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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조차도 알지 못하다니. 정말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어. 죽음의 여우도, 피조물도 아니야? 은호의 딸이자 너희들을 위해주는 따스한 신이라고? 웃겨서 말도 안 나오는구나!"
아주 재밌다는 듯이, 적호는 키득거리면서 웃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시선은 계속해서 누리를 향하고 있었다. 마치 놓아주지 않겠다는 듯이, 빤히 바라보며, 정말 그대로 바라보며... 그는 여전히 가온을 발로 짓밟으면서 다시 자신의 차가운 목소리를 이어나갔다.
"협상이라고? 착각하지 마라. 통보하는거다. 누가 너희같은 하등신들과 협상을 한단 말이냐? 은호와 닮은 이유가 뭐냐고? 왜 죽음의 여우고 왜 피조물이냐고? 그럼 전부 알려주도록 하지. 그 녀석은 말이야..!!"
"그만 둬...! 그만 둬..!"
"그 녀석은... 은호를 죽이기 위해서, 일족의 배신자를 멸하기 위해서 그 녀석의 힘이 깃든 털을 이용해서 만들어낸 존재다. 즉, 그 녀석의 몸에는 은호의 힘과 비슷한 힘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결국 그것을 만들어낸 것은 바로 나. 작년... 누리를 만들어내고, 은호를 죽이려고 했고, 실제로 그 녀석은 임무를 수행했다. 물론 은호에, 백호라고 불리는 하얀 여우, 그리고 지금 내가 짓밟고 있는 이 늑대의 힘까진 이기지 못해서 도망치긴 했지만 말이야. ...결국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고, 호은골. 즉 그 배신자 녀석이 은혜를 내렸다고 하는 인간들의 마을에서 숨어있다가 인간에게 주워져 쓸데없는 감정을 익히게 되어서 쓸모없는 존재가 되었지만 말이야. ...결국 나를 배신하고 목숨을 잃었지만, 은호의 힘으로 다시 살아난 모양이지만... 그렇다고 한들... 내 피조물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고, 그 녀석이 죽음을 상징하는 죽음의 여우라는 사실도 변하지 않는다. 아무리 날뛴다고 한들 그 운명은 절대로 바뀔 수 없으니까!" (주 - 2기 극장판 시나리오의 내용입니다.)
"......"
"들어본 적이 없겠지? 이런 내용은 처음 듣겠지? 잔혹하군. 너희들을 위해준다는 그 신은 너희들에게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고, 자신의 정체, 자신의 사명조차도 숨겼지. 은호도 마찬가지. 결국 자신을 죽일지도 모르는 신을 옆에 둠으로서 자신의 목숨을 지키려고 하는 신에 지나지 않아. ...그렇지 않고서야 자신을 죽이려고 한 신을...굳이 다시 살리려고 할 이유가 있나? 사랑? 자신을 죽이려고 한 이조차도 용서? ...그 은빛 여우 역시, 과거엔 나처럼 재앙을 불러일으키는 재앙신의 일족.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한 술수에 지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이 사랑받는다고 착각이라도 하는 모양이지? 응?"
듣고 싶지 않다는 듯이 누리는 고개를 도리도리 내저었다. 그 모습이 재밌다는 듯이, 적호는 껄껄거리면서 웃었고 이어 모두를 바라보면서 이야기했다.
"내 말을 믿기 힘드나? 그렇다면 이 늑대에게 물어보지 그러나? 내 말이 거짓인지, 참인지 말이야. 누구보다도 그 존재를 죽이려고 한 존재. 지금은 호위라고? 착각도 정도껏 해야지. 이 녀석이 따르는 것은 은호 뿐이다. 은호를 지키기 위해서 위험할지도 모르는 내 피조물을 옆에서 감시한 것밖에 되지 않아."
".....으읏..."
가온은 뭔가 말을 하려고 하는 것 같았지만 제대로 말을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인정? 아니면.... 아무튼 누리는 몸을 더욱 강하게 떨면서, 눈을 감았다. 싫어...싫어라는 말만을 중얼거리며...
"알았나? 너희가 뭐라고 하더라도 난 그 녀석을 데려갈거다. 내 피조물인 죽음의 여우를 말이다."
