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서 네게 입을 맞춘다던가, 확실히 고등학생 때라면 상상도 못했을 일이다. 다른 사람들의 눈을 신경쓰는 편은 아니라지만, 아무래도 밖에서는 조금 부끄러우니까. 이제와서는 부끄러움이 조금 줄어든건지 그도 아니면 뻔뻔해진 건지. 아무래도 상관 없긴 하지만. "뭐 그건 그렇지만." 당황, 혹은 조금은 부끄러워 하는 것처럼도 보이는 네 모습을 눈에 담으며 지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이 그렇다면 별 수 없겠지. 확실히 데이트는 분위기가 중요하니까. 제 아무리 주변 환경에 신경쓰지 않는다도 해서 분위기 같은 것을 아예 염두에 두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본인 때문이라기 보다는, 주로 상대를 신경 써서이긴 했지만.
"응 괜찮아. 아까 들렸다 가자고 말 했었잖아?"
지은이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아까 이미 들렀다 가자고 했으니 한 번 더 물어보지 않아도 괜찮은데. 지은은 계산을 마친 네게 "잘 먹었어." 하고 인사한다. 지은은 너와 함께 식당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러고보니까 오늘 차 가져왔어?" 오는 모습까지는 보지를 못했기 때문에 어땠을지 모르겠다. 아니라면 그냥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되긴 하지만, 당연하게도 지은은 네가 어디 사는지 알 길이 없으니 그저 네가 가는 대로 그 뒤를 따라 네 집으로 향하려 했다. 그러고보니까 한 번도 네 집 근처에 가본 적이 없구나-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까?"
짐만 가지고 나올 거라면 굳이 들어갈 필요는 없을 것 같기도 하고, 집에 사람이라도 있으면 갑자기 찾아가는 게 실례이기도 했다. 다만 얼마나 걸릴지를 알 수 없으니 조금 애매한 면이 있었겠지만 조금 기다리는 것 정도는 개의치 않으니 괜찮으려나 싶었다.
고등학생 때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행동들. 마치 이제까지 어쩔 수 없이 놓여진 상황들에 참고만 있었는데 더이상 참을 필요도 자제할 필요도 없다는 것처럼 물흐르듯이 이어지는 게 놀랍기도 하고 새삼스럽게도 느껴졌다. 유독 밖에서 스킨십을 하는 걸 부끄러워했던 네가 지금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고. 너는 더이상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았고, 나는 주변의 시선을 조금 덜 의식하게 됐다는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해. 긍정하는 네 변한 모습을 지긋하게 바라보다가 슬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럼 가자.”
미소를 지으며 대꾸하는 지은이의 모습에 은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계산을 마치고 지갑을 다시 가방에 집어넣었다. “천만에-” 잘 먹었다는 네 말에는 그렇게 대답하고 식당을 나섰다. 아까 물어보기는 했지만 식당에서 마음이 바뀌었을 수도 있었을테니까.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면서 밖으로 나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향해 걸어가던 은채가 고개를 슬 기울여보였다. “주차하기가 까다로울 것 같아서 차는 안가져왔어.” 자신의 뺨에 손을 올려놓은 뒤 은채가 대답한다. 이쪽이라는 듯 은채는 지은이의 손을 한번 쥐었다가 버릇처럼 깍지를 껴서 다시 잡고 걸음을 옮겼다. 은채의 집은 그렇게 멀지는 않았다. 지은이의 집이 한강과 가깝다면 은채의 집은 한강을 지나서 조금 더 들어가야했고 지은이와 함께 있는 백화점의 위치에서는 대중교통을 두번 정도 갈아타면 들어갈 수 있는 아파트 단지였다. 버스에서 내리자 신축은 아니었으나 제법 외관이 깔끔한 아파트 단지가 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찾으려면 좀… 시간이 걸릴텐데. 들어와서 기다리고 있는 게 좋을 것 같아.”
집에 동생들이 있으려나. 은채는 지은이의 물음에 차분하게 중얼거리며 집 쪽으로 걸음을 옮겨서 아파트 공용 대문을 비밀번호가 아닌 소지하고 있는 카드키를 가져다댔다. 문이 열렸습니다 하는 기계적인 목소리와 함께 아파트의 공용 대문이 열렸다.
o<< (졸려서 죽어가는 중) 쫀 아침.... 쫀밤....(맞을거 같은데) 아니면 쫀 오후??? (흠) 일어나서 준비하면서 틈틈히 쓴 답레를 올리며 갱신한다~~ 이마리야:> @ㅁ@ 흑 졸리다......나가기 싫다....(앓는 소리) 답레 확인하고 답레 쓰는 게 점심 시간이 될 수도 퇴근 후가 될 수도 있워서 답레는 천천히 줘잉~~~(ღゝν')ノ♥
(은채주의 레스가 올라온 시간을 본다)(동공지진) 세상에 은채주... 8.8.... 제가 확인이 늦었지만 아까 올리신 시간이면 여긴 오후가 맞았을 것 같네요! 아이고 은채주 아침 일찍부터 고생 많으시네요(토닥토닥) 저도 지금 하던 게 좀 있어서 답레는 천천히 올려둘게요. 오늘 하루 화이팅이예요...!
