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판 유저들에 의해 지정된 공식 룰을 존중합니다. ※친목&AT필드는 금지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금지입니다! ※모두에게 예의를 지켜주세요. 다른 이들도 당신처럼 즐겁고 싶어서 상판을 찾았다는 점을 잊지말아주세요! ※지적할 사항은 상대방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부드럽게 해주세요. 날카로워지지 맙시다 :) ※스레에 대한 그리고 저에 대한 정당한 비판을 환영합니다. 다만 의미없는 비난은 무시하겠습니다. ※인사 받아주시고, 인사 해주세요! 안녕하세요 라는 다섯글자에는 생각보다 많은 힘이 있답니다. ※17세 이용가를 지향합니다. 그렇다고 수위와 아슬아슬한 줄타기는 하지 말아주세요! ※저는 굉장히 편한 사람입니다. 질문하는 것 그리고 저라는 사람을 어렵게 여기지 말아주세요 XD
저기 캡틴 레스 쓰기 전에 질문이 있는데요, 크토니안(기생충)과 그 알의 크기는 어느정도인가요? 또한 숙주가 크토니안화하기 전 잠복기동안 그가 감염되었다는 걸 알아챌 수 있는 지표가 있나요? +이건 별로 관계 없는 질문이지만 아웃월드에 크토니안 말고 다른 생명체가 존재하나요?
Q. 크토니안과 그 알의 크기는? A.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의 크기만큼 작은 것부터 대형견의 크기만큼 다양합니다. 발견된 순수 크토니안은 이렇지만 아직 발견되지 않은 종에는 더 큰 게 있을지 몰라요 ♪ 기생상태의 알은 마찬가지로 바이러스의 크기부터 타조알까지 다양한 크기를 보입니다!
Q. 잠복기의 증상? A. 안타깝게도 알아차릴 방법이 없습니다. 간헐적인 두통과 가슴의 답답함 그리고 소화불량 정도인지라 대부분은 그냥 넘어가고 말죠. 크토니안화 하게되기 직전에 정신착란과 붉은 반점 그리고 고열등을 동반하며 완전히 부화했을 때 몸을 찢고 나오기 전에 잠시동안 제정신으로 돌아다닐 수 있으나 외형은 이미 뒤틀린 이후입니다.
Q. 다른 생명체의 여부? A. 없습니다. 애초에 아웃월드에 있는 모든 생명체를 크토니안이라 지칭합니다.
이곳은 A지구의 구석지의 외딴 골목. 일주일 전 이니시에이터 자격증을 딴 유페미아는, 이니시에이터가 된 후의 첫 관찰대상을 쫓아 이곳까지 오게되었다. 관찰 대상은 마치 정신착란을 듯 마구 날뛰던, 빨간 반점이 두드러기처럼 나 있는 들개. 허수지구에서 강을 건너 넘어온걸까?
들개는 가쁜 숨을 몰아쉬더니, 이곳 인적 드문 골목에서 마지막 눈을 감는다.
그리고, 크토니안이 눈을 뜬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구만."
"역시 30년 넘는 전문가의 눈은 못 속이는 게지,"라고 잠시 자아도취에 빠져 있던 유페미아는, 촉수로 뒤덮이고 점액을 질척거려 더 이상 개라고 부를 수 없는 짐승을 조준하고...
사진을 찍는다?
아, 뭐, 왜. 크토니안이 발현되는 그 순간은 희귀한 데이터란 말이다! 영상자료를 남겨 둬야지!
그래도 이곳은 사람이 많은 A지구. 크토니안을 관찰한답시고 오래 방치해뒀다간 돌이킬 수 없는 피해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따라서 이번엔 제대로 마취총으로 조준하고 쏘려는데,
A지구에서 메모장을 들고 느긋한 시간을 보내다가 크토니안을 죽이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볼펜을 오른쪽 관자놀이에 대며 고민하는 사이 걸어다니다가 골목길 까지 이동했다. 골목길은 인적이 적어 여러가지 생각을 하며 보내기에는 쾌적한 장소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골목길 자체가 쾌적한 장소라고 하기에는 어폐가 있겠지만.
"...크토니안."
12게이지 탄환으로 찢어죽여도 시원치 않을 그 개처럼 생긴 놈이 보였다. 죽일 수 있을때 죽여두는게 내 마음에 안정을 가져오기때문에 들고다니는 산탄총의 약실에 강선된 슬러그 탄환을 집어넣었다. 슬러그 탄환 한개면 저런 잡종은 확실하게 분쇄할 수 있을 것이다.
"죽어."
모습을 들키지 않도록 작게. 마치 심장에 작은 폴딩나이프를 쑤셔넣는듯한 감각으로 말을 읇조리고 조준선에 있는 그것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뭘 망설이는거죠?"
그것에 총을 겨누고있는 아줌마(혹은 할머니)를 향해 말했다. 저것을 죽이는데 왜 망설일 필요가 있다는 말인가. 결단은 빠르게, 실행은 신속하게. 죽일때는, 잔혹하게.
화가 나고 어이가 없어서 할 말이 없다. 지금 막 크토니안화한 싱싱한(...) 개체를 눈 앞에서 잃어버린 유페미아는, 이니시에이터라는 본분을 잊고 연구자 시절로 돌아가 있다.
"거기, 자네! 샘플을 이렇게 훼손하면 어떻게 하나!"
"에에잉, 오래간만의 싱싱한 개체였는데, 망했구만."
하는 수 없다. 변화에 따른 빠른 상황 펀단과 대처는 연구자의 미덕이다. 비록 크토니안은 죽었지만, 그 혈액에는 분명 순수 크토니안이 남아 있을 터였다. 유페미아는 신속히 가방에서 라텍스 장갑을 꺼내 크토니안을 뒤집어 가며 그 크기와 촉수의 수 등을 세고는, 수첩에 그 내용을 기록해 나간다.
도대체 뭘 위한 샘플인지도 모르는데 어쩌라는 말인가. '망했다' 라는 말을 듣고 무슨 수가 있겠냐는듯 손을 저어보인다. 그리고 라텍스 장갑과 그 용도를 보고는 살짝 얼굴을 찡그리다가 곧 바로 표정을 평상시 대로 바꾼다. 저 아줌마도 수첩을 가지고다니네. 이런 길바닥에서 다 찢어진 시체를 뒤적이는데 훼손이고 뭐고가 있는걸까. 하지만 좀처럼 볼 수 없는 광경이겠다 싶어 자신도 수첩을 들고 그 수첩에 글을 써 나간다.
양보하고 말고를 운운하기 전에 애초에 개 크토니안을 처리한 사람은 에너드, 즉 크토니안 시체의 소유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 역시 자신이 아니라 에너드라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만족스러울 만큼 데이터를 채집한 유페미아는 자리에서 일어서 에너드가 시체를 가져갈 수 있도록 비켜준다.
그리고는, 비위생적이라 느끼는 에너드의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라텍스 장갑을 벗고는 악수를 청하는 것이다.
"이것도 인연인데 통성명부터 하지. 불스트뢰드. 유페미아 불스트뢰드라고 하네."
취미라는 말에는,
"그렇구만, 그렇구만. 이상해 보일지 몰라도 이건 내 취미일세. 몇 달 전만 해도 직업이었겠지만 말일세."
하지만 몇 달 전에는 이렇게 직접 현장에서 데이터를 모으지는 않았다. 대학교 연구실과 계액을 맺은 이니시에이터들이 모아온 데이터를 연구실에서 편하게 분석만 했을 뿐. 즉 이런 더티 잡은 유페미아에게도 사실 처음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아이들을 위한 일인걸요. 미호는 예의 그 부드러운 미소를 입가에 걸고 자신이 비서와 같이 데리고 다니는 고용인에게 말한 후 서류에 서명을 남겼다. 보호소의 시설물 개선과 다음 몇 개월을 위한 식량을 사는 일, 그리고 거기에 더해서 특식을 주문하는 것 까지 한 번에 결재를 마친 미호는 '산책이라도 다녀올까요' 하고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창문 밖으로 쨍 하고 햇빛이 날아들었고 유리를 깰 만큼 더운 날이었지만 보호소의 내부는 여름철 실내 적정온도인 26'C보다 조금 더 낮은 24'C를 유지하고 있었기에 덥다는 느낌보다는 조금 서늘한 느낌까지 들었다.
" 아, 이것봐요. 찻잎이 섰어. "
본디 차를 마시기를 즐기는 미호는 이렇게 더운 날에 산책은 무리니 차라도 마시자 라며 비서와 함께 자신의 사무실로 들어와 차를 내렸고 찻잔 가운데 서서 동동 떠다디는 찻잎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찻잎이 서면 멋진 방문자가 나타난다는데, 사실일까요' 하고 말하며 호록- 하고 차를 마셨다. 아마 지구에 있는 누구보다도 자신이 차를 가장 잘 내릴 것이라고 자신하는 미호는 사무실의 CCTV로 보호소 내부를 슥 훑어보았다.
다들 잘 지내고 있어서 다행이네요. 미호는 그렇게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야행성인 동물의 인자를 받은 아이들은 깊이 잠들어 있었고 활동량이 많은 아이들은 여기저기를 쏘다니며 에너지를 발산하고있었다. 오늘도 보호소의 안전을 다시금 확인한 미호는 문이 열리는 소리와 로비의 CCTV를 보고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 이것 봐, 정말 멋진 손님이 도착했어. "
자리에서 다시 일어난 미호는 예의 그 흰색과 분홍색이 예쁘게 조화를 이루는 개량한복을 입곤 로비로 내려가 손을 들어 보였다.
놀랐어요. 하고 말하는 미호는 항상 온화한 미소를 입가에 걸치고 있었다. 들어오세요, 하고 말하는 미호는 앞장서서 키아라를 이끌어가며 3층에 위치한 자신의 사무실로 올라가고 있었다. 올라가는 동안에도 오랜만이라며, 그 동안 뭐 하고 지냈냐며 안부를 묻는 것을 잊지 않은 미호는 올라가는 와중에 입을 열었다.
" 차라도 한 잔 하시겠어요? "
사양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제가 차 잘 내리는건 알파지구의 모든 사람들이 알테니까. 하고 말한 미호는 소파에 키아라를 앉히고는 찻잔을 가져와 차를 내렸습니다. 달콤한 꿀의 향기와 송진향이 퍼지는 차를 가져온 미호는 '마리아요?'하고 응답하고는 자리에 찻잔을 내려놓았습니다. 호록, 하고 차를 마신 미호는 역시 언제나와 같은 맛이네요. 드세요, 송화밀수라는 차에요. 꿀물에 송화가루를 타서 만들었죠. 하고 말하고는 무릎에 양 손을 가지런히 올리곤 마리아.. 하고 이름은 곱씹더니 말을 이어갑니다.
" 잘 지내고 있어요. 아픈 곳도 없고 하루 세끼 잘 먹고 있죠. 다른 아이들과 트러블도 없고, 참 천사같은 아이에요. "
링크하고싶다는 이니시에이터가 둘인가 셋 찾아왔지만, 아이가 원치 않기에 돌려보냈죠. 하고 말하며 다시 호록, 하고 차를 마셨습니다.
오랜만에 본 미호 소장님은 키아라를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곧 그녀는 미호를 따라 계단을 올라갑니다.
“감사합니다.”
소파에 앉은 키아라는 미호가 차를 내오자 눈을 휘어 접어 목례를 했습니다. 다행히도 마리아는 잘 지내는 모양입니다. 천사같은 아이라는 미호의 말엔 절로 웃음이 나왔습니다.