"은호님 딸 맞잖아. 기본적인 생물의 번식요건은 다 갖췄잖아?" 그게 힘과 힘의 결합으로 만들어졌다는 게 다를 뿐이지. 그러면 아빠 맞잖아. 음 나쁜 아빠겠지만. 뭔 소리를 말하나 싶어서 들었는데 무슨 착각을 하는 거야. 라고 말합니다. 난 또 은호님이 그냥 쌩으로 입양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 물론 입양이라고 했다 해도 배척하려던 건 아니었지만? 재앙신 일족이었어? 아 그러면 배신자라 할 만하네. 오 처음 듣는 사실이다. 라고 고개를 끄덕입니다.(아사의 지식이 +1되었습니다) 그리고
"아 그래. 그래서 뭐." "그러면, 사랑하면 안 된다고 누가 정하기라도 했어? 지금 진짜 사랑하는지 안하는지 아는 방법이라도 있는 거야?" 강하지만 않았으면 떽떽이잖아? 네가 무슨 법 정하는 신이야? 라고 갸웃거리며 말하려 합니다.
"그리고 알았지만 넘겨주고 싶은 생각 없는데." 파직파직 깨지겠다. 라고 한가롭게 바라보지만 후퇴해야 할까. 라고 좀 고민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 새끼줄놈도 그렇고 저 시뻘건 여우도 그렇고 다솜지역이 만만한가. 누리를 보면서
"말 안할 만한 사정이었네. 그래도 솔직히 해저지진같은 거 일으켜서 쓰나미 일으켜서 인명피해 막대히 냈다가 버로우타고 신분세탁이라도 한 줄 알았잖아." 저 정도면 별 건 아니네. 라고 생글생글 웃으며 말합니다. 과거에도 뭐 피해 안 냈고 지금 잘 하는데 무슨 상관? 그게 싫었으면 지가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키웠어야지. 방치해뒀다가 이제와서야? 라고 적호를 보면서 말하는군요.
자신의 말에 적호 님께서는 한껏 비웃음을 보였다. 그 시선 끝에 닿아있는 누리 님을 지키려, 애써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천천히 옮겨 그 사이의 시야를 가리며 막아섰다. ...누리 님은... 안 돼요. 고개를 작게 도리도리 저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동시에 적호 님의 발 밑에 있는 가온 님을 적호 님과 번갈아 바라보며 살짝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가온 님도, 어서 구해드려야 하는데...
그러나 이어지는 적호 님의 충격적인 폭로. 모든 것들을 알려주는 그 차가운 목소리에, 순간 바들바들 떨리던 몸이 멈추었다. 숨도 멈추었다. 멍한 눈동자는 동그란 눈매로 바뀌어 크게 떠져있었다. 표정은 멍했다. 하지만... 평소의 그 나른하고 몽롱한 멍함이 아니었다. 그것은...
'죽음'의 이야기. '죽음'의 향기가 깊게 스며있는 잔혹한 이야기. 그것을 마주한 멍함이었다. 익숙한 검은색이, 익숙한 붉은색이 숨을 조여오기 시작했다.
......그런, 거였나요...? 누리 님의 정체, 은호 님의 정체. 그것들은 전부... 가온 님 역시도 뭔가 말을 하려고 했지만 제대로 말을 하지 못 하는 모습이었다. 누리 님한테서는 싫다는 말만이 반복해 들려오기 시작했다. '죽음'의 여우...
숨이, 쉬어지지, 않...
고개가 아래로 떨구어졌다. 얼굴에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아니요. 전 모르겠어요, 적호 님."
한참만에야 천천히, 느릿하게 나온 목소리는 그것이었다. 이내 천천히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두 눈동자는 동그랗게, 차분히 뜨여져있었다. 몸도, 목소리도, 두 눈빛도, 모두 떨리지 않았다.
"운명은 변할 수 있고, 모든 것들은 변할 수 있어요. 그런 과거와 정체, 사명이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 제가 지금까지 만나왔던 '신' 님은 '현재'의 누리 님과 은호 님, 그리고 가온 님과 백호 님이세요. 죽음과 배신자. 그것들만을 위해서 태어난 존재라고 하더라도, 변할 수 있어요. 달라질 수 있어요. 지금의 누리 님, 은호 님, 가온 님, 백호 님처럼 말이예요. ...그리고 그런 지금의 네 분의 '신' 님들께서는, 결코 그런 존재들이 아니시라고 감히 말씀 드릴 수 있어요. 감히, 따스하고 다정하신 '신' 님들이시라고 말씀 드릴 수 있어요."
