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령은 다솜을 좋아했다. 물론 제가 살고 있는 비나리만큼은 아니었지만 그곳에는 어여쁜 꽃들과 맛있는 과일이 넘쳐났다. 령은 그 사실 하나만으로 다솜을 좋아했다. 그러니 지금처럼 살고 있는 곳에서 나와 다솜의 꽃길을 거니는 것이리라. 령은 제 주변에 만개한 이름 모를 꽃들을 보며 은은하게 미소지었다. 그 모습이 너무도 우아하여 천사와도 같았다. 뭐, 엄밀히 말하자면 그녀는 천사가 아니라 신이지만 그게 어떻겠는가?
걷다보니 어느새 벚꽃나무가 가득찬 숲으로 와버렸다. 령은 벚꽃나무 하나의 줄기를 어루만지고는 터벅터벅 숲 속을 걸었다. 벚꽃잎들이 바람이 불때마다 령의 어깨 위로 떨어졌다. 연분홍빛 벚꽃잎들은 그 자태가 몹시 화사해보였다. 령은 그것들이 마음에 들었다. 무채색의 자신과는 너무나도 달랐으니까. 걷다보니 어딘가에서 노랫소리가 들렸다. 령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다. 령은 노랫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곳에서 발견한 것은 자그마한 신이었다.
"노랫소리가 나서 무심결에 찾아뵈었습니다. 방해가 되었다면 죄송합니다."
우아하게, 하지만 절도있는 몸짓과 어투로 사죄를 표한 령은 이 신의 노랫소리가 퍽 마음에 들었는지 가까이에 왔다. 바람이 산들거리며 불었다. 령의 방울달린 장신구에서 딸랑딸랑 하는 소리가 났다.
"어라. 태어난지 1년밖에 안 되었어? 그래도 어엿한 신이네." "조금 오래 살아가다 보니까. 12분의 1이라는 시간만 살았는데도 다른 이들보다 많더라고. 안 좋은 습관일지도." 라고 볼을 부풀리며 중얼거리는 누리를 보면서 희미하게 웃었습니다.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주려고 손을 뻗습니다만. 정말 받아줄지는 몰라요? 그리고 가능하다고 생각된다는 말에 잠깐 침묵합니다.
"그렇지만 적응하지 못하게 되는 이들은 도태되고 마니까." "그라고 은호님이 누리를 책임지는 만큼 나도 책임을 져야 하겠지. 불안해. 불안해." 그것이 옳은 것이냐. 에 대한 건 항상 물어져야만 해. 라고 속삭이듯 말해봅니다. 항상 인간의 모습으로만 인계에 나갔었지. 완전한 동물 모습으로도 크기를 줄였고. 라고 생각합니다. 확 치밀어오르는 불안감에 손가락이 살짝 떨려서 녹아내린 에이드의 표면이 출렁거리는 것 같았답니다.
"...네, 물론입니다. 저는 치야 님을 절대 잡아먹지 않습니다...! 제가 현재 먹고있는 건 과일 씨들 뿐인걸요."
치야 님의 말씀에 고개를 몇 번이나 위아래로 끄덕여, 거짓말이 아니라 진실이라는 것을 나름대로 열심히 표현했다. 물론 두 눈동자는 여전히 꿈을 꾸는 듯이 멍했지만. 하지만 다시 물 속에 잠수해 들어갔다가 나온 치야 님의 얼굴은 물고기의 모습이었고, 그런 치야 님의 모습을 보고서도 조금의 움찔거림이나 흔들림은 전혀 없었다. ...그야, 저의 먹이는 더이상 물고기가 아니니까요. 그렇기에 그저 자신에게 저런 편한 모습을 보여주시는 치야 님께 감사하고 영광을 느낄 뿐.
그렇게 미소를 끊이지 않고 보이다가, 이내 치야 님께서 존칭을 그만 쓰라고 말씀하시자 순간 "...아." 하고 한 박자 늦은 대답을 보였다.
"...그... 그렇지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치야 님. 저는 치야 님처럼 위대하고 멋진 '신' 님이 아니기에... 존댓말을 사용할 수 밖에 없어요. 정말로 죄송합니다."
약간 우물쭈물하는 기색을 보이다가 이내 다시금 꾸벅, 허리를 숙여 사과를 올렸다. 이것만큼은... 어쩔 수가 없어요. 저는 '신' 님이 아닌 걸요.
