리고 있어서 였을지도.....헉 센티아구나 넘넘 예쁜 이름이다 네이밍 장인! 당연히 티아라 불러야지 당근빠따죠 XD
#취향..........어네스티 참치의 취향은 단 하나.......단발뿐이야 (엄근진) 그 외의 요소는 전부 OK야! 물론 장발도 싫어하는 게 아니야 ㅋㅋㅋㅋ ㅠㅠ 생각보다 꽤 진행된 편이라 내 취향을 집어넣기 보다는 진행되면서 얼핏 나온 티아의 이미지들을 티아참치 임의대로 집어넣어주었으면 해! 그 편이 더 좋을 것 같아 *‘∇`* 두근두근...!

611 이름 없음 (wQRa7D5KxI)

2021-06-30 (水) 07:38:30

>>592
소나기가 따갑다 못해 매섭게 쏟아지던 날이었다. 빗속을 뚫고 드래곤의 둥지 안으로 뛰어들어온 이는, 클록을 뒤집어 쓰고도 쫄딱 젖은 모습의 인간 여성이었다. 흠뻑 젖은 진저색 포니테일을 손으로 짜며 고개를 들던 여성은 흠칫 놀라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비를 잠시 피하려고 들어온 동굴에 지금껏 본 어느 건물보다도 거대하고 새빨간 야생 동물이 있는 것을 본다면, 인간인 이상 놀랄 수밖에 없으리라. 잠시 얼어붙었던 여성은 이내 눈 앞의 드래곤이 자신을 먹으려 들기보다는 대화를 시도해오자, 한 시름 놓은 듯 표정을 풀곤 비가 쏟아지는 바깥을 가리켰다.

"보이지? 비 오는 거. 그치면 나갈게."

근데 방어라니, 드래곤이면서 인간 하나 막는데 방어 씩이나 필요한가? 그냥 앞발로 호떡으로 만들거나 집어서 먹으면 끝이잖아. 뭐 내 알바는 아니지. 난 비만 피하면 되니까. 잡념을 애써 지우며, 여성은 덤덤한 올리브색 눈으로 용을 올려다봤다.

612 이름 없음 (qpaQtKY2n.)

2021-06-30 (水) 09:41:20

>>608

뒷끝 부리는 거 맞구만, 뭘. 재미없다고 두 번 말했다가는 아주 대꾸도 안 해주겠어. 유치해라, 유치해. 그렇게 쪼잔하게 굴면 나도 쪼잔하게 굴고 싶어지잖아. 요즘 세상이 얼마나 흉흉하고 험한데, 내가 수 틀리면 아무나 찌르고 다니는 미친 살인마일 수도 있는 거 아냐? 그런 건 내 미덕에 어긋나니까 그러진 않을 거지만. 나는 사람 탈을 쓴 짐승 새끼만 잡는다고. 사람은 안 죽여요, 사람은. 인간이길 포기한 놈들이나 내가 자비롭게 손수 죽여주는거지.

"오래오래 실례하셔도 되는데."

사탕을 찾아주는 당신을, 사탕을 찾는 짧은 시간 동안 얌전히 기다리고 있었다. 품에 청포도 맛 사탕을 죄다 끌어안고 쭈그려 앉아있는 그 자세 그대로. 진열대 안 쪽으로 깊숙히 들어갔다 나오는 당신의 손을 보고는 눈살을 조금 찌푸린다.

이러니까 못 찾지. 좀 투덜거리려고 했는데 뭐야, 당신. 뭔데? 뭐가 좋아서 그렇게 웃어? 이거 알바생이 손님한테 지어주는 그런 꾸며내기용 웃음 아니잖아. 사탕 찾은게 좋아서 웃는건가? 이유야 어찌됐든, 내가 저런 웃음을 얼마만애 보는 줄 아냐고. 누가 나한테 저렇게 화사하게 웃는 걸, '아, 이래서 웃는 걸 보고 웃음꽃이 핀다고 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웃는 걸 보여준 적이... 아, 몰라 이씨. 밥맛 떨어졌어. 갈래.

"그거 안 살래요."

아니, 그쪽이 체리맛 사탕 좋아한다니까 있는 재고 없는 재고 다 털어갈라고 했지. 그리고 그 다음에는 검정이랑 빨강, 파랑 중에 좋아하는 색깔 물어보려고 했는데. 색깔은 왜냐고? 3색 볼펜 하나 사서 당신이 고른 색깔로 내 미술 솜씨 좀 뽐내보려고 했어. 내 몽타주에. 근데 다 관둘래. 내가 지금 기분이 좀 뭣같아서 장난칠 기분이 안 되네.

"...다른 거 사고 싶어져서."

건네준 체리맛 사탕을 받지 않았다. 표정의 변화는 딱히 없었으나 뭔가 어색한 구석이 보인다. 쭈그려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품에 끌어안고 있는 청포도 맛 사탕 한 봉지를 흘렸는데, 그것도 모르는 낌새였다. CCTV 있는 곳을 찾아두더니 인사하던 모습과는 다르게 어딘가 허술해졌다. 자리에서 일어나 향하는 곳은 아이스크림 냉장고가 있는 곳이었다.

613 이름 없음 (Gx3VM64BHg)

2021-06-30 (水) 12:17:17

>>612

"하하."

사탕을 찾아주며 짧은 서비스업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오래오래 실례라니. 어떻게 그런 심한 말씀을. 그것도 당신처럼 수상하고 낯선 사람과 함께. 난 빨리 일이 끝나서 쉬었으면 하는 평범한 편의점 알바생 1이라고요.

그래도 이것만 찾아주면 다 끝이다. 홀가분하고 기쁜 마음으로 환하게 웃으며 체리맛 사탕 봉지를 당신에게 내밀었다. 아, 근데 당신은 왜 또 그런 표정이야? 왜 눈살을 찌푸리고 있는건데? 이걸 못 찾은 게 그렇게 짜증나는 거야? 아니, 물론 나도 찾기 어려운 곳에 있었다는 건 인정하는데...

"...예?"

아니, 그렇다고 갑자기 안 산다는 건 또 뭔데?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건데? 여기까지 불러놓고, 찾게 시켜놓고, 다시 갖다 놓으라고? 누구 똥개 훈련 시키나, 진짜.

그러나 당신의 표정이 뭔가 어색했다. 딱히 변화가 있다고 하기엔 어려웠으나, 그래도 뭔가가. ...저 표정은 또 뭐야? 내가 뭐 잘못했나? 딱히 뭐 한 건 없는 것 같은데... 자리에서 일어나는 당신을 따라 올라가던 시선이, 떨어지는 청포도 맛 사탕 한 봉지를 따라 아래로 툭 떨어졌다. 하지만 그것도 모르는지 아이스크림 냉장고로 향하는 당신의 뒷모습과 사탕 봉지를 번갈아보다가, 소리 없이 한 번 더 한숨을 쉬었다. 아주 그냥 일을 만들어주는 타입이네. 손이 많이 가.

"손님, 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당신에게는 상냥하고 친절한 태도를 유지하며, 떨어진 사탕 봉지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재빨리 달려가 쇼핑 바구니에 사탕 봉지를 넣고, 바구니를 손에 들고 다시 당신에게로 달려왔다.

"청포도 맛 사탕이 하나 떨어졌었어요. 아이스크림도 더 사실 거라면 그 사탕들, 여기 바구니에 넣고 고르시는 게 더 편하지 않을까요?"

갑자기 어딘가 허술해진 당신이 여전히 이상하긴 했지만, 그래도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라면 도와주고 얼른 보내는 게 낫겠지. 친절하고도 정중하게 두 손으로 바구니를 잡고 당신에게 내밀었다. ...근데 진짜 당신 갑자기 왜 이래? 아까 CCTV로 나 놀릴 때만 하더라도 수상하고 소름 끼치기는 했는데, 이런 느낌은 아니었잖아. 어딘가 기분 나빠보이기도 하고...

"...저, 손님. 혹시 제가 잘못한 거라도 있나요? 있다면 말씀해 주시겠어요?"

아, 진짜. 신경 쓰여서 어떻게 할 수가 없잖아. 알바생 태도 논란으로 클레임 들어오면 나 점장님한테 혼난단 말이야. 그리고 괜히 내가 뭔가 잘못한 것 같아서 찜찜하기도 하고... 다시 당신에게 상냥하게 웃으면서 물어보았다. 아까처럼 기쁘고 화사한 웃음은 아니었지만, 단순히 알바생의 서비스업 웃음이었다, 라고만 하기에는 또 아니었다.

614 이름 없음 (HKiQ65MmxI)

2021-06-30 (水) 18:14:39

>>613

"예."

안 산다고요, 안 사. 변덕 부리는 거 처음 보나. 체리 맛 사탕을 찾아달라고만 했지 산다고는 말 안 했거든. 구경만 하고 말 수도 있는 거 아냐? ...아, 그래. 알아, 나도 알아. 억지 부리는 거 아주 잘 안다고. 갑질하는 손놈된 기분도 별로고, 그냥 내 기분도 별로니까 괜히 태클걸지 말자. 그러게 누가 웃으래? 이 이상한 기분 어떻게 책임질 거냐고, 어떻게. 내가 우는 표정, 화내는 표정, 겁먹은 표정, 비굴한 표정, 포기한 표정… 죽은 표정까지. 이런 표정만 자주 봐왔더니, 정말 진심으로 웃는 걸 보니까 멀미가 나는 것 같아. 낯설고 어지러운 감각이라고, 이거. 내가 화났나? 그건 아냐. 기분이 나쁜가? 나쁜 거랑은 좀 달라. 역겨운 것 같기도 한데 토가 쏠리지는 않고. 무서운 건가 싶기도 한데, 고작 웃는게 무서웠으면 손에 피 묻힐 일도 없었을 건데. 아, 진짜 뭐냐고.

잠시만 기다려 주겠냐는 공손한 목소리를 듣지 못 했다. 무시한 것이 아니었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것인지, 아니면 오랫동안 잊고 있었을 뿐인지도 구분되지 않는 낯선 감각에 대해 고민하느라 그런 것이었다. 그래서 자리에 멈춰서는 일은 아이스크림 냉장고에 도착했을 때나 이루어졌다. 하지만 아이스크림을 고르지는 못 했다. 품에 안고 있는 사탕 봉지들이 손을 못 쓰도록 하고 있었으니까. 사탕을 어디 내려놓고서 아이스크림을 꺼낸다는 생각조차 못 하고 있었다.

"...아이스크림은 하나만 살 건데."

사탕이 떨어졌다는 건, 당신이 그 떨어졌던 사탕을 담은 바구니와 함께 돌아왔을 때 알게 되었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당신의 눈을 잘만 쳐다보았는데, 웃는 것을 본 이후로는 영 그러질 못 한다. 그 검은 눈동자는 당신을 비추는 일 없이 두 손으로 잡아 내밀고 있는 바구니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이스크림은 하나만 사겠다는 대꾸 이후로, 굳어버린 것처럼 고요했다. 집중해서 청각을 곤두세우면 들릴 숨소리와 눈 깜빡임을 제외하고는 아무 말도 없이, 아무 소리도 없이, 아무 행동도 없이. 눈꺼풀이 내려왔다 올라가며 깜빡이는 것조차 느릿느릿했다.

"잘못한 건 없어요."

그쪽이 웃은게 잘못은 아니잖아. 그게 잘못이면 내가 아까 웃은 것도 잘못이게? 내가 당신이 웃는 것처럼 예쁜 웃음을 눈 앞에서 본게 오래 돼서 그래. 내가 그렇게 웃은 적도, 남이 나한테 그렇게 웃어준 적도, 이렇게 누군가 그런 웃음을 보여준 적도 기억에 없어. 근데 당신, 지금도 또 웃고 있네. 분명 나한테 서비스 정신 잔뜩 깃든 웃음만 보여줬었으면서.

"궁금한 건 있는데. ...왜 웃는 거에요? 아까도, 지금도."

나 꼬실려고 웃는 건 아니잖아. 서비스업 정신이 투철해서, 아예 세뇌당해서 웃는 건가? 이 상황이 행복해서 웃는 것도 아닐테고.

바구니를 응시하며 말한 목소리는 당신의 취향을 묻던 그 목소리와는 확연히 달랐다. 좀 더 밝고 장난 치는 걸 숨길 생각도 없던 목소리에서, 물 속에 가라앉은 채로 울리는 듯한 목소리로 바뀌었다. 질문을 하고서는 당신이 건네고 있는 바구니에 품에 있던 청포도 맛 사탕 봉지들을 쏟아낸다. 툭툭 떨어지는 소리가 끝나면 바구니를 건네 받는다. 한 손으로 들고 있는 바구니는 제대로 손잡이 두 개를 바로 잡은 게 아니라, 하나만 쥐고 있어 기울어졌다. 잘못하면 또 하나 정도 툭 쏟아버릴텐데, 바로 잡을 생각은 없고 아이스크림 냉장고를 열더니 상체를 숙여 아이스크림들을 휘적거릴 뿐이다.

615 이름 없음 (IyFLsd66.U)

2021-06-30 (水) 19:25:40

>>614

아, 진짜 갑자기 왜 저래? 이번엔 또 무슨 심경의 변화가 일어난 건데? 체리맛 사탕 봉지를 다시 원래대로 깊숙히 넣어 놓으면서도, 쇼핑 바구니에 떨어졌던 청포도 맛 사탕 봉지를 담아 다시 당신에게 돌아오면서도, 계속 어딘가 찜찜하기만 했다.

"그래도 사탕을 많이 들고 계시니까 불편하실 것 같아서요. 아이스크림을 골라서 집어드는 것도 힘드실 것 같고."