'신' 님들을 믿는 목소리는 확고하고 굳세었다. 부드러워보이는 강함. 그것이 바로, 신뢰와 믿음.
"그런 과거를 숨기셨는 것도 다 이해할 수 있어요. 괴롭고 고통스러운 기억이었을테니까요, 분명. 하지만... 그것들은 결국 그저 과거일 뿐. 지금 이 순간은 현재예요. 그러니 저는 '신' 님의 과거보다는 현재를 바라보고 싶어요. ...그러니... 지킬 거예요. 누리 님을, 가온 님을, 모두를. 죽음의 여우도, 적호 님... 아니, 당신의 피조물도 아니신, 그저 제가 만나왔던 밝은 웃음을 지으시던 누리 님을."
숨을 쉬었다. '죽음'이 손짓했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예요. ...부디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멀리서 보고만 있자니 희극이구나. ...쓸데없이 말이 많은 적이네. 딱 질색인 타입이야. 1절로 줄여서 말해."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고개를 돌리면, 뒤늦게 도착한 세설이 있었다. 걸음이 느렸다. 마치 주변의 살벌한 상황따위는 모른다는 듯이.
"뻔한 레퍼토리. 뻔한 철학, 뻔한 선민사상. 하하... 악신화 된 고위신들은 다 그런 꼴인가? 오만하고 방자하기 짝이 없지. 당신같은 신을 한두번 본게 아니라고. ...그래그래, 그만한 힘을 가졌으면 마음껏 자랑스러워 해도 좋지. 약한 신 따위가 감히 논할 수 있는 것도 아니겠지요. 아무렴."
겨우 섞어 쓴 존댓말에는 존경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비웃음을 참기라도 하는 듯이 올라간 입꼬리는 내려 갈 줄 모르고. 평소에도 저랬던 것인지. 아니, 그것은 아니지만. 과거의 편린. 예전의 그를 알고 있었더라면 익숙할지도 모르는 모습
"솔직히 은호나 누리, 불여시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관심 없어. 원래대로라면 남남으로 전혀 간섭할 이유는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누리를 불여시 당신에게 주면 되는 걸까?"
세설은 벌벌 떨리는 어깨를 뒤에서 감싸 쥐었다.
"...라고 할 것 같아? 유감스럽게도. 누리를 넘겨주면 은호가 제정신으로 있을 것 같진 않거든... 게다가 적에게 지금 당장 불리하답시고 중요한 전력을 넘겨주는 것 만큼 멍청한 짓은 없지. 그래서, 넘겨주면? 라온하제를 망가뜨리기라도 할건가? ...유감스럽게도 난 이 평화가 마냥 싫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눈을 감고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채로 중얼거리다가, 갑자기 얼굴에 모든 표정을 지워낸다. 방금까지 적호의 앞에서 지껄이던 이는 어째서인지 적호의 뒤로 월도를 들고 달려들고 있었다.
자신의 뒤로 공격하려고 하는 세설을 아주 가볍게 손으로 붙잡으면서 적호는 피식 웃어보였다. 모두의 말을 분명히 들엇지만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것일까. 그는 아사, 리스, 세설을 번갈아바라보면서 세설의 목을 잡고 강하게 조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리스를 바라보면서 비웃는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약한 이들은 언제나 그렇게 감정에 호소하지. 하지만 결국 정해진 운명은 벗어날 수 없지. 약한 자는 강한자에게 속박당하고, 강한 자에게 대항하지 못하고 이 연약한 까치처럼 결국 주제를 모르고 덤비다가 목숨을 잃게 되는 법이다. 고위신이건, 그 밑의 신이건 결국 자신의 운명에선 벗어날 수 없어. 아무리 발버둥치고 저항하고 모른 척 한다고 해도 말이야."
이어 그는 세설을 바라보면서 피식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그 눈빛이 보통 차갑고 사악한 것이 아니었다. 그 사악한 눈빛은 정말로 얼음처럼 차갑고 날카로웠다.
"진심으로 나에게 덤벼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나? 설사 그 칼이 나에게 맞으면 내가 죽을 거라고 생각했나? 고위신을 너무 얕보는군. 네 녀석은 필요없어. 내가 볼일이 있는 것은 바로 이 늑대 나부랭이니까."
