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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막한 사과를 시작으로 대화를 잇는 리스를 바라보며 그는 말 없이 눈을 깜빡였다. 그 역시 잠이 오지않기에 이런 늦은밤 산책을 나섰느냐는 그녀의 물음에 그는 잠시 침묵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잠이 오질 않아서 산책을 나온거야."
이런 늦은 밤에 굳이 다솜까지 오면서 말이지. 토마토를 건네자 눈에 띄게 기뻐하며 과할정도의 찬사를 내뱉자 그는 평소와는 다르게 멋쩍은듯 그녀를 내려다보다 고개를 돌렸다. 늘어난 옷자락으로 살며시 붙잡고 있던 우산을 살랑살랑 흔들다 칼도 없이 잘도 토마토를 반으로 자르고선 다른 반 쪽을 보기좋게 내밀고선 헤실헤실 미소지으며 말하는 리스의 목소리에 그는 고개를 돌려 다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훗, 맛있게 먹으마."
처음에는 거절할까 생각했던 그였지만 이내 작게 웃음을 흘리며 그녀가 두 손으로 내민 토마토 반 쪽을 집어들고서 그것을 한 입에 집어넣었다. 이러나저러나 좋아하는 토마토였기에 가랑비가 쏟아져내리는 바깥이어도 기분좋게 먹을 수 있었다.
"나는 비가좋구나. 너는 어떤가?"
그리고 먼 곳을 바라보는듯한 그가 잠깐동안 이어진 고요함을 깨트리며 입을 열었다.
"좋은 기억이라곤 하나도 없는 우중충한 날씨지만, 이렇게 빗소리를 듣고있다보면 나도 모르게 차분해지는 느낌이 들어. 음, 그래서 항상 이런 날이되면 평소와 분위기가 달라지는걸지도 모르겠구나."
>>555 라온하제에서는 정말로 어지간한 말도 안되는 설정이 아니면 다 통과된답니다...!! (끄덕) 이를테면... 내가 은호님의 숨겨진 어머니였다...라던가, 내가 은호님의 분신이었다라던가, 갑자기 외계에서 날아온 외계인이 변신해서 신으로 둔갑하고 있다던가...그런 것 말이죠.(끄덕) 천천히 풀면 됩니다. 우리에겐 아직 남은 시간이 300일 이상 있으니까요!
결국 작게 사과를 전하면서 밤프 님께 가만히 여쭤보자, 밤프 님께서는 잠시 침묵을 지키셨다. 밤프 님의 그 모습에서, 그리고 이어서 들려오는 밤프 님의 대답에서, 그제서야 뭔가 조금 이상하다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제가 알고 있던 밤프 선생님께서는... 지금보다 좀 더 밝으신 분이셨던 것 같은데 말이예요. ...혹시... 뭔가 고민이라도 있으신 걸까요?
왠지 모르게 걱정스러운 마음이 앞섰다. 비가 내리고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늦은 밤이라서일까. 어딘가 마음 한 구석이 쎄하게 이상해져오는 느낌이었다. ...역시... 비는 그리 좋아하지 않아요.
하지만 이어서 토마토를 주시는 밤프 님의 모습에서는 뭔가 평소의 모습이 겹쳐보여, 다시금 희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물론 왠지 모르게 조금 멋쩍어 보이시는 밤프 님의 모습은 여전히 평소 때랑은 전혀 달랐지만. 그래도 우산을 대신 들어주시는 밤프 님의 옷자락에도 공손히 감사 인사를 전하고는, 이내 토마토를 얼추 반으로 잘라냈다. 물론 손에 조금 묻기는 했지만... 지금 그게 무슨 대수일까. 그렇기에 그저 헤실헤실, 기분 좋은 듯이 살짝 웃으면서 밤프 님께 큰 쪽의 토마토를 두 손으로 건네드렸다. 자신 혼자서만 이 맛있는 토마토를 먹고 싶지는 않았기에.
