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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플라밍고 수인 신이 살고 있는 곳은 아마 이곳 아니었던가? 은호님에게 물어보니 이곳일 거라고 하던데. 내가 들은 정보를 떠올리면서 나는 두리번두리번거리면서 벚꽃나무 숲을 둘러보았다. 다솜 지역의 명소인 벚꽃나무 숲은 오늘도 아름답게 분홍빛 벚꽃 잎이 솔솔 떨어지고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가리의 단풍도 예쁘지만 역시 이곳의 벚꽃나무도 상당히 예쁜 편이기에 올 때마다 와아, 소리가 지어졌다. 이 벚꽃 잎으로 벚꽃 차라도 달여먹어볼까? 그런 생각으 하기도 하며 나는 벚꽃나무 숲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여기 어딘가에는 있을 거라고 말을 하지만, 그래도 외출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일단 조금 더 둘러봐야겠다고 생각하며 나는 두리번두리번 숲 안을 찾아보았다.
"어디에 있을까? 그 귀여운 수인은?"
두리번, 두리번. 그렇게 둘러보면서 나는 나무 사이사이를 천천히 지나다가 그 아이의 이름을 크게 불러보았다. 혹시 듣고 나타날지도 모르니까.
이 곳은 다솜. 분홍빛 벚꽃잎들이 가득한 곳. 물론 다솜은 그 특성 상 봄의 기운이 흐르는 지역이니만큼 벚꽃 말고도 다양한 꽃들이 가지각색, 제각기 서로 다른 색으로 물들어 피어나는 곳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은 바로 이 벚꽃나무 숲. 다솜의 명소이기도 한 이 곳의 색깔은 보통 한 가지 뿐이었다. 바로, 분홍색.
......꼭 저 같은 색이예요. 가만히 벚꽃나무의 나뭇가지에 걸터앉아 자신의 색깔과 비슷한 그 속에 파묻혀있었다. 이질적인 색의 두 눈을 감으면, 더더욱 분홍빛만이 가득해지겠지. 하지만... ...저의 색깔은...
"......?"
몽롱히 생각에 잠겨있던 그 때, 어디선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한 박자 늦게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얼핏 보이는... 분홍색 속에 섞여있는 하얀색...?
...백호 님...? 다시금 한 박자 늦게 멍한 두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 그러나 움직임은 제법 재빠르게, 황급히 날개를 펼쳐내어 허공을 가로질러 백호 님 쪽으로 날아갔다. 그리고는 날갯짓의 속도를 느릿하게 줄이면서 맨발을 살며시 땅에 딛고, 두 손을 가지런히 앞에 모았다. 동시에 분홍색의 날개를 접으면서 백호 님께 꾸벅, 허리를 숙여 인사를 올렸다.
"...안녕하세요, 백호 님. 이렇게 만나뵙게 되어서 정말 영광이예요. 백호 님의 부름에 늦게 응답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저를 직접 불러주시다니... 혹시 무슨 일이 있으신 것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백호 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새어나와, 괜히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면서 백호 님을 살며시 올려다보았다.
이름을 부르자 머지 않아, 저 위에서 리스가 땅으로 착지하는 모습이 보였다. 내려오는 모습이 벚꽃잎 때문인지 분홍빛인 것이 정말로 예쁘네. 진짜 예쁘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 아이를 바라보았다. 내려오자마자 가지런히 두 손을 모아 날개를 접고 인사를 올리는 그 모습에 나는 괜찮다는 듯이 손을 저었다. 이런 인사를 받아도 곤란할 뿐이고 말이야.
"됐어. 됐어. 그렇게 예의 차리지 마. 내가 고위신도 아니고, 너하고 똑같은 레벨의 신일 뿐이야. 물론 너는 부정하겠지만 말이지. 너에 대한 것은 은호님에게 들었고 말이야. 하지만 실제로 너는 신이고 나도 신. 그것으로 오케이. 그리고 일이 있어서 찾아왔다기보다는... 그냥 궁금해서 말이야. 너, 조만간에 있을 경주 대회에 나올 생각이니?"
