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트 스레 주소 - http://bbs.tunaground.net/trace.php/situplay/1533308414/recent ☆위키 주소 - http://threadiki.80port.net/wiki/wiki.php/%EC%B6%95%EB%B3%B5%EC%9D%98%20%EB%95%85%2C%20%EB%9D%BC%EC%98%A8%ED%95%98%EC%A0%9C ☆웹박수 주소 - https://docs.google.com/forms/d/e/1FAIpQLScur2qMIrSuBL0kmH3mNgfgEiqH7KGsgRP70XXCRXFEZlrXbg/viewform ☆축복의 땅, 라온하제를 즐기기 위한 아주 간단한 규칙 - http://threadiki.80port.net/wiki/wiki.php/%EC%B6%95%EB%B3%B5%EC%9D%98%20%EB%95%85%2C%20%EB%9D%BC%EC%98%A8%ED%95%98%EC%A0%9C#s-4
아마 관리자들 중에 가장 업무강도가 강했던 신은 가온이였을 것이다. 비나리의 관리는 물론이요, 누리의 호위 임무도, 게다가 은호의 지시로 매번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으니 그가 하는 고생은 보이는 것보다 더 했으면 했을 것이다. ...그런 것을 떠나서 별 불만은 없어 보였지만. 본인이 만족하면 된거겠지. 더 커다랗던 귀찮음을 속에 묻어둔채로, 합리화를 하며 누리에게 말한다.
누리가 인사를 하자 알바생은 기쁜 듯 꼬리를 가볍게 살랑거린다. 영광이라는 듯이 빈 테이블로 향하는 누리를 종종 따라가며.
"앗! 그러니까 그러니까... 제 이름은 이슬비에요. 이 곳에서 알바생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으음, 음... 무언가 목적이 있다기 보다는, 라온하제가 제 고향이나 마찬가지이니까요? 장차 이곳을 통치하실 분인데, 만나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한거예요!" "하아... 팬심도 나쁘지 않은데, 슬슬 본업으로 들어가야 하지 않겠어?" "예이 예~ 알게뜜늬다. 줨좡님~ 카페에서 가장 단 것이요? 휘핑듬뿍 올려드리고 자바칩도 듬뿍 갈아드리겠습니다! 앗 시럽도 많이 뿌려드릴게요!"
일부러라는 듯이 혀를 꼬며 사장을 약올리는 듯 하면서도, 손님에게는 나름대로 정중한 태도였다. 약간 촐랑거리며 신나게 음료를 제조하는 바쪽으로 가는 알바생에게 회의감 가득한 시선이 간다.
"...아, 저 과자들. 할로윈이잖아. 나눠줄 건 아니고... 팔려고. 적어도 챙기는 쪽에서는 많이 사가니까."
거의 내팽겨진 포장 사탕 하나를 집어들었다. 맛 좀 봐도 좋아. 난 단내를 많이 맡아서 잘 구별이 안되더라.
"이슬비? 귀여운 이름이구나. 이곳 알바생이라는 것은 여기서 일한다는 거지? 고생이 많을 것 같아. 이런 카페에서 일을 하면 꽤 힘들잖아? 이런 일, 저런 일 하면서 말이야. 아. 그리고 그냥 나오던 식으로 해도 괜찮아. 특별히 더 신경 쓰는 것은 오히려 부담스러우니까."
아무리 그래도 일부로 더 많이 해주고 그러면 보통 부담스러운 것이 아닌걸. 물론 500년 뒤에는 내가 이곳을 지배하게 되겠지만, 그래도 그 이전까지 나는 아직 배울 것이 많은 어린 신일 뿐이니까. 태어난지 1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그냥 고위신이라는 것 이외에는 특별히 무언가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래도 일단 준다고 하는 것은 고맙게 받기로 했다.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뒤이어 과자에 대한 설명에 나는 귀를 기울였다. 그러고 보니 슬슬 할로윈이구나. 인간계에서 하는 재밌는 행사. 올해도 구경을 갈 지 생각만 하고 있다. 일단 그건 시간이 되어봐야 아는 거니까. 아무튼 나는 맛을 봐도 좋다는 그 말에 조심스럽게 받아들고 킁킁 냄새를 맡았다. 달콤한 것이 꽤 맛이 좋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나는 설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그래도 파는 상품을 공짜로 받을 순 없어. 이건 얼마야? 음. 이 정도면 돼?"
이어 나는 내 신통술을 사용해서 지갑을 꺼낸 후에, 그 안에서 지폐를 한 장 꺼내들었다. 인간계로 치자면 5000원 정도의 가치. 이 정도면 충분히 값이 되지 않을까 싶어 나는 설에게 그것을 내밀었다.
"엄청 힘들어요! 청소도 힘들게 가게에 뭔 물건들을 이렇게 쌓아두고, 점장님은 양심도 없는 건지 막 부려먹고 있지~" "...이슬비."
아니나 다를까였지. 기다렸다는 듯이 누리에게 점장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는 알바생이였다. 대놓고 앞담화를 하는 알바생이라... 뭐라 변명하기도 귀찮은지 피곤한 표정으로 알바생을 째려볼 뿐인 점장이였다.
"앗... 그러면 평소에 하던대로... 그, 그래도 맛있을 거에요! 제가 한 거니까!"
잠시 시무룩-귀랑 꼬리가 축 처졌다-해지려 하다가도 금세 회복인 것인지. 신나게 고양이 특유의 가벼운 스텝으로 바 안을 바지런히 돌아다닌다. 아마도 음료는 금방 나올듯 했지. 촐랑거리는 듯한 알바생은 저래뵈어도 20년 경력의 바리스타였다. ...뻑하면 100년 경력 200년 경력이 나오는 신들에게 그 얇은 기간이 무슨 소용이 있었겠냐만.
이어 지갑을 꺼내 사탕의 값을 치루려는 누리를 특유의 무심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태어난지 겨우 1년 된 신 치고는 경제관념이 잘 교육된 모양이였다. 그래서, 그게 누구 덕인지는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점장은 조용조용한 울림의 목소리로 대꾸한다.
"음료값만 받을게. 아직 정식으로 파는 것도 아니고... 시식을 맡기고 평가를 받으려고 하는 것이니. 이왕이면 다른 것도 종류별로 시식해줬으면 하고. 그래. 그정도면 충분해."
"정식으로 파는 것이 아니면 돈을 안 내도 되는 거야? 물론 그럴수도 있겠지만... 나에게 평가를 맡기는 것보다는 가온이나 다른 이에게 평가를 부탁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난 달콤한 것은 어지간하면 다 좋아하는데?"
종류별로 시식이라니. 그냥 놀러왔다가 생각보다 엄청난 일을 하게 된 것 같아서 놀라는 표정으로 설이를 바라보았다. 왜 이런 것을 나에게 시키는 거야? 고위신은 이런 것도 해야 해? 라온하제를 지배하기로 한 신은 이런 것도 해야하는 거야? 하지만 이런 것도 즐거운 내일을 위해서... 일지도 모르겠고... 일단 생각을 하며, 나는 테이블 위에 올려진 쿠키와 사탕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중 하나를 지어서 입에 쏘옥 집어넣고 우물우물 씹었다. 절로 퍼지는 쿠키의 향과 달콤함에 내 꼬리는 살랑살랑 흔들렸고 나는 설이를 바라보며 해맑게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응! 맛있어! 이건 누가 만든 거야? 상당히 달콤하고 맛이 좋은 것 같아. 부드럽기도 부드럽고!"
전문적인 평을 하라고 해도, 난 요리에 대해서 어떻게 평을 해야 할지 모르는걸. 백호 언니라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아무튼 맛있으니까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다시 쿠키를 하나 먹으면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아사: 293 자주 짓는 표정 무표정을 표정으로 친다면 그거요. 016 방 가구들의 색깔, 방의 주 컬러 고급지고 깔끔한 모노톤. 포인트 컬러는 약간 금빛 계열입니다. 250 배는 얼마나 자주 고픈가요? 대부분의 새들이 그렇듯 적게 많이 먹는 타입이라 하루에 여섯 번쯤? 다만 그 여섯 번을 다 채워 먹지만 보통 사람이 하루에 세 끼 먹는 거의 반도 안 될 것 같습니다? https://kr.shindanmaker.com/646172
"더 정확한 평을 듣고 싶으면 백호 언니를 불러. 그 언니라면 진짜 세심하게 맛 잘 보니까."
먹을 것을 정말 좋아하기도 하고, 실제로 평가도 잘하기도 하고...그 언니의 수첩에는 음식에 대한 평가가 빼곡하게 적혀있다는 것은 일단 언니를 위해서 비밀로 하기로 했다. 아무튼 내놓을 수준은 될 것 같다는 그 말에 나는 고개를 조용히 끄덕였다. 나중에 정식으로 팔면 엄마나 백호 언니, 그리고 가온이에게 갖다줄까? 그렇게 생각을 하기도 하며 나는 설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카페를 시작한 이유에 대해서 말을 해야 되냐는 설이의 물음에는 나는 잠시 설이를 바라보다가 이야기했다.
"말하고 싶지 않으면 그래도 상관없어. 신이건 인간이건 얘기하고 싶지 않은 것은 있으니까. 묻는 것에 대해서 대답을 하건 말건 그건 설이가 알아서 할 일인걸. 물론 꼭 대답해야 할 것에 대해서는 대답을 해야겠지만...카페는 아무래도 좋잖아?"
나의 생각을 조용히 이야기한 후에 나는 가만히 설이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이상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곧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이야기했다.
"결론은 그거야. 말하고 싶지 않으면 그걸로도 좋아. 난 딱히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것을 묻고 싶지 않으니까. 그건 나도 매한가지고."
첫 등장이 요리대회 심사위원이였으니,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었을 것이다.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주인이 그리 옅게 중얼거린 듯 했다.
담담히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있는 누리를 바라보던 세설은, 의미 모를 한숨을 내쉬었다. 여태껏 딱딱히 서 있기만 하다가 근처에 있던 의자를 끌어다가 걸터 앉았다.
"하아... 그닥 흥미로운 이야기는 아니니까... 최소한 물어본 이에 대해 무례가 되지 않는 선까지만 답하자면, 원래 카페를 할 생각은 없었어. 여기는... 그냥 온전한 내 공간이길 원했으니."
말이 끝나자마자, 고민을 하는 듯 설의 눈이 허공을 향하고 있었다. 누리는 아마 눈치챘을 것이다. 뒤에 무언가 문장이 이어지려다 어색하게 그만두었다는 것. 결국 카페를 하는 이유에 대한 것은, 말 하지 못한채 입을 다물어버렸다. 그 세설이 외로움이나 고독따위를 느꼈다고? 하하하 설마...
잠시간의 침묵이 이어졌다. 원체 말 수가 적었던 주인이니 만큼, 먼저 대화의 주제를 꺼낼 생각은 없었던 모양이다. 그 와중에 음료가 완성이 되었는지 알바생이 잔을 들고 온다.
"자바칩 프라프치노에요! 토핑이랑 휘핑크림도 가득 올렸고, 앗 시럽은 추가로 펌핑해도 좋아요!"
과연, 가장 단 것이라는 포스를 내며 산처럼 쌓여있는 휘핑크림이였다. 방금 전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 모른 채 알바생은 그저 밝ㅇㄷㄴ 미소를 짓고 누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카페를 할 생각이 없었고, 온전한 자신의 공간? ...간단하게 집이길 바랬다는거구나. 프라이버시."
그러면 왜 굳이 카페를 시작한 것일까?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결국 카페를 한 것도 자신의 선택이잖아? 그런데 왜? 뭔가 이유가 있을까? 하지만 말하기 싫다면 나도 굳이 물을 생각은 없었다. 그런 것은 즐거운 내일이 아니니까. 그리고 사실 그것보다 지금 막 내가 주문한 음료가 나왔으니까. 나는 그 프라프치노라는 음료를 바라보면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뭔가 이것저것 가득 올라가있고 향기도 정말 달콤해서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이게 평소대로 나오는 거야? 아무튼 고마워! 잘 먹을게!"
이어 나는 조심스럽게 그 음료를 한 모금 마셨다. 입 안 가득 녹아내리는 그 맛을 음미하면서 나는 꼬리를 바짝 세워 천천히 양옆으로 천천히 흔들었다.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으면 나오는 버릇 중 하나였다.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기분이 좋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준 후에 나는 슬비를 바라보면서 웃으며 말했다.
엄마의 한 마디를 듣고 나서야 나는 할로윈이 바로 코앞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설이네 카페에서도 비슷한 말을 나눴던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할로윈이 찾아온 것 자체에 대해서는 상당히 기분이 좋아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렸다. 할로윈에는 달콤한 것이 많으니까. 나도 비록 작년밖에는 체험하지 못했지만 그 날은 사탕도, 초콜릿도 가득하고, 재밌게 분장한 이들도 엄청나게 많다. 드라큘라? 유령? 프랑켄슈타인? 아무튼 그런 느낌으로 변장한 인간들도 매우 많으니까.
"엄마. 올해는 우리들도 할로윈을 즐겨보는 것이 어때?"
"할로윈을 말이더냐? 인간계에 내려가서 즐기는 것도 좋을지도 모르지만 가끔은 그런 것도 나쁘지 않겠구나. 좋다. 가온이에에게 말해보겠느니라."
"응! 고마워! 엄마!"
하지만 가온이 혼자서 일을 하기엔 역시 너무 바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 나는 조금 있다가 가온이와 같이 일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아무리 그래도 가온이 혼자서 라온하제 전체를 할로윈 분위기로 꾸밀 순 없을테니까. 우선 관리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천천히 할로윈 분위기로 만들어도 무방하지 않을까?
