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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마지막 주. 그러니까, 10월 31일. ...할로윈 씨가 찾아왔어요.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 때가 찾아왔다. 가온 님의 설명을 듣고, 령 님과 약속을 하고, 이 날만을 얼마나 손꼽아 기다렸던가. 정말로 집에서 매일 밤마다 손가락을 하나하나 접어가며 할로윈을 기다려온 자신이었다. 분장을 한 인간들과 사탕과 초콜릿. 그 모든 것들에 대한 기대를 품고 자신 역시도 손수 분장을 조금씩 준비해왔을 정도로.
그리고 드디어 그 분장을 선보이며 할로윈을 즐길 수 있도록 허락된 오늘. 령 님과의 약속에 늦지 않으려, 일부러 더욱 일찍 집을 나서 나름대로 발걸음을 재촉하여 다솜에 있는 결계 부근으로 향했다. 인간세계로 내려가려면 라온하제의 이 결계를 통과해야만 했으니.
자신의 분장은 다름 아닌 유령. 낡디 낡은 하얀 천에 두 눈구멍 정도만 뽕뽕 뚫어 시야만 대충 확보한 뒤 그것을 뒤집어 쓰는 것으로 분장은 끝나버렸다. 어떤 분장을 해야하는지 잘 알지 못 했던 자신이 생각해낼 수 있었던 최대한의 분장이 이것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나름대로 만족스럽게 뿌듯한 미소를 희미하게 흘렸다. 물론 천에 가려져 그 미소는 보이지 않았겠지만.
...두 눈구멍을 뚫을 필요는 없었을까요? 어차피 자신의 시야는 하나 뿐이었으니. ...하지만...
아무튼 그렇게 인간으로 변하여 날개와 꼬리가 사라졌다는 것을 제외하면 평소와 같이 맨발에 발찌를 찬 모습이었다. 물론 할로윈이니만큼 흰 색 천을 뒤집어 쓰고 흰 색 천을 덮은 두 손으로 진짜 호박을 파내어 만든 작은 바구니를 들고는 있었지만. 그렇게 할로윈의 모습으로 가만히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면서 조용히 령 님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다리에 희미한 잔상처들이 드러나는 건 조금 신경 쓰였지만... 그럼에도.
/ 으아아... 늦어서 죄송합니다, 령주...!ㅠㅠㅠ 이해가 어려우실까봐 참고 이미지를 대충 그려보느라...ㅠㅠㅠ
준비 완료. 령은 전신거울에 제 모습을 비춰보며 완벽한지 다시 한 번 살펴보았다. 검은 벨벳으로 이뤄진 고딕풍의 원피스, 그리고 온 몸을 감싸는 로브와 거대한 대낫까지. 완벽한 사신의 모습이었다. 여기에 잭 오 랜턴 모양의 바구니까지 들면 할로윈을 즐기기엔 이만한 복장이 없었다. 령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됐다. 충분하다. 이제 나가도록 하자.
또각또각 소리가 들려왔다. 하이힐이 향하는 방향은 라온하제와 인간계의 경계선이었다. 약속 장소에서 리스가 기다리고 있을까? 아니면 아직 아무도 오지 않았을까? 령은 그것이 궁금했지만 아직 약속 장소에 도달하지 않았기에 참기로 하였다. 제가 알 수 있는 일도 아니었고.
그러고보니 날개를 없애지 않았다.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군. 뭐 오늘같은 날이라면 인간들도 날개를 보고 분장이려니 하겠지만. 령은 날개를 없애고 완벽하게 인간으로 변장했다. 되었다. 이 정도라면 사신으로 분장한 인간으로 보이겠지. 령은 만족한 듯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할로윈 분장을 생각하느라 얼마나 고심했는지 모른다. 천사, 유령, 강시 등등을 생각해봤지만 다 저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 결과 사신 복장을 택했지. 그리고 이 복장은 자신과 썩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아, 다솜과 인간계 사이의 경계선이 보인다. 령은 걷는 속력을 더 높였다. 하이힐의 또각또각 소리가 더욱 진하게 들렸다. 아마 지금 령의 마음은 잔뜩 신이 나있겠지. 혹은 긴장하고 있거나. 령은 약속 장소에 나온 리스를 보았다. 리스는 천 하나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유령 분장이구나. 귀여워라. 령은 리스의 분장을 보고 감탄을 했다. 그녀의 분장은 꽤나 잘 어울렸다.
