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아니야? 파브닐은 고개를 기울였다. 모르겠다. 일단 아무것도 모르겠다고 말하면 된다. 어린 아이의 외형이니 그런 말을 해도 괜찮겠지. 모두가 이해해줄거야. 아무렴, 속까지 어린아이인가? 자네는 나이가 없지 않던가. 자네에게 언제부터 나이가 있었다고. 병기는 나이가 없다네. 쓸만하면 쓸만한 것이지.
"실험체?"
모르는 단어인게지. 실험체. 무릎에 앉은 파브닐은 르노를 빤히 올려다보다 활짝 웃었다. 실험체, 맞아. 그런 건 모르는 걸로 치고. 이름? 이름..
"파브닐. 파브닐이에요."
성은 없었더라지? 오, 어찌 이리 작은 아이에게 악룡의 이름이 붙었는지! 타라스크나 티어매트가 아닌 것에 다행스러워 해야하는건가. 파브닐은 눈을 깜빡였다.
도시의 삭막한 풍경마저 질려버린 나는 어느샌가 자주 들리는 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돗자리를 깔고 앉은 가족들, 개를 산책 시키는 주인, 수다 떠는 학생들 등 많은 사람들이 모여 북적인다. 내가 들어서자 그들의 시선이 한순간 내게로 모였다. 불쾌하다. 그러던 도중 어디선가 비웃음과 뒤섞인 비난이 들려온다.
"어머, 저기 저 사람 좀 봐. 엄청 초라하다~ 친구 없겠지? 바보같아 보여." "들리겠다. 조용히 말 해."
들려, 듣기 싫어도 들린다고.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내 알 바 아니긴 한데, 모르는 사람을 대상으로 작게 뒷담을 속닥거리는 건 과연 어떨지. 나는 안 들리는 척하며 걸었다.
귀가 좋은 탓인지 나는 듣고 싶지 않은 것들도 무심코 들어버리고 만다. 내 성격 상 어차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곤 하나, 가끔씩 남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느끼는 점이 있다. 그 누구도 똑같은 얘기를 꺼내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모두 각각의 사정이 있고, 각각의 인생이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세상을 본다면 느낌이 새롭다.
눈 앞을 지나가는 저 아이도 부모가 있을 것이며, 그 부모에게도 부모가 있을 것이며, 하다못해 지나가는 개마저 자신의 새끼가 있고 주인이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떠오르는 의문이 하나 있다.
'왜 나는 없지?'
나는 가정도 가족도 제대로 된 진실한 친구도 없다. 보다 심각한 것은 내게는 일반인들과는 다르게 그것을 만들 의욕조차 상당히 결여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해결될 수 없는 의문이 언제나 날 붙잡고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곤 하였다.
그러나 현재의 삶에 불만을 품는 것은 아니다. 그저 의문을 가질 뿐.
예전에 '통 속의 뇌'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었다. 갑작스럽게 떠오른 이 단어로부터 이어지는 무의미한 공상이 머릿속에서 빙빙 돌기 시작한다. 이 세상이 전부 가짜라면, 더 재미있지 않을까. 의미 없는 망상, 비생산적 사고.
근처에 붙어있는 영화 포스터를 들여다본다. 잡념은 지우고 한가로이 시간이나 때우자고, 그렇게 자신과 타협했다. 오랜 의문의 답은 미래로 미루어둔 채. 오늘은 생각이 많아지는 날이다.
즈는 1121의 이름을 마법소녀 육성계획 limited의 7753을 보고 저런 이름 짓구싶어! 한 뒤 바로 지었쥬. 삐삐 숫자 용어같은 걸 좀 참고했어유. 참고로 1121의 이름을 좀 이상하게 읽는 식으로 메일리라고 할 생각도 있었어유. 근데 솔직히 말하자면 아이리가 맘에 드네유.
맞아유 즈도 그렇게 생각해유. 사실 그거 읽는 방법도 되게 이상했구... DQN네임...... 1121을 I121로 치환하구... I=Me니까 Me... Me121->Me121에서 1은 그냥 일로 읽구... 21은 리로 읽어서...(계산기 액정같은 식으로 해서 읽어보아유)그래서 메일리... 가 될 뻔 했지만 이게 좋아유. 이게 좋았어유. 그냥 맴에 들었어유. 이런 이름의 캐를 꼭 굴려보고 싶었어유.
나 이외에는 그 반지의 힘을 깨울 주문을 누구도 알지 못하며, 나 이외의 사람이 반지에 욕심을 낸다면 파멸을 얻으리라.
아이는 눈을 감았다. 비극의 씨앗은 사소한 것으로 시작된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기에.
팔려온 아이. 부모가 얼마만큼의 돈을 쥐었을지는 상상이 가지 않는다. 푼돈이라도 기뻐 뛰었겠지. 지금 생각해보면 가엾은 사람들이다. 푼돈이라도 기뻐 뛰었다가 목숨을 달리했으니. 돈을 쥔 부모를 며칠 있지 않아 쥐도새도 모르게 처리했음을 누가 모르겠나. 소장은 그러도고 남을 사람이었다. 그들이 자신을 팔아넘겼단 사실을 기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하여 직접 총을 들어 머리를 꿰뚫었으리라.
그렇게 연구소에 왔을 때 느낀 감정은 두려움이었나. 아니, 두려움을 넘어 선 공포인가.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잘 알고 있었다. 아이는 두려워하며 울고 반항을 하였으나, 그것도 단 이틀 뿐이었다. 전부 체념하였다. 순종적이어야 했다. 아무리 제 자신이 강력하다 하여도 어린 아이를 붙잡는 것 만큼 쉬운 일은 없었으리라. 그리고, 아이를 교육하는 일 만큼 쉬운 건 없었지.
그 어떤 도덕성도 가르치지 아니하였고, 그 어떤 명령에도 복종하게 만들었다. 무기를 쥔 인형. 이름만 부르면 주인의 말에 따르는 편리한 살상무기. 언제나 눈을 떴을 땐 널부러진 시체를 치우는 흰 가운의 연구원들이 있었다.
"자네는 정말 유능하다네, 파프니르."
소장은 아이를 총애했다. 최흉의 살상병기라 부르고, 아들이라 불렀는가. 악룡의 이름을 인식명으로 붙여주며 코드로 제어를 하지 않는 경지에 이르를 정도로 아이를 제 마음대로 주물렀지. 그렇게 자신을 주무르던 사람은 어느 순간 사라져버렸다. 아이에게 남은 건 자유 뿐이다. 목표도, 목적도 없는 자유.
아이는 소장의 최후를 알지 못한다. 아무래도 그 사람의 성격상 절대 발악하거나 괴로워하진 않았겠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자결했을지도 모른다.
"그럴리가 있나."
파브닐은 말 없이 회사 옥상 난간에 걸터앉았다. 한 팔로는 턱을 괴고, 다른 손은 무언가를 쥐고 있었지. 날이 선 픽스드 나이프 한 자루가 그 작은 손을 타고 달랑거리고 있었다.
"구질구질하게 제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바닥을 기고 도망쳤겠지."
황금에 대한 집착에 눈이 멀어 인간의 모습을 버리게 되었다 하였는가. 나 또한 그의 욕망에 대한 집착에 눈이 멀어 인간의 모습을 버리게 되었지 아니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