그렇게 잠시 생각 속에 잠기다 치야 님께서 신통술을 통해 물이 뿌리시자, 그만 피하지 못한 채 그대로 다 맞아 흠뻑 젖어버렸다. 그러자 오히려 미안한 듯이 자신의 바로 앞쪽의 물가로까지 다가와서는 사과를 건네시는 치야 님. 그렇게 눈치를 보시는 듯한 치야 님의 모습에, 자신은 괜찮다는 듯이 부드러운 미소를 가득히 피워내며 고개를 작게 좌우로 저었다.
"괜찮습니다. 치야 님 덕분에 더위가 가셨거든요. 저는 더위를 잘 타는지라... 그러니 오히려 그렇게 신경 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치야 님. ...치야 님의 신통술의 위력이 강력해서 감탄했어요."
헤실헤실, 희미하게 웃어보였다. 화를 내기는 커녕, 오히려 정말로 존경심만이 가득히 들었다. 그리고 한 박자 늦게, 다시 천천히 입술을 열었다.
"...치야 님께서는 잘못하신 거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니 사과하지 말아주세요, 치야 님. ...그보다 치야 님께서 물장난을 좋아하신다면 저도 젖은 김에 잠시 함께 하고 싶은데... 제가 감히 그래도 괜찮으신가요? 치야 님?"
"그건 아사가 잘 해야하는 거라고 생각해. 무언가를 하면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만 하는 거니까. 특히 아사가 만든 이라고 하면 더욱 말이야."
머리를 쓰다듬는 느낌에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일단은 받아주었다. 머리를 쓰다듬어지는 것은 상당히 좋아하니까. 물론 정말로 싫은 이가 하면 싫지만..아사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사악한 신이 아니니까. 그렇기에 태연하게 받아들이면서, 아사를 잠시 바라보았다. 뭔가 불안해하는 듯한 모습에 나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이야기했다.
"애초에 모든 것은 아사의 선택이야. 그러니까...그냥 신중하게 생각하고 정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여기서는 그 누구도 강요하지 않으니까. 모든 것은 자신의 선택이다. 단지, 그것이 너무 심각한 것일 경우에는 엄마가 무력개입을 하겠지만, 그것이 아니면 엄마도 개입을 하지 않는다고 했으니까.
벤치에 앉아서 발을 천천히 굴리다가 외로울지도 모르겠다는 아사의 말에 싱긋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그럼 외롭지 않게 친구를 많이 사귀면 되지 않을까?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해! 여긴, 라온하제! '즐거운 내일'이 꿈꾸는 지역이니까!"
"인계에서도 준비되지 않은 건 불행한 빈도가 조금 있더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이들도 있었지만." 나아는 아마 전자가 확률이 더 높을 거라고 생각해? 라고 말하면서 준비가 되기에는 아직 나는 경험도 적고.. 할 일도 있고..? 방법 자체는 알고 있을지도 몰라도.. 라고 생각하는군요. 쓰담쓰담하는 게 기분좋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하기에 좋아한다면 좋은 일이지요?
"그렇지. 자기 자신의 선택이기는 해." "신중하게 생각하고 택할 수 밖에는 없어." 아마도. 그대로라면 영영 없겠다고 생각하던 찰나에 외롭지 않게 친구라는 말을 듣고는 입꼬리를 씩 올립니다.
"친구. 응... 고려해볼 만한 것 같기도?" "그럼 누리도 즐거운 내일이 되기를 바래." 나는 신과를 조금 다솜지역에 가져가야 할 것 같으니까. 라고 말하면서 가벼운 것처럼 손을 들어 인사하려 합니다.
지느러미를 파닥거리며 진정하라는 표정... 잠시만요, 물고기의 표정을 새가 읽을수 있나요. 아마 무리라고 생각해요, 그쵸? 다시 펑! 하고 사람의 모습으로 변한 다음 진정하라는 표정을 지어요.
"웅? 난 그다지 위대하고 멋진! 이라는 단어가 들어갈 만한 신은 아닌데?"
난 그냥 평범한 물고기 신들 중 한마리일 뿐이라구, 이어 말하며 보글보글, 거품을 뿜어요. 잘은 모르겠지만, 저 리스라는 신은 무척 자신감이 없는 것 같아요. 자기나, 나나, 똑같은 신인데요. 그쵸?
"뭐어.. 그럼 마음대로 해. 난 그런거 신경 안써"
수면 위에 피워냈던 물거품이 퐁퐁 터지고, 슬쩍 눈치를 보는 것을 알아채기라도 한 것인지 웃으며 괜찮다는 모습에 대답없이 눈을 깜빡여요. 더위가 가셨다니, 진심으로 한 말일까요. ..으음 모르겠어요. 난 생각을 읽을 수 있는게 아닌걸? 그래도 일단 괜찮아 보이니 아무래도 좋지 않을까요.
