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적대할 이유는 없다. 처음 만났을 때는...... 그건 농담...... 이었다고 생각하는데... 일부러 들어오는 타이밍에 맞춰서 준비했는데... 농담을 그런 식으로 하면 안 되는 거였나...?"
여러모로 지식이 좀 부족합니다. 창세기부터 지금까지 지옥 밑바닥에 있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합니다.
"계속 여기 있으면 좋겠지만 '개발사'라는 녀석들이 그냥 두지 않을 거라는 모양이다. 그래서 일부러 저쪽 세계와 연결할 수 있는 기계가 있던 거처에서 나와 여기로 옮겼는데, 여기도 언제까지나 안전하진 않을 거라 하더군. 제단에 주소를 적어둔 건 용사다." "그럼 말 나왔던 것처럼 실종신고나 연락단절 건에 대해서는 아시는 거 없으세요?" "글쎄, 나도 잘은 모른다. 주변 사람들이 말려들지 못하게 하려고 했거나, 정보가 새어나가지 못하도록 막은 것이 아니었을까 추측 정도는 해보겠다만." "...역시 사장님 말씀대로 건빵이가 돌아와야 하겠네요."
그리고 그때, 누군가가 급하게 들어와 문을 잠급니다. 사진으로 한 번 봤던 그 사람, 건빵천국입니다! 건빵천국은 과자나 음료수가 든 검은 비닐봉투를 탁자에 내려놓습니다.
"건빵아!" "개발사 사람들이 쳐들어왔어! 잠깐만, 사람이 많은데...?" "너 찾는 거 도와준 고마운 분들이야!" "감사합니다! 근데 지금부터 개발사랑 싸워야 할 것 같거든요! 뒷문으로 피하세요!"
창문 밖으로 사람들이 보입니다. 저 높은 담을 어떻게든 넘어서 들어오네요. 그들은 마당을 밟으며 거침없이 전진중입니다!
"어차피 찾는 건 우리니까 쫓지 않을 겁니다. 싸운다고 표현했지만 저녀석들 목표는 제압이랑 루시퍼 확보일거예요. 그리고 얜 장치만 옮기면 어떻게든 돼요! 물론 좀 무겁고, 다시 설치 할 때까진 못 나오겠지만요!" "...세계 하나를 파멸의 구렁텅이에 넣을 수 있던 내가, 지금은 그냥 짐덩이로군." "사진도 보셨습니까? 아니, 참, 실종 수색이면 당연하겠네요. 안녕하세요, 건빵천국입니다. 회수되면 아마 오류 수정해서 이것저것 건드린 다음 다시 게임에 넣겠죠? 이 녀석은 최종보스니까요. 없으면 안 되고, 새로 짜기엔 늦었어요. 녀석들은 이미 인터뷰로 1주일 안에 루시퍼를 다시 내보내겠다고 공언한 상황입니다."
그렇습니다. 도망쳐도 이쪽은 가장 심한 꼴이래봤자 제압 당하고 루시퍼를 뺏기는 것이 전부입니다. 해커짓을 먼저 한 건 이쪽이니 불법침입에 대한 죄는 물을 수 없겠죠.
전투에 들어가신다면 개발사 직원들을 제압해야 합니다. 도주하면 다음 진행 레스로 진행이 끝납니다. 시간이 늦었으니 도주도 나쁜 선택은 아닐 거예요.
"도주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의뢰인이 의뢰하지 않았다면 딱히 엮일 일도 없었고. 라고 생각하고는 가져다 바친다는 말에
"가져다 바친다는 것을 앞에서 말하다니... 물론 상관은 없다만은." 고개를 끄덕입니다. 좋게 생각하자면 개발사에서 저 건빵천국을 특채로 스카웃해도 이상하진 않겠군. 이라고 느리게 말하며 애초에 섭종한다면 하나 빼내도 상관없지 않겠나. 사실 버그가 생겨서 자아가 생긴 프로그램은 꽤나 흥미로운 소재일 거지 않겠나. 라고 말하고는 나갈 거면 나가게나. 나도 나갈 거니. 라고 말합니다.
"의뢰는 친구를 찾는 것 까지였으니까요. 지금까지 감사했습니다. 가시는 길에 별 일 없기를 바랄게요." "뒷문까지는 내가 안내하겠다."
