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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라는 날이 곧 찾아오는구나. 그렇다면 이런 날을 그냥 넘길 수 없지 않겠느냐. 받도록 하라."
음 음!! 확실히 이해하노라!!! 그럴 수 있는것이지!!! 어쩔 수 있는 일이 아니니 그런것이니라! 뭐, 엄청 오래 살았던 신이라 아바마마나 어마마마를 알고 있다던가 하는 일도 신계에선 있을 수 있는 일이지!!! 그나저나 남은 얼룩이 신경쓰이던 찰나에 아사가 손뼉을 쳐서 옷에 묻은 얼룩을 말끔하게 없애 주었다. 오오... 엄청난 실력이 아니더냐!!! 지상의 언어로 은둔고수? 라고 하던가!!!
"왼팔로는 무리인가... 음!!! 짐은 그런 투쟁심이 있는 신하는 좋아하노라!!! 하지만 그대의 뜻이 그러하다면 어쩔 수 없는것일테지!!! 원하지 않는 일을 시키는 것은 짐의 왕도에 맞지 않노라!!!"
어딘가의 머리인가!! 확실히 이런 강대한 야망을 품은자라면 배울 것이 있을테지!!! 뭐, 나와 같은 처지일 수도 있는 것이니 섣불리 판단하는 것은 좋지 않을테지!!!! 그리고 지금은 아니더라도 본인이 제대로 된 왕도를 보여준다면 스스로 신하를 자청할 일이 있을수도 있지 않던가!!! 뭐 그것도 그때가서 생각해봐야겠지!!!
"성향말이더냐... 확실히 그대는 우두머리가 어울리는구나!!! 짐의 어휘력이 좋은 편이 아닌지라 무어라 표현은 할 수 없으나... 뭐 그런것이니라!!!!"
한 번 웃고서는 트리쪽을 바라보았다. 파티는 얼마 있으면 끝날테지. 즐기기 위해 나온자리이지만 친ㄱ... 아니 아는 이들이 없어 즐기더라도 절반정도가 아니더냐!!!
"확실히 즐겁도다!! 아틀란티스의 연말파티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야!!! 그대는 본 적이 있더냐? 이곳이 그냥 크리스마스라면... 나의 고국은 메가 크리스마스라고 할 수 있을테지!!! 신과주는 없는 것이라 신기하다만..."
취기가 오르면 정무에 지장이 가니 가볍게 한 잔 정도만 마셔보았다. 달콤한 맛에 약간의 쌉싸름함이 조화된 승리의 미주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이런것일테지. 한해와 싸워서 이긴 승리자들만이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술이었느니라!!!
"다들 대단하지. 나도 대단하지만." 대단함에 말을 잊은 건 아니지만 대단하다고 여기는 이에게 동의는 할 수 있었습니다.
"왕도...라.. 어떤 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괜찮을 거라고 생각해." 어쨌거나. 난 머리가 되었으면 되었지. 꼬리나 왼팔 가지고는 안 돼. 라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다만 라온하제에 속한 건 그런 취지가 아니었으니 넘어갑시다. 어휘력이 좋은 게 아니라는 말을 듣고는 고급스러운 어휘를 많이 알아야 할 건데..? 란 느낌으로 밸린을 바라보는군요. 뭐지. 왕실 언어는 약간 다르다던가. 라는 느낌?
"크리스마스는 내 입장상 무척이나 신상 기념일이라서 파티란 파티는 많이 참석해 봐서 화려함은 딱히 자랑할 만한 곳은 많이 못 봤어." 화려함은... 상상적인 것이 더욱 놀라웠고. 라고 말하면서 메가 크리스마스라. 아마 한번쯤은 보았을지도 모르겠네. 라고 하고는 신과주가 없다는 것에 물 속에서 물을 마신다는 건 애매하니까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는.. 다행히도 중얼거리지는 않았군요.
