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황극판은 익명제입니다. 본인이나 타인의 익명성을 훼손하는 행위는 삼가주세요. 하지만, 자신의 위치(스레주/레스주) 등을 밝혀야 할 상황(잡담스레 등에서 자신을 향한 저격/비난성 레스에 대응할 시 등)에서는 망설이지 말고 이야기해도 좋습니다. ☞ 서로를 존중하고, 자신이 먼저 배려하는 마음가짐을 가집시다. 모니터 너머의 이용자도 당신처럼 '즐겁고 싶기에' 상황극판을 찾았다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모두 두루두루 친하게, 잘 지냅시다. 말도 예쁘게해요, 우리 잘생쁜 참치들☆ :> ☞ 상황극판은 성적인/고어스러운 장면에 대해 지나치게 노골적인 묘사를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약물과 범죄를 미화하는 설정 또한 삼가해주세요. 각 스레마다 이를 위반하지 않는 수위 관련 규범을 정하고 명시할 것을 권장합니다. ☞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은,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행동이 결코 아닙니다. 바람직한 상판을 가꾸기 위해서라도 서로에게 관심을 가져주세요. 다만 잡담스레에서의 저격이나, 다른 스레에서의 비난성 및 저격성 레스는 삼갑시다. 비난/비꼬기와 비판/지적은 다릅니다. ☞ 상황극판의 각 스레는 독립되어 있습니다. 특정 스레에서의 인연과 이야기는 해당 스레 내에서만 즐겨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잡담스레에서 타 스레를 언급하는 일도 삼가도록 합시다. 또한 각 스레마다 규칙 및 특징이 다르기 마련입니다. 해당 스레의 이용자들에게 문의해주시고, 그 규범에 따라 행동해주세요. ☞타 스레와의 교류 및 타 스레 인원의 난입 허용 여부(이건 허용한다면 0레스에 어디까지 괜찮은지 명시해둡시다)와, 스레에 작성된 어그로성 및 저격성 레스의 삭제 여부, 분쟁 조절 스레의 이용 여부에 대한 결정권은 각 스레의 스레주에게 있습니다.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서 "분쟁 조절 스레"를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 처음 오신분은 어려워말고 잡담 주제글에 도움을 청해주세요! 각양각색의 스레들을 가볍게 둘러보는 것도 적응에 효과적입니다.
명상의 경지가 깊어지면 자연스래 자아를 잊고 자연가 하나가 된다는 장로들의 이야기를 들은 바가 있다. 오월은 자신은 죽었다 깨어나도 그런 경지에 다다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고, 그럴 생각도 없었지만, 그 편린만큼은 몸으로 체험하고 있었다. 숲의 냄새, 흙의 온도, 불어오는 바람의 촉감을 느끼고 있자면 자신이라는 존재가 마치 녹아내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
오월은 자신을 둘러싼 자연 속에 침입해온 이물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누군가가 근처에 있었다. 자신을 둘러싼 자연의 존재감을 압도할 정도로 거대한 무언가를 가진 누군가가. 그것을 혈향이라 해야 할까. 아니면 철냄새라 해야 할까. 실재로 냄새는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와 유사한, 자신이 평생동안 전장에서 살아온다 하더라도 쌓을 수 없는 업을 가진 뭔가가 느껴졌다. 그는 저도 모르게 삿갓을 내리쓰고 경계태세를 취했다. 생각 이전에 이루어진, 야생 짐승의 보호 본능과도 같은 행위였다.
"...아 귀공은..."
그러나 월은 수풀 사이를 해치고 나타난 여인의 모습을 보고 그 경계를 어느 정도 수그려뜨렸다. 분명 명운 곁에서 본 기억이 있는 인물이었다. 흑색의 고급스러운 복색. 입에서 나오는 고풍스러운 어투와는 달리 소녀와 같은 생김새. 잊으려 해도 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깊은 산속에 저 말고 다른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군요. 말씀하신대로 신농을 모시는 오족의 월이라고 합니다. "
월은 삿갓을 벗고 두 손을 겹치고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물론 자신도 모르게 드는 경계심을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니었다.
