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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늘한 표정의 령은 다른 늑대들에게 달려들어서 목의 구슬을 베어냈다. 목의 구슬이 잘려나간 늑대들은 한순간이지만 편안한 표정을 지었고 방금 전 그 늑대들처럼 몸이 천천히 분해되어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마루는 크게 으르렁거리면서 두 손의 발톱을 강하게, 날카롭게 세웠다. 정말로 제대로 화가 난 것인지 그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고, 모두를 비웃는 청호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ㅡ지금 것도 충분히 잔혹하지 않습니까? 눈앞에서 자신의 가족을 잃게 하는 것은 잔혹한 것이 아닌지요? 결국 당신들이 하는 것은 당신들이 위험할 것 같기에, 저 천박한 늑대 신이 위험할 것 같기에 자연의 섭리를 운운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라지는 내 무리의 모습이라고? 닥쳐! 닥쳐! 닥쳐! ...네 녀석들은...! 네 녀석들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는 듯이 마루는 령을 향해서 달려들려고 했지만 가온이 그 앞을 막아섰다. 밀리지 않는 힘으로 마루를 밀어내면서 가온은 다른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 동안에 백호는 더욱 결계를 강하게 쳤고 마루의 발을 막아서려고 시도했다.
이어지는 리스의 말에 가온은 상황을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녀의 말은 더욱 강하게 마루의 가슴에 푹푹 꽂히고 있었다. 자연의 섭리로 돌아가는 것 뿐이라고, 지금 자신에게 행복하냐고... 혹은 괴롭냐고 묻는 그 말에 마루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뒷걸음질을 쳤다. 뒤이어 그는 크게 괴성을 지르면서 큰 목소리로 외쳤다.
"그럼 어쩌라는 거야!! 우리들이... 우리들이...자연의 섭리를 어기고, 이렇게 다시 살아난 것이 잘못이라는 거야?! 그렇기에 우리들은 사라져야만 한다는 거냐! 바로 눈앞에 일족을 배신한 배신자가 있는데!! 우리들을 버리고 신계로 떠나가버린 이들이 있는데..!! 나는..! 우리는...!! 우리의 소망을 위해서..! 단지 그것만을 위해서..!!"
ㅡ그렇습니다. 소망을 이룰 수 있는데 그것을 방해하는 이들은 모두 적입니다. 없애버리면 되는 겁니다. 마루.
또 다시 들려오는 청호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마루의 귓가를 멤돌면서 그를 유혹했다. 그것은 마치...악마의 속삭임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참으로 잔혹하고 잔혹한 악마의 목소리였다.
"...마루..."
침묵을 지키고 있던 가온은 결계 밖으로 천천히 나아갔고 마루의 앞에 멈춰섰다. 그리고 그를 바라보면서 조용히 이야기했다.
"...그래. 너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야. 신이 되고서, 나는 더 이상 그곳에 있을 수 없기에, 그곳에 있으면 균형이 깨치고, 이치가 깨질 거라고 생각했기에... 떠난거였어. 그리고..난 한시도 너희를 잊은 적이 없어. 언제나.. 언제나..너희는 나의 가족이자 무리였으니까. 만약 그 구슬이라는 것이 너를 속박하고, 내 무리들을 속박하고 있다면... 그것을 깨는 것도 내가 할 일이겠지."
이어 가온은 모두를 바라보면서 작게 한숨을 내쉬면서 입을 열었다.
"검은 늑대신 가온이 부탁합니다. ...정보를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적어도 마루는... 내 동생은 제 손으로 끝을 보겠습니다. 허락해주시겠습니까?"
검을 내지른 령은 마루가 자신을 향해 달려오자 검의 끝을 마루에게 겨누었다. 다행히 가온이 막아서서 자신이 마루를 벨 일은 없었다. 령은 살벌한 표정으로 청호의 목소리를 잠자코 들었다. 그래. 이 상황이 되어도 너는 그들을 이용하는구나. 령은 허공을 향해 조용히 말을 이었다.
"닥치지 않으면 그 입을 찢어버리겠다."
