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를 동동 굴러대는 당신다운 반응에, 성빈은 자신이 물뿌리개 반 통쯤을 맞은 꼴을 하고 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만 만면에 흐뭇한 미소를 무방비하게 띄워버리고 말았다. 그는 상대적으로 덜 젖은 바짓단에 슥슥 손을 문질러 닦고는, 물기가 닦여나간 손으로 당신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난 비 좀 맞아도 끄떡없는걸.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의 말마따나 성빈은 그 피지컬만큼이나 몸이 튼튼해 잔병치레를 잘 안 하는 타입이었다. 물론 아주 안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이 걱정을 참지 못하고 꺼내는 말에 "여기까지 왔는데 택시를-" 하고 저만치 앞에 보이는 지하도의 입구로 시선을 돌리려던 성빈은, 생각을 바꿨는지 주머니를 뒤적여 핸드폰을 꺼내며 걱정 말라는 듯이 웃어보였다.
짧은 다리로 용캐 여기까지 뛰어온 것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찰나, 시선에 잡힌 성빈의 몰골이 성치 못했다. 옷이고 머리카락이고 다 젖어버린 체, 그세 피로가 쌓인건지 날카로워 보이는 인상. 와이셔츠는 젖어서인지 피부에 달라붙어 있었고, 제 정신을 차리기도 힘든 호랑은 그 모습을 꽤.. 아니 굉장히 매력적으로 보았다는 것은 아무에게도 숨기지 못 할 사실이었다. 저절로 눈은 성빈에게 고정되고 서로의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에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잠깐, 나보다 오빠가 다 젖었잖아!"
다리를 방방 구르며 어쩔 줄 몰라하는 것은 으레 보이던 반응. 발 끝을 번쩍 번쩍 들면서 성빈의 주위를 한 바퀴 돌고 어떡해, 하는 걱정어린 말을 내뱉었다. 할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어쩌지.. 택시라도 부를까?"
// 미안........................ 이걸 써두고도 오랫동안 올리지를 못 했다.... 요즘 우울하고 바쁘고 피곤하고 그래서 생각은 계속 했는데 정작 손은 안 가고........ 그래도 언제까지 기다리게만 할수는 없어서 힘 내서 올려본다! 기다려줘서 항상 고마워 !!!!!!!!
사실 답레를 다시 써서 계속 이어가는 건 어떨까 했어. 8v8 호랑주가 새 일상을 시작하고 싶다면 새 일상으로 하자. 지금껏 나온 일상 주제들은 호랑주가 >>644에 정리해뒀던 게 있네.. 호랑이나 성빈이네 집에서 공부하는 상황이라거나, 아니면 이번에는 성빈이 쪽이 앓아눕는 상황이라거나(저번엔 호랑이가 앓아누웠었지) 정도가 괜찮을 것 같은데. 호랑주는 특별히 돌리고 싶은 상황 있어?
주말, 연휴, 어찌 되었든 빨간 날. 화창한 햇살과 적당한 구름, 상쾌한 바람이 머리카락을 스치우고 가는, 안에 있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운 날씨. 장호랑과 최성빈은 함께 있었다.
- 언니야 오빠야 이거봐!!
왜냐하면 또 다른 이웃집의 부부가 갑작스러운 출장을 나가시게 되었고, 아이를 홀로 둘 수도 없고, 급하게 부를 지인도 마땅하지 않았으며, 그렇다고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맡기기에는 너무 불안한 나머지 가끔 반찬이라도 나눠먹는 사람들에게 맡길 수 밖에는 없는 형편이었기 때문이다.
"우와! 예쁜 돌맹이네?"
장소는 놀이터. 모래사장의 근처. 유민이(호랑과 성빈에게 맡겨진 아이의 이름이다)는 모래사장의 옆에서 손으로 땅을 파 초록색 돌맹이를 집어들어 성빈과 호랑에게 자랑했고, 호랑은 유민의 옆에 가만히 서서 지켜보고 있다가 조금 거리를 두고 서있을 성빈을 힐끔 힐끔 뒤돌아 보았다.
// 유민이는 ... 장치이다...... 둘의 무언가를 이끌어내기위한 도구적 등장인물이다.....
유월 초의 초여름날은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웠다. 포근했던 날씨는 제법 후덥지근해져 여름옷을 꺼내어 입어봄직하게 되었고, 그럼에도 스치우는 바람은 아직 선선해 나들이하기 좋은 날이 되었다. 성빈은 썩 활동적인 사람은 아니었지만, 이런 날씨에까지 집 안을 고집할 정도로 극렬 실내주의자도 아니었다. 그는 나들이를 나설 때 종종 혼자 나서기도 했고, 다른 친구들과 함께 여럿이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그 중에서도 옆집의 소꿉친구와 둘이서 나들이하는 것을 가장 좋아했다.
친구와 어울리면 보통 네 명 이상이었고, 당신과 같이 다니면 둘이기에, 세 명이라는 나들이 인원수는 그에게는 조금 낯선 것이었다. 옆집의 마음씨 좋은 아저씨-큰형과 아는 사이였다고 기억한다-께서 곤란한 일이 생겨, 유민이를 맡기고 간 것이다. 아버지가 알면 남의 집 아들을 보모로 아느냐며 불꽃같이 성화를 냈겠지만, 이번 주말에는 아버지가 집에 오지 않는다는 소식을 들었기에 가능한 선택이었다.
