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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다솜. 령은 신통술을 사용하여 서둘러 이동하였다. 미리내에서 다솜까지 신통술을 쓰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령은 거리에서 신과 파이와 딸기 주스를 산 다음, 벚꽃나무 숲으로 향했다. 그러고보니 그 분은 자신과 만날 때마다 벚꽃나무 숲 속에 있었지.
령은 사박사박 땅을 밟으며 벚꽃나무 숲 속으로 나아갔다. 벚꽃이 휘날리며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매번 보던 것이었지만 변함없이 아름다웠다. 령은 벚꽃나무 한그루에 몸을 기대고는 벚꽃의 형연을 감상했다. 사방이 온통 분홍색이었다. 아름다워라... 령은 들고있는 쇼핑백에 벚꽃이 들어가지 않게 그것을 손으로 가렸다.
그러고보니 자신은 그분을 만나기 위해서 온 것이었지. 령은 벚꽃나무 숲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여기에 있으려나? 아니면 잠시 자리를 비웠으려나? 만약 자리를 비웠다면 음식이랑 간단한 쪽지만 남기고 갈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차, 멀리서 인영이 보였다. 그 사람일까?
"리스?"
령이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확인이 되지 않아서 그런지 목소리가 떨렸다. 령이 들고있는 쇼핑백을 꽉 잡았다. 조금은 불안한 눈초리가 령의 마음을 드러내고 있었다.
벚꽃잎이 소복히 쌓여있는 벚꽃나무의 기둥 아래에 조용히 앉아 하늘 위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푸른 하늘과는 대비되는 연분홍빛의 색채를 띈 벚꽃잎이 바람결에 실려 하늘하늘, 아래로 떨어지고 있는 풍경이 한 시야 속에 들어왔다. 약간의 미동도 없이 그것을 지켜보는 또다른 분홍빛.
"......"
멍한 두 눈동자만이 떨어지는 벚꽃잎을 따라 느릿하게 이리저리, 왔다갔다 굴러가다, 문득 벚꽃잎 하나가 코 끝에 살며시 내려앉자 몇 박자 늦게서야 반응을 보였다.
"......아."
...간지러워요. 무게조차 잘 느껴지지 않는 벚꽃잎은 떨어질듯 말듯, 자신을 애태우듯이 부드러운 간지럼을 주기 시작했고, 그에 움찔움찔, 조금씩 반응을 보이다가 이내...
"에... 에취!"
가벼운 재채기가 나와버렸다. 그러자 그에 자연스럽게 벚꽃잎은 하늘하늘 떨어져 그대로 자신의 무릎 위에 살며시 내려앉았다. ...벚꽃잎 씨, 너무 간지러웠어요. 그런 생각도 하면서 두 손으로 코를 살짝 문질문질하고 있던 와중, 문득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오자 한 박자 늦게 천천히 고개를 돌려보았다.
"...령 님?"
손에 무언가를 꽉 들고있는 령 님께서는 왠지 모르게 긴장을 한 듯이 불안한 눈빛을 보이고 있었다. 더군다나 방금 들었던 떨리는 목소리. 그에 황급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령 님께 다가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령 님의 안색을 살피면서 걱정스러운 표정을 희미하게 띄웠다.
아, 리스가 맞구나. 령은 환한 웃음을 지었다. 방금 전의 불안해보이는 태도는 온데간데 없었다. 령은 들고있던 쇼핑백을 조금 느슨하게 지었다. 다행히 긴장이 풀렸나본지 조금은 느긋한 태도를 고수했다. 그것도 잠시, 리스가 가까이 다가오자 다시 긴장한 듯 몸이 뻣뻣해졌다.
"리스가 맞았군요. 길이 엇갈리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령은 조금 어색한 미소를 짓고 몸이 안좋은거냐는 말에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자신은 너무나도 건강했다. 검술로 다져온 체력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지. 아마 리스가 오해를 한 모양이었다. 령은 리스에게 말을 해주고자 입을 열었다.
"저는 괜찮답니다. 리스는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고개를 갸웃 기울이고 말하는 폼이 은근히 동물같았다. 하긴, 원래는 동물이었으니 상관없나. 아, 맞다. 령은 들고있던 쇼핑백을 리스에게 보여줬다. 쇼핑백 안에는 잘 포장된 신과 파이와 딸기 주스가 들어있었다.
