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으래? 함 두고 보자! 다음엔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이되나 함 두고 보자고,그때 되고 나서 질질 짜도 절대 안봐줄테니까 긴장 좀 해두는게 좋을걸. 아니면 지금 빛 한 50퍼쯤은 깎아준다거나.
그래,그러고보니 종목을 정해야하는데? 무슨 도박을 하는게 좋으려나? 생각해보니 이녀석 전문 도박사잖아? 평범한 도박으로는 이길 수 없을게 뻔한데. 무슨 도박을 해야할지 고민하다가 한가지 묘수를 생각해낸다. 이 도박이면 절대 속임수를 쓸 수는 없겠지,씨익 웃으면서 말한다.
"피자가 지금으로부터 15분 안에 오느냐 마느냐 맞추기 어때? 나는 온다에 건다. 이 도시 피자집 배달은 진짜 빠르거든. 그리고 빚 탕감은 전액으로 갑시다. 쩨쩨하게 하면 재미 없잖아?"
설마 피자 배달 시간까지 속임수를 써서 이겨먹진 못하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이 도박을 제안한다.
꿈자리가 뒤숭숭하다. 파브닐의 두 눈동자에 그림자가 졌다. 분명 무슨 꿈을 꾼 것 같은데 기억도 나지 않고, 찝찝하기만 하다. 물론 세수를 하고 나니 전부 다 까먹었지만. 기지개를 쭉 켜며 옷을 보았다. 오늘은 밖에 순찰 비스무리한 걸 하기로 했었지. 정장으로 갈아입고 장갑까지 완벽히 끼고 나니 허기가 졌더라.
"엘리고스."
엘리고스가 지금쯤이면 식사를 준비했을테다. 엘리고스가 해주는 건 다 맛있어. 제 자신이 처음 맛을 본 이후로 꼬박꼬박 제 식사를 챙겨주니. 빨리 가야겠다 생각했는지 파브닐은 두 손을 땅에 짚고 조막만한 용으로 변해 재빨리 주방을 향해 뛰어갔지.
"엘리고스!"
어느새 의자에 앉아 식탁에 두 앞발을 올려둔 파브닐의 두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파브닐은 엄청 커다란 무언가를 봤어!!
얼씨구,말하는거 보소?! 지금 시킨 피자가 15분안에 오는거라고! 새로 시키거나 주문 바꾸는건 사기잖아!
"야,그건 사기잖아!"
아니 진짜 이자슥이,주문을 바꾼다니?! 역시 돈 많은 놈들은 뭐가 달라도 달라! 하지만 이미 늦었어,이 도시 피자는 아무리 늦어도 10분이면 오거든?! 메뉴 하나 바꿨다고 해서 15분 넘게 걸릴리가 없지. 애초에 바꾸는 것도 사기지만! 바꾼다고 해서도 15분 안에 못올리가 없다고. 그런데...
"...잠깐만,불의의 사고는 또 뭐냐."
왠지 분위기가 갑자기 싸해지는게 느껴지는데,설마 15분안에 피자가 못오게 할 방법이 있다는 뜻인가. 빚진놈들 동원해서 피자집에 마구 들어간다음 피자 한판씩 시키기라도 할 생각인거냐?! 설마?!
허기가 진다! 무지막지한 크기로 변하는지라 꽤나 에너지 소모가 컸더라지. 일을 끝내고 나면 간식을 자기 전까지 챙기니..뭐, 아무렴 어떠한가. 엘리고스 왜 고개 끄덕여? 그런 눈으로 바라보며 고개를 기우뚱 기울인 파브닐은 제 앞발을 보고 호다닥 사람으로 변했더라지. 좋아, 식사 준비 완료.
"잘 먹겠습니다!"
크고... 아름다워요. 어디선가 들리는 괴전파는 신경도 쓰지 않았더라지. 파브닐의 두 눈동자가 반짝였다. 크다! 파브닐이랑 키가 비슷해. 포크를 들어 계란말이를 콕, 찔러본 파브닐은 그대로 케이크를 뜨듯 조심스레 계란말이를 떼어 입에 넣었다. 따끈하고, 폭신하고..
그와 동시에 무슨 사발 하나를 가져오더니, 밥솥의 남은 밥을 싹다 털어서 사발 안에 담고 그걸 파브닐 앞에 내려놓는다. 누가 보면 무슨 도전 음식을 먹는줄 알겠지만..... 파브닐이 먹는 양을 생각하면 이건 나름대로 정상적인 현상이다. 거기에 더해서 그는 연회용으로 쓰는 5000cc 맥주잔을 가져와 얼음을 한가득 담은다음 홍초를 한잔, 그리고 나머지를 물로 채워 파브닐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네가 마지막이다. 다른 사람들이 먹을건 다 해놨고, 그러니 체하지 않게 천천히 먹으려무나!"