아무튼 올해 할로윈은 어떤 분위기가 될지 너무 기대가 되어 나도 모르게 계속해서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렸다. 사탕도, 초콜릿도, 분장도 많을 즐거운 할로윈. 호은골에 내려가서 즐겨보는 것도 좋을 것 같고 여기서 즐기는 것도 좋을지도 모르잖아?
어찌되었건... 이 또한 즐거운 내일을 만드는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가 되지 않을까... 그런 기대가 되었다.
//이벤트 프롤로그를 올리면서 스레주가 갱신합니다! 본 이벤트는 AU 이벤트 대신 하는 것으로서 내일부터 다음주 토요일까지 쭈욱 이어지는 일상형 이벤트입니다!!
"... 역시 정량보다 더 많이 나왔잖아. 이슬비." "아니거든요...?! 양은 원래 이정도 나오는데...?"
아무리 봐도 평소보다 많이 나온 것을 인정하지 못한다. 심지어는 휘핑의 산이 간신히 옆으로 쓰러지지 않으며 컵에 넘칠락 말락 했었는데!! 이걸 쟁반 위에 한방울 흘리지 않고 가져온 것도 나름대로 경력이라 할 수 있는걸까...
그래도 누리에게 받은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 듯이 짙은 회색의 꼬리를 좌우로 휙휙 살랑거리며 싱그러운 느낌의 초록색의 눈을 가볍게 접는다. 그러고보니 평소에는 조금 어리숙해보일지언정, 서글서글 하고 친근한 인상은 항시 벌레 씹은(...) 표정인 주인보다는 훨씬 낫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우왓... 은호님도 이곳에 오신다고요...? 저...저... 영광일지도!!" "...쯧. 별로 내키는 소리는 아니네."
역시 이 둘, 상극이다. 용케 점장과 알바생 관계를 이어왔구나 싶을 정도로. 주인은 그리 말을 내뱉고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 그리고, 누리와 알바생이 뭐라 말을 꺼내기 전에, 바로 무어라 말한다. 방금 자신의 말을 정정하려는 듯이.
>>379 저도 못 하니까 괜찮아요, 아사주...!(토닥토닥) 전 실력도 안 되는데 함부로 여러분들의 멋쁜 캐릭터를 그리면 안 될 것 같기도 하고...ㅋㅋㅋㅋ(시선회피) 그나저나 아사주 고양이 귀여워요!ㅋㅋㅋㅋ XD 삐용삐용도 귀엽게 하실 수 있을 것 같은걸요!ㅎㅎㅎ(쓰담쓰담 시도)(안됨)
령: 088 책상위에 꼭 있는 물건 검은 깃털 조각이요. 214 캐릭터의 최후를 묘사한다면 령은 쿨럭이며 핏물을 토해냈다. 검은 제 옷에 묻은 핏물은 티가 나지 않았다. 마치 죽어가는 걸 감추는 저와도 같았다. 령은 스르르 눈을 감았다. 아아, 이대로 죽는구나. 라온하제에서 아직 못다한 것이 많은데... 령은 그 말을 끝으로 의식이 점멸되었다. 덧없는 죽음이었다. 146 놀랐을 때의 반응은? 눈만 크게 뜹니다.
"어린아이가 달려온다면?" 령: 무슨 일이니? 꼬마야. 하고 물어본 다음 안아줄거야.
"당장 무기 내려 놔." 령: 알겠어.
"그 머리 모양은 어떻게 한 거야?" 령: 이거? 그냥 옆머리만 좀 잘라주고 뒷머리는 그대로 길렀지.
10월의 마지막 주. 그러니까, 10월 31일. ...할로윈 씨가 찾아왔어요.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 때가 찾아왔다. 가온 님의 설명을 듣고, 령 님과 약속을 하고, 이 날만을 얼마나 손꼽아 기다렸던가. 정말로 집에서 매일 밤마다 손가락을 하나하나 접어가며 할로윈을 기다려온 자신이었다. 분장을 한 인간들과 사탕과 초콜릿. 그 모든 것들에 대한 기대를 품고 자신 역시도 손수 분장을 조금씩 준비해왔을 정도로.
그리고 드디어 그 분장을 선보이며 할로윈을 즐길 수 있도록 허락된 오늘. 령 님과의 약속에 늦지 않으려, 일부러 더욱 일찍 집을 나서 나름대로 발걸음을 재촉하여 다솜에 있는 결계 부근으로 향했다. 인간세계로 내려가려면 라온하제의 이 결계를 통과해야만 했으니.
자신의 분장은 다름 아닌 유령. 낡디 낡은 하얀 천에 두 눈구멍 정도만 뽕뽕 뚫어 시야만 대충 확보한 뒤 그것을 뒤집어 쓰는 것으로 분장은 끝나버렸다. 어떤 분장을 해야하는지 잘 알지 못 했던 자신이 생각해낼 수 있었던 최대한의 분장이 이것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나름대로 만족스럽게 뿌듯한 미소를 희미하게 흘렸다. 물론 천에 가려져 그 미소는 보이지 않았겠지만.
...두 눈구멍을 뚫을 필요는 없었을까요? 어차피 자신의 시야는 하나 뿐이었으니. ...하지만...
아무튼 그렇게 인간으로 변하여 날개와 꼬리가 사라졌다는 것을 제외하면 평소와 같이 맨발에 발찌를 찬 모습이었다. 물론 할로윈이니만큼 흰 색 천을 뒤집어 쓰고 흰 색 천을 덮은 두 손으로 진짜 호박을 파내어 만든 작은 바구니를 들고는 있었지만. 그렇게 할로윈의 모습으로 가만히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면서 조용히 령 님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다리에 희미한 잔상처들이 드러나는 건 조금 신경 쓰였지만... 그럼에도.
/ 으아아... 늦어서 죄송합니다, 령주...!ㅠㅠㅠ 이해가 어려우실까봐 참고 이미지를 대충 그려보느라...ㅠㅠㅠ
준비 완료. 령은 전신거울에 제 모습을 비춰보며 완벽한지 다시 한 번 살펴보았다. 검은 벨벳으로 이뤄진 고딕풍의 원피스, 그리고 온 몸을 감싸는 로브와 거대한 대낫까지. 완벽한 사신의 모습이었다. 여기에 잭 오 랜턴 모양의 바구니까지 들면 할로윈을 즐기기엔 이만한 복장이 없었다. 령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됐다. 충분하다. 이제 나가도록 하자.
또각또각 소리가 들려왔다. 하이힐이 향하는 방향은 라온하제와 인간계의 경계선이었다. 약속 장소에서 리스가 기다리고 있을까? 아니면 아직 아무도 오지 않았을까? 령은 그것이 궁금했지만 아직 약속 장소에 도달하지 않았기에 참기로 하였다. 제가 알 수 있는 일도 아니었고.
그러고보니 날개를 없애지 않았다.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군. 뭐 오늘같은 날이라면 인간들도 날개를 보고 분장이려니 하겠지만. 령은 날개를 없애고 완벽하게 인간으로 변장했다. 되었다. 이 정도라면 사신으로 분장한 인간으로 보이겠지. 령은 만족한 듯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할로윈 분장을 생각하느라 얼마나 고심했는지 모른다. 천사, 유령, 강시 등등을 생각해봤지만 다 저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 결과 사신 복장을 택했지. 그리고 이 복장은 자신과 썩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아, 다솜과 인간계 사이의 경계선이 보인다. 령은 걷는 속력을 더 높였다. 하이힐의 또각또각 소리가 더욱 진하게 들렸다. 아마 지금 령의 마음은 잔뜩 신이 나있겠지. 혹은 긴장하고 있거나. 령은 약속 장소에 나온 리스를 보았다. 리스는 천 하나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유령 분장이구나. 귀여워라. 령은 리스의 분장을 보고 감탄을 했다. 그녀의 분장은 꽤나 잘 어울렸다.
"리스!"
령은 리스를 불렀다. 또각또각 소리가 멎어들었다. 령은 리스의 앞에 섰다. 가까이서 보니 리스의 분장은 더욱 근사했다. 비록 리스의 표정을 볼 수 없는 게 아쉬웠지만. 령은 리스의 앞에 서 미소를 지었다.
너무 들떴기 때문일까? 생각보다도 훨씬 더 빠르게 약속장소에 도착해버렸다. 물론 시간의 흐름은 이제 더이상 자신에게 있어서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게 되었지만... 그래도, 역시... ...빨리 령 님과 같이 즐겨보고 싶어요. 할로윈 씨. 무려 '신' 님과 함께 하는 할로윈 씨.
꼼지락꼼지락, 작게 움직여지는 손가락이 묘하게 설레는 마음을 담아내는 듯 했다. 그렇게 얼마나 다솜의 경계 부근에서 령 님을 기다렸을까. 이내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에, 한 박자 늦게 "...아." 하는 소리를 내며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고 있던 고개를 느릿하게 돌렸다. 그러자 자신의 눈에 들어오는 령 님의 모습.
또각또각, 익숙한 걸음걸이 소리가 멎어들자 자신의 앞에는 령 님이 서있게 되었다. 아름다운 검은색으로 둘러싸인 령 님이. 검은 벨벳으로 이루어진 고딕풍의 원피스와 로브을 입고 거대한 대낫과 호박 모양 바구니를 들고있는 령 님은 무척이나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그 아름다움에 순간 넋을 잃어버린 채 멍하니 올려다볼 정도로.
...령 님께서는... 사신 씨이실까요? 정말로 아름다워요...! 순수한 감탄과 존경심이 멍한 두 눈동자 속에 반짝반짝이기 시작했다. 그러다 령 님께서 미소를 지으며 먼저 자신의 분장을 칭찬해주시자, 한 박자 늦게 반응이 튀어나왔다.
분장이 우아하다라... 령은 저를 칭찬하는 모습에 눈을 휘어 웃고는 리스를 바라보았다. 온통 검은색 일색인 제 복장은 평소와 다를 게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스는 자신의 복장을 칭찬해주었다. 령은 그게 기뻤다. 구름 위를 나는 듯 했다.
령은 호박 바구니를 들고 리스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보니 둘 다 호박모양 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물론 저쪽은 모조품이 아닌, 진짜 호박을 쓴 것 같지만. 령은 신기하다는 듯 둘의 바구니를 바라보았다. 비교를 하기 위함인 듯 하다.
"신기하네요. 리스와 저의 바구니 모두 호박 모양을 띄고 있네요."
분장은 흑과 백으로 색이 정반대인데 바구니만은 같다니... 통일감을 줄 수 있어서 좋겠다. 령은 둘의 바구니가 같은 걸 보고 흡족하게 웃은 뒤 리스에게 손을 내밀었다. 슬슬 가볼까요? 라고 말하는 표정은 기대감에 잔뜩 차있었지.
"저도 'Trick or Treat'가 기대되네요. 인간들이 그런 걸 많이 한다고 들었거든요."
본 적도 몇 번 있다만 직접 참가하진 않았었다. 령은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리스와 함께 경계를 나섰다. 여기서부터는 인간들의 마을이었지. 그들은 어떻게 하고 있으려나? 축제를 준비하고 있을까? 혹은 저와 리스처럼 여러가지 색으로 꾸미고 나왔나? 령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여러모로 기대되는 날이었다.
"그러고보니 리스는 할로윈을 즐기는 게 처음인가요?"
령이 리스에게 질문하였다. 자신은... 어디보자. 할로윈을 즐긴 적은 없었지. 축제로 북새통을 이루는 건 자주 보았지만 제가 그 주체가 된 적은 없었다. 같이 즐길 사람이 없기도 했고. 이번에는 어떠려나? 령은 그 생각을 하며 정면을 바라보았다.
...아, 령 님께서 웃고 계세요. 자신의 칭찬에 보여지는 령 님의 눈웃음에, 잠시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물론 그것도 잠시, 이내 '신' 님께서 기뻐하신다는 사실에 덩달아 행복함을 느껴 마찬가지로 두 눈동자를 부드러이 접어 웃어보였지만.
령 님께서는 이내 둘 다 공통적으로 손에 들고 있는 호박 바구니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신기한 듯한 령 님의 목소리에, 멍하던 눈매가 순간 동그랗게, 크게 뜨여졌다.
"...와아... 정말이네요...! 같은 바구니 씨예요, 령 님...! ...령 님과 같은 바구니여서 영광이예요."
그 작은 사실 하나만으로도 자신의 마음은 순수하게 기쁨으로 가득 찼다. 헤실헤실, 두 눈동자가 다시 부드럽게 접혀졌다. 검정과 하양, 정반대의 색채 속에서 같은 하나의 색. 그와 비슷한 자신의 눈동자를 느릿하게 깜빡이면서 이내 자신에게 내밀어진 령 님의 손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제가 감히 '신' 님의 손을 잡아도 될까요...? 그런 무례를 범해도 괜찮을까요...? 자신의 '신' 님께 물어보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령 님께서 직접 저에게 손을 내밀어 주셨어요. 그렇다면 저는...
이내 느릿하게, 천천히 손을 뻗어 조심스럽게 령 님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올려놓았다. 굽힐듯, 말듯, 작은 손가락이 망설임을 담다가 이내 큰 용기를 내어 조심스럽게 살짝 굽혀졌다. 조금은 어정쩡한 모습으로. 하지만 그것 역시도 이내 할로윈에 대한 령 님과 자신의 기대감 가득한 마음에 파묻혀 희미해졌다.
"...네, 저는 할로윈 씨가 뭔지도 잘 몰랐거든요. 인간들 씨의 문화는 잘 몰라서... 이번에 새롭게 처음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꼭 즐겨보고 싶었어요."
