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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호가 저번처럼 갑자기 나타나 구해주는 일은─ 그런 건 없었다. 하긴, 도와달라고 부르지도 않았는데 알아채고 도우러 올 일은 없는 게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목청껏 소리를 지른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리코 성격에 그런 일은 불가능했다. 하염없이 벌벌 떨던 리코는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에 무서운 걸 꾹 참고 아래를 다시 내려다 보았다.
“키아라…”
저번에 만났던 사람, 키아라가 아래에서 부르고 있었다. 내려올 수 있겠어?라는 말에 리코는 고개를 가로로 저었다. 고개를 젓는 동작도 꽤나 조심스러웠다. 까딱하면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인지, 리코는 한층 더 나무를 강하게 잡았다.
“여기… 무서워요…”
키아라를 보느라 아래쪽을 보니 한층 더 무서웠다.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아찔한 느낌에 리코는 쩔쩔매며 나무에 바짝 붙었다. 왜 여기까지 올라왔을까, 좀 더 낮은 곳까지만 오르고 말 걸. 뒤늦게 후회하는 리코였지만 이제 와서 후회한들 아무 소용없었다.
키아라는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리코를 바라보았습니다. 내려올 수도 없으면서 어떻게 저기까지 올라갔을까 생각하다 문득 어디서 들은 말이 생각났습니다. 고양이는 나무를 오르는 건 쉽지만 내려오는 건 힘들다고요. 리코는 고양이가 아니지만 아무래도 같은 고양잇과니 비슷하겠죠. 무섭다며 나무를 힘껏 끌어안고 있는 리코를 보니 가엾기 그지없습니다. 이런 일은 직접 해결할 수 있습니다. 키아라는 리코를 위해 몸소 두 팔 걷고 나서기로 했습니다.
"거기 가만히 있어. 금방 올라갈게."
키아라는 단단한 줄기와 나뭇가지를 발판 삼아 나무를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내 날렵한 움직임으로 순식간에 리코가 있는 곳에 도달했습니다. 무언가를 타고 오르는 일엔 익숙했습니다. 나무는 물론이고 대형 크토니안의 몸에 올라타본 적도 있는걸요. 리코는 여전히 겁먹은 아기 고양이처럼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키아라는 한 손으론 나뭇가지를 붙잡고 몸을 지탱하며, 나머지 손으론 리코를 살짝 끌어안으려 했습니다. 혹시나 리코가 떨어져서 다치지 않게, 그 동작은 매우 조심스러웠습니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에 리코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을 말하자면 가만히 안 있고 움직여서 어딘가로 간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지만. 어쨌든 리코는 키아라의 말대로 가만히 나무를 끌어안고 있었고, 키아라가 날렵한 움직임으로 척척, 나무를 타고 올라오는 걸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빨라! 굉장해! 어느새 바로 코 앞까지 도착한 키아라가 손을 뻗었고, 리코는 키아라와 아래를 번갈아 보다가 눈을 질끈 감고, 벌벌 떨면서 키아라에게 안겨 등에 손을 꾹 둘렀다.
“으… 잘못했어요…”
다시는 이렇게 높이 올라오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리코는 키아라의 어깨에 고개를 푹 묻었다.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올라올 때의 키아라는 엄청 날렵했는데, 내려가는 건 어떻게 하는 거지? 살짝 눈을 떠서 볼까-하고 생각한 리코는 아까 봤던 아찔한 높이를 떠올리고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역시 무섭다.
리코를 품에 안자 옷자락을 꼭 쥐는 손길이 느껴집니다. 정말로 무서웠는지, 잘못했다는 말까지 중얼거립니다. 리코를 안은 키아라는 이내 나무를 타고 미끄러지듯 내려갑니다. 착지는 성공적이었습니다. 키아라는 안전한 아스팔트 바닥에 리코를 내려놓습니다. 키아라는 이마의 땀을 슥 훔치고는 리코에게 말했습니다.
"리코, 어쩌다 저기까지 올라간 거야?"
보통의 어린아이라면 저렇게 높은 곳까지는 올라갈 생각도 못할 겁니다. 올라갈 수도 없을 테고요. 키아라는 리코가 위험을 무릅쓰고 나무를 타고 올라간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그나마 키아라가 발견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리코가 나무에서 밤을 지새거나... 혹은 큰일이 났을 겁니다.
"앞으로는 이렇게 위험한 짓 하면 안돼요, 알겠지?"
키아라는 리코를 향해 웃으며 손을 뻗었습니다. 그리고 그 부드러운 머릿결을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몸이 아래로 쭉 내려가는 느낌, 등골이 쭈뼛서는 그 느낌에 리코는 바들바들 떨었다. 하지만 약간의 충격 후, 발이 땅에 닿는 감각이 느껴졌다. 조심조심 발을 뻗어 땅을 딛고 선 리코는 이제야 살았다는 듯 귀를 조심조심 세우고 키아라를 안고 있던 손을 풀었다. 드디어 살았다-라는 의미로 ‘후아-‘하고 숨을 내쉰 리코는 키아라의 물음에 조심조심 대답했다.