평소에 거친 말을 전혀 내뱉지 않은 령인만큼 이번에 내뱉은 말은 파격적이었다. 동시에 령이 얼마나 화가 났는지를 보여주는 척도라고 할 수도 있겠다. 령은 가온의 부탁을 듣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 같아서는 자신이 모든 일을 끝내고 싶었지만 그것은 가온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마루 님과 늑대 씨들은 잘못 하신 거 하나도 없으세요. 죄를 지은 존재가 있다면, 그건 청호예요. 마루 님, 마루 님께서는 이런 상황을 소망으로 바라셨던 건가요? 마루 님께서 진정으로 바라셨던 것은 모두를 없애버리시는 거였나요? 아니면 가온 님을 만나서 대화를 나눠보는 것이었나요? 마루 님, 제발 청호의 목소리를 듣지 말고 가온 님을 봐주세요... 제대로 가온 님의 목소리를 들어주세요..."
눈물 어린 간청이 이어졌다. 그리고 이내 마루 님의 앞으로 다가가신 가온 님. 그리고 이어서 들려오는 가온 님의 말씀과 부탁을 모두 조용히 귀기울여 듣고, 이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가온 님. 얼마든지요. ...가온 님의 형제 분이신 마루 님을... 부디 잘 부탁드려요, 가온 님."
가족. 마음이 찢어질 것만 같이 아팠지만 애써 소매로 눈물을 훔쳐내고는 다시 활을 들었다. 마루 님을 가온 님께 맡긴다면... 다른 늑대 씨들은 저희들이 편하게 해드릴거예요. 계속해서 직접 이 두 손으로 늑대들을 다시 죽음으로 되돌려보내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자 눈물로 시야가 다시 흐려졌다. 안 그래도 한 시야밖에 보이지 않던 눈동자가, 늑대들의 목의 구슬을 겨누는 화살의 끝이, 슬픔에 작게 떨려왔다.
리스의 목소리에 마루는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두 머리를 뒤어짜기 시작했다. 그리고 매우 큰 괴성을 지르면서 마구 몸을 날뛰기 시작했다. 청호의 목소리를 듣지 말고 가온의 목소리를 들어달라. 그 말에 청호는 피식 웃으면서 다시 모두에게 이야기했다. 그것은 말 그대로 모두를 명백하게 비웃는 목소리였다.
ㅡ당신 따위가 저를 찢어버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분수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군요. 그리고..죄를 지었다니. 너무하는군요. 저는 그저 소망을 가진 이들을 다시 깨워준 것 뿐인데, 그런 것도 죄란 말입니까? 그저 자신에게 불리한 일이 일어나면 그것이 죄가 되는지요. 그리고.. 제가 만든 소망이라고요? 그럴리가요. 이것은 명백히 존재하는 소망입니다. 저는 그것을 단지 키워줬을 뿐이고요.
"......"
그 목소리를 듣고 있던 누리는 기분이 나쁘다는 듯이 표정을 찡그렸고 단번에 신통술을 발동했다. 그와 동시에, 청호의 목소리가 끊어졌다. 이어 그녀는 뒤쪽에서 모두에게 이야기했다.
"청호의 텔레파시를 잠시 끊어뒀어! 하지만 오래 가진 못할 거야! 그러니까 서둘러! 가온아!"
"......감사합니다. 그리고..어떤 의미냐고 해도... 자연의 섭리를 되돌릴 뿐입니다. ...단지 그 뿐입니다. 저들이 모두 청호에게 이용당하는 것이라고 한다면...같은 가족이었던 제가 끝을 보는 것이 당연하겠지요."
아사의 말에 대답을 하면서 가온은 마루를 바라보았다. 이어 가온은 손의 발톱을 날카롭게 내세웠다. 그것은 마치 크로 계열의 무기와 다를바가 없었다. 이어 그는 마루를 바라보면서 이야기했다.
"마루. ...네가 지금 가지고 있는 소망이 무엇인지 난 알 수 없어. 하지만... 청호에게 지배당하지 마! 너는 한 무리의 알파잖아! 다른 이에게 조종당하는 알파라니! 그러고도 네가 한 무리를 이끄는 리더냐!"