"근데 물 속에서 물을 먹는 건 애매하니까 그런 거려나?" ..취소. 대놓고 물어보는 성향이었죠.
"그건 그렇지만... 오늘은 령 님도 함께 가는걸요. 무려 '신' 님과 함께 가는 건 처음이라서..."
[괜찮아. 그냥 평소처럼 행동하면 돼. 공손하게, 예의 바르게. 알겠지?]
"......네."
품 안에 안긴 론을 더욱 꼬옥 끌어안으면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자신이 있는 곳은 다솜에 있는, 인간계로 내려가는 결계의 앞. 문득 저번의 할로윈 때가 생각나 자신도 모르게 살며시,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어쩐지 그 때의 그 '할로윈' 씨가 생각나네요. 그 때도 이렇게 있었는데...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 자신은 론과 함께 있고, 복장도 평소에 비해서는 두툼해졌다는 것일까. 아사 님께서 주신 스웨터에, 하얀색 목도리. 그리고 평소와 달리 제대로 신은 낡디 낡은 신발. 선물로 받았던 양말과 향수까지 살짝 뿌린 그 모습은 누가 봐도 추위에 단단히 대비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감기에 걸려버릴지도 모르니까요.
목도리 안으로 은은하게 올라오는 희미한 라벤더 향을 맡으면서 작게 배시시 웃어보였다. 역시 '신' 님들께서는 모두들 정말 친절하세요. 저에게 이렇게 다양한 선물들도 주시다니... ...따뜻해요. 꼬옥, 마찬가지로 겨울 추위 대비를 한 듯이 엉성한 크림색 니트를 입은 론을 더욱 끌어안으며 조용히 령 님을 기다렸다. 희미하게 캐롤을 흥얼거리면서.
/ 일단 이런 식으로 선레를 써보았는데 혹시 고쳐야 할 부분이 있다면 얼마든지 말씀해주세요, 령주! :D
"오오!! 더더욱 짐의 마음에 맞는 말만 하는구나!!! 역시... 놓치기 어려운 인재로다!!!"
조금 더 거대한 세상을 보는 이들과 함께 할 수있다면 최고겠지만 역시 본인의 의지가 없다면 어려울테지... 음, 아쉽구나 아쉬워!!!!
"좋은 질문이구나!!! 짐의 왕도란 민중의 왕도!!! 패왕같이 앞장서는 것은 내 이후의 대를 생각하기 어렵지!!! 하지만 먼저 나서서 백성을 지키는 것 또한 국력을 낮출 뿐이다!! 짐 혼자 짊어지는 것은 왕도가 아니니라. 짐은 국가의 노예가 아니니 말이다. 백성들과 함께 걷고 모든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것이야말로 짐의 이상성!! 짐의 왕도!!! ...뭐 그래도 아직은 승계하지 못한 어리숙한 왕녀에 불과하니라. 언젠가 짐이 고위신이 되어 백성들의 앞에 설 때가 짐의 왕도를 펼칠 기회인 것이다."
아틀란티스가 인계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역시 위험할테지. 신이란 인간의 입장에서는 방관자. 만민을 사랑하되 간섭해서는 안된다는것 또한 아바마마의 가르침. 훌륭한 것은 그대로 이어가되 새로운 정책을 도입하는 것을 아껴서는 안되겠지. 생각해보니 이 아사라는 자가 신하로 있는 것은 조금 어렵겠구나. 짐의 것과는 다르다는 느낌이 들어.
"오오, 그대도 꽤나 오랜 세월을 살아온 모양이구나. 짐도 뭐 그대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오랫동안 살아왔지. 인간들의 신의 축일이니 미묘한 느낌이 들기도 하는구나."
깨달음을 얻었다는 각자, 그리고 모두를 구세한 성자. 말 그대로 이상과 같은 신이다. 뭐 그들이 태어난 날이 축제가 된 것은 미묘하지만 아틀란티스에선 아바마마와 어마마마의 탄신일이 축일로 되어있으니 그런건 넘어가도록 해야겠지. 음. 어쩔 수 없다. 대체로 축제라는 것은 비슷한 양상이니 말이다.