그러고보니 고등학생 때는 이런 식으로 행동한 적이 없던가-하는 생각이 잠시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고 사라진다. 사실 그 당시에는 실내냐 야외냐를 논하기에는 스킨쉽이라는 것 자체를 너무 부끄러워하기도 했었고. 이제는 아예 부끄럽지 않느냐 하면 그건 아니지만 손 한 번 잡고 뽀뽀 한 번 할 때마다 귀를 붉히고 어쩔 줄 몰라할 수도 없는 노르시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향해 걸어가며 네가 한 말에 지은은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차가 없다 보니 주차가 곤란하다던가 이런 건 잘 모르겠지만, 이곳 주차장은 늘 혼잡한 느낌었으니까, 아주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었다. 지은은 이쪽이라는 듯, 자신을 끄는 듯이 잡힌 네 손을 깍지껴서 마주 잡으며 너와 함께 걸음을 옮긴다. 네 집은 한강에서 조금 더 들어가야 하는 위치에 있었고, 척 보기에도 신축은 아니었지만 나름 깔끔했다.
"음-알았어. 혹시 집에 누구 있어?"
누군가 집에 있는데 불쑥 얼굴을 들이밀면 서로 불편해지기 마련이니까. 그래도, 사람이 있다 해도 물건만 잠시 갖고 나올 거면 그렇게 상관은 없으려나 싶어 일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보면 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나도 아파트였는데 말이지-괜히 쓰잘데기 없는 생각이나 해본다. 몇 층인지는 모르지만 딱히 물어볼 필요성은 느끼지 못했다. 어차피 뒤나 따라서 갈 거니까는.
"그러고 보니까, 고등학생 때도 이 집이었어?"
지은은 기계적인 목소리와 함께 열린 공용 대문 안 쪽으로 들어가기 전, 괜히 아파트의 외관을 한 번 슥 올려다보며 물어보았다. 당연하지만, 네 집의 층수도, 호수도 모른다. 지은은 대충 반발자국 정도 뒤에서 너를 따라 네 집까지 너를 따랐을 것이다.
아니 은채주 이게 대체 무슨 일... ㅠㅠㅠㅠㅠㅠ 혐생아 내 앤오 놔줘라... ;×; 답레는 신경쓰지 마시고 남은 하루 힘내세요 은채주! 피곤해 보이시니 아예 나중에 푹 주무시고 난 뒤에 주셔도 좋구요 :> 무리하지 마세요! 현생 꼬인 것이 하루라도 빨리 편해지길 바래요! 남은 하루는 조금 더 여유로웠으면 좋겠네요. 나중에 봬요! :> ❤
은채는 지은이의 물음에 조금 자신없다는 어조로 차분하게 중얼거리며 자신의 손을 뺨에 댔다가 떼어내고 느릿히 눈을 깜빡였다. 불쑥 얼굴을 들이민다고 해서 놀랄 애는 아닌 것 같기는 하지만 일단은 아무래도 집에 누군가를 데려온 적이 없던 누나가 예상을 벗어난 행동을 해보이면 놀라기 마련이니까는. “지금 미리 말해놓을게.” 너한테 동생이 있다는 이야기를 했었는지 헷갈렸다. 오래 교제한 시간이 있다보니 그럴 수 밖에. 은채는 고개를 갸웃해보이며 짐짓 진지하게 생각에 잠겨서 핸드폰을 꺼내서 동생에게 메세지를 보내놓는다. `집에 있어?`
“아니 고등학교 때는 좀 주택 같은 곳에서 살았어.”
레슨은 다른데에서 한다고는 해도, 가끔 집에서 바이올린을 켜더라도 이웃에 피해를 주지 않는 곳이어야했다. 게다가 쌍둥이들 중 한명이 바이올린 소리보다 몇배는 더 큰 관악기를 하는 음대 지망생이었고. “나 유학갈 때 부모님이 이사하셨거든.” 차분하게 말을 덧붙히면서 은채는 마침 1층에 있는 엘리베이터의 층수 버튼을 눌렀다.
