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판 유저들에 의해 지정된 공식 룰을 존중합니다. ※친목&AT필드는 금지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금지입니다! ※모두에게 예의를 지켜주세요. 다른 이들도 당신처럼 즐겁고 싶어서 상판을 찾았다는 점을 잊지말아주세요! ※지적할 사항은 상대방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부드럽게 해주세요. 날카로워지지 맙시다 :) ※스레에 대한 그리고 저에 대한 정당한 비판을 환영합니다. 다만 의미없는 비난은 무시하겠습니다. ※인사 받아주시고, 인사 해주세요! 안녕하세요 라는 다섯글자에는 생각보다 많은 힘이 있답니다. ※17세 이용가를 지향합니다. 그렇다고 수위와 아슬아슬한 줄타기는 하지 말아주세요! ※저는 굉장히 편한 사람입니다. 질문하는 것 그리고 저라는 사람을 어렵게 여기지 말아주세요 XD
데미휴먼과 일반인이 대등한 관계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자신의 사례를 꺼낸 유페미아에게 리코는 질문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유페미아는 데미휴먼이 아닌 사람이니까 주인이 없는 것이 당연하지 않냐는 투의 질문이었다. 뭔가 이상한 게 있냐고 묻는 듯한 시선을 보내던 리코는 유페미아의 질문에 차분히, 덤덤하게 대답했다.
“있었어요. 근데 옆자리에 있던 애가 괴물이 돼서, 이렇게 해버렸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리코는 손으로 무언가를 쥐어서 잡아 뜯는 시늉을 해 보였다. 옆자리, 짚과 낡은 천쪼가리가 깔린 철창은 한 마리(라고 전 주인은 그들을 세곤 했었다)당 한 칸이 주어졌었다. 리코의 옆 칸에 있던 데미휴먼은 내내 웅크리고 있다가 갑자기 괴물로 변해 주인에게 달려들었고, 그 덕에 리코는 어찌저찌 그곳에서 나올 수 있었다. 그 뒤로 벌써 오랜 시간이 지난 느낌이 든다. 그렇게 느낄 정도로 지금은 평화롭게, 배부르고 따스한 곳에서 지내고 있어서일까. 리코는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그래서 지금은 주인님 없어요. 여기에 있으면 아주 가끔 다른 아이들이 주인님을 찾아서 나가니까… 리코도 언젠가 그렇게 될 거에요.”
CPA지하에 시카의 딸이라는 테러단체, 혹은 과격인권단체의 인원 중 하나가 잡혀들어왔다는 소식은 삽시간에 퍼졌습니다. 어지간하면 인도적인 대우를 약속한다는 CPA였지만 면담을 진행한 사람도 사람이고 수십차례의 테러행위와 대놓고 욕을 내뱉고 저주하는 블랑슈를 좋게 봐줄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 씹..새끼들..이.. 죽여버린다... 다 밟아 죽인다... "
한 차례 더 인도적인 면담이 지나갔고 블랑슈는 데미휴먼 특유의 회복능력으로도 따라가지 못할 만큼 많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보통의 사람이나 데미휴먼이라면 이미 죽었을테니 어찌보면 다행이라고 해야지요. CPA에서는 알아낼 정보는 거의 알아냈으니 이제 추가적인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당일 사건현장에 있던 이니시에이터를 불러 직접 면담을 할 기회를 주겠노라 발표했습니다.
검은 토끼는 의자에 수갑을 차고 묶여있었고 어느정도 피를 닦아냈다고 한들 여전히 상처투성이였고 방 한구석에는 검은색 부츠-다크부츠-가 내버려져 있었습니다. 블랑슈는 맨다리를 내놓고 무릎에 피묻은 붕대를 잔뜩 감아놓은 채로 예의 그 오드아이로 방문을 노려볼뿐입니다.
" 씨..발.. 너네 다 죽여버릴거야.. 시카가.. 젤러시가.. 올거야.. 내 손으로 죽여버린다 벌레새끼들.. "
"사람이지, 사람이지만. 으음, 사람과 데미휴먼-그러니까, 동물 귀와 꼬리가 있는 친구들이 다른 대우를 받아야 될 이유가 없지 않는가, 리코 군."
역시, 주인이 있었던 것인가. 인신매매 경매장의 현장을 두 눈으로 봐놓고도, 평생을 보호받으며 살아온 에피로서는 그 경험은 왠지 현실감이 없게 다가왔기에, 가까운 사람-까지는 아니더라도 직접 알고 있는 지인에게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은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옆자리에 있던 아이가 괴물이 되었다니, 그럼 데미휴먼이 크토니안화 할때까지 그 주인이란 사람은 그걸 보고만 있었다는 말인가? 그 주인이라는 사람은 아주 무능하거나, 상상 이상으로 악질인게 틀림 없었다. 데미휴먼을 사고 팔거나, 리코를 때렸다는 점을 고려해볼때 후자일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말이다.