"...예. 그렇게 불러주시면 될 것 같군요. 그럼 제쪽에서는 아영님이라 부르도록 하지요. 솔직히 말해 중원의 사람들은 높고 낮음을 따지는 것이 복잡하여 이렇게 존대하는 쪽이 마음이 놓이더군요. 예의를 잘 모르는 이라 부끄러울 다름입니다."
오월은 아영의 털털한...아니 그보다 더 나아가서 거칠기까지 한 태도에 살짝 웃으며 이야기했다. 그나저나 중원에도 신농을 믿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오래된 신인데다가 부귀영화를 비는 온갖 잡신들에게 밀려 그 세가 줄어들었다 알고 있었는데, 농민들 사이에서는 다른 모양이었다.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로군. 그러나 그것만으로 그녀에 대한 경계심을 풀기에는 부족했다. 노루 앞의 호랑이가 적의를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긴장을 풀지 않는 법은 아닐테니.
"...제가 아영님을 그렇게 여기는 것 처럼 보였다면 오해하신 것 같습니다. 목적없는 사람베기를 하는 망나니쪽이라면 오히려 대하기가 쉬울 겁니다. 도리가 없는 자는 도리로써 제압하면 될 뿐이니까요."
월은 그렇게 말을 얼버무렸다. 월은 귀족으로서 태어났고, 어릴 적부터 사람을 다루는 예의작법을 배워왔다. 그렇기에 평범한 이들보다는 사람을 보는 눈이 있는 편이었고, 그런 그가 보기에 아영은 행인을 베고 다니는 망나니는 아니었다. 그랬다면 두렵지는 않았겠지. 오히려...아니 여기까지만 해두자.
"그런데 이 늦은 시간에 산에는 왠일이십니까? 저는 녹지에서 자라 이런 산중이 편하기에 들렀습니다만.."
월은 아영의 신분의 고하를 두지 않는 태도와, 합당한 이유 하에서의 살인을 공언하는 언행, 그리고 향로의 향기를 피우듯 풍겨오는 살의에 살짝 움츠려들며 그녀를 그리 평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오월은 그녀가 거북했다. 그는 젊은 귀족 특유의 이상주의에 젖어 있었고, 순수한 열정과 도리를 간직한 남자였다. 그합리성으로 살인, 어쩌면 그 이상도 불사할지도 모르는 그녀의 모습은 자신이 가진 도리와는 상충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쩌면 이것이 현실인지도 모른다. 줄곧 남방의 낙토에서 운둔해온 오족과 달리 중원은 수시로 전쟁에 시달려오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기회가 있을 법 하군요. 고삐풀린 짐승이 숲에 있다는 이야길 들은 참이거든요"
기분나쁜 입이 귀에걸릴듯한 웃음기를 머금고 아영은, 오월이 자신이 보는 어떻게보면 경멸에 가까운 시선을 아무렇지도 않다는듯이 맞받아들였다. 아영은 이성없는 살인자는 아니지만 그것보다도 한층더 악질인 이성있고 신중하면서도 바라는 것은 탐욕적이기 그지없는 선인이라고 부르기는 힘든 부류에 속해있었으니까. 의도 협도 그녀에게 있어서는 그저 하찮은 부류였다. 그렇기에 독단적이 오만해보이기 까지했다.
어찌하여 그녀가 그러한 성격을 가졌을지 태생이 궁금할정도로.
"그건 호외네. 당신의 경지도 한번 엿보고싶기도하고."
킥킥거리며 아영은 검붉은 도신의 칼날을 검집에서 빼들었다. 피안개화도라는 이름의 검은 그 이름 그대로 피안(저승)의 빛깔을 띄고있었다.
".....실례라 생각될지도 모르지만 굳이 입을 열겠습니다. 그런 것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월은 단호히 이야기했다. 위정자로서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었기에. 그는 타인의 위에 서는 자는 사사로운 욕망이 아닌 대의를 위해 움직여야 한대 배워왔다. 위정자가 개인의 욕망에 좌우된다면 그를 따르는 민초는 그 욕망에 불을 지피는 장작이 되어 버린다. 개인의 쾌락과 야심이라면 이러한 책임은 지지 않아도 되겠지. 허나 정복욕과 야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수백, 수천의 민초의 피가 흘러야만 한다.
