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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도움으로 인해 누리는 나무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생명의 에너지가 모여 점점 성장하고 있던 나무는 점점 그 형태가 흐릿해지려 하고 있었고 누리는 그 나무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이곳에서 생명력을 뽑아내 만들어낸 거대한 에너지. 적호의 지시로 만들어진 커다란 에너지 덩어리였다. 그 에너지 덩어리는 금방 흩어질 것처럼 천천히 흔들리고 있었다.
"다들 고마워. 정말로 고마워. 하지만...우선 이것부터 어떻게 해야 해."
모두를 바라보며 크게 감사를 표하던 그녀는 뒤로 돌아 꿈틀거리는 에너지 덩어리를 바라보았다. 이어 그녀는 계속해서 자신의 설명을 조용한 목소리로 이어나갔다.
"이 에너지는 적호가 바라던 에너지야. ...이 모든 곳의 생명에서 에너지를 뽑아내서 뭉친 덩어리. 그러니까, 나는 이것을 이대로 두고 싶지 않아. 이것을 다른 생명들에게 돌려주고 싶어. ...일부 적호와 청호에게 전해진 것도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ㅡ목숨을 버릴 참입니까?
뒤이어 모두의 머리속에 들려오는 것은 청호의 목소리였다. 꽤 숨을 헐떡거리는 것으로 보아 격렬하게 싸우는 모양이었지만 확실히 그 목소리는 모두에게 전달되고 있었다. 아무튼 청호는 차갑고 냉정한 목소리로 확실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ㅡ당신은 1년 전, 그렇게 다른 이들에게서 뺏은 생명에너지를 돌려주기 위해서, 제대로 돌려주기 위해서 당신의 목숨을 걸어야만 했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당신의 힘만으로는 가능하리가 없으니까. 이미 뺏은 것을 되돌려주기 위해서, 모든 것을 원래대로 하기 위해서는 당신의 생명 에너지도 필요했으니까. 그래서 당신은 그때 자신의 목숨을 걸었지요. ...결국 다시 자신의 목숨을 걸려고 하는 것이 아닌지...?
"......"
ㅡ목숨을 저버리겠다면 말리진 않겠습니다만... 어리석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나로 인해서 이 일대의 많은 것이 생명 에너지를 잃었는걸. 그러니까..."
혀를 차는 소리를 내며 나무의 형상을 띄고 있는 에너지 덩어리를 바라본다. 바람결에 살랑이는 듯한 나무는, 금방이라도 흩어져서 허무하게 사라질 것만 같았지. 저 나무 한그루가 심어지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희생이 이루어졌는가.
그래, 누리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은 세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은 이 사단을 만들어놓은 적호와 그 부하의 짓. 응보를 받아야 한다면 이쪽이였을거늘... 나무에서 시선을 떼어 누리를 바라보았다. 퍽 단호한 태도였지.
"저 부하 여우의 말이 사실이라면... 난 동의 할 수 없어. 저번에는 은호의 덕이 있어서 운이 좋았었던 것 같지만, 다시 살아날 수 있을거라 장담할 수 있기라도 한건가? ...함부로 말 하지마. ...애초에 난 누리 널 데리러 온 게 목적이니까."
본 목적을 달성하는 것만으로도 적당히 끝낼 작정이였으니. 청호나 적호? 악신이든 뭐든 설이 상관할 바가 있었겠는가. 애초에 그런 세세한 것을 챙겨주는 성정이 되었을까. ...하지만, 누리의 태도는 확고하였겠지. 아마 이 일을 그냥 대충 넘겨버린다면 누리는 그 일을 계속해서 후회할 것이 뻔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지금 당장 귀찮은 것과, 나중에 두고두고 귀찮아 질 것을 생각하자면. 설은 어느쪽을 택했을까?
"...하아, 망할. 패널티, 그래. 그게 그나마 합리적이군. ...액을 나눠. 그 정도는 버틸 수 있어."
ㅡ우리의 힘을 뺏겠다? 자신들의 힘을 나눠주겠다? 패널티를 나눠받는다? 어리석은 선택이로군요. 자신들의 생명 에너지까지 내놓을 정도로 그 일이 그렇게 중요합니까?
"......."
다른 이들의 말에 대답하듯이 청호가 입을 열었다. 그 목소리는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그리고 그에 대해서 누리는 상당히 고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곧 그것밖에는 답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누리는 눈을 뜨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야기했다. 그것은 명백한 결의를 한 목소리와 눈빛이었다.
"그럼 조금만, 조금만 빌릴게. ...고마워.. 조금 힘들지도 모르지만.. 조금만 참아줘."
이어 누리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고 나무의 바로 앞에서 멈춰섰다. 그리고 눈을 감고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눈을 감으며 노래를 불렀다. 그것은 분명히 아까전까지 울리던 침울하고 어두운 노래가 아니라 참으로 밝고 생명력이 가득한, 말 그대로 생생함이 절로 느껴지는 목소리로 불리는 노래였다.
