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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얼굴에 뭔가를 쓰고 있거나, 가리고 있었다. 리코는 그런 사람들이 신기한지 흘끔흘끔 보다가, 이따금 이쪽으로 향하는 눈과 마주치면 고개를 푹 숙이기를 반복했다. 가운데에 커다란 단상은 요전번에 갔던 강당과 비슷해 보였다. 힐끔힐끔 이리저리 둘러보던 리코는 팔려고 데려왔냐는 말에 슬쩍 유페미아를 올려다 보았다. 팔아? 하지만 지금 자신은 보호소에 있었고, 돌봐주는 사람─즉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에피가 아닌 미호였다. 미호는 자신과 같은 귀랑 꼬리가 달린 쪽이긴 하지만. 어쨌든 거래를 한다면 에피가 아닌 미호에게 말을 해야 할 거라고 리코는 생각하고 있었다.
키아라는 데려온 데미휴먼 좀 봐도 되냐는 남자의 말에 능청스럽게 연기를 해냅니다. 물론 속으론 남자의 태도에 역겨워하고 있지만요. 데미휴먼을 사고 판다니 이 무슨 비인간적인 현장입니까. 남자가 한눈을 파는 사이 키아라는 같이 온 사슴 데미휴먼에게 당신을 절대로 팔아넘길 생각 없으니 안심하라고 귀엣말로 속삭였습니다. 지금은 그저 단순히 연기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요.
“그게 말이야, 데미휴먼을 사서 정확히 어디에다 쓰는 거지?”
키아라는 이 불법적인 일이 단순히 링크를 목적으로 이뤄지는 일이라곤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뒤에 더 검고 은밀한 무언가가 있겠노라고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남자는 그렇게 말하곤 다시 시선을 정면으로 돌렸습니다. 중앙 단상에는 어울리지 않는 정장을 차려입고 얼굴엔 웃고있는 오페라 가면을 쓴 누군가가 올라왔습니다. 목소리는 변조되어 위에 달린 스피커에서 나왔고 과장된 몸짓은 보는 사람도 불편하게 만들 지경입니다.
" 환영합니다! 신사숙녀 여러분! 오늘 밤도 무사히 뵙게되어 정말 기쁘군요! "
키아라의 옆에 앉은 이는 정말 처음이냐? 하는 식으로 바라보다가 이내 다시 입을 엽니다.
" 여기저기 나가지. 링크할 수 없는 이니시에이터..한테 팔리는 건 정말 운 좋은 경우고 집사, 좋게 말해 집사지 결국은 노예나 다름없어. 아니면 실험체로 나가던가 수집하는 녀석들도 있고.. 밤에 쓰려고 사가는 녀석들도 있고 데미휴먼을 빌미로 중화제를 얻으려는 녀석들도 있지. "
덧붙여서 난 중화제. 하고 덧붙이고는 다시 앞을 바라봅니다. 남자의 팔에 이상하리만치 많았던 주사자국는 중화제를 투여한 자국인가봅니다.
" 뭐? 그럼 여긴 왜 온거야? 좀 수상한데 "
에피의 옆에 앉은 남자의 말이었습니다. 남자는 가드를 부르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신중합시다. 한 번의 소란으로 모두가 죽을지도 모릅니다. 주변에 있는 가드들은 전부 총을 한 자루 혹은 그 이상으로 들고 있었고 매의 눈으로 관중들을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 자! 오늘도 마찬가지로 좋은 상품들이 준비돼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시면 올라옵니다! "
키아라는 애써 침착한 대답을 내놓았습니다. 데미휴먼에게 가해지는 박해는 생각보다 더욱 뿌리깊게 박혀있었습니다. 키아라는 남자의 말을 듣고 치가 떨리고 화가 날 지경이었습니다. 다행히도 겉으론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고 있지 않지만요. 키아라는 심호흡을 내뱉고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경매장 곳곳에 배치된 경비들은 각자가 총을 하나씩 들고 있었습니다. 신중해야 합니다. 이곳은 사방이 적이니까요. 이 연기가 들키는 순간, 끝입니다. 키아라는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며 사회자를 바라봅니다. 그리고 어떤 불쌍한 이들이 무대에 올라올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들을 구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요.
좋은 게 뭐냐는 자신의 물음에 대한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리코는 조용히 납득했다. 최근에는 사람에게 맞는 일이 드물어서 잠시나마 잊고 있었지만, 원래는 말을 아끼는 게 올바른 것이었다. 그도 그럴게, 에피도 저렇게 말하고 있으니까. 리코는 에피의 말에 ‘네.’하고 대답한 다음 쥐 죽은 듯 조용히 있었다.
