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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다시 눈을 떴을 때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조용함이었다. 분명히 기운을 잃고 쓰러졌건만, 자신들은 아직 살아있었다. 몸이 아픈 곳도 없었고, 오히려 쌩쌩한 느낌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그에 반해 주변은 조금 황폐한 느낌으로 바뀌어있었다. 풀은 시들어있었고, 꽃은 말라죽어있었다. 저 편에 있는 벚꽃나무 숲은 멀쩡했지만 그 근방의 꽃들은 모두 말라죽어 널부러져있었고 풀은 말라버려 노란빛이 되어있었다.
"...정신이 들었느냐?"
이어 들려오는 것은 다름 아닌 은호의 목소리였다. 목소리가 들린 곳을 바라보자 보이는 것은 다름 아닌 은호와 백호의 모습이었다. 상당히 분한지 은호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 있었고, 그 옆에 있는 백호는 은호를 천천히 토닥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부근에는 가온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분명히 다친 몸이었건만, 지금 가온의 몸은 멀쩡해진 상태였다.
"...한 발 늦었구나. ...그 망할 파란 늑대 녀석에 너무 잡혀있었도다."
"그것은 은호 님의 잘못이 아니에요. ...양동작전이라는 것을 미처 계산하지 못한 제 실수입니다."
백호의 위로를 뒤로 한 채, 은호는 모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모두에게 입을 열어 조용히 질문했다.
황폐한 라온하제라... 이런 건 어울리지 않는다. 령은 몸을 일으키며 생각했다. 제가 아는 라온하제는 항상 생기가 넘쳤는데... 령은 검을 꼬옥 쥐며 생각에 잠겼다. 그 적호라는 여우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재앙을 내리는 신이라고 했나? 령은 입술을 깨물었다. 분함에서 나오는 행동이었다.
"은호님."
령은 들려오는 목소리에 그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은호와 백호의 모습이 보였다. 다쳐보였던 가온이 멀쩡해져 있었다. 령은 고개를 숙였다. 누리가 끌려갔냐는 질문에는 답하지 못했다.
다시 천천히, 눈을 떴다. 보이는 것은 그저 조용하디 조용한 곳. 풀들이 시들고, 꽃들이 말라죽어있는 곳. 벚꽃나무만이 그저 이질적인 분홍색을 피워놓고 있는 가운데, 멍한 눈동자가 더욱 몽롱해졌다. 천천히 몸을 일으켜앉았다. 익숙하디 익숙한 상황. ......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천천히 고개를 돌려보았다.
"...은호 님."
멍한 목소리가 한 박자 늦게 새어나왔다. 그 옆에는 백호 님과 가온 님도 있었다. ...저는... 죽은 게 아니었나요...? 왜 다들 이곳에... 머릿속이 혼란스럽다못해 새하얗게 깨끗해졌다. 아무것도 없는, 공허함. 이윽고...
"...누리 님... 누리 님... 은... 잘 모르겠어요. 정말로 죄송합니다, 은호 님... 누리 님을 끝까지 지켜드렸어야 했는데...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서, 적호... 에게, 누리 님께서 노래를 부르시자 정신을 잃어버려서 그만..."
횡설수설, 이내 머릿속에 기억이 다시 물밀듯이 들어차와, 어떻게든 대답을 했다. 그러나 표정은 자책과 괴로움에 살짝 일그러졌다.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고통스럽고 죄송스러웠다. ...죄악이 들어찼다.
"흑호...그 망할 영감탱이를 아느냐? 황호도 있고, 녹호도 있느니라. 아무튼 그런 것은 좋으니까 넘어가도록 하겠느니라."
아사의 말에 답을 한 후에, 령과 리스의 답에 귀를 기울인 은호는 조용히 침묵을 지켰다. 이어 그녀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조용히 모두를 향해서 이야기했다.
"...너희가 들은 그 노래는 누리의 고위신으로서의 능력. 생명력의 조절. 그 노래를 듣는 이는 생명력을 뺏기기도 하고, 반대로 주입되기도 하느니라. 보아하니, 너희들의 생명력을 극한까지 뺏었다가, 이 근처의 식물들의 생명력을 이용해서 너희들에게 다시 생명력을 부여한 것이 분명하느니라. ...그 노래를 듣는 이는 누구라도, 생명력을 뺏기고 주어지는 것에 대해서 자유로울 수 없느니라."
