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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령주 어서 오세요! :D 그리고... 사과하시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령주. 답레는 정말로 느긋하게 주셔도 되는걸요. 그러니 답레는 신경 쓰지 말아주세요. :) 그보다 안 좋은 일이라니...(토닥토닥) 무슨 일인진 잘 모르겠지만, 부디 령주께서 괜찮으시기를 바래요...ㅠㅠㅠ
리스가 다가와 자신에게 손을 잡는다. 령은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리스를 바라보았다. 훌쩍이느라 리스가 다가오는 것 조차 느끼지 못했음이 분명했다. 령이 리스의 손을 더욱 꼭 잡았다. 리스의 손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당신은 이러한 상황에서도 여전히 나에게 온기를 주는군요. 령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떴다. 눈에서 다시 한 줄기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자신은 과연 리스에게서 위로의 말을 들을 자격이 있는가? 알지 못했다. 그래도 행복했다. 비록 분에 겨운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해도 리스에게 그런 말을 듣는 것 자체가 좋았다. 물론 사랑받은 적 없다는 리스의 말에는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것처럼 아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스가 자신을 위로해줄 땐 좋았다.
그 말로 충분하다는 리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령은 담담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정말 당신은 그걸로도 충분할까? 만약 당신이 너무나도 외롭고 힘들어서 제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들어진다면, 너무나도 아프고 괴로운데 주변에 도움을 청할 사람조차 없다면, 그때는 내가 당신을 도와도 괜찮을까? 령은 그러한 생각을 하며 리스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한 말이 리스에게 도움이 되면 다행이었지만...
"그 말로도 충분하다니 다행입니다. 저는 리스가 더 이상 외로워하지도, 괴로워하지도 않길 바랍니다. 더불어서 만약 리스가 그런 상황에 처한다면 제가 기꺼이 도와줄거예요."
그것이 제가 당신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니. 령은 그 말을 삼키고는 색이 다른 리스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스테인 글라스의 무지갯빛에 리스의 흰 눈동자가 다채로운 색상으로 물들여지는 듯했다. 령이 눈을 깜박였다. 리스는 자신과 다른 존재, 하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 나는 어떻게 해야만 좋은가? 령이 눈을 지그시 감았다.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것은 리스의 희미한 미소였다. 자신의 이름의 뜻이 행복이라며 행복을 원할 땐 자신의 이름을 불러라는 리스에게 령은 무슨 말을 속삭여야 했을까? 령은 리스를 따라 웃어보였다. 리스, 당신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나는 행복을 느끼고 있답니다.
"고마워요, 리스. 행복이 필요해질 때 꼭 당신의 이름을 부르겠습니다."
저의 이름은 아쉽게도 방울이란 뜻이라 행복을 가져다주진 못하겠지만요. 령은 속으로 그 생각을 하며 자신의 머리장식을 매만졌다. 딸랑딸랑. 조용하고 성스러운 성당에 방울소리만이 울려퍼졌다.
친구. 리스는 자신에게 친구가 되고싶다고 하였다. 그래. 그것은 령이 원했던 관계와는 조금 다를지도 몰랐다. 하지만 령은 상관없었다. 자신이 원한 건 리스의 행복. 제가 리스의 곁에 있음으로서 리스가 행복해질 수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하리다. 령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승낙의 의미였다.
"물론입니다, 리스. 당신이 친구를 원한다면 전 기꺼이 되어드릴 수 있어요. 앞으로도 '친구'로서 잘 부탁합니다."
령 님께서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자 자신도 모르게 그대로 다가가 손을 꼬옥 잡아주었다. 안타까웠다. 안타까웠다. 그 감정만이 맴돌아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행동하였다. 지금 령 님께서는... '신' 님이 아니었으니. 그래, 위대하고 위대하여 자신이 숭배하고 찬양해야 할 존재가 아니었으니. 어쩌면... ...진짜 '령' 님의 모습을 본 걸지도 모르겠어요.
순간, 처음으로 령 님이 자신과 동등한 존재로 느껴졌다. 그렇기에 더더욱 진심을 담아 령 님께 위로와 감사 인사를 전하였다. 목소리는 고요했고, 석상을 포함한 성스러운 성당 안의 모든 것들은 숨죽여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스스로 상처를 담담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건 여러가지를 의미할 것이었다. 그럼에도...
"...네, 충분해요. 아니, 오히려 충분하다 못해 과분할 정도예요. 저의 외로움과 괴로움을 바라지 않아주시는 령 님의 그 말씀은, 저의 기도보다도 훨씬 더 큰 가호이자 부적이 된 걸요. 그러니... 정말로 감사해요, 령 님. ...저도 령 님을 언제든지 도와드릴 거예요."
령 님께서 '행복'하실 수 있도록. 령 님이 자신의 외로움과 괴로움을 막아준다면, 자신은 령 님의 행복과 즐거움을 드릴 것이었다. 기꺼이, 온 힘을 다하여.