"응..? 아냐, 내가 잘못한건 잘못한거니까. 그리고 물놀이를 같이 하는건 나도 좋아! 난 여기서 같이 물놀이를 할 친구가 없거든!"
하늘하늘 흩날리는 벚꽃잎과 함께, 따스한 봄바람마저도 부드러이 불어왔다. 그 다정한 봄바람이 자신의 분홍빛 가득한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고 가는 것을 느끼면서, 두 눈을 감은 채 이어지던 자장가는 계속해서 바람에 실려나갔다.
다솜의 꽃들마저도 한들한들, 자신의 노랫소리에 맞추어 춤추듯이 흔들렸지만, 그것까지는 차마 보지 못 했다. ...어차피 두 눈동자를 다 떠도 저의 세상은 한 눈동자 뿐이겠지만요. 그러나 두 눈을 감으면 모든 것이 똑같아졌다. 그렇기에, 노랫소리는 계속해서 부드러이 퍼져나갔다. 모든 것들을 편안하게 도담도담 잠재울 것만 같은 자장가 하나가.
그러나 그러한 노랫소리는 이내 곧 새로이 들려오는 목소리에 자연스럽게 끊어져버렸다. 그리고 천천히, 한 박자 늦은 동작으로 감았던 두 눈을 떠내어, 고개를 살짝 아래로 숙였다. 그러자 벚꽃나무의 아래, 새로운 신 님이 보였다. 우아하고, 절도 있는 몸짓의, 아름다운 검은색의 신 님이.
딸랑딸랑, 방울 소리에 순간 정신을 빼앗겨 멍하니 신 님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내 다시금 한 박자 늦게 "...아...!" 하는 소리를 중얼거리면서 황급히 걸터있던 가지에서 날개를 펼치고 아래로 내려왔다. 맨발이 땅을 사뿐히 딛자 펄럭이던 겉옷이 이내 다시 아래로 내려왔고, 곧바로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공손히 낯선 신 님께 인사를 올렸다.
"...안녕하세요, 신 님.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플라밍고 수인인 리스라고 합니다."
일단 자신이 누구인지를 먼저 밝히는 것이 신 님께 드릴 예의 중의 하나였다. 그렇기에 그렇게 인사를 올리고는, 이내 고개를 좌우로 도리도리 저어 말을 이어나갔다.
"...절대로 방해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제가 괜히 노래를 불러 신 님께 방해가 되었을까, 걱정이 되고 있어요. 그러니... 혹시 저야말로 감히 신 님께 방해가 되었다면 정말로 죄송합니다."
치야 님께서 지느러미를 파닥거리며 하는 말씀에 희미하게 웃었다. 물론 물고기의 표정... 은 어류가 아니었던 자신이니만큼 읽어낼 수는 없었지만, 곧 치야 님께서 다시 사람의 모습으로 변하셔서 직접 표정을 지어주셨으니, 더욱더 미소를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저렇게 다시 변신하여 수고스러움을 기꺼이 감수해주시는 치야 님의 친절함에 그저 기쁘기만 했기에.
"아니요. 치야 님께서도 위대하고 멋진 신 님이 맞으세요."
그렇기에 드물게 한 박자 늦지 않게 곧바로 대답이 나왔다. 부드러웠지만 확고한 그 목소리에는 거짓된 마음이란 단 한 줌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치야 님께서는 이어서 마음대로 하라고 말씀하시자,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살짝 올라가있는 입꼬리와 멍한 눈빛은 여전히 그대로였지만. 그러다 치야 님께서 잠시 대답 없이 눈을 깜빡이시더니 이내 방긋 웃으며 하신 말씀에, 의아하다는 듯이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물에 사시는 신 님들이 많이 안 계신 건가요? ...비록 저는 감히 치야 님의 '친구'를 자청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물놀이를 좋아하신다면 같이 하고 싶어요, 저도. 그리고 치야 님은 잘못한 거 없으세요. 어차피 저도 이렇게 곧 스스로 젖었을 테니까요."
희미하게 웃으면서 치야가 있는 물 속으로 천천히, 한 발짝 씩 걸어들어갔다. 그에 일렁이기 시작하는 물결을 부드러이 가르면서, 이미 흠뻑 젖어 딱 붙어있는 옷자락들을 다시 물 속에 젖게 해버렸다. 그러나 겉옷은 벗지 않았다. 그 대신 치야 님 쪽을 바라보면서 작은 미소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