"...죄송합니다. 은호 님. 백호 선배. 제가...제가..."
"네가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니라. 목숨을 지킨 것만으로도 다행이니라."
이어 그녀는 조용히 침묵을 지킨 후에 고개를 내려 모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용히 확인을 하고 싶다는 듯이 모두에게 이야기를 꺼내들었다.
"...그래서 너희들은 어디까지 들었느냐? 어디까지 알고 있느냐. ...누리에 대해서... 가온이에게 일단 듣긴 했느니라. ...적호 녀석이 많은 것을 이야기했다고... 일단 정리가 안되는 것이 있다면 이야기하도록 하라. ...내 설명을 해줄터이니."
어쩌면 지금은 궁금한 것을 들을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질문을 하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진짜 있던 거야..?" 응 확실히 그게 중요한 건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지만 신기하긴 하네. 라고 중얼거립니다. 칼라풀 전대를 생각했다는 건 묻어두자. 그리고 아는 것에 대해서는 고개를 기울이다가 말하려 합니다.
"음.. 빨강 여우가 내가 대충 이해한 바에 따르면 누리를 태어나게 한 존재이고, 재앙을 일으키자고 꼬시다가 안 되니까 가온이 가지고 협박질을 했어." 내 말에 막 많이 대답하진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대답한 걸 보면 죽음의 여우니 뭐라고 했고...라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약자는 짜져 있어야 한다고도 했던가. 그 외 할 말이 그렇게 적진 않아보였지만, 그렇게 많지도 않았겠지요.
"누리가 그런 줄은 몰랐지만 예전에 뭐였던 지금 잘 사는 애를 데리고 가겠다면서 협박질이라니. 덜되어먹었다고 생각해."
침묵이 이어졌다. 그리고 들려오는 은호 님의 목소리. 그 설명을 조용히 들었다. 생명을 빼앗기도 하고 주기도 하는 노래. 그것은... 어쩌면, 자신에게 생명을 주었을지도 모르는 노래. 두 눈을 잠시 깊게 감았다 떴다. 그리고 다시금 이어지는 침묵. 그것을 깨고 은호 님께서는 이내 자신들에게 확인을 하려는 듯이 질문 하나를 던져왔다. 그러나...
"......정말로 많은 것을 들었어요. 누리 님께서 태어나신 이유, 은호 님과 가온 님, 백호 님의 과거, 그리고..."
잠시 말을 멈추었다. 괴로운 과거는 이제, 더이상... 두 눈을 꽈악 감았다가 느릿하게 떴다. 그리고 은호 님을 가만히,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조금은 슬픈듯한, 괴로운듯한 감정이 두 눈동자에 넘실거렸다.
모두의 질문에 은호는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일단 아사는 별 다른 질문을 하지 않았고 령과 리스에게선 질문이 들어왔다. 그 모든 말들을 다 들은 후, 그녀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적호가 덜되먹은 녀석임은 맞느니라. 참으로 끈질기기 짝이 없는 녀석이로다. ...아직도 포기를 하지 못하니, 참으로 끈질기다고 해야 할 지. 그리고...너희가 알고 있는대로다. 적호는 내 힘이 깃들어있는 내 털을 구해서 그 털을 매개체로 생명을 부여해 누리를 만들었느니라. 왜 누리를 내 딸로 데리고 있는지, 그리고 내가 누리를 사랑하는지, 백호와 가온이가 누리를 사랑하는지를 물었느냐."
"그건...."
"조용히 있거라."
그 물음에 가온이 입을 열려고 하였지만 은호는 팔을 들어올려 가온의 답을 막았다. 그리고, 모두를 바라보면서 그들이 궁금해하는 것에 대한 답을 이어나갔다. 그것은... 조금 길지도 모르는 이야기였다.