호랑이 힐끔 돌아보자, 성빈은 잠깐 집 방향을 얼핏 바라보던 시선을 호랑이에게로 돌렸다가 유민이에게로 내렸다. 유민의 손에 들려있는 조그마한 돌멩이- 화분 장식용 옥 자갈임직한 그것을 보고 성빈은 쭈그려앉아 유민과 시선을 맞춰주고는 얼굴에 미소를 띄며 유민을 칭찬해주었다.
에어컨 청소하라고 끌려가는 통에 잠깐 자리 비운다고 말도 못했네.. 88 거기다 내가 애랑 놀아준 경험이 많지 않아서 성빈이 반응이 좀 어색할 수도 있어,, 성빈이가 말한 '병에 담아두고 보면' 은 짤의 이걸 이야기하는 거야. 어릴 적에 몇 갠가 만들어본 기억이 있어서 가져왔어!
한편 정주행 다시 하다가 >>511 보고 생각난 건데 성빈이 호랑이 성빈이네어머니 셋이서 저녁상 겸상하다 갑자기 성빈이한테 앞접시 하나 가져다달라고 보내놓고는 호랑이한테 귀띔해주는 성빈이 어머니... 쟤 저래뵈도 벌써 혼담 들어오니까 잡을 거면 확실하게 잡으라고 부추기는 장면이 생각이 나고 그래
어린아이의 마음은 쉽게 변덕을 일으키는 법이었고, 그만큼 주변의 어른들은 인내심을 가지고 아이를 지켜보아야 하는 법이었다. 성빈과 호랑은 어른이 아니였지만 그럼어도 조금 더 성숙한 자로서, 미성숙한 이들에게 의연히 대하는 것은 일종의 미덕이다. 어떤걸 하고 싶어?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호랑은 유민이에게 물어보았고, 유민이는 큰 눈으로 호랑과 성빈을 번갈아 보았다.
- 소꿉놀이 할래! 나는 아기고, 언니는 엄마고, 오빠는 아빠야!
" 그래? "
별 생각 없이 어린아이에게 맞춰준다는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괜히 생각을 더해보니 성빈을 의식하게 되었다. 하면 좋지. 하고 싶은데...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다 호랑은 성빈을 올려다보며 물어보았다.
고개를 돌려보면, 당신이 유민에게 뭘 하고 싶냐고 물어보는 동안 쭈그려앉았던 무릎을 펴고 일어선 성빈이 초록색 눈동자로 당신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다 당신이 시선을 맞춰오는 것을 눈치채고는, 평소처럼 부드럽게 웃었다. 그렇지만 평소의 그 나긋나긋한 미소가 조금 쑥스러운 기색을 띈 듯해 보이는 것은 기분 탓일까? 그는 미소를 띈 채로 당신의 질문에 대답했다.
"난 좋아."
괜찮냐고 물어봤는데, 괜찮다는 대답이 아니라 좋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마 그냥 표현을 그렇게 쓴 것일 테다. 그는 유민이도 소꿉놀이가 엄청 하고 싶은 것 같고- 하면서 눈망울을 또랑또랑 빛내는 유민이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곤 곁눈질로 호랑을 바라보며 반문했다.
호랑이 수긍하자, 성빈은 눈웃음을 지으며 덧붙였다. 그러나 유민이가 활짝 웃으며 덧붙인 말에, 성빈은 드물게도 당황하는 표정을 보였다. 웃는 채로 어색하게 굳으며 눈을 깜빡이는 모습. 성빈과 호랑의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반대 역할을 붙여버린 유민은 마냥 천진난만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성빈도 굳었던 얼굴표정을 풀고는, 흠흠 하고 가볍게 목청을 가다듬으며 호랑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너는 어떻게 하고 싶어?"
자신의 생물학적/사회적 성별에 별 불만이 없던 성빈이었기에, 더군다나 강압적인 아버지 때문에 오히려 자신이 아버지가 된다면 이런 모습이 되고 싶다는 자신의 미래상을 뚜렷하게 그려놓고 있던 성빈이었기에 유민이 제시한 생각지도 않던 엄마 역할이 낯설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그게 낯설어서 왠지 조금 재밌을 것 같기도 했다. 성빈은 장난기가 조금 동했다. 그리고 재차 질문을 던졌다.
목소리가 갑자기 가냘퍼졌기에 호랑은 숨을 멈추며 잠시 일어섰다. 발 뒷꿈치를 살짝 들고는 벌써 역할에 몰입해있는 성빈과 유민이를 번갈아보다가 큼큼, 하고 헛기침을 하여 자세를 가다듬었다. 아들과 아내가 두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보고 있는데 부끄러운 모습을 보일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는가!
"나는 우리 여보만 좋으면 다 좋지 뭘 이제와서~"
낯을 붉히며 시선은 땅아래로 향하지만 꽤 당당한 말투였다. 유민이도 마음에들어 하는 듯 오오오 하는 소리를 하며 호랑과 성빈을 번갈아 보는 것을 보니... 다음을 기대하는 눈치이다.
멋없는 후드집업 차림인 것이 조금 아쉬운 걸까 성빈은 자신의 옷차림을 한번 훑어본다. 괜히 당신을 한 번 놀려먹어보고 싶은 마음에 능청스레 대꾸한 것은 좋으나, 제법이네,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당신이 생각보다 굽힘없이 대꾸하기도 했고, 막상 저질러놓고 보니 부끄러운 건 이쪽이라, 얼굴은 최대한 태연하게 웃고 있지만 귓가가 조금씩 따끈따끈하게 열기가 올라오는 게 느껴진다. 호랑이와 같이 소꿉놀이를 하면서 본 게 있으니 흉내 자체는 어떻게든 가능이야 할 것 같지만...
"그러면,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
당신을 보며 운을 떼던 성빈은,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유민이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질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