"당신이 추구하시는 바는 위험합니다. 종국에는 당신 자신조차 태울지도 모르지요."
오월은 그렇게 말하며 봉우리 몇개를 순식간에 넘어가며 아영을 안내했다. 사람이라기보다 마치 짐승이 초목을 누비는 것과 같은 발놀림. 중원에서는 보기 어려운 움직임이었다. 그렇게 얼마가 지나고 나자 나무 곁에 맷돼지 무리의 시체가 피를 흘리며 낭자되어있는 광경이 보인다. 상처는 짐승의 것이지만 고기를 먹은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마을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이 근처에서 미친 호랑이가 나타났다는군요. 무언가를 먹지도 않으면서 짐승을 해치고 다닌다고 합니다."
"천하를 재패하고 만민평등. 누구하나라도 고통을 더는 세계를 연다. 태평천하라고 하던가. 썩고 부패하기 그지없는 이 하명의 나라들을 무너뜨리는 것은 수많은 피가 흘러야만 이룰수가있다. 중원은 결국은 피비린내나는 싸움을 겪지아니하면 쟁패하는것은 불가능하다. 라는 거지. 평화롭고 협상적으로 천하를 쟁패하겠다라. 그런 샌님같은 소리를 혹시나도 하는거라면 돌아가라. 그건 파천조차도 알고있는 진실이니까."
아영은 단순히 피비린내를 온몸에 적시고 천하를 쟁패한다는 그런 욕망으로 끝나는 것이아니라, 그와는 대조적으로 민심태평이라는 어려운주제를 목표로 삼고있었다. 개인의 욕망과 대의가 뒤섞여 있는 회색빛깔의 편린을 그녀는 펼쳐보임으로서, 이성있는 광기를 가진 인간이라고 보일수밖에 없었다.
"뭐어 파천이라면 민초가 무기를 들고 대적해온다면 그무기를 부수지 생을 빼앗지는 않는다라 대답했지만. 그게 그리 쉽게 되는일일까? 도의가 아닌 실질적인 현실을 말하고싶은거야 나는. 이상론만으로는 대의를 이루는것은 불가능하다. 라는거지. 윽.. 내가 그런경험을 가졌으니까..?"
아영은 머리의 지끈거리는 감각을 느끼면서 의미심장한 말을 그리 내뱉었다. 자신은 도대체가 과거에 무슨일을 하려고했던것인가. 그것을 찾는다는 잡념이 또한번 떠올랐다.
"이야기는 이쯤에서. 잃은 기억이 떠오르면 머리에 대못을 쑤셔박는듯한 두통이 오거든. 그렇지만 나정도 축이라면 그래도 파국에 이를만큼에는 가지않는 선은 지킬생각이거든. 선을 넘어선 인간역시 파천의 군세에 있기때문에, 나 역시 그 부류들하고는 충돌할수밖에 없어. 당신이 올곧은 사상을 가진 이라면 당신과도 충돌하려나. 나참.. 정말이지 적을 만드는 성격이라니깐."
농담하듯 아영은 화제를 주변에 널부러진 맷돼지의 피비린내로 가득찬 역한 광경아래서 돌려버린다.
"광호인가. 마에 물들었을지도 모르겠군."
보검의 베는 맛을 봐야할 수준은 될듯하다고 아영은 판단하고는 외투에 있던 소모품과도 같은 잡검들 역시 유사시에는 펼쳐보이기위해 미리 기혈을 방출시켜 기를 집어넣는다. 어검술. 그것이 그녀의 주무기였으니까.