이 아이는 전에 보니까 뭔가 상당히 이런 쪽으로는 잘 모르는 것 같아서 조금 불안하단 말이야. 그런 느낌이 들어서 설명이라도 하는 것이 좋겠다 싶어서 찾아온 것이었다. 알고 있다면 다행이지만 모른다고 한다면, 이것은 설명을 할 필요가 있으니까 말이야. 그렇기에 확실하게 이 아이가 얼마나 알고, 얼마나 모르는지 알기 위해서 나는 리스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애초에 카트라는 것이 뭔지 너는 알고 있어? 아...그리고 이건 궁금증인데, 발에 하고 있는 그건 뭐야? 발찌? ...왜 그걸 발찌로 하고 있어? 아니, 하지 말란 법은 없지만..."
안 그래도 느릿하던 대답이 순간 더욱 느릿하게 나와버렸다. 멍한 두 눈까지 크게 떠지면서. ...지금... 백호 님께서 저에게 귀엽다고 해주셨어요...? ...세상에...! 결국 영광스러운 마음을 어찌하지 못해 두 손으로 입가를 살며시 가려버렸다. 그리고는 헤실헤실 웃으면서 백호 님께 살짝 꾸벅, 인사해보였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백호 님. ...백호 님께서도 정말로 예쁘신 여우 신 님이세요." 묘하게 기쁜듯한 목소리와 함께.
하지만 자신의 공손한 인사에 백호 님께서는 괜찮다는 듯이 손을 저으셨고, 그에 한 박자 늦게 "...아." 하고 중얼거리면서 다시금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하, 하지만 백호 님께서도 '신' 님이신 걸요. 저는 '신' 님이 아닌데 어떻게 감히 백호 님께..."
뒷말은 목소리가 서서히 작아지고 흐려지면서 자연스럽게 끊어져버렸다. 아래를 향해 떨구어진 시선. 하지만 그것도 이내 들려오는 백호 님의 물음에, 다시 살짝 위로 들어올려졌다. 그리고 고개가 작게 끄덕여졌다.
"...네. 은호 님께서 준비하신 대회는 그것이 무엇이건 열심히 참여하고 싶어요. 그러면 은호 님께서도, 누리 님께서도 대회를 지켜보시면서 즐거워 하실 지도 모르고... 가온 님께서도 열심히 준비해주신 보람이 있으실 테니까요."
헤실헤실, 희미하게 웃으면서 나오는 대답은 결국 또 다른 신 님들을 위한 것들이었다. 숭배와 신뢰의 마음. 하지만 카트에 대한 물음에는 다시금 미소가 살짝 난감하다는 듯이 흐려지며 은근슬쩍 시선을 떨구었다. 그저 작게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 것으로 대신 대답하면서. 그러다 백호 님의 또다른 궁금증이 들려오자, 그대로 자연스럽게 시선을 잠시 자신의 오른쪽 발목에 두었다. 그리고 그 시선을 살며시 들어올려 백호 님을 바라보며 그저 헤실헤실 웃어보였다.
"...이건 저번에 '라온하제 스탬프 릴레이' 대회 때 참여해서 받은 소중한 물건이랍니다. 크기가 저의 발목에 맞지 않을 정도로 작긴 했지만 신통술로 열심히 키워봤더니 딱 맞게 되었어요. ...발찌... 아니었나요...? 이거...?"
순진하게 이어지던 목소리가 이내 고개가 갸웃, 하고 움직여지면서 은근한 궁금증에 물들었다.
"예쁜 여우 신님? 응! 그건 맞으니까. 은호님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나름 한 외모하는 편이고. 아. 물론 난 예쁘다기보다는 귀엽다는 느낌에 가까울까? 인간들이 기준에선 그럴 것 같은데. 아. 귀여운 것은 누리님인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중간으로 하면 되겠지. 뭐. 그리고, 너는 신이야. 애초에 여기는 신이 아니면 출입을 할 수 없어. 무엇보다...신이 아닌데 수인이 되는 것은 불가능해."