엥겔지수가 어떠하며 만들때의 노고가 어떠하리, 이렇게 맛있게 먹는 것만 봐도 기쁘거늘.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파브닐의 피부위에 덮힌 비늘의 감촉을 느꼈다.
넉넉하게! 많이! 파브닐의 양 뺨이 발그레하니 적적한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밥도 있다! 마실 것도 있어! 다 먹고나면 배가 부를테지! 오늘은 마음 놓고 변신해도 되겠다.
"알았어요."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이 마냥 좋은듯 한껏 입꼬리를 휘어올린 파브닐은 고개를 끄덕이곤 계란말이를 다시금 포크로 퍼서 입안에 집어넣고, 밥을 양 볼이 빵빵해지도록 가득 담더니 열심히 그것을 씹었다. 꼭꼭 씹어서 삼키고, 홍초를 목 뒤로 넘겼다. 엘리고스 최고. 맛있는 거 주는 사람은 착한 사람.
"오늘, 여기까지만..."
이 밥으로도 충분하다고? 오, 맙소사. 다이어트라도 하나. 파브닐은 다시금 밥을 입안에 가득 퍼 넣었다. 맛있어. 먹는 거 최고.
이미 다른 사람들의 분량의 몇 배를 먹었다는 것에 대해 충분히 태클을 걸 요소는 충분하지만 파브닐의 식사량이 조금 줄은 것이 조금은 걱정이 되면서도 아무일 없을 것이라 생각하며 천천히 파브닐이 식사를 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자신도 홍초를 한 모금 들이킨다. 너무 더운 날씨엔 이렇게 홍초 한 잔만 마셔도 피로가 싹 풀리는게 느껴진다.
"너무 무리는 하지 말거라."
싸울 때 와는 다르다. 약간의 온기와 편안함, 그리고 부드러움이 섞인 목소리다. 분명히 동료들을 잃은 자, 그리고 소중한 것을 잃은 자만이 낼 수 있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도 잠시 엘리고스는 예의 그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했다.
입안 가득 들어차는 느낌이 좋다. 그 새하얀 공간에선 단 한 번도 이렇게 배부르게 먹은 적이 없었지. 그 장소는...생각하는 법을 잊은 듯 파브닐은 고개를 기우뚱, 기울였다. 어땠더라. 몰라, 맛있어. 생각도 접어두고 입안 가득 씹고 삼키다보니 벌써 3분의 1이 줄어있었지. 무리는 하지 말거라. 파브닐은 고개를 끄덕이며 씹고있던 내용물을 삼켰다. 편안했다. 엘리고스는 편안한 사람이야. 파브닐의 머리엔 그렇게 기억되겠지.
"......네."
다 먹고 나갈 생각이었지? 오늘은 무슨 일이 없나 싶어 이리저리 돌아다녀보고, 14년간 단 한 번도 볼 수 없던 바깥을 구경하고. 언제부터 일상으로 굳어졌더라. 몰라, 그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하고 싶은대로 기억하면 되는 것이다. 그것들이 네 머리에 영원히 박아버린 기억을 빼고.
"관습법이란게 있잖아,배달음식이 출발했는데 그걸 바꾸는건 관습법에 위배된다고. 불법은 아니고 바꿀 권리는 있지만 배달부한테 싸대기 맞아도 할 말 없는 짓이야.마."
어떻게 그렇게 양심없는 짓을 하려고 할 수 있는지! 증말 이기려고 작정을 했구만! 하지만 메뉴를 바꾼다고 감안해도 15분 안에 오긴 올거다. 응,안올리가 없잖아. 평소에 5분이면 오는데.
그리고 그 다음 이어진 이야기는,다행히 빚 진 사람들 동원해서 피자집을 습격한다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휴우,정말 다행입니다요. 진짜 피자집 습격이라도 갈 줄 알았더니. 그리고 왜 널 보내 임마,여기서 피자집까지 왕복 20분이라고. 내가 이 도박에서 질려고 작정한게 아니라면 널 보낼리가 없잖아.
"그래서,뭐 시켰어? 고구마피자 말고 다른 피자 뭐 시켰나 궁금하다. 난 하와이안 피자가 좋은데 그거 다른 사람들이 너무 싫어하더라구."
달달한게 맛있는데 말이지! 나는 그렇게 말하고 키득키득 웃는다. 이러면 이제 또 갑자기 분위기 싸-해지면서 너...하와이안 피자 좋아하니? 그런 분위기가 되려나. 아니면 같은 동지를 찾았다고 기뻐하려나?
이렇게 잡담하는 사이 벌써 5분이 지났다. 자아,남은 시간 10분. 어떻게 할테냐. 보통 12분쯤에 피자가 도착하니까 이제 7분만 버티면 나의 승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