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거. 침묵에도 파브닐은 묵묵히 먹는 것에 집중했지. 겉으로는 그러하였는가? 속으로는 걱정하는 것인가, 오, 파브닐..그리하면 아니될텐데. 일단 먹는 것에 집중하게. 6. 파브닐의 두 눈동자가 잠시 감겼다 뜨였다. 하필 이럴때 제일 목넘김이 좋을줄 누가 알았겠는지. 파브닐은 홍초를 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열심히 좋은 것을 보아줘야해. 지금 그렇게 말했잖니. 무엇이라도 따르렴. 갔다와서 무엇을 보았는지도 이야기 해야하고, 그가 원하는대로 따라야지.
흐음,참 피곤한 양반이구만. 해그러스는 나같이 정신 구조가 단순한 인간은 아닌 것 같다. 아니면 다 해보고 나니까 인생의 무상함이라도 느끼는건가. 나는 담배를 입에 물고 라이터로 불을 붙인 뒤,한모금 깊게 빨아들이고 내쉰다. 연기를 입에서 전부 뱉어낸 뒤 해그러스에게 말을 잇는다.
"도박 만화 주인공같은 캐릭터네,너. 도박할땐 재밌어서 견디질 못하지만 도박이 끝나면 허무해서 미쳐버리려는게. ...뭐,나는 이해가 잘 안가지만. 도박이 끝나서 돈 다 따면 행복해야 정상 아닌가? 살벌한 판에서 탈출한거니까."
우린 뇌구조부터 달라서 서로를 이해하기엔 영영 불가능할거 같다. 뭐,나도 돈 왕창 벌어서 진짜 하고싶은거 전부 다 해보고 각성제랑 환각제까지 들이키고 나면 인생의 무상함을 설파하며 어디 신앙생활에 귀의할지도 모르긴 하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저 배달 올 피자를 기다리며,핫소스는 몇개나 갖다줄까,피자 한판에 핫소스 2개는 뿌려야 매콤하니 맛있는데. 하는 생각만 든다. 일단 맛있는 음식부터 먹고 봐야지.
"근데 진짜 안오네,도대체 뭘 시킨거야?"
책상에 붙어있는 피잣집 쿠폰을 떼서 메뉴를 읽어본다. 아니,벌써 13분이라고! 도대체 왜이리 메뉴가 안오는건데?! 쿠폰을 자세히 들여다 보니...가장 비싼 메뉴는 레드와인치킨이러쿵저러쿵피자라는 엄청 비싼 피자였는데,딱 봐도 만드는데 시간이 엄청 걸릴 것 같은 메뉴였다. 설마,설마 15분 안에 안오는거야?!
"...저,인생의 무상함을 느끼는 해그러스님? 그렇게 인생이 허무하시면 공짜로 빚 탕감 좀 해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저한테는 그 돈,엄청 필요한거거든요?!"
이젠 양심이고 뭐고 없다. 얼굴에 철판 깔고 말하자. 벌써 13분...14분이라고! 이러다가 지게 생겼다!
엘리고스는 천천히 미소를 지었다. 정말로 만족스러웠다. 자신의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이들과 떠들석하게 지내는게 얼마나 중요한지 자신은 인지하고 있었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싸울 준비도 되어 있다. 패자에서 벗어나진 못하더라도 최소한의 발버둥을 칠수 있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자신에게 가치는 있었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미소를 지어주며 고개를 끄덕이는 파브닐을 보며 생각에 잠긴다.
[꿈꾸는 이들만이 신을 가진다. 그것은 지금을 넘어설 힘......] "맛있게 먹었니?"
그는 따스한 미소를 지어주며 다 먹은 그릇을 하나, 둘 치웠다. 아무래도 다른 이들은 배가 안고픈가 보군, 뭐 안되면 버리거나 도시락 반찬으로 싸주면 되겠지.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파브닐을 향해 따뜻한 미소를 머금으며 입을 열었다.
얌마! 또 빚 떠안게 생긴 사람한테 무슨 행복이니 뭐니 하는 얘기를 하고 있냐! 아이고,진짜. 거 참 돌아버리겠네. 나는 머리를 부여잡고 있다가 슬슬 입질을 하는 이녀석의 말에 속이 다 터지려고 한다. 돈이랑 동급인 물건으로 지불해야한다고?! 도대체 뭘로 지불을 하란건데! 너한테 줄 물건이 나한테 있을거 같냐. 딱 봐도 돈 없게 생겼잖아 나.
하아,한숨을 내쉬고 담배를 꺼버린다. 다 태우지도 못했는데 벌써 꺼야하는구만,아깝게 스리. 그리고 시계를 본다. 14분 55초,56초,57초...
"늦어서 죄송합니다!"
"죄송할 짓을 왜 하는거야!!!"
...15분 10초로 내가 졌다. 배달부는 헐레벌떡 문을 쾅쾅 두드렸는데,힘든건 알겠지만 너무 열받아서 나는 문도 안열고 배달부한테 그렇게 소리질렀다.
"아오 진짜,그래,배달부가 뭔 잘못이야. 이게 다 인간의 탐욕 때문이다. 이게 다 인간이 탐욕스러워서 그래. 제길."
내가 생각해도 순 억지인 말을 늘어놓으며 투덜투덜 거리고,문을 열어서 피자랑 콜라를 받아온다. 그리고 상을 피고 피자랑 콜라를 상 위에 세팅 한 뒤,유리컵에 콜라를 듬뿍 따라 해그러스에게 준다.
빈 그릇을 보며 만족스러워했다. 적어도 파브닐은 그러하였다. 이제 밖에 나가서 신나게 돌아다닐 생각에 기쁜 듯 두 눈동자에 생기가 가득 들어찼지. 응, 맛있었어요. 라고 덧붙이며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피망이 들어간 건 아무렴 어떠한지, 편식하던 그것을 먹었다는 것은 꿈에도 모르겠지!
"늦지 않게 돌아올게요. 약속."
새끼손가락을 든 파브닐은 아이처럼 해맑게 웃었을 뿐이다. 약속할 수 있었다. 오늘은 여기저기 돌아보다 빠르게 돌아가야지. 그래야 내일 또 나갈 수 있을테니. 어린 아이라 그런지 밤 늦게까지 있고싶단 생각은 안 드는건지, 아니면 밤 늦게까지 있다간 혼날 걸 아는 건지.
그렇게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한 엘리고스는 가볍게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사실 몰래 피망을 넣었다는건 양심에 찔리지만 아무렴 어떤가!! 안들키면 예술, 들키면 범죄, 그것이 세상의 이치가 아니겠는가. 이런식으로 조금씩 편식을 고쳐나가는 게 좋겠지.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해맑게 웃는 파브닐의 미소에 화답하듯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어준 뒤 입을 열었다.
"내가 있는 동안에는 맛있는걸 많이 먹게 해주마."
암, 어린이들은 잘먹고 쑥쑥 커야지. 그렇게 덧붙이며 그는 파브닐을 배웅해주며 자신도 앞치마를 벗어던지고는 어깨를 풀어준 뒤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