모두의 몸에서 녹색의 무언가가 조금씩 빠져나가기 시작했고, 커다란 나무는 천천히 흩어져 녹색의 알갱이로 나뉘었고 하늘 높게, 정말로 높게 솟구쳤다. 그리고 그것은 곧 녹색의 눈이 되어 천천히 떨어졌다. 그 녹색의 눈이 떨어진 땅은 녹색의 풀이 다시 자라나기 시작했고 근처의 황폐해진 나무들도 생기의 기운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와는 대조적으로 모두의 몸에선 힘이 조금씩 빠지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힘을 빼면 털썩 주저앉을지도 모를 정도로 몸의 힘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누리 역시 마찬가지였는지 조금씩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ㅡ...생명에너지를 나눠주는 것. 그것은 목숨을 거는 행위. 그렇게 하는 이유가 이해가 안가는군요. 어리석긴...
모두를 흔들어버리려는 듯이 청호의 목소리가 다시 한 번 크게 머릿속에 울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령이 이제까지 적호와 청호를 무시한 건 그들의 말에 대답할 가치가 없어서였다. 하지만 자신의 생명 에너지가 소비되는 순간까지도 그 개소리를 듣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령은 허공을 쏘아보았다. 그리고 조용히, 하지만 또렷하게 읊조렸다.
"닥쳐."
청호에게 한마디 쏘아붙인 령은 누리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희생 정도야 감내할 수 있었다. 누리가 죽지 않는다면야. 이윽고 누리의 노래가 시작되었고 령의 몸에서도 생명 에너지가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령의 몸에서 조금씩 힘이 빠졌다. 까딱 정신을 놓았다가는 정말로 쓰러져버릴 것만 같았다. 령은 이를 악물었다. 여기서 쓰러질 순 없다.
"응. 중요해." 저런 재앙을 흩뿌리는 일에만 열심인 이들이라서 공감능력이 떨어지나 봐. 생명 에너지를 모으라고 한 쪽이 손해보기 싫어서 떼쓰는 거로밖엔 안 보이잖아. 그리고 입꼬리를 씨익 올리면서
"파랑아. 내가 선택한 거에 파랑이가 그렇게 간섭하면 못써." 마치 아이를 달래듯 나름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어리석다고 말하는 건 먼저 빨강이가 어리석은 짓을 했으니까 제 얼굴에 침 뱉기잖니? 라고 덧붙입니다. 그것과 별개로 힘이 빠져나가는 듯한 기분이 좋은 것은 아니었지만, 딱히 못 버틸 것도 아니었지요.
모두는 어떻게든 버티고 있었다. 힘들게 버티는 이도 있었고 창백한 얼굴을 보이면서 버티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쓰러지지 않게 잘 조절을 하면서 누리는 마지막까지 노래를 유지했다. 그리고 마지막 녹색 눈이 떨어지는 순간, 그 주변은 방금 전의 황폐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녹색빛 푸른 색으로 가득 물들어 생명의 기운을 보이고 있었다.
ㅡ.....어리석은 이들 같으니...
뒤이어 청호의 목소리가 부르르 떨리듯 들려왔고 그와 동시에 검은색 번개가 여기저기에 강하게 몰아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틀림없는 적호의 힘이었다. 그와 동시에 적호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땅을 울리듯이 울려왔으니 분명할 것이다.
ㅡ...기억해둬라. 즐거운 내일을 꿈꾸는 이들이여. 여기서는 물러가도록 하지. 하지만, 그 즐거운 내일이 절망의 내일로 바뀌는 날, 모두 절망과 재앙에 빠지도록 해라.
뒤이어 강한 신통력이 그곳을 덮치는 듯 보였다. 그리고 저 편에서 커다란 폭발과 함께, 불길한 기운을 보이던 힘은 사라져버렸다. 하늘 위로 솟구치는 검은색 번개는 곧 그 모습을 감추었다. 그리고 머지 않아 그곳에 찾아온 곳은 틀림없는 평화였다. 뒤이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은 은빛 눈이었다. 그 눈은 모두의 몸에 닿아 흡수되듯이 사라졌고, 힘이 빠진 이들의 몸에 다시 힘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고생이 많았느니라."
"...하아..하아...여러모로 잘 된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여러분! 그리고 누리님!"
"...후훗. 다들 어떻게 잘해낸 것 같아서 다행인걸?"
뒤이어 저편에서 은호의 목소리, 그리고 뒤이어 가온과 백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 명 전부 다 치열하게 싸웠는지 몸 상태가 아주 말이 아니었다. 다친 이들도 있어보이지만, 그래도 일단 모두 무사해보이는 것은 사실이었다.
뒤이어 누리는 은호를 바라보며 아무런 말도 못하고 고개를 푹 아래로 숙이고 있었다. 그야...자신이 한 일의 결과였으니까. 그에 대해서 누리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거리는 모습을 보일 뿐이었다.
아, 검은 번개. 그리고 흔하디 흔해빠진 말. 또 시작이군. 령은 여기서 물러나겠다는 적호의 말을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더 이상 대꾸할만한 기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다행히 주변이 싱그러운 녹색으로 가득 찼다. 아무래도 자신들이 성공한 것 같다. 령은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다. 제아무리 검술로 단련된 몸이라고 해도 이런 건 못 버틴다.
"은호님..."
령은 은빛 눈과 함께 은호, 가온, 백호가 나타나자 그들을 바라보았다. 몸에 다시 힘이 돌아왔다. 령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누리가 눈에 들어왔다. 령은 일어나서 누리에게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