이어 그는 세설을 있는 힘껏 집어던져서 결계 안으로 넣어버렸다. 그리고 그는 누리를 바라보면서 이야기했다. 어느새 그의 손에는 축 늘어진 가온이 들려져 있었다.
"...죽음의 여우 누리. ...이 녀석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겠지? 이 녀석이 죽으면, 결계는 크게 약해지고, 내 힘이라면 그 결계를 깨버리는 것도 가능하다. ...그렇게 되면 이 땅은 어떻게 될 거라고 생각하나? 그리고 네 주변의 이들은 어떻게 될 거라고 생각하나?"
"......."
"...당장 기어나와라. 그렇다면 이 녀석은 돌려주마."
협박. 그것은 명백한 협박이었다. 그리고 누리는 그 협박을 들으며 고개를 아래로 푹 숙였다. 이어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응. 약한 애들이 살아남기 위해서 여러 방법을 발전시키기는 했지. 여우도 살아남기 위해서 땅을 파기도 했다잖아?"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에 고개를 기울입니다.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 별로 좋은 말은 아닌데.
"그렇네. 그렇게 따지면 지금 패잔병이 누리를 얻겠다고 떼쓰는 거잖아." 배신하고 죽었고, 부활했다는 건 네가 죽은 누리를 회수할 틈도 없이 패퇴했다는 거 아냐? 지킬 게 있어서 약한 은호에게 한 번 패퇴한 거잖아? 네 논리대로라면 은호에게 굴복하는 게 네 운명인 거잖아? 라고 말하기는 하지만. 약간 불안한 것은 있기는 합니다. 그걸 티내는 건 아니지만요. 그리고 세설이 던져지자 적당히 부축해주려고 시도합니다.
"그렇지만 네가 누리를 이용해서 라온하제에 안 쳐들어 올 거란 보장은 없잖아. 뭐 만화같은 데 나오는 것처럼 어기는 순간 꽥하는 맹세가 있고 그걸 해도 약한 이랑의 맹세는 쓸모 없다면서 부술 것 같지만." "네 논리대로라면 지금 부수냐 나중에 부수냐일 뿐이잖아?" 지금 가온을 죽인다는 협박을 듣고 툭 내뱉습니다. 물론 지금 방법이 없다는 것도 맞는 사실입니다.
세설 님께서 적호에게 공격을 하려 했지만 이내 그것은 가볍게 저지당해버렸다. 그리고 오히려 세설 님의 목을 잡고 강하게 조이기 시작하는 적호. 그 모습에 다시금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덜덜, 몸을 떨었다. '신' 님을...
이어서 자신을 비웃는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자신을 비웃는 것쯤이야 전혀 신경쓰이지 않았다. 그저, 세설 님을 풀어드려야 한다는 생각 뿐.
"정해진 운명이란 것은 있지 않아요! 그 운명에 대해서 거역하고 맞서싸우면서 바꿔나가는 거예요! 모두가 그렇게, 그렇게,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아가는 거예요...!"
절규에 가까운 처절한 목소리였다. 그래, 모두가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살아가고' 있었다. 자신 역시도 그러했다. '살아가려고' 하고 있었다. 죽음이 다시금 손짓해왔다. 세차게 고개를 도리도리, 내저었다. 아직, 안 돼요...!
이내 세설 님께서 결계 안으로 집어던져지자 황급히 세설 님의 이름을 외치며 그 쪽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무릎을 땅에 꿇은 채 세설 님께 괜찮으신지를 묻다가, 적호의 손에 축 늘어진 가온 님이 들려지자 고개를 돌려 가온 님을 바라보았다. 적호의 협박이 이어졌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쓸모 없는 자신의 모습이 한심했다. 쓸데없는 존재. 아랫입술을 꽈악 깨물었다. 꽈악 주먹 쥔 두 손 역시도 작게 떨려왔다. ...제가 만약 '신' 님이었다면. 강력한 '신' 님이었다면. 저의 '신' 님이었다면. 저는 뭔가를 할 수 있었을까요...?
누리 님께서 사죄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고개를 돌려 누리 님을 바라보았다.
"...누리 님, 안 돼요. 지금 나가신다면 누리 님께서도 분명 위험해지실 거예요. 지금은, 지금은..."