"...그대는 아틀란티스에 온 적이 없는 것 같구나!!! 아쉽지만 타차원의 바다에 있는 것 말고는 거대한 돔형태이니라. 신과주가 없는건 그저 숙성의 문제이니라. 필적할만한 술이라면 있으나 이것은 여기에서 자가적으로 발전해온 조주방식. 아틀란티스에서는 자력으로 발전하는 것들에 가치를 두지. 이렇게 스스로 실패를 겪으며 발전한 것이 아틀란티스의 과실주보다는 더 가치있게 느껴지는구나."
령은 거울을 보며 자신의 상태에 대해 점검했다. 할로윈 때 샀던 나비모양 반지와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나비모양 귀걸이가 완벽한 짝을 이루었다. 검은 겨울용 원피스도 털이 복실복실한 것이 따뜻하게 보였다. 모든것이 완벽했다. 좋아. 됐어. 령은 신통술을 써 다솜의 경계로 순간이동했다.
리스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 령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멀리서 익숙한 분홍머리가 보였다. 더 정확히는 밑부분이 빨갛게 그라데이션이 진 머리카락이겠지만. 아무튼 령은 리스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어떡해. 긴장된다. 떨려. 령은 두 손을 파르르 떨었다. 침착하자. 평소처럼만 하면 된다.
"리스?"
령은 리스를 부르며 다가갔다. 그러고보니 할로윈 때도 이런 일이 있었지. 령은 순간 웃음이 터져나올 뻔했다. 그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크리스마스가 닥쳐오다니... 신기했다. 령은 시간의 흐름에 대해 떠올리곤 눈을 지그시 감았다 떴다. 눈 앞에 리스의 모습이 보였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춥진 않으셨나요?"
령이 리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리스는 다행히 옷을 잘 갖춰입은 걸로 봐서 춥지는 않아보이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령은 잠시동안 걱정스러운 표정을 해보였다. 만약 추워한다면 자신이 신통술을 써 따뜻하게 할 작정이었다. 리스가 추워하는 건 바라지 않으니까.
"슬슬 갈까요?"
령이 리스에게 손을 내밀었다. 손 잡고 가는 건 좀 그런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손을 내밀어버렸다. 여기서 손을 거두기도 좀 그렇고... 령은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이내 에라 모르겠다 하고 그 손을 리스에게 내민 채로 그대로 두었다.
"나는 옳은 쪽에 가까워." 말을 좀 직설적으로 하긴 하지만. 이라는 건 말을 아끼고는 왕도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듣습니다.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좋다고 생각해." 미리 해두지 않으면 언젠가의 일에 대처할 수 없을 테니까. 라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해봅니다. 다만 그 경우에는. '부딪치는 것을 어떻게 할 것이냐.'를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것도 있겠지. 미묘한 의문같은 것을 담은 표정으로 밸린을 바라보다가 오래 살았다는 말에. 그러게...라고 흩어지는 듯한 목소리로 답했습니다. 그리고는 아틀란티스에 온 적 없었겠다. 라는 말에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글쎄.. 간 적이 없을까나.. 있을까나. 그건 비밀." 말끝을 살짝 흐리는군요. 있어도 없는 듯 했을 것이고, 가 본 적 없어도 빠삭하게 알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가치란 상대적인 거니까. 그렇지만 확실히 신과주는 맛있지." 갖고 간다면 맛있을 거야. 라고 말하면서 벚꽃이나 버찌주..나.. 가리 쪽의 과실주도 마실 만해. 라고 덧붙입니다.
작은 캐롤이 울려퍼졌다. 분홍빛으로 가득한 그 속에서 벌써부터 울려퍼지는 캐롤이 꽤나 이질적인 느낌이었다. 마치 자신의 존재처럼. ...론은 노래하지 않았다.
