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장호랑은 콧노래를 부르면서 통통거리는 걸음으로 매점 까지 내려가는 것이었다. 성빈이가 자신을 둘러싼 이야기에 대해서 별 다른 관심이 없던 것과 달리, 이쪽의 인물은 굉장히 잘 휘둘려서 친구들이 둘의 관계를 물으면 괜시리 아무 사이 아니라고 떠벌리고 다닐 수 밖에는 없었다. 믿어주는 사람은 별로 없었지만.
매점 앞에 먼저 도착한 다음에는 무얼 먹을지 생각하기 보다 중앙 계단 윗쪽에서 내려올 성빈이를 기다리며 발꿈치를 들었다 내리길 반복했다. 너무 빨리 왔나?
하고 당신을 부르는 소리는, 중앙 계단이 아니라 매점 문 쪽에서 났다. 그는 당신보다 먼저 매점에 도착해 있었던 모양이다. 그는 매점 안에서 당신을, 당신은 매점 밖에서 그를 기다리기로 했기에 자칫하면 둘이 엇갈려 시간을 약간 낭비할 수도 있었지만, 열려 있는 매점 문 사이로 성빈이 당신을 먼저 발견한 것이 다행이었다.
─랑아, 하고 당신을 부를 때, 성빈은 자기 자신의 마음속에 끼어있던 안개가 언제 있었냐는 듯 사르르 녹아내리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느꼈다. 자기 자신의 마음 속에 끼어있던 안개가 그렇게 시원스레 걷히는데도 그것을 의식하지도 못할 정도로, 당신과 눈을 마주치고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그 순간이, 소년에게는...
>>315 >>323 (눈앞이 깜깜해짐) 선생님 너무 강력합니다. 그래서 아주 좋아요 호랑이가 잘 돌려말하느냐, 직구로 꽂아버리느냐에 따라 성빈이 반응이 엄청 갈리긴 하겠지만 호랑이가 잘 돌려 말한다는 가정 하에는 호랑이가 성빈이의 우울 모먼트를 조금 볼 수 있을지도.
>>324 >>325 저것도 악수가 아니라 랑이 손잡고 다니려고 손 뻗은 거야. 개인적으로 랑이가 좀더 어리고 천진난만했을 때 먼저 성빈이 손을 덥석덥석 잡은 게 성빈이에게 버릇으로 남아서 이젠 성빈이가 손을 내미는 것... 이었으면 좋겠다는 적폐캐해스러운 바람이 있습니다 uu
당신의 손을 마주쥐고는, 당신이 팔을 흔드는 대로 내버려둔다. 손은 오래 잡고 있지 못했지만, 성빈은 당신의 옆에 다가붙었다. 남들의 눈이 있어 손은 잡지 못해도, 성빈은 당신과 이렇게 같이 있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함께 있을 수 있는 것, 그것만으로도 우린 행복할 수 있다 했어...
지나간 옛노래 한 소절이 문득 성빈의 귓가를 스치는 것도 같았다.
"그렇네... 나가서 사와버릴까?"
성빈은 눈을 깜빡이다가, 얼굴에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평소와 다름없는 순진한 미소였지만, 왠지 조금 장난스럽게 보이는 미소였다. 나가서 사온다는 말은 학교 가까이에 있는 베이커리나 편의점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당연히 학교가 파하지 않았는데 학교 문 밖을 나갔다 오는 것은 선생님의 특별한 허락이 있지 않는 한 엄연한 비행의 축에 들었지만, 학교 문 밖을 나가서는 수업이 시작할 때가 됐는데도 안 돌아오는 게 아니고서야 그것을 크게 문제삼는 선생님은 없었다.
장호랑의 인텔리한 추리! 어찌나 인텔리했는지 용의자가 찐텐으로 당황했다! 초록색 눈동자의 위아래로 흰자가 살짝 드러날 정도로 눈을 치켜뜨다가 눈을 깜빡이며 당신을 바라보던 성빈은 이내 푸스스 웃음을 터뜨리면서 당신의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으려 했다.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호랑이가 맛있는 거 먹고 좋아해준다면 담장 정도는 넘을 수 있어."
당신은 성빈을 잘 알고 있는 게 맞았다. 성빈은 자신의 삶의 궤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려 했고, 그 궤도 밖으로 나가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전에도 말한 적이 있던가? '랑이' 라는 말이 붙으면, 성빈은 당신의 생각보다 많은 것을 "예외로 취급" 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정문으로 나갔다 와도 되는걸. 내가 선생님들한테 워낙 평판이 좋아서..."
아, 나왔다. 교내외를 막론한 학력고사에서 거의 만점을 유지하는 초 우등생의 특권. 학교의 명예를 드높여주는 우등생에겐 그만한 특권과 묵인이 따라오는 법이다.
"물론, 나갔다 오는 게 번거로우면 매점에서 사먹자. 소시지빵 말고도 맛있는 게 많으니까... 아직 샌드위치는 맛있는 게 많이 남아있을 거야."
지금은 학교니까 이만 물러나주자. 쓰담쓰담은 방과후에 실컷 만끽할 수 있다. 지금 이렇게 다른 사람의 눈을 신경쓰느라 포기하는 몫까지 전부 다, 이자까지 두둑하게 쳐서. 아니, 당장 매점에서 먹을 것을 산 뒤에 옥상에 올라갔을 때 아무도 없다고 하면 그 때부터도 실컷 만끽할 수 있을 테다.
"깎여도 복구할 자신 있고... 그 정도면 아주 싸게 먹히는 거라고 생각하는걸."
성빈은 당신의 머리에서 손을 살며시 내리며 웃었다. 그리곤 매점에 진열된 상품들을 보며 고민하다가, 이내 결정을 내렸다.
"치즈불고기햄버거랑 탄산음료가 좋겠다. -그러고 보니 햄버거 먹어본 지 오래됐네."
그는 당신이 말했던 크로와상 샌드위치와 자기가 먹을 햄버거를 집어서 바구니에 집어넣고는 음료수 코너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그의 입에서 무의식중에 "그런데 이러면 랑이한테 먹여주는 건 못 하겠다..." 하는 말이 흘러나온 건 그때였다. 아이쿠, 이런. 성빈은 자기가 말실수를 햇다는 것을 깨닫고 입을 합 다물더니 시선을 옆으로 피했다. 귓바퀴가 빨갛게 물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