“아이가 원치 않았다라... 그거 참,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링크하고 싶다는 이니시에이터가 있다는 말엔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가, 다시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마리아는 아직 어린 나이인걸요. 12살밖에 되지 않은 딸이 벌써부터 가혹한 크토니안과의 전쟁에 투입되는 것은 키아라도 원치 않았습니다. 마리아도 아직은 세상이 무서운 모양이고요.
“그 아이, 중화제는 잘 맞고 있나요?”
키아라는 조심스럽게 미호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마리아는 워낙에 주사를 무서워하는 아이기도 하니까요. 중화제는 꼬박꼬박 잘 투여받고 있는지 걱정입니다. 말을 마친 키아라는 앞에 놓인 차를 들어 마십니다.
" 우리 보호소는 원래 그러니까요. 아이가 싫다고 하면, 아무리 좋은 조건이라도 보내지 않아요. "
그럼에도 계속 찾아온다면 정중히 거절하고, 그래도 또 찾아온다면 거절하고, 그리고 또 찾아온다면 그때는 여우도 발톱을 드러내겠지요? 하고 살풋 웃으며 손으로 입가를 가린 미호는 오늘도 언제나처럼 기품있고, 상냥하고, 온화한 모습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이니시에이터와 링크해서 싸우러 가는 길을 원치 않습니다. 정들었던 보호소를 떠나는 것도 싫을것이며, 크토니안과 목숨을 걸고 싸운다는 것도 싫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아이들이 이니시에이터와 함께 떠난다는 것은, 그만큼 이니시에이터를 믿고 자신이 무언가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소망 그리고 소중하게 여기는 모두를 지키겠다는 결연한 의지에서 나오는 행동인 것입니다. 적어도 미호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 처음에 중화제를 놓을 때에는 애 좀 먹었죠. "
어찌나 울어대던지, 미호는 킥킥 웃으며 처음 마리아가 보호소에서 중화제를 맞던 날을 기억했습니다. 하다하다 안돼서 미호가 직접 중화제를 놔 준 몇 안돼는 아이 중에 하나였노라고 그 때를 회상하는 미호는 다시 호록, 하고 차를 마셨습니다.
" 지금은 잘 맞고 있어요. 다른 사람은 안돼고, 오직 제가 놔줘야 맞더군요. 꼭 안아주고 괜찮다고 몇 번을 말해주면서 어르고 달래주면 돼요. 데미휴먼은 데미휴먼이 가장 잘 아니까요. "
차 더 드릴까요? 하고 말한 미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 '송화밀수'라고 하는 차가 담긴 포트를 가져왔습니다.
키아라는 돌아오는 미호의 대답에 안심했습니다. 데미휴먼은 데미휴먼이 가장 잘 안다는 말에는 그녀 역시 동감했습니다. 그러기에 마리아를 그 어느 곳도 아닌 여기에 보낸 이유기도 하고요.
“잘 맞고 있다니 다행이네요.”
생각해보니, 마리아가 처음 중화제를 맞을 때 얼마나 울고불고 난리를 쳤을까요? 그 자리에 없었지만서도 절로 그 광경이 상상이 갑니다. 저도 모르게 실소를 흘리며 차를 한 모금 들이킵니다. 은은한 송진 향과 달큰한 꿀의 맛이 잘 어우러집니다. 차 더 드시겠냐는 미호의 말엔 “실례되지 않는다면요.”하며 대답합니다. 이내 키아라는 찻잔을 내려놓고 미호의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이니시에이터가 죽었다고 하네요. A지구 어딘가에서 한 번에 세 명인가, 네 명인가가. 뭐 때문에 죽었는지 뭐에 죽었는지도 밝혀진 게 없대요. 그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 사건 현장을 봤는데, 검은 그림자가 담벽 위에서 지켜보고 있었대요. 어디까지나 소문이니까 너무 맹신할 건 못되지만요.
미호는 호록, 하고 다시 차를 마시고는 중화제 얘기가 나온 김에 조만간 자신도 중화제를 맞아둬야겠다는 잡생각을 띄웠다가 금세 잊고는 허공을 응시하며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뭔가 생각날 듯 생각나지 않는다면서 관자놀을 꾹 누르던 미호는 한 가지가 더 있다며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 아, 그리고 아웃월드를 잇는 창이 열리는 빈도가 점점 늘고있다고 하네요. 이 다음부터는 역시 소문이지만, 누군가가 일부러 창을 열고 있대요 "
뭘 위해서인지는 모르지만, 흉흉한 세상이 아닐 수가 없네요. 미호는 그리 말하며 미소를 지었습니다.
에네드의 감사인사가 형식적이라는 것도, 악수를 하는 그가 꺼림칙한 마음이라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 유페미아는 에네드를 보고 기특하다는듯이 웃는다. 아무래도 대학에서 가르치던 학생들이 겹쳐 보이는 모양이다.
"슈나우저 군, 반갑네. 오랜만에 젊은 사람들을 보니 좋구만."
이런 걸 연구하는 직업이 있냐는 말에는,
"암, 그렇다네. 당장 CPA만 해도 연구소가 있고, 지구정부에서 지원해주는 대학도 있는 걸."
친절하게 대답해 주지만 "대학"이라는 단어를 말할 때 아무래도 씁쓸함이 묻어나오고 만다.
"힘든 세상이지만... 크토니안에 대해 많이 아는 건 인류 생존과도 직결된 문제니까 말일세."
"그것과 별개로... 멋지기도 하고 말이야!"
유페미아는 에네드가 들으면-아니, 대부분의 정상인이 들으면, 싫어할 것이 뻔한 '크토니안이 멋있다'는 말을 서슴치 않고 해버린다.
"여기, 이 개체만 해도 말일세, 여기, 이 초롱 모양의 촉수 보이나? 이런 형태의 촉수는 크토니안의 riode A-유전자가 발현됐다는 소릴세. A-유전자는 보통 크토니안화 한 뒤에도 몇 달은 지나야 발현되곤 하지. 그런데, 지금 이 개체는 크토니안화 하자마자 이 촉수가 났다는 점이지. 30년간 일하면서 본 경우 중 가장 빨라, 기념비적인 일이야! 그럼, 질문을 하나 내겠네. 왜 이 개체만 riode-A 유전자가 일찍 발현될 것일까? 그것은 선천적인 요인일까, 아니면 후천적인 이유일까?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슈나이저 군?"
그리고는 눈을 빛내며, 이 크토니안이 '멋진' 이유를 대학에 있던 학생에게 수업하듯이 속사포로 설명해내는 것이다.
//으아아 늦어서 죄송합니다 에네드주..! 그리고 크토니안에 대해 멋대로 서술했는데 문제되는 점 있다면 바로 고치겠습니다..!
기특하다는듯 웃는 모습을 보고는 멋적어서 수첩을 바라보았다. 수첩안에는 전혀 상관관계가 없는 여러가지 단어와 상황들이 적혀있었다. 이 글자들의 나열을 보니 조금은 마음에 안정감이 되돌아오는 듯 했다.
"그야말로 안경 쓴 엘리트들이 보이는 광경이겠군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나서 곧 바로 집필과 아르바이트를 겸했으니 대학이랑은 거리가 먼 생활이었다보니 '대학' 이라는 말은 제법 흥미가 가는 내용이었다. 게다가 그것들을 조사하는 곳이니 세상에 내놓으라 하는 인재들이 노력하는게 틀림없다. 소설을 쓰는것은 인간의 생존에 그리 많은 도움이 되지 않는모양이라 그리 많이 팔리지않았다. 과거에는 그야말로 백만권이상이 팔리던 시절이 있었다던데 그야말로 도시전설과 다름이 없었다.
"??"
멋있다는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이어지는 말을 듣고는 잠시 얼이나간 표정을 짖다가 겨우겨우 눈 앞의 아줌마(혹은 이하생략)의 말에 대답한다.
"어어, 신진대사.. 대사량이 관여하고있는게 아닐까요."
그게 뭔데 씹덕아, 라는 말을 떠올리다가 말고 책에서 얼추 읽은듯한 지식을 리드미컬하고 난잡히 꺼낸 기분이었다. 그런 말을 해도 난 모른다고! 난 고졸이야! 엄청 유명한 소설가였지만!
"엘리트라면 엘리트라고도 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들이 다 똑똑한 건 아니야, 얼간이들도 많이 있거든! A지구 대학의 쥴스-하퍼라든지, 총장이라든지 말일세."
유페미아는 자신의 연구를 훔친 라이벌과 자신을 쫓아낸 총장에 대해 쌓았던 앙심을 오늘 생전 처음 보는 사람에게 풀어낸다.
"신진대사량이라... 선천적인 요인과 후천적인 요인이 결합되어 있다는 말이군.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꼭 신진대사량은 아니더라도, 다양한 요인이 결합되어있을 거라고 말이야.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고, 까놓고 정답을 이야기하자면... 아무도 몰라! 그게 바로 연구가 필요한 점이네. 이제 차차 알아가야지. 바로 그 점이 멋지단 말일세!"
유페미아는 신이 나 이리저리 손짓으로 제스처하며 말을 하다가, 전문적인 이야기라는 말에는,
"전문적인 이야기이기는 하다만... 그게 꼭 어렵다는 말은 아니지! 관심이 있다면, 호기심이 있다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일세."
뭔가 상당히 구체적인 얼간이들이었다. 그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걸까. 하지만 나와는 관련성이 없는 일이다. 그냥 넘어가도록 하자. 저 엘리트스러운 아줌마가 하는 말을 들어보니 내가 헛소리를 한 건 아닌 모양이었다. 마음속으로 안심하고 숙였던 머리를 조금 들어올려 정면을 바라보았다. 상당히 신나는듯한 모습. 보아하니 최근 이 '취미' 에 대해 그다지 이야기를 할 기회가 없었던 모양이었다.
"관심이라.."
딱히 관심이 있지는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렵게 느껴지는데다가 여기서 관심있다고 말하면 뭔가 엄청나게 귀찮은 일이 생길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동양쪽 말에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있었으니 그녀석들을 죽일때 이러한 지식들은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결과적으로.
다각, 발굽 소리가 났다. 그 주인인 오베론은 폭염에 그대로 넉다운 된 것 마냥, 건물의 그림자가 만든 그늘 아래에 기댔다.
"여름은 왜 존재할까요..."
손목에 찬 팔찌와 머리에 달린 보석이 햇볕에 반짝였지만 신경 쓸 것은 아니었다. 그 사이에 살짝 흘러내린 앞섶을 다시 바르게 고쳐 올린 이 무더위에서 자신이 뭘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몰랐다. 물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었지만, 길거리에서 웅덩이를 찾는 건 어려운 일일 게 분명했다.
다각, 다각. 구둣발과 다른 소리가 귀를 간지럽힌다. 귀를 한차례 파르르 떨어도 소리는 멀리 떨어지지 않았다. 묵직하게 내려앉은 눈꺼풀을 뜬 아이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쭈욱 기지개를 켰다. 팔과 다리를 한껏 늘리고 나서야 주위를 둘러보고, 그제야 다각거리는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냈다. 잠시 나와서 돌아다니다가, 해를 쬐려고 앉은 곳. 그 맞은 편에 누군가가 있었다. 다각거리는 소리는 아마, 그 누군가의 발에서 난 소리일 것이다.
“…?”
새하얀 뿔, 발굽이 달린 다리, 햇빛에 반짝이는 팔찌와 머리에 달린 보석. 더위에 허덕이는 듯한 모습. 그것들을 본 후 아이가 내린 결론은 아주 간단했다. 아, 나랑 똑같구나. 크게 하품을 한 번 한 아이는 어슬렁 어슬렁, 천천히 다가갔다. 발소리를 죽이고 다가가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본능적인 것이기도 했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많이 아팠으니까. 더위에 허덕이는 누군가에게 조용히 다가간 아이는 작은 소리로 말을 꺼냈다.