은호님에게 말한 그 특성을 바라보며 나는 오호, 오호 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신이 된지 얼마 안 된 아이일까? 그러면 가끔 이런 이가 있을 수 있긴 한데... 단지 그것만이면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지만.. 과연 그것 뿐일지. 아무튼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리자 다시 이쪽을 보게 하기 위해서 나는 손을 올려 박수를 짝 쳤다. 고개가 내려지면 안되잖아? 말하는 도중에? 안 그래도 귀여운 얼굴인데. 그런 말을 속삭이듯이 이야기하면서 나는 리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참가하는구나. 그런데 카트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는거지?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런 거야. 짠."
이어 나는 내 신통술을 발휘해서, 내가 홍보할 때 사용하고 있는 '카트'를 가지고 왔다. 몸체는 하얀색이고, 앞면에 여우 그림이 그려져있고, 그리고 그 위에는 가리를 상징하는 단풍잎이 그려져있는 그런 느낌의 카트이다.
"인간들이 타고 다니는 '자동차'라는 것은 알고 있지? 그것의 조금 작은 버전이라고 보면 돼. 대회에 참가하려고 한다면, 이런 카트가 있어야 하니까 슬슬 준비하는 것이 좋을 거야. 그래. 그래. 어차피 직접 만들긴 힘들 것 같으니까 너에게 이걸 줄게. 짠."
이어 나는 손가락을 퉁겨서 그 옆에, 조금 더 작은 카트 하나를 소환했다. 거기에는 아무런 장식도 아무런 색도 입혀지지 않은 하얀색 카트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면서, 나는 리스에게 이야기했다.
"너는 모를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온 것이 다행이야. 자. 카트는 내가 줄게. 꾸미는 것은 네가 해. 알았지? 너를 상징하는 느낌으로 예쁘게 꾸미면 되는 거야. 그 정도는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 그리고...그거, 발찌가 아니야. 반지야. 손에 끼는 거."
이어 나는 은호님이 나에게 줬던 가리의 단풍잎 문양이 그려져있는 반지가 끼워진 나의 오른손을 보여주었다. 내 오른손 검지에는 분명히 작은 반지가 끼워져있었다.
"...물론 제가 감히 이런 말씀을 올리는 건 무례한 것이겠지만... 백호 님께서도, 은호 님께서도, 누리 님께서도, 모두 다 예쁘시고 귀여우신 여우 신 님들이세요. 모든 신 님들께서 전부 다요. 그래서... 기뻐요. 이런 신 님들을 만나뵐 수 있다니... 정말로 크나큰 영광이예요."
헤실헤실, 신 님에 대해서 얘기할 때마다 나오는 행복한 미소가 꽃피워졌다. 물론 그것도 이어서 들려오는 말씀에는 서서히 사그라들어, 그저 "...아..." 하는 소리와 함께 시선을 아래로 떨구었지만. ...저는... '신' 님이 아니예요. 그런데 왜 다들 저한테 '신' 님이라고 말씀해주시는 걸까요? 저는 그런 전지전능하고 깨끗하신 초월적인 존재가 아닌데 말이예요. ...저는... 저는... 그저...
생각들이 섞여들어 커져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초커에 달린 구슬이 희미하게 빛날 무렵, 갑자기 들려오는 짝, 하는 박수 소리에 몇 박자 늦게 "...핫...!" 하고 느릿한 반응을 보였다. 동시에 고개를 치켜들어 놀란듯이 커진 두 눈동자, 정확히는 한 시야로 백호 님을 올려다보면서.