"리스가 생각나서 사왔답니다. 같이 먹을까요?"
령이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약간의 웃음기도 머금고 있었다. 리스가 생각났다는 말은 진심이었다. 리스는 다양한 음식을 접해보지 못했다고 했으니 제가 더 많은 음식을 접해보게 하고 싶었다. 주제넘은 생각이었나? 령은 문득 의문이 들었다.
하늘하늘 벚꽃잎이 떨어져내리고 있었다. 문득 바람이 불며 령의 머리카락에 매달린 방울 장식이 '딸랑-' 하고 소리를 내었다. 령은 방울 장식을 매만졌다. 예로부터 있던 령의 버릇이었다. 뭔가 생각할 게 있으면 방울 장식을 만지는 것. 령은 눈가를 도록 굴려 방울 장식을 바라보았다. 까만 눈이 반짝 빛났다.
...아. 령 님께서 다시 회복되셨어요...! 령 님한테서 느껴지던 불안감이 사라지고 대신 환한 미소가 보이자, 놀란 듯 멍청히 동그래진 두 눈을 느릿하게 깜빡깜빡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혹시 령 님께서 어디 아프신 것은 아닐까, 걱정되는 마음에 가까이 다가가자 다시금 령 님께서는 왠지 모르게 긴장되는 듯한 분위기를 보이기 시작했다.
"...네, 저 맞답니다. 안녕하세요, 령 님."
그에 일단 공손히 인사를 올리면서 령 님께 걱정스레 몸이 안 좋으신 거냐고 여쭤보자, 령 님께서는 조금은 어색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시기엔 령 님, 방금 전에도 분위기가 조금 평소와는 다르셨는데...
동물적인 감각과 직관은 결코 벗어나는 법이 없었다. 그렇기에 여전히 걱정스러운 표정을 거두지 못한 채 령 님을 바라보고 있자, 령 님께서는 다시금 괜찮다고 말하며 잘 지내왔는지를 물어오셨다. 그에 잠시 령 님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그제서야 천천히 걱정스러운 표정 대신 안도감이 섞인 희미한 미소를 내비치며 입술을 열었다.
"...그렇다면 정말로 다행이예요. 저는 령 님께서 어디 아프실까봐 걱정 되어서... ...네, 저는 잘 지냈답니다. 령 님께서는 잘 지내고 계셨나요?"
령 님께 공손한 태도로 똑같은 물음을 되물어보다가, 령 님께서 들고있던 쇼핑백을 보여주자 느릿하게 그 안으로 시선을 두었다. 그리고...
리스가 자신에게 공손히 인사를 올리자 령의 표정은 애매하게 변했다. 매번 이렇게 공손한 태도로 저를 대접하니 뭔가 슬픔이 느껴졌다. 리스는 여전히 모든 신들을 자신보다 위로 보는 것일까? 리스, 당신도 신이랍니다. 령은 차마 마음 속의 말을 내뱉지 못한 채로 리스의 인사를 받았다.
잘 지냈단 그녀의 말에 령의 표정이 완전히 풀어져서 온화한 빛을 내었다. 다행이었다. 뭔가 안좋은 일이라도 일어나진 않을까 마음 속으로 걱정에 걱정을 했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긴, 여긴 라온하제였으니까. 령은 다행이라고 여기곤 몸을 굽혀 리스와 눈을 마주했다.
"물론 저도 잘 지냈답니다. 리스가 잘 지내어서 다행이에요."
령은 온화한 미소를 띤 채로 얘기하였다. 그러다 리스가 음식에 감탄을 하자 내심 이걸 사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음식을 사올 때마다 감탄하는 리스의 반응을 보는 것도 하나의 묘미였다. 잘 되었다. 령은 리스의 반응에 다시 한 번 미소를 지었다.
"이건 와플이라는 음식이고 이 옆에 있는 분홍색 음료는 딸기 주스예요. 리스가 좋아할 듯 해서 사왔어요."