"확실히 누리는 나를 죽이기 위해서 만들어졌고 보내진 이니라. 실제로 나를 죽이려고 한 적이 있느니라. 하지만 가온이와 백호, 그리고 나의 힘을 다 이길 순 없었기에, 누리는 인간계로 도망쳤느니라. 그 인간계가 바로 내가 은혜를 내린 땅, 호은골. 그곳에서 은호는 인간들과 알게 되었고, 인간들과 지내게 되었느니라. ...하지만 적호는 그 사실을 알고 누리를 데리러 갔고, 결국 누리에게 명령을 내려 호은골의 모든 생명력을 없애버리려고 했느니라. 내가 은혜를 내린 땅을 멸망시켜, 나를 건드리려고 하거였겠지. 하지만... 결국 누리는 최종적으로 생명력을 빨아들이는 것을 포기하고 죽음을 각오하고 자신의 생명력까지 포함해서 모든 것을 돌려주었느니라. ...그리고 목숨을 잃었지. 적호조차도 생명력을 빼앗겨, 도망쳐버렸고, 나는 그 가여운 것에게 생명을 부여했느니라. ...사랑하냐고 물었느냐. 사랑하느니라. 처음엔 어색했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내 딸이고 내 자리를 잇게 할.. 내 털로 만들어진, 나의 힘이 기반으로 만들어진 나의 딸이니라. 누가 뭐라고 해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느니라. 왜 그 아이를 데리고 있느냐고 하였느냐. ...내가 그 아이를 버리면 그 아이는 정말로 혼자가 되지 않겠느냐. 인간계에 신을 그대로 둘 순 없느니라. 나로 인해서 만들어진 존재라면 내가 책임을 지는 것이 맞지 않겠느냐. 생명력을 조절하는 힘은 잘못 사용하면 재앙이 되지만, 잘 사용하면 축복이 될 지어니...그 아이의 힘은 양면성이 강하느니라. 내가 직접 교육시키고 1년이나 되는 시간을 내가 키웠느니라. ...그렇다고 한다면 내 딸이 아니느냐?" (주 - 2기 극장판 내용입니다)
"나도 마찬가지야. ...처음에는 어색했을지도 몰라도 지금의 누리님은..."
"마찬가지입니다. 누리님은... 이제 은호님의 어엿한 딸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그런 누리님을 지킬 뿐입니다."
곧 백호와 가온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뒤이어 은호는 저쪽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곳은 경계선 너머 바깥 부분이었다. 이어 그녀는 눈을 감았고, 모두에게 이야기했다.
"지금부터 누리를 되찾으러 가겠느니라. 백호, 가온. 나를 따라오도록 하라. 내 사랑스러운 딸을 되찾아오겠느니라. 아직 그 아이에겐 가르칠 것이 많고, 그런 악독한 녀석의 손에 맡길 수 없느니라. 나로 인해서 태어난 존재. 내가 책임지고 내 딸로 되찾아오겠느니라."
령 님과 자신의 질문. 그것에 대한 은호 님의 대답을 조용히 경청했다. 은호 님께서 부정하지 않으셨다. 누리 님께서는... 정말로 그렇게 태어나신 존재. 그렇다는 건...
찌릿, 마음 한구석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태어난 존재이셨다면... 누리 님께서는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감히 감정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신' 님의 일인데도 불구하고.
하지만 이어서 들려오는 은호 님의 대답은 그것보다도 더욱 안타까운 것이었다. 결국 누리 님께서도 죽음을 맞이하여 모든 것을 돌려주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으니. 그리고... 은호 님께서는 누리 님을 사랑한다 하셨다. 그것은 변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딸이라고 하셨다. 백호 님도, 가온 님도, 모두가 누리 님을 좋아한다고 하셨다. 그렇다면... 잠시 은호 님, 가온 님, 백호 님을
"......다행이예요."
희미하지 않고 선명한 미소가 기쁘게, 환하게 지어졌다. 사라지지 않을 미소. 누리 님께는 '사랑'받고 있었다. '가족'이 되어있었다. 정말로, 정말로 다행이예요. 그렇다면....
령은 설명을 다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복잡한 사연이 있었구나. 령의 표정이 영 좋지 않았다. 령은 검을 부여잡았다. 누리는 원래 그런 용도로 만들어졌구나. 령은 새삼 누리에게 연민을 느꼈다. 그것 때문에 적호한테 끌려가는 거라면 너무 가혹했다. 령은 누리를 되찾으러 간다는 말에 고개를 들었다.
"재수 없는 녀석입니다. 그리고 정말로 위험합니다. 쓸데없이 강하고, 쓸데없이 철저하고..."
"가온이 같은 녀석이니라..."
"적호가 데리고 있는 가온이 같은 이야."
"너무합니다! 두 분!!"