그러자 밤프 님께서는 마찬가지로 작게 웃어주었다. ...밤프 님께서 웃어주셨어요. 다행이다, 하는 마음에 안도감이 들어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작게 끄덕끄덕였다. 그리고는 밤프 님께서 먼저 토마토를 드시는 걸 보고 나서야 자신 역시도 두 손으로 토마토 반 쪽을 야금야금, 조금씩 먹기 시작했다.
그러자 자연스레 이어지는 고요한 침묵. 그러다 들려오는 밤프 님의 목소리에, 토마토를 먹던 것을 멈추고 고개를 살짝 올려 밤프 님을 올려다보았다.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시는 듯한 밤프 님을.
"......죄송해요, 밤프 선생님. 저는 비는 그리 좋아하지 않아요... 우중충한 하늘 씨는 보기만 해도 슬퍼지니까요. ...그래도 밤프 선생님의 말씀이 맞다고 생각해요. 빗소리는 차분한 음악 소리처럼 들려오니까요."
조용히, 하지만 잔잔한 목소리로 밤프 님의 말씀에 대답했다. 부드럽게 접힌 두 눈동자에는 한 시야 속의 빗줄기만 보였지만... 두 귀는 다행히 정상이었으니. 톡, 톡. 우산을 타고 떨어지는 빗소리를 잠시 귀기울여 들으며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내 다시 고개를 돌려 밤프 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토마토를 든 두 손가락을 작게 꼼지락거리면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밤프 선생님. 제가 감히 이렇게 여쭤도 될 지는 잘 모르겠지만... 혹시... 고민이 있으신가요? ...저는 밤프 선생님께 너무 많은 도움을 받아왔어요. 그러니 저도 이제는 밤프 선생님께 도움이 되어드리고 싶어요. ......그러니 괜찮으시다면... 말씀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캇, 그런걸로 미안해할 필요는 없다! 내가 너의 취향을 존중해주지 못할정도로 소인배로 보이더냐?"
자신은 비를 싫어한다며 조용히 말을 내뱉는 리스의 모습에 그는 크게 웃으며 사과할 필요는 없다고 손사래를쳤다. 오히려 그런 그녀에게 자신이 타인의 취향도 못 받아들이는 소인배라고 되묻기까지 하였으나 그는 그 말을 내뱉고 난 뒤에야 자신의 문장선택이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다는것을 눈치챘다.
"......"
그는 조심스레 질문하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선 두 눈을 살며시 즈려감았다. 도움이 되고 싶어하는 작은 아이를 실망시킬 순 없다는 생각과, 괜시리 시덥잖은 이야기를 꺼내 폐를 끼칠 수 없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아니, 아직은 너무 이르다고 생각했지. 특히나 '신'이라는 것을 맹목적으로 믿고있는 작은 아이에겐 너무나도 받아들이기 힘들지도 모르는 이야기일것이다.
"폭풍우에... 휩쓸려갈 토마토가 걱정이구나."
그러니 괜한 이야기는 가슴 한 켠에 묻어두기로 결정한 그는 또 다른, 그의 머릿속 걱정거리의 80%정도를 차지한 이야기를 꺼내들며 조용히 눈을 뜨며 말을 내뱉었다. 다솜지역은 겨우 가랑비에 그쳤지만 그가 다스리는 가리는 지금쯤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풍우가 한참 휩쓸며 지나가고있을테니까.
"기후를 멋대로 조작하는건 내 특기가 아니라서 말이지... 특히나 그 범위도 만만치않아 자칫 실수했다간 가리의 일부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릴지도 몰라."
거의 습관적이자 무의식적으로 나온 자신의 사과에, 되돌아오는 밤프 님의 반응은 되려 큰 웃음소리였다. 아예 손사래까지 치면서 저가 소인배로 보이더냐고 되묻는 밤프 님의 말씀에, 놀란 듯 멍한 두 눈동자를 크게 떴다. 그리고 드물게 한 박자 느리게가 아닌, 거의 곧바로 고개를 도리도리, 세차게 저었다.
"저, 전혀 아니예요...! 밤프 님께서는 소인배가 절대 아니세요. ...그게 아니라... 저는 단지 저도 비를 좋아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어서..."
