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콸콸콸. 시원하게 물이 쏟아지는 소리가 참으로 경쾌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다름 아닌 무지개가 피어오르는 폭포이다. 비나리의 유명한 명소이자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봐도 무방한 곳인 이곳에 내가 온 이유는 별 것 없었다. 그냥 가끔은 여기서 바람을 쐬고 싶었다는 것이 이유였다. 아직 해가 지지 않아 아름답게 피어오른 무지개를 바라보면서 나는 미소를 지었다. 늑대인 시절에는 저 무지개를 물고 싶어서 뛰어다닌 적도 있었지. 그때를 생각해보면 참으로 나도 순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다 크고 나서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지만...
아무튼 별 의미없이 그곳에 앉아 나는 폭포를 가만히 감상했다. 가끔은 이렇게 일 없이 쉬면서 휴식을 취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 가끔은 이런 것도 괜찮은 것이겠지.
스스로에게 그렇게 합리화를 하면서 나는 고개를 가만히 돌려 텅 비어있는 제단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제단도 슬슬 청소를 할 때가 되었을까. 더 나아가 저 위에 있는 결계를 만드는 수정도 조만간에 닦을 필요가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지만 오늘은 쉬기로 했다. 가끔은 이렇게 쉬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었으니까.
"......론. 오랜만에 무지개 씨를 보러가지 않을래요? 론, 요즘 기분 안 좋아보여서..."
[...난 기분 안 좋아보인 적 없어. 네가 가고 싶다면 가, 리스.]
론은 조용히 대답했다. 그에 천천히 론을 안아들고 집을 나서서 접혀있던 분홍빛의 두 날개를 서서히 펼쳐냈다. 그리고 서서히 날개를 펄럭여 하늘 위로 올라가 비나리의 폭포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시원한 물 소리를 들으면 론의 기분도 좋아지지 않을까요? 그런 생각도 마음 속으로 해보면서.
"...어...?"
그런데 비나리의 폭포에는 이미 누군가가 앉아있었다. ...누구실까요? '신' 님들께서도 여긴 잘 안 오시던 것 같으시던데... 절로 고개가 갸웃해졌다. 그렇기에 이내 천천히 궁금증으로 가득한 마음을 안고 아래로 내려갔다. 그러자 보이는 건... 가온 님의 모습...?
"...가온 님...?"
멍한 두 눈을 느릿하게 깜빡이며 천천히 그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공손히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를 올렸다. 희미하게 웃어보이면서.
폭포 소리를 들으면서, 그리고 그곳에 피어나는 일곱빛깔 무지개를 바라보면서 휴식을 취하는 도중이었다. 갑자기 어딘가에서 펄럭이는 날개짓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 소리에 고개를 살며시 옆으로 돌리니 다름 아닌 리스의 모습이 보였다. 이곳에는 무슨 일일까? 비나리의 명소인 저 폭포를 보기 위해서 찾아온 것일까.
일단 나를 향해 다가오면서 인사를 건네는 그녀를 바라보며 나 역시 허리를 꾸벅 숙여서 인사를 올렸다.
"안녕하십니까! 리스 씨! 이곳에서 다 만나는군요! 오늘은 쉬려고 합니다. 특별히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미 과수원의 일은 다 끝내두었으니까요. 가끔은 이렇게 휴식을 취해야 내일 또 일을 하지. 매일매일 달리면 쓰러지기 마련입니다. 하하하!"
말을 마치면서 나는 내 두 허리를 잡은 후에 큰 웃음소리를 호탕하게 내면서 웃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려 무지개를 바라보면서 조용히 나의 말을 다시 이어나갔다.
"이곳은 무지개가 피어오르는 폭포. 비나리의 명소입니다. 다만 많은 신들이 찾아오지는 않지요. 이런 곳에 다 찾아오시다니. 폭포를 구경하러 오신 겁니까? 아니면 다른 볼일이 있으셔서 온 것입니까?"
혹시나 무슨 볼일이 있다면 도와주겠다는 말을 하면서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리스 씨를 바라보았다. 역시 대화를 할 때는 눈을 마주치는 것이 좋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리스 씨의 답을 조용히 기다렸다.
론을 안아들고 비나리의 폭포로 향하자, 그곳에는 이미 가온 님께서 먼저 와계셨다. 그에 하늘에서 천천히 땅으로 내려앉으며 가온 님께 다가가 공손히 인사를 올렸다. 그러자 가온 님 역시 마찬가지로 허리를 숙여 인사에 답해주었고, 그에 한 박자 늦게 크게 당황한 표정으로 론을 안고있지 않은 한 손과 고개를 황급히 도리도리 저었다.
"아, 아니요! 저에게 그렇게 허리 숙여주시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가온 님...! 아무튼... 오늘은 휴식을 취하신다니 정말로 다행이예요. 가온 님께서는 언제나 이런저런 일들을 많이 맡아서 하시니까 말이예요."
관리자 님이기 때문일까. 언제나 행사를 준비하거나 넓은 과수원을 관리하는 등의 일들을 보면 혼자서 다 해내긴 힘드시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양이긴 했다. 그렇기에 솔직하게 다행이라고 얘기하며 희미하게 배시시 웃어보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가온 님의 물음. 이번에는 자신에게로 돌아온 그 질문에 잠시 멍한 두 눈동자를 깜빡이다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여 대답했다.