“저기.”
금빛으로 빛나는 XXL 냥발… 아니 호랑이발로 한쪽을 가리켰다.
“저기 가면 물이랑 밥 준다.”
아이가 가리킨 곳은 자신이 지금 지내고 있는 아홉꼬리보호소 방향이었다. 팔찌나 머리에 달린 보석을 자신이 찬 목걸이와 비슷한 것으로 오해했는지 어쨌는지, 어쨌든 아이는 지금 눈 앞의 데미휴먼도 자신이 그랬듯이, 소유자 밑에서 도망쳐 나와 방황하는 중이라고 받아들인 모양이다.
별 거 없다는 말이 사실이기를 바란다고 생각하며 가자는 말에 살짝 웃으며 걸어나아갔다. 곧 이어 그저 평벙한 술집에 도착했고 당연하게 맥주를 주문했다. 잔에 담긴 맥주를 바라보자 돈이 좀 있었던 시절 마셨던 맥주랑은 전혀 다르다고 생각하며 맥주를 입 안으로 털어 넣었다. 미적지근한게 영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약점이나 어떻게 해야 잘 죽일 수 있을지.. 습성 정도일까요."
알고싶은건 그것 뿐 이었다. 크토니안을 죽일 수 있다면 이런 미적지근한 맥주를 마시는것도 감수할 수 있다. 어쩌면 다음부터는 차라리 온더록스 한 위스키나 시키는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어느..쪽일까...?(??? 둘 다 해당되지만 후자가 좀 더 강한 느낌으로 생각하고 있긴 한데... 30:70 정도의 비율로? 좀 잔인한 예시긴 하지만 파잔 의식이 끝난 아기 코끼리 같은 느낌? 지금껏 살아오면서 제대로 배운 거라곤 저항하면 폭력이 따라온다 → 대들지 말자 정도고... 지금까지 배우지 못했던 지식이나 상식을 학습한다고 해도 과거 경험에 사로잡혀서 아마 저항하진 못할테니까. 음... 결론은 둘 다 맞지만 순종적인 쪽이 더 강한 걸로!
>>252 아직 숙주를 찾지 못한 순수 크토니안은 주로 땅 속에서 기거한다는 점일까요.. 약점이라면 화기류를 사용할 땐 관통력보다 저지력이 있는 탄을 사용하는게 좋고 화기류보다 좋은 건 검이나 둔기마냥 찢고 부술 수 있는게 더 효과적입니다!
>>257-258 크토니안화한 생물은 순수 크토니안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여기서 크토니안화한 개체가 번식하는 방법은 파충류마냥 알을 낳거나, 포유류처럼 새끼를 낳는 법인데 100마리중 99마리가 알을 낳고 있고 따로 수정이 필요하진 않습니다. 다른 생물에 기생해서 크토니안화 시키는 건 불가능하지만 체액으로 데미휴먼을 만들어 낼 수는 있죠. 순수 크토니안과 다른 순수 크토니안은 같은 종입니다. 적어도 서로 감염시키려고 싸우지는 않고, 감염이 가능하지도 않습니다. 동족이니까요!
무엇보다 어머니가 딸을 보러왔다는데, 안 될 이유가 없죠. 있어서도 안돼고. 미호는 인터폰을 들어 마리아를 올려보내주세요. 하고 짧게 말하고는 어머니가 보러왔노라고 용건을 설명했습니다. 딸깍, 하고 인터폰을 내려놓은 미호는 한 잔의 차를 더 내리곤 비어버린 티포트를 제 자리에 올려두곤 나중에 치워야겠네요. 하고 말하며 미소를 머금었습니다. 언제까지나 이렇게 마냥 웃으며 지내면 좋겠지만 세상이라는게 그렇게만 흘러가지는 않겠지요.
" 창이 자주 열리는 것도 그렇고 이니시에이터가 죽은 것도 그렇고.. 흉흉한 소문이 많이 돌아요. 부디 조심하세요. "
이니시에이터라는건 매일매일이 전쟁이고, 일선에서 목숨을 걸고 싸운다. 그 이유가 무엇이던간에 그렇게 싸워야만 하고 그 길은 스스로가 정한 길이다. 혼자서 생각하고 움직여야 하는 이니시에이터들에게 그리 좋지 못한 시기인것은 분명한 사실이리라.
" 아무튼 그래서.. 아, 벌써 올라왔네요. "
이리 오렴, 마리아. 하고 미호는 양 옆으로 열리는 자동문을 바라보며 말했고 그 자리에는 키아라의 딸이, 마리아가 서 있었습니다.
>>194 "약점과 습성이라, 하긴 요즘은 다 그걸 궁금해하더군. 당연한 거지. 생존이랑 관련된 일이니까."
“마침, 그건 내 전공이기도 하고 말이야!”
“약점… 약점… 약점이라, 아, 그거 아나? 크토니안에게는 마취제가 통한다는 거! 크토니안을 죽이지 않고 잡고 싶을 때 정말로 유용한 점이지!”
“…헌데, 자네 표정을 보니 자네가 원하는 건 그게 아닌 것 같구먼.”
“크토니안을 효과적으로 죽인다, 죽이려면 말이야, 화기류를 사용할 땐 관통력보다 저지력이 있는 탄을 사용하는게 좋고 화기류보다 좋은 건 검이나 둔기마냥 찢고 부술 수 있는게 더 효과적이네. 물론, 그렇게 가까이 다가갈 수록 감염될 위험도 커지지만 말일세!”
"다음은 습성. 그럼, 기초적인 것 부터 시작할까, 크토니안화한 동물은 자신의 원래 습성을 버리고 공격본능-말하자면 투쟁-도주반응에서 투쟁만 남은 상태랄까-과 번식본능, 식성만 남은 존재가 된다. 이정도는 이미 알고 있겠군."
"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그건 사실이 아니야. 인월드 생물 기준으로 볼 때 공격본능과 식성이 극대화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크토니안에게는 크토니안 고유의 습성이 있거든. 흔히들 생각하는 '살육머신'이 다가 아니라는 것이지."
“게다가 순수 크토니안과 크토니안화 한 생물의 습성이 조금씩 다르다네. 가령, 순수 크토니안은 인월드 생명체에 기생하는 방법으로 상대를 크토니안화 시킬 수 있지만, 크토니안화 한 인월드 생명체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지.”
“일단 순수 크토니안부터 이야기해보지. 자네, 이걸 생각해 본 적 있나? 인월드, 그러니까 우리 차원에 노출되기 전 크토니안들은 어떻게 생존해 왔을까. 이건 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것인데… 에네드 군은 언제부터 이니시에이터 일을 해 왔나? 에네드 군이 이니시에이터 일을 하면서 한 번이라도 크토니안이 다른 크토니안을 감염시키는 것을 본 적이 있나?”
“없지? 없을 거야! 나도 그들을 30년간 관찰해오면서 그런 경험은 없거든. 나 뿐만 아니야, ‘권능’을 통해 ‘창’이 열린 지 50년간 그걸 관찰해낸 사람이 아무도 없어! 그럼 우리는 조심스레 이런 가설을 세워볼 수 있지.”
이렇게 말하며 유페미아는 코트 주머니에서 만년필을 하나 꺼내-교수일 때 졸업한 학생에게 선물받은, 지금의 유페미아의 형편에 어울리지 않는 고급진 만년필이다-술집의 냅킨 위에 파란색 잉크로 이렇게 적는다.
‘가설 1: 크토니안은 다른 크토니안을 감염시킬 수 없다.’
“그렇다면 다시, 인월드에 노출되기 전 크토니안의 관점을 생각해 보세. 아웃월드에는 인월드 생명체가 없어! 온통 크토니안 뿐이야! 즉, 기생할 대상이 없다는 걸세. 그렇다면,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아웃월드에서 지내던 크토니안은 본래 기생생물이 아니라고 생각해 볼 수 있네. 단지, 기막힌 진화적 우연으로 인해, 우리 차원, 즉 인월드 생명체에게 기생할 수 있는 능력을 그들도 모르게 가지고 있었던 거지!”
‘가설 2: 순수 크토니안은 본래 기생생물이 아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결론을 두 개 얻어낼 수 있는데 말이야… 첫번째는 바로, 크토니안이 서로를 알아보게 하는 요소가 무엇인지 밝혀 내고, 이 요소를 우리가 모방해 낼 수 있다면 크토니안이 인류를 감염시키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뜻이네.”
“두번째는… 그럼 감염시킬 대상도 없고, 또 본래 기생생물도 아니었던 아웃월드 크토니안들은 어떻게 종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이것은 바로 크토니안이 숙주 없이도 알을 낳고 부화시킬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하네!”
‘결론: 순수 크토니안은 번식하는데 기생할 숙주를 꼭 필요로 하는 건 아니다. 즉, 크토니안은 숙주가 없어도 알을 낳고 부화시키는 방식으로 스스로 번식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아웃월드 어딘가, 심지어 인월드에도 순수 크토니안의 고유 산란장이 있을 지도 모른다.’
“이게 바로 내가 3년 전 발표하려 했던 이론일세. 그건… 잘 안 풀렸지만 말이야.”
“어쨌든, 순수 크토니안이 숙주 없이 생식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건 내가 밝혀낸 것처럼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걸 관찰해낸 사람이 없어!”
“그걸 처음으로 밝혀내는 사람이… 바로 내가 될 계획이네! 내 이론을 내 손으로 스스로 증명하겠다는 것이야!”
유페미아는 어두운 술집에서, 눈을 형형히 빛내며 에네드에게 자신이 3년 전, 발표하려 했던 이론과, 또 자신의 미래 계획을 설명한다. 설명을 하다 보니 목이 탔는지, 설명하는 동안 손에 대지 않고 있던 맥주를 벌컥, 하고 크게 들이키지만, 그동안 얼마나 홀짝홀짝 조금씩 마셔댔는지 아직도 잔에는 반 이상이 남아있다.
“으응..? 이 맥주 외에는 필요한 건 없네.”
공짜 안주로 술집 주인장이 내어준 말린 땅콩을 만지작거리며 유페미아는 말한다.
“오히려 내가 안주라도 사야 하지만, 요즘 수입이 없어서 말이지, 양해 바라네, 에네드 군.”
그야, 몇 달동안 무직 생활을 하고 있었고, 오늘 처음으로 이니시에이터로서 일을 시작했으니까 말이다.
키아라의 부탁을 들은 미호는 인터폰으로 전화를 걸어 마리아를 보내달라 했습니다. 곧 딸을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 키아라의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당연히 조심해야지요, 누구 때문에라도."
말을 마치고 키아라는 옅은 미소를 지었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흉흉하다고 한들,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서라도 그녀는 절대 쉽게 죽을 수 없었습니다. 잠깐 담소를 나누고 있으니 방문이 스르륵 열립니다. 문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마리아는 쏜살같이 달려가 엄마의 품 안으로 쏘옥 뛰어들었습니다. 엄마가 많이 보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딸을 품에 안은 키아라의 표정도 금세 환해집니다.
"마리아, 그동안 잘 지냈니? 미호 언니 말은 잘 듣고?"
마리아는 잘 지냈다며, 미호 언니 말도 잘 듣는다며 말하곤 뿌듯한 듯이 키아라의 품 안에서 고개를 끄덕입니다. 키아라는 그런 딸의 모습에 흐뭇해하며 마리아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줍니다.