결국 다시 두 손가락을 꼼지락꼼지락거리며 시선을 아래로 떨구었다. 그리고는 괜히 남아있는 토마토를 다시 두 손으로 들고 조금 먹었다. ...'신' 님과 저의 취향이 같았으면 좋았을텐데 말이예요. 하지만 정말로 먹구름 씨는... 비는 좋아하지 않아요. 슬퍼지는 건 싫어요...
그렇게 다시 또 잠시 이어진 침묵. 느릿하게 토마토를 먹던 입이 마침내 토마토를 다 먹게 된 그 때, 드디어 밤프 님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토마토에 대한 것. 다시 감았던 눈을 뜬 밤프 님은 이내 토마토에 대한 걱정을 꺼내셨고, 그에 모든 것을 이해하면서 한 박자 늦게 "...아." 하는 소리를 내었다.
"...토마토 씨였군요. 가리에는 폭풍우가 오고 있나요? ...그건 정말 큰일이네요. 어쩌면 좋을까요..."
물론 그 걱정이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그냥 시덥지 않은 걱정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밤프 님의 토마토 사랑을 알고있던 자신으로서는 그것이 밤프 님에게 있어 얼마나 중요하고 심각한 고민인지 아주 잘 알고, 공감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밤프 님처럼 자신 역시도 진지한 표정을 지으면서 두 손을 입가에 가져다대며 고민했다.
"...그럼... 은호 님께 부탁드려보는 건 어떨까요? 은호 님께서라면 분명 도와주실 수 있으실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도 도와드릴게요. 희미한 미소와 함께 덧붙여 얘기했다. 당연하다는 듯이. 밤프 님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뭐든지 해드리고 싶었다.
/ 토마토라면 아주 중요한 문제인데요...?! 특히 밤프에게 있어서는...!(동공대지진)(???)
은호의 도움과 자신의 도움을 받으면 되지않겠냐며 사뭇 훈훈한 분위기를 조성하려던 리스의 말에 그는 벌떡 일어서듯 크게 외쳤다. 덕분에 따스하게 감싸쥐던 분위기는 와장창 하고 깨져나가 무언가 심상치않음을(?) 알리려들었다.
"이것이 다른 일이었더라면 타인의 도움도 마다않겠지만 토마토는 중대사항이다! 그리고 최고의 품질의 토마토를 만들어내기 위해선 은호, 그녀의 손길이 닿으면 절대로 안된다는걸 나는 '그 날'의 경험으로 뼈저리게 깨달았지."
'그 날'의 경험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천하의 그가 몸서리 치는것을 보아하니 토마토와 그에게 있어선 최악의 날임이 틀림없을거라는 추측을 하게끔 만들었다. 그는 두 눈을 꼭 감고선 마치 '이 청년을 구하지 못하는 이 무력함이 속상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은호는... 그래, '더 새비지어스' 토마토 킬러로 이름을 날렸었지. 그녀가 건드리는... 수확하기 전의 토마토란 토마토는 전부 다 죽어버리고 말았어! 마치 묵시록의 4기사들 중 하나인 죽음의 기사를 보는듯한 느낌이었지... 크윽! 안 돼! 그 날의 기억이 다시 떠오르고 말아!"
자신은 그 누구보다도 진지했지만 타인이 보기엔 이게 무슨 헛소리인가 싶을 정도로 황당한 말을 늘어놓으며 그는 다시 한 번 지난 날의 기억으로 인해 몸서리쳤다. 아, 후두둑후두둑 떨어지던 가랑비가 더욱 거세졌다.
헤실헤실, 희미하게 웃으면서 은호 님과 자신이 도와드리겠다고 말씀을 드리던 것도 잠시, 오히려 밤프 님께서 크게 안 된다고 외치시자 살짝 놀란 듯 한 박자 늦게 몸을 작게 움찔했다. 멍한 두 눈동자도 크게 뜬 채.
