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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 수는 없을 것 같다더니, 엄청 잘 싸우네. 혼자 춤을 추듯 학살극을 벌이는 스칼렛을 보며 리코는 속으로 감탄했다. 엄청 강해, 운전도 할 수 있고… 스칼렛은 엄청 강한 어른이구나! 그렇게 감탄하는 것도 아주 잠시였다. 끊임없이 몰려오는 크토니안이 감탄할 시간도 제대로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단 다시 공격을 해야 한다. 리코는 재빨리 옆으로 뛰어, 한번 더 달려든 크토니안의 공격을 훌쩍 피한 후 달려들었다. 대형급은 아니더라도 리코가 올라탈 정도의 덩치는 있었기에 리코는 그대로 발톱을 박아 올라타서 목을 물어뜯으려고 했다. 아까의 복수야, 하고 속으로 작게 중얼거리면서.
뒤늦게 리코가 곁에서 떨어진 것을 깨달은 유페미아는, 한 달음에 리코 곁으로 달려간다. 아니, 정확히는, 달려가려고 했다. 머리가 두 개에, 보통의 두더지의 몇 배로 비대해진 두더지 크토니안이 유페미아의 가는 길을 막았기 떄문이다. 이런 근거리에서는 총알이 아깝다고 판단한 것인지, 유페미아는 두더지 잡기를 하듯이 라이플의 개머리판으로 두더지 크토니안을 때려잡고는, 멀리서 다가오는 두 마리의 크토니안의 실루엣을 향해 총알을 날린다.
스칼렛이 싸우는 모습을 보고 싸움꾼으로서 순수하게 감탄한다. 춤추듯 학살하는 모습은 명백히 본을 받아야 할 실력이었다. 확실히 시카의 딸들이 강하긴 하다. 그때 루르 스노우드롭을 죽였으면 쳰위의 말대로 이런 상대들과 아예 척을 졌을테고...음. 떠오르는 회의적인 미래에 마리야 그레고로브나는 매우 침착해졌다.
그나저나 어디서 이렇게 대형으로 밀려오는 거야?
자신도 나름 선전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베면 벨수록 숫자가 늘어나니 전세가 불리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렇다고 도망을 가면 알파 지구로 저것들을 끌어들이는 셈이니 여기서 막아야 할 테고. 결국 이를 악물고 달려들다, 크토니안 하나에게 명치를 맞고 저만치로 날아가 나무에 부딪힌다. 폐 속에 공기가 사라진 듯한 고통에 헐떡이며 의식을 찾으려 노력한다.
점점 밀려드는 크토니안에 스칼렛마저도 지친 모습을 보였습니다. 헉헉 대면서 숨을 몰아쉬다가 복부를 크게 가격당해 기침과 숨을 몰아쉬다가 다시 고개를 들고 베어넘기고 찌르기를 몇번을 했을까요. 잠시 쉬어가는 타임인지 뒤로 슬슬 물러났을 때 보인것은 아까보다 이상하리만치 더 많아진 크토니안들에 둘러싸여버린 광경이었습니다. 보통은 바로 달려드는 족속들이었을텐데 대치만 하고있다는게 이상하다는 생각을 할 때 쯤 다시 크토니안이 달려들었고 괜찮아요? 하고 고개를 돌렸던 스칼렛을 덮친 크토니안은 스칼렛의 두 팔을 양발로 꾹 누른채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채 당장이라도 스칼렛을 물어죽일 것 처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특이점이라면, 그 한마리를 제외한 나머지는 거리를 둔채 노려보기만 하다가 저 숲속 멀리에서 들려오는 기괴하고 뒤틀린 울음소리에 고개를 번쩍 들더니 등을 돌린채 사라져갑니다. 스칼렛을 덮친 그 한마리만 빼고요.
" 이.. 개.. 저리..비켜..! "
체급차이에서 오는 힘을 어쩌진 못하는지 몸을 비틀기만 할 뿐인 스칼렛의 목을 물고 던져버린 크토니안은 다시 달려들어 스칼렛을 덮치고 양 손을 꾹 누른채로 마지막 한 방을 준비하는 듯 낮은 울음소리를 냅니다. 구해야할까요, 시카의 딸인데도?
이상해, 아까보다 더 늘어난 것 같아. 리코는 주위를 곁눈질로 보며 가쁘게 숨을 몰아 쉬었다. 공격하고 공격해도 수가 줄어들기는커녕 더 늘어나는 것 같다. 서로 지쳤다는 걸까, 잠시 찾아온 대치상황에 의아함을 품을 즈음 다시 크토니안이 덮쳐왔다. 뒤를 돌아보고 있던 스칼렛이 크토니안에게 깔린 것을 보자 리코는 곧바로 튀어나갔다.
