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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계에서는 지금이 추석 연휴라고 들었느니라. 그렇다면 내가 추석 연휴를 잘 보냈을터니 선물을 주겠느니라."
가온이 이 곳의 신들을 보호하려는 듯이 앞장을 서지만... 글쎄, 그가 가지고 있는 힘 만으로도 무리일 것이 뻔하다. 설상가상으로 여기의 신들 중, 유일하게 힘으로 압도할수 있는 이는 저 모양이다. 갑작스래 무언가에 질린 듯이 벌벌 떠는 누리를 보고 혀를 찬다.
...당연하게도 지금의 나로서는 상대도 되지 않는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불안정하지만 그것만큼은 확정된 사실이였다. 그대로 덤볐다가는 아마 내 쪽에서 나가 떨어질 운명이겠지. 애초에 疫鬼도, 修羅도 아니니ㄲ...
...역시 마음에 안 들어.
보기만해도 역겨운 검은색 기운도, 이런 신파극도, 그리고... 상황을 따져가며 회피하려고 하는 나도. 언제부터 얌전한 척 순한 척 다 해왔다고? 항상 그래왔었잖아. 별의 별 모습으로 꾸며지고 변해왔어도 그런 척 만큼은 정말 어울리지 않는 것 아니였나? 상대를 가리지 마. 너의 방식은...
"하하...봐줄만 한 구석이 없네."
투덜거리듯이 입안에서 내뱉어진 소리였다. 조금 전 무의식적으로 했던 행동처럼, 그러나 확실한 움직임으로 옆으로 손을 뻗었다. 공기의 흐름이 불안정하게 흔들린 자리에는 어느새 키 만큼 커다란 월도 하나가 나타난다. 칼날의 끝이 향하고 있는 대상은 어미 고양이가 아니였다. 그 거대한 뱀 신. 그것도 감히 목을 노리고.
아이온 씨는 목덜미를 잡아서 아기고양이를 이쪽으로 데리고 왔다. 그러자 아기 고양이는 아이온 씨의 손에 잡힌채로 냐옹, 냐옹 소리를 내면서 온 몸을 바둥거렸다. 그리고 떨고 있는 누리님을 리스 씨가 달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세설 씨가 뭔가 커다란 월도를 하나 꺼내들었고, 칼 끝을 저 악신에게 옮겼다. 하지만 악신은 피식 웃으면서 세설 씨를 바라보면서 이야기했다.
"칠건가? 그 칼로? 악신이 왜 악신인지 알고 있니? 너는?"
".....!"
이어 악신의 몸에서 검은색 빛이 멤돌았고, 그와 동시에 월도가 천천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검은 소멸하듯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 모습에 세설 씨는 어떤 생각을 할까? 그와는 별개로 그 악신은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악신이라는 것은 신과 인간들에게 재앙을 내리는 신이지. 그것이 어떤 재앙이건 가볍게 내릴 수 있는 것이 바로 악신이야. 그런 월도 하나를 가지고 나를 치겠다고? 악신이라는 것이 왜 무서운지 잘 모르는 모양이군. 그 날개를 꺽으면 지금 무슨 상황인지 잘 파악이 될 것 같아?"
"그만 둬! 그 이상 건들지 마!"
"건들지 않아. 그러니까 그 아기 고양이만 내놔. 그럼 나도 일단은 물러가도록 하지. 애초에 내 먹잇감은 아기 고양이니까. 그리고, 나도 굳이 고위신 중 하나인 은여우의 영토에서 살고 있는 이들과 괜히 투닥거리고 싶진 않으니까. 그러니까 이게 내가 최대한 하는 양보야. ...목숨은 아깝잖아? 안 그래?"
그렇게 제안을 하는 와중에도 그 고양이의 어미는 계속 그르렁거리면서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을 모면할 수 있을까? 그것은 알 수 없었다.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늑대 발톱을 꺼내들고 두 쪽에서 함부로 이쪽으로 오지 못하게 막는 것 뿐이었다.
하지만, 왜일까? 저 고양이의 어미되는 신은 으르렁거리기만 할 뿐, 이쪽으로 공격할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시선은 바둥거리는 아기 고양이에게 고정되어있었다.
//그럼 반응레스를 부탁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의 행동은 자유롭습니다! 공격해도 괜찮고, 도망치려고 시도해도 괜찮고, 저 어미를 어떻게 하는 것도 괜찮고 아무튼 그렇습니다. 8시 30분까지 받습니다!