그렇게 머릿속으로 자신이 가려는 곳을 떠올리면서 혼자서 캐롤을 흥얼흥얼거리고 있을 무렵,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와 천천히 고개를 돌려보았다. 그러자 보이는 령 님의 모습. 복실복실한 검은 원피스와 나비모양 반지와 귀걸이. ...와아, 령 님께서는 역시 오늘도 아름답고 우아한 모습이세요. 감탄 섞인 동경과 존경의 마음이 다시금 샘솟았다.
헤헤, 목도리에 반쯤 가려진 입꼬리가 희미하게 위로 올라와 미소를 지었다. 꾸벅, 하고 습관적으로 숙여지려던 허리는 어정쩡하게, 어색한 모습으로 간신히 참아냈지만. 그래도 역시 '신' 님께서 걱정해주신다는 건 언제나 기쁜 일이라는 생각을 하다가, 령 님께서 자신에게 손을 내밀자 잠시 느릿하게 두 눈을 깜빡이며 령 님의 얼굴과 손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리고 1초, 2초, 3초. 정확히 3초가 지난 후에야 상황을 파악한 듯 멍했던 두 눈동자가 동그랗게 뜨여졌다. 지금... '신' 님께서 저에게 손을 내밀어주셨어요...?! 마음 한 구석이 찌릿, 손이 작게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믿기지 않았다.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은 어쩌면 자신이...
"...네, 령 님."
그러나 목도리에 가려진 구슬을 만질 수는 없었다. 그 대신, 한 팔로는 론을 꼬옥 끌어안은 채 다른 손을 뻗어서 천천히, 아주 조심스럽게 자신에게 내밀어진 령 님의 손 위에 살며시 올려놓았다. ...긴장감에 작게 떨리는 손을. 그렇지만 애써 큰 용기를 내어 아주 살짝 령 님의 손을 잡고 희미하게 헤실헤실 웃어보이고는, 이내 함께 경계를 넘어갔다.
-
인간계는 역시 차가운 공기가 가득했다. 미리내와도 같은 날씨. 그러나 두꺼운 옷들을 입은 사람들의 표정은 한껏 즐거운 감정만이 가득해보였고,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가득 찬 거리 역시 형형색색의 등불들과 각종 빨간 양말들, 트리들이 가득해 더욱 활기차보였다. 그 시끌시끌한 거리를 령 님과 함께 천천히 걸어가면서 조용히 목도리에 반쯤 파묻힌 입을 열었다.
"...역시 크리스마스 씨에는 인간 씨들도 정말로 행복해보여요. 반짝반짝, 예쁜 빛들도 가득하고..."
그러다 작게 아, 하는 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돌려 령 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부드럽게 눈웃음을 지었다.
"...혹시 추우시다면 언제든지 말씀해주세요, 령 님. 이 목도리 씨, 정말 따뜻하거든요."
춥지 않다니 다행이었다. 그제서야 령의 표정이 풀어진다. 령은 미소를 지으며 리스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신통력을 쓸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긴 리스의 복장을 보아하니 단단히 껴입고 나와서 춥지는 않을 것처럼 보였다. 령이 입을 열었다.
"춥지 않다니 다행이네요. 추울까봐 걱정을 많이 했답니다."
방금 나왔다면 생각보다 오래 기다리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령은 리스의 색이 다른 눈동자를 보고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리스를 오래 기다리게 하지않아 다행이었다. 만약 다음이 있다면 그때는 조금 일찍 나와야지. 령은 마음속으로 복기를 하고는 리스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손을 내밀자 리스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반응이 조금 느리긴 했지만 저건 분명 저의 행동 때문일 것이다. 어째서지? 제가 실례되는 행동을 한건가? 아니면 설마 '신'님이 자신한테 손을 내밀었다는 것에 충격을 받은 건가? 자신을 '신'으로 떠받들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령은 씁쓸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리스가 손을 잡기를 기다렸다.