이거 봐. 당신, 지금은 내 눈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있잖아. 아까 전까지 그렇게 갖고 놀 것 같던 그 눈빛은 어디 간 거야? 손바닥 뒤집듯 태도가 순식간에 바뀐 당신과는 다르게, 꾸준히 상냥하고 친절한 모습으로 당신을 대하였다. 하지만 갑자기 엄청나게 조용해진 당신이 계속 신경 쓰이기는 했다. 심지어 행동마저 느려졌네. 도대체 뭔데?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 건데? 내가 진짜로 뭐 잘못 하기라도 한 거야? 설마 진짜 사탕을 나만 찾아냈다고 삐졌다거나, 뭐 그런 건 아니지? 에이, 설마 사람이 그렇게까지 쪼잔할까.

"그런가요? 그렇다고 하시니 다행이긴 한데..."

아니, 그럼 갑자기 바뀐 그 태도는 뭐야? 여기는 지금 나랑 당신밖에 없잖아. 그렇다면 내가 뭔가 해서 기분 나빠진 거 아니야? 당신의 표정을 살피려 옆으로 살짝 기울어졌던 고개가 당신이 질문을 던지자 원래대로 돌아왔다.

"...예?"

왜 웃냐고? 설마 웃는 게 마음에 안 들었던 거야? 아니, 당신도 아까까지만 하더라도 계속 웃고 있었잖아? 물론 지금 당신은 갑자기 깊은 물 속에 잠겨서 가라앉은 것 같은 분위기로 바뀌긴 했는데... 생각도 못한 당신의 질문 때문에 당황한 얼굴로 당신이 바구니에 쏟아붓는 사탕 봉지들을 받아 주었다. 당신이 바구니를 가져갔지만 위태로워 보이는 것이 괜히 또 신경 쓰였다. 저러다가 또 쏟으면 어쩌려고. 내가 또 주워줘야 하잖아.

"...좋아서요?"

당신의 질문에 적당히 대답했다. 굳이 무엇이 좋은지까지 구체적으로 말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당신에게는 오히려 더 혼란스러울 대답일지도 모르지.

"그렇게 들고 계시면 또 쏟아질지도 몰라요. 제대로 들고 아이스크림을 고르시는 게 어떨까요?"

무릎을 굽혀 앉아서는 당신이 잡지 않고 있는 바구니의 손잡이 하나를 잡아 들어, 제대로 당신의 손에 친절히 쥐어주려고 했다. 그러다가 당신과 손이 살짝 스쳤을지도 모르지만. 당신이 만약 바구니를 제대로 들었다면, 신경 쓰이는 것 하나가 해결 되었다는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당신을 올려다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이쪽을 보았다면, 다시 또 그 화사한 웃음을 마주했겠지.

616 이름 없음 (DlHWUL.eyI)

2021-06-30 (水) 19:58:21

>>611

"참으로 당돌하구나. 인간의 아이야. 드래곤의 둥지에 들어와서 비가 그치면 나가겠다니."

도망치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게 비가 그치면 나가겠다는 여성의 말과 자신을 바라보는 행동에 붉은 용은 피식 웃으면서 좀 더 고개를 낮춰 여성의 얼굴을 바라봤다. 보아하니 자신의 목을 벨 기회를 엿보기 위해 하는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아 붉은 용은 경계심을 아주 조금만 남기고 모두 풀어버렸다. 인간이 자신을 먼저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면 굳이 인간과 싸울 이유가 붉은 용에겐 없었다.

"그래. 너는 무슨 일을 하는 이지? 너처럼 태연하게 용인 나에게 그렇게 대답하는 이는 처음 보는 것 같아서 궁금하구나."

적대적인 반응, 혹은 두려워하는 반응. 보통은 둘 중 하나였고 이렇게 당돌하게 비가 그치면 나가겠다고 말하는 그 태도가 참으로 신기하면서도 당돌해 용은 호기심을 목소리에 가득 담았다. 그러다 비에 흠뻑 젖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눈에 담으며 용은 다시 입을 열었다.

"머리카락이 많이 젖었구나. 말릴 불이 필요하다면 말해라. 인간의 아이야. 말릴 수 있게 해줄테니."

617 이름 없음 (I838RXXVIM)

2021-06-30 (水) 20:20:13

>>615

"여기 알바생들은 다 그쪽처럼 과잉 친절해요?"

아까같았으면, '그럼 그쪽이 들어주면 되겠네요?' 하고 이죽거렸을 건데. 괜히 장난치려 했다가 벌 받는 건가? 하늘이 나한테 벌이라도 내린거야? 무심도 하셔라, 고생스럽게 땅에서 쓰레기 폐기해주는 사람이 난데. 어떻게 나한테 벌을 내릴 수가 있어. 상을 내리지는 못할 망정.

목소리도 내고, 움직임도 있지만, 당신이 잠시 못 본 사이 마네킹이라도 갖다놓은 건지 표정의 변화라고는 없었다. 정말로 인형같은 이질감이다. 감정이라고는 있는건가 싶은 표정. 뺨에 도는 혈색이 아니었다면 눈이 깜빡이는 것까지 잘 구현된 인형이라고 착각할 지도 모르겠다.

"그거 3번째네."

혼잣말인지, 당신에게 하는 말인지조차 목적이 흐릿한 그 말의 의미는 횟수였다. 당신이 '예?'라는 말한 횟수. 처음 보는 사람과 주고 받은 대화에서 어느 단어가 상대의 입에서 몇 번 나왔는지 세고 있었던 것이다. 엉뚱하다 못해 이상한 행보를, 편의점에 들어선 짧은 시간동안 많이도 보여줬으니 별로 놀랍지 않을 수도 있을까.

"...상대를 위해 봉사할 때 희열을 느껴요?"

아까도, 방금도 좋아서 웃었다고? 뭐가? 당신이 아까 한 거라고는 나한테 체리 맛 사탕 찾아준 거 밖에 없다고. 방금은 바구니에 사탕 담으라고 떨어트린 사탕까지 주워다 와서는 뭘 잘못했냐고 물었잖아. 그게 뭐가 좋은데? 아, 보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웃을 만큼 체리 맛 사탕을 좋아하는 거야? 그 정도면 사랑 아니냐고. 근데, 아까는 체리 맛 사탕 덕이라고 해도 방금은 체리 맛 사탕 보고 웃진 않았는데. ...아니지, 아까도 체리 맛 사탕 보고 웃지는 않았잖아. 둘 다 나보고 웃었는데. 그럼 날 사랑한단 거야, 뭐야. 아니, 아니지. 날 사랑한다고 하면 이 과잉 친절을 베푸는 것도 납득이 가는데. ...어라, 근데 사랑이 뭐였지?

"깨져도 살거니까 상관없어요. 그리고 아이스크림은 벌써 골랐…"

사람이 너무 놀라면 비명도 못 지르고 굳는다더니, 누가 이렇게 맞는 말만 했대.

바닥으로 떨어진 것은 총 두 가지. 바구니와 체리 맛 막대 아이스크림. 당신이 바구니의 손잡이를 쥐어준 것은 제대로 쥐었다. 다만 당신의 손이 스쳤다는 사실에 소리도 못 내고 놀란 것이다. 그래서 아이스크림을 찾는다고 상체를 아이스크림 냉장고로 숙이고 있는 동안, 당신이 뭘 하고 있었는지 제대로 확인하기 위해 당신을 바라보았다. 피한다는 사실을 대놓고 드러내며 당신의 눈을 피해왔으니, 눈이 마주치는 걸 꺼려한다는 건 확실하다. 그럼, 그 눈이 또 환하게 웃고 있을 때는 어떨까. 진심으로 보고 싶지 않았다. 저 얼굴을 가리고 싶었다. 그래서 한쪽 손에 쥐어진 바구니도 놓고, 다른 한쪽 손에 쥐어진 체리 맛 막대 아이스크림도 놓았다. 두 손바닥이 당신의 얼굴 위로 그림자를, 벽을 드리우려고 했다.

618 이름 없음 (yTW/qu4BA6)

2021-06-30 (水) 21:17:22

>>610
(악마가 빈정 상했다는 표현을 이렇게나 직접적으로 보인 것은 처음이다. 헛웃음에 어깨가 조금 움츠러들었다. 손거울을 만들어 표정을 만들어 보이는 당신을 보며 의문이 생긴다. 자기 얼굴에 어지간히 자신이 있었는데, 내가 그 얼굴에 안 넘어가서 이상하다 여기는 걸까?) ... (대답 대신 눈만 두어 번 꿈벅이는 모습이 당신이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아예 이해를 못 한 모양새였지만.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다르게 당신의 질문을 아예 이해 못 한 것은 아니었다. 성적인 매력... 있다면 있겠지만, 그 매력보다 위협이 더 크게 느껴진다는 게 문제였으므로 소환자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위협적으로 잘생겼어, 라고 대답해도 되나?) ....그렇구나. 알겠어. (당신이 밀려나자 당신이 했던 말을 되새기고 약간의 침묵 후에 수긍한다. 가장 간단하고 효율적인 방안을 선택하기보다는 그냥 천천히... 천천히 생각하고 싶다. 평생 그대로 산다는 것도 그다지 나쁘지 않겠지만, 알고 싶어진다면 스스로를 고찰하면 되잖아. 굳이 악마의 손을 빌릴 문제도 아닌 것 같다.) ... (공벌레 같은 자세로 당신의 핀잔을 듣는다. 이렇게 몸을 말고 있어도 만지고자 하면 만질 수 있을텐데 이제는 만지지 않는 건가? 책임은 온전히 제게 있다고 하는 태도가 맘에 안 든다거나, 휴식을 방해해서 미안하게 됐다던가 가벼운 투덜거림도 지금은 할 수 없다. 그저 겁먹은 표정을 보이지 않는 게 최선이었지.) ...그럼 인간의 역사에 새겨진 이름 중에 제일 맘에 드는 것을 알려줄 수 있을까? (삐진 모습도 처음 본다. 삐진 척인지 진짜로 삐진 건지 알 수 없지만, 소환자는 악마의 그 모습을 눈에 담아두었다.) (어차피 알아낼 수 있다면 지금 알려주는 게 좋겠고, 일상을 지켜주겠다는 말도 마음에 들지만 저렇게 기분 상했다는 표정을 하는 사람.. 아니 악마를 그대로 돌려보내면 후일이 걱정된다.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서 들여다보는 것에 조금 움찔했지만, 눈을 피하거나 하진 않는다. 당신이 상체를 펴고 식사는 잘 챙기게나, 란 말을 끝으로 바로 사라지지 않고 약간의 유예를 두었다면.) 센티아...야. 내 이름. (이름을 말해주고 웅크린 상태로 한 손을 뻗을 것이다. 당신의 옷자락에 닿을 듯했다가 멀어진 손이 조금은 주눅이 들어 있다. 표정도 주눅 든 표정이다. 자신은 만지지 말라고 해놓고, 상대를 만지는 게 좀 그런가 싶어서. 옷자락조차 닿지 못하고 물러선 모양이다.) 그럼, 나중에 봐.


#어네스티가 마지막에 못 한 말이 ‘내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드나?'일까?! 이 보 전진을 위한 일 보 후퇴라고 생각하자구! 😭
#성씨 다이스 .dice 1 2. = 2 1 하딩 2 호프먼 2번으로 하고 싶긴 하다. 호프(희망)이 들어가면 호프먼 브레이브 어네스티 (희망, 용기, 정직)이 되니까...ㅋㅋㅋㅋㅋ
#처음에는 장발로 픽크루 만들었는데 단 하나뿐인 취향이라고 해서 단발 버전도 새로 만들었어! 성격상 단발도 꽤 어울릴 것 같다! 장발은 장발대로 좋은 그림 나오고 단발은 단발대로 좋은 그림 나올 텐데... 악마랑 외모합 생각하면 단발이 조금 더 어울리는 것 같고, 티아 단독샷만 따로 보면 장발이 조금 더 어울리는 것 같아...ㅋㅋㅋㅋ 어네스티 참치는 장발이랑 단발 중에 어느 쪽이 더 마음에 들어?
단발 픽크루 주소 : https://picrew.me/image_maker/139707/complete?cd=3hwG9JcgTb
장발 픽크루 주소 : https://picrew.me/image_maker/139707/complete?cd=km7mOMpivx

619 이름 없음 (R4nEnTMALg)

2021-06-30 (水) 21:24:31

>>617

"그렇...지는 않을걸요? 제가 과잉 친절한가요? 불편하셨다면 죄송해요, 손님."

내가 불쾌할 정도로 친절한가? 물론 서비스 정신이 투철하다는 이야기는 듣지만, 그 정도는 아닐텐데. 아니, 근데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사람이 있고,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능력과 시간이 되는데, 안 도와주는 것도 좀 그렇잖아. 사람으로서 말이지. 근데 그게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 거야? 당신, 분명히 말도 하고 눈도 깜빡이고 있기는 하지만, 감정 없는 인형처럼 보여서 괜히 섬찟하단 말이야.

"...예?"

벌써 4번째였다. 하지만 당신의 이상한 말과 행동을 계속 받아주고 응대해왔으니, 이런 반응은 어쩔 수 없다고. 그럼에도 당신을 무시하는 태도는 한번도 보이지 않았다. 계속 대답해주고, 친절을 베풀기는 했어도.

"아뇨, 그 정도까지는 아닐텐데..."

내가 그 정도로 보이는 거야? 겨우 몇 번 도와준 것 가지고? 이 정도의 친절은 그냥 기본 아니야?

"제가 도울 수 있는 거라면 돕고 싶어서요."

물론 그래야 당신이 볼일을 빨리 끝내고 편의점을 나갈 것 같으니까, 하는 이유도 조금은 있었지만 원래 성격이 그러했다. 갑자기 변해버린 당신이 내심 신경 쓰이기도 했고. 내가 잘못한 건 없다면서 도대체 왜 그렇게 태도가 변한 건데?