"리스!"
령은 리스를 불렀다. 또각또각 소리가 멎어들었다. 령은 리스의 앞에 섰다. 가까이서 보니 리스의 분장은 더욱 근사했다. 비록 리스의 표정을 볼 수 없는 게 아쉬웠지만. 령은 리스의 앞에 서 미소를 지었다.
너무 들떴기 때문일까? 생각보다도 훨씬 더 빠르게 약속장소에 도착해버렸다. 물론 시간의 흐름은 이제 더이상 자신에게 있어서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게 되었지만... 그래도, 역시... ...빨리 령 님과 같이 즐겨보고 싶어요. 할로윈 씨. 무려 '신' 님과 함께 하는 할로윈 씨.
꼼지락꼼지락, 작게 움직여지는 손가락이 묘하게 설레는 마음을 담아내는 듯 했다. 그렇게 얼마나 다솜의 경계 부근에서 령 님을 기다렸을까. 이내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에, 한 박자 늦게 "...아." 하는 소리를 내며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고 있던 고개를 느릿하게 돌렸다. 그러자 자신의 눈에 들어오는 령 님의 모습.
또각또각, 익숙한 걸음걸이 소리가 멎어들자 자신의 앞에는 령 님이 서있게 되었다. 아름다운 검은색으로 둘러싸인 령 님이. 검은 벨벳으로 이루어진 고딕풍의 원피스와 로브을 입고 거대한 대낫과 호박 모양 바구니를 들고있는 령 님은 무척이나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그 아름다움에 순간 넋을 잃어버린 채 멍하니 올려다볼 정도로.
...령 님께서는... 사신 씨이실까요? 정말로 아름다워요...! 순수한 감탄과 존경심이 멍한 두 눈동자 속에 반짝반짝이기 시작했다. 그러다 령 님께서 미소를 지으며 먼저 자신의 분장을 칭찬해주시자, 한 박자 늦게 반응이 튀어나왔다.
분장이 우아하다라... 령은 저를 칭찬하는 모습에 눈을 휘어 웃고는 리스를 바라보았다. 온통 검은색 일색인 제 복장은 평소와 다를 게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스는 자신의 복장을 칭찬해주었다. 령은 그게 기뻤다. 구름 위를 나는 듯 했다.
령은 호박 바구니를 들고 리스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보니 둘 다 호박모양 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물론 저쪽은 모조품이 아닌, 진짜 호박을 쓴 것 같지만. 령은 신기하다는 듯 둘의 바구니를 바라보았다. 비교를 하기 위함인 듯 하다.
"신기하네요. 리스와 저의 바구니 모두 호박 모양을 띄고 있네요."
분장은 흑과 백으로 색이 정반대인데 바구니만은 같다니... 통일감을 줄 수 있어서 좋겠다. 령은 둘의 바구니가 같은 걸 보고 흡족하게 웃은 뒤 리스에게 손을 내밀었다. 슬슬 가볼까요? 라고 말하는 표정은 기대감에 잔뜩 차있었지.
"저도 'Trick or Treat'가 기대되네요. 인간들이 그런 걸 많이 한다고 들었거든요."
본 적도 몇 번 있다만 직접 참가하진 않았었다. 령은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리스와 함께 경계를 나섰다. 여기서부터는 인간들의 마을이었지. 그들은 어떻게 하고 있으려나? 축제를 준비하고 있을까? 혹은 저와 리스처럼 여러가지 색으로 꾸미고 나왔나? 령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여러모로 기대되는 날이었다.
"그러고보니 리스는 할로윈을 즐기는 게 처음인가요?"
령이 리스에게 질문하였다. 자신은... 어디보자. 할로윈을 즐긴 적은 없었지. 축제로 북새통을 이루는 건 자주 보았지만 제가 그 주체가 된 적은 없었다. 같이 즐길 사람이 없기도 했고. 이번에는 어떠려나? 령은 그 생각을 하며 정면을 바라보았다.