...하지만 백호 님의 속삭임에는 영광스럽다 못해 낯설어 두려울 정도로 기쁜 마음을 느껴 살짝 양볼이 빨개졌다. 괜히 어색함에 두 손을 들어올려 꼼지락거리던 손가락에, 서서히 다시 내려가던 고개를 한 박자 늦게 급히 치켜들고는, "...가, 감사합니다..." 하고 시선을 은근히 피하면서 감사 인사를 덧붙였지만.
그러고 이어지는 백호 님의 설명. 그와 동시에 나타난 하얀색의 '카트'에는 여우와 단풍잎이 그려져있는 모습이었고, 이어 들려오는 설명에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면서 경청했다. 하지만 백호 님께서 아예 손가락을 튕겨 작은 카트 하나를 소환해내어 선물을 해주시자, 놀란듯이 멍한 눈동자가 커져 그대로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이, 이걸 정말로 제가 가져도 되는 건가요...? 정말로 감사합니다, 백호 님...! ...너무 예뻐요. 이대로도 너무 예뻐서 제가 감히 손을 대어도 괜찮을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한 번 열심히 꾸며보겠습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백호 님. ...저도 백호 님께 도움이 되고 싶은데..."
조금 시무룩해질 것 같던 표정은 이내 곧 '반지'라는 새로운 단어가 들려오자 다시 멍하게 돌아왔다. 그리고 백호 님의 오른손에 있는 '반지'라는 것을 조용히 바라보다가 몇 박자나 늦게 "......아." 하고 입을 열었다.
"......전혀 몰랐어요. 저, 발찌인 줄로만 알았는데... ...아..."
결국 다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면서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이미 귀까지 새빨개져버린 모습을 보면, 누가 봐도 부끄럽다 못해 창피해한다는 게 확실해 보였겠지만.
"쓰라고 준 건데, 쓰지 않으면 내가 곤란하잖아? 써도 돼. 써도 돼. 쓰라고 준 거니 말이야. 이렇게 줬는데 안 쓰면 어쩔 거야? 집에 두고 그냥 먼지만 쌓이게 할 거야? 그건 곤란한데. 적어도 이번 대회에 나가고 싶으면 카트가 있어야 하는데, 카트는 없잖아? 그러니까 나의 선물이야. 전에 맛있는 것을 먹게 해준 보답이라고 생각해 줘. 이래보여도 난 먹보거든."
정말로 맛있는 것을 좋아하기에 지금도 가리에서 살고 있고 말이야. 거긴 맛있는 것이 많거든. 물론 밤프가 관리자가 되고 난 이후부터 토마토가 좀 더 많아진 것 같지만 토마토도 싫어하지 않으니까. 도움이 되고 싶다는 그 말에는 소리내어 웃으면서 누리님이 바라는 즐거운 내일을 사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대답했다. 그것이야말로 내가 바라는 것이니까. 누리님은 비록 출생이 그럴지 몰라도 지금은 은호님의 어엿한 딸이자 이 지역을 물려받으실 분. 그렇다면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누리님이 원하는 그런 분위기를 가득 꽃피우는 것이었다.
아무튼 고개를 아래로 숙이면서, 귀가 빨개진 리스를 바라보면서 어깨를 톡톡 두들기면서 말했다.
"괜찮아. 괜찮아. 그거 발찌로 써도 상관은 없으니까 하지만 원래는 반지라는 느낌으로 줬다고 봐도 돼. 네가 편하다고 한다면 그것으로 그렇게 해도 되지 않겠어?"
딱 정해진 것은 아니니까 말이야. 그렇게 말을 하며 웃으면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이어 잠시 리스를 조용히 바라보다가 나는 웃으면서 리스에게 이야기했다.
"참고로 나는 맛있는 것을 좋아해. 나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고 한다면, 정 어떻게든 뭔가 해주길 바란다면, 전에 요리 대회 때 만들었던 거 또 언제 나에게 만들어주지 않을래? 상당히 맛있었거든. 1등 요리사 씨?"