오월은 아영이 말을 하는 동안 조용히 침묵을 지키며 산을 오르다가 그녀가 말을 마치고 나서 한 참이 있다가야 입을 열었다. 그녀는 오만했다. 그것이 오월이 아영에 대해 내린 결론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이상을 논하면서 그 방법으로 현실을 말하고 있었다. 그 사이에 있는 끔찍한 괴리에 대해 알고 있으면서도. 그녀가 단순히 피와 야망에 미친 정복자가 아니라는 것은 그것으로 분명해졌다. 허나 월은 여전히 그녀가 오만하다고 느꼈다. 그녀는 인간으로서 버텨내기 어려운 지독한 참상과 악업을 그녀 혼자서 지탱해나가려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다시금 알았다. 그녀는 위정자가 아니다. 그 어떤 땅에도 홀로 존재하는 왕은 없으니. 허나 이를 입으로 말한다면 그것은 그녀의 존재방식에 대한 모독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오월은 말을 아꼈다. ....실재로 입으로 꺼내면 도륙나는 쪽은 자기일것 같았고. 암.
오월은 그렇게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 농담을 던졌다. 나뭇가지 하나 꺾어 뒤통수에 던져버려도 괜찮지 않을까. 노인공경하지 않는 것들은 맞아도 싸다. 그러고서 그녀가 전투태세를 준비하는 것을 본 오월. 그 또한 삿갓을 쓰고 범의 흔적을 찾는다. 놈은 가까이에 있다. 생각보다 가까이. 라고 생각하는 순간, 우렁찬 울음소리와 함께 수풀사이에서 짐채만한 범이 달려들었다. 눈자위가 하얗고 입에는 침이 폭포처럼 흐르고 있었다. 이런!
아영은 분명 자신과는 다른 마음가짐으로 대업의 길에 오른 이라고 판단할수밖에 없었다. 성훈과는 다른의미로는 그와 사상적으로 충돌할만한 일이 있지않을까하고 아영은 그의 속내를 떠보려는듯 그러한 질문을 해보인다.
"호랑이랑 같이 배에 시원한 칼구멍을 내주면 좋으려나. 수년전에 주화입마에 고생하면서 깨어났을때 옛날일을 기억하려고하면 머리속에 자물쇠가 걸린것처럼 막연하고 접근하기가 힘들단 말이야... 에이씨 좀 사람이 이야기하려는데 눈치가 없네 짐승이라 그런가."
농담같지도않은 농담을 던진 오월의 말을 반박하려던 아영은 칼자루를 역수로 잡고는 그대로 달려드는 범의 턱을 후려치고 칼을 날카로운 치아사이로 집어넣으려고 했다. 마치 그것은 한마리의 이리가 사냥감의 몸뚱아리에 어금니를 박아넣는듯한 검의 형세였으며, 격식없다는 느낌보다는 노련하고도 본능적인 사냥꾼의 모습이었다.
"아영님에 비하면 자그마한 이유지요. 그리고 엄밀히 말하자면 동참하고 있기 보다는 이익관계로 묶여있다고 말하는 편이 솔직할 것 같습니다. 저희 고향의 사람들을 위해서지요. 저희 동족...오족은 중원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수백년간 운둔하며 살아온 이들이, 닫힌 문을 열고, 다른 이들을 돕고, 또 다른 이들에게 배우기 위해서."
시원스러울 정도로 솔직하게 답하고, 월은 대지를 박차 달려갔다. 흙이 있는 곳은 곧 신농의 정원이요 영역이었다. 땅을 향해 흘러들어오는 막대한 양의 기는 말이 이끄는 마차의 바퀴마냥 월의 몸 속을 재빠른 속도로 달려나간다. 제트엔진마냥 빠른 속도로 달려나가는 칠흑의 갑주. 그러나 그보다 빠른 속도로 아영은 범의 턱을 후려치고 치아 사이로 칼을 쑤셔넣는다. 이런 정신나간! 칠갑도 없는 맨몸인데 호랑이 이빨에 찢겨나가는 것은 무섭지도 않은 건가? 라고 걱정하는 것도 잠시. 아영의 칼날은 범의 입언애 송곳니와 같은 상처를 남긴채 유유히 빠져나와 있었다. 놀라운 절기, 만약 실재로 붙었을 경우, 저 검을 막아낼 수 있을까?
"여하튼, 그렇기 위해서는 배울 상대가 필요합니다."