령 님의 질문에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애초에 동물이었던 자신이 그것을 알고있었다면 그게 더 이상했겠지만. 한 팔로 품에 끌어안은 바구니를 조금 더 꼬옥 끌어안으면서 령 님께 똑같은 질문을 조심스럽게 드려보았다.
리스가 웃는 모습은 매번 보긴 했지만 이정도로 환하게 웃는 건 처음 보았기에 령은 잠시동안 놀란 상태로 굳어 있었다. 그도 잠시, 령은 다시금 눈을 휘어보이며 리스의 웃음에 화답하듯 웃어보였다. 리스는 지금 기분이 좋구나. 령은 새삼 자신의 제안에 뿌듯함을 느꼈다.
같은 바구니여서 영광이라는 말에 령은 기분이 좋아졌다. 고작 바구니 하나 같은 거 들었다고 영광이라는 말까지 들어야 겠냐만은 저와 리스가 통했다는 게 중요한 거니까. 령은 리스의 말에 미미한 미소를 띄고 제 바구니를 들어보였다.
"저도 영광이랍니다, 리스."
령은 리스의 말에 조곤조곤 대답하고는 멍하니 손을 바라보는 리스를 바라보았다. 제가 너무 성급하게 손을 올렸던 걸까? 그 생각을 나타내듯 리스에게로 내밀어진 손이 순간 멈칫했다.
아, 리스가 손을 내밀었다. 령은 제게 느껴지는 온기에 입꼬리를 올리며 리스의 손을 꼬옥 잡았다. 저보다 작은 손인만큼 꽉 잡는 건 쉬운 일이었다. 령은 리스의 손이 따뜻하다는 걸 알았다. 이렇게나 따뜻한 손을 가졌구나, 리스는. 령은 새삼 마음이 훈훈해짐을 느꼈다.
"그랬군요. 저도 알게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답니다. 그래서 기대가 커요."
제가 할로윈 문화를 알게된 건 약 10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령은 검은 눈을 깜박였다. 그러고보니 저는 축제를 즐기는 타입이 아니었지. 이번이 처음이었던가? 처음치고는 나쁘지 않다. 그리 생각했을 때 리스의 질문이 들려왔다. 령은 시선을 리스에게로 향하고는 빙그레 웃었다.
령 님께서 직접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주실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 했다. 그야, 령 님께서는 무려 '신' 님이셨으니. 하지만... 그럼에도 나름대로 큰 용기를 낸 한 손이 천천히 앞으로 뻗어졌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살며시, 조금은 어정쩡한 모습으로 령 님의 손을 아주 살짝 잡았다. 금방이라도 풀어질 듯, 그 색만큼이나 희미한 연결이었지만, 그럼에도 그 온기를 느끼기에는 아주 충분했다. 그야, 령 님께서는 자신의 손을 꼬옥 잡아왔으니.
그 낯설고도 따스한 온기는 두려울 정도로 행복한 것이었다. 따스함. 따뜻함을 품고 계신 '신' 님께서는... 잠시 두 눈을 깊게 감았다가 떴다. 자신도 모르게 조금 머뭇거리던 손을 조금 더 꼬옥, 살짝 잡아보면서.
"...령 님께서도 이번이 처음으로 즐기시는 할로윈 씨이셨나요?"
조금은 놀란듯이 멍한 두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 령 님께서는 저보다 오래 사셨을테니까 당연히 즐겨보신 적 있으신 줄 알았는데... ...둘 다 처음이라면...
"...그렇다면 제가 꼭 령 님께 즐거운 할로윈 씨의 기억을 드리도록 노력할게요...!"
다짐 어린 빛이 두 눈동자에 반짝반짝였다. 그리고 고개까지 끄덕이면서 결심을 굳혔다. 령 님께 꼭 좋은 추억을 드릴 수 있도록.
그렇게 잠시 걷다보니 어느새 도착한 인간세상. 길거리에는 이미 여기저기 으스스한 해골 장식이나 잭 오 랜턴, 박쥐 모형 등이 걸려있었고, 건물들 역시도 가짜로 추측되는 거미줄들이 여기저기 뒤엉켜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살짝 북적이는 사람들로 인하여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시끌시끌한 목소리들. 그 모든 것들이 활기찬 축제의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었고, 그에 저번의 호은제를 겹쳐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와아...!" 하고 감탄하며 이곳저곳을 느릿하게 둘러보았다. 그리고 발견한...
"...! 령 님, 저기요...!"
이내 자신도 모르게 놀란듯이 령 님의 손을 살짝 당기면서 어느 한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 손가락 끝에는 박쥐 분장을 한 인간과 늑대인간 분장을 한 인간, 그리고 여우 분장을 한 인간이 있었고, 그에 자신도 모르게 령 님을 바라보면서 곧바로 얘기했다. 두 눈동자는 감탄으로 반짝반짝였다.
따스하다. 령은 리스의 작은 손을 잡으며 그 생각부터 하였다. 이것이 누군가의 온기란 말인가? 실로 오랜만에 느껴지는 다른 누군가의 체온에 령은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 떴다. 리스는 따스한 마음을 지니고 있어 손도 따뜻한건가? 글쎄. 그건 모를 일이지.
이번이 처음 즐기는 할로윈이란 말에 리스는 상당히 놀란 듯 하였다. 생각해보니 령은 늘 방랑자로 살아가느라 축제를 즐긴 적은 없었다. 아마 저번 호은제가 처음일 터였지. 저도 퍽이나 삭막한 성격이었구나. 령은 검은 눈동자를 리스에게로 굴렸다. 리스의 말에 뭔가를 느낀 듯 하였다.
"네. 처음이랍니다. 그 동안은 방랑하느라 뭘 즐길 틈이 없었지요."
방랑자에게 있어 그것은 숙명이나 다름없으니. 너는 말을 마치고 피식 웃어보였다. 그 방랑생활도 라온하제에 와서는 끝낸 것이나 다름없으니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즐거운 할로윈... 령은 말이 없었다. 이미 자신은 충분히 즐거웠다. 리스와 함께하는 이 시간이 무엇보다도 소중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리스는 자신과 함께하는 시간을 소중한 추억으로 만들어주겠다고 하였다. 령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당신은 내게 많은 것을 주는군요, 리스.
"고맙습니다. 저도 최선을 다해서 당신에게 즐거운 추억을 선물하도록 하지요."
령은 예를 갖춰서 말하곤 고개를 숙였다. 리스와 함께있는 시간이 즐거웠다. 아마 오늘 할로윈도 즐거운 추억이 될 것이겠지. 령은 그리 생각하며 미소지었다. 심장이 쿵쿵 뛰는 것이 느껴졌다.
어느새 인간세상에 도착했다. 가짜 거미줄, 가짜 피, 분장을 한 사람들, 그리고 잭 오 랜턴이 난무하는 할로윈의 거리가 펼쳐졌다. 령은 신기했던지 동그래진 눈으로 여기저기를 잔뜩 둘러보았지. 한참을 정신 못차리던 령은 뒤늦게 자신의 대낫이 인파를 해치는 데 불편하다는 걸 깨달았다. 비록 가짜 낫이긴 했지만... 령은 몰래 신통술을 써 낫을 축소시키고는 주머니 속에 넣었다.
리스가 령의 손을 살짝 당겼다. 무슨 일이 생겼나? 령은 리스가 가리킨 곳을 보았다. 박쥐와 늑대인간, 그리고 여우 분장을 한 이들이 모여있었다. 신기하군. 인간들도 동물 분장을 하는 것인가? 령은 흥미롭게 그들을 바라보았다.
"저들이 라온하제에 있는 신들의 분장을 따라한 건 아닐겁니다. 하지만 신기하군요. 라온하제에 있는 가온과 백호 같은 신들과 상당히 닮아있네요."
령 님께서는 의외로 이번이 처음 할로윈을 즐기는 것이라고 말해왔다. 방랑하느라 뭘 즐길 틈이 없었다며 피식 웃는 그 모습이 왠지 모르게 묘하게 신경쓰이는 것은 단순히 자신이 너무 예민해서인 것일까. 하지만... 왠지 모를 동물적인 감각이 말해주고 있었다. 어쩌면 령 님께서는, 그 방랑의 생활이...
"......"
잠시 입을 다물었다. 어차피 보이는 모습은 두 구멍 너머에 있는 이질적인 색채의 두 눈동자 뿐이겠지만. 그 시선 끝에는 오로지 령 님만을 둔 채, 잠시 그렇게 물끄러미 령 님을 응시했다. ...조금 안타까운 마음을 안고. 그러나 령 님께서 자신에게 고개를 숙이자, 한 박자 늦게 크게 놀란 듯 두 눈동자가 동그래지면서 고개를 격하게 좌우로 도리도리 저었다.
...이제 괜찮아요, 령 님. 뒷말은 덧붙여지지 않은 채, 그저 령 님의 손을 조금 더 꼬옥 잡는 것으로 대신했다. 희미한 눈웃음이 부드럽게 령 님을 향했다. 방랑도, 즐길 여유가 없던 삶도, 이제는. 이제는, 전부 다 괜찮아요. 그럴 거예요, 분명.
아무튼 어느새 도착한 인간세상에는 이미 축제 분위기가 한껏 달아오르고 있었다. 북적북적이는 인간들과 각종 장식들. 그 모든 것들을 신기하게 감탄하면서 두리번두리번, 주변을 둘러보다가 발견한 세 인간들의 분장에, 자신도 모르게 령 님을 부르며 그곳을 가리켰다. 그야, 그 인간들의 분장은 자신에게 있어서 매우 반가운 신 님들의 분장이었으니.
"...아... 그런 걸까요? 으음... 그래도 저도 정말로 신기하다고 생각해요. '신' 님들이랑 정말 닮으셨어요...!"
자신이 좋아하는 '신' 님들과 '인간'들이기 때문일까. 희미한 즐거움이 목소리 속에 배어나왔다. 그리고 이내 한 박자 늦게 령 님을 바라보면서 품에 안고 있던 바구니를 느릿하게 살짝 들어보였다.
"...저 분들께 'Trick or treat!'... ...한 번 해볼까요, 령 님?"
/ 늦어서 정말 죄송해요, 령주...!ㅠㅠㅠㅠ 잠깐 나갔다오느라 늦어버렸어요...ㅠㅠㅠ(석고대죄)
령은 리스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자 의아함이 들었다. 리스가 왜 그러지? 자신이 뭘 잘못 말한걸까? 령은 고개를 갸웃거리다 자신도 리스를 빤히 응시했다. 색이 다른 두 눈동자와 검은 눈동자가 허공에서 맞부딪힌다. 먼저 시선을 돌린 건 령이었다.
"왜 그러십니까?"
령은 리스가 고개를 숙이지 말라고 하자 고개를 저었다. 리스도 자신과 같은 신인데 고개를 숙이는 행위가 뭐 어떠하단 말인가? 설령 제 앞에 있는 이가 신이 아니라고 해도 저는 똑같이 고개를 숙일 것이다. 신이 되는 것이 조금 특별한 일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생명체들 앞에서 방만하게 구는 게 용서되는 건 아니었다.
"비록 신이라고는 하나 다른 생물들한테 고개를 숙이는 게 용납되지 않는 건 아닙니다. 신이라고 해서 다른 이들한테 방만하게 굴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요. 그러니까 전 괜찮습니다, 리스."
령이 온화하게 웃으며 말했다. 리스가 손을 더 꼬옥 잡았다. 희미한 눈웃음이 제게로 와닿았다. 령은 행복하다고 느꼈다. 지금 이 순간만큼 행복할 시간이 또 있을까?
할로윈이라 그런지 거리는 북적북적했다. 령은 분장으로 몸을 감싼 사람들 사이를 지나갔다. 각종 장식들과 부스, 그리고 사람들 덕에 정신이 좀 없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히 즐거웠다. 령은 어느새 웃고 있었다.
"맞아요. 라온하제에 계실 그분들이랑 정말 닮았네요."
아무래도 같은 동물을 흉내내어서 그렇겠지. 령은 그렇게 생각하고는 'Trick or Treat'를 한 번 해보자는 말에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이럴 때 해보지 언제 해보겠는가? 령은 리스의 손을 잡고 그들에게로 나아갔다. 그리고 입을 열어 말했다.
잠시 두 눈동자와 눈동자가 마주쳐졌다. 그러나 먼저 시선을 돌린 건 령 쪽이었다. 그 대신 왜 그러냐는 령 님의 정중한 물음이 들려왔고, 그에 차마 아무런 말도 하지 못 한 채 그저 입을 꾸욱 다물고 침묵을 지켰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내 고개를 작게 도리도리 저었다.
"...으응, 아무것도 아니예요. 그냥..."
...방랑에 대한 공감? 동질감? ...자신이 감히 '신' 님께 그런 것을 느낄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그저 말끝을 흐리면서 희미하게 눈웃음을 지어보였다. 정말로 유령처럼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만 같은 웃음이었다.
"...령 님께서는 다른 생물들 씨도 예의를 갖춰서 정중하게 대해주시는 군요. 역시 령 님이예요. 자비로우신 '신' 님. ...정말로 감사합니다, 령 님."
이번에는 자신 쪽에서 살짝 허리를 꾸벅, 숙여서 공손히 감사 인사를 전했다. 정말로 기뻤다. 자비를 베풀어 다른 존재들을 존중해주시는 '신' 님이시라는 것이. 희미한 눈웃음과 조금 더 용기를 내어 살짝 꼬옥 잡은 손. ...'신' 님의 손. ...따뜻해요. 낯선 따스함에 잠시 두 눈을 깊게 감았다.