".....몰라..! 몰라...! 몰라..!! 나는...나는...!! 나는...!!!"
크게 괴성을 지르면서 마루는 가온에게 돌진하듯이 달려나갔다. 그것은 괴로워하면서, 수많은 것들을 부정하는 표정이었다. 이내 가온은 뒤늦게 앞으로 돌진했고, 두 늑대의 크로는 서로를 향해 나아가면서 서로는 서로를 스쳐지나갔다.
이내 서로가 스쳐지나가자 가온이 신음소리를 내면서 한쪽 무릎을 꿇었다. 한번 찔렸던 가슴 부위가 다시 한번 찢어지고, 그 안에서 출혈이 작게 일어났다.
"야! 가온아!!"
백호가 크게 외치는 것과 동시에 가온은 한쪽 손을 들어서 괜찮다는 듯이 숨을 헐떡였다. 그리고..그와 동시였다. 마루의 목에 달려있는 작은 구슬에 금기 가기 시작했고 그것은 곧 산산조각 나서 사라져버렸다.
자신의 말에 마루 님께서는 무척 괴로워하며 날뛰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마음은 여전히 찢어질 듯이 아팠다. 괴로움을 드려서 정말로 죄송해요, 마루 님... 마음 속으로 몇 번이고 사과를 전하며. 그러나 이것 역시도 필요했던 일이었으므로 슬픈 마음은 더욱 가라앉아버렸다. 그러나...
"...진정으로 너무한 건 당신이죠. 청호, 당신은 저 분들의 소망과 감정을 뒤틀리게 왜곡시켰어요. 그것이 죄가 아니고 무엇인가요? '신' 님들 앞에서 감히 죄를 저질러 놓고 반성도 없다니... 당신이야말로 그저 자신에게 불리한 말을 들으면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시는지요?"
청호의 목소리에는 슬픔의 마음보다도 분노와 미움의 마음이 더욱 크게 담겨있었다. 천벌 받을 자. 적호보다도 더욱 미운 자였다. 모두를 '사랑'하고픈 자신이었지만, 청호의 말과 행동들은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으니. 자신을 욕하는 것은 괜찮았지만 다른 이들을, '신' 님들을 욕하는 건 절대로 참을 수 없었다.
이어서 청호의 텔레파시를 끊어준 누리 님께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며, 자신은 활을 들어 늑대들의 구슬을 겨누었다. 그러면서 들려오는 가온 님의 말씀.
...가족. 눈물이 새어나오는 목소리가, 화살을 겨누는 손가락이, 작게 떨려왔지만 눈물을 닦을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그저 늑대들의 구슬을 화살로 깨려고 하며, 애써 두려움과 슬픔이 어린 눈빛으로 가온 님과 마루 님의 싸움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 가, 가온 님! 마루 님!"
두 늑대의 격돌 끝에 가온 님께서 피를 흘리기 시작하자 깜짝 놀라 외쳤다. 그리고... 산산조각나서 사라져버린 마루 님의 구슬. 다행히 이번에는 령이 가온 님의 상처를 치료해주기 시작했기에, 황급히 가온 님 쪽으로 다가가서 걱정스레 상처를 바라보며 령의 치료를 도와주려 했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들어 마루 님 쪽을 바라보았다.
"......마루 님..."
걱정스럽고도 슬픈 목소리가 조용히 흘러나왔다. 이대로 사라지시는 건... 그런 건... 안 돼요.
"마루 님, 이제 정신이 드시나요...? 마루 님을 공격하시는 것 대신, 마루 님을 괴롭히던 구슬을 부숴주신 가온 님의 모습을, 마루 님께서는 이제 믿으실 수 있나요? 마루 님과 다른 늑대 씨를 아끼고 '사랑'하셨던 가온 님의 마음을, 마루 님께서는 이제 믿으실 수 있나요...? 청호의 목소리에 현혹되는 것이 아닌, 온전히 마루 님 스스로의 감정과 마음으로써..."