사람이 대답을 하지 않더라도 숨도 쉬지 않고 말을 하는 모습은 생기발랄 그 자체였다. 문제는 생기발랄한 사람이 40대를 넘긴(가설) 아주머니 라는 사실이라고 할 수 있었다. 차라리 10대 소년이든 소녀였다면 귀엽게라도 보였겠지만ㅡ
"아니, 좀 천천히. 천천히ㅡ"
말하라고 하는 순간에도 눈 앞에있는 사람은 생기발랄한 상태로 설명을 하고 있었고 오른손에 잡고있었던 맥주를 놓고 수첩과 펜을 꺼내들었다. 그러고는 무언가를 적으려다 말고 적으려다 말았다가 작게 중얼거린다.
"글러먹었구만."
수첩에 '그냥 산탄총이나 쏴 갈기라고!' 라고 적어두고는 수첩을 닫고 도로 주머니 안으로 집어넣었다. 이렇게 빨라서야 적는게 따라잡지를 못한다. 포기하고 말을 듣기로 마음먹고 그 말이 끝나갈 즈음에야 입을 열었다.
"제법 그럴듯한 가설이군요."
하지만 이 '빌어먹을 놈들' 이 기생숙주를 찾을 수 있는곳이 여기만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 '빌어먹을 놈들' 은 본래 기생생물이고 이미 다른 세계에서 우리와는 다른 생물으로 번식을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정말 소설같은 이야기다. 어쩌면 다른 차원에서는 기생밖에 할 수 있는게 없는 하등생물취급을 받을지도 모를 일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 하등생물에게 애먹고 있는 실정이다만.
"아뇨, 괜찮습니다. 애초에 제가 권한것이고."
제법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소설의 소재로는 부적합하다고 생각하며 갑자기 간지러워지는 콧등을 긁었다. 아, 간지럽네.
언니라고 부를 나이는 지났지만요. 하고 속으로 생각하며 쓴웃음을 지은 미호는 저리도 좋을까 하고 중얼거리며 모녀의 재회를 한 걸음 떨어져서 바라보았습니다.
" 자, 여기 송화밀수에요. 한 잔 더 해요 키아라. 마리아는 쥬스로 괜찮지? "
포도쥬스. 유기농으로 길렀다지만 요즘같은 세상에 유기농이니 어쩌니 하는 게 다 무슨 소용일까요 하고 피식 웃은 미호는 제 몫의 차를 따르곤 저도 마리아같은 딸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마리아, 차라리 나랑 살래? 하고 장난스레 말하곤 가서 엄마 보여주기로 한 그림 가져오라며 마리아를 보냈습니다.
사실 이건 유페미아가 대학에서 강연을 할 때도 자주 일어나던 일이었다. 유페미아 혼자 신이 나서 속사포로 떠들어대는 바람에, 필기를 하고 있던 학생들의 멘탈은 붕괴해 버리는... 한번은 이 때문에 수강취소율 47%를 찍어 총장에게 불려간 적도 있었다. 이제는 다 옛날 이야기이지만. 에잉, 옛 버릇이 잘 안 죽는구만. 유페미아는 스스로를 향해 멋적은 미소를 지어보인다.
"그럴듯한 가설이고 말고. 학회에서는 유력한 가설 취급을 받았다네."
그 가설을 발표한 사람이 자신이 아니었다는 것은 무시하자. 쥴스-하퍼의 발표 후 같은 내용을 발표하려 하자 비웃음을 받았다는 것도. 그건 어디까지나 도난맞은 "내 가설"이었으니까 말이다.
"아웃월드에서 넘어온 생물들은 모두 다 '크토니안'이라고 칭하고, 이 크토니안들은 모두 다 인월드 생명체를 숙주로 삼을 수는 있지만 서로를 숙주로 삼을 수는 없다는 특징을 가지니까 말일세. 최소한, 우리가 아는 한은 말이야. 때문에, 그들이 차원벽이라도 뚫을 수 없는 이상 아웃월드에 그들의 숙주가 될 생명체는 없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네."
마리아는 미호의 말에 힘차게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 다음 이어지는, 같이 살자는 미호의 말에 마리아는 금세 고민하는 표정이 되었습니다. 미호 언니도 좋은데, 엄마도 좋고. 마치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질문을 받은 어린아이 같은 모습입니다. 이내 미호는 마리아를 다시 내려보냅니다. 엄마 보여주려고 그린 그림이 있다나요? 키아라는 딸의 작품이 기대됩니다. 그런 마리아가 마냥 기특하기도 했습니다.
"마리아를 막 낳을 때가 그저께 같았는데, 벌써 저렇게 커버렸군요."
키아라는 말을 마치고 다시 차를 들이켰습니다. 앞으로도 아무 일 없이 건강하게 무럭무럭 커줬으면 좋겠네요.
정확한 정보가 없다는 말이 되는것이다. 하지만 크토니안의 세계가 어떻게 되어있는지는 관심밖의 이야기였다. 난 그저 크토니안을 죽이고싶었고, 죽이면 될 일이었으니까. 게다가 난 연구자도 아니다.
"덕분에 많은걸 알 수 있었네요. 감사합니다."
살짝 웃으며 말했다. 이런 이야기는 맥주 한 잔으로는 들을 수 없는 이야기 일 것이다. 감사하다고 말하는게 좋다고 생각했다. 인세는 들어오고있지만 그 사건 이후로 들어오는 인세가 확실하게 줄어들었다. 대학교에 가서 수업을 들을만한 여유는 없는것이다. 대학교에 갈 생각도 없긴 하지만.
"사람들이 이것만은 기억했으면 좋겠다 싶은 것은?" 유페미아: 학계에 쥴스-하퍼 이론이라고 발표되어 있는 것은 사실 불스트뢰드의 이론이 되어야 맞다네! 쥴스-하퍼는 사기꾼이자 도둑이야! 음... 좀 더 보편적인 말을 하자면, 사람들이 좀 더 과학에 관심을 가져 줬으면 하네. 그것이 바로 인류가 발전할 수 있는 길이자 요즘같은 세상에서는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니까 말일세.
"안녕?" 유페미아: 안녕하시게나.
"샤워 시간은 어느 정도?" 유페미아: 으음... 할머니의 샤워 시간을 왜 묻는 건지는 모르겠다만 15분에서 30분 정도라네! 긴 편이지. 하지만 뜨거운 물을 머리에 붓고 있노라면 영감이 떠오르는 법이야! 자네도 머리가 꽉 막히면 한 번 시도해 보게나!
다른 보호소? 아이는 잠시 자신이 있는 보호소를 떠올렸다. 그곳만 있는 곳이 아니었구나. 잘 모르겠지만 앞에 있는, 자신과 비슷한 모습을 한 사람이 말했으니 아마 그게 맞겠지. 그래도 물 정도는 주지 않을까. 아무것도 못하는 나한테도 밥을 주는 좋은 곳이니까, 분명 그렇게 해주겠지.
“그래도 물은 줄지도. 아마.”
잘그락, 하는 소리에 귀를 쫑긋 세웠다가 침식이 많이 진행되었다는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침식? 무슨 뜻이지? 잘 모르겠지만 나처럼, 이라고 했으니 자신과 상대에게서 최대한 비슷한 점을 찾으면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이는 눈치를 보듯 상대의 얼굴을 흘깃거리다가 점점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비슷한 거... 있다.
“…다리털. 똑같아.”
자신의 다리와 상대의 다리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다리 자체가 똑같지는 않지만, 일단 둘 다 털이 있다는 건 같으니까. 이게 맞을 것 같다. 정답인지 아닌지, 표정을 살피는 시선이 상대에게 향했다.
상대가 양 손을 내밀자 리코는 몸을 움츠리고 눈을 꾹 감았다. 여지껏 손이 자신을 향해 내밀어 졌을 때는 자신의 머리나 몸 둘 중 하나에 큰 충격이 뒤따라 오곤 했었으니, 반사적으로 몸이 반응해버린 것이다. 최근 들어서는 두들겨 맞는 일이 없긴 했지만 몸에 뿌리 깊게 각인된 공포는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잠시 그렇게 눈을 질끈 감고 있던 아이는 아무런 충격이 오지 않는 것을 알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오베론… …리코. 나는 리코.”
내밀어진 양 손을 잠시 바라보던 아이는 천천히 자신도 양 손을 내밀었다. 사람의 손과는 많이 다른, 털이 가득한 앞발. 물끄러미 보던 아이는 먼저 한 걸음 내딛고, 길을 안내하며 앞으로 나섰다.
조금 놀랐을 뿐, 아프지도 않았고 다치지도 않았다. 아이는 그게 만족스러운듯 고개를 끄덕였다. 앞서 나가는 리코의 귀에 다각다각, 경쾌한 소리가 들린다. 걸을 때마다 뒤에서 다각다각 소리가 나. 걷는 소리가 잘 나지 않는 자신의 발과는 다르구나, 그런 생각을 하던 아이는 오베론의 조심스러운 부탁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뒤돌았다.
“발바닥? 이거?”
한 쪽 앞발을 들어 발바닥을 보다가 오베론을 향해 내밀었다. 만져도 딱히 상관 없다는 태도였다. 조금 매끈하고 보들보들해 보이는 분홍빛 발바닥이 오베론의 앞에 놓였다.
마을에서 적당히 쉴만한 술집이나 음식점을 찾고자 거리를 걸어가는데 작은 서점이 보였다.이런 삭막한 세상이어도 그래도 책은 어느정도 팔리는 모양인지 어느정도의 손님이 책장에 나란히 정렬되어 있는 책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이후로 줄어든 인세를 생각하며 과연 내 작품들은 제대로 있는것인지 궁금해 서점 안으로 들어섰고, 나의 작품들은 조금 걸어서 돌아야 할 정도로 구석진 자리에 배치되어 있었다.
"하아.."
이래서야 인세로 차고 시원한 맥주를 항상 마시는건 꿈같은 이야기다. 작게 한숨을 쉬고 뭐 재미있는 책이라도 있을까 하고 둘러보는데 나보다 어려보이는 데미휴먼이 내 작품을 사려고 카운터에 가는 모습이 보였다. 아아, 저런 사람들 덕분에 내 풍족한 생활이 어느정도는 유지되는거겠지. 혼자 감격에 겨운 생각을 하는데 '너 같은 데미휴먼이 책을 읽을 수 있을 것 같냐?' 라는 낮은 목소리가 들렸고 조금 시끄러운 소리가 들린 걸 보니 아무래도 그 데미휴먼은 책을 사지 못한 듯 했다.
"내 팬이 늘어날 기회를 찰 수는 없지."
이제와서 또 출판사에서 내 책을 출판하려고 하지는 않겠지만 그건 그거다. 곧바로 그 데미휴먼이 사려던 '달리는 거북이의 고뇌' 를 사다들고 그 데미휴먼에게 달려가 말했다.
"이봐! 이 책을 사 주지 않겠어? 재미있어서 사려고 했는데 내가 생각하던 내용과는 좀 다르더군."
아, 또 내려오는 시선. 온 사방에서 꽂히는 시선과 목소리. 감히 제 위치가 어디인지조차 가늠하지 못하고 일단 눈 앞에 보이는게 조금 약해보이고, 조금 어려보인다면. 그저 보편적으로 해당하는 사항에 따라서 자신이 더 위에 있다고 생각한다면 일단 꽂히고 보는 저 목소리, 저 시선, 온 사방에서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이 불쾌한 분위기. 영 싫지만은 않아.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뭘 해야하는지도 상기시켜줄뿐더러 더러운 일에 죄책감도 덜 들거든.
" 아, 미안. 역시 나 같은 애는 무리려나 "
피식, 하고 미소를 지은 분홍머리의 여자는 제 머리위에 쫑긋 솟아있는 하얀색 늑대귀를 앞뒤로 움직이다가 마찬가지로 하얀 털이 돋아있는 꼬리를 살랑거리며 뒤를 돌아 빠져나갔다. 두 명 보낸게 엊그젠데 한 번 더이려나. 아니, 싫지는 않아. 오히려 너무 즐거울 지경이야. 진짜로.
