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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새벽에 맞닿은 야심한 밤, 유페미아는 자신의 애마인 오프로드용 지프 트럭을 타고 질주한다. 몰래 '벽'을 월담해, GPS 추척기를 외골격 틈에 삽입한 순수 크토니안 세 마리를 방생해 주고 돌아오는 길이다. 희귀한 순수 크토니안을 한 마리도 아니고 세 마리나 잡다니, 오늘은 정말로 운수 좋은 날이었다.
유페미아는 순수 크토니안을 방생할때, '벽'에서 5km 남짓한 구간부터는 차를 세워 번호판을 떼어낸 후, 도로를 벗어나, 수비가 엉성한 구간을 찾아서 '벽'의 굴곡을 따라 멀리서 빙 돌곤 했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다시 포장도로에 다다른 유페미아는, 떼어냈던 번호판을 다시 달기 위해 길 어귀에 차를 세운다. 차량 번호표를 달고 허가 없이 '벽' 부근을 알짱거리는 게 의심을 사기 딱 좋은 행동인 것 만큼, A지구 시내를 차량 번호판 없이 달리는 것도 의심을 사기 좋았으니까, 사람이 오가는 대로에 들어서기 전에 다시 번호판을 부착하는 것이다.
차량 글로브박스에서 소켓렌치와 드라이버, 그리고 주인공격인 번호판을 꺼내 내리려는데, 길 가에 서있는 인영이 보인다.
순간, 연구실에서 일하던 '로버트 초이'라던 학생이 이야기해준 '자유로 귀신'이라는 이야기가 떠올라 겁이 나지만, 그런 비과학적인 생각은 도로 집어넣기로 한다. 암, 귀신보다는 자신을 쫓아온 수비대라든가 한적한 곳을 달리는 차량을 노리는 차량 강도라든가가 가능성이 더 높...이런, 그게 더 무섭잖아!
유페미아는 그럼에도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지프차의 창문을 살짝 내려 수수께끼의 인영에게 말을 걸어본다.
"...누구시요?"
//아무 때나 괜찮으시다기에 정말로 아무렇게나 썼는데 상황이 너무 특이한 상황은 아닐까 걱정되네요...!
벽에 대해 생각하는것은 뫼비우스의 띠를 보는 것만 같다. 벽으로 안과 밖을 나눠서 밖을 경계하고 안을 보호한다지만, 도대체 어디가 안이고 어디가 밖인지도 모르겠을 때가 가끔 있을 뿐더러 밖에있는 위험한것들로부터 안을 지키려는 것인지, 아니면 밖에 있는 안타까운 이들을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용도인지. 가끔은 헷갈릴 때가 있었다. 벽 밖에 있을 허수지구. 그 곳에는 분명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고, 벽 밖의 그 사람들은 하루하루 죽음과 줄타기를 하며 살고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괜시리 씁쓸해졌다.
늦은 시간에 굳이 벽 까지 나온것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것은 아니었다. 그저 바람 좀 쐬면서 산책이나 할 겸, 그리고 혹시 벽 뒤에 있을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도 해볼겸. 그리고 어쩌면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 그런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불현듯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 때 왜인지 뒤에서 라이트가 비추어왔고 멈칫하고 뒤를 돌아봤을 때 지프차의 창문이 내려가고 누군가가 '누구냐'고 물었다.
" 아, 반가워요! 스칼렛 다이아몬드라고 합니다. "
새파란 하늘같은 긴 머리에, 쫑긋 솟아있는 파란색 귀 그리고 어딘가 짧아보이는 꼬리에 특이한 점이라면 그 새파란 머리 가운데 있는 한 줄의 흰 머리. 자신을 스칼렛이라 소개한 데미휴먼은 방긋방긋 미소를 지으며 이 근방은 위험하니까 얼른 들어가는게 좋을거에요. 하고 덧붙이며 주먹으로 벽을 톡톡 쳤다. 이게 우리를 지켜준다고는 하지만, 글쎄요. 정작 이 도시를 지키는건 벽이아닌 다른 사람들일텐데.