가온에게 제일 먼저 다가온 것은 다름 아닌 령이었다. 그녀는 상처를 지혈하려고 하면서 신통술로 성처를 회복하려고 했다. 그러자 가온의 상처는 천천히 아물기 시작했고 피도 조금씩 멎기 시작했다. 그것은 리스의 힘도 더해졌기에 정말로 빠른 회복이 아닐 수 없었다. 아프고 쓰라린 것은 분명히 사라졌지만 가온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아니..정확히는 땅을 향해서 눈물방울을 흘리고 있었다. 그는 방금 마루의 '구슬'을 깨뜨렸다. 그 구슬이 깨졌다는 것은 곧....
"......."
곧 아사와 리스의 목소리가 마루에게 와닿았다. 지금 무슨 기분이냐고... 이제 정신이 드냐고... 이야기를 묻는 그 말에 마루는 몸을 비틀거리면서 모두를 바라보았다. 주변에서 늑대들이 하나둘씩 마루에게 다가왔고 마루는 괜찮다는 듯이 손을 들어서 다른 늑대들이 오는 것을 멈추게 했다. 그리고 마루는 방금 전과는 다르게 완전히 순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뭘까. 긴 꿈을 꾼 것 같은 기분이야. 방금 전까진 미칠 것 같았는데 지금은 이유를 알 수 없을 정도로 편안해. 무언가...나를 해방시킨 것 같아. ...사실은 알고 있었어. 내가... 내가... 우리가... 우리가... 그 목소리의 꼭두각시가 되어있다는 것을.. 하지만..그것을 컨트롤 할 수 없었어. 무언가에 홀린듯 분노와 증오로만 움직였어."
"...마루..."
이어 마루는 크게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늑대들은 일제히 약속이라도 한 듯 자신의 목에 있는 구슬을 일제히 서로 깨물어서 박살내버렸다. 일제히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가 강하게 들려왔고 그 소리에 가온은 깜짝 놀라 뒤로 돌아서 늑대들을, 마루를 바라보았다.
"마루..!! 너희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형. 기껏...기껏 이렇게 다시 만났는데..왜 이렇게 되어버린걸까. 형..대체 왜 이렇게 되어버린걸까...그저...그저...."
"...그만 말해도 돼! 마루야..! 그만 말해도 돼!"
다른 늑대들이 하나둘씩 가루가 되어서 분해되고 있었지만 마루는 아직 버티고 있었다. 아니..정확히는 그 손 끝이 천천히 분해되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그것을 직감했는지 마루는 가온을 바라보면서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바보 형. ...이제..그만 괴로워해. 우리들의 무덤 앞으로 와서.. 더 이상 미안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괜찮아. 형은... 형은...언제나 자랑스러웠어. 나보다 더욱 강하고, 나보다 더욱 무리를 잘 이끈 나의 알파. 나의 리더. 그런 형이..신이기에 너무 자랑스러우니까.. 더 이상.. 우리들에게 죄책감을 가지지 않아도 돼. 그저...그 말을 전하고 싶었어... 그런데...어째서..어째서..나는 형을... 이것도..천벌인걸까. 분수 넘치는 것을 바래서 이렇게 된 것일까..."
이내 마루는 천천히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가온은 빠르게 앞으로 달려나갔다. 그를 잡겠다는 듯이 그는 손을 앞으로 쭈욱 뻗었다.
"마루....!!"
"...더 이상..무덤에 와서 괴로워하지 않아도,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형. ...그저, 그 말을 하고 싶었어. ...그것이..나의..우리들의 소망... 이제야 이뤄졌어... 이 말을 전하고 싶었어..."
"됐어..! 이제 됐으니까...!"
"...안녕. 형."
가온의 손이 그의 몸에 닿으려는 찰나...마루의 몸은 완전히 분해되어 사라졌다. 결국 거기에 남아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이었다. 방금 전까지 모두를 위협하던 늑대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고 남은 것은 그저 무한한 허공일 뿐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가온은 다시 고개를 아래로 푹 숙였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그저 고개를 땅으로 숙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 침묵을 깬 것은...익숙한 목소리였다.
ㅡ....그러니까 동물인 녀석들은 천박하기 그지 없습니다. 명령을 내려 구슬을 스스로 깨게 만들고, 마지막에 그런 소망을 이루는 것으로 만족하다니. ...결국 어리석은 이들에게 기대한 제가 바보였던 모양입니다. 한심하기 그지 없군요.