...인간들의 '신' 님의 형상을 띤 석상 앞에서 하는 맹세는 자신에게 있어서 정말로 크고 중요할 터. '신' 님께 거짓을 고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 저의 '신' 님. 부디 제가 앞으로 령 님을 행복하게 해드릴 수 있도록 해주세요. 저의 이름을 걸고. ......'리스'.
딸랑딸랑, 령 님의 방울 소리에 차분히 마음을, 자신의 생각을 정리했다. 캐롤은 더이상 들려오지 않았지만, 창문을 통해 부서져 내려오는 무지갯빛의 빛줄기들과 령 님의 방울 소리만으로도 거대한 성당은, 그리고 작디 작은 자신은 가득히 채워질 수 있었다.
그리고 령 님께서는 이내 자신의 부탁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 마음 한 구석이 찌릿, 왠지 모를 벅참으로 인하여 뭉클해져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 한 단어가 자신에게 있어서 가지는 의미는 얼마나 커다랗던가. 그 한 단어를 알고 싶었지만 알 수 없었던 그 외로움은 얼마나 커다랗던가.
령 님께서는 더 이상 령 님이 아니었다. 무지갯빛을 받아 반짝이는 령 님, 아니, 이제는 령의 아름다운 미소를 잠시 멍하니 바라보았다. ......저의 '신' 님. 저는 정말로...
눈을 감았다 뜨면 사라질 신기루와 같은 느낌이었다. 꿈결 같은 행복감. 하지만... 이내 천천히 한 손을 뻗어 령의 손을 잡아 조용히 악수를 했다. 맞닿아진 손에서 전해져오는 온기는, 분명 더이상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리라. 바람이 불면 날아가버릴 꿈이 아니었을 것이리라.
의문스럽기 짝이 없는 물웅덩이를 지나 우리들은 동굴 안 쪽으로 더욱 들어갔다. 어딘가에서 물이 흐르는 것일까? 귀를 쫑긋 세우니 어딘가에서 콸콸콸 거리는 느낌으로 폭포가 흐르는 것 같은 물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코를 킁킁 세우니 어딘가에서 물향기가 나는 것 같기도 했다. 대체 이 동굴은 얼마나 깊은 것일까? 좀처럼 그 깊이를 가늠할 수가 없었다.
뒤이어 앞으로 나아가는 도중, 동굴 벽면에 붙어있는 보라색 보석 같은 것이 보였다. 무엇인가 싶어서 가만히 바라보니, 그것은 다름 아닌 자수정이었다. 자색으로 아름답게 반짝이는 그 자수정을 가리키면서 나는 모두에게 이야기했다.
"있잖아. 여기에 자수정이 있어! 정말로 예쁘지 않아? 후훗. 가져갈 이는 가져가는 것은 어때? 나름 괜찮을 것 같...아차. 지금 그럴 때가 아니었지. 참..."
순간적으로 지금이 동굴 탐험을 하러 온 것이 아니라 축복의 오로라를 치기 위해서 왔다는 것을 잊을 뻔 했다. 그것에 나는 가볍게 꿀밤을 먹이고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정말... 왜 나는 항상 이렇게 중요한 것을 자꾸 잊어먹게 되는 것일까. 우으... 이래가지고서는 500년이 지나도 지배자 신이 못 될지도 모르겠어. ...우으.."
나도 모르게 조금 시무룩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꼬리도 축 쳐졌고...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앞을 바라보면서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있잖아. 너희들은 내가 500년 뒤면 정말로 엄마를 이을 수 있는 훌륭한 신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가끔 잘 모르겠어. ...그냥 엄마가 계속 지배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지금만 해도 엄마였으면 한눈 팔리지도 않고 잘 갔을테니까. 그냥 솔직하게 이야기해줬으면 해."
자수정이라... 정말 예쁜 걸? 령은 자수정 끄트머리를 만지며 그것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들려오는 누리의 목소리에 시선을 그쪽으로 옮겼다. 누리는 아무래도 500년 후, 라온하제의 지배자가 된다는 것 때문에 고민이 많은 모양이다. 령은 고개를 저었다. 방울이 딸랑딸랑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아니, 누리 네가 아닌 은호님이 다스리는 것도 한계가 있어. 은호님께 무슨 일이 생기면 라온하제는 어떻게 되는거지? 은호님을 대체할 지도자를 뽑을 필요도 있어. 아까 말한 은호님께 무슨 일이 생기는 것도 그렇고... 내가 오랫동안 방랑하면서 느낀 거지만 한 사람이 집단 하나를 너무 오랫동안 이끌면 점점 반감이 생기기도 해. 여러가지 사고가 터지기도 하고. 물론 내가 말한 케이스는 인간들을 지켜보며 내린 결론이라 신인 우리들은 조금 다를 수도 있어.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라온하제를 통치하는 건 은호님도 바라지 않을 것 같아. 게다가 네가 500년 후에 적절한 라온하제의 지도자가 될 수 없었다면 애초에 은호님이 너를 차기 지도자로 세울 리도 없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