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시간을 보낸다. 손에 쥔 스마트폰에서는 이미 수백번도 넘게 재생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 음악은 내가 약 3년 전에 접하고 처음으로 괜찮다고 생각했던 걸작이다. 나말고는 거의 아무도 모르지만.
지난 번에 마주쳤던, 뭐였지. 아, 그래. 파커. 그 남자에게 연락을 넣은 참이었다. 내기에서 졌던만큼 판돈은 확실히 지불해야만 한다. 때문에 오늘은 내가 그에게 식사를 대접해줄 예정이었다. 평소라면 직접 요리라도 했을 터이지만, 내가 약속한 건 '식사비 지불'이지 식사를 책임지는 것 자체는 아니니까.
검은 화면 너머에서 재생되는 음악에 잠시 집중한 채 식당 내에서 파커를 기다린다. 최대한 빨리 왔으면 좋겠는데. 한적한 시간대라 그런지 나 이외의 손님은 없다. 식당 내부의 인테리어는 꽤나 화려하여 딱 보아도 고급 레스토랑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해가 쨍쨍한 이 날 파커는 한가로이 아지트 내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평소에 입고 있던 롱 코트는 당연히 아지트 바닥 어딘에 휙 던져 놓고서 엄청나게 더운 이 여름 날씨에 못이겨 푹 쳐져 있었다.
"이런 세상...그냥 멸망하면 좋을텐데..."
더위를 먹었는지 맛이 가버린 이야기를 하면서 동공이 풀린 것은 분명 이 더운 날씨 때문에 밥 먹을 힘조차 없었기 때문이리라. 거드름을 피우며 아지트 내에서 빈둥대고 있을 때 파커는 누군가에서 온 연락을 받았다. 저번에 만났던 같은 멤버인 해스로부터였다. '그러고보니 저번에 내기를 건 승부를 했었지.' 파커는 빈둥대던 몸을 벌떡 일으켜 세웠다. 사람이 불렀는데 거절하고 하는 것은 그가 생각하는 도리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밥을 사준다하지 않은가. 파커는 돈을 밝히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공짜는 마다하지않는 사람이었다. . . . 적당히 입은 티셔츠를 입고서 자신의 능력인 전기로 각력을 상승시켜 순식간에 해스가 알려준 식당에 도착하였다. 팔로 머리에 줄줄 흐르는 땀으로 에어컨이 빵빵한 식당에 들어가니 그야말로 천국이 따로 없었다.
"아, 해스씨~ 오래 기다렸으려나? 나름대로 빨리 온건데 말이지."
그말대로 파커가 도착한 것은 해스가 연락을 넣은지 5분도 채 안된 시간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고급스러워 보이는 곳에 부르다니~ 이야, 곤란하네~ 이러면 죄악감이 든달까 뭐랄까, 저번처럼 적당히 피자 같은 것도 좋은데 말이지 하하하."
"이런 더위에 격식을 차리면 말이지...구워진다구? 노릇노릇 구워져서 통구이가 돼버린다구? 파커★통구이 따위 아무도 안 먹을거잖아?"
여전히 더위 먹은 탓인지 괴상한 말로 대화를 이어가면서 해스의 말을 듣고서 메뉴판을 확인해보았다. 역시 고급 레스토랑이기 때문일까 뭔가 이름은 길고 고급지면서도 다양한 메뉴가 있었다. 지금과도 같은 시기에 대단한 사치와도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니, 파커 혼자만 그런 생각이 든걸까? 여담으로 피자는 없었다. 그저 여담으로 언급한 것 뿐이다.
해스가 이어서 자신은 안 먹는다는 말에 파커의 시선은 메뉴판에서 해스로 옮겨졌다.
"모처럼 이런 곳에 왔는데? 그래도 모처럼인데 같이 먹는건?"
해스를 향해 넌지시 물어본 파커는 다시금 메뉴판을 본 다음 메뉴를 결정하였는지 지나가는 점원한테 주문하였다.
고급 레스토랑스과 같은 이 곳에서 재료라던가 레시피가 맘에 안든다는 사람은 아마 해스 밖에 없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였다. 자신은 이런 곳에 거의 발을 붙인 적이 없으니 자세한 내막을 모르겠지만 사람들마다 나름 생각이 있는 것이니 더 이상은 말하지 않는게 최선이라고 나름대로 결론 직었다.
해스의 요구에 맞춰 곧 바로 파커가 대답해주었다. 이제까지의 해스의 성격을 조합해보자면 이미 충분히 나올 말이기도 하였으니 파커 본인도 크게 신경쓰지 않는 듯 해보였다. 차려진 음식들 중 빵을 한입 물더니 맛 없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해그러스는 나름 음식에 진지한 성격의 사람이라고 생각하였다. ... 다음에 엘리형씨를 불러서 얘기해볼까나?
"에, 글쎄~ 그냥 어디봤다고 해도 최근에 같이 활동한게 있지 않았던가 싶기도 하고~ 근데, 그렇게 신경쓰이는거야?"
나의 모습을...봤구나! 같은 느낌으로 쳐들어올거 같은 해스의 말에 파커는 나름대로 적당히 대답해주었다. 그야 그렇지 않은가 본인은 도박장 같은 곳에서는 잘 가지도 않은 편이니 이곳말고는 볼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렇겠지?
"헤에, 그렇구나~ 어찌보면 다른 직장이라도 가진 듯한 분위기네. 아, 그래도 나는 도박 같은거 잘 못하는 편이라 들르는것은 좀 어떨까 싶네 응응"
요렇게 귀여운 표정을 하고 말하는데,솔직히 말하면 조금 마음이 흔들렸다. 한 1.2초정도는,그리고 이 녀석이 평소에 하던 행동을 생각하니 아아주 가증스럽다는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운다. 야,니가 언제부터 그렇게 밝고 순수한 꼬맹이였어?! 평소에는 2단점프 하고 헬륨가스 마신것 같이 구는 꼬맹이였잖아?!
"오글거리는건 잘 아네,근데 뭐? 늙은이? 저기요? 아직 오빠거든요? 나이 40전까지는 오빠고 40 넘어서는 삼촌이지,늙은이가 뭐냐고오오오!!!"
이 꼬맹이가 진짜! 다음에는 진짜 아프게 치료해야 정신을 차릴라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이를 뿌득뿌득 간다. 어휴,진짜 얘 어머니 실제로 보고싶다. 얘 어머니 실제로 보면 내가 얼마나 고생하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얘기를 해주고 돈 왕창 뜯어내주겠어! 으아아아!!!
어쨌든 이렇게 떠드는 사이 1121 얘는 바나나우유도 다 마시고 카스테라도 다 먹은 모양이다. 나는 빈 우유통을 재활용 쓰레기통에 던져본다. 들어가나? 들어가나? 아...아쉽게도 들어가지 않았다. 우유통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씁,이러면 재수가 없다는 뜻인데.
"앞으로 피 흘리면 바나나 우유랑 고칼로리 음식 많이 먹고 푹 자,알았지? 내 치료 받으면 피가 다시 차긴 하는데 그 피는 좀 부족한 부분이 많아. 그래서 좀 영양 보충하고 휴식 취해서 멀쩡하게 만들어야 해. 헌혈을 해도 빵이랑 우유를 배 터져라 먹는데,그렇게 피 흘려대고 멀쩡하길 바라면 도둑놈 심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