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를 돌려보면, 당신이 유민에게 뭘 하고 싶냐고 물어보는 동안 쭈그려앉았던 무릎을 펴고 일어선 성빈이 초록색 눈동자로 당신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다 당신이 시선을 맞춰오는 것을 눈치채고는, 평소처럼 부드럽게 웃었다. 그렇지만 평소의 그 나긋나긋한 미소가 조금 쑥스러운 기색을 띈 듯해 보이는 것은 기분 탓일까? 그는 미소를 띈 채로 당신의 질문에 대답했다.
"난 좋아."
괜찮냐고 물어봤는데, 괜찮다는 대답이 아니라 좋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마 그냥 표현을 그렇게 쓴 것일 테다. 그는 유민이도 소꿉놀이가 엄청 하고 싶은 것 같고- 하면서 눈망울을 또랑또랑 빛내는 유민이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곤 곁눈질로 호랑을 바라보며 반문했다.
호랑이 수긍하자, 성빈은 눈웃음을 지으며 덧붙였다. 그러나 유민이가 활짝 웃으며 덧붙인 말에, 성빈은 드물게도 당황하는 표정을 보였다. 웃는 채로 어색하게 굳으며 눈을 깜빡이는 모습. 성빈과 호랑의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반대 역할을 붙여버린 유민은 마냥 천진난만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성빈도 굳었던 얼굴표정을 풀고는, 흠흠 하고 가볍게 목청을 가다듬으며 호랑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너는 어떻게 하고 싶어?"
자신의 생물학적/사회적 성별에 별 불만이 없던 성빈이었기에, 더군다나 강압적인 아버지 때문에 오히려 자신이 아버지가 된다면 이런 모습이 되고 싶다는 자신의 미래상을 뚜렷하게 그려놓고 있던 성빈이었기에 유민이 제시한 생각지도 않던 엄마 역할이 낯설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그게 낯설어서 왠지 조금 재밌을 것 같기도 했다. 성빈은 장난기가 조금 동했다. 그리고 재차 질문을 던졌다.
목소리가 갑자기 가냘퍼졌기에 호랑은 숨을 멈추며 잠시 일어섰다. 발 뒷꿈치를 살짝 들고는 벌써 역할에 몰입해있는 성빈과 유민이를 번갈아보다가 큼큼, 하고 헛기침을 하여 자세를 가다듬었다. 아들과 아내가 두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보고 있는데 부끄러운 모습을 보일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는가!
"나는 우리 여보만 좋으면 다 좋지 뭘 이제와서~"
낯을 붉히며 시선은 땅아래로 향하지만 꽤 당당한 말투였다. 유민이도 마음에들어 하는 듯 오오오 하는 소리를 하며 호랑과 성빈을 번갈아 보는 것을 보니... 다음을 기대하는 눈치이다.
멋없는 후드집업 차림인 것이 조금 아쉬운 걸까 성빈은 자신의 옷차림을 한번 훑어본다. 괜히 당신을 한 번 놀려먹어보고 싶은 마음에 능청스레 대꾸한 것은 좋으나, 제법이네,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당신이 생각보다 굽힘없이 대꾸하기도 했고, 막상 저질러놓고 보니 부끄러운 건 이쪽이라, 얼굴은 최대한 태연하게 웃고 있지만 귓가가 조금씩 따끈따끈하게 열기가 올라오는 게 느껴진다. 호랑이와 같이 소꿉놀이를 하면서 본 게 있으니 흉내 자체는 어떻게든 가능이야 할 것 같지만...
"그러면,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
당신을 보며 운을 떼던 성빈은,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유민이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질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