청호가 어떤 이냐는 물음에 가온이 설명을 하려고 했지만, 은호와 백호가 덩달아 설명을 했고 가온은 항의를 하듯이 이야기했다. 청호가 자신 같은 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일까? 아무튼 모두가 다 가려고 하는 그 모습에 은호는 침묵을 지켰다. 잠시 뭔가를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이어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은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절대로 무리하지 말지어다. 가온아. 네가 지키도록 하라."
"네! 알겠습니다! 목숨을 걸고!!"
"...그럼...출발해보자꾸나..."
이어 은호는 결계 밖으로 천천히 걸어나갔다. 그리고 그 옆을 백호가 따라나섰고, 가장 뒤를 가온이 따라나섰다. 천천히 앞으로, 앞으로.. 은호가 가지고 있는 구슬은 환하게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것을 따라서 그녀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얼마나 걷고 또 걸었을까. 정말로 음침한 느낌의 골짜기에 그들은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저 편에서, 무언가 거대한 나무 같은 것이 보였다. 그리고 주변의 풀이나 꽃, 나무에서 무언가 녹색 빛이 빠져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그리고 저 편에 보이는 나무를 바라보며 은호는 조용히 이야기했다.
"...누리로구나. ...저 나무는 주변의 생명력을 끌어모아 만들어낸 형체로다. ...그렇다는 것은 이 부근에 아마도..."
뒤이어 갑자기 어딘가에서 불꽃이 빠르게 날아왔다. 뒤이어 가장 뒤에 있던 가온이 앞으로 돌진했고, 발톱을 꺼내 불꽃을 베어냈다. 이어 가온의 모습이 검은색 늑대의 모습으로 바뀌었고 그는 주변을 바라보며 그르릉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뒤이어 강한 돌풍이 불어닥쳤다. 그 돌풍이 사라지자 보이는 것은 다름 아닌, 적호의 모습, 그리고 그 옆에 있는 푸른색 여우 귀와 푸른색 여우 꼬리를 가지고 있는 여우 수인의 모습이었다.
청호 님에 대한 설명에 가온 님 같은 자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에 그저 고개를 살짝 갸웃해보일 뿐이었다. ...청호 님은 대체... 아무튼 이내 모두가 다 함께 가는 듯 했다. 누리 님을 되찾으러. 출발하며 은호 님 뒤를 따라나서는 발걸음은 무겁고 긴장되기 그지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누리 님을 구하고 싶어요. 그것이 아마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전부.
라온하제의 결계 밖으로 걸어나왔다. 은호 님의 구슬은 환하게 반짝이기 시작했다. 앞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은 여전했다. 계속해서 걷고, 또 걸어가자 음침한 골짜기에 도착했다. 그리고 저 앞에 보이기 시작하는 거대한 나무 하나. 그 주변에 빠져나가는 녹색 빛을 따라 시선을 옮기다가, 이어진 은호 님의 설명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누리 님께서...
그런데 바로 그 순간, 갑자기 빠르게 날아오기 시작하는 불꽃과 검은색 늑대로 변신한 가온 님의 모습. 그 모든 환경들에 순간 창백한 얼굴로 두 눈동자를 크게 떴다. 순간 숨이 막혀 쉬어지지 않았다. 두 손을 황급히 입가로 가져간 그 순간, 불어닥치는 강한 돌풍. 그리고 나타난 적호와... 청호 님.
붉은색의 여우 수인 '신' 님과 푸른색의 여우 수인 '신' 님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퇴장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누리 님을 되찾기 전까진...
"...누리 님을 돌려주세요."
그 전까진 되돌아가지 않겠다는 듯이 얘기했다. 비록 본능적인 두려움에 몸은 작게 떨려왔지만, 그렇게 얘기하는 두 눈동자와 목소리만큼은 떨리지 않고 굳건했다. 강한 의지가 깃들어있었다.
"냅두거라. 청호. 약한 이들의 모욕 따위 얼마든지 들어주도록 하마. 원래 약한 개들이 잘 짖는 법이다."