"리코 군.. 그럼 이것도 대답해 주게나. 리코 군이 생각할 때 리코 군의 전 주인은 좋은 사람이었나, 나쁜 사람이었나?"
이미 유페미아의 머릿속에서는 답은 정해져 있지만, 리코의 대답에 어떤 의미로도 영향을 끼치지 않기 위해서 최대한 중립적으로 문장을 고르고 골라 질문했다.
"그 아이들은 주인이 생긴 게 아니-"
다른 아이들이 주인을 찾아 나간다는 말에, 유페미아는 리코의 말을 고쳐주려고 하지만, 지금까지 대화를 생각해 볼 때 리코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만 같아 포기한다.
"아니, 됐네. 그렇다면 리코 군은, 지금 리코 군에게 '주인'이 생기길 원하나? '주인'이 생긴다면 어떤 감정이 들겠나? 기쁘겠나? 슬프겠나? ....두렵겠나?"
지난번의 공장과 다르게 CPA의 문은 아무런 소리도 내지않고 매끄럽게 열렸습니다. 블랑슈는 고개를 푹 숙이고 낮은 숨소리만을 냈습니다. 며칠 제대로 자지도 먹지도 못했으니 지쳐있는건 당연하겠지요. 의자가 끌리는 소리와 말소리를 듣고 고개를 든 블랑슈의 첫 인사는 퉤 - 하고 쿠보타의 옷에 침을 뱉어낸것으로 시작했습니다.
" 쿡.. 까고있네.. 다리 아파도 너 같은거 걷어차면 순식간에 뒈져버릴걸 "
아마 니가 죽었다고 생각도 못했을때 바닥에 누워서 식어가겠지. 그렇게 덧붙이곤 후.. 하고 숨을 몰아쉬다가 죽어, 죽어버려! 하고 소리치곤 다리를 들어 테이블을 발로 차 밀어버렸습니다. 이후 의자에 가해지는 전기충격에 끄으으윽 하고 신음하곤 다시 푹 고개를 숙입니다.
" 하..하아.. 그래서, 뭐 어쩌라고. 토끼죽되는거 구경하러 왔어? "
시카가 올거야. 젤러시가 올거야. 그럼 너희 전부 팔다리 잘라서 너희 피로 샤워하게 해줄게. 아니, 한 놈 죽이고 그 핏물에 익사시켜서 죽여도되고. 존나 꼴사납고 볼만하지 않겠냐?
질문은 둘이었지만 대답은 하나였다. 사람과 데미휴먼이 다른 대우를 받아야 될 이유가 없지 않냐는 질문과, 좋은 주인이었는지 나쁜 주인이었는지를 묻는 말에 대한 대답이었다. 이유는 모르지만 어쨌든 그런 대우를 받아왔으니 그게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그게 당연한 일이라는 건 말할 수 있었지만 이유는 모르니 말할 수 없었다. 좋은 주인인가 나쁜 주인인가를 따지는 것도 그랬다. 그런 주인만을 봐 왔고 다른 주인은 본 적이 없으니 모른다. 좋다 나쁘다로 말할 수 없었다.
“그치만 전 주인님은 밥을 조금만 줬어요. 그래서 밥은.. 여기가 더 좋아요…”
하루 한 번 아주 적은 양의 밥이 나오던 그 땐 항상 배가 고팠지만 지금은 그런 일이 없었다. 하루 세 끼 꼬박꼬박 따뜻하고 맛있는 밥이 나온다. 리코는 그걸 떠올리고 유페미아를 보며 말했다. 이걸 떠올렸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좋은 주인인지 나쁜 주인인지는 판단할 수 없었지만. 꼬리 끝을 이리저리 살랑이던 리코는 주인이 생기길 원하냐는 유페미아의 질문을 듣고 또 다시 생각에 빠졌다. 어떤 감정? 감정…?
친구들. 이라는 말에 블랑슈는 눈에 불을 켜고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들썩였으나 수갑에 묶인 몸이라 일어나지 못하고 덜컹 하고 큰 소리만 낼 뿐이었다. 몸을 부르르 떨며 이를 뿌득뿌득 갈던 블랑슈는 다시 다리를 들어 테이블 걷어 찼다.
" 친구가 아니고 가족이다. 이 버러지같은 새끼야 더러운 입에 함부로 올리지 말았으면 하는데? "
시카는 그리고 시카의 딸은 자신의 하나뿐인 가족이며 한 번 더 더러운 입에 그 이름 올렸다간 제일 먼저 니 놈 머리를 밟아 터트리겠다고 엄포를 놓는 블랑슈였다. 과거사가 험하다 못해 굴러다니던 수준이던 블랑슈에게 가족으로 다가오고 목숨을 구해준 시카였다. 그 이름이 모욕받는건 제 다리가 잘리는 한이 있더라도 참지 못한다.