다행이다. 수비대도, 차량 강도도 아닌 것 같다. 아니, 후자야 유독 친절한 차량 강도라면 아직 가능성이 남아있을 수도 있겠지만... 수비대는 데미휴먼을 고용하지 않으니, 일단 전자는 확실히 아닌 것이다. 수비대가 아니라면야, 이름 정도는 알려줘도 괜찮겠지.
"위험하지. 위험한 곳이지만... 그러는 스칼렛 군도 이 곳에 있지 않은가."
라고 말하며 유페미아는 미소짓는다.
"이런 곳을, 이런 시간에 나오는 사람은 정말로 드문데, 반갑네. 스칼렛 군은 어떤 연유로 이곳까지 나온 겐가?"
이렇게 말하면서도 유페미아의 눈은 스칼렛의 귀와 꼬리를 훑는다. 딱히 데미휴먼을 차별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고-유페미아는 데미휴먼도 '병이 있을 뿐'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스칼렛이 어떤 동물의 데미휴먼인지 궁금해서이다. 그런 거야 그냥 물어보는게 가장 간단한 방법이지만, 생물학자의 자존심에, 이런 건 척하면 척하고 알아 맞출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버린 것이다.
쉽게 죽지도 않을테고, 쉽게 죽을 수도 없거든요. 하고 말한 스칼렛은 얼굴 가득 미소를 지어보였다. 시종일관 웃는얼굴을 유지하는 스칼렛은 자신을 훑어보는 유페미아의 눈을 보고는 제가 어떤 데미휴먼인지 궁금하신가봐요? 하고 말했다. 어떤 연유로 나왔느냐 - 는 질문에 스칼렛의 머리속에는 많은 생각이 돌아다녔다. 딱히 특별한 이유가 없어서 뭐라 말하기가 애매하단 말이지.
" 음. 고양이의 데미휴먼이에요. "
궁금하시다면 알려드릴게요. 그리 어려운것도 아니니까. 스칼렛은 그렇게 덧붙였고 다시 주먹으로 벽을 톡톡 쳤다. 언제까지 버텨주려나, 궁금한데.
스칼렛은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킁킁, 하고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평소와 다름없는 바람냄새. 벽 너머에 있을 강에서 나는 물비린내. 풀에서 나는 녹음. 공기가 조금 내려앉아서 나는 특유의 향기. 그리고 그 속에 미미하지만 섞여있는, 확실하게 느껴지는 이상한 냄새. 틀림없는 크토니안이다. 스칼렛은 내리세요. 하고 말하곤 문을 잡아 열었다. 버릇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위험하니까 이해해 주세요. 하고 말한 스칼렛은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 크토니안이 있어요. 근처에. "
손가락을 풀어주자 손톱이 길게 늘어져 약 20cm까지 늘어났고 뾰족한 손톱의 스칼렛은 차를 톡톡 치면서 움직이다가 뭔가 이상한데, 하고 말하며 고개를 갸웃하고는 뒷좌석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냄새를 맡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 여기, 차 뒷좌석에서 순수 크토니안의 냄새가 나요. 좀 심한데, 혹시 이니시에이터에요? "
스칼렛은 이제야 납득이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차 뒷자리에서 나는 크토니안의 냄새는 전투후의 잔향이 남은 것이리라. 스칼렛은 손톱을 다시 집어넣고는 짧은 꼬리를 살랑이면서 크토니안을 싣고 다닌다는 말에 뭐, 안보이는데서 처리하려면 그런 방식이 낫겠지. 하고 별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듯 했다. 이니시에이터라. 싸움을 시작하는 이들이란 뜻이지. 링크한 데미휴먼이 있을지, 다른 이니시에이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데미휴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등 물어보고싶은 것들이 있기야 했다만 초면인 사람에게 그러는 것도 실례이리라.