>>702 으아악...! 놀리지 말아주세요...!8ㅁ8(부끄러워 죽음)(???) 사실 리스를 처음 만들 때 성녀 느낌의 신비로운 분위기... 같은 걸 생각하고 만들긴 해서 잘 전해진 것 같아서 다행이기도 하고, 막상 들으니 부끄럽고 창피하기도 하고, 그래서...ㅠㅠㅠㅠ(쥐구멍)
어...조금 다릅니다..! 뭐라고 해야 하지... 그러니까..일단 신이 되어서 살아났다기보다는...그냥 시체에 목숨을 부여했다는 것에 가깝답니다. 그리고 그 감정을 컨트롤해서 가온이를 제거하려고 했는데....지금 막 그 주박에서 풀어줬다는 느낌이에요! 하지만 대체로 맞는 말이긴 합니다..!! 그래서..어어..참가하시겠습니까? 밸린주? 그리고...성녀 맞습니다..!
그나마 잘 해결된 것 같아서 다행이다. 령은 사라져가는 마루와 늑대들을 슬픈 눈으로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자신이 저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마루를 다시 살려낼 수도, 가온과 마루를 영원히 붙어있게 할 수도 없었다. 그렇기에 령은 그저 담담히 둘을 볼 뿐이었다. 마지막 인사를 남기는 마루의 얼굴이 담담해보였던 것은 착각이었을까?
"아."
저걸 잊어버렸군. 령은 다시금 검을 뽑아들었다. 아롱아롱 눈물이 맺힌 검은 눈이 다시 분노로 불타올랐다. 령이 허공을 바라보았다. 어리석다며 그들을 비웃는 청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령이 입을 열었다.
"그 재수없는 입 비틀어버리기 전에 닥쳐! 세상에 천박한 목숨은 없다. 네놈이 신이라서 뭐라도 된 것 같아? 아니, 천만에. 너는 그냥 운이 좋아서 신이 된 것 뿐이야. 신통술을 제외하면 다른 동물들과 다를 바가 없는 주제에 뭘 잘했다고 그 입을 나불대는 거지?"
마루 님의 구슬마저 깨져버렸다. 그 말은 곧... 사라진다는 것. 모든 것이 끝나간다는 것. 방금 전과는 다른, 증오 하나 없이 순하디 순한 마루 님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자 결국 다시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마루 님께서 정신을 차리셨다. 그리고... 일제히 스스로 목에 있는 구슬들을 서로 깨물어 박살 내는 늑대들.
"...! 늑대 님들...!!"
그 모습에 두 손으로 입을 막은 채, 두 눈동자를 심하게 떨었다. 모두가 하나, 둘, 가루가 되어 분해되고 있었다. 사라지기 시작했다. 다시, 모두가 다시 원래대로 '죽음'으로 되돌아가는 것이었다. '죽음'이 경건히 그들을 받아들이는 모습이 보였다.
마루 님의 목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그러나 이미 눈물이 흘러넘쳐 그 모습을 제대로 보는 것은 어려웠다. 자신은 그저, 그저 입을 틀어막은 채 흐느껴 울 뿐. 슬픔으로 인하여 찢어질 듯한 마음을 안고.
마루 님의, 늑대 씨들의 진정한 소망. 그것은 바로 가온 님께서 더 이상 죄책감을 가지지 않고, 무덤에 와서 미안해하고 괴로워하지 말라는 것. 자신이 전에 봤었던 그 무덤이 생각나 결국 눈물이 더욱 많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마지막 작별 인사. 그리고 완전히 분해되어 사라져버린 마루 님과 늑대 씨들. '죽음'은 언제나 허망한 것이었다. 손을 뻗어봐도 잡히는 것도, 남아있는 것도 없는 것이었으니. 마치 환각 같이, 신기루 같이, 조용히 사라져버렸다. 모두가.
그것을 보고 결국에는 소리내어 울음을 터뜨려버렸다. 누군가의 '가족'이 죽어버렸다. 누군가가 죽었다. 자신과도 같은 처지였을 누군가가, 이제는 다시 '죽음'으로 되돌아갔다. 마음이 찢어질 듯 너무 슬프고 아파, 그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두 손을 모아 기도했다.