건빵이는 여러분을 향해 친구를 도와줘서 고맙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보이고, 상황을 살피고 여차하면 협상에 나가야 하는 건빵이 대신 루시퍼가 뒷문으로 여러분을 안내합니다. 뒷문은 마당이 좁아서 밖으로 빠르게 빠져나갈 수 있었습니다. 개발사 직원들은 아직 여기까진 오지 않았는지, 눈치채지 못 한 것 같네요. 다행입니다. 사무소로 돌아가며 여러분은 안에서 이런저런 소리가 나는 걸 들을 수 있었습니다. 협상일까요, 전투일까요? 협상이었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이후 그들은... .dice 1 100. = 15 1~20 배드 21~70 노멀 71~100 굿
얼마 후, 헤븐즈 판타지아에 루시퍼가 다시 등장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새로운 기술과 패턴으로 무장한 강력한 보스가 되어서 돌아왔지요. 유저들은 이벤트 보상과 새로워진 보스에 환호하며 다시 루시퍼 레이드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최대 인원수를 채운 파티들이 차례대로 루시퍼에게 도전했습니다.
그리고 가끔 한 유저가 홀로 레이드에 도전하곤 했습니다. 소문에 따르자면, 몇 차례나 있었던 대규모 업데이트에도 변함없이 랭킹 1위를 지키고 있다는 그 유저는 보스와 전투가 아니라 대화를 하고 돌아온다고 합니다. 대화 내용은 알 수 없지만, 가끔씩은 친구도 데리고 말이예요.
언젠가는 누군가가 루시퍼를 잡는데 성공하고, 이 게임도 막을 내리겠지요. 그들의 대화는 모든 챕터가 끝나고, 서버가 꺼지는 날까지 계속 될겁니다.
서버가 끝나면 루시퍼의 데이터를 얻는 대신 독자적으로 개발한 홀로그램 기술을 내놓기로 했으니 서버가 꺼진 다음에도 대화는 계속되겠네요. 게임 속 강대한 보스와 유저로 만나는 건 아니겠지만요.
어 아뇨 배드라도 그렇게 엄청 나쁘고 그러진 않아요... 제가 해피엔딩을 매우 좋아하는 편이라...
노멀 : 루시퍼는 회수당하고, 건빵이는 회사에 취직당합니다. 당한 겁니다. 대신 루시퍼를 전담하고 동시에 홀로그램 기술을 연구하게 됩니다. 배드에서는 뺏겼지만 여기서는 자기 기술로 인정받아요. 굿 : 게임에 이벤트 영상이 올라옵니다. 인간의 몸을 차지하기로 결심한 루시퍼가 랭킹 1위와 싸우다 그 몸을 장악하는 영상이죠. 회사에서는 '야 우리 랭킹 1위랑 최종보스 있는데 뭐 못 하냐?'라고 생각해서 그냥 둘을 합쳐버린 겁니다. 건빵이 아바타를 복제해서 거기 루시퍼를 집어넣고 유저들이 사용했던 스킬과 기존 루시퍼 스킬을 복합적으로 사용하는 보스가 됩니다. 대신 체력이 낮아지는 등 유저들을 위한 패널티가 좀 붙습니다. 잡으면 건빵이 아바타가 칼로 자기 배를 찌르는 동시에 루시퍼가 망령 빠져나가듯 사라지는 컷씬이 나오고, 게임 속 세계에서 빛으로 된 꽃비가 내리는 가운데 4대천사가 잡은 파티의 파티원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주며 영웅이라 칭송합니다. 그리고 이후 게임은 후일담 격으로 즐거운 파티가 이어지다가 섭종합니다. 원래 엔딩은 이거였습니다.
사실 재현주가 말한 부분은 이미 과거사를 통해 나왔답니다. 아니마 매매단 그룹 138과의 싸움에서 부상을 입고 동물로 변해 숨어있던 해리를 이사벨이 버려진 파충류인 줄 알고 주워다가 기르려고 했는데 알고 보니 아니마여서 함께 동거하게 되었고(난데없이 나타난 해리를 자기 집에서 쉬게 했다는 점이 이사벨이 대인배임을, 그리고 해리가 그런 그녀의 상냥한 마음에 점점 얼어붙은 마음이 녹아내렸다 할 수 있죠) 나중에 해리의 생사를 확인한 친구이자 라이벌 아리에스(양 아니마)가 그들의 조직 보스에게 사정을 설명해 잠깐 동안만 같이 지내려 했는데 해리는 이사벨과 함께 제2의 삶을 살고 싶어서, 그리고 그녀가 위험한 일에 휘말리고 싶게 하지 않아서 조직을 떠나겠다고 말해 아리에스랑 욕 한사발 오고 가며 싸운게 지금까지의 이야기입니다. 이제부턴 그 긴 과거사의 끝을 향해 쓸 생각이에요.