은채주는 윤은채씨의 동생들 이름을 까먹었다고 한다. o<< 아 기억력 정말...(드러누움) 그래서 동생이 등장하기 전에 지은주에게 윤은채씨의 동생들 이름을 다시 정해도 되는지 양해를 구하고 싶워:< 답레 올리기는 했는데 지은주 일어날 때쯤에는 아마 내가 잠들어있을 것 같으니 천천히 느긋하게 줘도 된다고 말해둘게:>♥
(이 시간에 일어난 게 실화인가)(놀랍게도 실화라고 한다) OTL 앗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뭐 제가 굴릴 모브도 아니고 윤은채 씨 남동생들인데 저한테 양해를 구하실 필요가 있나요! 저한테 물어보실 필요 없으니 편하게 해주세요~ 답레는 천천히 올려둘게요 오늘 하루 고생 많으셨고 잘 자요!
오래 있을 건 아니라지만 일단은 갑작스럽기는 했고. 본인도 오빠가 대뜸 친구들을 집에 데려오면 영 불편해 했었던 기억이 있었다. 지금 말해놓는다는 네 말에 지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게 동생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고등학생 때 말해준 적이 있었으니. 다만 쌍둥이 남동생이라는 것과 누나를 따라 악기를 시작했다-는 얘기 말고는 딱히 들은 얘기가 없었지. 물론 본인도 제 오빠의 얘기는 잘 하지 않으니 피차일반이다.
"하긴 악기를 켜니까 아파트는 조금 힘드려나."
아파트 같은 집들이 밀집된 곳에서의 악기 연주는 아무래도 주변에 피해가 갈 수 있으니까. 네가 차분히 덧붙인 말에 지은은 "그렇구나." 라는 대답과 함께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새삼스럽게 너에 대해 아는 게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본인이 그다지 이것저것 묻지 않아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아, 그러면 그냥 내 잘못인가. 엘리베이터는 마침 1층에 내려와 있었다. 지은은 복잡해지려는 머리를 정리하며 엘리베이터에 올라탄다. 네가 사는 곳의 층수에 도착해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뒤 네 집까지 도착했다면 "실례합니다-" 하는 작은 인삿말과 함께 안으로 들어섰을 것이고.
동생이 몇살이냐는 물음에 은채는 음- 하는 소리를 내며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이제 2학년. 고등학생. 잠깐만 있다가 갈거니까 상관없을걸.” 누군가를 집으로 데려가는 것 자체가 처음이여서 지나치게 관심을 두는 거 아닌지 몰라. 게다가 다른 동생은 몰라도 지금 집에 있는 동생은 내가 애인이 있다는 걸 알고 있고. 뭐 괜찮겠지. 쓸때없는 질문같은 걸로 상대를 곤란하게 만들 애는 아니니까는.
“사실 집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건 거의 안하고 공부만 했지만.”
주택가에서 살때도 학교를 가지 않거나 레슨이 없는 날, 늦은 시간에는 바이올린에 손도 대지 않았다. 피해를 준다는 자각도 있었고,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건 레슨 때만 해도 충분했으니까. 고 3이 되고 나서는 계속 바이올린을 연주해야할지 말지 슬럼프 아닌 슬럼프에 빠져서 바이올린을 거의 놓다시피 하고 공부에만 매진했었고. 그래도 결국에는 바이올린을 손에서 놓지 못하기는 했지만 말이야. 잠시 진지하게 생각에 잠겨 있던 은채는 흘끗 곁눈질로 바라보다가 지은의 손을 조심스레 쥐었다. “왜그래? 표정이 안좋아보여.” 엘리베이터에 타고 나서야 은채는 조용하게 질문을 하면서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것에 맞춰서 지은의 뺨에 입을 맞춘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은채는 집 문의 비밀번호를 치고 문을 열었다. “들어와.” 실례하겠다는 말을 하는 네 모습에 작게 쿡쿡 웃음을 터트리면서 집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자 서늘한 집 내부의 공기가 느껴졌다. 거실과 대문이 교차하는 지점에 키가 제법 훤칠한 남자가 핸드폰을 들고 서있다가 어! 하고 소리를 냈고.
“누나 톡 안봤어?” “인사가 아니라 그게 먼저니? 안봤어. 왜?”