아사의 말을 들으면서 적호는 피식 웃으면서 무시하듯 넘겨버렸고 이어 그는 곧 다른 이들을 바라보며 피식 웃어보였다. 그리고 차가운 눈빛으로 둘을 주시하면서 차가운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돌려달라고? 돌려주지 못한다면 어쩔 참이냐? 그 녀석은 내 것이다. 내가 만든 내 피조물이다. 내 피조물을 내가 데려가겠다는데 무슨 말이 그렇게 많지? 아니면 그거냐? 이대로 내버려두면 분하다 이거냐? 아니면 내가 은호를 해칠까봐 두려운거냐? 하하하! 착한 이로서 존재하기 위한 가식이 지나치구나. 그렇기에 약자는 약자인거다."
"말은 다 하였느냐?"
이어 들여오는 것은 은호의 차가운 목소리였다. 금방이라도 모든 것이 얼어붙을 것 같은 그 차가운 목소리는 모두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하지만 전혀 지지 않고 적호는 피식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아니. 안 끝났는데? 자신을 해칠 힘을 내가 가지고 있다는 것이 그리도 두려우냐?"
"......."
"그 피조물은 나의 것이다. 보아라. 지금 저렇게 생명력을 끌어모으는 모습을...저것이야말로 저 아이의 원래 된 모습. 이대로 많은 생명력을 끌어모아 너만이 아니라, 너의 땅, 호은골도 부숴주마. 여우의 은혜를 받은 땅? 웃기지 마라. 그런 땅은..."
"...나를 모욕하는 것은 상관이 없느니라. 하지만... 그 이외의 것을 모욕하는 것에 대해서는 대가를 치르라."
뒤이어 하늘 위에서 번개가 번쩍이며 떨어졌다. 그것은 은호의 공격이었다. 하지만 적호는 아주 가볍게 그것을 받아치면서 은호를 바라보면서 불꽃을 생성했다.
"너에게 질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은호. 생명력이 모이게 되고, 그 생명력이 나에게 부여되는 순간, 네 녀석은 아무것도 아니게 되니까!"
"...해보아라! 가능하다면...!"
뒤이어, 은호는 적호에게 달려들었고 두 신은 모습을 감추었다. 근처의 나무나 바위가 깨지는 것을 보면 분명히 전투는 벌어지고 있었다. 한편 청호는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검을 꺼내들었다. 하지만 청호에게는 백호와 가온이 달려들었다.
"은호 님에게는 손가락 하나 대지 못한다!"
"...건방지게 굴지 마. 파란 여우! 너희들! 빨리 저 나무로 가! 그리고 누리 님을...빨리..! 여긴 어떻게든 잡아볼테니까!"
"보낼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이어 청호의 시선이 다른 신들에게 향했다. 그들에게 공격을 가하려는 듯 했지만, 가온이의 공격이 더 빨랐다. 청호를 덮치듯이 공격하면서 그는 다른 이들을 바라보면서 이야기했다.
곧바로 크게 대꾸했다. 드물게 격앙된 분노의 말이었다. 분노로 가득찬 두 눈동자가 적호와 청호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들려오는 적호의 말. 자신들을 한껏 비웃는 그 말. 자신을 모욕하고 가식적이라, 약자라 손가락질 하는 것은 상관없었다. 하지만... 령 님을 욕하는 건, '신' 님을 욕하는 건... ...참을 수 없어요.
"...저는 얼마든지 그렇게 욕하셔도 좋아요. 하지만 령 님을 욕하진 마세요...!"
두 주먹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이어서 들려오는 은호 님의 말씀도, 적호의 말도... 전부, 전부...! 은호 님께서 먼저 선제 공격을 날렸지만, 적호는 그것을 가볍게 받아쳤다. 그리고 시작되는 두 '신' 님들의 싸움. 나무와 바위들이 깨지는 것에 다시금 찌릿, 마음이 아파오는 것을 느끼며 은호 님께서 사라진 쪽을 아랫입술을 깨문 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청호에게 달려드는 백호 님과 가온 님. 이어서 들려오는 두 '신' 님들의 말씀에, 그제서야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 모두가 다치기 전에, 빨리 누리님을...! 두 눈을 꽈악 감으며 두 손을 자신의 구슬에 가져다대었다. ...저의 '신' 님, 저에게 부디 힘을 주세요...! 파앗, 구슬이 빛나기 시작하면서 신통력을 사용하려고 했다. '신' 님의 능력. 그 중에서도 고속이동을 사용하여 나무 쪽으로 달려가려고 했다. 약한 몸이었지만, 지금은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설사 이 사건 이후에 쓰러진다 하더라도, 지금은... 다소 무리를 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