아리에스와 싸우고 나서 침울한 기분으로 돌아온 해리는 이사벨을 찾았으나 집 안이 조용하고 불이 꺼져있음을 알자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사벨...?"
이사벨의 이름을 부르던 해리는 직감적으로 일이 단단히 꼬였음을 깨닫고 불을 켰고 방 안이 난잡하게 어질러져 있는 것과 이사벨이 보이지 않는 것을 알고 주먹을 쥐며 몸을 떨었다. 아무래도 상상하고 싶지 않은 일이 일어난 모양이었다. 이 상황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욕지거리와 함께 머리를 쥐어싸매고 고민하던 해리는 탁자 위에 놓인 쪽지를 보고 그것을 펼쳐봤다.
[이곳에서 북동쪽으로 300m 떨어진 폐공장으로 혼자 올 것. 동행인이 있거나 하루가 지나기 전까지 오지 않을 시 여자의 목숨은 없다. 숨어 지낸다고 해서 네 과거거 영원히 잊혀질 거라 생각하지 마라. - 아니마 매매단 그룹 138]
"...최악의 상황이구만. 이 망할 것들의 머리통을 죄 부숴버리고는 싶지만... 젠장! 이래서 내가 엮이기 싫었다는 거라고."
분노를 토해내며 쪽지를 구겨 내동댕이친 해리는 불현듯 뭔가를 떠올리곤 중얼거렸다.
"아주 작은 가능성이지만... 해볼가치는 있겠지."
"해리! 무사했구나!"
"어디서 뭘 하고 있었던거야?! 아리에스가 보스에게 몇번이고 죽을 뻔 했다고!"
"너희 다 닥치고 있어봐. 지금 너희랑 이야기를 할 시간이 아니야. 아리에스 놈은 어디 있어?"
"아까전부터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면서 자기 방에 혼자 틀어박혀 있어. 뭔 일이 있었던 거야?"
"나중에 그놈한테 실컷 들어."
조직으로 돌아간 해리는 조직원들의 걱정과 궁금증이 섞인 질문을 모두 무시하고 아리에스의 방 앞으로 다가가 말했다.
"아리에스... 이제 와서 무슨 낯짝으로 기어왔냐고 하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우리 조직의 도움이 필요해. 이사벨이 납치됐어. 아니마 매매단 그룹 138이 어떻게든 내가 숨어있던 곳을 찾은 모양이야. 난 그녀를 구하러 갈 거고 그래야만 해."
"......"
"동행해달라는 소린 안하겠어. 다만... 만약 내가 죽으면 이사벨을 구할 사람이 없을테니 내가 가고 나서 30분 뒤에 조직원들과 함께 여기 기준으로 남쪽에 있는 폐공장으로 와줘. 하다못해 그녀의 안전만큼은 보장해 달라는 거야. 네가 어떻게 생각하든 우린 조직 내에서 친구이자 라이벌로 불린지 10여년이 흘렀어. 네가 아니면 이 부탁을 들어줄 사람이 없단 말야. 마지막으로 부탁한다... 그녀를 구해줘."
자신의 과오를 사과하며 아리에스의 도움을 요청하는 해리의 부탁에도 아리에스의 방에선 침묵만이 흐르고 있었다. 그렇게 대답 없는 방에서 서있는지 얼마나 지났을까, 해리는 마침내 포기한듯 말했다.
"......됐어. 시발 때려치우자고. 어차피 기대도 안했어. 우린 조직이 아니면 제대로 된 인생을 살 수 없는 쓰레기들이니까 해피 엔딩 따윈 있을 수 없는 일이겠지. 그래도 친구이자 라이벌로서 뒤지러 가기 전에 마지막 충고 하나만 하고 꺼지마. 옳은 일을 한다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을 겪을 때도 있는 거고, 항상 올바른 편에 있을 수만은 없는 거야. 그런 일을 겪는 게 두려우면 평생 그 순결의 저택에나 틀어박혀 지내시지."
그렇게 비난 섞인 충고를 끝낸 해리는 다른 조직원들의 질문을 모두 무시한 채 이사벨을 구하러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