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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라고? 리코가 겪어온 경험에 의하면 사람과 데미휴먼의 관계란 친구라고 할 수 없는 관계였다. 에둘러서 좋은 말로 한다면 주종관계고, 좀 더 직관적으로 말하자면 데미휴먼은 인간 취급조차 받지 못하는 그런 관계였다. 아무리 아무것도 모른다고 해도 친구라고 부를 관계가 아니라는 것쯤은 리코도 알 수 있었다. 유페미아를 올려다 보는 리코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멍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사람이 데리고 가는 거니까… 데리고 가는 사람이 주인이에요. 사람은 우리를 사 가고, 밥도 주고 돌봐주니까요. 친구는 이쪽, 귀랑 꼬리랑 이렇게 있는 쪽이에요.”
가끔은 꼬리나 귀 없이 다른 특색이 있는 친구도 있지만, 어쨌든 리코에게 있어서 친구란 데미휴먼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애초에 감히 평범한 사람을 친구라고 부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다. 사람은 항상 자신의 위쪽에 있고, 밥을 주고 돌봐주는, 가끔은 무섭게 혼내기도 하지만 얌전히 있으면 혼내지 않는 존재라고 인식하고 있는 탓이었다.
“지금은 주인님 없지만… 여기서 밥 많이 줘요. 여기 좋은 곳이에요.”
어째서인지 마지막엔 보호소 짱짱이라는 홍보(?)로 바뀐 것 같지만... 아무튼 리코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사악한 (전)교수 유페미아... :3 아무튼 드디어 리코쟝의 사고방식이 드러났구만 호호호(?
데리고 가는 사람이 주인이라... 왜 이 아이는 아까 전부터 주인이라는 개념을 계속 맴돌고만 있는 것인가. 어떻게 해야 데미휴먼과 일반인이 대등한 관계라는 걸 설명해줄 수 있을까.
"리코 군, 나는 어렸을 때는 부모님이 밥도 주고 돌봐주었고, CEI(CPA 관할하에 있는 엄격한 기숙학교라는 설정입니다...) 입학시험에 합격한 뒤로는 학교 사람들이 날 데리고 가서 밥을 주고 돌봐주었다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주인인 건 아니지 않은가? 부모님도, 학교 사람들도 말이야."
잠깐만, '지금은' 주인이 없다고? 전에는 주인이 있었다는 말인가? 그러고 보니 처음 만났을 때도 리코는 주인님이 때렸다는 말을 했었다. 그때는 학대하는 부모가 아이에게 자신을 주인이라 부를 것을 강요한 것이라 생각했지만... 데미휴먼 인신매매 경매장을 보고 나서, 사람이 사람을 사고 파는 도시괴담만 같던 행위가 실제로 행해진다는 것을 알게 된 지금으로서는-또다른 가능성이 유페미아의 머릿속에 선명히 떠오른다. 그러고 보니, 아이는 경매장에서 이상할 정도로 침착했더랬지.
데미휴먼과 일반인이 대등한 관계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자신의 사례를 꺼낸 유페미아에게 리코는 질문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유페미아는 데미휴먼이 아닌 사람이니까 주인이 없는 것이 당연하지 않냐는 투의 질문이었다. 뭔가 이상한 게 있냐고 묻는 듯한 시선을 보내던 리코는 유페미아의 질문에 차분히, 덤덤하게 대답했다.
“있었어요. 근데 옆자리에 있던 애가 괴물이 돼서, 이렇게 해버렸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리코는 손으로 무언가를 쥐어서 잡아 뜯는 시늉을 해 보였다. 옆자리, 짚과 낡은 천쪼가리가 깔린 철창은 한 마리(라고 전 주인은 그들을 세곤 했었다)당 한 칸이 주어졌었다. 리코의 옆 칸에 있던 데미휴먼은 내내 웅크리고 있다가 갑자기 괴물로 변해 주인에게 달려들었고, 그 덕에 리코는 어찌저찌 그곳에서 나올 수 있었다. 그 뒤로 벌써 오랜 시간이 지난 느낌이 든다. 그렇게 느낄 정도로 지금은 평화롭게, 배부르고 따스한 곳에서 지내고 있어서일까. 리코는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그래서 지금은 주인님 없어요. 여기에 있으면 아주 가끔 다른 아이들이 주인님을 찾아서 나가니까… 리코도 언젠가 그렇게 될 거에요.”
CPA지하에 시카의 딸이라는 테러단체, 혹은 과격인권단체의 인원 중 하나가 잡혀들어왔다는 소식은 삽시간에 퍼졌습니다. 어지간하면 인도적인 대우를 약속한다는 CPA였지만 면담을 진행한 사람도 사람이고 수십차례의 테러행위와 대놓고 욕을 내뱉고 저주하는 블랑슈를 좋게 봐줄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 씹..새끼들..이.. 죽여버린다... 다 밟아 죽인다... "
한 차례 더 인도적인 면담이 지나갔고 블랑슈는 데미휴먼 특유의 회복능력으로도 따라가지 못할 만큼 많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보통의 사람이나 데미휴먼이라면 이미 죽었을테니 어찌보면 다행이라고 해야지요. CPA에서는 알아낼 정보는 거의 알아냈으니 이제 추가적인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당일 사건현장에 있던 이니시에이터를 불러 직접 면담을 할 기회를 주겠노라 발표했습니다.