하지만 이어서 들려오는 밤프 님의 말씀을 듣고는 작게 "...아..." 하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가만히 끄덕끄덕할 수 밖에 없었다. 토마토는 중대사항. 밤프 님께 있어서 토마토는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 말에 수긍을 하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 날'의 경험이요? 대체 밤프 님과 은호 님께서는 과거에 어떠한 일이 있으셨던 걸까요? 밤프 님께서 저렇게 몸서리까지 치시는 걸 보면... 분명 심상치 않은 일이었을텐데 말이예요. 밤프 님 특유의 속상하다는 듯한 표정에도 그저 걱정되는 마음에, 조용히 밤프 님의 이어진 설명을 경청하여 들었다. 그리고 드디어 밝혀지는 '그 날'의 경험. 그것은 다름 아닌... '더 세비지어스' 토마토 킬러 은호 님에 대한 이야기.
은호 님께서 건드리는 수확하기 전의 토마토는 전부 다 죽어버리고 말았다는 그 말씀에, 정말로 충격을 받았는지 멍한 표정으로 두 손을 들어올려 자신의 입가를 가렸다. ...'죽음의 기사'라는 그 말씀이 유난히도 충격으로써 다가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 그럴리가... 으, 은호 님께서는 토마토 씨들을 함부로 죽여버리실 분이 아니신 걸요...! 분명... 분명 뭔가 사정이 있으셨던 것일 거예요... 물론 밤프 님께는 소중한 토마토 씨들이 전부 다 죽어버리신 건 정말로 충격적이고 슬프셨겠지만... 그, 그래도..."
시선을 아래로 떨구며 살짝 떨리는 듯한 자신의 두 손을 꼬옥 붙잡았다. 자신을 살려주셨을지도 모르는 자신의 '신' 님 후보들 중 한 분이신 은호 님께서 죽이셨다니... 그, 그것은...
"......그 토마토 씨들은... 결국 되살아나지 못 했나요...? 그렇지만 폭풍우가 더욱 거세진다면 다시 토마토 씨들이 다 죽어버리실텐데... 어떡하죠...? 누리 님께 부탁드려야 할까요?"
물론 밤프 님의 말씀이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황당하기 그지 없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자신은 밤프 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기에. 밤프 님의 마음에 공감해드리고 싶었기에. 그렇기에 마찬가지로 진지하게 걱정스러운 마음을 표현했다. 물론, 모든 것들을 사랑하고픈 자신에게 있어서는 그 토마토들도 걱정되는 마음도 당연히 있었지만.
/ 아닠ㅋㅋㅋㅋㅋ 밤프의 짤방이...!ㅋㅋㅋㅋ(엄지 척) 밤프주께서는 역시 금손님이셨군요! XD(야광봉)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는 지금 말을 내뱉고있는 그와 은호를 제외하면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기에 섣불리 믿어서는 안되는것이었다. 하지만 리스는, 그녀는. 타인을 불신해본적이 없는 그녀는... 아마도 그의 말을 굳게 믿고있을것이다.
"뭐, 진지하게 생각하지는 말아도 괜찮다. 그 아이의 도움을 빌릴것도 없이 토마토야 다시 재배하면 되는거니까. 한 가지 안타까운건... 박쥐들의 월급이 밀린다는거지."
하지만 그런 호들갑도 잠시 언제 그랬냐는듯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이며 작게 한숨을 내쉬는 그의 모습을 보아하자니 처음부터 끝까지 진심이었을까 하는 의문조차도 들 정도였다. 그는 자신의 박쥐가 이번 폭풍우로인해 월급을 받지못하게 될 것을 걱정하며 의외의 모습을 슬쩍 비춰보였다.
박쥐에게 월급이라.
"카카캇, 앞으로 당분간은 특제 토마토를 구경하기가 힘들겠어. 하지만 아쉬워말라! 비록 신통술을 이용한 성장 촉진이지만 하루만에 다시금 새빨갛게 익은 토마토를 구경하게 해줄테니!"
무의식적으로 늘 취하는 특유의 망토를 펄럭이는 자세를 취하다 옷자락으로 들고있던 우산이 크게 휘청이자 그는 다시 자세를 가다듬으며 조심스레 우산을 바로 들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잠시 일이 생긴터라 처리하고 오느라.. 으으으어아아악 자꾸 민폐만 끼치고있어..!(동공지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