...아, 령 님께서 웃고 계세요. 자신의 칭찬에 보여지는 령 님의 눈웃음에, 잠시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물론 그것도 잠시, 이내 '신' 님께서 기뻐하신다는 사실에 덩달아 행복함을 느껴 마찬가지로 두 눈동자를 부드러이 접어 웃어보였지만.
령 님께서는 이내 둘 다 공통적으로 손에 들고 있는 호박 바구니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신기한 듯한 령 님의 목소리에, 멍하던 눈매가 순간 동그랗게, 크게 뜨여졌다.
"...와아... 정말이네요...! 같은 바구니 씨예요, 령 님...! ...령 님과 같은 바구니여서 영광이예요."
그 작은 사실 하나만으로도 자신의 마음은 순수하게 기쁨으로 가득 찼다. 헤실헤실, 두 눈동자가 다시 부드럽게 접혀졌다. 검정과 하양, 정반대의 색채 속에서 같은 하나의 색. 그와 비슷한 자신의 눈동자를 느릿하게 깜빡이면서 이내 자신에게 내밀어진 령 님의 손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제가 감히 '신' 님의 손을 잡아도 될까요...? 그런 무례를 범해도 괜찮을까요...? 자신의 '신' 님께 물어보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령 님께서 직접 저에게 손을 내밀어 주셨어요. 그렇다면 저는...
이내 느릿하게, 천천히 손을 뻗어 조심스럽게 령 님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올려놓았다. 굽힐듯, 말듯, 작은 손가락이 망설임을 담다가 이내 큰 용기를 내어 조심스럽게 살짝 굽혀졌다. 조금은 어정쩡한 모습으로. 하지만 그것 역시도 이내 할로윈에 대한 령 님과 자신의 기대감 가득한 마음에 파묻혀 희미해졌다.
"...네, 저는 할로윈 씨가 뭔지도 잘 몰랐거든요. 인간들 씨의 문화는 잘 몰라서... 이번에 새롭게 처음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꼭 즐겨보고 싶었어요."
령 님의 질문에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애초에 동물이었던 자신이 그것을 알고있었다면 그게 더 이상했겠지만. 한 팔로 품에 끌어안은 바구니를 조금 더 꼬옥 끌어안으면서 령 님께 똑같은 질문을 조심스럽게 드려보았다.
리스가 웃는 모습은 매번 보긴 했지만 이정도로 환하게 웃는 건 처음 보았기에 령은 잠시동안 놀란 상태로 굳어 있었다. 그도 잠시, 령은 다시금 눈을 휘어보이며 리스의 웃음에 화답하듯 웃어보였다. 리스는 지금 기분이 좋구나. 령은 새삼 자신의 제안에 뿌듯함을 느꼈다.
같은 바구니여서 영광이라는 말에 령은 기분이 좋아졌다. 고작 바구니 하나 같은 거 들었다고 영광이라는 말까지 들어야 겠냐만은 저와 리스가 통했다는 게 중요한 거니까. 령은 리스의 말에 미미한 미소를 띄고 제 바구니를 들어보였다.
"저도 영광이랍니다, 리스."
령은 리스의 말에 조곤조곤 대답하고는 멍하니 손을 바라보는 리스를 바라보았다. 제가 너무 성급하게 손을 올렸던 걸까? 그 생각을 나타내듯 리스에게로 내밀어진 손이 순간 멈칫했다.
아, 리스가 손을 내밀었다. 령은 제게 느껴지는 온기에 입꼬리를 올리며 리스의 손을 꼬옥 잡았다. 저보다 작은 손인만큼 꽉 잡는 건 쉬운 일이었다. 령은 리스의 손이 따뜻하다는 걸 알았다. 이렇게나 따뜻한 손을 가졌구나, 리스는. 령은 새삼 마음이 훈훈해짐을 느꼈다.
"그랬군요. 저도 알게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답니다. 그래서 기대가 커요."
제가 할로윈 문화를 알게된 건 약 10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령은 검은 눈을 깜박였다. 그러고보니 저는 축제를 즐기는 타입이 아니었지. 이번이 처음이었던가? 처음치고는 나쁘지 않다. 그리 생각했을 때 리스의 질문이 들려왔다. 령은 시선을 리스에게로 향하고는 빙그레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