"그래도 기왕 같은 값을 주고 사시는 거, 멀쩡한 것이 좋지 않을까요? 아, 그럼 아이스크림도... 힉?!"

놀란 것은 당신만이 아니었다. 사탕 봉지가 가득 든 바구니와 체리 맛 막대 아이스크림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를 따라, 이쪽 역시 비명을 질러버렸다. 아니, 나 지금 다칠 뻔 했는데?! 나 쭈그려 앉아 있었다고요?!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리지 않았다면 큰일 났을지도 모른다고요?! 게다가 저거 저 사탕이랑 아이스크림 어떡해! 바닥에 터졌으면 뒷처리 내가 해야 한단 말이야...! 바구니도 깨진 거 아니지?!

그러나 바닥을 보던 시선을 들어올려 당신을 다시 바라본 순간, 세상은 갑작스런 어둠으로 물들어버려, 흠칫 떨어버렸다. 하지만 알 수 있었다. 얼굴에 닿은 감촉은 분명히 두 손바닥이었다.

"...저기, 손님...? 갑자기 왜 그러시나요?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저기, 이거, 당신의 손이지? 갑자기 이렇게 가려버리면 놀란다고? 이번엔 또 뭐가 문제인데, 진짜... 왠지 불안해져서 두 손을 들어올려 조심스럽게 당신의 손을 잡으려고 했다. 손이 스치기만 해도 놀라던 당신이었으니, 아마 이렇게 제대로 잡을 거라고는 생각 못 했겠지. 만약 당신의 손을 잡는 데 성공했다면, 그대로 조심히 아래로 내리려 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당신이 그렇게도 보고 싶지 않았던 눈이 다시 당신을 마주했겠지. 이번에는 서비스업의 웃음을 보여주면서.

620 이름 없음 (30tE7NohPA)

2021-06-30 (水) 22:18:43

>>619

"의미없는 사과를 한다는 점까지 과잉 친절 아니에요?"

남한테 굽신거리는게 즐겁다면 할 말 없는데. 너무 저자세 아냐? 원래 다들 이렇게 살아?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지. 응, 그럴 리가 없어. ...그러면 안 된다고. 누가 남한테 이렇게 대가 없이 호의를 베풀어, 이유없이 친절할 이가 없잖아. 내가 칼을 쥐고 있어도 똑같이 대해주면 그런 사람이 있다고 믿을 지도 모르지. 그리고 그런 일은 안 일어날 거고. 대부분이 도망가거나, 신고하거나, 둘 다 하거나...의 셋 중 하나겠지. 찌를 생각은 없는데.

"10번 채우려는 거면 6번 남았어요."

왜 계속 그러는 거야. 뭐가 이해가 안 되길래 계속 반문하는 거냐고. 그쪽이 내가 하는게 이해가 안 된다한들, 내가 그쪽을 못 이해하는 것만 하겠어? 웃는 것도 이해가 안 가, 친절하게 대해주는 것도 이해가 안 가, 나한테 계속 대꾸해주는 것도 솔직히 모르겠어. 나한테 칼 찔리기 좋은 위치에 있던 놈도 내 말 무시했다고. 한 번 찔러주거나... 이미 찔린 곳을 밟거나 하면 대답해주기는 하던데, 난 지금 찌른 적이 없단 말야. 내가 재미없다고 해서 뒷끝은 부릴 거지만, 친절은 하겠다는 거야? 과잉 친절한 알바생 답게?

그 정도가 아니라는 대답은 무시했다. 말끝을 흐리는 목소리가 확신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확신에 가득차서 중대한 발표를 하듯이 말했더라도 믿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 믿지 않을 생각이니까. 다만 다시 이어진 말에 조금 수긍했고, 조금 납득했으며, 조금 이해했다. 당신에게 작은 동질감을 느꼈다. 도울 수 있어서 도우며 살고 있었다. 당신과는 영 다른 방법이었지만, 당신과 같은 방법을 쓰기에는 미숙했다. 서투르게 도와줄 바에야 안 하는 것이 나았다. 한 사람의 삶을 망쳐놓은 건 죽음을 준 것이나 다름 없다. 그래서 그 자에게 진짜 죽음을 대신 선물해주는 것이다. 법이 죽음을 선물할 수도 있겠지만, 법은 너무 착하고 낙관적이며 여유롭기 그지없어서 못 기다려주겠다는 성질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힉?"

당신이 놀란 소리를 따라한다. 놀리는게 아니었다. 이유가 있다. 자신의 손에서 그것들이 떨어졌을 때 당신이 다칠 수도 있다는 것까지 고려하지 못 했기 때문이다. 그럴 여유가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러나 고려했더라도 다를 것은 없었을 것이다. 사람이 그 정도로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어쨌든, 당신이 놀란 이유를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따라한 것이다. '왜 놀랐어요?' 하고 물어보는 것과 같았다.

"...우선 하나는 해결됐어요."

이제 당신이 그렇게 안 웃고 있거든. 손을 잡고 있는 건 별로 좋지 못 했지만. 내 손이 차가워서 당신 손이 따뜻한거야, 아니면 당신 손이 원래 따뜻한거야? 내가 손이 차가운지 몰라. 다른 사람이랑 비교해본 적이 없거든. 시체랑 비교했을 때는 따뜻하던데, 그건 당연하잖아. 이것도 기분 이상해. 당신 말야, 이상한 기분이 드는 웃음을 보여줬지. 그리고 이제는 이상한 기분이 드는 손으로 날 잡고 있는데, 이러면 당신이 이상한 거 아냐? 남은 문제는 뭔지는 이상한 당신이 눈치껏 알아채 봐. 내가 열심히 손만 쳐다봐줄테니까.

621 이름 없음 (sQ1K0OVAms)

2021-06-30 (水) 23:15:16

>>620

"그래도 손님이 기분 나쁘셨다면 당연히 사과 드려야죠."

괜히 꼬투리 잡혀서 피곤해진 적이 한 두 번도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남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면 사과하는 게 맞기도 하고. 당연한 거 아니야? 아니, 당신은 도대체 왜 다 과잉 친절로 보는 거야? 이 정도는 기본이잖아. 사람이라면.

"...예?"

이제 5번 남았다. 말버릇인지, 아니면 당신에게만 나오는 반문인지, 일단은 벌써 반이나 채워버렸다. 아니, 그렇지만 진짜로 당신은 다 이해가 안 된단 말이야. 말하는 것이며, 행동하는 것이며, 휙휙 바뀌는 감정기복까지. 그 무엇도 제대로 따라가기 힘들단 말이야. 나한테 관심도 없으면서 취향을 묻질 않나, 또 금방 가라앉아서는 눈도 피하질 않나. 도대체 뭐냐고, 당신. 전혀 모르겠어.

"...따라하지 말아주세요, 손님. 놀라서 그런 거니까요."

당신, 또 나 놀리려고 그러는 거지? 이렇게 놀라는 게 아니었는데. 그것도 당신 앞에서. 아니, 근데 억울하다고. 다칠 뻔 했잖아, 나. 방금. 그런데 뭐, 사과나 그런 건 하나도 없는 거야? 그냥 놀란 소리를 따라하고 끝? 당신이 이상한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최소한 사람이라면 사과를 해야지, 사과를! 설마 사과도 내가 직접 받아내야 해? 엎드려 절 받기로? 하, 진짜...

당신이 반문하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억울함과 한탄스러움이 올라와 괜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내가 이런 취급까지 받으며 일 해야 하나, 진짜... 마음 같아서는 당장 때려치는 건데... 그러나 울상을 지어도 손님 앞에서 울 수는 없었다. 서비스업 정신으로 어떻게든 울상 대신 가짜 웃음을 만들어내며 당신을 보았다. 두고 봐. 내가 당신만 가면 진짜 울어버릴거야, 진짜...

"아, 죄송해요, 손님. 놀라서 그만... 지금 놓아드리겠습니다."

당신의 시선 끝을 따라가서는 얼른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이것도 문제였다는 거지? 근데 어쩔 수 없었다고. 당신이 먼저 내 얼굴을 가려버렸었잖아. 정당방위야, 정당방위. 싫으면 당신이 먼저 손 대지 말았어야지. ...아니, 근데 당신 손 왜 이렇게 차가워? 내 손이 원래 따뜻하다지만 그걸 감안해도 당신 손 너무 차갑던데. 혈액 순환이 안 되는 건가? 뭐, 그래도 내 손의 온기를 가져갔으니 잠시 동안은 따뜻해졌겠지. 사람 하나 도운 셈 치자, 에휴.

"아무튼 문제 하나가 해결 되었다니 다행이네요. 그럼 이 물건들만 계산해드리면 될까요?"

바구니에 다시 사탕 봉지들과 아이스크림을 담아주며 화제를 돌려버렸다. 당신이 말하는 문제를, 당신이 직접 말하기 전에는 일부러 신경 쓰지 않으려는 것처럼. ...그런데 이 아이스크림, 체리 맛이네. 게다가 다 부서졌어.

"...손님. 아이스크림이 부서져 버렸는데 다른 것으로 바꿔드릴까요?"

하... 진짜. 나도 일을 찾네, 그냥. 신경 쓰지 말자고 다짐한 것이 무색하게 바로 또 이러네. 어휴, 바보, 등신. 아주 사서 고생이야. 그러나 당신에게는 상냥하고 친절한 태도를 유지하면서 다시 웃어주었다. 이 부서진 아이스크림은 내가 사먹어야지, 뭐. 마침 좋아하는 체리 맛이기도 하고.

622 이름 없음 (f8pOyI51t2)

2021-07-01 (거의 끝나감) 00:10:07

>>621

"기분 나쁘다고 한 적 없어요."

꼬투리를 잡았다. 기분 나쁘다고 말한 적은 없었고, 지금 기분이 나쁜 건지도 모르기 때문에 오히려 반대로 물어보고 싶었다. '저 기분 나빠보여요?' 당신이 그렇다고 대답한다면, 그럼 난 기분이 나쁜가보다 수긍해버리는게 편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때부터 지금의 기분도 나쁜 기분으로 부르는 것이다.

"진짜 10번 채우려고 하는 거에요? "

맞는 것 같아. 나도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고는 못 하는데, 당신도 이상한 사람이네. 이상해, 당신. 그쪽 진짜 이상해. 끼리끼리 논다는게 이런 말인가? 이상한 사람끼리 모이게 된 거야, 지금? 자석은 같은 극끼리 만나면 밀어내던데, 사람은 아닌가봐. 달라붙네. 아까는 내가 그쪽한테, 지금은 그쪽이 나한테. 달라붙은 적 없다고 하지마. 쫓아다니면서 챙겨주는 거, 그쪽이거든. 서비스 정신이 뛰어나서든 뭐든, 이유는 상관없잖아.

"따라한 거 아니고 물어본 건데."

'힉?!' 하고 놀랐잖아. 그래서 '힉?' 하고 물어본 건데. 그쪽이 왜 놀랐는데? 먼저 내 손 멋대로 만진 건 당신이잖아. 괜히 친절하게 바구니 손잡이를 쥐어주겠답시고. 내가 해달라고 한 적도 없고, 난 사탕이 깨져도 살 거라고 했는데. 당신이 한 짓에 당신이 왜 놀라? 스친 내 손이 소름끼쳤나? 그렇게 못나거나 징그러운 손은 아니잖아.

당신이 손을 놓아주면, 두 손을 몇 번 쥐었다 펴 보인다. 손이 제대로 움직이는지 확인하는 모양새였다. 손에 온기가 어려있는 것이 낯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손을 쥘 때 당신의 온기가 느껴지는 것이, 그 온기를 움켜쥐는 느낌이라 표정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꽤나 당황스러웠다. 더 쥐었다 폈다가는 손에서부터 심장까지 그 온기가 타고 올라올 것 같은 기분이 들었을 때 손은 멈췄다.

"네. 더 살 건 없는 거로 하려고요."

더 살 게 뭐긴 뭐야, 당신한테 장난칠 목록들이었지. 담배랑 술, 사탕이랑 볼펜 같은 거. ...근데 왜 그걸 당신이 주워 담고 있는거야?

당신이 전부 다 주워담기 전에 냉큼 자리에 쭈그려 앉았다. 하나라도 당신이 덜 주워담게, 당신의 친절이 조금이라도 덜 묻게 손을 움직인다. 다시 바구니에 청포도 맛 사탕들이 다 담아지면 바구니를 두 손으로 꼭, 손잡이도 두 개 다 꼭 잡고서 일어난다.

"상관없어요. 그거로 주세요."

내 놔, 내 거야. 또 바구니를 제대로 쥐게 해준답시고 손이 닿을까 겁나서, 내가 손을 건네지는 못 하겠다. 여기, 바구니에 넣어줘. 바구니 내밀면 거기에 넣어달란 줄 알겠지. 아이스크림이 어디 박살난다고 맛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못 먹게 되는 것도 아니고. 사람이 목 부러진다고 사람이 아닌 건 아니잖아? 그냥 목 부러진 사람인 거지.

623 이름 없음 (xm8uXHDZ92)

2021-07-01 (거의 끝나감) 01:03:42

>>622

"그래요? 다행이네요."

안심한 것처럼 웃었지만 사실 알 수 없었다. 당신, 표정 읽기 너무 어렵단 말이야.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그래도 일단 당신이 그렇다니 그런가보다 해야지, 뭐. 당신의 감정을 당신이 알지, 내가 어떻게 알겠어. 당신이 나한테 알려주는 것도 아니잖아.

"그럴지도요? 아, 근데 자꾸 그냥 튀어나오는 걸요."