횡설수설, 가온 님께서 힘없이 늘어져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두 눈을 꽈악 감고 몸을 잔뜩 웅크렸다. 구슬을 희미하게 빛내기 시작했다. 그대로 은호 님과 백호 님께 텔레파시를 보내려고 했다.
...제발, 제발, 저희를 도와주세요, '신' 님...!
만약, 닿지 않는다면. 그 때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적호를 올려다보았다. 아니, 노려보았다. ......'신' 님을 거역하여 맞서싸우는, 돌이킬 수 없이 크나큰 죄를 저지르리라.
...아무도 내보내거나 죽게 하지 않을 거예요. 처음으로 분노의 감정이 두 눈동자에 굳게 실려있었다.
"......어차피 누리 님께서 나간다고 하시더라도 저희를 죽일 수 있다면 죽이실 생각이시잖아요? 그러니... 누리 님은 절대로 드릴 수 없어요. 어서 가온 님을 놓고 누리 님을 포기하세요, 당신."
부탁의 말이 사라졌다. 당연히 자신은 상대도 안 되겠지만, 그럼에도... '죽음'은 더이상 두렵지 않아요. '신' 님을 위한 죽음이라면, 기꺼이 각오하여.
목이 졸려져 차단된 공기가, 던져지는 것과 동시에 폐부를 때리듯이 들어온다. 바닥을 몇차례 구른 다음, 나무에 부딫쳐 겨우 멈춘 설은 곧바로 땅을 디디고 일어섰다. 숨을 거칠게 고르며 잇새로 새어나는 피를 닦아내고 있었다. 잠깐... 각혈이 나올만큼의 충격이 전해졌었나?
"지금보다 이성적일 때가 없지. ...내가 사는 곳이 위협받고 있는데."
정신없이 중얼거리다가 쓰러지려는 것을, 월도로 지지하여 방지한다. 한참이나 숨을 고르며 무언가에 거슬린 것인지, 고개를 들어 노려본다. 그 타이밍은 '운명은 정해져있다.'였지
"...하. 설마 그 소리를 네게 듣게 될 줄은 몰랐군. 맞아. 맞는 말이지. 그걸 실감하지 못할 만큼 세상물정을 모르는 멍청이는 아닌데, 지금 운명에 저항해봤자 개죽음이 뻔하잖아?"
허탈하게 웃음을 내며 중얼거린다. 하지만, 눈에 담긴 미묘한 살기는...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까.
"...하지만, 당신에게서 그 *같은 소리를 들으니까 더 *같이 마음에 들지 않는군. 그러니까... 멍청하게 덤빌거다."
그게 원래 내 방식이야. 다시 월도를 적호의 목을 향해 겨누었다. 승산따윈 없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저 은호가 올 때까지만 시간을 끈다면... 그때 누리의 목소리가 찌르듯이 들려온다. 그쪽으로 바라보는 것은 서리처럼 차가운 눈동자.
자신을 말리려고 하는 목소리가 누리의 귀에 들려왔다. 하지만, 누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고개를 푹 숙여 그 누구의 모습도 보는 일 없이 아래로 푹 숙여, 정말로 푹 숙여 혼잣말을 중얼거리듯 이야기했다.
"나는 처음부터 여기에 있으면 안되는 운명이었나봐. ...나는 정말로 엄마를 죽이기 위해서 태어난 존재가 맞으니까... 그리고 내가 가지 않으면... 정말로 가온이는 죽을지도 몰라. 그러니까..."
화를 내는 리스의 모습도, 그리고 조용히 자신에게 이야기하는 아사의 모습도, 정말로 차갑게 자신을 바라보는 세설의 모습도 모두 눈동자에 담으며 그녀는 앞으로 나아가려고 했다. 그 순간, 가온의 목소리가 조용히 들려왔다. 두 팔을 힘겹게 올려 그 발톱으로 적호의 피가 흐르는 팔에 발톱을 박아넣으려고 하며 그는 이야기했다.
"...안...됩니다...누리...님... 저는...전...괜찮...으니..."
"......."
"아아아아악!!"
이어 가온의 비명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그의 목을 꽈악 조이면서 그는 그 모습을 확실하게 누리에게 보여주었고 누리는 크게 비명을 지르듯이 이야기했다.
"그만 둬! 갈게! 갈테니까!! 운명이라는 거 받아들일테니까...! 다시 죽음의 여우로서...살테니까...당신에게 갈테니까...제발..! 대신에... 이 땅을 건들지 말아줘! 여기 있는 이들도, 엄마도 건들지 말아줘!"