이 질문이 이런 심각한 류의 질문만 아니었더라면, 평상시의 유페미아는 '모르겠다'는 대답에 눈을 빛내며, '몰라도 괜찮네! 그건 자신이 뭘 모르는지를 알아냈다는 소리니까! 일단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를 깨달아야, 새로운 것을 알 수 있게 노력할 수 있는 거라네. 그게 바로 과학이고 말이야,'식으로 대답했을 테지만, 전 주인이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묻는 질문도 대답하지를 못하는 리코를 보며 유페미아는 기분이 착잡해졌다. 지금도 주인이 그렇게나 두려워서 솔직하게 대답하지 못하는 구나... 라고 착각해 버린 것이다.
"밥을 조금만 주다니... 전 주인이 자네를 굶겼나? 그렇다면 답은 간단하다네. 그 주인은 나쁜 사람이라네. 아주 나쁜 사람!"
유페미아는 쉽게 화를 내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이번만은 공분해서 하늘에 주먹을 흔들어댔다.
좋은 사람... 밥을 많이 주는 사람...
유페미아는 그 순간, 한 가지 생각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것은, '이렇게 학대받은 아이가 다시 상처입으면 안된다'는 생각이었다. 이니시에이터들에게 인신매매 경매장 초청장을 돌린 것을 보면, 그 수요가 존재한다는 뜻이었겠지. 유페미아는 그 명제에서, 이 세상에는 쓰레기 이니시에이터도 충분히 많다는 결론을 도출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아이는 그런 쓰레기 이니시에이터의 손에 들어가면 안 되었다.
그리고 리코 군이 쓰레기 이니시에이터의 손아귀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은...
유페미아의 머리 위에 전구가 켜졌다. 그것은 순간의 공분과 분노가 솓구쳐 올린, 아드레날린 러쉬(Adrenaline Rush)에서 오는, 매우 충동적이고 제멋대로인 생각이었다. 유페미아의 여건을 알고 있는 사람은, '광기 어린 생각이다'라고 칭할지도 모른다.
잔뜩 흥분한 유페미아는, 자신이 구하고 있는 데미휴먼은 어린 아이가 아닌 힘 센 성인이었다는 것도 잊고, 그런 쓰레기 이니시에이터가 찾아온다면 미호가 쫓아내리라는 사실도 잊고 말았다. 그래서,
" 아하하하! 이새끼 존나 웃기네! 마피아? 뭐, 유베리드 그런거? 지랄싸고 앉았네. 너같은 새끼들 머리속에 가족은 다 그런거야? "
블랑슈는 신나게 웃어젖히다가 뚝. 하고 웃음을 한 순간에 끊었다. 가족에 대한 말이 계속되자 온 몸으로 불편함을 표하곤 허공에 대고 이 새끼 그만 내보내면 안돼? 하고 소리쳤다. CCTV도 있고 하니 더 높은 CPA의 관리자에게 외치는 소리였다. 아무런 응답이 없자 후.. 하고 한숨을 뱉고는 뭐, 좋아. 하고 운을 띄웠다.
" 너희 병신들한테 우리를 알려줄 수 있으면 그렇게 하라고 시카가 말했으니까. "
막내. 그래, 가족이야. 우리의 그리고 나의 막내동생. 언니가 돼서 동생을 챙기러 가는건 당연하잖아? 누가 시키고 자시고 할 것도 없어. 가족이니까. 독단적? 말 존나 웃기게 한다 너. 하겠다고 말한 건 나고, 그렇게 하라고 허락까지 받았지. 동생을 데리러 가겠다는데 안될 게 뭐가있어? 에이, 씹새끼들. 그거 내 다리로 죽여놨어야 하는건데.
명령이 아니라 질문이라는 말이 있긴 했지만, 리코에게는 그리 크게 와 닿지 않았다. 같은 데미휴먼이 한 말이라면 질문으로 생각하고 대답했겠지만 유페미아는 사람이니까. 그러니 이건 질문을 가장한 명령이 틀림없다. 자신이 어떤 대답을 하더라도 결국 유페미아가, 사람이 원하는 대로 상황은 흘러갈 것이고, 거기에 괜히 저항하는 것 보다는 순응하는 것이 덜 아프고, 덜 번거로운 일이니까. 게다가 리코의 기준에서 유페미아는 더 없이 좋은 사람이었다. 때리지도 않고 맛있는 것도 쥐어준 적이 있으니 그야말로 더 할 나위 없이 좋은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주인이 된다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주인이 되는 것보다는 낫겠지.
“네, 그럴게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기에 리코의 대답은 어떻겠니, 라는 물음에 대한 답보다는 링크를 맺자-는 말에 대한 대답에 가까웠다. 새 주인이 생기는 거구나, 에피는 좋은 사람이니까 밥도 많이 주려나? 가능하면 사탕도 주면 좋겠지만 역시 밥으로도 충분해. 귀를 쫑긋거리며 그런 생각을 하던 리코는 뭔가 생각났다는 듯이 잠시 움직임을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