전부 당신 때문이라고요. 외치고 싶었지만 꿀꺽 삼켰다. 괜히 말했다가 당신이 또 어디로 튈지 모르잖아. 말이든, 행동이든, 당신은 내 예상을 계속 벗어난다고. ...아, 당신이랑 계속 말하다보니 진짜 나까지 이상해지는 것 같아. 진짜 이상해. 지금 이 상황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전부 다 이상해.

"......놀라서 그랬어요. 바구니랑, 사탕 봉지랑, 아이스크림이랑, 전부 다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으니까. 그거 맞으면 되게 아프단 말이에요. 그래서 다칠까봐 놀라서 그런 거에요."

그냥 둘러대었다가는 당신이 계속 물고 늘어질 것 같아, 처음으로 서비스업 미소를 지우고서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솔직하게 '힉?!' 하고 놀란 이유를 들려주었다. 아니, 그래도 이 정도는 사람이라면 기본적으로 알지 않아? 떨어지는 물건에 맞으면 아프다는 거. 다칠 수도 있다는 거. 설마 당신, 알고 보니 사람이 아닌 건 아니지, 응?

"네, 알겠습니다."

더 살 게 없다면 나야 다행이지. 아, 그나저나 왜 손을 쥐었다 폈다 하는 거야. 괜히 신경 쓰이게. 내가 잡은 게 그렇게 불쾌했어? 그럼 놓아달라고 하지 그랬어. 아님 먼저 뿌리치든가. 아니, 당신이 내 얼굴을 가리지만 않았어도...! ...하, 아니다. 됐어. 나만 피곤해지지, 또.

그런데 웬일로 당신도 주워 담는거야? 손 하나 까딱 안 할 것 같던 사람이 또 의외네. 그러나 당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친절이 여기저기 묻어버린 바구니가 그대로 당신의 손에 들려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오, 그래도 이번엔 제대로 잡았네. 그럼 나도 일이 줄어들겠지? 다칠 걱정도 없을테고.

"그래도... 아, 아니. 알겠습니다, 손님. 여기 있습니다."

그래도 신경이 쓰여서 그냥 바꿔주겠다고 말하려고 했지만 괜한 오지랖인가 싶어서 고개를 저었다. 또 도와주고도 당신이 불편해 하면 이쪽도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단 말이야. 그거 정도는 알아두라고. 당신이 내민 바구니에 아이스크림을 조심히 넣어주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잠깐 허리를 주먹으로 두드리며 폈다. 아이고, 죽겠네...

"그럼 결제 도와드리겠습니다. 카운터로 갈까요?"

그래도 이제 끝이다. 이상했던 기분도, 이 취급에 대한 서러움도 이제 끝이라고, 끝! 다시 마음이 홀가분해지자 괜히 웃음이 실실 새어 나왔다. 당신을 돌아 봤을 때에는 당신이 그렇게도 보고 싶지 않아 했던, 그 화사하고 예쁜 웃음이 제대로 당신에게로 향했다.

624 이름 없음 (i87I6yfBas)

2021-07-01 (거의 끝나감) 01:23:04

>>618
(어쭈, 이젠 대답도 안하겠다 이거지? 악마의 위상이 점점 바닥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렇게 두려움을 갖고 대하던 내게, 매력이 있냐는 질문에 대답조차 할 수 없을 정도라면 얼마나 당신의 취향이 아닌거지? 식은땀이 줄줄 흐르기 시작한다. 정말 그러하다면 매력적인 어필은 그만두고 공포로 다스리는 게 맞겠지만, 자존심이 그것을 허락치 못한다. 원래 오랜 세월을 살아온 불멸자란 사소한 자극에도 허덕이고 마니까, 이상한 곳에 불이 지펴진 것이다. 다만,) 손 대지 말고, 위협적이지 않게… (턱을 쓰다듬으며 혼자 중얼거리고, 흘끗 당신을 흘겨본다. 사소한 조건들이 너무 많아. 지금까진 얼굴 하나면 만사 OK였는데 이상하네. 뭐, 한 50년 쯤 같이 지내면 그래도 정이 생기진 않겠어? 눈이 마주치자 찡긋, 윙크를 해보인다. 빈정 상했던 것은 정말로 한순간이었던 모양이다. 평소대로의, 당신의 질문에 그 속뜻을 알기 힘든 미소를 지어보이며 눈꼬리를 휘어보인다.) 물론 알려줄 수 있지. ‘어네스티.’ (진심이야. 그렇게 말하며 자리를 뜨려던 찰나, 뒷편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절그럭거린다. 돌아보는 표정이 어울리지 않게 꽤 어벙해보인다. 그리고 푸핫, 웃음을 터뜨린다. 얼굴을 가린 채 한동안 시원스런 웃음을 이어가던 악마는 여전히 웃음기가 남아있는 목소리로 입을 열며 손가락 사이로 당신을 내려다본다.) 센티아, 티아, 나의 사랑스런 주인이여. 지금만큼은, 주인이 나보다 더 악마 같다네. (의미를 알 수 없는 평가. 푸스스 웃음소리를 흘리며 당신이 뻗었던 손을 휘어잡는다. 거칠지 않고, 부드럽게 손깍지를 끼고서 손바닥을 마주 댄다. 거기서 전해져오는 온기로 이야기를 나누듯, 맞댄 손바닥에서 고동이 느껴진다. 손 대지 않기로 했지만, 당신의 그 손짓이 무얼 의미하는지 알기에 나름의 보답을 해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얼마 안가 손을 떼어내고서 우아한 예를 갖춘, 인사를 남긴다.) 주인의 분부대로. (악마는 날개의 어둠빛에 흽싸여 그 모습을 사라지게 했다.)

#그런 의미도 분명 담겨있을거라고 생각해!! 근데 사실,,,,,그런 생각들 끝에 왜 내가 주인한테 감긴 것 같지 ㅇㅁㅇll?? 같은 비스무리한 결론이 내려지고서 그만둔 것도 있어(ㅋㅋㅋㅋ)
#악마인데 호프먼 브레이브 어네스티 ㅠㅠㅠㅠㅠㅠ아 티아 참치 센스 너무 신박하고 웃기다 헉 픽크루 미쳤다 존예,,,,푸른색 머리라고 생각못했는데 너무 잘어울려 미쳤나봐ㅜㅜㅜ 아악 장발도 가슴이 철렁거린다 단발취향이 아니라 티아취향이었나봐 ㅠㅁㅠ 머리카락 가지고 놀기 좋으니까 장발! 단발이야 나중에라도 기회가 있을 지도 모르니,,()
#일단 여기까지 이어서 끊어야할 것 같은데,,,앞으로 몰아칠 일정들이 두려워서 섣불리 같이 이어가고 싶다고 말을 못하겠네 ;ㅡ; 하루에 레스 하나 잇기 힘들어지면 티아 참치에게 너무 미안할 거 같아서 그쪽에 관련된 의사를 물어보고싶어 ㅠ_ㅠ
#픽크루 주소를 까먹어서 마지막 표정이랑 주소 올려둬!! Picrewの「흑백 좋아」でつくったよ! https://picrew.me/share?cd=ffyxgtQBj4 #Picrew #흑백_좋아

625 이름 없음 (cm4dI37pVQ)

2021-07-01 (거의 끝나감) 09:47:59

>>616
"드래곤 기준이면 소나기가 그칠 때까지는 한순간일 거 아냐? 인간은 그동안 저런 장대비를 그칠 때까지 맞으면 감기 걸린다고, 감기 걸리면 아픈 것도 아픈 거고 갈 길이 더 지체된단 말이야. 뭐, 내 사정이지만."

여성은 망토를 벗어 물기를 쭉 짜며 여상한 투로 대꾸했다. 감기걸리는 게 알 수 없는 거대 생물에게 먹히는 것보다야 나을 지도 모르지만 가는 길이 지체되는지 위험을 감수하는 게 나았다. 몸에서 열이 나게 하기 위해 제자리 달리기를 하고 있자니, 뜬금 신상을 물어오는 드래곤의 말에 여성은 의아한 얼굴로 드래곤을 돌아본다.

"나? 마녀. 일단은 그렇게 불려. 실제로 마법을 쓸 줄 알기도 하고. 나야말로 좀 궁금하네. 무슨 말을 들어왔길래 비 오니까 좀 있다 가겠다는 말이 신기한거야?"

용이 경계를 푼 듯 하여도 그는 경계를 풀지 않았다. 그도 그럴게, 비가 그치기 전에 용이 허기지기라도 하면 꽁무늬가 빠지게 도망치거나 최악의 경우 싸워야 했으니까. 다만 약점을 보여 좋을 것은 없었기에, 그는 태연한 투로 대답했다.

"괜찮아, 잡아먹으려 하지 않아주는 거만 해도 고마운데, 뭐. 고마운 김에 부탁 좀 하자면 배고파질 것 같으면 미리 알려주라, 아직 죽고 싶지는 않거든."

여성은 손가락으로 허공에 진을 그린 뒤 손끝에 정신을 집중했다. 이내 그의 옷가지와 머리카락에 맺힌 수분이 그의 손끝에 모이며 머리만한 물방울이 되었다. 그것을 가볍게 둥지 밖으로 던져버리고, 그는 비교적 보송보송해진 모습으로 드래곤을 돌아봤다.

"그나저나 드래곤 쯤 되면 무서워서라도 강도질 못할 것 같은데, 강도가 자주 드나봐?"

626 이름 없음 (MmkTWwFsGI)

2021-07-01 (거의 끝나감) 13:06:05

>>623

"100번 안 채우는게 다행이네요."

당신 생각날게 너무 많아졌어. 이곳이 아닌 다른 편의점을 가도 오늘이 생각날테고, 체리 맛 무언가를 보면 그쪽이 생각날 것 같단 말야. 청포도 맛 사탕 살 때마다, 담배 피는 사람을 볼 때마다도. 당신이 100번을 채웠으면 다른 사람이 '예?' 라고 말할 때도 그쪽이 생각났을 거야. 아닌가, 이미 생각나려나. 아무튼 당신 생각이 나는 건 영 반갑지 않단 말이지. 단순히 그쪽을 생각하는게 아니라, 그 웃음이랑 손이 생각날 게 뻔하니까! 아무래도 안 되겠어. 경찰들은 아직 모르지만 7회였지, 나? 조만간 8회로 늘려야겠다. 얼마전에 한 번 해서 좀 쉬고 싶었는데. 살리는 것만 힘든 줄 알아? 죽이는 것도 만만치않게 힘들다고. 뒷처리는 얼마나 귀찮고 번거롭게 까다로운데. 게다가 어멍 무거워. 술먹고 꽐라되서 늘어진 사람 업어봤어? 그럼 좀 이해가 될텐데. 여러가지로 골 때린단 말이야, 진짜로. 그럼 안 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아니, 그쪽 때문에 어지러워 죽겠으니까 익숙한 것 좀 봐야겠어. 처리해야할 쓰레기는 널리고 널렸으니까 금방 1번 더 늘어날거야.

"........."

한숨 쉬는 소리까지 똑바로 들었지만 사과가 금방 나오지는 않았다. 바구니랑, 사탕 봉지랑, 아이스크림은 누군가를 다치게 하는 도구로 쓰이기에는 너무 귀여운 것이었다. 고층 건물 위에서 가속도가 있는 대로 붙은 채로 사람 머리 위로 떨어트리는게 아닌 이상 죽이기도 힘들 것 같고, 피를 보는 것도 힘들 것 같았다. 맞으면 되게 아프다니, 칼이 더 그렇다. 바구니는 둔기로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물건을 가득 담고서 머리를 노리는 수고로움이 있어야할 성 싶었다. 무엇보다 둔기는 취향이 아니었다. 사람은 생각보다 쉽게 죽지만 그만큼이나 생각보다 쉽게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사과는 늦어질 대로 늦어졌다. 솔직히 칼 맞아본 적 없느냐고 묻고 싶은게 더 컸다. 하지만 바구니랑, 사탕 봉지랑, 아이스크림에 맞는게 무서운 사람도 있을 수 있다고 겨우 납득해서 사과할 수 있었다. 늦은 사과는 서투르기까지 했다.

"미안해요."

허리를 숙여서 꾸벅 사과 인사를 건넨다. 바구니를 들고 있지만 않았더라면 두 손을 공수 자세로 모았을 것이다. 사과해본 적이라고는 없는 듯한 어색함에, 사과를 하면서도 여전히 사과를 해야하는 이유에 대해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한 것까지 고스란히 보인다.

손 씻고 싶어! 바구니 놓고 싶어, 사탕도 다 닦고 싶어! 전부 다 당신이 묻었잖아! 결벽증이 아니라, 모르겠어. 왠지 사탕을 만지면 따뜻할 거 같다고. 당신이 친절한게 문제야. 웃은게 문제야. 문제 덩어리야, 당신.

바닥으로 떨어졌던 체리 맛 아이스크림이 바구니에 담기면 편의점 밖으로 나갈 생각 뿐이었다. 일단 집으로 돌아가서 씻고 싶었다. 당신이 허리를 주먹으로 두드리며 피는 모습을 보지 못했더라면 먼저 계산대로 향해고도 남았을 거다. 허리를 주먹으로 두드리며 피는 행위는 허리가 불편해서 그러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당신은 아까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들을 맞으면 다칠까봐 놀랐다고 했고, 피하기도 했다. 정말 그것 때문에 허리를 다친건가 궁금해져서, 당신이 그러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손을 뻗었다. 정확히 당신이 두드렸던 부분을 꾹 누르려고 했다. 다쳐서 아픈 곳이라면 소리 지를테니까.

"저기."