은채의 지적에 남자는 고개를 쭉 빼들어서 은채와 함께 들어선 지은이를 보고는 고개를 움츠리며 고개를 꾸벅 해보였다. “안녕하세요.” 분위기 자체는 비슷해보이지만 닮지는 않은 게 보일지도 모른다. 일단 은채처럼 회색 눈동자는 아니었으니까. “친구 데려오는 거냐고 톡 했는데.. 아! 윤지완이라고 합니다.” 소파에 가방을 내려놓는 은채 쪽을 보다가 지완은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소파에 앉아 계시라는 말을 예의바르게 해보였다.
맙소사 윤은채 씨네는 삼남매가 다들 예체능이냐구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돈 엄청 들겠...(이거 아님) 제가 지금 하던 게 있어서 답레는 천천히 드릴게요! 아이고 은채주... 88 현생은 혐생이지만 일단 오늘 하루도 화이팅 하시는 거예요 ;×; 나중에 봬요! :> ❤
네 대답에 지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 생각해보면 오빠가 집에 친구들을 데려온다고 해서 본인이 그들과 대화를 나눴다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인사라면 했을지 몰라도 어지간해서는 따로따로 방에 틀어박혀 있었으니까. "힘들었겠네." 악기와 공부의 병행이라. 아무리 생각해도 본인한테는 불가능한 이야기다. 공부에 관해서의 기준이 다른 것도 물론 존재했겠지만, 지은은 기본적으로 멀티에 능한 사람이 아니다. 하나에 집중하면 또 다른 뭔가를 못한다. 그만큼 악기라던가, 아무튼 공부 이외의 무언가를 잡았더라면 아마 둘 중 하나의 성적은 처참했으리라고 생각한다.
"응? 그랬어?"
뺨에 입이 맞추어져 오는 것에 지은은 웃으며 되물었다. 너는 순간순간의 표정변화를 조금 지나칠 정도로 잘 캐치해낸다 해야할지, 가끔은 느끼는 감정을 숨기기가 버겁다고 느껴진다. 그게 나쁘다기 보디는, 숨기고 싶은 것도 못 숨기게 되니까. 별 것도 아닌 일로 굳이 걱정 시키고 싶은 것은 아니었기에 본인도 몰랐다는 듯이 시치미를 뚝 뗀다. 네 뒤를 따라 네 집안으로 발을 들인 지은은 네게 왜 웃느냐 물으려다 키가 큰 남성의 등장에 말을 삼켜낸다. 키는, 오빠보다는 조금 작은가. 하지만 지은보다는 눈높이가 높았다. 남자니까 당연한 거 아니야? 라고 물을 수 있지만 지은의 키는 170대 후반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 중에서도 본인보다 눈높이가 높은 사람은 그렇게까지 자주 보이지 않는다. 그를 잠시 올려다보았다가 네 얼굴을 곁눈질로 한 번 슬 보았다. 안 닮았네. 분위기 자체는 조금 닮았을지 모르지만 기본적으로 외적 요소가 완전히 딴판이다. 지은은 제게 인사를 해오는 지완에게 마주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남지은이라고 합니다. 불쑥 찾아와서 죄송해요."
지은은 제 인상이 강한 편에 속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눈웃음을 지으면 그 인상이 꽤 달라진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일단 저 사나운 인상은 아무래도 눈매가 문제이다 보니. 지은은 눈을 슬 접어 자신을 소개한 뒤 소파의 끝 쪽에 앉으며 한 번 더 고개를 까딱여 인사한다. 안 그래도 이 강한 인상 때문에 원치 않은 오해를 받을 때가 많은데 네 가족에게 굳이 안 좋은 인상을 남길 필요는 없으니까. 요약하자면 사회성 미소가 맞다.
힘들었겠다는 네 말에 고개를 슬 한쪽으로 기울이며 그때는 어쩔 수 없었어 라고 답하려다가 입술을 한번 깨물었다. 어쩔 수 없기는 했지만 네가 막상 힘들었겠다는 말을 하니 그때는 어쩔 수 없었지 라는 말이 나오지 않아서.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며 네 어깨에 머리를 슬 문지르다가 “응. 힘들었어.” 라고 대답하면서 푹 기대기에 이르른다. 멀티를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워낙에 스케줄 자체를 빠듯하게 채워놓고 계획대로 움직이는 것에 익숙하다보니 둘 다 나름 잘 잡아놓을 수 있었다. 바이올린 자체는 타고난 재능이 있어서 어렵지는 않았지만 그 와중에 공부까지 중상위권에서 떨어지지 않았다는 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신기하기도 하다.
“안그랬어?”