검은 토끼는 의자에 수갑을 차고 묶여있었고 어느정도 피를 닦아냈다고 한들 여전히 상처투성이였고 방 한구석에는 검은색 부츠-다크부츠-가 내버려져 있었습니다. 블랑슈는 맨다리를 내놓고 무릎에 피묻은 붕대를 잔뜩 감아놓은 채로 예의 그 오드아이로 방문을 노려볼뿐입니다.
" 씨..발.. 너네 다 죽여버릴거야.. 시카가.. 젤러시가.. 올거야.. 내 손으로 죽여버린다 벌레새끼들.. "
"사람이지, 사람이지만. 으음, 사람과 데미휴먼-그러니까, 동물 귀와 꼬리가 있는 친구들이 다른 대우를 받아야 될 이유가 없지 않는가, 리코 군."
역시, 주인이 있었던 것인가. 인신매매 경매장의 현장을 두 눈으로 봐놓고도, 평생을 보호받으며 살아온 에피로서는 그 경험은 왠지 현실감이 없게 다가왔기에, 가까운 사람-까지는 아니더라도 직접 알고 있는 지인에게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은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옆자리에 있던 아이가 괴물이 되었다니, 그럼 데미휴먼이 크토니안화 할때까지 그 주인이란 사람은 그걸 보고만 있었다는 말인가? 그 주인이라는 사람은 아주 무능하거나, 상상 이상으로 악질인게 틀림 없었다. 데미휴먼을 사고 팔거나, 리코를 때렸다는 점을 고려해볼때 후자일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말이다.
"리코 군.. 그럼 이것도 대답해 주게나. 리코 군이 생각할 때 리코 군의 전 주인은 좋은 사람이었나, 나쁜 사람이었나?"
이미 유페미아의 머릿속에서는 답은 정해져 있지만, 리코의 대답에 어떤 의미로도 영향을 끼치지 않기 위해서 최대한 중립적으로 문장을 고르고 골라 질문했다.
"그 아이들은 주인이 생긴 게 아니-"
다른 아이들이 주인을 찾아 나간다는 말에, 유페미아는 리코의 말을 고쳐주려고 하지만, 지금까지 대화를 생각해 볼 때 리코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만 같아 포기한다.
"아니, 됐네. 그렇다면 리코 군은, 지금 리코 군에게 '주인'이 생기길 원하나? '주인'이 생긴다면 어떤 감정이 들겠나? 기쁘겠나? 슬프겠나? ....두렵겠나?"
지난번의 공장과 다르게 CPA의 문은 아무런 소리도 내지않고 매끄럽게 열렸습니다. 블랑슈는 고개를 푹 숙이고 낮은 숨소리만을 냈습니다. 며칠 제대로 자지도 먹지도 못했으니 지쳐있는건 당연하겠지요. 의자가 끌리는 소리와 말소리를 듣고 고개를 든 블랑슈의 첫 인사는 퉤 - 하고 쿠보타의 옷에 침을 뱉어낸것으로 시작했습니다.
" 쿡.. 까고있네.. 다리 아파도 너 같은거 걷어차면 순식간에 뒈져버릴걸 "
아마 니가 죽었다고 생각도 못했을때 바닥에 누워서 식어가겠지. 그렇게 덧붙이곤 후.. 하고 숨을 몰아쉬다가 죽어, 죽어버려! 하고 소리치곤 다리를 들어 테이블을 발로 차 밀어버렸습니다. 이후 의자에 가해지는 전기충격에 끄으으윽 하고 신음하곤 다시 푹 고개를 숙입니다.
" 하..하아.. 그래서, 뭐 어쩌라고. 토끼죽되는거 구경하러 왔어? "
시카가 올거야. 젤러시가 올거야. 그럼 너희 전부 팔다리 잘라서 너희 피로 샤워하게 해줄게. 아니, 한 놈 죽이고 그 핏물에 익사시켜서 죽여도되고. 존나 꼴사납고 볼만하지 않겠냐?
질문은 둘이었지만 대답은 하나였다. 사람과 데미휴먼이 다른 대우를 받아야 될 이유가 없지 않냐는 질문과, 좋은 주인이었는지 나쁜 주인이었는지를 묻는 말에 대한 대답이었다. 이유는 모르지만 어쨌든 그런 대우를 받아왔으니 그게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그게 당연한 일이라는 건 말할 수 있었지만 이유는 모르니 말할 수 없었다. 좋은 주인인가 나쁜 주인인가를 따지는 것도 그랬다. 그런 주인만을 봐 왔고 다른 주인은 본 적이 없으니 모른다. 좋다 나쁘다로 말할 수 없었다.
“그치만 전 주인님은 밥을 조금만 줬어요. 그래서 밥은.. 여기가 더 좋아요…”
하루 한 번 아주 적은 양의 밥이 나오던 그 땐 항상 배가 고팠지만 지금은 그런 일이 없었다. 하루 세 끼 꼬박꼬박 따뜻하고 맛있는 밥이 나온다. 리코는 그걸 떠올리고 유페미아를 보며 말했다. 이걸 떠올렸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좋은 주인인지 나쁜 주인인지는 판단할 수 없었지만. 꼬리 끝을 이리저리 살랑이던 리코는 주인이 생기길 원하냐는 유페미아의 질문을 듣고 또 다시 생각에 빠졌다. 어떤 감정? 감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