윙크를 하면서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그때 먹었던 음식들을 떠올려봤다. 사실 다른 음식들도 다 맛이 좋았지만, 그래도 이 애에게 말하는 거니까 이 애가 말한 것을 바랄 수밖에 없잖아?
"......그렇다면 정말로 감사하게 잘 사용하겠습니다. 정말 영광이예요, 백호 님.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 예쁘게 꾸며 보겠습니다. 그리고 이번 대회에도 열심히 참여할게요. 백호 님의 카트와 함께라면 1등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백호 님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두 손까지 작게 주먹 쥐어서 나름대로의 의지를 두 눈동자에 빛내기 시작했다. ...만약에 이번 카트 대회에서 제가 1등을 하게 된다면... 그 우승 상품은 반드시 백호 님께 드리고 싶어요. 이런 멋진 카트까지 받았다면 저도 더더욱 백호 님께 보답을 해드려서 은혜를 갚아야...
그러한 생각을 하면서 잠시 두 손으로 조심히, 아주 조심히 카트를 매만져보았다. 하얗디 새하얀 색. ...꼭 백호 님 같아요. 그런 생각이 들자 괜히 행복한 미소가 헤실헤실 새어나왔다.
'즐거운 내일'. 백호 님의 그 말씀에, 잠시 누리 님이 겹쳐져 자신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가기 시작했다. "...라온하제." 조용히 중얼거리는 그 말은 마치 마법의 말 같은 느낌이었다. ...저에게 새로운 삶을 허락해준 곳. 라온하제. 즐거운 내일. 내일을 꿈 꿀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 삶인 것일까.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행복이었다. 자신이 지금 원하여 여쭤보고있는 것은 백호 님의 행복인데도...
리스, 잠시 스스로의 이름이 스쳐지나갔다. 아주 짧은 찰나의 순간 동안. 하지만 그것도 이내 창피함에 굴복해버려 결국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고개를 아래로 떨구어버렸다. 이어진 백호 님의 말씀에는 그저 작게 웅얼웅얼거렸지만.
"......그, 래도 뭔가 부끄러워서... 저는 발찌가 익숙해서 당연히 이것인 줄 알았는데..."
...반지 씨라는 것일 줄은 전혀 몰랐어요. 덧붙여지는 목소리는 창피함 속으로 기어들어가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하지만 백호 님께서 이어서 알려주시는 정보와 부탁에,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던 것조차 멈추고 잠시 고개를 들어 백호 님을 멍하니 커진 두 눈동자로 바라보았다. 그러길 몇 초. 마치 굳은 듯 했던 시간이 흐르고, 몇 박자 늦게 환한 미소를 희미하게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백호 님께서 원하신다면 언제든지 만들어드릴 수 있어요...! 맛있는 것을 좋아하신다면 다른 것들도 열심히 연습해서 만들어드릴게요, 백호 님. ...저도 백호 님께 도움이 될 수 있다니 너무 기뻐요."
기쁜 마음이 순수하게 얼굴에 헤실헤실, 꽃피워졌다. "...물론 이번에는 이상한 맛의 고춧가루 씨는 안 넣을 거지만요." 하고 덧붙이는 목소리에는 희미한 장난기가 마찬가지로 스며들어 있었고, 백호 님의 윙크에 자신 역시도 두 눈을 꽉, 감았다 뜨면서 언제나와 같은 두 눈 윙크를 날렸지만.
/ ㅋㅋㅋㅋㅋ그래도 리스에게는 흑역사 중의 하나였다고 합니다.(끄덕) 아무튼 저는 잠시 씻고 오겠습니다! :)
그때 그 소스를 발라서 먹으니까 완전 좋았는데. 괜히 아쉬움이 들어서 나도 모르게 히잉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뭔가 이러니까 내가 엄청 먹을 것을 좋아하는 그런 신같이 보이지만 실제로 맞다. 맛있는 것을 많이 먹는 것이 잘못은 아니잖아. 옛말에도 잘 먹고 죽은 귀신이 피부색도 좋다고 했어. 물론 나는 이미 신이라서 귀신이 될 이유는 없지만 말이야. 애초에 귀신이 될 마음도 없고...