" 네. 후각이라던가.. 많이 발달했으니까요. "
보통은 맡지 못하는 냄새를 잘 맡아요. 생선냄새라던가, 하고 덧붙인 스칼렛은 살풋 웃었다. 생선 좋지. 구워먹어도 맛있고 생으로 먹어도 맛있고, 다 맛있지 생선. 그렇게 생각하니 입맛이 다셔진다. 이런 나이의 이니시에이터라. 하긴, 어느 정도 나이가 차면 알아서들 퇴직하고 사라지는게 이니시에이터니까. 스칼렛은 응. 그럴게요. 하고 말하곤 이제부턴 뭘 할까 - 하고 고민하다가 말을 뱉었다.
역시. 대부분의 포유류는 인간보다 좋은 후각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대부분의 데미휴먼도 인간보다 우수한 후각을 갖는 것도 인지상정이다. 그나저나 굳이 '생선'냄새라고 특정하는 것을 보니 아가씨가 생선을 좋아하나 보구먼. 고양이 데미휴먼이라서 그런 것일지, 아니면 그저 개인의 기호에 따른 것인지, 문득 궁금해진다.
"히치하이킹인가, 좋네. 이것도 인연인데, 어서 타시게!"
방금 전의 난관을 잘 헤치고 나온 자신이 자랑스러워 기분이 좋아진 유페미아는, 스칼렛의 제안에 흔쾌히 응한다. 운전대 옆에 있는 버튼을 눌러 트럭의 락을 열고는, 이쪽에 앉으라고 자기 옆좌석을 툭툭 두드린다. 그런데... 움직임에 걸리적거리는 게 있다. 아뿔싸, 미처 달아놓지 못한 번호판이다. 이걸 어떻게 해야 스칼렛 군이 눈치채지 않고 달 수 있다, 유페미아는 잠시 고민한다.
"저기, 스칼렛 군이 미리 라디오에서 음악을 골라두고 있게나! 나는 잠시, 그, 차량 정비 좀 하겠네!"
"그... 오프로드에서 한참 달렸으니 아무래도 고장이 났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번호판은 스칼렛의 눈에 보이지 않도록 외투춤에 숨기고, 소켓렌치와 드라이버는 한 손에 쥐고 뛰쳐나가선, 숙련된 솜씨로 번호판을 다시 달곤 다시 운전석으로 돌아온다.
데미휴먼이라 해서 차별하지 않는다, 란 말에 한쪽 눈썹을 비스듬하게 올린다. 과연 정말로 그럴까? 좋은 말에도 불쑥 반발심부터 들고 보는 것은 습관에 가깝다. 특히나 차별에 관해선 더더욱 관점이 까다로워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속생각을 곧이곧대로 내보일 수도 없는지라, 낯에 서린 의심은 곧 웃음에 가리어졌다. 잠깐의 불순이 빠르게 지워져갔다.
"네, 예전부터 여기서 지내고 있어요."
키아라, 그리고 콜트. 차례로 이름을 외고 기억에 새긴다. 일순간 이름이 서로의 외양과 잘 어울린다는 잡생각도 스쳤다. 그는 콜트와 악수를 나누었던 손을 풀고는 곧장 키아라에게로 내밀었다. 차례로 번갈아가며 악수를 하자니 상황이 조금 우습다.
"그런 이야기가 있긴 한데…… 완전히 거짓말이라고는 못 하겠네요."
떠도는 소문은 거짓의 총량만큼이나 진실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법이다. 저도 그렇게 들어오게 됐고요, 그렇게 이어지려던 말은 속으로만 삼켜두었다. 보호소의 앞에서 험담을 해 좋을 게 없다. 비록 그 내용이 어느 정도는 진실이라 해도. 그는 곰곰이 생각하다 얼버무렸다. 결론은 작위적인 느낌이 없잖게 드는 변호였다.