령은 한창 음식에 대한 설명을 하다가 리스의 반응에 두 눈을 깜박였다. 왜 시무룩해지는 거지? 자신이 리스를 불쾌하게 했나? 당황한 나머지 령의 두 눈이 크게 뜨였다. 그것도 잠시, 리스가 뭔가 원하는 게 있냐는 말을 받자마자 잠시 생각에 잠겼다. 원하는 것, 원하는 것이라...
...령 님의 표정이 다시 조금 변하셨어요. 애매함...? 아니, 슬픔...? 자신이 감히 '신' 님의 표정에서 감정을 느껴도 되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마주 바라본 표정에서 흘러들어오는 감정은 도저히 어찌할 수가 없었다. ...령 님께서는 어째서 그런 표정을 지으시는 걸까요? 아니, 령 님을 포함하여 거의 모든 '신' 님들이 다 그러했다. 자신이 공손한 태도를 취하면 취할수록, '신' 님들께서는 더더욱 묘한 반응을 보여주곤 하셨다. 하지만, 도대체 왜...?
하지만 다행히 이어진 자신의 대답에 령 님의 표정은 다시금 온화하게 풀리기 시작했다. 자신이 언제나 바라보곤 했던 그 표정. ...정말 다행이예요, 라는 생각을 하다가 령 님께서 아예 몸을 굽혀 자신과 눈높이를 맞춰주시자 약간 놀란 듯 한 박자 늦게 몸을 조금 움찔, 했다. 그러나... 동그래진 두 눈으로 령 님을 멍하니 바라보던 것도 잠시, 이내 희미하게 웃으면서 천천히 대답했다.
"...령 님께서 잘 지내신다면 저도 잘 지낼 수 있답니다. 저야말로 령 님께서 잘 지내셨다니, 정말로 다행이예요."
진심이었다. 그렇기에 애써 공손히 허리를 꾸벅, 숙이려던 것을 간신히 참아냈다. 왠지 모르게 자신이 그랬다가는 령 님께서 또 조금 슬픔이 묻어나오는 표정을 지으실 것만 같았기에.
그렇기에 대신 령 님께서 보여주신 음식들에 순수한 감탄사를 내뱉으며 이어지는 설명을 열심히 고개까지 끄덕끄덕여가며 경청했다. 와플과 딸기 주스, 그 단어들을 잠시 따라하듯 작게 중얼거려보기도 하면서. ...령 님께서 저를 이렇게나 생각해주시다니, 정말 기뻐요. 영광이예요...!
그러나 그 행복한 마음이 커지는 만큼, 죄송스러운 마음 역시 커져갔다. 그렇기에 조금 시무룩한 모습을 보이다가 이내 령 님께 직접 원하시는 것이 있는지 여쭤보자, 령 님께서는 또다른 질문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크리스마스... 요?"
잠시 몽롱한 두 눈동자를 느릿하게 깜빡였다. 하지만 이내 곧 한 박자 늦게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입술을 열었다.
"...네, 크리스마스 씨는 알고 있답니다. 인간계에서 봤었거든요. '신' 님을 위한, '신' 님과 관련된 날. 예쁜 불빛들이 반짝이고, 노랫소리가 들려오고, 아주 커다란 건물 씨 안에서 기도를 하는 날로 알고 있어요."
희미하게 웃으면서 자신이 알고있는 '크리스마스'에 대한 것들을 얘기했다. ...비록 그것들은 크리스마스의 단편적인 일부분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이내 곧 령 님을 바라보며 고개를 살짝 갸웃해보였다. 크리스마스를 언급하신 그 뜻을 잘 모르겠다는 눈치였다.
정말로 다행이다. 령은 리스의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령 또한 리스가 잘 지내기에 잘 지낼 수 있었다. 령은 리스의 말에 눈을 감았다 뜬다. 리스에게 무슨 일이 생겼더라면 자신은 감당할 수 있었을까? 아니, 그러질 못했겠지. 그러니 더욱 다행인게다. 그녀가 무사함으로서 자신도 심리적 부담감을 덜 수 있었으니.
단어를 따라하는 리스의 모습이 귀여워 보였던지 령이 베시시 웃음을 지었다. 령은 쇼핑백 안에 손을 넣어 와플 하나를 꺼냈다. 신과로 만든 크림이 들어있는 것이 매우 맛있게 보였다. 령이 와플을 한 입 베어문다. 달곰씁쓸한 맛이 혀에 전해져오면서 더없는 행복감이 밀려온다.