내가 면전에 대고서 인상 구길 생각은 없었는데, 또 불쑥 그렇게 웃고 있으면 내가 그럴 수 밖에 없잖아. 그래도 바로 표정 폈어. 또 괜히 그쪽한테 사과받으면 머리를 깨버릴지도 모르겠거든. 안 그래도 머리가 이상해서 시원하게 환기라도 시켜주고 싶어서 답답하다고. 바람구멍 내고 싶어서 미치겠네!

"그쪽 지금 나 놀리는 거죠."

627 이름 없음 (irm/5DZ6fY)

2021-07-01 (거의 끝나감) 15:38:16

>>626

"저도 다행이네요."

당신이 아무것도 안 하면 100번까지 채울 일도 없다고요. 아니, 이미 이만큼이나 채워버렸으니 어쨌든 기억에는 확실히 박혀버릴려나. 근데 어쩔 수 없단 말이야. 내가 원래 이렇게 자주 반문하는 사람이 아닌데, 당신이 이해 못 할 행적만 자꾸 보여주잖아. 단골 아니면 편의점에 오는 손님들은 잘 기억나지도 않는데, 당신만큼은 언젠가 여기 알바를 그만두고 나서라도 계속 기억날 것 같다고. 지금 딱 한 번, 당신이 여기 왔을 뿐인데.

...뭐야. 당신이 물어본 거래서 솔직하게 답변해줬더니만, 아무런 반응도 없는 거야? 하, 진짜... 괜히 나만 쪼잔한 사람이 된 것 같아서 쪽팔리잖아. 당신, 고작 바구니랑, 사탕 봉지랑, 아이스크림 가지고 그렇게 엄살을 떠냐고 생각하고 있는 거지, 지금? 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당신이 진상 손놈한테 아이스크림으로 맞아봤어? 바구니에 찍힐 뻔 한 적 있었냐고. 내가 팔로 막지 않았다면 그대로 머리 맞고 병원에서 눈 떴을지도 모른다고. 진짜 더럽게 아팠단 말이야. 솔직히 엄청 무서웠다고. ...하씨, 괜히 또 눈물 나올 것 같잖아. 당신 때문에.

"...예?"

그러나 당신이 세고 있던 것이 한 번 더 추가되는 것으로, 눈물이 터지는 사태는 틀어막을 수 있었다. 당황한 눈빛이 허리를 숙여서 공손히 사과하는 당신에게로 내려 앉았다. 단 한 번도 사과해본 적 없는 것처럼 어색하기만 하고, 사과할 이유도 이해 못 한 것이 확연히 보이는 몸짓이었다. ...아니, 당신 진짜 왜 이래? 각자기 사과를 한다고? 사과할 이유도 모르는 것 같은데? 이번에도 예상을 벗어난 당신을 보면서, 당황하며 어물어물 말을 찾던 입이 천천히 목소리를 자아냈다.

"괜찮습니다. 안 다쳤잖아요."

그래도 당신, 의외로 내 생각만큼 엄청 이상한 사람은 아닌가 보네. 솔직히 사과 받을 거라고는 기대도 안 했는데. 지금까지 사과 받은 적 없었단 말이야. 그냥 공감 능력이 조금 떨어져서 그렇게 이상한 행보를 보였던 건가? 내가 너무 나쁘게만 봤나봐. 조금 미안해지네. 그래도 사과를 받으니 만족스러워 실실 웃음이 새어나왔다. 당신이 그렇게도 골치 아파하는 예쁜 웃음이.

"힉?!"

하지만 갑자기 허리를 꾹 눌러오는 당신 때문에, 다쳐서가 아니라 화들짝 놀라서 비명을 질러 버렸다. 그리고 낚아채듯 재빠르게 양 손으로 당신의 손을 잡아 허리에서 손을 떼어내고, 당신의 검은 눈동자를 응시했다.

"뭐예요, 갑자기...! 놀랐잖아요!"

당신은 내가 손을 잡는 것을 싫어했지만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이유는 없었다. 아니, 그러길래 갑자기 남의 허리는 왜 만진대?! 싫어할 거면 싫어하든가! 당신도 내 허리에 손 댔으니까 나도 지금은 당신 손 잡아버릴 거야. 정당방위라고! 손님을 대하는 알바생의 기계적인 태도를 잠시 벗어 던졌다. 차가운 당신의 손에 다시 따뜻한 온기가 찾아들었다. 당신이 말을 걸어오는 순간까지도, 계속.

"...예?"

아니, 갑자기 그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야? 당신, 방금 인상 구겼지? 응? 나 봤어, 봤다고. 당신 바로 표정 폈지만 인상 구겼잖아. 아니, 그것보다 이게 지금 무슨 소리야. 내가 놀린다고? 내가? 당신을? 아니, 아무리 봐도 놀리는 것은 그쪽이잖아. 내가 당신 놀려서 무슨 이득이 있다고 놀리겠어?

"아뇨, 그건 아닌데... 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그래, 어디 이유라도 한 번 들어보자. 도대체 왜 내가 당신을 놀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지. ...설마 당신, 내가 당신을 놀리고 있다고 생각해서 갑자기 그렇게 태도가 변한 거야? 기분도 안 좋아지고?

628 이름 없음 (MmkTWwFsGI)

2021-07-01 (거의 끝나감) 17:00:35

>>627

"...죄송합니다?"

사과할 때 하는 말, '미안해요.' 아니야? 왜 또 그러는데? 왜 당황해? 내가 사과랑 적성에 안 맞는 거, 나도 잘 알거든. 애초에 내가 사과해야 할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단 말이야. 나는 나한테, 아니면 다른 사람한테 사과해야 할 놈들만 만나고 다녔다고. 그리고 죽음으로 용서해줬지.

영문도 모르는 채 하는 사과였어도, '...예?' 라는 반응이 사과의 대한 대답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았다. 사과하는 것에 있어서는 당신 쪽이 훨씬 경험이 많을테니, 잘못된 사과를 고쳐야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왜 하는지도 모르고서 흉내낼 뿐인 사과를 해놓고, 거기서 잘못된 부분을 찾는 것은 더 어려운 것이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사과할 때 하는 다른 말을 한 번 더 읊조리는 것 뿐이었다. 의문투성이라는 듯이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이면서.

"..."

또 웃는다, 또. 벌써 몇번째야. 3번째 아니야? 뭐가 그렇게 웃어대? 진짜 더 보기 싫어.

당신의 웃음이 새어나올 때 눈을 꼭 감으면서 고개를 돌려버렸다. 가짜 웃음이 아닌 건 이번이 4번째, 지금처럼 웃는 건 이번이 3번째. 육감이라고 하던가, 실실 새어나오는 웃음이 불길했다. 이대로 가만 당신을 쳐다보고 있다가는 또 그 웃음을 마주하겠다 싶은 예감이 들었다. 그렇다면 얼굴을 가리는 건 바구니 때문에 못 하니까 당신을 보지 않는 수 밖에는 없었다. 눈을 감으면 찾아오는 검은 풍경이 이렇게 아늑할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오래 볼 수는 없었지만. 허리를 누르고 있던 손이 언제 당신의 두 손에 붙잡혀 있었다. 또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파악하려면 두 눈을 뜨고서 당신을 바라볼 수 밖에 없다.

"아픈건가 싶어서."

당신이 그렇게 놀랄 줄도 몰랐고 손을 잡힐 줄도 몰랐다. 아파서 비명 지르거나, 아니거나, 이 2가지 경우의 수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덩달아 놀란 기색은 없었다. 놀란 당신이 무어라 말을 할 때까지 당신을 바라보고 있었을 뿐이다. 당신에게 대답을 해주고 나면, 시선은 아래로 내려간다. 당신의 두 손이 붙잡고 있는 자신의 손을 바라본다.

나 수갑 차본 적 한 번도 없는데, 수갑보다 당신 손이 더 답답할 거 같아. 수갑은 그래도 엄지 뼈 부러뜨리면 빠지는데, 당신 손을 어떻게 해야 탈출할 수 있을 지 모르겠어. 아니, 알아. 당신 손을 뿌리칠 수 있는 방법 따위야 많이 알고 있지. 당장 당신의 정강이라도 걷어차거나, 다른 손에 들려있는 바구니를 당신한테 던지거나… 정 안 되면 당신을 물어버리면 되겠다. 나 송곳니 뾰족해, 안 놓고 못 배긴다? 버티면 피 볼 거야. 근데 이렇게 뿌리칠 방법을 많이 알면서 왜 안 하는지는 나도 모르겠네! 당신이 '사람'이라서? 아니, 아냐. 그것 뿐만이 아니야. 그래, 당신 손…. 따뜻한 손이 이제는 좀 신기한 것 같아. 여전히 이상하고, 조금 역겨운 것 같기도 한데. 좋다고도 싫다고도 못하겠어. 그래서 당신 손을 잡지도 못 하고, 뿌리치지도 못 한다고. ...어, 이제 3번 남았다.

"계속 웃잖아요."

내가 그쪽이 웃은 걸 본 순간부터 삐그덕대고 있는데, 그 후로 계속 웃는 거 보면 고의성이 있는지 의심할 법 하잖아?

표정을 찌푸린 적이 없다는 듯, 얼굴에서 표정은 지워져 있다. 타고난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인 이목구비를 아무리 뜯어본다 해도 표정을 읽기는 어려울 성 싶다. 애초에 뜯어볼 기회도 없이, 당신이 물어본 직후로는 다시 당신에게서 시선을 거두어버렸으니 그 난이도는 더 올라갔다. 언제 또 당신이 그렇게 화사하게 웃어버릴까, 미리 움츠러 들어있는 꼴이다.

629 이름 없음 (wCPid4HI.Q)

2021-07-01 (거의 끝나감) 18:30:37

>>628

아니, 당신 진짜 왜 이래? 사과 한 번도 안 해본 것 같은 얼굴로, 어색한 자세로 허리를 숙인 것도 놀라워 죽겠는데, 한 번 더 사과하는 거야? 그것도 좀 더 정중한 표현으로? 그렇게 잡아먹을 듯이 수상하고 섬찟하게 놀려댈 때는 언제고, 갑자기 왜 이렇게 변한 거야? 진짜 이상해, 당신. ...아, 근데 나도 엄청 이상해졌나봐. 그런 당신을 보고 있자니 계속 웃음이 나오네. 솔직히 나쁘지 않은 기분이야. 사과하는 이유는 이해하지 못 해도, 일단 사과를 하려는 당신의 모습이 꽤 보기 좋았거든. 이제서야 당신이 사람처럼 보이는 것 같아. 그거 알아? 나 솔직히 처음에는 당신 엄청 무서웠는데, 지금은 무섭지 않아. 당신, 어딘가 이상해도 나쁘지는 않은 사람 같거든.

"...하?"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렸던 당신이, 손을 붙잡자 다시 제대로 얼굴을 보여주었다. 당신이 갑자기 허리를 손으로 눌렀을 때에는 다른 진상 손놈들처럼 희롱이라도 하려는 줄 알고 화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당신이 그렇게 말하면, 내가 화낼 수가 없잖아. ...설마 나를 걱정해준 거야? 내가 허리 한 번 두드렸다고? 당신을 마주 보는 어리둥절한 얼굴이 아래로 내려가는 당신의 시선을 따라서 아래로 내려갔다. 그 시선 끝에는 서로 닿아있는 손이 있었다. 더 정확하게는, 내가 붙잡고 있는 당신의 손이.

"아... 미안해요. 손 잡는 거 별로 안 좋아하셨죠. 바로 놓아드릴게요. 놀라서 그만..."

당신도 당해봐라, 하고 끝까지 붙잡고 있을 생각이었는데. 하지만 당신이 그렇게 말하니까 그럴 수가 없잖아. 걱정해준 사람한테 심술 부릴 정도로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나.

"걱정해주셔서 감사해요. 아픈 건 아니니까 괜찮아요."

당신은 걱정해준 적 없다, 고 할 지도 모르지만, 듣기에는 걱정 같았으니 고맙다고 할 거야. 잡고 있던 당신의 손을 조심히 놓아주고, 당신에게 고마움을 담아 다시 환하게 웃었다. 당신에게는 달갑지 않았겠지만.

"...예?"

아, 당신이 수를 세고 있는 것을 알았으니 반문 안 하려고 했는데. 하지만 어쩔 수가 없잖아. 아니, 당신 그게 무슨 이유인데? 내가 계속 웃어서, 내가 당신을 놀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라고? 나는 처음부터 계속 당신에게 웃어주었는데? 아, 물론 처음에는 서비스업 미소였다지만, 아무튼. 그리고 그쪽도 처음에는 나한테 웃어주었잖아. 그런데 그렇게 생각한다고? 왜 당신은 웃는 거 되고, 나는 안 되는데! 억울하네, 진짜.

"...저기."

당신의 표정을 살펴보려 했지만 장렬하게 실패했다.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손가락으로 괜히 볼만 긁적이다가, 조심히 당신에게 말을 걸었다.

"제가 웃는 게 그렇게 싫나요?"

일단 그것부터 확실히 해보자. 분명 나는 처음부터 웃고 있었고, 당신도 수상쩍고 이상했지만 일단은 멀쩡했다. 그런데 갑자기 태도가 돌변하더니 이렇게 나온다고? 내가 웃는 게 그렇게 꼴보기 싫었어? 그럼 웃지 말라고 처음부터 말해주지 그랬어. 나도 사람이라고. ...괜히 상처 받잖아, 이렇게. 만약 당신이 다시 이쪽으로 시선을 돌렸다면, 서비스 정신으로 지었던 웃음마저도 사라지고 약간 시무룩해져서 힘이 없어진 얼굴이 보였겠지.