휘파람을 불며 골목으로 사라지려던 찰나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책을 쥐어주더니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내용이 다르다며 사 주지 않겠느냐는 말에 고개를 갸웃한 분홍머리의 여자는 어깨를 으쓱하곤 한 손으로 책을 받아들고는 휘리릭, 하고 책을 펼쳐보더니 눈을 들어 에네드를 바라본다.
" 글쎄, 네가 실수한 걸 왜 내가 사야하는지 모르겠는데 "
눈 앞에서 책을 떨어트렸고 책은 바닥에 더러운 물이 고여있는 웅덩이에 빠져 검고 냄새나는 물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어머, 실수. 그렇게 말하며 어깨를 톡톡 치곤 바빠서 이만 하고 말하는 여자의 목에는 굵은 줄에 걸려서 생긴 듯한 보기 좋지 않은 흉터가 있었다. 그리고 하나 더. 방금 톡톡 쳤던 어깨에 검붉은 피가 묻어있었다.
떨어지는 책을 보고는 받아내려고 양 손을 내 밀어보지만 노력이 무색하게 책은 떨어져 버렸다. 이게 정말! 하고 화가 났지만 고작 책이 떨어진 일 이다. 일반적인 물 웅덩이에 떨어졌으면 괜찮았겠지만 더러운 물에 적셔버렸으니 이 책을 사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
"아니, 너 이 책을 사려고 했었잖아. 안 그래?"
어이없음과 당황이 섞인 표정으로 더러워진 책을 집어들며 그 데미휴먼을 향해 걸어가며 말했다. 깨끗한 물에 세척한 후, 드라이하면 어떻게든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쩔 수 없지. 이 책은 내가 가져가서 읽도록 하자. 어떻게 썼는지 보고 고쳐야 할 방향을 볼 수도 있을테고. 하지만.
"그냥 줄게! 잘 씻어서 말리면 분명 읽을 수 있다니까? 이 책 종이 재질이 제법 쓸만해서 말려도 괜찮아! 신경 많이 썼다니까?"
실제로 재판때 종이재질을 좋은걸 쓸 수 없냐고 제안하기도 했었다고! 실수여도 그렇지 책을 그렇게 내팽개치냐! 진짜 너무하네!
골목의 어두운 저 편으로 들어갔던 여자가 다시 나오는 데에는 채 5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저 끝에서 작은 불씨가 보이나 싶더니 나온 것은 입에 담배를 물고 있는 아까 그 데미휴먼 여자였습니다. 주머니에 손을 꽂고 나온 여자는 아직도 서 있는 에네드를 보고는 엥? 하고 의외라는 표정을 짓고는 웅덩이에 쳐박힌 책을 보곤 피식 미소를 짓고는 사뿐이 책을 즈려밟고 앞으로 나아가며 옆에 서 있던 에네드의 얼굴에 담배연기를 후 - 뱉고 지나쳤습니다.
" 에이, 이 쪽이 아니었네. "
단순히 길을 잘못 들었던 모양인지 퉷, 하고 침을 뱉은 여자는 잠시 걸어다가다 아 맞네. 하고 멈춰서서 뒤를 돌았습니다.
그리곤 주먹을 쥐고 아까 그 검붉은 피가 묻었던 어깨를 툭툭 치고는 다시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리고 여자의 눈이 멈춘 건 아까 자신에게 너 같은 게 책을 읽을 수 있겠냐,고 막말을 뱉은 인간들. 여자는 씨익 미소를 짓고는 이 이상은 목숨이 아까우면 안 따라왔으면 좋겠네. 하고 말하곤 자세를 낮추고 그들을 따라갑니다.
진짜. 또 책을 밟네. 아, 읽고싶어서 사려고했으면 왜 책을 밟는데? 성격 진짜 이상하네. 보통이라면 목숨이 아까우니 그냥 가겠지만 이건 어쩔 수 없다. 이 성격 이상한녀석한테 한 마디 해줘야 내 정신건강에 좋을 것 같았다. 그리고 뭘 웃고있어. 안 웃겨.
"동정심 아니다."
동정심 아니다. 이거 정말이다. 타박타박, 다시 조금 빠르게 걸어나가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외쳤다.
"동정심 아니다! 이 책은 에네드 슈나이저의 4번째 작품이고 그 사람이 공원에서 느릿느릿 걸어다니는 중년 아줌마 아저씨들을 보며 '운동도 별로인데 왜 저렇게 매일 공원에서 저러는걸까?' 라는 의문을 품으면서 그 모습을 두 달간 바라보며 구상한 작품이라고! 그런만큼 이 작품에는 그러한 사람들의 느긋함이 가미되어있는 웰ㅡ 메이드 작품이라고! 하지만 그걸 바라보는 주인공은 공원에 있을만한 느긋한 사람이 아니고 그로인해 생겨나는 느긋함 속에서 느껴지는 괴리감이 확실하게 전달되게 한 충분히 잘 신경 쓴 작품이야! 두번째 재판부터 확실하게 잘 팔린데다가 그 덕분에 세번째부터는 재질도 제법 좋은걸 썼고! 당시에는 한정판본도 있었다고! 그것뿐만이 아니라.."
피식 웃은 여자는 그럼 이만, 하고 사라졌습니다. 사라져가는 방향은 방금 그녀에게 험담을 내뱉었던 두 세명의 무리의 사람들이 가는 방향과 동일했습니다. 따라가는 것인지, 몰래 뒤를 밟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들키지 않게 뒤를 밟고 있다는 점 정도일까요. 우연히 가는 방향이 겹쳤는지는 모르지만 늑대아가씨는 그건 아닌지 미소를 지우고 지우고 또 지우며 뒤를 밟습니다. 꼬리가 제 멋대로 붕붕거리는 것도 잊어버린 채로요.
그냥 그러려니 할 수도 있지만, 술집에서 들었던 여러가지 소문들.
- 이니시에이터가 죽었다더라. - 죽은 사람 목에 늑대에 물린 자국이 있었다는데? - 분홍머리였나, 흰머리였나.. 아, 흰머리에 분홍귀던가? 아니면 분홍머리에 흰 귀? - 한 두명 죽은 것도 아니라는데.
술집에서 들었던 소문들. 단지 소문이라고 치부하기엔 너무 개연성이 잘 맞아떨어지는 이야기. 그 알 수 없는 불안감은 늑대아가씨를 향하고 있었지만, 늑대아가씨는 이미 자리에서 떠나고 사라진 뒤 였습니다.
기분 나쁘면 말해달라는 말에도 리코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있었다. 귀든 꼬리든 앞, 뒷발이든 누군가가 만질 땐 인형처럼 가만히 있는 것이 습관이자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이 당연한 일에 따르지 않으면 버릇없다고 맞거나, 밥의 양이 더 줄어들거나 했으니까. 그러니까 이럴 때 싫다고 손을 빼거나 움직이는 건 분명 나쁜 일이고 해서는 안 될 일이겠지, 그런 확고한 생각을 가진 리코는 정말로 얌전히, 어떻게 보면 멍하니 있었다.
“…? 왜?”
어째서 사과를 하는 걸까, 의아함을 가득 담아 리코는 반문했다. 어째서? 아프지 않았는데 왜 사과를 하는지, 리코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답을 들을 생각까진 없었는지 리코는 깊게 생각하지 않고 바로 다시 뒤돌아 걸어갔다.
“차가운 물 있어. 바로 저기야.”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었다. 아주 잠깐 나왔다가 오베론과 마주쳤던 거라, 조금만 되돌아 가도 바로 보호소가 나올 거리였다. 그 증거로 리코가 가리키는 곳 바로 앞에 아홉꼬리보호소가 있었다. 빠른 속도로 성큼성큼 걸어, 그야말로 한달음에 보호소 앞에 도착한 리코는 잠시 멈칫했다.
오래 만지면 찬다고? 그러면 엄청 맞을 텐데. 만약 자신이 같은 일을 한다면, 리코는 그런 상상을 하고 몸을 잠시 굳혔다. 스스로의 의지로 굳혔다기 보다는 반사적으로 굳어졌다는 말이 더 올바르겠지. 굳어있던 몸은 물을 진짜로 마셔야 할 것 같다는 오베론의 말에 풀어졌다. 맞다, 물.
“응. 그럼 가져올게. 나는… 나는 괜찮아. 언제든지 마실 수 있어.“
여기 있으면 언제든 물을 마실 수 있으니까 괜찮아, 잠깐 기다려달라고 말한 리코는 보호소 안으로 들어갔다. 물 한 컵을 받는 데에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문제가 있다면 리코의 손이 물컵을 들기 제법 불편한 형태였다는 것뿐. 투박한 앞발로 어떻게든 잡으려고 해봤지만 결국 두 손 사이에 끼워서 조심조심 운반하는 것이 최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천천히, 물이 엎어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걸어 다시 밖으로 나와 오베론이 있는 곳을 확인했다. 아직 기다리고 있는 오베론을 보고 안심한 리코는 조심스러운 동작으로 다가가 물을 건넸다.
“여기, 조심해.”
마치 뜨거운 물이라도 건네주는 것처럼 조심하라는 말을 건넨다. 물론 뜨거운 물은 아니고, 시원한 물이지만.
작고 허름한 술집, 에네드 슈나이저는 술집의 구석자리에서 얼음을 띄운 위스키를 앞에두고 수첩을 들고 무언가를 바쁘게 적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너무나도 수상한 행동이었지만 무슨 연유인지 아무도 그를 건드리지 않았다. 그의 순진하게만 보이는 외관때문인지, 구석에 앉았다는 지리상의 이유덕분인지, 그가 가지고있는 산탄총이 주는 위협때문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저 작고 허름한 술집에서는 여러 사람들이 조용한 분위기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고, 무언가를 적는 소리는 마치 파티때의 바이올린처럼 은은히 퍼져 나갔다.
"한잔 더 주시게."
뭔가 외모와는 어울리지 않는 근엄한 목소리를 내며 눈 앞의 위스키를 입 안으로 털어내고 바텐더에게 같은 위스키를 더 주문했다. 어두운 조명이 어쩌면 그를 더 근엄하게 보이게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 술집은 분위기가 그리 나쁘지 않은 것 같군. 나쁘지 않아."
쓴웃음인지 여유로운 웃음인지 모를 괴상한 웃음을 보이며 수첩에 무언가를 다시 적어나갔다. 슥슥슥슥, 슥슥슥. 안타깝다, 에네드 슈나이저. 지금 이 자리에 혼자 술을 마시는 사람은 자네 혼자 뿐이로구나! 어찌 그리 편협한 교우관계를 유지하고 있는것이지? 무엇이 너를 그리 만들었느냐!
파삭, 총성과 둔탁한 파열음이 들리며 쥐 크토니안이 쓰러집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 괴물은 도심지를 바쁘게 기어다니는 조그만 쥐였을 텝니다. 크토니안에게 감염되기 전까지는요. 그 결과는... 보이는 바와 같았습니다. 가여운 쥐는 크토니안으로 변해버렸고 그대로 키아라에게 사살당했죠. 키아라는 옷에 묻은 크토니안의 체액을 대충 털어냅니다.
그렇게 그녀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길을 가는데, 골목 어귀에 위치한 허름한 술집이 보였습니다. 문득 술 생각이 납니다. 오늘 한 건 했으니 간만에 술잔이나 기울여야겠습니다. 고생 끝의 술 한 잔은 언제나 달콤한 법이죠. 키아라는 술집의 문을 열고 들어갑니다.
“브랜디 한 잔.”