인간세계는 할로윈 분위기로 떠들썩했다. 그 속에서 자신에게 익숙한 신 님들과 비슷한 분장을 한 인간들을 발견했고, 그에 령 님께 'Trick or Treat!'를 조심스럽게 제안해보았다. 그러니까... 인간 씨들에게 그것을 외치면 된다고 들었으니까요. 그러자 령 님께서는 잠시 생각을 하는 듯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한 박자 늦게 기쁜듯이 희미한 웃음을 화아, 지었다. 물론 보이는 것은 오로지 두 눈동자 뿐이었겠지만. 하지만 그럼에도 령 님과 같이 손을 잡은 채, 그대로 인간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Trick or Treat!"
이런, 반응이 늦게 튀어나와 결국엔 령 님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외쳐버렸다. 마치 돌림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그런 자신들의 목소리에, 세 명의 인간들은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뭐야? 사신과 유령이야?" "어머어머!! 자매인가요? 손까지 꼬옥 붙잡고 있는걸 보니 사이 좋은가봐요! 꺄아!"
자신들을 위아래로 훑어본 늑대인간 분장의 남자가 심드렁하게 얘기하자, 그 뒤를 이어서 곧바로 박쥐 분장의 여자가 해맑게 활짝 웃었다. 여우 분장의 여자는 아무런 말 없이 그저 웃으면서 손에 들고 있던 봉투 속에 손을 넣을 뿐이었다. 하지만 여우 여자가 초콜릿과 사탕을 꺼내어 자신들에게 내미려던 순간, 늑대인간 남자가 그것을 한 팔로 저지하며 피식 웃었다.
"이미 죽은 유령의 혼을 데리고 다니는 사신이라. 멋진데? 과자를 안 주면 장난칠거야? 예쁜 사신 누나가 어떤 장난을 칠 지, 한 번 보고 싶은데?"
/ 으아아...! 답레가 늦어서 진짜진짜 죄송해요, 령주!ㅠㅠㅠㅠ 제가 이번주 내내 과제를 계속 제출해야해서 텀이 오래 걸려버리네요...ㅠㅠㅠ 정말로 죄송합니다...(석고대죄)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이 들려왔다. 령은 생각에 빠졌다. 정말로 아무것도 아닌걸까? 아까 전의 리스는... 신경을 끌까? 아니 어쩌면 복잡한 사정이 얽혀있을지도 몰라. 령은 머리가 웅웅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여러가지 생각들이 얽히고 섥혀 거대한 그물을 만들어내는 것 같았다. 침착하자, 령. 령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떴다.
정중하게라... 자신은 그런 말을 들을 가치가 있는가? 령은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자비로우신 '신'님... 령에게는 자비란 게 없었지. 리스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건 그저 몸에 베인 친절일 뿐이었다. 그럴 것이다. 자신에게 있어서 자비란 어울리지 않은 단어였으므로. 령은 애써 웃었다.
"감사할 필요가 무어 있나요?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랍니다. 그리고 저는... '자비'라는 단어와 어울리지 않아요."
령은 잠시 흐릿하게 표정을 지어보였다. 잘못본 게 아니라면 분명 그것은 슬픔일테지. 방랑을 하면서 한 수많은 선택들 중 일부에 대한 후회였나. 령은 리스의 손을 꼬옥 움켜잡았다. 마치 거기서 전달되는 온기로 위로를 받고싶다는 듯이.
Trick or Treat! 리스는 저보다 반응을 늦게 했다. 그것이 마치 돌림노래를 하는 듯한 상황을 연출하게 했지만 령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재미있는 듯 웃음을 짓고 있었다. 할로윈이란 이런 거구나. 앞으로도 할로윈 때는 꼬박꼬박 축제를 즐겨야겠다.
늑대인간 남자가 심드렁하게 얘기했다. 박쥐 여자는 령과 리스를 자매로 착각한 모양이었다. 그만큼 닮았다는 건가? 령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굳이 해명하지는 않는 듯했다. 차라리 그렇게 오해하도록 두는 게 편할 것 같다는 예측이리라. 그때였다. 여우 여자가 초콜릿과 사탕을 주려는 것을 늑대인간 남자가 막아섰다. 호오? 령은 고개를 오른쪽으로 기울여 늑대인간 남자를 쳐다봤다.
"제 장난이 보고싶으십니까?"
령이 말했다. 생글생글 웃는 낯이었다. 그와 동시에 령의 손에 낫이 들려있었다. 남자 몰래 신통술로 대낫의 크기를 적당히 키운 것이리라. 물론 소품이니 진짜 대낫은 아니고 가품이었다. 그러니 남자에게 상해를 입히지도 못하리라. 하지만 중요한 건 보기에 그럴싸해 보인다는 것이지. 령은 웃음을 얼굴에서 지워냈다. 검은 눈이 오늘따라 유독 섬뜩하게 보였다.
"과자를 주지 않으면 당신의 피가 튈 지도 모른답니다?"
그런 상황은 아무도 바라지 않을거예요. 그렇죠? 령이 빙긋 웃어보였다. /미안합니다아ㅏㅏㅏㅏㅏㅏ(뚝배기 깸
>>576 령주 어서 오세요! XD 으아아...! 뚝배기 깨시면 안 돼요, 령주! 제가 훨씬 더 많이 늦어버렸는걸요!ㅠㅠㅠㅠ(령주 머리 보호) 그런데 제가 다시 또 과제에 들어갈 생각이라서 답레는 내일 드려도 괜찮을까요...? 정말로 죄송해요, 령주...ㅠㅠㅠ(석고대죄)
>>578 아사주 어서 오세요! :D 앗...! 그, 그런데 괜찮으세요, 아사주...?(흐릿)(토닥토닥)
>>579 네, 그렇습니다! 전 은호 님의 가호를 타고 그렇게 날아가는 거예요!ㅋㅋㅋㅋㅋ 여러분도 행복하세요~! XD(메아리)(???)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드물게 곧바로 말이 나왔다. 그 목소리는 흔들림 없이 확고하고 무한한 신뢰가 가득히 들어있는 목소리였고, 령 님을 바라보는 두 눈동자 역시도 따스하지만 굳건한 믿음이 녹아 있었다. 령 님의 손을 조금 더 꼬옥 잡았다. ...괜찮아요, 령 님. 제가 여기 있을게요. 저는 여기 있어요. 그러니... ...부디 슬퍼하지 말아주세요. 손의 온기로 령 님께 위로의 메시지를 조용히 전했다.
이어서 발견한 세 명의 인간들에게 Trick or Treat!를 같이 외쳐보았다. 물론 자신의 느린 반응으로 인하여 돌림노래와 같이 조금은 어정쩡한 모습이었지만, 나름대로는 진지하게 외친 것이었다.
"어라어라? 자매 아니었나요? 죄송해요~ 유령 분은 얼굴이 안 보이기도 하고 그냥 키 차이가 나시는 두 분이 손을 잡고 다니시길래 자매인 줄 알았어요!"
박쥐 여자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해맑게 사과를 건넸다. 그 뒤를 이어서 령 님의 '장난'이 나타나자, 자신도 모르게 몸을 살짝 움찔, 했다. 박쥐 여자도 히익! 하는 비명을 내고 여우 여자도 놀랐는지 두 눈을 크게 뜬 가운데, 늑대인간 남자는 낫과 령 님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뭐야? 뒤에 낫을 숨겨두고 있었던 거야? 역시 범상치 않았네, 예쁜 사신 누나. 과자를 안 주면 장난으로 내 모가지라도 따가겠다는 거야? 내 머리는 맛 없을ㅌ..." "넌 제~발 입 좀 다물어! 왜 이 분들께 시비를 못 걸어서 안달인데!! 죄송해요. 얘가 나쁜 애는 아닌데 친구를 잘못 사귀어서 그만..." "아, 때리지 좀 마! 개아프다고!! 애초에 그 친구 중 하나가 너잖아!" "시끄러어어!!"
박쥐 여자가 늑대인간 남자의 머리를 세게 한 대 후려갈기자, 결국 서로 왁왁거리는 싸움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여우 여자는 익숙한 듯이 그들을 무시한 채 평화로운 미소를 지으면서 자신들에게 다가왔다.
"저 아이들은 신경쓰지 마시고 여기, Treat를 받아주시겠어요? 마음에 드실지 염려되는군요."
이내 자신들에게 내밀어진 사탕과 초콜릿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가 천천히, 조심스럽게 그것을 받아들었다. 처음으로 얻은 사탕과 초콜릿.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그것을 내려다보던 멍한 두 눈동자에 이내 기쁨의 빛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반짝반짝이는 눈빛으로 한 박자 늦게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리고 고개를 살짝 꾸벅, 숙여보였다.
령은 그에 맞게 온화하게 웃어보였다. 자신에게 자비로운 '신'님이라고 말하는 리스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함이었다. 리스는 정말로 다정하고 따스한 신이구나. 령은 그렇게 느끼며 눈을 살짝 감았다 떴다.
박쥐 여자는 그제서야 자기가 오해한 걸 알았는지 사과를 했다. 령은 그걸 묵묵히 듣고 있었다. 키 차이가 나는 두명이 함께 다니면 자매로 보이는가보다. 령은 그저 살포시 웃을 뿐이었다. 그러고보니 령에게는 자매가 있었는가? 있었지. 옛날 옛적에는 있었다. 평범한 흑조라 나중에는 다 죽음을 맞이했을 뿐.
"아닙니다. 충분히 오해하실 만도 하죠. 너무 미안해하지 마세요."
령은 웃으며 박쥐 여자에게 괜찮다고 말하였다. 아아, 그나저나 너무 겁줘버렸나? 늑대인간 남자를 뺀 나머지가 전부 경악하는 걸 본 령은 한숨을 쉬었다. 늑대 남자한테 발끈해서 지나치게 장난을 쳐버렸다. 이걸 어떻게 수습한담? 령은 저도 모르게 머리카락에 매달린 방울 장식에 손을 댔다. 방울이 딸랑딸랑 흔들렸다.
"괜찮습니다. 오히려 저야말로 겁을 줘서 죄송하다고 해야겠죠."
령은 정중하게 말을 하고는 한숨을 쉬며 옆에 있던 리스를 바라보았다. 리스는 괜찮을까? 자신이 아까 한 행동 때문에 겁에 질려 달아나진 않았을까? 다행히 그러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령은 옆에 있던 리스를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겁줘서 미안해요, 리스."
여우 여자가 싸워대는 박쥐 여자와 늑대인간 남자를 무시하고 초콜렛과 사탕을 내밀었다. 령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성공했다. 령은 웃음을 지었다. 리스가 기뻐할지도 모른다. 과연 제 예상대로 리스는 기쁨의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정말이네요. 한번에 성공하다니... 너무 기쁘군요."
령은 웃으며 사탕과 초콜렛을 바라보다가 주섬주섬 그것들을 호박모양 바구니에 넣었다. 잃어버릴지도 모르니깐. 바구니 안에 사탕과 초콜렛을 넣는 령의 표정이 정말 기뻐보였다.
할로윈의 가리는 완전한 축제의 분위기였다. 가을을 상징하는 지역이였으니 인간계의 가을에 벌어지는 축제를 챙기는 것은 그닥 이상한 일은 아니였다. ...망자들과 섞여들기 위해 인간들이 시작한 분장을 신들이 따라하는 것이 조금 웃긴 상황일 뿐.
호박이 가득한 거리에 나온 세설은 그와 비슷한 생각을 했으리라. 각각 미라, 좀비, 유령등으로 분장을 한 신들을 보고 잠시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는 것을 봐서는. ...정작 본인의 꼴도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을 떠올려 낸 것인지 길게 한숨을 내쉬더라. 그러고보니... 양갈래로 내려 묶은 머리에는 양의 뿔을 달고, 챙이 넓은 마녀 모자와, 하늘하늘 소녀스러운 하이웨스트의 검정 원피스와 가터 니삭스. 굳이 분장하지 않아도 되는 커다란 흑백의 날개까지. 아, 평소의 모습이였다면 다소 곤란한 복장이니 덧붙여 말하지면 옛날의 모습이였다. 굳이 더 설명을 필요하다면 소녀의 가까웠던 그 모습.
"하......."
다시금 한숨을 내쉬는 세설이다. 길게 늘어지는 줄임표에서 그의 심각한 내적 갈등이 느껴지는가? 대체 어떤 경위로 이런 모습인건지. 어떤 내기에서 져서 이런 모습이라는 것 정도만 말해두겠다. 그래, 엄청 지독하게 졌나보네.
여튼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세설은, 갈색의 피크닉 바구니에서 쿠키를 꺼내 지나가는 신에게 준다. 오...프로 정신이라는 것일까. 평소의 세설이였다면 프로 정신이고 뭐고 때려치웠겠지만, 그는 왠일인지 조용히 카페의 지리가 그려진 작을 쿠키 봉투를 나누어 주고 있었다. 그리고... 우연히 같은 거리에서, 비슷하게 사탕을 나누어주는 다솜의 관리자를 발견한다.
"...아이온 피아사?"
아차, 무의식적으로 아는 체를 해버렸다. ...못 알아봤으면 하는 마음을 조금이나마 품은 채, 제 할일에 집중하기로 하는 세설이다.
응. 처음에는 잘 몰랐지만, 아이온 피아사라고 부르는 이는 아마도 세설뿐이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면서 아는 체를 하는 이를 바라보려 합니다.
