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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뭔가 신기해서요. 라온하제에 온 지도 꽤 되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말이예요."
헤헤, 희미하게 웃어보였다. 론은 그저 물끄러미 자신을 바라볼 뿐이었다. 오두막집의 창가에 기댄 그 모습 그대로, 잠시 창 너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언제나와 같이 분홍색 벚꽃잎들만이 춤을 추며 땅 위에 살포시 쌓이고 있는 풍경이 한 시야에 들어왔다. 인기척 같은 건 없는, 언제나 혼자 조용히 동떨어진.
"...론. 같이 밖에 나가보지 않을래요? 좀 더 많은 '신' 님들이 계신 곳으로 말이예요."
[네가 그러고 싶다면 그렇게 해, 리스.]
"고마워요, 론."
론에게 다시금 헤실헤실 웃어보였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론을 품 속에 꼬옥 안아들었다. 느릿하게 집 밖으로 나서는 두 분홍색들이었다.
-
그리고 자신이 날아간 곳은 다름 아닌 비나리의 광장. 이곳은 라온하제의 중심이므로 '신' 님들께서도 많이 계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곳으로 목적지를 정했고, 이내 천천히 날갯짓의 속도를 줄이며 땅에 살며시 두 발을 딛고 내려앉았다. 흙과 꽃잎과는 다른 감촉이 발을 통해서 전해졌고, 이내 가만히 주변을 느릿하게 둘러보았다. 꼬옥, 론을 놓칠세라 품에 꼬옥 안은 채.
겨울이 되면 별미 중 하나는 역시 군고구마다. 오늘은 올해의 마지막 날이다. 가온이는 여러가지로 이것저것 준비를 하는 모양이기에 바빠보였고 엄마는 엄마 나름대로 집에서 쉬고 싶다는 것 같았기에 나 혼자 이렇게 비나리의 광장으로 향했다. 비나리의 광장에는 커다란 종이 있었다. 인간계의 문화를 보고 엄마도 종을 울려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하고 만들었다고 하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마음에 든다. 작년에도 새해가 되니까 저 종이 뎅, 뎅 울렸으니까. 참고로 종을 울리는 것은 다름 아닌 가온이다.
아무튼 군고구마를 꼬옥 쥐고서 나는 그것을 한 입 베어물었다. 입 안 가득, 고구마의 달콤함이 가득 느껴져서 기분이 좋아 절로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렸다. 이대로 고구마를 마음껏 즐기고 싶어. 그렇게 생각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와중, 저 편에서 막 리스가 착지하는 모습이 보였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신들은 묘하게 부러워.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일단 리스에게 다가가서 인사라도 건네기 위해서 나는 빠르게 달려간 후에 리스의 바로 근처에서 멈췄다.
"안녕! 리스! 비나리의 광장에 놀러온 거야?"
환하게 웃으면서 나는 리스를 바라보면서 그렇게 말을 걸었다. 그리고 품에 안고 있는 종이봉지에서 군고구마 하나를 꺼낸 후에 리스에게 내밀었다.
두리번두리번, 다솜을 벗어나는 일은 웬만하면 그다지 많지는 않던 자신이었기에, 자신도 모르게 비나리의 광장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신' 님들이 북적이는 풍경. 다솜의 벚꽃나무 숲은 직접 찾아오는 '신' 님들이 아니라면 '신' 님들을 그다지 많이 볼 수는 없었기에, 그러한 풍경이 신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자신 쪽으로 빠르게 달려오는 누군가...?!
"...!"
순간 동물의 본능으로 고개를 재빨리 홱, 경계하듯 돌리며 몸을 살짝 움찔, 움츠렸다. 그런데 자신의 시야 속에 들어온 건 다름 아닌...
"...누... 누리 님...?"
아... 멍하게 두 눈동자만 멍청히 몇 번 깜빡이고 나서야 모든 상황 파악을 마친 듯, 황급히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아, 아, 안녕하세요, 누리 님! 죄송합니다, 순간 깜짝 놀라버려서... 네, 론이랑 같이 잠깐 밖에 나와볼까, 해서 이곳에 와봤답니다."
말까지 더듬어가면서 어떻게든 인사를 하고는 살짝 시선을 피하며 조용히 대답했다. 그러다 누리 님께서 군고구마 하나를 자신에게 내밀자, 맛있는 냄새를 킁킁, 맡으며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려 군고구마와 누리 님을 멍하니 번갈아보았다.
"...제가 정말로 먹어도 되는 건가요, 누리 님...?"
믿기지 않는다는 듯 되물으며 두 눈동자를 깜빡깜빡였다. 그러나 이내 조금 망설이듯 머뭇머뭇거리다가, 론을 한 팔로 안고 다른 손으로 군고구마를 조심스럽게 받아들었다. 그리고 다시금 꾸벅, 허리를 숙여 공손히 인사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누리 님. 맛있게 잘 먹을게요. ...그런데... 누리 님께서는 이곳에 어쩐 일이신지 여쭤봐도 괜찮을까요?"