키아라는 가볍게 주문을 하고 적당히 남는 자리에 앉습니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봅니다. 옆자리에 한 남자가 앉아있군요. 수첩에 무언가를 적고 있는데... 그가 지닌 산탄총 한 자루가 눈에 띄었습니다. 수첩과 총이라니 이 얼마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일까요. 키아라는 남자를 빤히 쳐다보고만 있습니다. 실례되는 행동이라는 것도 까맣게 잊은 채로요.
'브랜디 한 잔.' 이라는 목소리가 들리고 새로운 손님이 자리에 앉았다. 에네드 슈나이저가 슬쩍 돌아봐 그 손님을 보았는데 그가 생각하기에 그 새로운 손님은 많이 터프한(가설)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의 경험 상 한 사람을 계속 바라보는건 신변상 좋은 행동은 아니었기에 그대로 자연스럽게 시선을 술집에 있는 싸구려 TV로 옮겼다. 그리고 다시 수첩을 바라보고 무언가를 적으려다가 말고 망설였다.
"맥주, 시원한 맥주가 필요하네! 주인장!"
나름대로의 큰 목소리로 맥주를 주문하며 '분명 저 터프(가설)한 사람이 날 바라본 것 같은데. 아냐, 같은게 아니라 날 바라봤어.' 라는 생각을 했다. 에네드 슈나이저는 자신이 생각하기에 자신은 다른 사람의 시선에 예민하다고 생각한다. 일단 저 사람이 날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하고. 왜 날 바라보는거지?
"나의 근엄.."
한 모습에 푹 빠졌을리는 없다. 수상하다. 이걸 어쩐다. 몰래 산탄총에 탄환을 쑤셔박아두는게 좋을까? 아니, 공공연히 사람이 있는 장소다. 큰 일은 벌이지 않겠지. 홀로 걱정하고 안심한 후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키아라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녀는 남자가 지닌 산탄총에 시선을 잠시간 두었다가, 이내 거둡니다. 총을 가지고 있다 해서 수상할 것은 없습니다. 스스로라도 제 몸을 지켜야 하는 위험천만한 세상이니까요.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습니다. 키아라는 고개를 들어 낡은 TV를 쳐다봅니다. TV 안에선 한창 뉴스가 송출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아웃월드를 잇는 창이 자주 열리고 있으며, 그에 따라 크토니안에 의한 민간인 피해도 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건 늑대 크토니안들의 짓일까요? 아니면... 데미휴먼? 분홍색 머리칼에 흰색 귀라는 것을 보면 데미휴먼이 벌인 짓이라고 하는 게 맞겠네요. 인간과 데미휴먼의 갈등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술을 마시다 보니, 어느새 잔이 깔끔하게 빈 채였습니다. 키아라는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해가 졌는데도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열대야. 유페미아는 이니시에이터 일을 해서 잡은 크토니안들을 확인맡아 이에 따른 보상을 받기 위하여 밀폐형 바디 백(Body Bag)을 짊어지고 CPA 기관으로 향했다. 바디 백의 내용물은 크토니안화한 쥐 2마리, 비둘기 3마리, 고양이. 그 중 순수 크토니안은 없었다. 유페미아가 그동한 일하며 순수 크토니안을 접하지 않아서는 아니었다. 다만, 이제 유페미아에게도 일머리랄까, 이니시에이터 일을 할때의 규칙이라는 게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었다. 그 규칙이란, 이니시에이터들의 일반 규칙과는 동떨어진 유페미아만의 것으로, 이하 다음과 같았다.
1. 크토니안화한 생물을 발견하면 일반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못하도록 사살한다. 2. 순수 크토니안을 발견하면, 사살하지 않고 마취총을 이용해 잠재운 후, GPS 위치추적 마이크로칩을 체내에 삽입한다. 3. 위치추적 칩을 삽입시킨 순수 크토니안은 벽의 경계가 제일 약한 허수지구쪽으로 데려가, 벽을 넘어 방생한다. 4. 방생한 순수 크토니안이 지구 내로 다시 돌아온다면, 그때는 위치추적 장치로 확인해 사살한다.
유페미아 나름대로 생각하건데, 순수 크토니안을 관찰하여 그들의 산란지(어디까지나 유페미아의 가정 하에 존재하는)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하면서도, 민간인에게 피해는 최소화하는 방법이었다. 유페미아와는 다르게 상식인인 알펜슈타인 소장이 안다면 기절할 이야기지만.
여하튼, 의뢰비를 받고 CPA기관을 나오는 길. 돈을 세느라 미처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바람에, 반대 방향(즉, CPA 안으로 향하는 방향)으로 오던 상대에게 부딪히고 만다.
"응? 누구야-"
그리고 올려다 본 상대는-
"오... 오오! 정말로 아름다운 개체로구만!"
잠식이 상당히 진행된 상대의 모습을 보고, 실례란 것도 잊은채 대놓고 감탄하고 만다.
여기서 유의할 점은, 유페미아에게 있어서 '아름답다'는 미추를 떠나 자신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상대를 표현하는 말이란 거다. 가령, 유페미아가 레벨 5 크토니안을 만나게 된다면 그 모습은 일반인에게는 상당히 추하겠지만, 유페미아는 분명히 그것이 '아름다웠다'고 표현할 것이다.
아름답다? 아름답다고? 아니마는 그런 말을 처음 들었다. 사실 단순히 아름답다는 단어를 들은 적은 종종 있었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그것은 지금 유페미아가 말한 '아름답다'와는 분명 다른 것이었다. 다른 데미휴먼들은 아름답다는 말은 커녕 심해마녀, 투명마녀라는 멸칭을 뒤에서 수군거리곤 했고, 직원들은 아름답다는 말을 하긴 했지만 그 아래에 깔린 은근한 저의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아름답다는 말에 '근본없이 생겨가지고 생긴 건 쓸데없이'를 붙이면 아마 그 저의와 비슷할 것이다. 그 아름답다도 매력이 느껴진다는 뜻의 아름답다가 아니겠지.
그런데 이 부인의 눈빛은 뭔가 좀 다르다. 아니마가 들어온 아름답다가 평생 한 부류밖에 없어서 정확하게 분류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아니마의 수조 앞에 자리를 깔고 앉아 수족관 속 해파리를 감상하는 눈빛과는 확연히 달랐다. 조금 당황스러웠다.
"아름답다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아무튼 아니마 앞의 나이든 부인은 인간이다. 반사적으로 발뒤꿈치를 착 붙이며 차렷..하는 자세까진 아니고, 그냥 둘이 너무 가까이 붙은 것만 같아서 몇 발자국 떨어져 곧게 서는 선에서 그쳤다. 일련번호가 박힌 밋밋한 옷을 입고 있었지만 머리 위에서 호소력 있는 존재감을 과시하는 돔과 촉수, 그리고 한천 피부 속에서 부드럽게 움직이는 흑남색 손 뼈까지 가려지진 않았다. 촉수를 돌돌 말아서 등 뒤로 숨긴 아니마는 그리 큰 편이 아니라 나긋나긋하게 들리는 것 같기도 한 목소리로 물었다.
표정이나 행동에서 나오진 않지만 아니마는 상당히 당황했다. 감정 표현이 풍부했다면 아마 홍조가 올라오고 말을 더듬으며 도망가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건 아니마로선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아니마에게는 미안하지만 수조 앞에 자리를 깔고 앉아 수족관 속 해파리를 감상하는 눈빛과 그다지 다르지는 않았다. 다만, 그 바라보는 관찰자가 차가운 눈빛으로 하등생물을 바라보는 어른이 아닌, 자신이 처음 접하는 생명에게 호기심과 경탄-그래, 경외감까지 느끼는-아이였다면 정확하리라. 유페미아는 아니마가 떨어트린 거리를 한 걸음에 단숨에 좁히곤, 주절주절 말을 늘어놓는다.
"그야, 보시다시피 멋지지 않나! 잠깐, 말하지 말아줘, 내가 맞춰 보겠네. 투명한 한천질의 피부는... 분명, 자포동물의 특징이야. 물론, 뼈는 인간 쪽 DNA에서 나오는 것이겠지만 말이야! 자포동물은 무척추 동물이니까! 거기에 머리의 촉수는-해파리. 해파리 데미휴먼 맞나?!"
조금만 더 신이 났더라면 허락 없이 예의 그 언급한 한천질 피부와 촉수들을 손가락으로 찔러 볼 기세이지만, 유페미아와 아니마의 관계에는 다행히도 그 정도로 흥분하지는 않았다.
"뼈가 왜 흑남색이 되었는지는... 나로써는 도통 모르겠지만 말이야! 바로 그 부분이 멋져. 우리가 알아내야 할 부분이지 않나. 이 세상에 이미 아는 것 밖에 없다면 대체 무슨 재미로 살겠나, 안 그런가?"
"아, 미안 미안. 너무 신이 난 나머지 실례를 범했구만 그래."
유페미아는 그제서야 자신이 실례를 범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아니마에게서 사회적으로 용납되는 거리까지 몇 발짝 뒷걸음치고는 멋쩍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인다.
어찌 되었든 유페미아는 자유인이며, 아니마는 보호소의 데미휴먼이다. 군인과 민간인이 시비 붙으면 군인이 그냥 맞아야 하는 것처럼 아니마 또한 방어적인 자세를 취할 수 밖에 없었다. 혹시나 무언가가 삐끗하여 일이 터진다면 아마 아니마 쪽이 더 무거운 책임을 지게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아니마는 한천질이니 자포동물이니 dna니 하는 단어들을 알아듣지 못했다. 알 필요가 없었다. 조금 전문적인 어휘라 해도 MOA나 필링 퇴출 같은 계열의 어휘만 알고 있어도 생활하는데 문제가 없었다. 흥분한 채 알 수 없는 말을 자꾸 해 대는 부인이 부담스러웠다. 시선을 피하지 않고 계속 맞대고 있었지만 무어라 턱 밑까지 올라온 말 탓에 입술을 달싹거리거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는 등, 어쩔 줄 모르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유페미아가 이성(?)을 되찾고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자 아니마 또한 빠르게 진정을 되찾았다.
"██████-██████입니다."
당연하다는 듯 일련번호를 읆었지만, 이내 유페미아가 바라는 대답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정정한다. 그러면서 조심스럽게 자신의 왼손을 내밀었다. 혹여나 예상치 못한 사태가 터질까봐 손에 거의 힘을 주지 않았다.
"아니마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그리곤 아까 하지 못했던 말을 한다.
"권한이 있으시다면, 제게 묻기보단 보호소 아카이브를 열람하시는 게 정보 수집에 훨씬 좋습니다. 아까 무슨 말씀을 하셨는진 잘 모르겠지만 아마 그런 내용도 잘 정리되어 있을 겁니다."
권한이 있다면 보호소 아카이브를 열람하는 게 좋다는 말에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젓다가, 개체와 링크를 신청하면은 신상 서류를 볼 수 있다는 말에 멀뚱히 멈춰 아니마를 바라본다.
"나야 상관 없네만... 링크를 신청하게 되면 자네와 내가 페어를 맺어야 하는 것 아닌가?"
비록 링크를 공짜로 연구조교 및 보디가드를 얻는 방법 쯤으로 쉽게 생각하는 유페미아지만, 링크를 맺는 것이 데미휴먼에게는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쯤은 유페미아도 직관적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그런 데미휴먼의 링크의 기회를 그저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 허비해 버리는 것은 몹쓸 짓이란 생각이 들어, 다시 한번 사실관계를 확인한다.