“저리 가!”
최후의 일격이라도 준비하는 건지, 낮은 울음소리를 내는 크토니안에게 달려든 리코는 그대로 날카로운 발톱을 내밀고 팔을 휘둘렀다. 가능하면 얼굴 쪽을, 그것도 눈에 맞기를 노리며 휘둘렀다. 대놓고 얼굴 쪽을 노린다면 크토니안이 공격을 중지하고 방어를 할 가능성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치명상을 입히기도 좋은 부위니까-라는 것을 생각하며 했다기보단 그냥 본능적으로 달려든 쪽에 가깝지만.
유패미아에 의해 일으켜진 뒤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전투가 가능하고 영구적인 상처는 없는 것 같으니 괜찮지 않을 이유가 없다. 스칼렛의 괜찮냐는 말에 대답해 주려고 애쓰며 크토니안을 베어 넘기다 이변을 눈치채곤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한 치의 고민도 없이 스칼렛을 덮친 크토니안에게 달려들어 검을 휘두르려고 한다. 물론 상대는 시카의 딸이지만, 그렇게 나온 반론은 매우 가볍게 제껴 버렸다. 지금 와서 구하지 않을 거면 루르 스노우드롭을 살려둔 의미가 없기도 하고, 저걸 내버려뒀다간 다음 표적이 자신들(최악의 경우에는 알파 지구 그 자체)가 될 확률이 높으며, 자신들은 허수 지구의 생명들을 구하는 것이 주 목적이었는데 스칼렛이 죽으면 그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는 게 주 이유였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 도망치면 아빠가 실망할 것 같다는 게 가장 큰 이유지만 그건 일단 그러려니 하자. 아무튼 도망쳐야 할 이유보다는 스칼렛을 구해야 할 이유가 더 많았다.
한 번에 3연타를 당한 크토니안은 괴성을 지르며 떨어져나갔다가 다시 노려보다간 이내 등을 돌려 다른 무리를 따라 숲 속으로 돌아갔습니다.
" 고마워, 디지는줄 아라써.. "
스칼렛은 헙, 하고 제 손으로 입을 막고는 창피하다는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뭔가 이상해. 너무 이상해. 하고 몇 번을 곱씹던 스칼렛은 더 진행하는건 무리일 것 같으니 나중에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말합니다. 그래도 소득이 아예 없지는 않다는 말도 했습니다. 아직 이론에 불과하지만 분명 크토니안은 무리생활을 하지도 않을터인데 방금 그 행동은 무리의 알파의 소리에 물러난 것 같다고 혼자서 중얼거리다가 이 상태로는 무리겠네요. 하고 한마디를 하곤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조만간 다시 연락을 주겠다는 말과 함께요.
그는 말없이 상하로 흔들리는 제 손을 바라보았다. 걱정이 괜한 것임을 알려주기라도 하듯 유페미아의 팔은 튼튼하게도 움직여주었다. 그리고 나이가 오십이니 안심하라고. 그러니까…… 다행이라 생각하지만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려운 소리다. 오십대 인간이 얼마나 약할지 어떻게 알고. 유감스럽게도 야오쳰위는 노년에 가까워가는 중년인을 대해본 경험이 전무하다 할 수 있을 정도로 부족했다. 그런 관계로 유페미아의 장담에도 그는 눈을 조금 굴리다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그런가요?'하며.
"제 근처에 있었던 인간들은 정확하게 맞혔는데, 저한테는 발치에만 쐈었거든요. 그래서 그렇게 생각했어요."
젤러시 건도 있고요. 그러며 그는 상대 쪽으로 손바닥을 펴더니 말 한마디에 한 번씩 손가락을 접었다. 타뷸라의 늑대 사건에 대한 대답은 이것으로 충분했을 것이다.
"음…… 그건 그거 아닐까요? 데미휴먼에게 조금 관대하게 대해주는 것 뿐이지, 방해되는 행동을 끝까지 용인해주지는 않은 거."
솔직히 말하자면 약간 봐주는 정도라고 생각해요. 말은 그렇게 끝맺어졌다. 습관적으로 입꼬리를 올려 웃으려다, 방금까지 나누던 대화의 내용을 떠올리고선 입을 가린다. 여기선 아마 웃으면 안 되겠지. 그는 괜히 따지도 않은 캔을 들여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