월은 범의 측면으로 달려가 갈비뼈에 손을 얹고서 대지의 기를 발산한다. 퍼엉-하는 소리와 함께 범은 공중으로 날아가고, 그와 동시에 월은 몸을 날려 공중제비를 돈 뒤 다리를 뻗어 하늘에서 땅으로 가해지는 충격! 패유오야산(悖類烏夜山)의 1권과 3권의 연계였다.
"그리고 오족의 속담 중에는 적이야말로 최고의 스승이라는 이야기가 있지요."
즉슨 이 나라를 무너뜨리는 과정의 시련에서 자신의 나라를 일으키기 위한 방법을 찾겠다는 것이었다.
"중원의 놈들은 또 그런식으로.. 민족을 탄압하는가.. 어째서 다른 민족을 이해하지못하고.. 윽 두통이 너무 강한데."
머리가 지끈거렸다. 어쩌면 또라고 아영은 스스로 내뱉었기에, 묶여진 기억속에 그렇게말할만한 자신의 경험이 있지않았나하고 원망스러운 말투로 이야기했다.
호랑이의 혈흔이 묻은 검붉은 검신을 바닥에 휙하고 아영은 피를 뿌려쳐 내고는 오월의 움직임을 보고는 첫째 분석하기로 그것은 권의 무공이고, 움직임은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나기에 예사롭지 않으며, 흑색의 갑주는 무언가 비범하기 그지없는 물건이라고 판단하였다.
"배울상대는, 이 여로에 있어서 수없이 깔려있을테지. 꼭 적만이 배움의 길은 아니야. 아군이 하는것도 도움은 되거든. 당신의 움직임도."
범의 측면으로 발경하는 광경을 아영은 목격하고는 역시 일반적인 수준의 무공은 아니라고, 하기야 한민족의 부흥을 바라는 듯한 인물인데 그정도야 당연한게 아닌가하고 생각했다. 공중에서의 전투는 딱히 아영으로서는 그럴이유를 느끼지못해 많은 기술을 가지고 있지아니하여서, 저것으로 파고든다면 자신에게도 불리한점은 분명있을거라고. 또한 주먹과 다리에 실린 기의 흐름은 자신이라도 맞는다면 치명타를 피하기는 어렵지않겠나하는 그런 경지를 보았다.
"물론 전장에서 모든것이 힘으로 지배된다고는 생각하지않아서 말이야. 이런걸 보여줄까하는데."
기를 머금은 검 세자루가, 외투를 벗어나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것은 무공의 경지에 이른사람은 이리 말할것이다. 비연검(飛演劍, 날아서 흐르는 검). 유유자적하게 하늘을 헤엄치는듯한 칼날은 땅으로 고꾸라져 괴로운 숨을 토해내는 맹수가 일어나기를 기다리다 두자루는 달려드는 맹수의 시선을 끌듯 유린하며 어금니와 그 손톱으로 할퀴어 오는것을 유인하며 피하고는 아영의 정면으로 맹수를 유인했다. 마치 공격해볼테면 해보라는듯 도발하는 모습 그자체였다.
"사상비낭검법(思想飛狼劍法)-."
이윽고 맹수는 뒷다리를 차올려 강습하듯 아영을 덮치려 하였고, 아영은 그러한 맹수의 움직임을 웃으며 허공의 춤추는 칼날들을 회수해 세자루의 검날이 교차하며 마치 방패가 된듯 맹수의 포효하는 움직임을 그대로 막아쳐 튕겨내 맹수를 뒷걸음치게 한다.
"<ruby 2권>2초식<ruby> 도검방순(刀劍防盾)."
어느새 그녀의 손에는 검붉은 도신이 보이지않았다. 그것은 마치 걸려들었다는 듯이, 먹잇감을 거미줄에 걸어버린 거미처럼, 노련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사악한 웃음기를 머금은 아영은 그대로 손짓하여 맹수의 뒤쪽으로 나타난 검붉은 도신, 피안개화도를 그대로 맹수의 몸통에 쑤셔박으려 했다-.
"쳇."