인적이 드문 골목을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걸어가는 리코. 리코의 한 손에는 낡은 그림책 한 권이 쥐어져 있었다. 책을 읽으려고 마음에 드는 자리를 찾는다는 것이 어느새 보호소 밖 골목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정말로 어이없는 이유지만, 정말로 그랬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통 알 수 없는 얼굴로 걷던 리코가 마음에 드는 장소를 찾았는지 폴짝폴짝 뛰어갔다.
골목 한 켠, 한 쪽 모서리가 검게 변색되고 흐물흐물해진, 벽에 간신히 걸쳐져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골판지에 자리잡은 리코는 앞에 그림책을 펴두고 식빵자세처럼 웅크리고 앉았다. 삽화가 크게 그려진 페이지를 펴놓고 정독-이라고 해도 글자를 읽을 수 없는 리코에게는 정독보다는 삽화 감상이라는 말이 어울렸다. 어쨌든 마음에 드는 페이지를 보며 마음에 드는 장소에 앉은 리코는 꽤나 기분이 좋아 보였다. 표정은 덤덤하지만 목에서 울리는 그르렁 그르렁하는 낮은 울림이 리코가 기분이 좋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이 여름날, 위에서 내려온 임무도 없고 모처럼 평화롭겠다 싶어 키이라는 산책에 나선 참이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진정한 평온이란 누리기 힘든 것이지요. 여러가지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문득 아홉꼬리 보호소 앞이었답니다. 미호가 특별히 허락해준 외박에, 마리아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온 지가 며칠 전이었습니다. 집에서 같이 잠을 자고, 보호소로 돌아가는 날 엄마랑 헤어지기 싫다며 세상이 떠나가라 울던 마리아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겨우 어르고 달래서 보호소로 보낼 수 있었지만요.
“마리아...”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고개를 털었습니다. 그새 또 딸이 보고싶어집니다. 하지만 너무 자주 찾아가는 것도 미호 소장님께 실례가 아닐까요? 키아라는 보호소 앞 벤치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햇살도 쨍쨍, 날씨가 참으로 더웠습니다.
여름날의 햇살이 뜨겁게 비치던 날이었다. 푸른 국화꽃과 같은 빛깔의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이 그저 그 하나의 색으로만 가득했다. 바람은 그리 강하지는 않았지만, 제법 시원함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빨랐다. 공기는 약간 촉촉하게 습기를 머금어 더웠지만, 괜찮았다. 좋은 날이었다. 키아라가 딸에 대한 생각에 머리를 가득 채운 채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 생각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무겁고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시야의 오른쪽에서부터 왼쪽을 향해, 점점 소리가 커져왔다. 곧 이어 무언가가 키아라에게로 내려쬐던 햇볕을 끊고 쏜살같이 지나갔다. 뒤로 비쳐오는 강한 빛에 형체조차 제대로 보기 힘들었던 그것은 허공을 가르는 내내 소음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곧 그것이 키아라의 앞쪽에 내려오고 햇볕의 아래에 섰을 때, 그것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여기서 뭐해요?"
하늘처럼 푸르게 빛나는 머리칼과 깃털의 소녀였다. 고글을 머리로 올려쓰며 말하는 소녀의 얼굴에는, 햇볕만큼이나 밝은 미소가 떠오르고 있었다.
13년이라니, 대충 추정해봤을 때 한참 조그마할 때 들어온 셈이군요. 마리아도 딱 그만할 때 보호소에 맡겼었는데. 마리아가 그 어린 나이에 엄마 품에서 떨어졌어야 했던 걸 생각하자 다시금 마음이 아파옵니다. 하지만 그도 어쩔 수 없는 게 키아라는 당시 군대에 있었으니까요.
익숙한 이름이 나오자 키아라는 사뭇 놀란 듯 소녀를 바라봅니다. 그러나 금세 수긍했지요, 모녀지간 아니랄까봐 마리아는 키아라와 꽤 닮았으니까요. 눈썰미 좋은 사람이라면 둘이 가족이라는 것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을 겁니다. 키아라는 그렇게 수긍하곤 입을 열었습니다.
키아라를 맞바라보며 소녀도 베시시, 마찬가지로 웃어보였다. 그리고 곧 이어지는 키아라의 말에도 그 웃음은 여전했다. 마리아와 같은 성을 쓰고 있는 젊은 어머니. 솔직히 말해서, 호기심이 많았던 소녀로서는 키아라의 뒷사정에 대해서 전혀 궁금하지 않다고 하면, 역시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처음 만난 사람에게 그런 걸 물어보는 건 그리 현명한 행동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키아라의 미소에서는 깊은 애정이 느껴졌다. 그 미소라면, 어떤 뒷사정이 있든 그다지 상관 없는 일이었다. 그저 태연도 같이 웃어줄 뿐이었다.
태연의 자그마한 손은 유난히 따뜻하게 감겨들어왔다. 태연은 키아라의 손을 꼭 붙잡고, 가볍게 위 아래로 흔들어주었다.
"헤, 사준다면야 사양하진 않을게요. 사실 좀 전에 날아다니느라 배가 좀 고파졌거든요."
태연이 픽 웃으며 자신의 배에 왼손을 올려 가볍게 두드렸다. 굉음이 울릴 정도로 빠르게 날갯짓하다보면, 체력 소모가 극심해지는 것은 당연했다. 보통은 비행을 마치고 바로 식당으로 날아가는 일이 많았다. 다만 이번엔 키아라와 이야기를 하다보니, 때를 어느정도 넘긴 상태였다.
비행은 역시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는 행위일까요, 태연이 배를 통통 두드리자 키아라는 실소를 흘리며 벤치에서 일어납니다.
“그럼 가자. 근처에 괜찮은 식당이 있거든.”
키아라는 태연을 데리고 자리를 옮겼습니다. 둘이 향한 곳은 보호소 근처에 자리한 고즈넉한 분위기의 양식집으로, 키아라가 종종 마리아와 함께 오기도 했던 곳입니다. 조금 이른 저녁때라 그런지 사람이 몇 없는 식당 내부는 한산했습니다. 자리를 잡은 키아라는 메뉴판을 대충 훑어보고, 태연에게 건네줍니다. “나는 괜찮으니 사양 말고 맘껏 시켜.”라고 덧붙이면서요.
키아라가 선뜻 밥을 사주겠노라고 하자, 태연은 기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태연이 날갯짓하며 벤치에서 일어나고는 키아라의 옆에 나란히 서서, 키아라를 따라갔다. 보호소 바깥의 어딘가로 갈때, 태연이 걷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날아가면 한순간이었으니까. 하지만 오늘은 동행이 있으니, 걸어보기로 했다. 키아라와 함께 향한 곳은 언젠가 여러번 본 적은 있지만, 들어가 보긴 처음인 양식집이었다. 태연은 키아라와 함께 자리에 앉고, 키아라가 건네주는 메뉴를 받아들었다.
"진짜로 맘껏 시키면 방금 그 말 후회하게 될걸요?"
태연이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장난스레 씨익 웃었다. 평소라면 종류별로 하나씩 시켜서 다 먹어치웠겠지만, 지금은 그 정도로 배고프진 않았다. 얻어먹는 신세기도 하고. 태연은 알리오 올리오 한 접시만을 주문했다. 다만, 디저트는 큰 걸로 골랐다.
"뭐어, 특별히 곤란하거나 심각한 질문은 아니니까 걱정 마요. 이니시에이터 일이 곤란한게 아니라면 말이지만... 그냥 이니시에이터로 활동하는게 어떤지, 직접 들어보고 싶었거든요."
CPA 산하기관에서 받은 의뢰비를 고이 챙겨, 식료품점으로 향하는 길. 유페미아는 길 어귀에 웅크려 앉아있는 아이를 발견한다. 주변에 보호자도 보이지 않는데, 길을 잃은 아이일까. 하지만 곤란하게도, 유페미아는 아이를 잘 다루지 못한다. 딱히 친척이랄 게 없는 유페미아의 어린 아이에 대한 경험은, 자신의 어린 시절밖에 기억에 없고, 그건 벌써 40년 전의 이야기인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이를 홀로 내버려 둘 수도 없는 일.
'어른이나 아이나 뭐 그리 크게 다르겠나. 그냥 키 작은 어른이라고 생각하고 대하면 될 일이지.'
마음을 정한 유페미아는 리코에게 다가가 -어른에게 하듯이!-말을 걸었다.
"자네, 아까 전부터 이 곳에 있던데, 혹시 길을 잃은겐가?"
"자네 부모님은 어디 계신가?"
무더위에 맞춰 늘어진 티셔츠와 츄리닝, 슬리퍼 차림인 유페미아는 아마도 이니시에이터 같이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라이플도, 마취총도 들고 있지 않은걸.
리코가 길 어귀에 웅크리고 앉아 있던 것은 크게 뭔가 이유가 있던 건 아니었다. 덥기도 하고, 잠깐 앉아서 쉬다 가려는 생각이었다. 다가온 사람이 말하듯 길을 잃은 것은 절대 아니었다. 타고난 후각 덕분에 길을 찾는 것은 쉬웠으니까. 리코는 가만히 시선을 올려 말을 걸어온 상대를 보았다. 귀도, 꼬리도 없고 특별한 냄새가 나는 것도 아니었다. 아마 그냥, 사람이지 않을까, 그렇게 짐작한 리코는 일단 질문에 대답했다.
“…아니요. 길 찾을 수 있어요.”
“…부모…님?”
길은 찾을 수 있으니 괜찮지만, 부모님이 어디 계시냐는 질문에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웅크리고 있던 몸을 일으켜 가능한 한 반듯한 자세로 선 리코는 다시 말했다. 모르는 거니까, 모른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잘 모르겠어요.”
웅크리고 있던 바람에 감춰져 있던 꼬리가 살랑, 가볍게 좌우로 흔들렸다. 털이 복슬복슬한 팔과 다리도, 일어서 있는 지금은 아마 상대의 눈에 훤히 보이리라.
길을 찾을 수 있는데, 부모님이 어디 계신 지는 모르겠다라... 부모님이 아이 없이 외출이라도 한 것일까, 이에 대해 추가 질문을 할 생각이었지만, 리코의 꼬리와 팔다리를 목격한 지금은 질문이고 뭐고 까맣게 잊고 말았다.
"오..오오! 자네, 대단하구만!"
크토니안의 신비-데미휴먼의 동물적인 특징들도 결국엔 다 크토니안의 능력에 의한 것이니-에 완전히 매료된 유페미아는, 이를 좀 더 자세히 관찰하기 위해 실례란 것도 잊고 리코를 자신의 눈높이로 번쩍 들어올린다. 실례란 것을 잊었다기 보다는, 자신이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지조차 깨닫지 못했다는 것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흥미로워... 아주 흥미로워!"
"자네, 직요골이 길-게 늘어났군 그래! 경골은 짧게 줄어들었고 말이야!"
"고양잇과 동물인 것은 확실한데... 고양이, 아니 호랑이인가?"
//리코주 에피가 이렇게 무례하고 무섭게 다가와서 죄송합니다... 첫인상이 이게 뭐야....
갑자기 시야가 높아졌다. 스스로 점프한 것은 아니고 앞에서 말을 걸어왔던 사람이 자신을 들어올린 것이었다. 리코에게는 꽤나 흔하게 있었던 일이다. 이럴 때 반항하거나 빠져나가려고 몸을 뒤틀면 엄청 혼나곤 했었다. 그러다 주인이었던 사람의 손이나 팔에 생채기라도 냈다간 그야말로 끔찍한 일이 일어나곤 했었고. 그렇기에 리코는 들어올리는 손에 별 반항이나 저항을 하지 않았다. 그저 얌전히 번쩍 드는 대로 들려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
직요골? 경골? 잘 모르는 말이 쏟아진다. 리코는 아주 잠깐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가, 호랑이냐는 물음에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귀부터 꼬리 끝까지 가만히, 그야말로 인형이 된 것처럼 들린 리코는 가만히 눈 앞의 사람을 보고 있었다. 그 사람의 눈하고는 다른 느낌이다. 신기하게 보는 시선은 같아도 무언가가 다른 느낌.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주문을 모두 받은 종업원이 카운터로 향하자, 태연은 턱을 괸 채로 앉아 키아라를 바라보았다. 긴장한 기색 없이 편안한 모습이었다. 그 이후로 키아라에게서 들은 이야기들은, 조금은, 어쩌면 꽤 무거운 이야기들이었다. 태연은 괴었던 턱을 다시 들고, 똑바로 앉은 채로 키아라를 바라보았다.