"안녕 세설씨." "못 알아보게 하는 게 목적이었으면 아사라고 부르는 걸 추천해." 신이 꽤 자유로우니까 그런 건 취향이라고 봐야겠지. 라고 말하면서 자. 사탕. 이라고 말하며 혹시 벌레 좋아해? 라고 믈어보려 합니다. 아마 좋아한다고 말하면 신통술로 리얼한 꿈틀거림까지 하는 애벌레(이건 젤리)를 줄 것 같습니다만?
"아니면 다른 것도 있어-" 잔뜩 만들었거든. 이라고 하면서 나중에 인간계에 나가면 이건 못 주겠지만... 이라고 말하면서 꿈틀대는 젤리를 하나 입에 물고는 꿈틀거림을 느끼면서 씹으면 안의 즙이 터져나올 것 같습니다.
아, 결국 알아챈 것 같다. 그러게 그렇게 화려한 복장으로 다니면 눈에 띄일 수 밖에 없으니, 세설 자신도 모르게 아는 체를 했던 걸지도. 아사의 꽤나 화려한 할로윈 차림을 보고, 세설은 고개를 절레 내저었다.
"...오해할까봐 말해두자면, 이 차림새는 내 취향이 아니야."
복장만을 말하는 걸 봐선, 세설의 기준에서는 본래 성별과 반대되는 것으로 변하는 것는 어찌저찌 세이프였던 것 같다. 애초에 지금의 모습도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고 하더라나? 이 상황에서 변명을 해보았자 통할 상대는 아니였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는 건지, 그냥 그 정도로만 말한다.
"무슨 의미야... 굳이 벌레를?"
벌레를 좋아한다... 워낙 좋아한다의 의미가 포괄적이였으니 의미를 모르겠다는 듯이 말한다. 이내 리얼한 벌레처럼 생긴 젤리를 보고 눈을 깜박거릴 뿐이였다. 먹을 수 있냐는 것을 묻는다면 먹을 수 는 있을 것이였다. 언젠가는 그것을 식량으로 삼았던 적도 있으니까... 그저 까치였던 시절의 이야기였다마는. 보기에도 예쁘고 맛도 좋은 것이 얼마나 많은데 굳이 먹을 필요가 있을까. 세설은 그리 생각하는 것이였다.
"...뭐 벌레가 주식이였던 신들은 추억에 잠겨서 한번쯤 먹어 볼 만 하겠네. 할로윈 한 철에만 나오는 상품이라면 나쁘지는 않아."
령 님께서 온화하게 웃으셨다. 자신에게 고맙다고 말씀해주셨다. 령 님께서는 알고 계실까? 그렇게 웃으시는 령 님의 모습이, 자신에게는 더더욱 큰 기쁨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그렇기에 두 눈구멍을 통해 드러난 눈동자가 더욱 부드럽게 접혀졌다. 희미했던 미소가 순간 조금 더 짙어졌다.
...자매. 박쥐 여자의 말과 령 님의 반응에, 자신도 모르게 령 님의 손을 아주 잠시 꼬옥, 살짝 힘을 주어 붙잡았다. ......가족... 잠시 두 눈을 감았다가 느릿하게 떴다. 유령 분장을 해서 다행이었다. 유령에게 표정이라는 것은 없었으니. 자연스럽게 자신의 표정 역시도 가려질 것이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그러므로, 자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령 님은 이어서 '장난'에 놀란 인간들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딸랑딸랑, 방울이 흔들리는 소리에 자신 역시도 조금 놀랐던 마음을 다시 천천히 가라앉혔다. 그리고 이어서 인간들에게 정중하게 하시는 령 님의 사과에 귀를 기울이다, 그 사과가 자신에게도 향하여 오자 한 박자 늦게 놀란듯이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그 상태로 고개를 돌려 령 님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내 평소의 그 몽롱한 눈동자로 돌아와서는 천천히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아니예요, 령 님. 조금 놀라기는 했지만 겁 먹지는 않았답니다. ...령 님께서 저 분들을 해치시지 않을 거라고 믿고 있었으니까요."
'신' 님을 향한 긍정적인 방향의 무한한 신뢰. 그것을 희미한 눈웃음과 함께 령 님에게 오롯이 내비쳤다. 그리고 이어서 왁왁거리며 싸우기 시작한 박쥐 여자와 늑대인간 남자. 그들을 뒤로 한 채 여우 여자는 자신들에게 초콜릿과 사탕을 주었고, 그에 기쁜 마음을 목소리와 말로써 담아냈다. 게다가 령 님께서도 기쁜 표정을 짓고 있었으니, 자신의 기쁨은 더욱더 커져만 갔다. ...'신' 님께서 기뻐하고 계세요...!
"때로는 과자를 안 주는 사람들도 더러 있지만 대부분은 아마 그 마법의 주문을 외치면 과자를 줄 거랍니다. 그러니 두 분 다 그 바구니를 가득히 채워 돌아가실 수 있길 바라겠습니다. 볼 거리도, 놀 거리도, 먹거리도 많은 이 할로윈 축제. 부디 맘껏 즐겨보세요. 그럼, 해피 할로윈이 되시기를."
그렇게 기뻐하는 자신들을 평화롭고 흐뭇하게 지켜보던 여우 여자가 가볍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리고 나머지 일행에게 가자는 신호를 보내자, 그 뒤를 이어서 잠시 싸움을 중단한 늑대인간 남자가 고개를 돌려 자신들 쪽을 바라보았다.
"뭐, 아무튼 잘 가라고~? 예쁜 사신 누나랑 이상한 눈 밖에 안 보이는 유령. 오늘을 잘 즐겨봐. 혹시 알아? 이미 죽어버린 유령도 오늘의 할로윈을 무사히 잘 보내고 나면 다음날에는 다시 되살아날 수 있을지." "넌 끝까지 시비냐?! 좀 가라, 가! 아무튼, 잘 가요~ 만나서 반가웠어요!"
결국 늑대인간 남자의 머리를 한 대 더 쥐어박은 박쥐 여자는 그제서야 자신들에게 작별 인사를 건네며 늑대인간 남자의 목덜미를 잡아 먼저 끌고가기 시작했고, 여우 여자는 자신들에게 한 번 더 눈웃음으로 무언의 인사를 건네고는 질질 끌려가는 늑대인간 남자의 뒤를 쫓아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멀어지는 그들의 등 뒤에 대고 "...안녕히 가세요." 하며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 나자, 어느새 완전히 사라져버린 그들. 잠시 늑대인간 남자의 말을 곱씹으면서 생각에 잠기다, 이내 다시 느릿한 동작으로 령 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희미하게 웃어보였다.
"...이 할로윈 축제 씨, 여러가지 재밌는 것들이 많은가봐요. 저 인간 씨들도 즐거워 보이셨고... 그러면... 령 님께서도 혹시 뭔가 해보고 싶은 것이 있으신지 여쭤봐도 괜찮을까요?"
/ 으아아... 길어졌네요...(흐릿) 더 길어질까봐 일단 엑스트라들은 보내버리겠습니다!ㅋㅋㅋㅋ 어쨌든 Trick or treat 성공! 늦어져서 정말 죄송해요, 령주...ㅠㅠㅠ
죄 이상한 옷만 입고 있으니 딱히 눈 둘 곳도 없고 말이야. 담담한 말투로도 자기 할 말만을 잘 한다. 근데, 본인이 뭘 입고 있는 것인지 알고는 있는거겠지? 이내 세설은 챙이 넓은 마녀모자를 한 손으로 끌어내려 얼굴이 가려지도록 했다. 아니아니, 그래도 그 정도면 썩 어울리는 것이겠지. 자신감을 가져도 된다 생각한다.
"...굳이 사 먹고 싶은 비주얼은 아니고, 아이디어는 좋네."
손으로 살짝 흔들었을 뿐인데 정말로 어린아이 손에 붙잡혀 필사적으로 달아나려는 애벌레 같기도 하지. 자랑스러워 할 법도 하네. 그닥 감흥이 없는 말투로 내뱉은 것 같다.
"받긴 했으니까 이쪽도 뭔갈 줘야겠지. 너처럼 그런 걸 만들 실험정신은 없으니 평범한 쿠키랑 사탕이지만, 맛은 괜찮을거야."
젤리 봉투라기 보다는 살아있는 듯한 무언가를 집어넣은 듯이 움찔거리는 봉투를 받아들고, 자신도 피크닉 바구니 안에서 쿠키 봉투를 꺼내 건낸다. 해피 할로윈, 의례적인 듯 하며 어쩐지 무성의한 할로윈 인사를 건내면서.
- 짧...아...설이가 더 재수 없어지고(?) 문장이 살짝 이상해 보이는 것은 제가 감을 못 잡아서 그런 거십니다...
"아 그런가. 어차피 신의 패션감각은 묘하게 구식과 신식과 기묘한 무언가가 합해진 거니까. 평소에도 별 신경을 안 쓰지 않을까." 길어보이지만. 실제로 느릿느릿하게 말하니 더 길어보일 겁니다. 세설의 취향이 그런 것인지 판단은 유보했지만, 꿈틀거리는 애벌레 젤리를 씹으니 초록색 즙(feat.사과맛)(붉은 애벌레는 토마토맛 등이 있음)이 터져나오는군요.
"아이디어가 좋다니 고마워." 무관심한 표정으로 일관하던 것보다는 표정을 갖추는 게 좋다고 생각한 게 언제였던 건지 잘은 기억이 안 납니다만은, 적어도 방긋방긋 웃으면서 무감동적안 말을 하는 것도 애매합니다..
"아. 쿠키랑 사탕이네. 응.. 잘 먹을게." 고개를 끄덕입니다. 맛이 괜찮다면 나쁘지 않을지도. 라고 생각이라도 하는 것인지... 그리고는 해피 할로윈에 아사도 해피 할로윈이라고 말하려 합니다.
//답레를 올리고.. 아마 반응이 없어지면 잠든 걸지도 모르겠네요.. 다들 미리 잘자요...
리스가 제 손을 더욱 힘주어 잡았다. 령은 슬며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리스가 저 말에서 무엇을 느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겁을 먹거나 한 것은 아니라고 느꼈기에 가만히 자신도 손을 더욱 힘주어 쥐는 것으로 화답했다. 자매라... 령은 속으로 죽어버린 제 자매들을 떠올리며 리스를 바라보았지.
아, 역시 장난은 조금 심했나보다. 저 늑대인간 남자가 하도 놀려대기에 그만 욱했던 마음으로 저질렀더니... 령은 방금 전 제 행동을 후회했다. 침착하자, 령. 이곳은 인간세계다. 신중히 행동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령은 문득 시선이 느껴지자 아래를 바라봤다. 리스가 커다래진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많이 놀란 것일까? 령은 리스가 걱정되었다.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믿어줘서 고마워요, 리스."
령은 다시 온화하게 웃었다. 리스가 자신을 믿어줘서 기뻤다. 령은 제 바구니로 시선을 돌렸다. 플라스틱제로 된 호박모양 바구니는 여전히 제 팔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저기 있는 인간들은 괜찮으려나? 령은 걱정이 되는 듯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감사합니다. 당신께서도 부디 즐거운 할로윈을 보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령은 여우 여자에게 그 말을 내뱉고는 고개를 꾸벅 숙여보였다. 좋은 사람이구나. 이 여자는. 매번 생각한거지만 좋은 사람을 만났을 땐 기뻤다. 령은 받은 사탕과 초콜릿을 제 바구니에 넣었다. 호박모양 바구니가 더 이상 텅 비지 않아서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내심 Trick or Treat가 실패하면 어떡하나 하고 걱정하고 있었으니.
아, 인간들이 가버렸다. 그 늑대 남자는 끝끝내 자신들에게 시비를 걸었지. 령은 손을 흔들어 배웅을 하고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시비가 걸렸긴 하지만 그래도 즐거웠다. 령은 조용히 리스를 바라보았다. 리스도 웃고 있을까?
"흠... 해보고 싶은 것이라..."
령은 리스의 말에 조용히 생각에 빠졌다. 그러고보니 식사도 못하고 내려와서 조금 허기진 감이 있었다. 령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할로윈이라 그런지 먹거리를 파는 부스가 매우 많이 있었다. 령은 그 중 컵케잌을 파는 부스를 가리키며 말했다.
자신은 모든 존재들을 신뢰하고 믿었다. 모든 존재들을 '사랑'하고 싶었다. 그리고 특히 그러한 자신에게 있어서 '신' 님의 존재는 절대적이고 위대한 것이었다. 무조건적인 신뢰와 호의를 보일 정도로. 그렇기에 저번에 고양이 신들 사건에서 나타난 악신에게도 곧바로 공격하거나 적대하지 않은 것이 아니던가.
"...령 님께서는 '신' 님이시니까요. 아름답고 자상하신 '신' 님. ...저는 언제나 령 님을 믿고 있어요."
희미하게 두 눈을 접어 웃어보였다. 비록 령 님과 엄청 자주 만나온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자신이 지금까지 마주했던 령 님의 모습은 언제나 늘 따스했었기에. ...이런 평범한 동물일 뿐인 자신에게조차도.
세 명의 인간들은 이내 다시 축제를 즐기러 가려는 참인지, 자신들에게 작별 인사를 건네왔다. 물론 그 와중에도 늑대인간 남자는 시비를 걸듯이 얘기해왔지만, 이어지는 박쥐 여자의 응징과 여우 여자의 가벼운 목례에, 자신 역시도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그리고 다시금 허리를 들어올리자 바로 옆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느릿하게 고개를 돌려 령 님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자신의 시야에 들어오는 령 님의 옅은 미소. 그에 자신 역시도 미소를 부드럽게 지어보였다. 그러나...