“…”
어쩐지 아슬아슬하게 흘러가는 분위기를 유페미아가 어떻게든 얼버무리려 하고 있었다. 리코는 가만히 에피가 데려온 데미휴먼을 슬쩍 보다가, 에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에피의 생각대로 조금 소란스러운 곳이었지만 리코에게는 충분히 들리고도 남을 정도의 목소리였으니. 이쪽은 어떻게든 된 것 같다고 생각한 리코는 시선을 단상 위로 돌렸다. 좋은 상품, 분명 쪽지를 주던 사람이 좋은 게 있다고 했으니까 그거일까.
남자는 흠.. 하고 유페미아를 잠시간 바라보다가 아쉽게 됐구만. 하고 말하며 리코와 베로니카를 번갈아 쳐다봤습니다. 수집품으론 제격인데. 하고 중얼거리며 시선은 앞을 향합니다.
"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오늘의 상품이 올라옵니다! 언제나처럼 극상으로 준비했으니 후회하실 일은 없습니다! "
첫 번째 남자아이는 도마뱀이나 뱀의 데미휴먼으로 추정됐습니다. 긴 꼬리와 툭 튀어나온 입, 그리고 몸 군데군데를 덮고있는 비늘. 사회자는 특히 힘을 잘 쓰니 참고하라 이릅니다. 두 번째 남자는 개의 데미휴먼이었습니다. 귀와 꼬리가 솟아있었고 사회자는 냄새를 특히 잘 맡으니 참고하라 합니다. 세 번째 여자아이는 이미 정신이 나간듯한 눈을 한 여우였습니다. 미호처럼 금색의 귀와 꼬리가 올라와있었고 입에는 재갈까지 물고있는 여자아이를 사회자는 조금 거칠지만 상품성에는 문제가 없다 합니다. 네 번째 남자아이는 곰의 데미휴먼입니다. 어느정도 침식이 진행된 그야말로 곰 인간입니다. 사회자는 더 이상 중화제를 지체하면 위험하지만 그 정도 스릴은 즐길만하다 말합니다. 다섯번째 여자는 새의 데미휴먼으로 양 어깨에 나타난 날개가 인상적이었고 세상 모든 풍파를 다 맞은 모습이었습니다. 사회자는 특출난 건 없지만 그렇기에 어디에든 사용할 수 있다 말합니다.
키아라는 손에 힘을 꾹 주고 주먹을 쥐었습니다. 빠드득, 하고 뼈마디가 울리는 소리가 조그맣게 들립니다. 일명 '상품'이라는 데미휴먼들은 고작해야 10대 전후로 보이는 어린 아이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사회자랍시고 상품을 소개하는 인간이나, 관객석에서 환호하며 박수치는 인간들이나 모두 똑같은 짐승 이하였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저 데미휴먼들을 모조리 풀어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건 힘들겠지요. 대놓고 총격전을 벌이지 않는 이상은 말입니다.
"..."
키아라는 그저 침묵했습니다. 다른 이들처럼 환호하지도 않았고 성대한 박수를 치지도 않았습니다. 그녀는 그저 굳은 표정으로, 무대에 올라간 데미휴먼들을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1초가 1분처럼, 참 길게도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키아라는 무엇보다 큰 충격을 받을, 자신 옆의 사슴 데미휴먼이 걱정되었습니다. 평범한 인간인 키아라가 봐도 이렇게 화가 나는데 같은 데미휴먼은 오죽할까요. 키아라는 굳은 표정을 풀지 않은 채 고개를 돌려 옆자리를 바라보았습니다.
살짝 돌렸을 때 마주친 시선에 소름이 돋았다. 익숙하다면 익숙할 시선이었다. 전 주인이었던 사람이 자신을 보던 시선과 같은 느낌. 수집품으로 제격이라는 말도, 비슷한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손을 꼼지락거리던 리코는 다시 단상 쪽으로 시선을 돌렸고, 단상 위로 나온 데미휴먼들을 보았다.
“……”
상품이라고 불린 것들은 전부 데미휴먼들이었다. 리코는 딱히 놀라지 않았다. 전 주인의 집에도 자신을 포함해서, 수집품이라 불리던 데미휴먼들이 많이 있었고, 그 중 일부는 리코가 보는 앞에서 끌려 나가고 다른 데미휴먼이 들어 오는 일도 있었다. 리코처럼 언제 온 건지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어린 나이에 들어온 쪽이 있는 가 하면, 저렇게 어느 정도 나이가 있거나 침식이 진행된 상태에서 오는 쪽도 있었다. 그 아이들, 그리고 나는 이곳에서 팔린 걸까. 리코는 멍하니 그런 생각을 하며 단상에, 미호를 닮은 여우귀가 난 여자아이 쪽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무덤덤한 얼굴로. 그렇게 생각에 빠져있던 리코를 현실로 되돌려 놓은 것은 에피의 물음이었다.