"서류 상으로는, 링크 된 사이였죠. 물론 실무에 참가하진 않았지만요. 원래 엄마와 함께 일하던 데미휴먼, 그러니까, 아저씨는 따로 있었어요."
사실, 태연은 이니시에이터나 크토니안과의 사투에 대해서 잘 아는 편은 아니었다. 어머니는 그런 것을 가르쳐주기도 전에 먼저 훌쩍 떠나버렸고, 어머니의 동료였던 그 아저씨는... 역시 어디론가로 사라졌다. 태연을 보호소에 맡긴 채로 말이다. 이니시에이터에 대한 태연의 심상은, 이미 사라져버린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막연한 동경이었다. 시간이 지나 어느정도 구체화되었다곤 했지만, 역시 그 뿐이었다. 그렇기에 키아라의 이야기가 그리 길고 자세하지 않은, 대략적인 설명이었음에도 태연의 관심을 끌긴 충분했었다.
"제가 보호소에 오게 된 건 엄마가 돌아가신 이후였어요. 크토니안과 싸우다가... 돌아가셨다고 들었어요."
유페미아는 리코를 이리저리 바라보다가, 이내 호기심이 충족된 후에야 정신을 차리고는 그녀를 다시 바닥에 내려놓는다. 아이의 표정을 살펴 보니, 이런, 큰일이다. 단단히 겁을 먹은 모양이다. 그도 그렇지,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다가와 자신을 들어올렸으니. 누구라도 겁이 날 일이다.
"크흠, 큼. 나도 참. 내가 큰 실례를 저지르고 말았군. 정말로 미안하네-"
00군, 이라고 사과 뒤에 이름을 붙이려다가, 아직 이름도 모르는 상대에게 이런 무례를 끼쳤단 걸 깨닫는다.
다시 바닥에 톡 내려놓아졌다. 발이 땅에 닿는 감촉을 확인한 후 리코는 다시 고개를 올렸다. 큼큼, 헛기침을 하는 모습. 그리고 사과를 건네는 모습에 리코는 조금 놀란 듯 눈을 살짝 크게 떴다. 다른 반응이다. 확실히 예전의 그 사람과는 다른 반응이다. 그러면, 이 사람은 그 사람하고 다른 건가? 그런 생각을 하던 리코는 ‘아직 이름도 모르는 상대인데 말이야!’라는 말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리코에요.”
이름을 묻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제대로 대답하지 않으면 안돼. 왜냐하면, 대답하지 않으면 무서운 일이 일어나. 뿌리깊게 새겨진 기억의 충고대로 리코는 재깍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그렇게 말한 뒤 리코는 다시 생각했다. 왜 미안하다고 한 걸까. 이 사람이 그때 그 사람과 다른 사람이니까? 그런데 어디가 어떻게 다른 걸까. 곰곰이 생각하던 리코는 결국 또 다시 잘 모르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곳에서 나온 뒤로는 잘 모르는 일들 투성이라는 결론도 같이.
"그렇게 갑자기 들어올렸으니 자네가 놀라지 않았겠나! 내가 원래 한 곳에 집중하면 예의나 염치같은 것들을 잊곤 한다네. 그것이 핑계가 되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지."
리코가 어느 정도 진정된 것 같아 보이자, 유페미아는 자신의 이름을 밝히며 악수를 청한다.
"내 이름은 유페미아라고 한다네. 유페미아라는 이름이 발음하기 힘들다면, 에피라고 불러주게."
"'에피'라는 이름이 발음하기 힘들다면, '에피네프린'이라고 부르고 말이야!"
라고 말하며 유페미아는 피식 웃는다. 에피네프린이 에피보다 발음하기 힘들지 않는다고 묻는다면, 답은 간단하다. '에피네프린'은 인체의 호르몬의 일종인데, 마침 앞의 두 글자가 유페미아의 애칭과 같다는 것이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적 하던 재미 없는 농담이었는데, 버릇이란 참 죽이기 힘든 모양이다.
태연이 빙긋 웃으며 어깨를 한번 으쓱였다. 태연의 말대로, 보호소의 모두에겐 각자 이야기가 있었다. 그 무게감에 짓눌리는 아이도 있었고, 견디는 아이도 있었다. 특히 태연은, 그 작은 몸으로도 자신의 짐을 꽤나 잘 버티는 편이었다. 키아라가 접시를 내밀자 태연은 짧게 감사인사를 덧붙이고는, 포크로 알리오 올리오를 크게 떠서 먹기 시작했다. 포크 한번에 양이 절반씩 줄어든다. 몸도 작은데 저 많은 걸 게눈 감추듯 먹어치우는게, 혹시 또 다른 능력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뭐어... 그렇죠. 싸워본 적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크토니안과 싸우거나 한 경험은 없었어요. 기껏에야 모의 훈련이 전부?"
면발이 한가득 휘감긴 포크를 들며 말하고는, 그대로 면발을 입 안으로 넣어 우물이다가 삼켰다. 비행술은 물론이고, 사격술, 무기 다루는 법 등등, 배운 것은 많지만... 발휘할 일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실제로도 놀랐다기보다는 아, 또네 라는 느낌이었으니. 그보다 리코는 자신과 눈높이를 맞춰주는 상대의 모습이 조금 놀라운 모양이었다. 상대─에피가 이름을 밝히며 내민 손에도 적잖게 놀란 듯 이때만큼은 당황한 눈치로 상대의 표정을 살폈다. 위에서 머리 위로 다가오는 손은 무서운 거다. 그런데 이렇게 눈 앞에서 천천히 내밀어지는 손은… 모르겠다. 리코는 당황한 기색 그대로 더듬더듬 말했다.
“에피...” “…때릴… 거에요..?”
이전에 사슴─ 오베론을 만났을 때도 잠깐 굳긴 했지만, 그래도 오베론은 자신과 같은(후에 미호에게 물으니 데미휴먼이라고 부른다고 했다)데미휴먼이었기에 크게 놀라진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 눈 앞에 있는 에피는 사람이다. 리코에게 있어서 감히 반항하거나 저항할 수 없는 상대였다. 맛 본지 얼마 안 된 평온에 물들어 잊을 뻔한 기억이 리코에게 경고했다. 조심해. 안색을 살펴. 조심하지 않으면 또 맞게 될 거야.
“…얌전히 있을게요. 가만히 있을 테니까… 때리지 마세요…”
내민 손 앞에서 안절부절하던 리코는 머리를 조아리고 말했다.
//뭘 하든 어두운 이야기로 빠지게 되어서 미안해...(흐릿 빨리 밝고 밝은 호양이가 되어서 깨발랄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흐으릿
악수를 내밀었는데 때릴 거냐는 질문을 하자 적잖이 당황해 주변을 둘러본다. 아무래도 지칭할 사람이 자신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고민에 빠져 미간을 찌푸린다. 때리는 시늉을 한 것도 아니고, 손을 내밀 뿐이었는데 때리지 말라니. 마치, 자주 맞아왔기에 모든 상호작용에서 맞을 것을 예상하고 있는 것만 같은 행동이다. PTSD. 유페미아는 의사가 아니지만, 동물행동학을 공부하면서 알게된 특징적인 행동들이다.
이 아이는 집에서 맞고 있는 걸까, 얌전히 있으라고?
"...리코, 나는 자네를 때리지 않는다네."
"애초에 누굴 때리는 걸 좋아하지 않아! 나는 폭력적인 사람이 아니거든!"
사실이다. 어렸을 적 또래 아이들과 장난을 치던 것을 제하면 51년 평생 간 남을 때린 경험은 사실상 없는 것이다. 유페미아는 리코의 반응을 살피며, 조심스레 한번 떠 본다.
"만약 열리면 이제까지 연습한 걸 발휘해볼 기회가 될 수도 있으려나요? 뭐, 물론 안 열리는게 역시 제일이지만요."
자신을 염려하는 키아라를 향해 태연은 괜찮다는 듯 양손을 펼쳐보이며 웃음지었다. 언젠가는 자신도 어머니처럼 될 수 있을까, 태연의 오래된 고민 중 하나였다. 다른 길을 생각해본 적도 있었지만... 역시 지금의 길은 쉽사리 포기할 수 없는 것이었다. 언젠가는 포기할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때까지는 최선을 다할 생각이었다.
"저보다는 키아라 씨가 더 조심해야 할 것 같은데, 혹시 도움 필요하면 바로 날아갈테니까 연락 한번 넣어줘요. 밥값 대신으로! 괜찮죠?"
키아라와 함께 식사를 마치고 일어나던 태연은, 문득 생각난 듯 작은 쪽지에 열한자리의 숫자를 적어 건네주었다. 태연의 연락처였다. 푸른 잉크로 적힌 전화번호의 끝에는, 작은 깃털 그림까지 그려져 있었다.
"아, 그리고 그 약속은 못 지키겠는데요? 저 혼자 키아라 씨 만났다고 하면 마리아가 서운해 할 것 같거든요. 다음에 직접 와서 전해주셔요! 식사 고마웠어요!"
어느새 포장까지 이쁘게 된 특대 티라미수까지 한손에 들고는, 태연이 키아라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마지막으로 환한 미소를 남긴 채, 태연은 날개를 파닥이며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어느새 붉게 물든 하늘 위를 푸른 빛이 길게 가로질렀다. 이내 푸른 빛은 보호소 방향으로 사그러들었다.
부모님이라는 말은 잘 모르겠어. 리코에겐 너무 먼 말이었다. 사물의 분간을 할 수 있게 된 뒤로부터, 혹은 그 이전부터 쭉 자신이 있던 곳은 예전의 그 사람, ‘주인’이라고 부르라며 혼내던 그 사람 밑이었고, 그 외의 장소는 최근 막 머물기 시작한 보호소라는 곳이었으니까. 부모님이라는 사람과 함께 지낸 적은 없던 것 같다. 그런 기억은 리코에게 없었다.
“주인님은 때렸어요.. 그치만 그건, 가만히 안 있었으니까… 얌전히 있으면 괜찮아요.” “지금은 괜찮아요. 미호도 때리지 않아요. 그치만 사람은 때리니까. …얌전히 있을게요.”
리코는 자신이 설명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힘껏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예전엔 그랬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고, 데미휴먼인 미호는 자신을 때리지 않지만 사람은 언제든 그럴 수 있으니 얌전히 있겠다는 뜻을 어떻게든 더듬더듬 전했다. 제대로 전해질지는 미지수였지만.
만약 리코에게 그런 훈육이라는 이름의 폭력이 가해지지 않았다면, 그런 기억들에 길들여지지 않았다면 아마 한마디를 더 붙였을지도 모른다.
‘사람을 때리는 건 좋아하지 않아도, 데미휴먼을 때리는 건 꺼리지 않을지도 모르잖아요? 항상 그랬는 걸.’라고.
불필요한 말을 하면, 아니, 입을 벙긋거리기만 해도 맞았던 기억과 그것에 의한 학습효과로 리코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가만히 에피의 안색을 살피고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