아, 리스가 자신의 손을 잡았다. 령은 베시시 웃어보이고 작은 리스의 손을 더욱 꼭 잡았다. 리스의 손은 너무나도 따뜻했다. 령은 리스의 손을 잡고 경계를 넘어갔다. 인간들의 세계가 저만치 보였다.
역시 인간들의 세계는 크리스마스 준비로 인해 활기찼다. 각종 장식들과 트리 덕에 눈이 즐거워졌다. 령은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크리스마스 장식들을 구경했다. 인간계가 라온하제에 비해 조금 춥긴 하지만 그걸 감안할 만큼 엄청나게 예쁜 장식들이었다.
"맞아요. 다들 크리스마스라서 그런 것 같아요. 축제 땐 기분이 좋아지니까요."
령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고는 부드럽게 눈웃음을 짓는 리스를 바라보았다.
"고마워요, 리스. 하지만 지금은 춥지 않으니 그 목도리는 리스가 하고있는 게 낫겠지요."
령이 부드럽게 말했다. 게다가 그 목도리는 리스와 잘 어울리니까요. 라는 말이 생략되었다.
'신' 님께서 자신을 걱정해 주신다는데 어떻게 추위를 느낄 수가 있을까. 절대로 그럴리는 없었다. 오히려 그 따스함에 자신의 마음마저 이렇게 찌릿, 하고 아파올 정도로 따뜻하게 채워져오는데. 이렇게나 아플 정도로 '행복'한데, 그런데...
이내 령 님께서 자신에게 손을 내밀자 느릿하디 느린 놀란 반응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이내 큰 용기를 내어, 자신을 향해 내밀어진 령 님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조심스럽게 올려놓고 살짝 잡아보았다. 크리스마스는 특별한 날. 그것이 자신에게 크리스마스의 기적과 용기를 불어넣어준 것일지도 몰랐다. 더군다나 자신이 손을 잡자 령 님의 씁쓸한 미소가 기분 좋은 듯한 미소로 바뀌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는, 이 선택에 맞았음을 짐작하며 덩달아 희미하게 배시시 웃어보였다. 함께 손으로 연결된 채 경계 너머로 넘어가는 발걸음이 조금 가벼워보이는 것은 결코 착각이 아닐 것이었다.
인간계는 역시나 크리스마스에 가득히 물든 모습이었다. 화려한 불빛들과 각종 장식들이 매달려있는 트리. 그리고 희미하게 들려오는 듯한 캐롤까지. 크리스마스로 가득한 그 분위기 속에서 기쁜 감상을 조용히 말하며 령 님께 걱정 섞인 물음을 조용히 드리자, 령 님께서는 사양의 뜻을 부드럽게 전해왔다.
"...네, 알겠습니다. 그래도 전 괜찮으니까... 언제든지 추우시면 말씀해주세요, 령 님."
만약 령 님께서 춥다고 하신다면 라벤더 향이 희미하게 묻어나오는 이 목도리를 드릴 것이었다. '신' 님께서 춥지 않으셨으면, 하고 바랬으니까.
뚜벅뚜벅, 거리를 걸어가는 발걸음은 느릿했지만 결코 멈추지는 않았다. 가고싶은 목적지가 있기 때문이었을까. 북적이는 사람들 속을 조심스럽게 헤쳐가면서 걸어가는 거리는 여전히 크리스마스 등불들로 반짝였지만, 사람들은 점차 안 보이는 거리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옆으로, 더욱 인적이 드문 골목길 안으로 천천히 령 님을 이끌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거리에 울리던 캐롤 소리가 멀어지는 듯 하더니, 새로운 캐롤 소리가 희미하게 저 너머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에 령 님께 거의 다 왔다고 얘기하며 조금 더 속도를 내서 캐롤 소리를 향하여 앞으로 걸어가니, 골목길이 끝나고 넓은 공간이 펼쳐졌다.