크리스마스에 대해 반문하는 리스의 표정이 더없이 순수해보였다. 귀여워라. 령은 저도 모르게 다시 웃음을 지었다. 어째 리스랑 같이 있으면 웃음짓는 일이 많아지는 것 같다. 령은 리스의 반문에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알고 있었구나. 령은 리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단편적인 정보 뿐이지만 알고 있긴하니 다행이었다. 령이 입을 열었다. 다소 긴장되었는지 몸이 다시 뻣뻣해졌다.
"리스가 원한다면... 크리스마스 때 저랑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요?"
물론 어디까지 리스가 원한다는 가정 하에니까 억지로 응할 필요는 없어요. 령은 그 말을 내뱉고는 리스를 바라봤다. 리스의 눈동자를 바라보는 일이 오늘따라 더 떨렸다. 결국 령은 눈을 질끈 감았다. 아, 자신은 왜 이렇게나 겁이 많은지...
중얼중얼, 령 님께서 말씀하신 단어를 몇 번이나 열심히 작게 따라한 후에야 령 님께서 쇼핑백 안에 손을 넣어 와플을 하나 꺼내는 것을 뒤늦게 눈치챘다. 그리고 그제서야 자신 역시도 조심스럽게 쇼핑백 안에 두 손을 집어넣고 공손히, 조심스러운 동작으로 와플 하나를 꺼내들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의 끝에 자신의 손에 들려진 달콤향긋한 향기의 음식. 꼴깍, 저절로 군침이 삼켜지는 것을 느끼면서 다시금 령 님께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했다. 그리고 한 입 조심스럽게 베어물자...
정말로 맛있었는지 그저 와아, 와아, 하는 소리밖에 내지 못 했지만, 그 반짝반짝이는 두 눈동자를 보면 정말 행복한 듯한 분위기가 풍겨져나오는 듯 했다. 동그래진 두 눈동자는 감사함을 담아 령 님을 한 번, 그리고 신기함을 담아 두 손으로 든 와플을 한 번, 번갈아 바라보았다. 킁킁, 달짝지근한 향이 다시금 자신의 코 끝을 즐거이 간지럽혔다.
그러다 령 님께서 크리스마스에 대하여 넌지시 말을 꺼내자 잠시 그에 반문하며 멍한 두 눈동자를 깜빡였다. 하지만... 크리스마스는 자신이 거의 유일하게 알고있던 인간들의 기념일 중 하나. 그렇기에 천천히 자신이 알고있는 '크리스마스'에 대하여 얘기하고는 이내 무언으로 고개를 갸웃해보였다.
그러자 왠지 모르게 다시금 조금 긴장한 듯이 뻣뻣해진 분위기를 보이기 시작하는 령 님. 자신이 원한다는 가정 하에, 령 님께서는 제안 아닌 제안을 하나 말해왔고, 그 떨리는 눈동자를 멍하니 마주 바라보고 있자 이내 곧 령 님께서는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검은색 눈동자가 사라졌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마주 바라보고 있던 검은색이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정말로 저와 같이 보내셔도 괜찮으신가요, 령 님...?"
두 눈동자가 살짝 떨려왔다. '신' 님께서 다시 이렇게 자신에게 직접...? 사실 믿기지 않았다. 전혀 믿기지 않았다. 자신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하시는 '신' 님이라니. 그건... 그건...
"......네. 령 님께서 원하신다면, 저도 좋아요, 령 님. 크리스마스 씨는 '신' 님을 위한 날인 걸요."
헤실헤실, 희미한 미소가 환히 꽃피워졌다. 자신과 함께 있고싶어 하는 존재. 자신에게 호의를 가진 존재. 찌르르, 마음 한 구석이 왠지 모르게 조여오는 듯 했다. 자신도 모르게 구슬에 살며니 손을 가져다 대었다가 문득 떠올랐다는 듯이 "...아." 하는 소리와 함께 령 님께 조심스럽게 덧붙여 여쭤보았다.
"혹시... 론도 같이 있어도 괜찮을까요, 령 님? 크리스마스 씨에 론 혼자서는 쓸쓸할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