지은의 웃음에 은채는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면서 마주 되물었다. 그거 알까. 표정 변화나 감정의 변화를 잘 볼 줄 안다고 해도 다른 사람에게는 이렇게 잘 안물어본다는 거. 스스로의 감정에는 둔하다는 평가를 종종 듣는 내가 네게는 왜 이렇게 신경을 잘 쓰는지. 너라서 그렇다는 걸. 오롯하게 너라서. 시치미를 떼는 네 모습에 한번 더 네 뺨에 입을 맞추고는 작게 웃음을 터트리며 “내가 잘못 본 걸 수도 있겠네.” 하고 대꾸했다.
지완은 자신의 누나와 함께 등장한 키가 큰 여성의 등장에 절로 고개를 움츠렸다. 누나의 문자에 답을 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 누나가 온 게 혹시 입구에서 문자한 거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는데 같이 온 여성의 키가 자신의 누나보다 한뼘은 거뜬히 커보이는 거에 놀랐다. 뭐야. 키 왜 저렇게 커. 누나도 키가 작은 편은 아니라고는 보지만 저 누나는 너무 큰데. “지완아?” 올려다보는 누나 친구 누나(지은)의 시선에 지완은 움츠러들어 있다가 은채의 부름에 어! 하고 대답했다. “오늘은 약속 없어?” 은채는 동생의 얼굴을 지긋하게 바라보다가 지은을 향해 시선을 주고 생긋 눈웃음을 지어보였다.
“아, 괜찮아요. 누나가 친구분을 데려온 건 처음이라서..” “누나 말에는 대답해야지. …그리고 누가 들으면 친구 없는 줄 알겠다.” “부모님 있었으면 엄청 좋아하셨을걸.” “까불어.”
은채는 지완의 귀를 낚아채듯이 잡고 그대로 끌어내렸고 지완은 엄살을 부리며 아프다는 듯이 발을 동동 구르는 웃긴 장면이 연출되었다가 은채가 귀를 놓아주는 것으로 그 장면은 금새 사라졌다. 지완은 지은의 강한 인상에는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이 냉장고로 걸어가서 주스를 한잔 따르더니 소파에 앉아있는 지은에게 다가와 음료수를 건넸다.
“누나 편하게 앉으세요. 아 누나라고 불러도 되죠? 누나, 은채 누나- 나 용돈 조금 주면 안돼?”
지은에게 잠깐만 기다리고 있으라며 방 안으로 들어가려던 은채가 지완의 뻔뻔한 모습에 미간을 찌푸렸다. 얘 좀 봐? 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며 한숨을 폭 내쉬며 “나 한국 들어왔을 때 준 용돈은 어디다가 썼길래.” 하고 중얼거리고는 소파에 내려놓았던 가방에서 지갑을 꺼냈다.
“이거 부모님한테 말할거야.”
엄한 표정 한번 짓지 않았는데 지완은 마치 크게 혼나기라도 한것처럼 아, 누나아- 하는 반응을 보였지만.
아니 그러면 어여 약 드시고 주무시는 겁니다... 식은땀이 줄줄 나신다면 아무리 봐도 아프신 것 같은데 무리하지 마세요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윤은채씨네 가족 중 유일하냐구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남동생 씨 넘 귀여운데 윤은채 씨 못 데려가면 남동생 씨라도 데려갈래요(안됨)
네가 어깨에 머리를 슬 문지르다 기대는 것에 지은은 너를 달래기라도 하듯, 네 머리를 토닥이듯이 쓰다듬으려 한다. "고생 많았어." 지금이라고 해서 힘들지 않고 편안한 시기냐 하면 그건 아닐 것이라 생각하지만, 일단 지나간 시기는 지나간 거니까. 네가 마주 되물어오자 지은은 잘 모르겠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이며 "글쎄-" 하고 대답한다. 네가 작은 웃음과 함께 다시 한 번 볼에 입을 맞춰오자 지은이 작게 웃음을 흘리며 네 이마에 입을 맞춘다.
지완이 고개를 움츠리는 것에 지은은 고개를 갸웃거렸다가 멎쩍은 듯이 뒷목을 매만졌다. 키가 (조금 많이) 크다보니 종종 받는 시선이기는 하지만 그럴 때마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도대체가 감이 안 잡힌다. 둘의 대화를 듣던 지은은 너를 바라보며 눈을 느릿하게 깜빡였다. 집에 친구를 데려온 적이 없는 걸까. 물론 지은이라고 해서 집에 사람들을 데려오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서도. 그보다는 누군가의 귀를 잡고 끌어내리는 듯한 네 행동이 처음 보는 류의 것이어서 다소 생소하고 신기했다. 음-뭔가 자신과 오빠가 겹쳐보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제게 주스를 건네는 지완에게 지은은 다시 한 번 고개를 까딱이며 고맙다고 말한다.