그리고 자신들의 앞에 나타난 것은 바로,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화려한 외형의 성당. 첨탑들이 하늘 높이 솟아있는 성당의 모습은 거대하고 웅장해, 그 아래에 서 있는 존재가 더욱 작아보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크리스마스의 마법이 깃들었는지, 성당의 주변 역시도 거리만큼이나 화려한 전등들이 벌써부터 반짝반짝이고 있었다.
"...령 님, 이쪽이예요."
잠시 그 아름다운 불빛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내 천천히 령 님의 손을 잡고 입구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안으로 들어서고 조금 어두운 복도 위를 천천히 나아가 도착한 커다란 문. 그 문의 손잡이를 익숙한 듯이 천천히 잡고 앞으로 밀자, 끼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성당의 내부가 자신들의 시야에 나타났다.
거대한 외형과 마찬가치로 크고 넓은 내부. 천장과 벽에는 스테인드 글라스가 쏟아지는 빛들을 받아 성당의 안을 찬란한 무지개빛으로 비춰주고 있었고, 2층에서 들려오는 것으로 추정되는 성가대들의 합창 소리는 캐롤을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어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수많은 길쭉한 성당 미사 의자들과 맨 앞에 있는 제단까지. 그 모든 것들이 성스럽고 따사로운, 포용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가운데, 천천히 령 님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부드러이 미소를 지어보였다. 스테인드 글라스의 빛이 그 미소를 비춰내렸다.
"...이곳이예요, 령 님. 제가 말씀드렸던, 제가 가끔씩 찾아오고는 했다던 곳. 크리스마스 씨에 찾아오고는 했던 장소."
/ 묘사를 하려다보니까 엄청 길어졌네요...(흐릿) 길이는 신경 쓰지 마시고 편하게 이어주세요, 령주! :) 이렇게 독백에 쓰려던 장소와 노래가 밝혀졌네요.ㅋㅋㅋㅋ 아, 그리고 이 답레에 나오는 노래는 저 노래가 좀 더 느리게, 천천히 들려오는 거라고 생각해주세요! :D
령이 잠시동안 리스를 쳐다보다가 대답하였다. 자신의 걱정으로 인해 리스가 따뜻해질 수 있다면 백만번도 더 걱정해줄 수 있었다. 령은 베시시 웃어보이고는 리스의 손에서 나오는 온기에 몸이 녹아내림을 느낀다.
인간계는 화려했다. 할로윈 때도 물론 화려하긴 했지만 크리스마스는 그것보다 더 아름다웠다. 할로윈과 크리스마스의 분위기가 다르기 때문일까? 령은 속으로 생각하며 검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름다운 트리, 반짝이는 불빛들, 그리고 캐롤... 령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떴다. 이토록 아름다운 곳에서 리스와 함께 있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리스가 점점 자신을 인적이 드문 골목길로 안내했다. 령은 리스의 손에 이끌려가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점점 사람의 손길이 끊기고 있었다. 대체 리스는 자신을 어디로 안내하는 것인가? 령은 리스의 손을 붙잡은 채로 그녀가 이끄는 곳으로 향할 수 밖에 없었다.
"아."
이윽고 자신의 눈에 비춰진 건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화려한 성당이었다. 령은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자아냈다. 아름다운 건물이었다. 단순히 '아름답다'라는 수식어로 칭하기에도 아까울 만큼 웅장하고 화려한 곳이었다. 령은 자신이 이곳에 와도 될까 싶었다. 물론 자신은 신이니 어찌보면 인간들의 신앙의 결정체나 다름없는 성당에 들리는 것도 이상하지 않겠지만...
리스가 문을 열고 안쪽으로 들어간다. 령도 따라 들어갔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무지갯빛이 반짝이는 스테인글라스였다. 2층에서는 합창단이 부르는 캐롤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래. 이곳이 리스가 말한 장소구나. 이렇게 아름다운 곳을... 령은 입을 벌리며 성당의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상당히 아름다운 곳이구나.
