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칫! 재채기를 하고 냉장고로 이동한 지 얼마되지 않아, 선반에 있던 컵 하나가 크게 흔들려 갑작스레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챙그랑! 살벌한 소리를 내며 산산조각났군요. 이런. 다행히 날카로운 조각이 여러분을 스치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그런데, 마치 타이밍에 맞춰 누군가가 컵을 일부러 민 것 같은 움직임이었다면.. 기분 탓일까요?
냉장고의 검은 자국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다만.. 묘하게 걸죽한 것이 굳은 듯 두께감이 있는 모양이군요. 뭐, 별 거 아니겠지요.
휴미는 식당으로 향하기로 했습니다. 식당에는 쓸쓸하고 적막한 분위기만이 감돌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에는 여기서도 가족이 모여 단란하게 식사를 했었겠지요. 낡고 지저분한 식탁보가 씌워진 식탁과 의자, 그리고 한 쪽에 아무렇게나 밀려 놓여져 있는 서빙용 트레이가 보입니다.
휴미는 종잇조각을 집어 살펴봅니다. 단정한 글씨체로 적힌 그것은, 누군가의 일기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1986년 5월 26일, 월요일
드디어 오늘, 새 집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산 속에 위치해 있어 시끄러운 도심 속 소음과도 멀고, 공기도 맑다. 이 곳이라면 ---의 병도 금방 낫게 되겠지. 모든 것이 문제 없이 순조롭다. 일도, 가정도, ---의 병세도. 앞으로도 지금까지처럼, 단란하고 평화로운 일상이 계속되기를.
요 근래 새로운 집에 적응하는 시기여서인지, 악몽을 꾸는 일이 빈번해졌다. 아마 잠자리가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겠지. 이사온 지 이제 일주일 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꿈 치고는 지나치게 생생한 꿈을 꾸니, 싱숭생숭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건 둘째치고, 요즈음 ---가 조금 밝아진 것 같다. 어제 저녁식사 시간에, 새로운 친구가 생겼다고 신이 나서 자랑을 해 댔다. 운 좋게도 이 가까이에 사는 또래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나마 ---라도 새로 이사온 이곳에 잘 적응하는 것 같아 기쁘다. 병세가 더욱 호전된다면, 그보다 더 기쁠 수는 없을 것이다.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는 소파가 보입니다. 원래 색이 무엇인지도 추측하기 힘들 정도의 잿빛으로 변해버린 소파는, 예전이었다면 꽤 푹신했겠지만... 지금은 단지 대형 쓰레기에 불과할 뿐입니다. 금방이라도 스프링이 뿅! 하고 튀어나올 것 같은 느낌이군요. 소파 밑에는.. 슬프게도 작은 먼지 덩어리가 몇 개만이 굴러다니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거실 벽에는 깨진 채 먼지를 뒤집어 쓴 액자와, 벽시계 따위가 보입니다. 뻐꾸기 시계군요. 슬프게도 9시 즈음에 멈춘 채로 작동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제 거실에 남은 건 화초와 벽난로 정도군요. 더 조사해 볼까요?
휴미는 유리병을 챙기기로 했습니다. 적당히 큰 크기에 적당히 묵직한 무게로군요. 유사시에는 적을 내리치기 딱 좋은ㅡ 아닙니다. 꽃을 꽂아 놓기에 딱 좋은 병입니다. 어디에 사용될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챙겨 두면 어딘가에 쓸 수는 있겠지요.
휴미는 고용인의 방으로 향했습니다. 고용인의 방은 누군가가 급하게 떠난 것처럼 어수선했습니다. 옷가지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것은 물론, 작은 물건들이 뽀얗게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여기저기 제멋대로 흩어져 있군요. 작은 침대와 옷장, 서랍장 정도가 보입니다.
>>991
어쩐지 찝찝해진 기사님은 싱크대 바닥을 조사하는 것을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그럼요, 뭐가 섞여 있을지도 모르니 신중한 선택을 하는 것이 좋겠지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 이런 것이 있었다는 것은 기억해 두도록 합시다. 기다란 집게같은 것이 있으면 물을 뺄 수 있을 텐데요.
기사님은 서재로 향했습니다. 어라? 그런데, 서재의 손잡이가 돌아가지 않습니다. 보아하니 열쇠가 있어야만 문을 열 수 있을 것 같네요. 다른 곳을 조금 더 찾아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