"네, 편하게 부르세요."
주위에 자신보다 어린 남자 지인은 많지 않은데다 본인이 오빠가 있는 입장이다 보니 누나라는 호칭은 다소 어색하게 느껴졌지만, 누군가 자신이 그리 칭하는 것을 막을 정도로 못 버틸 수준은 아니었다. 너희 둘의 대화를 가만히 듣던 지은은 다소 신기함을 느꼈다. 음- 우리 집은 저런 느낌은 아니니까. 그야 집안마다 그 분위기가 다르다는 것을 알고는 있어도 자신과 상반되는 느낌의 가족을 보면 아무래도 신기하게 느껴질 수 밖에는 없었다. 본인에게 가장 익숙한 건 자신의 가족과의 관계였으니까는.
어느쪽이든 푹 쉬시는 게 좋아 보이시는데... :< 어여 약 드시고 주무시는 겁니다!!(은채주를 이불로 둘둘) 아뉘 윤은채 씨도 제가 못 데려가고 남동생 씨도 못 데려가면 전 누굴 데려갈 수 있는 겁니까!!(당당) 아, 둘 다 안 되면 전 그냥 은채주 받아갈게요 >.0(<< 텐션 높은 자의 헛소리)
oO(내 이럴 줄 알았지) 롸... 안 주무시는 건 똑같다고 생각하지만 일단은 알겠습니다! 졸려지시면 10시 반이 아니어도 주무시는 거예요?(뽀담) 나름 프로 집사기 때문에 고양이 모시기는 자신 있다 이 마립니다~!~!(이거 아님 22) 아니 뭐 ㅋㅋㅋㅋㅋ 처음에 헛소리 한 건 저니까 받아주신 건 은채주가 아닐까요 °~° 하지만 저도 많이 좋아함다~~~(?)
oO(뎬쟝 간파 당했자너) 조금이라도 지은주와 잡담을 하기 위함이니 이해해달라귯??o.< (뽀담받)(맞쑤다다다담) 아니 일단 내가 고양이과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흠) 고냠미 집사가 아니라 댕댕이 집사여야 가능할 수도 있돠???(이거 아님 3트) ㅋㅋㅋㅋㅋㅋㅋㅋㅋ에이 누가 먼저 시작했든지 맞장구만 잘 맞으면 되는거샤~~~ (대체)
안이ㅋㅋㅋㅋㅋㅋ키에에에ㄱ!! 그게 왜 귀여운 거시야ㅋㅋㅋㅋㅋㅋ이해가 안되네ㅋㅋㅋㅋㅋ앗 물론 지은주도 귀엽지만(º∼º) 지은주도 오늘 하루 쫀 하루 보내길 바랄게잉~~ (≡^∇^≡) 일어난 뒤의 컨디션... 확언은 못하게찌만 그러케되길바라고 있워!:>♥ 쫀하루!!! 나중에봐~~~(ღゝν')ノ♥
중학생 때에도, 고등학생 때에도 참고 넘어간다면 괜찮을 거라는 생각에 스스로를 다독이며 참아넘겨냈는데 졸업식 날 네게 기다려줄 수 있냐는 말을 했을 때 그 말이 기점이 됐는지 유학 생활 내내 조금 더 스스로에게 솔직해질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네게 이렇게 솔직하게 힘들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됐어. 머리를 쓰다듬는 네 손이 느껴지자 슬 시선을 올렸다가 이마에 입맞추는 네 행동에 다시금 작게 웃음을 흘렸다. 너는 내게 긍정적인 변화를 많이 줬으니까 네게 고마워.
은채는 동생 지완의 뻔뻔하기까지한 요구에 귀를 붙잡고 끌어내리는 행동을 해보이다가 지은의 시선을 느끼고 귀를 잡고 있던 손에 힘을 풀었다. 잠깐 헛기침을 해서 조금 멋쩍은 기분을 털어낸다. 지완은 아프지는 않지만 괜시리 화끈거리며 얼얼한 감각이 느껴지는 귀를 벅벅 문지르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하게 지은에게 주스를 건넸다. 고맙다는 지은의 인사와 말에 지완은 꾸벅 고개를 숙여보였고 은채가 지갑에서 지폐를 꺼내서 건네는 걸 싱글벙글 웃으며 받아들었다.
“너 진짜 어디다가 썼는지 이야기 안할 거야?” “여자친구랑 데이트하는데 썼어. 데이트.”