“그게… 아래에는 무서운 사람이 있어요… 그치만 돌아다니고 싶어서, 높은 곳이면 괜찮을 것 같아서요…”
근데 위도 무서웠어요. 그렇게 말한 리코는 고개를 푹 숙였다. 앞으로는 이렇게 위험한 짓을 하면 안 된다는 말에 고개가 조금 더 내려갔다.
“…잘못했어요…”
머리에 닿는 손에 잠시 움찔했지만, 가만가만 쓰다듬는 손길이란 걸 알아채고 리코는 가만히 있었다. 조금 무섭지만 키아라는 좋은 사람이니까, 괜찮을거야. 어느새 원래 부피로 돌아온 꼬리 끝을 가만히 휘면서 리코는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키아라는 리코의 설명에 많이 놀랐습니다. 리코의 설명을 들어보면 대충 어떤 데미휴먼이 골목에서 인간들을 죽였다는 모양입니다, 그것도 어린아이 앞에서요.
"저런, 무서웠겠구나."
이 말로 충격이 가시지는 않겠지만 키아라는 애써 리코를 위로해주었습니다. 눈 앞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다니, 그 충격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이겠지요. 그래도 미호가 왔었다니 다행입니다.
"당연하지. 손 꼭 잡고 따라와."
다행히도 리코는 키아라의 제안을 수락해주었습니다. 맛있는 거라는 말에 마음이 동한 모양입니다. 키아라는 리코의 손을 조심스레 쥐고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가게는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습니다. 둘은 몇 분 거리를 걸어 금세 가게에 도착했습니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감도는 매장 안은 시끄럽고 북적북적했습니다. 키아라가 리코의 손을 잡고 먼저 도착한 곳은 과자나 사탕, 젤리 등 리코 또래의 아이가 좋아할 법한 간식들이 잔뜩 놓인 코너였습니다.
키아라의 손을 제대로 잡고 조금 걸어서 도착한 가게, 북적북적한 가게 안에서 키아라를 놓치지 않게 조심조심 따라다니던 리코는 골라보라는 말을 듣고 매대에 시선을 보낸 후… 잠시 멈췄다. 많다. 무진장 많다. 저기, 저건 저번에 에피가 줬던 사탕이다. 저쪽은 보호소에서 먹은 적 있는 간식이고, 이쪽은 잘 모르겠지만 엄청 맛있어 보여… 여기도, 저기도… 이 중에서 하나만 골라야 하는 것인가, 리코는 우물쭈물하며 이 과자, 저 젤리를 하나하나 보고 있었다.
“많다… 너무 많아요… 어떡하지…”
꼬리가 이리 휘었다, 저리 휘었다를 반복하기를 한참, 리코는 드디어 결심한 듯 산더미 같은 간식 중 하나로 손을 뻗었다. 저번에 에피에게 받았던 사탕 한 봉지를 집은 리코는 조심스럽게 키아라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이거 먹고싶어요… 괜찮아요?”
// 문득 생각난 카피페... :3
키아라: 리코, 과자는 다 골랐니? 리코: 음... 이거랑 이거요. 키아라: 두 개는 안 된단다. 리코: ...그럼 이거랑 이거랑 저거요.
키아라는 자신이 먹을 인스턴트 식품들을 고르고, 계산을 마친 후 가게에서 나왔습니다. 가게 앞에서 키아라는 잠시 자리에 서 장을 본 검은 봉투를 뒤지더니 사탕 봉지를 꺼내 리코에게 들려주었습니다. "먹고 이 꼼꼼히 닦는 것 잊지 말고." 봉지 안에 수북히 담긴 사탕을 보며 키아라는 그렇게 당부했습니다.
"그럼 이제 보호소로 갈까?"
키아라는 리코를 이대로 아홉꼬리 보호소로 바래다 줄 생각이었습니다. 요샌 세상이 참 흉흉하니까요. 데미휴먼 인신매매장이 열린다는 소문도 있고. 데미휴먼 아이 혼자 다니기엔 세상은 너무도 위험합니다.
리코는 가게 앞에서 건네 받은 사탕을 소중히 끌어안았다. 사탕이 많아졌어, 기뻐서 꼬리가 빳빳하게 올라가버렸다. 이를 꼼꼼히 닦는 걸 잊지 말라는 말에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보호소로 갈까?하는 말에는 살짝 고민하긴 했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산책 자체는 그리 길게 하지도 못했고, 많이 돌아다니지도 못했지만 나무 위에서 한바탕 난리를 쳤더니 조금 지친 것 같았다. 리코는 얌전히 키아라의 손을 잡고 보호소로 향했다.
보호소까지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가는 도중 그 일이 있던 골목을 흘깃 쳐다봤던 리코는 무언가 생각난 것처럼 보호소에 도착할 때까지 조용히 있었다. 이윽고 보호소 정문이 보이고, 그 너머로 몇몇 아이들의 소리가 들렸다. 미호는 안에 있는 걸까, 가만히 정문을 보던 리코는 천천히 키아라를 올려다 봤다.
“오늘 리코가 키아라한테 빚졌어요. 빚진거… 나중에 갚을게요.”
그렇게 말한 리코는 손을 크게 흔들고, 사탕봉지를 소중히 품에 안고 뒤돌아 정문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어른 같은 말 했다. 묘하게 뿌듯한 표정을 한 리코는 그렇게 보호소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