...아... 령 님께는 안 보이겠지요? 자신이 순간 흰 천을 뒤집어 쓰고 있다는 것을 깜빡해버렸다. 그렇기에 그저 두 눈만 깜빡깜빡하다가 이내 다시금 두 눈동자를 부드러이 접어 웃었다. 그리고 령 님께 혹시 해보고 싶은 것이 있으신지 여쭤보았다. ...령 님께서 해보고 싶은 것이 있으시다면, 저도 그것을 함께 해드리고 싶어요. ......령 님께서 더욱 행복하실 수 있도록.
이내 조용히 생각에 잠기는 령 님을 기다리면서, 느릿한 동작으로 그 때까지도 손에 소중히 잡아들고 있던 사탕과 초콜릿을 그제서야 천천히 호박 바구니 속에 넣었다. 바구니 안이 살짝 차자 괜히 뿌듯한 마음이 들어 헤실헤실, 희미한 미소가 새어나왔다. 그러다 령 님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다시 고개를 들어올렸다.
령 님의 손가락 끝을 따라간 곳에 닿은 자신의 눈동자에는 또다시 처음 보는 신기한 음식들을 파는 부스가 있었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맛있는 냄새가 코 끝을 간질이는 듯해, 자신도 모르게 살짝 킁킁, 코를 움직였다. 그리고는 한 박자 늦게 다시 령 님을 바라보면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왠지 맛있을 것 같아요. 처음 보는 음식 씨들 투성이지만요."
그래도 조금 기대되긴 했다. 만약 자신이 그대로 날개가 달려있었다면 작게 파닥파닥 움직였을 정도로. 이내 천천히 령 님과 함께 컵케잌 부스를 향해 옮기는 발걸음이 살짝 들떠보이는 것은 결코 착각이 아니었을 것이었다.
'신'님이라. 령은 고개를 저었다. 자신은 그렇게 맹목적으로 추앙받을 존재가 아니었다. 령은 그저 령일 뿐이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지. 가온이 그저 가온이고 백호가 그저 백호이며 리스가 그저 리스이듯이. 령의 검은 눈동자가 리스로 향한다. 그 모습이 조금 슬퍼보인 건 기분 탓이었을까?
"리스. 저는 그렇게 추앙받을 존재가 아니랍니다. 그러니 부디 그런 태도를 거두어주세요."
령은 그저 령이었다. 그래야만 했다. 누군가를 신으로 여기는 마음은 언젠가는 불행을 불러올 터였다. 그때 자신을 숭배하는 흑조 무리들이 저에게 다가온 인간 아이를 공격했던 것처럼. 령의 눈이 지긋이 감겼다 떠졌다. 아, 또 옛날 생각을 했나.
리스가 두 눈을 휘어 웃어보이자 이내 령의 미소도 더욱 짙어졌다. 아무튼 즐거워보이니 다행이었다. 령은 내심 안도했다. 리스가 자신과 함께하는 시간을 따분해하거나 라온하제로 돌아가고 싶어하면 어쩌나 싶었는데 그런 걱정은 단순한 기우였나보다. 령은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처음 보는 음식이라면 구경을 해야겠지요. 갑시다, 리스."
령은 상냥하고도 다정한 목소리로 리스에게 말을 걸며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지금 이 시간이 꿈만 같을 정도로 행복했다. 부디 리스에게도 좋은 추억을 쌓을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령은 속으로 빌었다.
리스와 함께 간 컵케잌 부스는 다양한 컵케잌을 팔고 있었다. 호박모양, 거미모양 등등 다양한 장식들을 초콜렛이나 사탕으로 만들어 컵케잌 위에 얹었다. 령은 컵케잌들을 둘러보았다. 딸기, 초코 등등 다양한 맛의 컵케잌이 있었다.
자신의 말에 령 님은 고개를 저었다. 조금 슬픈 듯한 검은색 눈동자를 마주했다. 이어서 들려오는 령 님의 말씀에, 멍한 눈동자가 살짝 크게 떠지고는 희미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령 님께서 슬퍼하고 계세요. 추앙 받을 존재가 아니라고 하고 계세요. 하지만 령 님께서는... 령 님께서는... '신' 님. "......"
보이지 않을 입술이 살짝 움찔, 느릿하게 열렸다가 닫혔다가를 두어 번 반복했다. 머뭇거리고 망설이는 모습은 묘한 혼란스러움이 희미하게 묻어나오는 듯 했다. 하지만 결국은...
"......령 님께서 그러시길 원하신다면... ...알겠습니다."
머리를 살짝 꾸벅, 숙였다 다시 천천히 들어올렸다. 멍한 눈동자가 더욱 몽롱해졌다. 하지만, 무언가 더 말을 덧붙이지는 않았다. 다만... 그저, 령 님께서 원하셨으니까요. 그러니... ...부디, 슬퍼하시지 말아주세요.
령 님의 '행복'을 기원하며 부드러이, 느릿하게 눈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러자 령 님께서도 그제야 다시 짙은 미소를 지어주셨고, 그에 안도감을 느끼면서 이어진 령 님의 상냥한 목소리에 한 박자 늦게 고개를 끄덕끄덕였다. 손이 더욱 부드럽게 잡혀지는 것이 느껴졌다. 잠시 서로 연결된 그 손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잠시 고민을 하는 듯 손가락을 머뭇머뭇거리다가 이내 마찬가지로 조심스럽게 령 님의 손을 잡았다. ...따뜻해요. 잠시 두 눈을 깊게 감았다. 구슬은 빛나지 않았다.
컵케잌 부스에 가보니 신기하면서도 예쁜, 각양각색의 처음 보는 컵케잌들이 가득했다. 그 컵케잌들을 이리저리 둘러보면서 두 눈동자를 살짝 반짝반짝 빛내며, 느릿하게 "...와아...!" 하고 감탄했다. 그러다 이어진 령 님의 물음에 뒤늦게 메뉴판에 시선을 두었다.
"...으음... 다들 너무 예쁘셔서 무엇을 선택할 지 고민돼요..."
호박 바구니를 든 손가락을 작게 꼼지락꼼지락거리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하지만 이내 곧 결정을 내렸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천천히 흰 천에 덮인 손을 들어올려 한 컵케잌을 가리켰다. 딸기맛인지 전체적으로 분홍색에 하얀 생크림이 위에 올려져 있고, 그 생크림 위에는 마녀 모자를 쓰고있는 잭 오 랜턴 모양의 초콜릿이 박혀있는 컵케잌이었다.
"...저는 저 귀여운 음식 씨를 맞이하고 싶어요."
령 님을 바라보며 헤실헤실, 희미하게 휘어진 눈동자에 묘한 기대감이 가득히 녹아있었다. 이어서 같은 질문을 령 님께 되돌려 물어보았다.
혼란스러움이 묻어나오는 눈동자를 마주보며 령은 생각했다. 아아, 나는 또 죄를 범하고 말았구나. 이때까지 신으로써, 고고한 흑조로써 다른 이들에게 추앙받고 특별한 존재로 여겨지던 게 몇번째던가? 아마 셀 수도 없이 많겠지. 령은 그런 걸 원치 않았다. 그저 다른 이들과 똑같은 삶을 원했을 뿐이다. 친구를 사귀고, 즐거이 놀고, 가끔은 맛있는 음식을 먹는 그런 삶. 하지만 다른 이들은 자신을 숭배했고 결국 제가 할 줄 아는 건 그들의 기대를 어그러뜨리는 것 밖에 없었지. 령은 눈을 질끈 감았다. 아무것도 보고싶지 않았다. 그녀는 어쩌면 숭배받는 게 무서운 것이었나?
리스가 알겠다는 말을 덧붙여왔다. 동시에 령의 밤하늘색 눈이 스르르 모습을 보였다. 더 이상의 숭배는 없는 것일까? 아아, 다행이다. 령은 마음이 놓였다. 이제 더 이상은 '신'으로써 있지 않아도 된다. 그저 편하게 다른 이들과 같이 평범한 삶을 즐겨도 된다. 령은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다만 겉으로는 특유의 아리송한 표정만 짓고 있을지도 모르지.
리스가 령의 손을 잡았다. 령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렸다. 리스의 손은 따스했다. 온기를 안고 있었다. 령은 그게 퍽 좋은 모양이었다. 령은 눈을 휘어 웃었다. 리스. 령이 조용히 리스를 불렀다. 그대가 제 옆에 있어서 다행입니다. 라는 말과 함께.
컵케잌을 바라보는 리스의 눈은 마치 어린아이 같았다. 반짝반짝 빛나는 호박색 눈동자가 예쁘다고도 생각했다. 령은 다시금 웃음을 지었다. 리스가 기뻐하니 다행이었다.
"과연 이곳의 컵케잌들은 모두 맛있고 예쁘게 생겼군요."
령은 리스를 보며 흐뭇해하다 그녀가 가리킨 컵케잌을 보았다. 분홍색에 흰 크림이 얹어져있고 마녀모자를 쓴 잭오랜턴 모양의 초콜렛으로 장식된 컵케잌이었다. 이제 령이 고를 차례였다. 령은 주위를 둘러보다 초콜렛색에 분홍색 크림이 얹어져있고 거미 모양의 초콜렛이 얹어진 컵케잌을 골랐다.
"그러면 주문을 하도록 하죠."
령은 카운터 쪽으로 다가가 리스와 제가 먹을 컵케잌을 주문했다. 주문하는 내내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는 건 덤이었다.
령 님께서 부탁을 해오셨다. 추앙의 태도를 거두어 달라고. 령 님께서는 '신' 님이셨다. 그 사실만큼은 변함 없이 자신에게 각인되어 있었고, 그로 인하여 자연스럽게 '신' 님께 대한 숭배의 태도를 갖추게 되었다. 하지만... 령 님께서는 그것을 원치 않으셨다. 아예 눈까지 질끈 감아버린 령 님은, 왠지 모르게 두려움이 느껴지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 모든 것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내 입술을 열어 목소리를 내었다. 령 님께서 원하신다면, 그에 대한 자신의 대답은 이미 정해져있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령 님께서 원하시는대로 해드리고 싶어요. 령 님께서 더이상 슬퍼하시지 않도록. 몽롱한 눈동자는 더욱 몽롱해졌다. 유령은 한 번 더 죽을 수 있을까. 령 님께서는 다시 스르르, 천천히 감았던 눈을 떴다. 깊고 아름다운 밤하늘색의 눈동자. 아리송한 표정의 너머로 왠지 모를 홀가분함이 느껴지는 것 같았던 건, 단순히 자신의 착각이었을까. 아니면 동물적인 감각이었을까.
조금 머뭇머뭇거리던 망설임 끝에 님의 손을 꼬옥 잡았다. 물론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는 자신이 이래도 되는지에 대한 혼란이 조금은 남아있었지만, 령 님께서는 부드럽게 눈을 휘어 웃었다. 이어진 속삭임과 다름 없는 조용한 말씀마저도 행복하신 것 같았다. 미약한 혼란이 령 님의 '행복'으로 녹아내려갔다. 그렇기에 그저 덩달아 부드러이 눈웃음을 짓는 것으로 대신했다. ...령 님께서 행복하시다면, 그걸로 괜찮아요. 목소리는 내지 않았다. 지키지 못할 말은 거짓말과도 같았다. 이어서 부스에 도착하여 처음 보게 된 컵케잌들은 하나같이 전부 다 예쁜 모양과 색채를 뽐내고 있었다. 그렇기에 차마 쉽게 고르지 못 하고 고민에 고민을 하다가 겨우겨우 하나를 선택해낼 수 있었다. 그러나 령 님께서 이어서 컵케잌을 고르고는 먼저 카운터 쪽으로 다가가 주문을 하자, 그저 멍한 눈동자를 깜빡깜빡이다가 한 박자 늦게 두 눈이 동그래지면서 반응이 튀어나왔다.
"...아... 앗...! 제가 령 님께 사드리려고 했는데..."
먼저 선수 치는 것에 실패해버렸다. 죄송하면서도 아쉬운 마음이 섞여 조금 시무룩하게 두 어깨가 아래로 처졌다. 하지만 이내 다시 령 님을 바라보았다. 굳은 결심을 눈동자 속에 살짝 빛내면서 고개를 작게 위아래로 끄덕였다.
리스는 저의 손을 꼭 잡았던가. 령은 리스의 체온으로 자신의 손을 녹였다. 문득 바람이 스쳐지나가며 딸랑딸랑 하는 소리가 울렸다. 방울소리였다. 령은 조용히 미소지었다. 이제 더 이상 옛날같은 숭배를 두려워하는 감정은 없는 거나 매한가지다. 령이 웃음을 보였다.
령이 리스를 내려다보았다. 리스는 얼굴을 거의 대부분 가리고 있어 뭘 생각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령은 좋았다. 다른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은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령은 리스의 손을 더욱 꽉 쥐었다. 리스에게서 나오는 온기가 령의 마음을 훈훈하게 뎁혀주었다.
리스는 저의 손을 꼭 잡았던가. 령은 리스의 체온으로 자신의 손을 녹였다. 문득 바람이 스쳐지나가며 딸랑딸랑 하는 소리가 울렸다. 방울소리였다. 령은 조용히 미소지었다. 이제 더 이상 옛날같은 숭배를 두려워하는 감정은 없는 거나 매한가지다. 령이 웃음을 보였다.
령이 리스를 내려다보았다. 리스는 얼굴을 거의 대부분 가리고 있어 뭘 생각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령은 좋았다. 다른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은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령은 리스의 손을 더욱 꽉 쥐었다. 리스에게서 나오는 온기가 령의 마음을 훈훈하게 뎁혀주었다.