"괜찮아. 완전히 안전한 건지에 대해서는 모르겠지." 너는 어미의 곁에 가고 싶은 거니? 라고 물어보려 합니다. 내가 지금은 알아들을 수 없으니 고개라도 끄덕거리는 게 어떻겠니? 라고 옅게 웃었습니다. 무척이나 사악해보이는 미소라는 게 흠이었을까요.
"네 어미는 지금 악신의 꼭두각시인데도?" 네 의사를 부정하진 않지만. 이라고 속삭이듯 말하려 합니다. 지금 공격은 하지 않으려 하지만, 네가 어미에게 다가가면 조종하여 널 바치게 하겠지. 그래도 좋다면 놓아줄 수 있지. 단 가온이나 나와 같이 간다는 가정하에. 라고 속삭입니다. 그리고 뱀이 말하는 것을 듣습니다.
"무지렁아. 아기 고양이를 먹겠다고 했는데. 그걸 놓아두면 이름이 울지 않겠니." 은여우의 영토에 사는 이들을 건드리기 싫었다면 들어오기 전에 했었어야 하지 않았니? 라고 비틀린 무척이나 사악해보이는 웃음을 지었습니다. 오. 하필이면 지배자의 딸에게 걸려서라고 운이 좋은 것 취급을 하진 않겠지?
험악할 정도로 곤두선 분위기로 대치하고있는 악신과 라온하제의 주민들을 바라보며 그는 한 발 불러선채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신경쓰이는 것은 그 뿐만이 아니었지만 저 악신이 세설과 비슷한 수준의 신이 만들어낸 물건을 간단히 없애버릴 정도로 강력하다면 아마 상당한 주의를 기울이는 편이 좋을것이라고 우선 생각했다. 전력을 가할 생각이 아닌이상, 서로가 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활용해야한다.
"한낱 아기고양이라 해도 소중히 여기는 이들이 있는이상 외면할 수는 없다, 뱀신. 뱀신이라, 사우가 연상되는 특징이긴 하다만..."
모든 '신' 님들은 각자 뭔가 행동을 하시기 시작했다. 아예 공격 자세를 취하며 경계 태세를 보이시는 신 님도 계셨고, 그저 상황을 살펴보시는 신 님도 계셨다. 자신은 그저 누리 님을 달래드리려 애쓰며, 우선 상황을 지켜볼 뿐.
하지만 세설 님의 커다란 월도가 소멸하듯이 사라지는 모습에 정말로 깜짝 놀라 멍한 두 눈동자를 크게 떴다.
"...아..."
멍한 소리가 새어나왔다. 악신 님께서는 이내 비웃음이 섞인 말을 내뱉으셨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거래를 하나 제안해오셨다. 아기 고양이 씨를 내놓으면 물러가겠다. ...하지만... 그 말씀을 믿을 수 있을까요? 정말로 믿을 수 있는 걸까요...?
불길하고 불안했다. 모든 것들이 불안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한 가지 마음만은 확실했다. ...아기 고양이 씨를... 내드릴 순 없어요. 아기 고양이 씨는 지켜드려야 해요. 그것이 바로 저 고양이 신 님께서 저희에게 부탁하셨던 것. 마지막 정신력을 쥐어짜내시면서 하셨던 부탁. ...그러니...
고개를 돌려 어미 고양이 신 님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의 끝에는 바둥거리는 아기 고양이 씨가 닿아있었고, 그에 한 번 더 마음이 찢어지는 듯이 아픈 기분을 느끼면서 자신도 모르게 어두운 표정으로 아랫입술을 꼬옥 깨물었다. ...하지만...
우선 저 어미 고양이 신 님께서 정신을 차리시도록 하고 싶어요. ...'신' 님. 당신의 능력을 제가 감히 사용하는 것을 용서해주세요. 그리고... ...부디 저에게 힘을 주세요.
[아기 고양이 씨. 저는 우선 저 고양이 신 님을 진정시켜 드리고 싶어요. 조종에서 깨어나시도록 해드리고 싶어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이 텔레파시 능력으로 어미 고양이 씨께 같이 말을 걸어주셨으면 해요. ...부디 저와 함께 해주실 수 있나요?]