얘 좀 봐? 은채는 흘기듯이 동생을 바라보면서 미간을 찌푸렸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고 그런 은채와는 다르게 지완은 얼굴에 웃음을 띄우며 “저는 방에 들어갈게요. 쉬다가 가세요. 지은 누나.” 지은이에게 다시 고개를 꾸벅 숙여보인 뒤 지완은 자신의 방으로 냉큼 들어갔다. 아프지는 않았지만 은채에게 또 귀가 잡힐까봐 겁이 난 모양이었다. 은채는 그런 동생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찌푸려진 미간을 손가락으로 눌러서 펴고는 고개를 슬 가로저었다.
“어떻게 보고 친해보인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차분하지만 조금 중얼거리는 목소리로 지은의 말에 대답한 은채가 방으로 걸음을 옮기기 전 “금방 올게.” 하고 이야기를 한다.
으악 내가 미쳤나... 저녁 먹기 전에 잠깐 잔다는 게 눈 떠보니 자정이라니...(이마 팍팍) 여유롭긴 여유로웠네요... 조금 지나치게... OTL 죄송한데 답레는 그냥 한 숨 더 자고 일어나서 달아둘게요! ㅠㅠ 이 시간에 깨어있으면 진짜 큰일날 것 같고 그냥 아예 아침까지 더 자버리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몸상태가 여전히 안 좋으시다니 너무 무리하지 마시고 남은 하루 잘 보내실 수 있길 바래요 ;×; 나중에 봬요! :> ❤
지은은 지완이 건네는 주스를 받아들곤 한 모금 마시며 너와 지완의 대화가 오가는 것을 지켜본다. 저게 일반적인 남매의 모습일까. 다른 남매는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니 (관심도 없고) 알 수 없었다. 그보다 여자친구인가. 문득 우리 가족 중에 내가 연애를 하고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굳이 말할 필요가 없어서 안 한 거긴 한데, 뭐 상관 없겠지. 지완이 인사와 함께 방으로 들어가자 지은은 다시 한 번 고개를 까딱이듯이 숙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사교성이 떨어진다던가, 낯을 가리는 것은 아니었지만 남들이랑 대화를 할 때에는 이왕이면 말은 최고한으로 줄이고 싶었다. 물론 은채는 예외다. 그게 사교성이 떨어지는 것이라 한다면 별 수 없지만.
"서로 장난치는 모습이 친해보이던데."
우리도 장난을 치긴 하지만, 저런 느낌이라기보다는... 오빠가 일방적으로 시비를 걸고 내가 화를 내는 느낌이니까는. 응. 친하다고 보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지 않나 싶었다. 지은은 방으로 걸음을 옮기며 은채가 하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천천히 와도 돼." 급할 것은 딱히 없으니까.
은채가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지은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집주인들이 전부 각자의 방으로 들어간 남의 집에서 손님이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주스나 홀짝이며 핸드폰이나 들여다 보고 있는 수 밖에는.
메모장으로 볼 때는 분명 더 길었었는데 이제보니 저 길이는 무엇인가... 양심 없는 텀에 이어 양심 없는 길이를 들고 온 지은주를 매우 치십쇼... ㅇ(-( 일단 답레 올려둘게요! 주무시고 계시다면 오늘 하루 고생 많으셨고 잘 자요! 많이 좋아하고 나중에 봬요! :> ❤
졸업하기 전까지는 동생이랑 이렇게 대화할거라고는 생각 못했는데. 지은이의 말에 은채는 짐짓 진지하고 심각한 표정으로 차분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쌍둥이들은 누나가 된 자신을 중학생 때까지만 해도 나름대로 어려워했었다. 기분 탓일지도 모르지만. 방으로 들어가기 직전 은채는 잠깐 걸음을 멈추고 지은이를 흘끗 곁눈질로 바라보다가 다시 가까이 다가와서 닫힌 지완의 방문을 잠깐 본 뒤에 지은이의 뺨에 손을 감싸쥐며 “금방 올거니까 잠깐만 기다려?” 고개를 숙이고 가볍게 입을 맞추며 작게 속삭였다.