그러다가 나는 두 눈을 꽉 감았다가 뜨는 리스를 바라보면서 고개를 갸웃한 후에 리스의 눈을 바라보았다. 뭔가 들어간 것 같진 않은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후우 바람을 불면서 리스에게 이야기했다.
"왜 눈을 갑자기 감았다가 떠? 눈 아파? 너?"
나로서는 영문을 알 수 없었기에 눈을 제대로 보았지만, 딱히 눈에 뭐가 들어간 것 같진 않아보였다. 두 눈의 색이 다른 것이 묘했지만, 아무튼 딱히 눈에 뭔가 들어간 것처럼 보이진 않았기에 나로서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아... 백호 님, 그 소스가 맛있으셨나요...? 그, 그러면 그 소스 씨도 나오게 될 거예요...! ...그, 러니까... 그러니까..."
아쉬운 듯이 히잉, 하시는 백호 님의 모습에 순간 당황한 빛이 살짝 스쳐지나가 평소보다도 대답이 더욱 늦어버렸다. 하지만 나름대로 황급히 말을 정정하던 것도 잠시, 이내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이 약간 쩔쩔매는 모습으로 입가에 올린 두 손가락들을 꼼지락거렸다. 만약에 백호 님께서 '신' 님이 아니셨다면 꼬옥 안아드리거나 어깨를 토닥토닥해드렸겠지만... 백호 님께서는 '신' 님이신 걸요. 그런데 그런 '신' 님을 제가 감히 실망시켜 버렸어요. ...저, 어쩌면 좋죠...?
서로 다른 색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데굴데굴, 난감하게 굴려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백호 님께서 고개를 갸웃하시면서 자신을 바라보자 살며시 자신 역시도 백호 님과 눈을 조심스럽게 맞춰보았다. 그런데...
"...!"
갑자기 자신의 눈동자에 후우, 바람을 부시는 백호 님. 그에 자신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하얀색의 왼쪽 눈을 먼저 가리면서 두 눈을 꽉 감아버렸다. 순간 묘하게 두려운 듯이 파르르, 떨리던 속눈썹이, 이내 들려오는 백호 님의 말씀에 서서히 닫혔던 눈꺼풀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아..." 하는 소리를 내며, 은근슬쩍 시선을 옆으로 피했다. 눈을 가렸던 두 손은 살짝 내려와 입가를 가리면서.
당황한 모습을 보이는 리스를 바라보며 아차 싶어서 난감하게 웃으면서 두 손을 강하게 휘저었다. 그런 거 아니라고. 정말 착해도 너무 착하다니까. 라온하제에 잘 어울리는 순수한 영혼이 신이 된 것일까? 그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물론 저 아이의 모든 것을 아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지만, 그러고 싶진 않으니까.
아무튼 리스의 말을 들어보니, 이 아이는 윙크를 따라하려고 한 모양이었다. 두 눈을 감는 윙크라. 그 모습이 묘하게 귀여워서 풉- 하는 웃음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뒤이어 나는 조심스럽게 두 손을 올려 리스의 얼굴에 갖다댄 후에,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게 했고, 한쪽 눈만 살짝 내리고 다른 한쪽 눈은 뜨게 한 상태로 하다가 다시 손을 내렸다.
"이렇게 한 쪽 눈만 감았다가 뜨는 것이 바로 윙크야. 알았지? 두 눈을 감고 뜨는 것이 아니야. 정말... 왜 이렇게 귀여워? 너. 내가 여우 신이 아니라 여우였어도, 너는 귀여워서 건드리지도 못했을 것 같아. 어쩔거야? 응? 응?"
너무나 귀여워서 절로 웃음이 터져나왔고, 나는 슬그머니 뒤로 한 걸음 물러선 후에 리스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리스를 바라보면서 웃으면서 이야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