나름대로 반가워서 달려온 것 뿐인데 아무래도 그것이 리스에게는 놀라게 하는 행위인 듯 했다. 그야 갑자기 이렇게 달려오면 누구나 놀라게 될까? 물론 리스는 조금 겁이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아니, 단순히 그건 아닐까? 이건 어디까지나 갑자기 달려온 것이니까. 아무튼 리스에게는 확실하게 사과를 전했다. 놀라게 한 것에 대해서는 사과를 해야하는 것이 맞는걸. 물론 그럴 의도가 없기는 하지만...
아무튼 리스는 인형을 안고 있었다. 론이라는 이름의 그 인형은 꽤 오랜만에 보는 인형이었다. 몇 번 본 적은 있기에 낯설지는 않았다. 물론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은 처음이긴 했지만... 반갑게 론을 바라보면서 인사를 건네기도 하면서 나는 환하게 웃어보였다. 물론 인형이 말을 알아들을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이어 나는 리스에게 군고구마를 전달한 후에 내 몫의 군고구마를 잡아서 한 입 베어물었다. 역시 고구마의 달콤함은 너무 좋아. 달콤한 것은 뭐든지 정의이자 사랑이지만! 꼬리를 절로 살랑살랑 흔들면서 난 리스의 말에 바로 대답했다.
"먹어도 돼! 먹으라고 준 거니까! 후훗. 난 백호 언니와는 달라서 먹을 것을 나눌 줄 알거든! 백호 언니라면 안 주겟지만, 나는 이렇게 얼마든지 줄 수 있어! 아. 그리고...나는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서 온 거야. 곧 한 해가 끝나고 새로운 년도가 찾아오잖아. 그래서 이렇게 온 거야. 새해가 되면 저기 보이지? 저거."
이어 나는 몸을 틀어서 저 편에 있는 거대한 종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거기에선 가온이가 이것저것 뭔가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뭔가 여러가지로 체크할 것이 많겠지.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리스를 바라보면서 이야기했다.
"아, 아니요! 누리 님께서는 사과하시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그게, 제가 조금 잘 놀라서 그만... 제가 더 죄송해요, 누리 님."
황급히 손과 고개를 도리도리 젓다가 결국에는 다시금 조금 시무룩한 듯이 두 날개를 살짝 아래로 늘어뜨리며 사과를 전했다. 동물로서의 본능은 아직도 죽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야 그것은...
아무튼 누리 님께서 이내 론을 바라보며 반가운 인사와 함께 환한 웃음을 보이자, 괜히 자신이 더 기뻐져 희미한 미소를 환하게 띠우며 론을 내려다보았다.
"...론, 누리 님께서 론에게 인사해주셨어요. 론도 누리 님께 인사를 드리실래요?"
그러나 론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누리 님을 가만히 지켜보듯 빤히 바라보고 있을 뿐. ...애초에 론은 그저 단순한 인형일 뿐이었지만. 하지만 론의 그 모습에 조금 당황한 듯 론을 불러보다, 누리 님께서 군고구마를 건네주자 그것을 감사하게 받아들였다. 조심스레 받아든 군고구마는 무척이나 따뜻했고, 이어진 누리 님의 말씀 역시도 따스했다. ...어쩌면 군고구마보다도 더.
"...그렇군요. 정말로 감사해요, 누리 님. 그래도 만약 백호 님께서 군고구마 씨를 더 드심으로써 행복해지신다면, 저는 안 먹어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해요."
백호 님께서는 음식 씨들을 정말 좋아하시니까요. 헤실헤실, 희미하게 웃으면서 덧붙인 말에는 묘하게 장난기가 살며시 묻어나오는 것 같기도 했다. 물론 '신' 님을 향한 배려가 더욱 컸겠지만.
아무튼 이내 누리 님께서 손가락으로 거대한 종을 가리키자, 그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려보았다. 그렇게 올려다보자 보이는, 정말로 거대한 종과 뭔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가온 님의 모습. 그리고 이어진 누리 님의 설명을 가만히 듣던 눈동자에는 점점 호기심의 빛이 반짝반짝이기 시작했고, 이내 신기하다는 듯이 작게 와아, 하는 소리를 한 박자 늦게 내며 대답했다.
"...그럼 저 커다란 종 씨가 라온하제 전체에 예쁜 소리를 울려퍼지도록 하시는 건가요? 신기해요...! 저도 꼭 보고 싶어요. 듣고 싶어요...!"
성당에서도 종이 울리는 건 가끔 듣긴 했었지만, 라온하제의 종소리는 또 뭔가 다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기대되는 마음을 가득히 품다가, 조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천천히 누리 님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가온 님 혼자서 저 종 씨를 울리고 다른 일들도 하시는 건가요? 혼자서는 힘드시지 않을까요? ...제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어드릴 수 있다면 좋을텐데..."
'신' 님께서 혼자 고생하시는데 자신 혼자만 편하다는 것은, 역시 정말로 죄송스러운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