정말 옛날것이긴 한데, 언니가 힙합을 좋아해요. 하고 덧붙인 스칼렛은 라디오를 만지작거리며 옛날 노래를 전문으로 틀어주는 방송국으로 수신을 맞췄다. 좋네~ 하고 덧붙힌 스칼렛은 창문을 내리곤 팔 한쪽을 내놓았다. 가끔은 이런것도 괜찮겠지. 혹시나 우연히 얻어탄 차가 연쇄살인마나, 납치범의 차라면 반으로 갈라서 해치우면 되니까 상관없어. 스칼렛은 속으로 말하곤 스스로도 어이가 없는지 피식 웃었다.
" 그나저나, 굉장한 오프로드네요. 취미인가요? "
아, 하긴 이니시에이터들은 여기저기를 다녀야하니 오프로드 차량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더라. 하고 중얼거린 스칼렛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에 기분좋다는듯 눈을 감고 창문에 팔을 포개곤 머리를 올려놓았다. 휘날리는 하늘색 머리 사이로 한 가닥의 흰 머리가 팔락인다. 늦게까지 안들어가면 집에서 뭐라할 수도있지만 뭐 어때, 언니들도 늦게 들어오는 거 잦고. 밥은 다 해놓고 나왔는걸.
얼마나 옛날 노래길래 미리 양해를 구해야 하는가...하고 생각했지만, 예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옛날 노래라서 좀 놀랐다. 그도 그럴게, 유페미아가 태어나기보다도 훨씬 전 노래였으니까. 하긴, A지구의 사람들 중에는 옛날 노래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크토니안 사태 이전의 세상에 대한 향수랄까. 옛날 노래만 틀어주는 전문 방송국까지 있을 정도니까 말이다.
"취미...라고 할 수도 있겠지. 어짜피 크토니안을 잡으려면 포장도로 비포장도로 가리지 않고 다녀야 하니까, 연습도 되고 말이야."
"소문이라... 난 인맥이 그다지 넓지 않아서 들은 소문은 없네만,"
"...아, 그래! 최근에 겪은 특이한 일은 있다네."
"'타뷸라의 늑대'라고 들어 봤나?"
이 말과 함께 유페미아는 스칼렛에게 '타뷸라의 늑대'의 초대장에 응해 버려진 마을에 간 것과, 그녀의 게임 때문에 사람이 셋이나 죽은 것, 그 뒤로 일어난 전투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나하고 링크한 리코 군은 그 때 벽에 던져져, 뇌진탕 증세까지 보였었다네."
이렇게 말하는 유페미아의 목소리가 떫다. 하긴, 상대가 쏜 총알에 맞을 뻔 한 것도, 사람이 셋이나 죽은 것도, 늑대의 강력한 송곳니에 목을 물릴 뻔 한 것도, 리코 군과 키아라 군이 다친 것도 좋은 기억은 하나도 없었으니까.
//이 분에게 젤러시의 뒷담을 까는건... 기분상 사망 플래그일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요 :3 에-바(에피 바이)!!!
살풋웃은 스칼렛은 흥얼흥얼 노래를 따라부르며 차 안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즐겼다. 아, 이부분 너무좋아. 너를 잊고 싶지만 난 초능력이 없어. 시적표현 최고라니까~ 스칼렛은 눈을 접어 웃으며 있다가 타뷸라의 늑대라는말에 고개를 갸웃하곤 차 안으로 머리를 들여넣었다. 타뷸라의 늑대. 타뷸라의 늑대라.. 그리고 들려오는 이야기. 사람이 셋이나 죽고, 그 뒤로 일어난 전투로 뇌진탕까지 왔었다. 늑대의 송곳니에 물릴 뻔 했다. 스칼렛은 그런 일도 있었군요. 하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 뭐, 다들 무사히 나왔으니 된 거 아니겠어요? "
그거에 감사하도록 하자구요. 그렇게 여전히 웃으며 말한 스칼렛은 한 순간도 입가에서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이 아이에게 이런 살가운 미소라는 건 기본 장착인걸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예쁜미소를 이어가는 스칼렛은 타뷸라의 늑대라는 말에도 크게 반응하지 않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