모두들... 이제는 편하게 쉬시길 기도할게요. ...저의 '신' 님, 제발 저들을 자비롭게 굽어살피시어, 편안하게 눈을 감으실 수 있도록 보살펴 주세요...
그러나 이내 곧 다시 들려오기 시작하는 청호의 목소리. 눈물이 떨어지는 색이 다른 두 눈동자는, 드물게 제대로 분노의 빛을 띄우며 목소리가 들려오는 허공을 노려보았다.
"......그 입 다물어요, 청호. 당신에게 천박하다, 아니다, 를 평가 받으실 분들이 아니예요. 저 분들은 당신이 감히 어리석다 말할 수 있는 분들이 아니예요. 천박하고 한심한 자는 바로 당신을 두고 하는 말이예요, 청호. 정말로 바보 같고 어리석은 자. '신' 님 앞에서, '죽음' 앞에서, 저 분들께 그런 말 밖에 하지 못하는 당신이 참으로 불쌍하군요. 이제는 동물인 저보다도 더 불쌍해요. ...청호, 당신이란 존재는."
그것은 사라졌다. 사라졌다고 하기보단 원래 있어야할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 맞다 봐야 할지도 모른다. 방금까지의 소란이 거짓이라는 것처럼, 늑대도 가온의 동생이라는 작자도 사라졌다. 이 몸은 전쟁을 몇 번이나 겪었던가. 분명히 셀 수도 없었을 테지. 이 몸를 죽이러 왔다는 녀석도 있었다. 아바마마며 어마마마며 몇 번이고 암살 당할 뻔 했던 것은 다르지 않다. 그렇기에 전후의 고요는 익숙했지만, 몇 번을 겪더라도 전쟁이 끝난 후의 상실감은 말로 할 수 없었다.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은 것, 그것이 전쟁. 이 정적을 깨고 그에게 무슨 말을 하면 좋을까. 설령 가능하더라도 그를 살려내는 것은 그저 가온에 대한 모욕일 뿐이다. 왕이 될 자로서, 민중의 고통을 감싸 안는 것이야 말로 왕의 소양. 그러니, 이 몸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무언가를 말해야만 했다. 평소와 달랐다. 전혀 흥이 오르지 않았다. 무너져버린 백성을 보는 것은 몇 번을 반복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너도 한때 왕이었다고 한다면, 일어나거라. 옥좌에 앉은적 있는 자라면 자신의 눈물은 스스로 닦아야만 하는 것이니라.”
피는 피로서 갚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행해야만한다. 적은 저곳에, 아군은 이곳에. 굳어가는 마음을 닫고서 천천히, 봉을 들었다. 목소리를 내려깔고서 이 비웃음에 동조한다.
“한심하지. 당연한 것이다. 자신의 감정에 맹렬하다면 그에 대한 책임은 당연한 것이지. 그는 스스로를 태우는 길을 골랐지. 하지만, 죽는 것이 두려워 남을 이용하는 녀석의 존재보다는. 이 자의 죽음이 훨씬 고귀한 것이다.”
천천히, 입을 연다. 무어라 하면 좋을까, 분하다? 아니다. 난 그와 상관이 없으니까. 전혀 분하지 않다. 짜증이 난다. 고결한 자의 죽음을 비웃는 자가 이 몸을 보고있다는 것 자체가, 그 죽음이 조롱당하는 것 자체가 역겨웠다. 저 비뚤어진 혀를 차라리 찢어버린다면 아무런 말도 못할테지. 폭군의 면모가 필요했다. 강압적인 통치와 재판, 판결을 내릴 수 있다면. 당연히 죽였을테지.
“그 더러운 입으로 고결함을 논하지 마라!!! 짐은 밸린 다윈 2세!!!! 위대한 바다의 패자이자 영원토록 빛날 아틀란티스의 후계자!!!!! 왕의 어전이다!!! 이 이상 그 더러운 혀로 고결함을 조롱하는 것은 묵인하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