630 이름 없음 (MmkTWwFsGI)

2021-07-01 (거의 끝나감) 19:30:46

>>629

당신의 사과에 대답은 없었다. 손이 놓아지면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똑같이 손을 쥐었다 폈다 하고 있었다. 두번이나 당신에게 붙잡혀서인지, 아니면 이번에 좀 더 오래 붙잡혀 있었던건지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좀 더 따뜻하다고 생각되었다. 바구니를 잡고 있는 손은 익숙한 온도인데, 당신이 놓아준 쪽은 역시 낯설다. 이상한 온기다. 쥐었다 피고 있는 손을 내려다보면서 생각했다. 심장이 뛰는 시체 같다. 차가운데 따뜻한게.

"...걱정 아닌데."

타인의 친절, 타인의 웃음, 타인의 온기. 당신한테서 이상하다고 느낀 것들이었고, 하나가 더 늘어났다. 타인의 감사. 당신이 정말 아플까 걱정되어서 그랬던 것도 아닌데, 정말 그런 귀여운 것들로도 아플 수도 있는건지 궁금해서 찔러본 것 뿐인데. 그러니 감사 인사와 함께 웃음까지 같이 받아버리면 부정할 수 밖에 없다. 편의점에 막 들어왔던 그 때 당신한테서 감사 인사를 받았다면 뻔뻔하게 굴었을 것이다. 고마우면 사탕 한 봉지 정도는 사달라는 소리를 했을 것이다.

"...예? 라고 한 건 8번, 안 꾸민 웃음은 5번, 방금같은 건 4번, 손 닿은 건 3번."

당신이 손도 놓아줬겠다, 내가 여기 계속 서서 당신과 마주볼 이유는 없잖아. 난 당신이 웃는 걸 정말, 진짜, 진심으로 또 보고 싶지 않단 말야. 이미 많이 봤잖아. 그만 봐도 괜찮다고. 그러니 내가 친절하게 당신이 얼마나 이상한 짓을 많이 했는지 읊어줄테니까, 내가 왜 대답도 못 하고 계산대로 가는지는 알아서 납득해. 당신이 이상한 짓만 해서 고장난 거라고, 나.

웃는 게 그렇게 싫은 이유는 대답하지 않고, 횟수들만 늘어놓더니 휑하니 계산대로 걸어간다. 계속 들고 있던 바구니를 그 위에 뒤집어 엎어버린다. 아이스크림과 사탕 봉지들끼리 서로 부딪히며 쏟아지는 소리가 끝나면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어 부스럭거린다. 주머니에서 다시 나온 손에는 지갑도 없이 주머니에 들어있던 건지, 꾸깃꾸깃한 지폐 몇 장이 쥐어져 있다. 그리고 대답은 이때 돌려주었다. 계산대로 걸어가서, 지폐를 꺼내는 동안 계속 생각하고 있던 것이다.

"싫은 건지 모르겠어요."

싫은 거랑은 달라. 설명하라고 하면 못하겠는데, 달라. 비슷한 것 같다고는 느껴지지만, 같은 건 아냐. 그쪽이 지었던 웃음을 구분지은 것도 어떻게 한 건지 모르겠어. 제일 꺼림칙한게 4번 있었고, 덜 꺼림칙한게 1번 있었고, 나머지는 나도 할 줄 아는 것들이었고. 당신이 그랬지, 좋아서 웃었다고. 나, 좋아서 웃은 적이 기억이 안나. 누가 좋아서 웃는 것도 기억이 안나. 그런 적이 없는 걸까, 그냥 내가 기억을 못 하는 걸까. 그러니까 모르겠어. 아무것도 모르겠어.

계산대 앞에 서서, 쏟아놓은 것들에 시선을 고정시켜 두고서 입을 열었다. 모르겠다는 불친절한 답 이후로, 무언가를 더 말할지 말지 고민하는 것처럼 입이 떨어졌다가 다시 닫히고는 했다. 그리고는 이내, 그것마저도 하지 않고 그저 입을 다문 채로 가만히 있었다. 잠시 고민을 한 건지, 다짐을 한 건지 모를 시간이 지나가고 나면 입은 다시 열린다.

"그쪽처럼 웃는 거, 본 기억이 없어서."

631 이름 없음 (WuO1jE5WN2)

2021-07-01 (거의 끝나감) 20:47:16

>>630

"그래도 고마워요."

당신이라면 그렇게 말할 줄 알았지. 그래도 뻔뻔하게 한 번 더 고맙다고 할 거야. 지금까지의 이상했던 당신을 생각해보면 그 정도만 되어도 엄청 친절한 것처럼 느껴지니까.

"...하?"

당신이 늘어놓은 횟수들을 듣고 있자니 다시 어리둥절해졌다. 아니, 그건 또 무슨 소리래? 반문하는 것만 세고 있던 거 아니었어? 내 말과 행동을 일일히 세고 있었다고?! 안 꾸민 웃음은 또 뭔데?! 그것도 다 구분하고 있던 거야?! 당신, 뭐야?! 진짜 이상해! 아니, 그리고 일단 그건 내 질문에 대한 대답도 아니잖아?!

휑하니 계산대로 가는 당신의 뒷모습을 혼자 남겨져 얼어붙어서는, 멀거니 바라보았다. 사람이 너무 놀라면 움직이지도 못 한다던데, 딱 그 꼴이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것은 당신이 바구니를 카운터 위에 뒤집어 엎어버렸을 즈음이었다. 본능적인 일에 대한 책임감이, 얼어붙었던 정신을 일깨우고 재빨리 몸을 움직이도록 시켰다. 아, 맞다. 계산!

계산대로 달려와서는 당신이 고른 상품에 있는 바코드를 찍기 시작했다. 이야, 아까도 생각한 거지만 당신, 진짜 많이도 샀네. 청포도 맛 사탕이 그렇게 좋은가? 싹쓸이 할 정도로? 다시 알바생 모드로 돌아와서 바쁘게 일을 하다보니, 당신에게 조심히 물었던 질문도 잠시 잊어버렸다. 그래서 당신이 대답을 해주어도, 반응이 늦게 나오는 것은 당연했다.

"...네?"

싫은 건지 모르겠다고? 뭐가? 당신의 입이 떨어졌다가 닫혔다가 하자, 일단 당신의 말을 기다려주려 모든 동작을 멈추고 당신의 입만 응시했다. 결국 말이 나오지 않자, 이쪽도 포기하고 일단 봉투에 물건들을 담아주며 일을 이어갔지만.

"아..."

봉투에 다 담고, 당신에게 총 가격을 부르려고 할 즈음에서야 드디어 당신이 말을 더했다. ...아, 생각났다. 내가 물었던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구나. 아니, 근데 나처럼 웃는 걸 본 기억이 없다고? 내가 뭐 특별하게 웃기라도 했나? 아닌데, 나 그냥 남들처럼 평범하게 웃었는데. ...아니면 혹시 당신, 다른 누군가가 한 번도 당신에게 웃어주지 않는 삶을 살았던 거야? 그랬던 거야? 그래서 내가 당신을 놀린다고 생각한 거고?

이번에는 이쪽이 고민을 하며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가 했다. 왠지 이제서야 당신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왜 그렇게 삐딱하게 생각했는지도.

"그럼 앞으로 몇 번 더 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지금은 처음이라 어색해 하시는 것 같아서요."

물론 내가 당신의 사정이나, 당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지. 그래도 처음은 누구나 다 어색하다잖아. 내가 처음을 주었다는 것은 왠지 이상한 기분이지만, 그래도 당신이 앞으로 살아가면서 당신에게 웃어줄 사람이 더 있지 않을까? 일단 나 하나 여기 있고, 뭐. ...하씨, 이것도 오지랖인가. 그래도 어쩔 수 없잖아. 신경 쓰인다고, 당신. 게다가 그런 말을 하면 더더욱.

"몇 번 더 보고 나서, 좀 익숙해지면 그 때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판단해도 괜찮지 않을까요?"

그래도 웃는 것을 싫어할 사람이... 아예 없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많지는 않을 거 아니야. 당신도 아마 그렇지 않을까. 당신이라면, 싫으면 앞뒤 안 가리고 바로 싫다고 말했을 것 같으니까. 그러니까 너무 두려워만 말고 한 번 마주해 보라고. 안 죽으니까. 괜찮으니까.

"아무튼, 결제 도와드리겠습니다."

당신에게 총 가격을 불러주면서 손바닥을 펼쳐 내밀었다. 당신에게 벌써 3번이나 닿았던 손이었다. 당신이 지폐를 올려주면 한 번 더 온기가 닿겠지. 그리고 지금 당신에게 화사하게 웃어주고 있는 이것 역시. 단순한 알바생으로서의 친절함과 상냥함만은 아니었다. 오직 당신을 위해 건네주는, 대가 없는 호의. 당신이라면 알아챘겠지.

632 이름 없음 (9t5A40XSpk)

2021-07-01 (거의 끝나감) 21:30:46

>>624
#올려준 표정 보고 헉 했잖아... 사랑이 느껴지는 표정 최고야... 얼굴까지 붉어진 거 너무 귀여워... ㅠㅠㅠㅠ 링크로 올려준 것도 좋아! 웃는 얼굴 최고야!! 내용도.. 최고... 최고 아닌 게 없군... ㅇ<-< 어네스티 이름을 더베스트 같은 거로 지었어야 했던 게 아닐까..??
#센스 칭찬 고마워...ㅋㅋㅋㅋ 중간이름은 생각 못 하고 있었는데 어네스티 참치가 이야기해 주었으므로 브레이브의 센스 지분은 어네스티 참치에게 있는 거야. 장발이면 가지고 장난치거나 묶어주거나 빗겨주거나 다 할 수 있는 게 좋긴 하지.. ^-^ 단발은 나중에 에피소드 소재로 써도 좋다고 생각해! (지금보다 어릴 때 사진은 단발 모습이라거나, 어쩌다 어네스티가 단발 취향이라는 이야기가 나와서 다음날 머리카락 싹둑 자르고 집에 돌아오는 티아 때문에 당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거나...?)
#자유에서 이어가는 내용은 >>624로 마무리 짓고, 이어지길 바란다면 1:1인 거지? 나도... 섣불리 1:1 이야기 꺼내는 게 어려웠는데 먼저 말해줘서 고마워! 난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레스 (난 평일에 1회 주말에 1~2회 정도?) 주고받는 것도 괜찮을 거 같은데, 그럼 텀이 너무 느릿느릿해서 싫을까...? 서로의 현생과 기력을 생각하면 일주일에 2회가 좋을 것 같은데 일정과 기력이 허락한다는 전제하에 매일매일 보고 싶기도 해서...ㅋㅋㅋㅋ <:3 내용 이어가는 레스는 일주일에 2회 정도 (일정이 허락한다면 더 자주도 괜찮고) 잡담? 썰 풀이 같은 건 시간 되는대로 느긋하게 하는 1:1은 어떻게 생각해?

633 이름 없음 (Uei6XV/EIs)

2021-07-01 (거의 끝나감) 22:04:50

>>631

몰라, 몰라. 못 들은 척 할거야. 당신이 또 고맙다고 한 거 난 못 들었어! 고집쟁이 같으니라고.

경험해보지 않은 것에 대하여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모르는 듯 해보였다. 미지를 앞에 두고서 할 수 있는 행동은 오직 도망쳐 피하는 것 뿐인 것처럼. 자신이 만드는 상황 속에서는 떳떳하다 못해 뻔뻔하기 그지없었는데, 생각조차 못 한 당신의 웃음이라는 변수 하나에 다 흐트러진 것이다.

"아까 그건 9번째에요, 제외에요?"

뒤늦게 계산대로 돌아와서 바코드를 찍는 당신의 손을 바라보는 건지, 시선을 아래로 내린 채 조용히 있었다. 당신이 늦은 반응을 보였을 때도 가만히 있을 뿐이었고, 당신의 조언과 같은 말을 들었을 때도 우두커니 자리에 서서 아무런 답을 주지 않았다. 당신이 결제를 도와주겠다며 손을 내밀었을 때, 그때 툭 말을 내뱉었다. '예'랑 '네'는 다른 글자는 다른 글자였지만, 발음만 다르지 반문이라는 의미는 같았다. 그래서 그것도 9번째로 세는 것인지 아닌지를 묻고 있었다. 그 질문을 하고 나서는 당신의 손에서 아주 조금 위, 조금의 높이를 둔 위치에서 무언가를 떨어트렸다. 당신 손 위로 떨어진 것은 나비였다. 아까 전의 그 꾸깃꾸깃한 지폐로 접은 나비다. 나비가 당신의 손 위로 떨어졌을 때도 여전히 시야는 아래로, 당신을 바라보고 있지는 않았다.

"오늘은 더 안 볼 거라서요."

안 봐도 머릿속에 또렷하다고! 그리고 난 이게 정말 괘씸해. 당신이 웃은 것 때문에 고장난게 영영 고쳐지질 않아서, 이대로 내가 아무것도 못 하고 살게 되면 어떡할거야? 그러니까 나도 당신한테 기억할 거리를 남기려고. 내가 날 쫓아다니는 사람이 많아서, 내 얘기도 잘 안 하고 기억될만한 짓도 안 하고 다니는데... 이미 내가 내 몽타주를 보고 웃었던 것부터 글렀잖아. 당신이랑은 처음부터 어긋났던 거라고! 다른 편의점을 가야 했었는데!

가만히 서있기만 한 줄 알았더니, 지폐로 나비를 접고 있었던 것이다. 아래를 계속 보고 있던 건 당신을 피하겠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계산대 아래에서, 손을 꼼지락거리면서 나비를 접기 위해서도 있었다. 그리고 그 지폐는 사탕들과 아이스크림의 가격을 훨 웃도는 값이었다.

"잔돈은 안 받을게요."