컵케잌 부스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마 주문을 받을 컵케잌들이 다 하나같이 예쁘고 맛있어 보이기 때문이겠지. 령은 인산인해를 뚫고 주문을 하였다. 인파를 뚫는 일은 상당히 피곤했다. 인간들은 컵케잌을 정말 좋아하는 모양이다. 령은 그 생각을 하며 각자 다른 분장을 한 이들을 훑어보았다.
문득 제가 사려고 했다는 리스의 말이 들려왔다. 령은 그 말에 놀라 리스를 바라보았다. 괜찮은데. 굳이 안사줘도 자신은 괜찮았다. 령은 미소를 지었다. 그럴 필요는 없었다.
"괜찮아요, 리스. 할로윈에 시간을 같이 보내줘서 고맙다는 의미로 드리는 선물이라고 생각해주세요."
그 말을 마치고 령은 빙긋 웃었다. 주문한 컵케이크가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리는 모양이었다. 령은 그동안 리스를 바라보았다. 리스의 어깨가 축 쳐졌다. 어지간히도 아쉬운 모양이었다. 그렇게 마음 쓰지 않아도 괜찮은데. 령은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딸랑딸랑, 바람과 령 님의 방울이 함께 만들어내는 소리에 잠시 두 눈을 가만히 감고 귀를 기울였다. 령 님의 부탁. 물론 자신이 곧바로 숭배하는 태도를 버릴 수는 없을 것이었다. 일단 령 님께서는 '신' 님이 맞으셨고, 이것은 자신의 말버릇만큼이나 몸에 배어있던 것이었으니. 하지만...
...무려 령 님의 부탁인 걸요. 직접 부탁하셨는 걸요. 그러니까... 꼭 들어드리고 싶어요. 천천히, 조금씩, 조금씩. 그렇게 노력하다보면 언젠가는... 그것도 가능해지지 않을까요. 그 시간의 기간은 장담할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천천히 다시 감았던 두 눈을 떴다.
령 님과 함께 손을 꼬옥 붙잡고 간 부스에는 처음 보는 신기하고 예쁜 음식들이 많았고, 그에 달콤한 향기를 맡으면서 자신의 마음에 제일 쏙 드는 귀여운 컵케이크 하나를 선택했다. 물론 저것이 어떤 맛일지는 장담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인간 씨들이 많으신 걸 보면 전부 다 맛있지 않을까요?
부스에 바글바글하게 있는 인간들 역시도 제각기 개성 넘치는 분장을 하고 있었기에 그것을 신기하다는 듯이 멍하니 바라보던 중, 령 님께서 인간들 사이를 뚫고 주문을 한 것을 보고 뒤늦게 놀란 듯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죄송하고 아쉬운 마음에 자신도 모르게 조금 시무룩하게 두 어깨를 아래로 늘어뜨렸다.
"...하지만... 저만 받을 순 없는 걸요. 저도 똑같이 령 님께 감사하니까 뭔가 선물을 드리고 싶었는데..."
령 님께서는 괜찮다며 미소를 지었지만, 그럼에도 역시 시무룩한 것은 시무룩한 것이었다. 컵케이크가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동시에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기 시작했다. 령 님께서 짤막하게 말씀하신 말 때문이기도 했다. 령 님께서 받아주신다면, 꼭 좋은 것을 선물로 드리고 싶은데...
끄응, 끄응, 멍한 눈동자가 주변을 두리번두리번거리면서 이리저리 열심히, 느릿하게 굴러갔다. 그러다가 문득 발견한 한 부스.
"...아."
저기라면... 괜찮을지도 모르겠어요. 령 님의 선물을 꼭 사드리기로 결심하면서, 다시금 조용히 시선을 앞으로 돌리며 컵케이크를 기다렸다. ...부디, 좋아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방울이 다시금 딸랑였다. 이번에는 령이 제 머리카락을 만지고 있어서였다. 령은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눈을 깜박였다. 밤하늘을 닮은 검은 눈동자가 사라졌다 나타났다 했다. 지금의 령의 눈동자에는 슬픔이 담겨있지 않았다. 그것이 다행이었다.
령은 '신'으로써 숭배받는 것에 거부감을 느꼈다. 그것은 흑조시절 자신이 겪은 안좋은 일 때문이겠지. 령은 그저 제가 령으로서 존재하길 바랄 뿐이었다. 검무를 추고 방울 장식을 매달고 있고 온통 검은, 그것이 저를 나타내는 방식이었지.
령은 리스를 바라보았다. 이 자그마한 신은 자신을 신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괜찮은걸까? 령은 문득 리스가 걱정되었다. 리스가 자신을 신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다른 신들을 숭배하며 자신을 낮추는 게 과연 괜찮은 일인걸까? 령은 고민했다. 제가 리스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 과연 있을까?
부스에는 사람이 많았다. 각기 다른 분장을 하고 있는 인간들이 컵케잌을 주문하기 위해 줄을 서있었다. 령은 그런 인간들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흡혈귀, 악마, 요정 등등... 인간들은 다양한 분장을 하고 있었다. 할로윈은 정말로 큰 축제구나. 령은 새삼 그것을 실감했다.
"그 마음 하나로도 족하답니다. 그러니 너무 불편해하지 마세요."
령은 리스에게 빙긋이 웃어보이며 말했다. 리스의 어깨가 축 쳐진 걸 보고 손을 내밀어 리스의 어깨 위에 올려놓았다. 그 동작 하나만으로도 리스에게 괜찮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령은 대가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저 리스가 자신과 같이 있어주는 것만 해도 충분했다.
아, 령은 고개를 돌렸다. 제가 주문한 컵케잌이 나온 것이다. 이렇게 빨리 나올 줄은 몰랐는데. 령은 중얼거리고는 컵케이크를 받으러 갔다. 리스의 분홍빛 컵케잌과 저의 초콜렛빛 컵케잌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다. 령은 두 손으로 컵케잌을 들고 가 리스에게 분홍빛 컵케잌을 내밀었다.
자신은 '신' 님이 아니었다. 그 사실 하나만큼은 언제나 확고하게 자신의 마음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야 그것이 사실이었으니. 그러나 라온하제에서 만난 '신' 님들은 계속해서 자신에게 자신도 '신' 님이라고 말씀해주셨다. 도대체 왜 그래주시는 걸까요...? 그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신' 님의 깊고 깊은 생각을 저는 알 수 없는 것이 당연하겠지요.
아무튼 이어서 도착한 컵케이크 부스. 제각기 다양한 분장을 한 인간들이 북적북적이는 가운데, 령 님께서는 그 인파를 뚫고 주문에 성공했다. 하지만 령 님께 사드리리라, 하고 마음 먹었던 자신에게 있어서는 그것은 죄송스러우면서도 조금 시무룩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애초에 몸집도, 키도 작은 자신이 주문을 하려 했다가는 저 인파 속에 휩쓸려버릴 수도 있었겠지만.
"...그래도..."
그렇지만 여전히 아쉬운 마음은 한켠에 남아있었다. 비록 령 님께서 시무룩하게 아래로 쳐진 자신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려 미소를 지어보이셨지만. ...그래도, 역시 저도 령 님께 뭔가를 선물로 드리고 싶어요. 받기만 해서는 안 되었다. 꼭 보답을 해드리고 싶었다.
그런 굳은 결심을 마음 속에 품고 선물에 대해 생각하던 중, 령 님께서는 자신들 몫의 컵케이크를 가지고 돌아왔다. 분홍색과 검은색. 어쩐지 컵케이크도 령 님과 자신의 색채같다는 실없는 생각도 조용히 해보면서, 자신의 컵케이크를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아들었다. 그리고 허리를 살짝 꾸벅, 숙여 감사 인사를 표현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령 님. 맛있게 잘 먹을게요."
희미한 눈웃음을 보인 뒤 천천히 두 손으로 든 분홍색의 컵케이크를 입가로 가져갔다. 그런데...
"...아."
턱, 입을 가리고 있는 천에 막혀버렸다. 유령 분장을 하고 있다는 걸 깜빡했다. 입구멍은 뚫어놓지 않았는데... 어쩌죠? 잠시 바보 같이 끙끙, 두어 번 컵케이크를 입가에 가져가다가 이내 꼬물꼬물, 흰 천 안에서 느릿하게 천을 움직여 눈구멍이 입가 쪽으로 오도록 했다. 그러자 비록 시야는 보이지 않게 되었지만, 애초에 그것은 자신에게 있어서는 익숙한 것이었기에 아무렇지 않았다.
그렇기에 대신 손의 감각에 의존하여 컵케이크를 입가로 가져와 합, 한 입 작게 베어물었다. 그리고 잠시 우물우물거리고 있자 느껴지는 촉촉하면서도 달콤한 딸기의 맛. 그에 한 박자 늦게 희미하게 화아, 미소를 꽃피웠다. 아마 이제 령 님께 보일 것은 자신의 눈동자가 아니라 자신의 입술 뿐이었을테니.
"...와아... 진짜 맛있어요, 령 님! 딸기맛 빵 씨에 크림 씨, 무척 잘 어울려요. 이런 딸기맛은 처음이라 신기해요."
리스는 공짜로 얻어먹는 게 계속 마음에 걸리나보다. 령은 안쓰러운 눈으로 리스를 바라보았다. 정말로 자신은 괜찮았다. 리스에게 아무것도 받지 않아도 괜찮았다. 지금의 이 추억만 받을 수 있다면야 뭔들 아까울까? 령은 온화한 웃음을 띠며 리스를 바라보았다.
"저는 정말로 괜찮답니다. 음... 그럼 이건 어떨까요? 이 컵케잌을 먹은 다음엔 리스가 선택한 부스로 가서 리스가 돈을 내는 거예요. 어떤가요?"
자신의 머리로 생각한 건 고작 이정도의 절충안이 한계였다. 령은 사람좋은 미소를 지으며 리스를 바라보았다. 오늘따라 유독 리스의 색이 다른 눈동자가 어여쁘게 보였다. 령은 잠시 깜박 눈을 감았다 떴다. 리스는 제 말에 어떻게 반응하려나? 령은 속으로 궁금해했다.
주문한 컵케잌이 나왔다. 리스가 자신 몫의 컵케잌을 들었다. 령은 주문한 컵케잌에 꽂혀있는 거미모양 초콜렛을 먼저 맛봤다. 초콜렛 특유의 풍미가 아주 잘 느껴졌다. 맛있어라~. 그렇게 맛을 음미하는데 리스가 시야에 들어왔다.
저런, 리스는 입구멍을 뚫어놓지 않았구나. 령은 속으로 어찌할지 몰라 쩔쩔매었다. 저 유령 분장을 벗고 먹을 순 없을까? 아, 그러면 할로윈 컨셉에 안맞으려나? 게다가 리스 본인도 그걸 원하지 않는 것 같고... 그렇게 여러가지 생각을 하는 순간 리스가 눈구멍을 입에 가져다대면서 문제는 해결되었다. 령은 리스가 컵케잌을 먹는 모습을 보고 안심이 되었는지 한숨을 내쉬었다.
"맛있다니 다행이네요. 인간들의 음식은 맛있는 게 많으니까요."
령은 빙긋 웃고는 자신도 컵케잌을 한 입 베어물었다. 초코의 달달함과 크림의 부드러움이 느껴졌다. 맛있다. 령은 그리 생각하며 제가 먹은 컵케잌을 바라보았다. 인간들은 정말 대단해. 이렇게 맛있는 음식도 개발하고.
계속해서 자신이 조금 시무룩한 모습을 보이자, 이어서 령 님의 제안 하나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에 한 박자 늦게 놀란듯이 숙였던 고개를 번쩍 들고 커진 두 눈동자를 깜빡깜빡여 보였다. ...제 계획을 령 님께서 알고 계세요...! 혹시 령 님께서는 독심술도 쓰실 수 있으셨던 걸까요? 아니면 제 얼굴에 써있다거나...?
잠시 한 손으로 자신의 얼굴 부근을 매만졌다. 하지만 느껴지는 것은 오로지 흰 천 뿐이었다. 그렇다면 령 님께서는 어떻게 아신 걸까요? 역시 '신' 님이시라는 생각에 궁금증이 령 님에 대한 존경과 숭배심으로 차츰 변해갔지만, 그것을 애써 얘기하지는 않았다. ...령 님께서 부탁하셨으니까요. 그러니...
고개를 작게 끄덕끄덕이면서 흰 천으로 뒤덮인 자신의 두 손을 꼬옥, 주먹쥐어 보였다. 나름대로의 강한 결심의 빛이 두 눈동자에 살짝 반짝반짝였다. 그곳에서는... 제가 꼭 령 님께.
이어서 컵케이크를 공손히 받아들었다. 그러나 먹으려던 찰나, 문제 하나가 발생해버렸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입구멍이 없다는 것. 물론 이 흰 천을 벗어버린다면 바로 먹을 수 있겠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그야 지금 이 안에는...
하지만 다행히 다른 방법을 찾아내어, 꼼지락꼼지락거리며 흰 천을 움직였다. 그리고 눈구멍 쪽을 입가로 가져와 무사히 컵케이크를 한 입 베어물었다. 빵 같으면서도 묘한 딸기맛과 달콤한 향이 느껴지는 신기한 음식. 태어나서 처음 맛보는 맛에, 뒤늦게 화아, 희미한 미소를 지으면서 감탄했다. 비록 시야가 천에 가려져 령 님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이어서 들려오는 령 님의 목소리와 온 몸으로 느껴지는 공기와 분위기. 그 모든 것들에서 령 님의 컵케이크 역시도 다행히 맛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평화롭고 즐거운 분위기. 그 속에서 한 입 더 컵케이크를 베어물고는, 령 님께서 계신 쪽으로 두 손을 뻗어 컵케이크를 내밀었다. 희미한 미소가 구멍 사이로 한 박자 늦게 덧붙여졌다.