“괜찮아요. 그치만 저 애들, 좋은 주인님한테 가면 좋겠어요.”
모두 다 데려가고 싶다, 아, 역시? 에피도 사람이니까, 하지만 좋은 사람이니까. 사탕도 줬고. 아마 저 데미휴먼들도 에피가 사 간다면 좋아할 게 틀림 없다. 때리지도 않고, 맛있는 것도 주니까. 하지만 끝에 안타깝다는 말이 달린 걸 보면 아마 사지는 않을 것 같다. 안타깝다, 리코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유페미아 옆의 남자는 미호라는 말을 캐치하고는 유페미아에게 어떻게 아홉꼬리의 녀석을 데려올 생각을 하느냐고, 당신 정말 대단한 깡이라며 칭찬하듯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렸습니다. 한 명씩 한 명씩 저마다의 주인에게 팔려나가기 시작했고 어느새 단상 위에 남은 건 딱 두명이었습니다. 침식이 어느정도 진행된 곰의 데미휴먼 아이와, 정신나간 눈을 하고있는 여우의 데미휴먼. 사회자는 더 사갈 사람이 있느냐고, 입찰자가 있느냐고 몇 번을 더 말하다가 아무도 손을 들지 않자 아쉽게 되었다며 혀를 찹니다.
" 자 -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인가요? 오늘도 정말 감사했.. 야, 이봐, 이거 왜 이래? "
사회자의 시선은 몸을 굽히고 있는 곰에게로 향했습니다. 콜록콜록 하고 기침을 뱉고 몸에 발진이 일어나던 곰의 데미휴먼 아이는 몸이 이상해요. 라는 한 마디를 뱉고는 기괴한 소리와 함께 크토니안으로 변태하기 시작했습니다. 사회자는 일찌감치 달아났고, 자리를 지키던 가드들조차 크토니안을 본 것은 처음인지 달아나기 시작했습니다. 기괴한 모습의 곰이 되어버린 아이는 바로 옆에 있던 여우의 데미휴먼 아이를 바라봅니다. 여우의 아이는 정신이 나간 눈에서 공포를 느끼며 눈물을 흘렸고 크토니안은 손을 번쩍 들어 공격할 자세를 취했습니다.
키아라는 앞에 세워진 데미휴먼들이 하나하나 단상에서 내려가는 것을 착잡한 기분으로 바라보고만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무대 위에 남은 곰 데미휴먼이 이상 증세를 호소했습니다. 기침과 발진, 저건 크토니안화하기 직전의 증세입니다. 그렇다는 건 혹시... 키아라가 생각을 끝맺기도 전에 곰 아이는 괴성을 지르며 괴물로 변이했습니다. 경매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경매장 내부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바깥으로 나가는 것과 동시에, 구석에서 조용히 분을 삭히고 있던 키아라의 몸이 반사적으로 반응하여 튀어나갑니다.
그리고 키아라는 바로 외투에서 총을 꺼내 곰 크토니안의 손을 조준합니다. 제발 저 데미휴먼 아이가 공격당하지 않길, 빌면서요. 이 순간에도, 키아라는 이 크토니안이 저 저주받을 사회자를 죽여버리지 않았다는 것에 아쉬움을 느낍니다. 그랬다면 속이 다 후련했을 텐데 말이죠.
기침과 붉은 발진. 크토니안화의 전형적인 전조증세다. 유페미아는 딱히 누구라고 특정할 수 없는 누군가에게 경고를 하지만 이미 늦었다. 곰 데미휴먼의 몸이 기괴하게 뒤틀리고, 이내 이성을 잃고 주변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유페미아는 짧게 곰 데미휴먼의 명복을 빌어주고는(그도 그럴게 그의 '인간으로서의' 생명은 다 한 것이나 다름 없으니), 곁에 있던 리코에게 속삭인다.
"리코 군, 내 곁에 꼭 붙어있게나."
그리고는, 무기로 쓸만한 것을 찾아 행사장을 둘러보다가, 바닥에 굴러다니는 쇠파이프 한개를 발견한다.
원래 크토니안과 싸울 때는 화기류보다 검이나 둔기마냥 찢고 부술 수 있는게 더 효과적이긴 하다. 문제는, 유페미아에게 크토니안을 찢고 부술 수 있는 힘이 있냐는 것이다.
//여우 데미휴먼... 도와주고 싶은데 총기류가 없는 상태에서는 유페미아는 짐짝일 뿐... 도움이 되지 못해 8ㅁ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