령 님과 함께 도착한 인간계는 거의 언제나 아름다웠고, 화려했고, 활기찼다. 할로윈과 크리스마스라는 축제의 특성 때문이었을까. 형형색색의 빛들이 반짝이는 거리는 언제 봐도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더군다나 크리스마스는 자신이 거의 유일하게 알고 있는 인간들의 기념일이기도 했으니. 자신도 모르게 캐롤 하나를 작게 흥얼흥얼거리면서 령 님의 손을 꼬옥 잡은 채 앞으로 나아갔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거리를 지나, 인적이 드문 골목길로.
따스함과 북적이는 인파들이 가득한 거리와는 반대로, 노랫소리도 거의 들려오지 않는 차갑고 삭막한 골목길. 자신에게 더욱 어울릴 법한 그 장소에서 계속해서 걸음을 옮겨 령 님을 천천히 이끌었다. 저 멀리에서부터 들려오기 시작하는 희미한 노랫소리를 따라서. 빛을 찾아 나아가는 어둠 속의 방황자처럼.
그리고 이내 곧 령 님과 함께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성당. 상당히 거대하고 웅장한 성당의 화려한 모습에 령 님께서는 감탄사를 자아냈고, 그에 기쁜 듯이 희미한 미소를 배시시 웃으면서 그 안으로 령 님을 이끌었다. 그리고 커다란 문을 열고 그 내부로 들어서자 보이는 아름다운 광경. 자신이 전에 설명드렸던 대로 무지갯빛이 찬란히 쏟아져내리고 성가대들의 캐롤과 오르간 소리가 조화롭게 울려퍼지는 성당 내부는 말 그대로 성스럽기 그지 없었고, 령 님께서는 그에 입을 벌린 채 성당의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들려오는, 흥분한 듯이 평소보다 높아진 령 님의 목소리. 그 차이를 감지해내고는 그저 기분 좋은 미소를 헤실헤실 흘리면서 고개를 느릿하게 끄덕끄덕였다.
"...네. 이곳은 저에게 있어서 무척이나 특별한 장소거든요. 정말로 특별하고 소중한 장소예요. 이곳에서는 인간 씨들도 다 같이 '신' 님께 기도를 드린대요. '신' 님을 찬양하는 찬송가를 부르기도 하고 말이예요. 그리고... 자신들이 지은 죄를 '신' 님께 고해하고 용서를 받기도 한대요."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돌리고 앞으로 느리게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살랑, 살랑. 머리카락이 살며시 그 움직임에 부드러이 흔들렸다.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던 발걸음이 이내 곧 멈추었다. 그리고 맨 앞에 유난히도 크고 아름답게 빛나는 스테인드 글라스를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무지개빛이 자신의 하얀 눈동자마저 색으로 물들어주는 듯 했다. 이질적인 존재가, 희미한 존재가, 순간 선명해지는 듯 했다.
"...그래서... 저도 크리스마스 때나, 혹은 다른 때에 가끔씩 이곳에서 저의 '신' 님께 기도를 드리곤 했었어요. 무엇보다도 이곳에서 제일 처음 알게 되었거든요. ...'신(God)'이라는 단어를."
말을 마치고 천천히 뒤로 돌아 다시금 령 님을 바라보았다. 부드럽게 휘어진 두 눈동자에, 미소를 띈 얼굴에, 스테인드 글라스의 아름다운 빛이 쏟아져내렸다. 그 빛들이 작디 작은 존재 앞에 서있는 '신'의 커다란 석상이 그 앞의 분홍빛 작은 존재를 굽어살피는 듯한 착각을 자아냈다. 성가대의 합창 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왔다. 론은 침묵했다.
/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작은 비설 하나가 이렇게 밝혀졌네요. 리스가 '신'이라는 말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인간계에서 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