이후에는 따로 할 말도 없었으며, 그런 명분도 없었던지 설은 잠시 축제 분위기가 물씬하여 왁자한 거리를 지켜본다. 단내가 풍기는 노점에서는 사과를 통째로 물엿을 씌운 듯한 사탕이나, 늙은 호박을 설탕에 졸여서 만든 파이 따위의 물건도 팔고 있는 모양이다. 동양적인 분위기인듯 하면서도 서양적인 복식과 축제, 기묘한 조화였지. 애초에 한국 쪽의 신 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찾아와 살고 있으니 아사의 말대로 그리 신경쓸 만한 일은 아니였던가. 아직 쿠키가 남아있는 바구니를 팔 한쪽에 끼운다.
"계속 여기서 사탕을 나누어줄 계획이야?"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세설이였다. 평소와 다르게 그냥 한 말이라기 보단 무슨 궁리가 있어 고민 끝에 꺼낸 말인 듯 하였다. 버릇처럼 두루마기 소매 안에 손을 넣으려다, 입던 복식과 다르다는 것을 깨달은 듯 팔짱을 끼었다.
"목적도 비슷한 것 같은데. 이동하면서 나누어주는 편이 좋을 것 같네. ...빨리 바구니를 비우고 떠나고 싶고 말이다."
관리자들과는 딱히 척을 진 사이도 아니였었나. 목적이 통한다면 같이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거라는 의견을 제시한 세설은 아사를 바라본다. 거절이라면 미련없이 따로 다닐 생각일테지.
- 늦장...죄송합ㄴ대... 일찍 잠드는 바람에 못왔네요... (그리고 새벽에 깨어난 사람이다)
령은 리스가 놀라자 어리둥절해했다. 그야 당연했다. 자신은 그저 리스가 시무룩해하는 것이 못내 걸려서 제안을 한 것일 뿐. 실질적으로는 리스가 어떤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는 알지도 못하니까. 령은 잠시 눈을 깜박이며 리스를 바라보았다.
"리스?"
령은 리스가 이상하다고 느낀 것인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리스와 눈을 맞췄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일까? 리스가 왜 이러지? 령은 그녀의 표정을 주의깊게 살폈다. 하지만 유령 분장 때문에 쉽지가 않았다. 흰 천에 리스의 표정이 가리워져 있었으니까.
"좋습니다. 그럼 다음 부스에서는 리스가 돈을 지불하는 걸로 하죠."
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약속도 했으니 리스가 더 이상은 불편해하지 않겠지. 령은 다시 몸을 일으켰다. 리스가 자신 때문에 불편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령은 그 소망을 마음속에 품었다. 자신은 리스를 즐겁게 하고싶어 했으니까.
리스가 웃는다. 컵케이크가 오죽 맛있었으면 그런 표정을 지을까? 령은 환히 웃는 리스의 입을 보며 미소를 지어보이고는 자신도 컵케이크를 한 입 베어물었다. 달달한 초코맛이 마음에 들었다. 그러고보니 커피맛 컵케이크는 없는 걸까? 자신은 초코맛도 좋았지만 커피맛을 제일 좋아하니까.
그때였다. 리스가 제게로 컵케잌을 내밀었다. 령은 리스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무슨 일이지? 아, 리스는 저에게 컵케잌을 먹겠냐고 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서로 교환해서 먹으면 되지 않을까? 령은 제 컵케이크를 리스에게로 내밀었다.
"좋습니다. 그럼 제 것도 드셔보시겠어요? 초코맛이랍니다."
령은 그렇게 말하며 컵케이크의 일부분을 조금 떼어서 먹어보았다. 상큼한 딸기맛이 입 안에 퍼졌다. 맛있어라.... 령은 기분좋은 웃음을 지었다.
"사탕을 나누어주는 건 계속 할 거지만..." 원한다면 같이 다녀줄 수는 있어. 라고 덧붙입니다. 혼자 나눠주는 것보다는 누가 곁에 있는 게 더 좋을 지도 모르잖아? 라고 생각을 한 건지 고개는 끄덕입니다. 그리고 이동하면서라는 것에 좋은 생각이라고 생각해. 라고 말하려 합니다.
"그럼 이 지역 전체를 돌아다니며 줄 거야?" 일단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 물어보려고 합니다. 아니면 라온하제 전체로 돌아다닐 거야? 라고도 물어보려 하는군요.
"뭐든간에 나 사탕이랑 젤리랑 그런 거 엄청 많이 갖고 왔거든." 뭐든 괜찮아. 라고 덧붙이려 합니다.
...아. 령 님께서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눈을 맞춰주었다. 멍한 두 눈동자로 령 님의 검은 눈동자를 마주하다, 이내 한 박자 늦게 반응했다.
"...네?"
...령 님께서 왜 걱정스럽게 저를 보시는 걸까요...? 그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이렇게 직접 자신과 눈을 맞추며 자신의 표정을 살펴주는 령 님의 친절이 낯설도록 따스했을 뿐. 그렇기에... 그저 희미하게 웃어보이는 것으로 대답했다. 언제나와 같이, 옅은 미소로.
"...네, 다음엔 꼭 제가 내고 싶어요. 제 차례예요...!"
주먹까지 살짝 쥐어보이면서 고개를 작게 끄덕끄덕였다. 나름대로의 굳은 결심과 다짐의 몸짓이었다. 더이상의 불편함이나 아쉬움은 없었다. '다음'이라는 기약은 그러했다.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것이었다. '신' 님과 함께 하는 약속에 거짓이란 존재할 수 없었으니. 잠시 기도를 올리듯 두 눈을 깊게 감았다가 느릿하게 떴다.
령 님과 함께 즐기는 컵케이크는 신기하고도 달콤한 딸기맛을 품고 있었다. 맛있는 것을 그다지 많이 먹어보지 못한 자신에게 있어서 이런 인간들의 음식들은 언제나 놀라운 경이, 그 자체였다. 그렇기에 입가에 희미한 웃음이 화아, 피어났다. 그리고 느릿한 동작으로 령 님께 자신의 컵게이크를 두 손으로 내밀었다. 이 맛을 령 님께서도 맛보셨으면, 했기에.
그런데 그것은 이내 자연스럽게 령 님과의 컵케이크 교환으로 이어졌다. 령 님의 말씀에 얼떨결에 받아든 컵케이크. 잠시 흰 천을 다시 움직여 구멍을 눈에 맞추고는, 자신이 받은 령 님의 컵케이크와 령 님을 멍하니 번갈아 바라보다가 뒤늦게 핫, 정신을 차렸다.
"...그, 그럼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령 님...!"
꾸벅, 허리를 살짝 굽혔다 폈다. '신' 님과 교환한 음식. 영광스러운 마음이었다. 령 님께서 먼저 자신의 컵케이크를 먹고 기분 좋은 듯이 웃는 것을 보며 안도의 미소를 작게 지었다. 그리고 천천히, 자신 역시도 령 님의 컵케이크를 두 손으로 조심히 들어 작게 한 입 크기로 떼어 먹어보았다.
"...! 이것도 맛있어요...! 컵케이크 씨는 이렇게 달콤한 빵 씨였군요. 이렇게 맛있는 음식 씨를 알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령 님."
다시금 희미한 미소를 헤실헤실 지어보였다. 그리고 잠시 아까 봐두었던 부스를 확인하고는, 다시금 고개를 돌려 령 닝을 바라보았다.
"...사실 제가 가보고 싶은 곳을 발견해서... ...혹시 령 님께서 괜찮으시다면 같이 가주실 수 있나요?"
혹여나 무슨 일이 있을까 싶어서 불렀지요. 령은 리스를 바라보며 차근차근 자신이 왜 불렀는지 설명해줬다. 행여 리스가 너무 놀란 건 아닌지 걱정스러운 마음이 가득했다. 아까전에 자신이 한 제안에서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것일까?
다음엔 자신의 차례라고 말하는 리스에게 은은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래. 다음엔 리스 차례인게다. 그리고 그 다음은 자신의 차례고... 이런 식으로 반복해나가면 리스도 미안한 마음을 조금 덜 품을 수 있지 않을까? 령은 그런 생각을 하며 리스를 바라보았다.
이거 조금 웃기는 걸. 리스의 컵케이크를 받아든 령은 그리 생각하였다. 컵케이크를 교환하는 모양새가 되어버렸잖은가? 령의 얼굴에 자연스레 미소가 떠올랐다. 그렇게 해서 먹은 리스의 컵케이크는 딸기맛이었지. 정말 맛있었다. 령은 리스의 얼굴을 바라보고는 문득 리스와 이 컵케이크 둘 다 분홍색이라는 걸 눈치챘다. 둘 다 잘 어울리네. 령은 그리 생각하며 큭큭 웃었다.
"제게 감사할 필요는 없어요. 저는 그저 인간계에도 이런 맛있는 음식이 있구나 하고 발견한 것에 그치니까요."
그래도 다음에도 맛있는 음식이 보이면 리스한테 꼭 알려주도록 할게요. 령은 리스에게 그리 약조해보였다. 저번의 머랭 쿠키도 그렇고 이번의 컵케잌도 그렇고 리스에게 맛있는 음식에 대해 알려주는 건 소소한 재미가 있었다. 다음엔 무슨 음식을 알려줄까? 령은 그리 생각하며 리스에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가보고 싶은 곳이요?"
령은 깜짝 놀라 반문했다. 그새 가보고 싶은 곳이 생겼나? 물론 당연하게도 령은 리스와 함께라면 그곳으로 갈 터였다. 령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승낙의 의미였다.
음..이대로 조용히 있는 것보다는 저도 뭐라도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겠지요. 사실 이 시리즈는 2기에서 끝을 낼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뭔가 제가 수인과 화인 스레가 엄청 끌리기 시작해서...한번 그 관련으로 스레를 세워볼까 하다가.... 생각해보니 이 세계관에 수인이 있었잖아. 은여우 전설! 이러면서 원래는 3기 계획이 없었지만 외전 형식으로 이 세계관을 끌고 와서 수인과 화인 세계관을 만들어서 스레로 만들었답니다!
령 님께서 걱정스런 표정을 지으셨던 이유를 차근차근히 설명해주시자, 그제서야 멍한 두 눈을 깜빡깜빡였다. ...저를 향한 걱정... 가슴 한 구석이 어딘가 모르게 아려오는 듯 했다. 보이지 않을 흰 천의 안으로, 가슴이 작게 찌릿거렸다.
"...그냥, 령 님께서 제 속마음을 읽고 제 계획을 알아차리신 것 같아서 신기해서 저도 모르게 그랬답니다. ...걱정해주셔서 정말로 감사해요, 령 님. 저는 괜찮아요."
오히려 기쁘다면 기뻤다. 살짝 허리를 굽혔다 펴고 난 얼굴에서는 조금은 짙은 미소가 환하게 피어나있었다. 가슴의 찌릿거림이 령 님의 따스함에 담겨져 차츰차츰 물들어갔다.
어쩌다보니 자연스럽게 서로가 서로의 컵케이크를 교환하여 먹어본 지금. 령 님을 닮은 검은색에 가까운 컵케이크는 새롭고 신기한 맛을 자신에게 알려주었다. 처음 먹어보는 듯한 달콤함. 초코맛... 이라고 하셨죠? ...혹시 빵 씨가 초콜릿 씨에게 담겨지면 이 컵케이크 씨가 되는 걸까요? 나름대로 머리를 골똘히 굴리며 컵케이크의 레시피를 생각해보았다. 그렇게 컵케이크를 향하던 시선을 들어올려, 이내 이어진 령 님의 말씀에 대답했다. 드물게 곧바로 나온 대답이었다.
"아니요, 저는 령 님께 정말로 감사해요. 저 혼자였다면 전 평생 동안 이런 컵케이크 씨도 몰랐을 테니까요. 그러니까... 다시 한 번 정말로 감사합니다, 령 님. ...혹시 저도 맛있는 음식 씨를 발견하게 된다면 령 님께 꼭 알려드릴게요...!"
령 님의 약조에 자신 역시도 같은 약조를 걸며 고개를 작게 끄덕끄덕여 보였다. 희미한 미소는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담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자신의 부탁에 깜짝 놀라던 령 님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 승낙의 뜻을 보이자, 기쁜듯이 화아, 하는 미소가 조금 더 짙어졌다.
"...감사합니다, 령 님! 이 쪽... 에... 가면..."
살짝 망설이듯 손을 꼼지락거리다가 그대로 령 님의 새끼 손가락 하나를 살짝 잡고 천천히 앞장 서서 나아갔다. 인파들을 조금은 끙끙거리면서 어떻게든 헤쳐나가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작은 악세사리들을 파는 부스. 목걸이, 팔찌, 반지, 귀걸이, 등등 다양한 악세사리들이 보기 좋게 테이블 위에 놓여져 있는 가운데, 령 님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리고는 헤실헤실, 희미하게 웃어보였다.
"...령 님을 위한 선물을 드리고 싶어서... 혹시 이 중에서 원하시는 것이 있으신지 여쭤봐도 될까요, 령 님?"
사실 가온이의 비설은 이미 옛날에 풀렸지요. 아주 초기에 말이에요. (끄덕) 백호는 정말 딱히 없고 말이에요. 굳이 있다면...두 신이 처음 만났을 때의 관계라던가...? 100일 극장판 시나리오의 주요인물이 누리라고 한다면 200일은 가온이 될 듯 하네요. ....가온이 쪽은....음..아마 가온이가 정말로 날뛸지도 모르지만..이것은 또 100일 후를 기약해주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