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을 말없이 울고만 있었다.그때,그때 내가 얼마나 많이 무섭고 미안하고 그랬는데.친했던 사람들의 마지막을 혼자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은 절대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다.절대로 익숙해질수 없는 일이었다.학교에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분명 하루하루를 우울하게 살아갔겠지. 어깨를 토닥이는 손길에 더더욱 마음이 놓이는듯 싶었다.꿈이 아니구나.꿈이 아니었구나.정말로..정말로 살아서 돌아와줬구나.
"..다행이야아.."
겨우 훌쩍임을 참으며 기분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아직 물어보고 싶은 게 산더미같이 많은데,울다가 끝내는건 영 찝찝한 일이었으니까.얼른 감정을 추스리고서 물어보려고 하니,이젠 우현이 후배쪽의 눈물샘이 터진 모양이었다.그 모습에 또 울컥 해서는 입을 연다.
"으응,우리 우현이 동생 얼마나 무서웠을지 상상만 해도 마음이 아파...한번만 안아줘도 돼애..?"
남학생 둘이서 번화가의 벤치에서 이러고 있으니 뭐지 하고 바라보는 시선도 분명히 적지 않을 것이었다.그래도 자신은 그나마 여성스럽게 생겼으니 이상하게 보는 시선은 없겠지 생각하고서 우현을 바라보았다.죄책감 탓도 있었고,선배로써 후배를 잘 달래줘야만 할것 같아서.자신이 할수 있는 한 최대한 우현을 위로해줄 생각이었다.
"..따라가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했어..그때 내가 진성이 형아를 따라갔더라면,손목시계 써서 어떻게든 할 수 있었을텐데.."
그치만 지금은 지체할수 없어 보였다.뒤를 돌아보니,상아 누나는 어느샌가 안으로 들어와서 피아노 쪽으로 다가가려 하고 있었다.어라,이게 뭔 상황이래.
"ㅈ..잠시마안..?"
일단,상아 누나는 우리의 말에 반응은 하지만 그것뿐인듯 싶었다.그리고 이어서 어디선가 향 냄새가 나자,자연스레 다시 유품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향초를 써볼까 생각했지만,이미 향 냄새가 나는 상황에서 향을 피워봐야 별반 달라질게 없다고 생각한 진혁은 악보를 집어들었다.상아 누나가 가려고 했던 쪽은..아마 피아노가 있는 방향이었던 듯 싶었다.우현이 동생이 밀치는 바람에 잠깐 저지된듯 싶었지만..
해원경을 본 진혁의 동공이 심하게 흔들리더니 갈 곳을 잃고야 말았다.뭐죠,이 민속적임은?뭐죠,이 기분은..?마치 지금 당장 꽹과리 치면서 신명나게 읽어야 할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국어책 읽기로 말고,정말 흥겹게. 그런 기분을 억누르며 해원경을 읽고 있자니 갑자기 피아노에서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튀어나왔고 그 바람에 놀라고야 말았다.
"..깜짝이야!아저씨가 왜 거기서 나와요..?"
그러고는 이내 이름을 세번 부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아...저승사자구나,저 분.그렇다면 상아 누나의 영혼을 데리러 온 저승사자일까?잠깐 갈등을 일으켰다.죽은 사람은 저승으로 데리고 가는것이 이치에 맞는 일.그렇지만 그렇게 된다면 상아 누나의 안내를 못 받을지도 모른다.자연스럽게 원래 세계로 못 돌아가게 되는 선택지가 펼쳐지고,진혁은 고개를 홱홱 저었다.
"하나 누나아,잠깐 진정하고...아저씨,아저씨 정말 저승사자예요?우와,저 저승사자 엄-청 멋지다고 생각했는데,이렇게 실물로 보게 될줄은 몰랐어요!대박이다.싸인 한장 해 주실수 있으세요?"
전에 경험했던게 있었기에,우선 심기를 건들면 안 된다고 생각하며 하나를 달래고서 저승사자 앞에 서서 눈을 빛냈다.사람이 가끔은 아부도 떨줄 알고 그래야지.그러면서 시선이 살짝 우현이 쪽을 향했다.
피아노에서 무언가가... 저런게 가능해? 아무리 봐도 어떻게 나왔는지도 짐작이 가지 않는 남자의 등장에, 비명을 내지른다. 상아 선배도 어지간히 놀랐는지, 제 뒤에 숨었고. 하나 선배는 그 저승사자를 향해 상아 선배의 유품이였던 구두를 내 던졌다.
"...사자..."