"...네, 저는 폭포 씨랑 무지개 씨를 보러 왔답니다. 론이 요즘 기분이 안 좋아보여서... 예쁜 비나리의 명소를 보면 기분이 조금이나마 좋아지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러니까 도움은 괜찮아요, 가온 님. ...말씀만이라도 정말로 감사합니다."
다시금 예의 바르게 허리를 꾸벅, 숙였다 펴며 희미하게 눈웃음을 지어보였다. 품 안에 꼬옥 안긴 론은 침묵했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무지개가 피어나는 폭포를 잠시 조용히 바라보았다. 시원한 물 소리가 들려왔다.
"...이렇게나 아름다운데 '신' 님들께서 많이 찾아오시지 않는다는 것은 왠지 조금 아쉬운 기분이예요."
"아니요. 그럴 순 없습니다! 그렇게 당황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저 인사를 한 것 뿐입니다! 그리고 언제나 이런저런 일이라. 부정할 수 없군요. 하지만 비나리의 관리자로서 당연한 겁니다! 그래도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비나리의 관리자는 곧 은호님의 보좌. 은호님의 보좌인만큼 다른 관리자들보다 좀 더 일을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 모든 것을 감안하면서 나는 백호 선배의 뒤를 이어 비나리의 관리자가 된 것이 아니던가. 딱히 힘들다고 생각은 하지 않았기에 리스 씨에게 저런 말을 듣는 것은 조금 쑥스럽긴 했지만 그래도 감사표현은 확실하게 했다. 일단 나를 걱정해줬다는 이야기니까. 괜히 그런 것이 기분이 좋아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다. 곧 그 꼬리의 움직임을 멈추긴 했지만 말이다. 여러모로 본능이라는 것은 무서운 법이었다.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으면 이렇게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리니...
아무튼 리스 씨는 폭포와 무지개를 보러 온 모양이었다. 그 와중에 또 '씨'가 붙긴 했지만 더 이상 그것에 대해서 말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녀가 그렇게 말하고 싶다면 말하고 싶은대로 두면 되는 것이었다. 그것이 그녀의 개성이었으니까. 그건 그렇고 론의 기분이 안 좋아보인다...그 말에 나는 론을 잠시 바라보았다. 론은 아마 인형이었지. 어떻게 인형이 기분이 안 좋아보이는지 조금 궁금하다고 생각하며 나는 리스 씨를 바라보면서 물어보았다.
"요즘 론이 기분이 안 좋아보인다라. 근래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아. 그리고 괜찮습니다. 그래도 찾아올 신들은 다 찾아옵니다. 하하하! 하지만 비나리는 라온하제에서 가장 발전한 곳. 아무래도 번화가의 가게나 그런 곳에 사람들이 몰리는 편입니다. 거기다가 다양한 사계절의 명소가 각 지역마다 있으니 그곳으로 가는 신들도 많고요!"
아쉬워하는 리스 씨를 바라보면서 그 정도로 찾아오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하면서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뒤이어 시원하게 쏟아지는 폭포수를 바라보면서 나는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많은 신이 찾아오지 않더라도 리스 씨처럼 이렇게 찾아오는 신이 있기에 저 폭포도 기뻐할겁니다."
"...그, 그렇지만 가온 님께서는 '신' 님이신 걸요...! 그러니 저는 가온 님의 공손한 인사 씨를 받아드릴 수 없답니다. 정말로 죄송해요, 가온 님... 그리고... 당연한 것이라고 하셔도 언제나 열심히 수고를 다해주셔서 저야말로 정말로 감사합니다."
황급히 손을 내젓다가 후에는 결국 다시 희미하게 웃으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러자 왠지 모르게 살랑살랑 흔들리기 시작하는 가온 님의 꼬리. 그에 자신도 모르게 그 꼬리의 움직임을 멍한 두 눈동자를 한 박자 늦게 이리저리 굴려 쫓다가, 꼬리가 멈추자 엉겁결에 덩달아 느릿하게 멈추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가온 님의 질문에 대답하자, 가온 님께서는 잠시 론을 바라보다가 또다른 질문을 던져왔고, 그에 잠시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으음, 하는 소리를 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도 잘... 최근에는 설날 씨라고 하셔서 '신' 님들께 계속 인사를 드리러 다니고, 백호 님과 여러가지 음식 씨들을 많이 먹어봤다는 것 밖에는..."
으음, 다시금 고민하듯이 소리를 작게 내다가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열심히 생각해보았지만 역시 알 수 없었다. 론은 입을 열 생각을 하지 않았으니. ...그렇지만 최근에는 정말 그런 일들밖에 없었는데 말이예요.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이내 이어지는 가온 님의 말씀을 듣고는 한 박자 늦게 희미하게 기쁜듯한 미소를 배시시 지었다.
"...그렇다면 저도 정말로 기쁠 것 같아요. ...아, 가온 님. 혹시... 폭포 씨 아래의 물가에 들어가도 괜찮은지 여쭤봐도 될까요?"
고개를 살짝 갸웃하며 물어보았다. 만약 된다면... 오랜만에 론과 함께 발을 담그고 가벼운 물놀이를 해볼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같은 홍학인 론도 좀 더 기뻐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