방으로 들어온 은채는 옷장 문을 연 채로 한숨을 깊게 내쉰다. 눈치챘겠지. 지완이. 동생이 부모님에게 누나가 친구를 데려왔다고 할 성격은 아니지만. 대부분 옷들은 대학 기숙사에 가져갔기 때문에 집에 남아있는 옷은 몇벌 없었다. 고등학교 때 입었던 교복과 고등학생 때 입었던 드레스 몇벌과 그 외 이제는 맞지않는 옷들 몇벌. 얇은 천에 감싸져서 걸려있는 드레스들을 뒤져보던 은채는 졸업 직전에 입었던 드레스를 꺼내서 방에 놓여져 있는 쇼핑백에 잘 정리해서 넣었다. 그나저나 드레스도 몇벌 없네. 키가 커가면서, 나이를 먹으면서 버리기도 했으니까 당연할 수도 있고. 버릇처럼 목에 걸고 있던 십자가 목걸이의 줄을 손으로 잠시 매만지다가 손을 떼어내고 드레스를 넣은 쇼핑백을 집어들고 방을 나섰다.
“지완아. 누나 나갔다 올게.”
동생의 방을 향해 말을 하자, 닫혀 있던 방 안에서 “알았어!” 하는 말과 함께 지완은 방 밖으로 몸을 쭉 빼고 누나인 은채를 보고, 지은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장난기 많은 눈빛으로 지은을 보던 지완은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그그 뭐더냐. 이제 남지은씨 집으로 가면 될 것 같워!! (?) 나도 지금 메모장으로 썼을 때는 길어보였는데 길이 왜이러니????⊙.⊙;; 양심없는 텀이라니 피곤하거나 그러면 어쩔 수 없G! 갠차나 갠차나~~~ (뽀담뽀담) 나도 답레 올려놓고 현생을 시작하러 가볼게잉~~~ v(@❛ν❛)v 지은주도 오늘 하루 고생 많았워! :> 남은 하루도 화이팅이야!!:>♥ 마니 조아하구 나중에 봐(ღゝν')ノ♥
24시간 내내 피곤해서 골골거리고 있으니 그게 문제지만요... OTL(뽀담받)(맞쓰담) 그리고 은채주 답레는 길이 괜찮아 보이는데요! :3 어젯밤에 푹 주무셨길 바라고 오늘 하루도 화이팅이예요...! 어제보다는 조금 더 여유로운 하루가 되셨으면 좋겠네요. 일단 제가 지금 당장은 뭘 좀 하고 있던 중이어서 답레는 나중에 천천히 써서 올려둘게요. 저도 많이 좋아하고 나중에 봬요 :> ❤
네가 진지하고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이는 말에 지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친해보이지 않는데 굳이 친해보인다고 거짓말을 할 필요는 없었으니 진심이었다. 그야 사람들마다 제각기'친하다'는 말의 뜻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또 다른 누군가는 나와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적어도 지은이 보기에 남매치고는 상당히 친해보였다. 지은은 네가 방으로 들어가려다 멈춰서는 것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가 가까이 다가와 뺨을 감싸쥐며 가볍게 입을 맞추어 오는 것에 지은은 작게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여기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을게." 나 기다리는 건 잘하니까. 너도 알잖아. 지은은 제 뺨에 닿아왔던 네 손을 잠시 감싸듯이 쥐었다가 금방 놓아주었다.
네가 방에서 드레스를 찾을 동안 지은은 거실 소파에 앉아 얌전히 핸드폰을 들여다 보았다. 별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는데다 이리저리 집안을 쏘다니며 구경하는 것도 실례니까. 애초에 평범한 가정집에 그렇게 구경할 게 많으리라고 생각하기에도 어려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은 본인이 다른 사람 집에 그렇게 관심을 두는 편도 아니었고. 집 자체는 모르겠고 네 방 정도라면 조금 구경해보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일단은 참기로 했다. 오늘은 집안에 다른 사람도 있는데 사전 언질 없이 무작정 온거니까는. 거실 소파에서 벗어났을 때는 쥬스를 다 마시고 네 집에 부엌으로 향할 때였다. 다 마신 컵을 거실에 내버려두는 것도 좀 그렇고. 지은은 싱크대에 빈 컵을 가볍게 헹궈서 넣어두었다. 지은은 다시 거실 소파로 되돌아왔고, 너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방에서 쇼핑백을 가지고 나왔다. 지은은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소파에서 일어서다가 지완의 장난기 가득한 눈빛에 몸을 움츠렸다. 저 눈빛, 왠지 오빠의 눈빛과 닮아 있다.
"네?"
보통 형제의 친구에게 그런 말을 하나 싶어 눈을 깜빡깜빡 거리다가 뒷목을 매만졌다. 뭐, 오빠도 어쩌다가 내 친구들과 마주치면 날 놀리려고 그런 말을 했던 것도 같고. 그런 것 치곤 뭔가 찜찜하긴 했지만 그런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두고 깊게 생각하는 것도 조금 웃기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은은 잠시 지완을 바라보다가 너에게로 시선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