"은호는 모르겠다만 여기에 있는 이 하등한 녀석들에겐 관심없어. 내가 굳이 파괴를 한다고 한다면... 은호의 은혜가 내려진 마을, 호은골 밖에 없으니 말이지. 하지만... 그것도 조금 생각해볼 수도 있어. 자...와라..."
누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곧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숙이고, 모두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작게 중얼거렸다. 뒤이어 누리는 노래를 시작했다. 그것은 참으로 곱고 아련하고, 안타까운 목소리였다. 참으로 비탄적이고, 슬픈 멜로디가 이어지고 그 노래는 주변을 감싸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였다. 모두의 몸에서 무언가가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점 몸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어지러워지는 순간 속에서 정신은 점점 혼미해졌다. 기운이 빠지고 기력이 점점 빠지기 시작했다. 일어서기도 힘들고, 초점이 흐려지는 그 상황속에서 버틸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 그 모습을 바라보며 적호는 피식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그것이 바로 죽음의 여우로서 가지게 된 고위 능력. 생명력의 컨트롤이다. ...생명력을 빼앗아서 기절시키는 것도 가능하고, 그대로 목숨을 뺏는 것도 가능하지. 생명력을 누구에게 부여할 수도 있고... 이제 알겠나? 그런 힘을 아직 가지고 있는 것 자체가...이미, 내 피조물인 누리의 운명은 정해져있다는 것이다. 분수에 맞지 않게 평화를 누려? ...웃기지 마라. 죽음의 여우로서, 그 재앙의 힘을 마음껏 이용해주마."
ㅡ...미안해...
그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모두의 시선은 꺼졌다. 지친 숨소리만이 그 안에서 조용히 울릴 뿐이었다.
//반응레스를 받겠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일단 빠르게 진행을 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남은 분량은 내일 하도록 하겠습니다!! 모두들 수고하셨습니다! 반응 레스를 올리고 쉬시면 되겠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누리 님. 그렇게 정해져있는 운명은 없어요. 설령 그렇게 정해져있다고 하더라도 누리 님께서는 그것을 이행하지 않고 저항해 오셨으니까, 그러니까..."
드물게 곧바로 튀어나오던 말은 누리 님께서 그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자 그대로 멈춰져버렸다. 놀란 듯 동그랗게 커진 두 눈동자로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누리 님을 막으러 가려던 찰나, 가온 님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보이는...
"...!!"
날카로운 발톱과 피. 그리고 이어지는 비명 소리. 그 모든 것에, 두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려왔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황급히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두 눈을 꽈악 감아버렸다. 귀가 찢어질 것만 같았다. 아니, 마음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찢어지는 것은 어느 쪽이었을까. 흐윽, 애써 숨을 들이켰다.
"...누리... 님..."
힘겹게 고개를 들고 누리 님의 이름을 불렀다. 가면 안 된다는 메시지를 담아. 하지만 누리 님께서는 다시금 미안하다는 말을 작게 중얼거리더니, 그대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고우면서도 아련하고 슬픈 멜로디.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자신들의 몸에서 뭔가가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몸이 힘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동시에, 정신 역시도 혼미해져가기 시작했다. 낯설지 않은 익숙한 감각. 이... 것은... 하나밖에 없는 시야 역시도 점차 흐려져가기 시작했다. 존재가 희미하게 지워져가기 시작했다. 서있기조차 힘겨운 감각. 자신도 모르게 털썩, 두 무릎을 꿇고 주저앉아버렸다. 그리고 옆으로 넘어지듯 쿵, 하고 쓰러져버렸다. 흐릿해진 시야와 정신 속, 들려오는 적호의 비웃음. 그리고... 가장 마지막으로 보인 누리 님의 모습과 목소리.
죽음이 선명해졌다. 존재는 희미해졌다.
...라온하제. 즐거운 내일은 잠들어버렸다. 행복은 잠들어버렸다. 어쩌면, 다시는 깰 수 없을 깊은 잠 속으로. 마침내 희미한 시각마저 꺼져버렸다. 온 몸에 힘이 빠져나갔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는 누리 님을 믿어요. '신' 님을 향한 신뢰만큼은 결코 꺼지지 않았다. '신' 님께 삶을 받았다면, 죽음 역시도 '신' 님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