나비를 떨어트린 손은 봉투로 향했고, 바구니 대신에 봉투에 옮겨담아진 사탕과 아이스크림들을 품에 안아들었다.

"...만약, 다음에 또 만나면 그때 주세요."

고갯짓으로 꾸벅 인사를 건네고, 별 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조용히 사라질 것이다. 문에 달려서 딸랑이는 작은 종소리만 남기고.


# 너참치가 주는 답레가 어떤 내용이느냐에 따라서 달라지겠지만, 내쪽에서는 이번 답레가 마지막일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등장!
# 요 살인마(?)씨는 다음 살인 현장에 일부러 체리마루 포장지를 쪽지로 남겨놓을 계획을 갖고 있어. 포장지에 매직으로 한 마디를 작은 낙서와 함께 적어놓을 거야. '체리보다 청포도가 맛있어'라고. 낙서는 나비 그림이고.
# 만약 이번 답레가 막레가 되면 이야기할 수 없을 거 같아서 남겨둬!! :D

634 이름 없음 (GQyUbGHjEk)

2021-07-01 (거의 끝나감) 22:56:29

>>633

"...마음대로 하세요."

그걸 또 세고 있었어요? 하고 물음이 튀어나올 뻔 했다. 아니, 당신 왜 이렇게 수를 세는 것을 좋아해?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 일일히 세고 있으면 피곤하지 않나? 당신, 진짜 이상한 사람이야. 그래도 이제는 조금 이해할 수 있으니까. 너무 나쁘게만 보지는 않을게.

"...하?"

근데, 그거 뭐야? 내민 손 위에는 나비 한 마리가 떨어졌다. 당신, 뭐하고 있나 했더니 이거 접고 있던 거야? 돈으로? 어리둥절한 얼굴이 놀란 표정이 되더니, 금세 울상으로 변했다. 이제 당신에게 만들어낸 서비스 정신 어린 가짜 웃음만 보이려고 하지 않았다. 당신을 조금 이해하고 나니, 그런 기계적인 알바생의 태도를 버렸다. 하씨... 예쁘긴 한데. 근데 이거 계산하려면 다시 펼쳐야 하잖아. 게다가 이거 값도 너무 높다고. 잔돈 계산 해야 하는데...

"...예?"

아마 당신이 들을 마지막 '예?' 겠지. 잔돈은 안 받는다고? 당신이 사탕과 아이스크림이 든 봉투를 품에 안아들고, 고갯짓으로 인사를 건네는 순간까지도,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당신이 문을 열고 나가기 직전에서야, 정신을 차리고 카운터 책상을 한 손으로 내려 치면서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그리고 조용히 사라지려는 당신을 내다 보면서 당신을 다급히 불렀다.

"저기!"

잠깐 숨을 들이켰다가, 당신과 눈을 마주 하려고 했다. 만약 마주 하지 못했어도 상관 없었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중 가장 화사하고 예쁜 웃음을 당신에게 전했다. 몸을 지탱하고 있지 않는 다른 손에는 당신이 접어준 나비를 소중하게 흔들어 보이면서.

"감사해요! 또 오세요!"

당신이 다시 여기를 올 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 자리에 있으니까. 잔돈도 돌려줘야 하니까 꼭 다시 오라고, 당신. 예쁜 나비를 받은 답례로, 손님이 없어서 안 바쁘다면 또 이렇게 응대해줄 테니까. ...기다릴게.


# 너참치랑 돌리는 게 너무 재밌어서 더 잇고 싶었지만, 막레 상황이 된 것 같아서 막레 썼는데, 답레 주고 싶으면 줘도 괜찮아!
# 요 알바생씨는 뉴스 기사 훑어보다가 그 쪽지를 발견하면 기겁할 것 같아. 내가 만났던 그 이상한 사람이 살인마였어?! 하고. 그리고 괜히 몽타주를 볼 거야. 닮은 구석 하나도 없는 몽타주지만. 그리고 '그래도 체리가 더 맛있어요.' 하고 청포도 맛 사탕 하나에 쪽지를 적어서 카운터 구석에 놓아둘 거야. 다음에 만나게 되면 돌려줄 잔돈과 함께.
# 끝나는 게 아쉬워서 1:1로 더 이어가고 싶을 정도로 정말 재밌었어!! 고마워!! 알바생씨가 살인마씨 나중에 또 봤으면 좋겠다! :D

635 이름 없음 (VWhpFB0idw)

2021-07-01 (거의 끝나감) 23:07:33

>>634 # 이 상황은 이렇게 마무리짓는게 제일 깔끔할 거 같아서 막레로 받을게! 재밌었다니 고마워!! 나도 엄청 재밌었어 XD 알바생씨 힉 소리내면소 놀라는거 너무 귀여웠다고!
# 알바생씨 신고는 안 하는거야?! 신고하면 못 만나게 되거나 아예 만나기 힘들어지니까, 살인마씨가 마지막 인사에 '만약'이라고 한 거였거든! 살인마씨 눈에 알바생씨는 선한 사람으로 보였고, 무슨 이유로든 법을 어기는 건 안 될 것 같은 느낌으로.
# 1:1은 나도 두팔벌려 환영인 입장인데, 이으면서 느꼈겠지만 내 텀이 규칙적이질 못 한게 너참치한테 부담이 될까봐 적극적으로 들이밀지 못 했어 :< 먼저 언급해줘서 고마워!

636 이름 없음 (egTNheolM6)

2021-07-01 (거의 끝나감) 23:24:54

>>635 # 나도 재밌었다니 고마워!! 살인마씨 웃음 한번에 삐그덕거리는 것도 너무 귀여웠다고! XD
# 알바생씨는 혹시 그 쪽지가 우연히 거기에 떨어지게 된 것은 아닐까, 했거든. 일단 몽타주도 전혀 다르고 말이지. 그러니까 괜히 누명을 쓰게 된 건데 자기가 오해하는 건 아닐까, 해서 일단 신고는 미룰 것 같아. 알바생씨는 (본인은 그렇게 생각 안 하지만) 그런 선한 사람이 맞고, 그래서 살인마씨도 일단 믿으려고 하는 거야.
# 괜찮아! 나도 텀 불규칙적이고 그러니까 그냥 서로 시간 날 때 느긋하게 주고 받았으면 좋겠어. 답레가 아니라 썰이나 잡담이어도 좋고 말이야 :> 1:1 환영해줘서 고마워! 그럼 1:1 조율 어장으로 갈까?

637 이름 없음 (rH/Ieu1.pw)

2021-07-01 (거의 끝나감) 23:29:06

>>636 # 알바생씨 선해...... 응, 일단 여기서는 말 줄이고 조율 어장 갱신해둘게!

638 이름 없음 (UQSImQyTZQ)

2021-07-02 (불탄다..!) 01:33:35

>>632
# 더 베스트 ㅋㅋㅋㅋㅋㅋㅋㅋ 그건 너무 악질이라 아무리 티아좋아 어네스티여도 입술 꾹 물었을 듯 해.....벌써부터 나오는 소재에 두근거리는 걸 보니 벌써 심부전증이 왔나보다,,,티아랑 티아참치라는 심부전증이..어릴때 단발인것도 귀엽다 세상에
#나는 좋아.....지금의 템포도 나쁘지 않고 나랑 티아참치 기력에 따라 줄여나가는 것도 좋아! 무엇보다 서로 부담이 없었으면 해.....그리고 잡담에도 쉽게 나가떨어지는 체질이라 어느순간 팍 줄일 수도 있어 흑흑 orz 긍정적인 답변 내줘서 고마워! 그럼 1:1 조율 스레로 넘어가자! 편할 때 조율 스레에 레스 남겨주면 나도 천천히 확인할게! 고마워움쪽

639 이름 없음 (LJbnInCMtk)

2021-07-04 (내일 월요일) 01:31:33

"주군, 사랑이 뭐야?"

말간 눈동자로 네게 그리 물었다. 작달만한 손엔 작은 토끼풀들이 둥글게 엮여지고 있었고 새들의 지저귐과 작은 동물들의 소리, 바람이 풀잎에 스치는 소리가 담긴 그 들판엔 나와 너, 그 뿐이었다. 아마도 그럴 거다. 토끼풀을 길게 엮어선, 그 사이사이를 예쁘게 장식할 알록달록한 꽃을 찾을 것이다. 보라색이 꼭 들어가면 좋겠어. 소리는 내지 않고 입만 웅얼거리며 다시 고개를 푹 숙이고 토끼풀을 끊기지 않고 엮는데에 집중했다. 그러다가도 햇빛에 비추어 투명하게 빛나는 눈동자는 특유의 사랑스러운 무표정으로 네 얼굴을 가만 바라본다.

"응?"

나는 상냥하게 고개를 기울이며 지어낸 눈웃음으로 네 대답을 기다린다.

640 이름 없음 (0A3vJB8YzU)

2021-07-04 (내일 월요일) 01:52:16

>>639
"사랑? 그건 또 누구에게서 들은 게냐."

웃음을 터뜨리며 네 동그란 정수리를 쓰다듬는다. 일국의 황제라는 지위는 무겁고 또 엄중했으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저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사랑을 논하기에는 네가 아직 어리지 않나 생각하다가도, 또 나이가 무슨 상관이라 싶다. 그래, 궁금한 것을 재깍 물어보는 건 좋은 태도지.

"사랑이라... 어려운 것이지. 보고 있음에도 그리움을 느끼기도 하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또 한없이 사람을 작게 만드는 것. 그게 바로 사랑 아니겠느냐."

네 머리 위에 팔꿈치를 턱 얹고는 짓궂게 웃으며 묻는다.

"왜,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생긴 게야? 옳아, 그럼 그것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려고 만드는 게로구나."

641 이름 없음 (LJbnInCMtk)

2021-07-04 (내일 월요일) 03:28:16

>>640
누구에게? 그건.. 둥근 눈망울 속 눈동자를 둥글게 굴렸다가 너와 마주칠 적에는 하얀 검지를 입가에 가져다 대곤 눈을 휘었다. 쉬이. 거친 손으로 쓰다듬어주는 네 손길은 퍽 따뜻했다.

"어려운 말을 하네?"

짓궂게 대답하며 웃음 소리를 내었다. 어느새 둥글게 둥글게 다 빚어진 토끼풀 화관을 태양에 비춰 번쩍 들어보았다가, 무릎 위에 살포시 두곤 주변에 가까이 있는 꽂들을 손으로 살랑거렸다.

"그럼 이 꽃을 꺾어버리면 사랑이 아니게 되려나?"

말을 마치곤 툭 소리가 울린다. 목이 꺾이는 소리다. 색은 밝은 노랑이었다.

"응."

네가 뱉는 사랑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일단은 그리 끄덕였다. 꺾인 나비 같은 꽃의 줄기를 화관에 고사리 같은 손으로 엮으며 집중하는 듯 싶더니 퍼뜩 고개를 올려 너의 얼굴을 올려다본다.

"주군도 사랑했어?"

왜인지 목소리가 흔들렸다.

642 이름 없음 (n9vScIax32)

2021-07-04 (내일 월요일) 19:10:19

유난히 비가 많이 내리던 날이었습니다. 당신은 어느 동굴에서 깨어납니다. 흐린 시야에 발간 불빛이 아른거립니다. 당신이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것은, 정신을 잃기 전까지 허름한 마차 안에 있었다는 것뿐입니다. 그것이 말이 끄는 마차인지 술을 마시는 포장마차인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의식을 찾은 당신이 켈룩거리며 죽었던 숨을 내쉬자, 화톳불이 일렁이며 누군가가 당신 곁으로 다가옵니다. 개를 닮은 뾰족한 주둥이, 온몸을 덮은 복슬복슬한 털. 인간종은 아니나 묘하게 사람을 닮아있습니다. 그것이 당신을 내려보며 주둥이를 작게 벌립니다.

가르르….

낮고 가느다란 울림에서 측은함이 느껴집니다.

643 이름 없음 (/phF2QXpYM)

2021-07-05 (모두 수고..) 07:39:05

>>642
어떻게 된 거지? 시장에 사냥한 고기를 내다 팔고 오는 길이었는데, 왜 이런 동굴에... 기억을 되짚어보는 사이, 낯선 생물이 가까이 다가와 작지만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내자, 여성은 흐트러진 은빛 앞머리 사이로 새파란 눈에 경계어린 시선을 담아 낯선 생물을 바라보았다. 어쩐지 인간을 닮아 보이는 외양 때문일까, 그는 스스로가 바보같다고 생각하면서도 가까스로 침착한 목소리를 내어 대화를 시도했다.

"...누구, 세요? 왜 저를... 여기로 데려온 거죠?"

말이 통할 리가. 아까도 으르렁거리는 소리만 냈는데. 그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곤, 조금 비틀거리며 일어나 동굴 입구쪽으로 뒷걸음질쳤다. 그러고는 다시 입을 열어, 조용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 돌아가겠어요. 시간이 늦었고, 집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요."

사람을 닮아있으니 적어도 말귀는 알아듣길. 그렇지 않다 해도 달아나 집에 도달할 힘 정도는 나도 가지고 있어. 그는 경계 어린 시선을 낯선 생물에게서 떼지 않은 채 천천히 동굴밖으로 뒷걸음질 쳤다.

644 이름 없음 (z.q9lfscbI)

2021-07-06 (FIRE!) 03:53:09

ㄱㅅ

645 이름 없음 (dLiPtd51/E)

2021-07-06 (FIRE!) 22:16:51

그곳은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수많은 종족이 행복하고 사이좋게 지내고 있는 어딘가의 마을에는 오늘도 활기가 넘쳤다. 마을에 위치한 가게 중 잡화점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보이는 건 하품을 하며 나른하게 자리에 앉아있는 엘프 남성의 모습이었다.