그러니까... 저승사자? 아무리 문외한인 나라도 알고 있었다. ...언젠가 본 드라마에서도 나온 이야기였지. 그리고, 저승사자가 이름을 세번 부르면, 망자는 저승으로 끌려간다고... 상아 선배를 뒤로 두고 그 검은 옷의 남자에게서 멀리 물러나려 하였다. ...그러나 스스럼 없이 저승사자에게 다가가며 말을 거는 진혁에 당황하여 잠시 멍해져 진혁을 바라보았다. 빠져나가라고?
"일단... 도망가요. 상아 선배."
...선배들이 걱정되었지만, 상아 선배는 이름을 불리면 그대로 끝장이다. 잡힐리가 없는 손목을 붙잡으려 하면서, 교실 문 밖으로 내달렸다
살기 등등하게 다른 한 짝의 구두를 들고 저승사자를 찍어버릴 것 같은 하나와, 그 뒤에서 향초이며 뭔가 이상한걸 들고 있는 진성에 기가 좀 죽은 저승사자는 정숙이 인위적으로 보이는 것이 아닐까 할만큼 살갑게 굴자 조금 떨떠름한 표정을 짓습니다. 뭐... 그래도 요란한 덕분에 우현이 상아와 함께 교실 밖으로 나가 복도를 달리기까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 하였습니다.
사실,자신도 정말 죽을 맛이었다.평소 안 이러다가 오늘 갑작스럽게 시선끌이를 위해 가짜 모습을 연기하니,약간 자신도 자신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그래도 일단 시선은 확실히 잡아둔듯 하였고,이 틈에 진성이 형아가 밧줄로 저승사자를 묶었다!
"나이스 팀워크-!흥,그리고 나중에 보자는 놈 치고 무서운거 없거드은-"
그래도 나중에 만나게 될게 무서워서 해원경은 갖고 있어야겠다고 생각하며,하나 누나의 손을 잡고 우다다 뛰기 시작했다.이 세계의.진성이 형아도 무사해야 할텐데 하는 걱정과 함께.
"좋아,튀어-!"
여전히 따라잡기 힘든 속도였지만 그래도 어느정도는 따라잡았다.원래 세계로 돌아간다면 엄청 건강해질것같은 기분이 들었다.키도 조금 크게 되려나 하는 좋은 예감도 같이 들었다...만,한 켠으로는 이상하게 일이 잘 풀리는것같아 불안하기도 했다.보통 이럴때는 꼭 중요할 때 일이 잔뜩 꼬여버리던데..
저 뒤에서 저승사자의 절규가 들립니다. 아무래도 지금 걸린다면 그냥 아까처럼 호통치는것으로는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때 하나랑 진혁이 무서히 합류하자 상아는 창문으로 들어가길 시작합니다. 그러자 상아가 들어가는중인 창문이 급격하게 흑백에 가깝도록 채도가 뚝뚝 떨어지며, 차가운 냉기를 발산합니다.
"휴... 어쨋든 이렇게 되었으니 들어가면 될까?"
하나는 그렇게 말하며 진혁의 손을 놔주고 일행중에서 가장 먼저 창문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듯 으쌰! 하고 한 발을 창턱에 걸치더니 휙 하고 안으로 들어가려다 말고 당신들을 향해 들어오라고 하는듯 손을 뻗었습니다.
저승사자의 절규를 듣는 기분은 참으로 신선한 기분이었다.저러고 있는걸 봐서 진짜 단단하게 잘 묶어둔 모양이었다.전에 악마놈 같았더라면 줄을 끊고 쫓아왔을거라는 생각이 들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창문의 채도가 낮아지고,차가운 냉기를 발산하자 추운지 살짝 몸을 옴츠렸다.으,추워라.
상아 선배 이후에, 선뜻 나선 사람은 하나 선배였다. 당연하다는 듯이 창문에 걸터서 우리를 향해 손을 뻗는 모습을, 얼이 빠져서 바라보았다.
"...하나 선배도, 갈거에요...? ...괜찮은건가요?"
돌연, 정말로 갑자기 그 전에 있었던 악몽같은 현실이 떠올라 버렸다. 들어가기 직전이였지만, 몸이 사시나무가 바람에 휘둘리듯 마구 떨리고 있었다. 기억을 지운다고 해서, 지워지는 것은 아니였으니. 어쩔 수 없었지만, 이 상황에서 이러는 건 그저 민폐라는 것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제 팔뚝을 힘을 주어 꾸욱 쥐어버렸다. 역시 무서워. 무서워...
그렇지만
"...역시, 가야되지만요. 저..."
떨리는 손으로 하나 선배의 손을 붙잡았다. 이만 지체할 시간은 없었으니까. 사자가 우렁차게 절규를 내지르는 것을 뒤로하고, 창문으로 뛰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