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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다? 아름답다고? 아니마는 그런 말을 처음 들었다. 사실 단순히 아름답다는 단어를 들은 적은 종종 있었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그것은 지금 유페미아가 말한 '아름답다'와는 분명 다른 것이었다. 다른 데미휴먼들은 아름답다는 말은 커녕 심해마녀, 투명마녀라는 멸칭을 뒤에서 수군거리곤 했고, 직원들은 아름답다는 말을 하긴 했지만 그 아래에 깔린 은근한 저의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아름답다는 말에 '근본없이 생겨가지고 생긴 건 쓸데없이'를 붙이면 아마 그 저의와 비슷할 것이다. 그 아름답다도 매력이 느껴진다는 뜻의 아름답다가 아니겠지.
그런데 이 부인의 눈빛은 뭔가 좀 다르다. 아니마가 들어온 아름답다가 평생 한 부류밖에 없어서 정확하게 분류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아니마의 수조 앞에 자리를 깔고 앉아 수족관 속 해파리를 감상하는 눈빛과는 확연히 달랐다. 조금 당황스러웠다.
"아름답다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아무튼 아니마 앞의 나이든 부인은 인간이다. 반사적으로 발뒤꿈치를 착 붙이며 차렷..하는 자세까진 아니고, 그냥 둘이 너무 가까이 붙은 것만 같아서 몇 발자국 떨어져 곧게 서는 선에서 그쳤다. 일련번호가 박힌 밋밋한 옷을 입고 있었지만 머리 위에서 호소력 있는 존재감을 과시하는 돔과 촉수, 그리고 한천 피부 속에서 부드럽게 움직이는 흑남색 손 뼈까지 가려지진 않았다. 촉수를 돌돌 말아서 등 뒤로 숨긴 아니마는 그리 큰 편이 아니라 나긋나긋하게 들리는 것 같기도 한 목소리로 물었다.
표정이나 행동에서 나오진 않지만 아니마는 상당히 당황했다. 감정 표현이 풍부했다면 아마 홍조가 올라오고 말을 더듬으며 도망가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건 아니마로선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아니마에게는 미안하지만 수조 앞에 자리를 깔고 앉아 수족관 속 해파리를 감상하는 눈빛과 그다지 다르지는 않았다. 다만, 그 바라보는 관찰자가 차가운 눈빛으로 하등생물을 바라보는 어른이 아닌, 자신이 처음 접하는 생명에게 호기심과 경탄-그래, 경외감까지 느끼는-아이였다면 정확하리라. 유페미아는 아니마가 떨어트린 거리를 한 걸음에 단숨에 좁히곤, 주절주절 말을 늘어놓는다.
"그야, 보시다시피 멋지지 않나! 잠깐, 말하지 말아줘, 내가 맞춰 보겠네. 투명한 한천질의 피부는... 분명, 자포동물의 특징이야. 물론, 뼈는 인간 쪽 DNA에서 나오는 것이겠지만 말이야! 자포동물은 무척추 동물이니까! 거기에 머리의 촉수는-해파리. 해파리 데미휴먼 맞나?!"
조금만 더 신이 났더라면 허락 없이 예의 그 언급한 한천질 피부와 촉수들을 손가락으로 찔러 볼 기세이지만, 유페미아와 아니마의 관계에는 다행히도 그 정도로 흥분하지는 않았다.
"뼈가 왜 흑남색이 되었는지는... 나로써는 도통 모르겠지만 말이야! 바로 그 부분이 멋져. 우리가 알아내야 할 부분이지 않나. 이 세상에 이미 아는 것 밖에 없다면 대체 무슨 재미로 살겠나, 안 그런가?"
"아, 미안 미안. 너무 신이 난 나머지 실례를 범했구만 그래."
유페미아는 그제서야 자신이 실례를 범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아니마에게서 사회적으로 용납되는 거리까지 몇 발짝 뒷걸음치고는 멋쩍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인다.
어찌 되었든 유페미아는 자유인이며, 아니마는 보호소의 데미휴먼이다. 군인과 민간인이 시비 붙으면 군인이 그냥 맞아야 하는 것처럼 아니마 또한 방어적인 자세를 취할 수 밖에 없었다. 혹시나 무언가가 삐끗하여 일이 터진다면 아마 아니마 쪽이 더 무거운 책임을 지게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아니마는 한천질이니 자포동물이니 dna니 하는 단어들을 알아듣지 못했다. 알 필요가 없었다. 조금 전문적인 어휘라 해도 MOA나 필링 퇴출 같은 계열의 어휘만 알고 있어도 생활하는데 문제가 없었다. 흥분한 채 알 수 없는 말을 자꾸 해 대는 부인이 부담스러웠다. 시선을 피하지 않고 계속 맞대고 있었지만 무어라 턱 밑까지 올라온 말 탓에 입술을 달싹거리거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는 등, 어쩔 줄 모르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유페미아가 이성(?)을 되찾고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자 아니마 또한 빠르게 진정을 되찾았다.
"██████-██████입니다."
당연하다는 듯 일련번호를 읆었지만, 이내 유페미아가 바라는 대답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정정한다. 그러면서 조심스럽게 자신의 왼손을 내밀었다. 혹여나 예상치 못한 사태가 터질까봐 손에 거의 힘을 주지 않았다.
"아니마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그리곤 아까 하지 못했던 말을 한다.
"권한이 있으시다면, 제게 묻기보단 보호소 아카이브를 열람하시는 게 정보 수집에 훨씬 좋습니다. 아까 무슨 말씀을 하셨는진 잘 모르겠지만 아마 그런 내용도 잘 정리되어 있을 겁니다."
권한이 있다면 보호소 아카이브를 열람하는 게 좋다는 말에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젓다가, 개체와 링크를 신청하면은 신상 서류를 볼 수 있다는 말에 멀뚱히 멈춰 아니마를 바라본다.
"나야 상관 없네만... 링크를 신청하게 되면 자네와 내가 페어를 맺어야 하는 것 아닌가?"
비록 링크를 공짜로 연구조교 및 보디가드를 얻는 방법 쯤으로 쉽게 생각하는 유페미아지만, 링크를 맺는 것이 데미휴먼에게는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쯤은 유페미아도 직관적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그런 데미휴먼의 링크의 기회를 그저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 허비해 버리는 것은 몹쓸 짓이란 생각이 들어, 다시 한번 사실관계를 확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