연한 푸른빛 머리카락은 전체적으로 길었으며 그 끝을 묶어 자신의 어깨 위에 살포시 내렸으며 두 손에 하얀 장갑을 끼고 있으며 검푸른 재킷을 입고 있는 그는 딸랑거리는 소리에 눈동자를 올리며 크게 기지개를 켠 후에 제대로 손님을 맞이하려고 했다.

"어서 와요. 뭐 찾는 물건이라도 있어요? 있는 건 있고 없는 건 없어요."

마을 사람이 찾아온 것인지, 아니면 마을 밖에서 찾아온 관광객이 찾아온 것인지는 아직 그가 확인을 하지 못했지만 크게 행동이 달라지진 않았을 것이다. 근처에 놓아둔 물이 담긴 물통을 들어올려 그 내용물을 한 모금 마신 그는 두 팔을 아래로 내리며 그제야 고개를 들어올렸다.

/룬 팩토리 계열을 떠올리면서 써보는 선레야. 누가 찾아왔는지는 자유롭게! 너무 뜬금없이 맥커터만 아니면 어떻게 이어도 상관없어. 잔소리를 하러 온 마을 주민도 괜찮고 마을에 놀러온 관광객도 괜찮아!
사실 사전 수요 조사에 살짝 올려봤지만 수요가 전혀 없는 것 같아서 그냥 여기서나 써본다!

646 이름 없음 (j04rXGzgE6)

2021-07-07 (水) 00:19:50

ㄱㅅ

647 이름 없음 (kxUh2kxBSE)

2021-07-18 (내일 월요일) 11:21:44

"......"

가만히 의자에 앉아 상대를 내려보는 눈빛으로 바라본다. 어둠 저편의 상대가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 쌓아올린 지위를 생각한다면 그의 행동은 전혀 부자연스러운 것이 아닐것이다. 가만히 앉아있던 여인이 조용히 와인잔을 기울이다가 턱짓으로 주변의 인물들을 전부 물린 다음에야 조용히 미소를 지어보인다.

"그래서 이곳까지 온 이유는 무엇인가요. 돈? 치기어린 자존심? 아니면...."

복수? 그녀는 평온한듯 하면서도 조금 간드러지는 듯한 목소리로 상대를 도발해보였다. 그녀의 오른손에 그려진 염라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빛나는 듯한건 절대 착각이 아닐 것이다. 한 그룹을 이끄는 자존심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일까, 주변에 아무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왠지모르게 제왕의 자리에 앉은 듯한 분위기마저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 상대의 앞에는 절대 대접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는 듯 다과가 준비되어 있었다.

"시간이 여유로우니, 천천히 앉아서 이야기 하시죠."

웃지 않는 가면 밑으로, 뱀의 미소가 보이는건 절대 착각이 아니었다.

648 이름 없음 (yXycByBagE)

2021-07-18 (내일 월요일) 14:49:19

>>647
그는 붉게 물든 기가 여즉 빠지지 않은 얼굴을 하고서 당신이 있는 공간의 일부를 시선 끝으로 흝었다. 마치 어둠의 편린에서 어둠보다 깊은 것을 보는 듯 검은 눈동자는 잠시간 미동이 없다가 바닥을 향했다. 어쩌면 그 어둠 너머에서 본 것은 그와 같이 지극한 어둠이었는지도 모르지만, 그런 것 치고는 초연한 얼굴로 당신의 부름에 가까이 다가갔다.

"위대하신 분을 뵙습니다. 이렇게 뵙게 되어 지극한 영광입니다."

그때까지도 바닥으로 내리깐 눈을 들어올리지 않는것을 보아 그는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한 모양새였다. 자신보다 높은 지위의 우러러보지도 못하는 상황이 익숙하다는 듯이. 내뱉는 말에서도 형식적인 어조만 묻어날 뿐 깊은 충의나 속셈도 느껴지지 않았다. 요컨데 인형처럼 구는것에 익숙한 남자였다. 그는 당신의 앞에 놓인 자리에 앉고 나서야 당신을 바라보았는데 그 올곧은 시선으로 보아 그가 겁 먹은것이 아닌, 이런 상황에 익숙해 졌음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마치 뻔한 것을 말한다는 듯 표정에 미동도 없이 질문에 답했다.

"사랑, 제 주인께서 저를 지독하게 사랑할 수 있도록 해주셨으면, 처절하고 간절해서 지독하게 끔찍한 사랑을 하게 해주셨으면 합니다."

그 태연한 표정 너머에서 나오는 황당한 요구에도 그는 일말의 망설임 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649 이름 없음 (Gn8smsvLy.)

2021-07-18 (내일 월요일) 18:50:18

>>648

"위대라.....?"

염라의 문장이 그녀의 손가락 놀음에 따라 꿈틀거린다, 화를 내는 것인지 아니면 웃음을 겨우 참고 있는 것인지 그 의중은 오직 본인만이 알것이다. 하지만 무표정으로 감싼 그녀의 모습은 오직 그만이 알 것이다. 똑똑, 그녀가 손가락을 움직이며 울려퍼지는 소리만이 적막을 깰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마음속은 복잡하기 그지 없었다.

'에? 에에? 으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

30에 가까운 나이, 올해 29세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철혈이라는 별칭까지 붙을 정도로 조직관리에 철저했던 그녀에게 있어서 지금의 상황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수많은 상황을 경험해봤지만 이러한 요구를 하는건 그녀는 이해하지 못했다. 자신에게 요구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그녀는 자신의 귀를 의심한채 머리만을 굴릴 뿐이었다.
아버지가 별세하고 무너지기 직전이었던 그룹을 하나로 묶어내는 동안 일에만 골몰해왔던 그녀였다. 사랑? 그 사랑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그녀였다. 스스로의 지위와 돈을 앞세워 자신에게 다가오는 이들은 많았지만 지금같이, 영문을 모를 듯한 눈빛으로 자신에게 다가온 그의 모습은 그녀를 당황시키기에 충분했으리라.

'이, 이거 농담 하는거 아니지?!'

가만히 손가락을 가지고 장난을 치며—다른 사람이 보기엔 깊은 고민에 빠진듯한—모습으로 천천히 상대방을 바라본다. 이거 진짜 농담하는거 아니지? 하는 눈초리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이 눈앞의 사내를 어떻게 처리할것인지 고민하는것으로 보일것이리라. 그리고 마침내, 그녀의 입술이 천천히 떨어졌다.

"지독히도 아름다운 사랑이라, 당신이 그리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무표정으로 덮혔던 가면과, 숨겨진 뱀의 미소속에서 드러난 마지막 표정은, '난감함'이었다.

"알겠습니다. 이곳까지 올라온 당신에게.... 원하는 소원을....."

650 이름 없음 (yXycByBagE)

2021-07-18 (내일 월요일) 19:14:17

>>649
그의 나이는 29으로 아직 30이 채 되지 않은 나이였다. 그는 오랜 시간동안 한 집의 집사로 일해왔는데 말이 집사이지 종살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오랜 시간 그녀의 수모에 응답해 온 것은 그의 집안이 오래된 빚이 있었기 때문인데 이 때문에 그의 어린 동생 역시 다른 집에 팔려가듯 떠나 있는 실정이었다. 그가 바라는 것을 이쯤이면 알 수 있겠지. 그는 자신의 동생과 자유의 몸이 되길 고대하며 몇 년을 개 같이 일했다. 하지만 달라지는 것이라곤 주인 아가씨의 신경질적인 화풀이가 나날이 늘어간다는 사실 뿐, 그의 빚은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그의 동생이 그가 있는 저택으로 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름 아닌 그의 아가씨가 동생을 사들인 것이었는데, 그 기쁜 소식을 듣고 한 달음에 달려나가 본 것은 동생의 손을 짓밟고 서 모욕적인 말을 내뱉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었다. 그는 처음으로 참을 수 없는 감정이 무엇인지 느꼈다. 분노를 뛰어넘는 열기를 느꼈고 주체할 수 없다는 감각을 깨우쳤다. 결국 참지 못하고 달려들었던 그는 크게 얻어맞고는 저택에서 내쫓기게 되었다. 그 모든 원흉인 그녀는 얼마 뒤 약혼식을 올릴 예정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는 이 부조리한 상황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화가 났다. 동생은손뼈가 부러져 한동안 일을 할 수도 없게 되었다. 어쩌면 손에 장애가 생길지도 모른다고도 했다. 그는 문득 깨달았다. 자신이 순간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는 그녀가 파멸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지독하고 철저하게 마음까지 부서져 파멸하기를. 단순한 복수 이상, 내면에서부터 느껴지는 절망을 원했다. 그래서 그는... 그녀의 약혼식에 숨어들기로 결심했다.

그는 당신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그 만나기 어렵다는 철혈 여제를 만나기 까지 얼마나 많은 진흙탕을 굴렀는지 떠올렸다. 조금도, 아깝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달콤함 이상의 복수를 원했고 다시금 제 소원을 정정했다.

"일화 그룹의 아가씨가 저와 사랑에 빠지기를 원합니다. 피눈물을 흘리고, 후회하며 다시는 사랑을 하지 못할 정도로 깊게 빠져서 약혼식에서 망신을 면치 못했으면 합니다."

651 이름 없음 (7hU84qbTJA)

2021-07-18 (내일 월요일) 20:51:43

>>650

"....... 으으음......"
'에?! 진짜? 진짜로?!!'

그룹을 이끌던 외면의 모습과는 다른, 지금 처음으로 고백받은 사내의 모습에 그녀는 오래전부터 잊고 살았던 그 감정들에 대해 혼선을 느끼며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그렇게 자신의 머릿속을 뒤죽박죽이었던걸 정리하면서 그녀는 잠시간 상대방의 말을 떠올렸다. 응? 약혼식? 약혼식이라고? 나한테 그런게 있었나?
그 말에 무슨일인지 그녀가 천천히 손을 뻗어 자신의 핸드폰을 바라본다. 약혼식이라고 하니까 뭔지 감도 안잡히는 것일까, 주르륵 스크롤을 내리면서 하나둘 심각한 표정으로 약혼식이라는 글자들을 하나하나 살펴본다. 그리고 그녀의 표정으로 순식간에 무표정이란 감정과 악랄한 뱀의 미소도 모두 사라지고, 단 하나의 여자라는 존재만이 남아 지금 눈 앞의 남자에게 입을 열었다.

".....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는건지 모르겠네요. 제가 약혼식..... 이라뇨?"

그 말을 내뱉고서야 천천히 기억을 되뇌인다. 저번에 비서하고 이야기를 했을때, 그룹 계열사 임원들(보통 계열사 대표급 인사들은 그룹내의 간부진들로 배치되는 경우가 많다.)의 자녀끼리 약혼식이라고 해서 거기에 초대 받아 가게 되었다고 이야기를 한게 떠오른다. 그러고보니 당시 비서가 주어를 제대로 안말한 탓에 나중에 가서 그녀에게 화를 냈던게 떠오른 것인지, 어벙한 표정—당장 다른 사람들이 그녀의 표정을 봤다면 천연기념물을 본 표정을 지었을것이다—을 보이며 상황 파악이 끝난듯 그를 바라보고 헛기침을 하며 호흡을 가다듬은 뒤 입을 열었다.

"흠, 흠. 어찌됐건, 약속은 약속이고, 또 그것이 소원이라 하였으니.... 아까전에 말씀드린대로 그 약속을 행하도록 하죠."

그리고 천천히 그녀가 몸을 일으킨다. 그녀의 몸매를 여실히 드러내는 검은색 단정한 슈트차림이 달빛에 비춰 한층 더 그녀를 돋보이게 한다. 아마 그도 알 것이다. 그녀가 그리 메이커의 제품을 좋아하지 않는단 것을. 그럼에도 그녀를 감싼 옷은 그 어느 메이커의 복장보다 아름다웠다. 간판이 사람을 따른다는 것은 아마 이런 말을 두고하는 것이리라. 일화 그룹에 속한 그녀가 아니라, 그녀 자신이 바로 일화그룹이고, 그런 그녀의 복장조차 하품의 그것이더라도, 철혈 여제의 몸을 감싸는 갑주라는 사실을 변함없이 상기시키는 것처럼.
뚜벅뚜벅, 그녀가 그에게 다가간다. 길게 내린 렁헤어와 더불어 어딘가 서글서글한 인상을 두면서도 편안한 느낌을 주는 전형적인 미녀의 모습, 그 반면으로 따라오는 차가운 느낌은 어딘지모를 조화로움을 자아내고 있었다. 그렇게 그의 앞에 다가간 그녀가 천천히 손을 뻗어 그녀의 볼을 어루만지며 입술을 열었다.

"그래서 어떻게 제 눈에서 피눈물을 흐르게 하실껀가요? 후회라는 것은..... 어떻게 하게 해주실껀가요?"

정말로 순수하게 궁금한 그녀의 말이었다.

//분명히 복수극이었는데 그쪽으로 무방비한 여자로 캐릭터를 잡아서 졸지에 러브코미디가 되어버렸네요(.....)

괜찮으신가요? ;)

652 이름 없음 (yXycByBagE)

2021-07-18 (내일 월요일) 21:49:57

>>651 아니ㅋㅋㅋㅋㅋㅋ 이... 이 상황극 어디로 가는가...
근데 일화그룹의 아가씨의 얼굴을 알고 있다는 내용이었는데 그럼 혹시 둘째 아가씨가 있다고 해도 될까요? 복수의 대상 (둘째 아가씨) 눈 앞의 여성 (첫째 아가씨) ?

653 이름 없음 (yXycByBagE)

2021-07-18 (내일 월요일) 21:58:58

>>651 로맨스 코미디 쪽으로 가게되면... 시간이 필요해요 제가 취약한 장르라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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