우선 제일 먼저 아기 고양이의 눈동자를 가만히 바라보면서 텔레파시를 보내려고 시도하며 의지에 담긴 눈동자를 보였다. 그리고 이내 다시 고개를 돌려 어미 고양이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구슬은 더욱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신 님. 저의 목소리가 들리시나요? 아기 고양이 씨의 목소리가 들리시나요? 부디 정신을 차려주세요...! 아기 고양이 씨를 보호하고 지키는 데에는 신 님께서 필요해요...! 아기 고양이 씨와 함께 행복해지실 수 있도록 도와드릴테니, 그러니...]
"...부디 정신을 차려주세요..."
마지막 말은 희미한 중얼거림으로써 새어나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미 고양이의 눈동자를 바라보는 이질적인 눈동자는 회피하지 않았다. 그렇게 계속해서 어미 고양이의 진짜 정신 속에 말을 걸 수 있도록 텔레파시를 보내보려 했다. 악신 님께는 대답하지 않았다. ...죄송해요, 악신 님. 하지만 전...
령 씨와 세설 씨가 검을 들고 저 사악한 악신을 베려고 하는 것이 보였다. 그 검이 악신에게 닿는 순간, 그 검을 통해서 검은색 불꽃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는 것과 동시에 나는 두 신을 뒤로 확 끌어왔다. 만약 그대로 뒀으면 검은 불꽃이 그대로 검을 타고 흘러, 령 씨와 세설 씨의 몸을 태웠을 것이다.
"괜찮으십니까?!"
악신이란 이래서 보통 귀찮은 존재가 아니다. 정말 피래미라면 모를까. 진짜로 제대로 사악한 힘이 깃든 악신의 경우에는 제거하려면, 고위신들이 움직여서 '정화'를 하지 않으면 안되니까.
그와는 별개로 모두는 고양이는 넘겨줄 수 없다고 말을 해왔다. 그러자 사악한 악신은 피식 웃으면서 우리에게 말해왔다.
"그렇다면 너희들도 모두 잡아먹으면 그만인 일이야! 특히, 거기 박쥐 신 너. 나를 다른 신에게 비교하지 마라! 아무튼 자. 공격해라!"
"....크르릉.."
바로 고개를 저 고양이의 어미인 신에게 돌렸다. 하지만 그 고양이의 어미인 신은 움직이지 않고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무엇이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진 모를 일이었다.
ㅡ냐옹, 냐옹, 냐옹.
조용히 들려오는 고양이의 울음소리. 그리고 그르렁거리는 저 고양이의 어미는 움직이지 않고 매서운 눈빛으로 그 고양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하는거야! 빨리 공격하지 않고!!"
".....키와아아앙!!"
이어 그 고양이의 어미는 높게 뛰어올랐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들에게 덤벼드는 것이 아니었다. 저 거대한 뱀신을 향해서 달려들었다. 자신에게 달려드는 모습에 악신은 당황했는지 단번에 고양이의 어미 신에게 깔렸다. 바둥바둥거리면서 뱀 신은 벗어나려고 시도했고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누리님을 바라보았다.
"누리님! 정신차리십시오! 지금이 기회입니다! 어서 저 악신의 정화를...!"
".....으읏..."
누리님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아마도 여전히 그때의 기억이... 그것을 실감하면서 나는 모두를 바라보면서 부탁의 메시지를 전했다.
"여러분에게 죄송하지만, 누리님이 진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지 않겠습니까? ...악신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정화 이외에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일단, 저는 저대로 시간을 벌어보겠습니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이어 나는 발톱을 세우고, 악신에게로 돌진했다. 남은 것은 시간이 어떻게 해결을 하느냐에 달려있었다.
검은 불꽃이 검을 태웠다. 가온이 령을 끌어당겼다. 령은 검을 놓치고 순식간에 가온이 있는 곳으로 날아왔다. 안돼... 저 검은 소중한 것인데. 아쉽다고 생각한 것도 잠시, 어미 신이 뱀에게로 달려들었다. 령은 그 광경을 무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누리를 바라보았다. 누리는 아직도 벌벌 떨고 있었다. 령은 누리의 어깨를 잡았다.
"누리, 잘 들어. 네가 무엇 때문에 아파하는지 나는 몰라. 나는 라온하제에 오기 전에는 너와 관련이 없던 일개 흑조 신일 뿐이니까. 하지만 이거 하나는 명심해줘. 이 어린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건 너 뿐이야. 우리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지만 너는 저 악신을 정화할 수 있잖아. 누리, 그러니까 제발 정신을 차려줘!"
령은 간절하게 누리에게 말했다. 통할지 아닐지는 알 수 없었으나 적어도 뭐라도 했다는 노력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