하지만 맹수역시 그걸 쉽게넘어갈 존재는 아니였는지 몸통을 스쳐 자상을 입기는했지만, 기이한 동작으로 옆으로 스탭을 밟아 회피했다. 아영은 분하다는 듯이 맹수를 노려보고는 한편으로 요즘은 제대로 된 상대를 만나지않아서 칼이 많이 무뎌진게 아닌가하고 자책하는 마음도 가진다.
오월은 아영이 부리는 것처럼 보이는 세자루의 검이 마치 날아다니는 새마냥 맹수를 압도하며 희롱하는 모습을 보았다. 어디가 힘으로 지배된다고 생각하지 않는 겁니까! 고수의 절기로 압도하고 계시면서 그런 말하는거 좀 치사하지 않습니까! 라는 말이 나오려는 것을 참고 다시금 태세를 갖추었다. 정말이지 중원은 신기한 것으로 가득차있군. 오족의 아이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도 믿어주려나. 분명 거짓이라 비웃겠지. 그리고 범의 배후에 검붉은 검이 나타나는 것을 신호로 다시금 달려들었다. 아까 전부터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이 있었다. 저런 고수의 움직임 조차 피할 줄 아는 영물이 어찌하여 이런 도살을 저지른 것일까. 또 왜 수세인 승부에서 싸우면서도 짐승의 생존욕구보다 싸우는 것을 고수하는 걸까.
"이쪽이다!"
오월은 범을 도발하듯이 바로 정면에서 일체의 자세조차 잡지 않고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그 빈틈을 놓치 않고 오월의 팔에 달려드는 범의 아가리. 아까 전 송곳니와 같은 검에 찢어발겨지면서도 그 힘은 조금도 떨어지지 않았다. 만약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이미 팔이 곤죽이 되고도 남았겠지. 어디까지나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러나 월이 전신에 두르고 있는 칠갑은 이 정도의 힘은 버텨내고도 남았다. 월은 몸을 돌려 한 팔이 범의 입에 물린채 나머지 팔로 범의 머리를 감싸듯 쥐고 조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용히 범의 상태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미친듯이 뛰는 맥박과 상기된 숨소리, 뭣보다 혈관에 흐르는 탁한 무언가....신농을 섬기며 여러 의술을 발전시켜온 오족인 오월의 눈에는 그 비밀이 보였다.
"....이 녀석. 사냥꾼이 뿌린 오검초 독에 중독된 모양입니다. 시력을 빼았고 정신을 흐리게 만들어, 이성을 잃고 날뛰게 만드는 물건이죠. 즉사시키기 보다는 고통을 오래 주기 위한 고문용인데..."
간단한 이야기였다. 이 범에게 사냥을 훼방당한 사냥꾼이 놈에게 앙갚음을 하기 위해 독을 뿌린 먹이를 뿌린 것이겠지. 원한을 갚기 위해 이런 치졸한 수를 쓰는건 인간 밖에는 없다.
아영은 소비한 기가 그 몇합으로도 꽤 소모가 컸기에, 겸손떠는 모양새로 주변에 흐른 혈흔들을 마공으로 흡수해갔다. 혈자의휘공(血資意輝功). 이라고 불리는 그 기이한 기술은 혈흔들을 흡수해나가 하나의 붉은 덩어리로 아영의 몸으로 흡수해 들어갔다. 피비린내가 아닌, 다과향을 연상시키는 달짝한 향기를 품어내면서. 다만 그 혈액의 사이에 기이한 기운을 감지해 술의 취기를 날리듯 날려보인다. 무언가 혈자리에 이상이 있는 모양이다. 저 호랑이는.
"이정도로까지 버티는걸 보면 단순한 범은 아니고, 영수인가."
혈도를 그대로 기로 전환해 흡수하면서 아영은 오월이 싸우는 장면을 바라본다. 칠흑색의 갑주가 맹수의 예리하고 날카로운 공격을 분명 범인이었다면 뭉개버릴듯한 파괴력을 가졌음에도 튕겨내는것을 보며, 정도면 주인 자체도 기강이 대단한것이 아닌가하고 이윽고 목을 조르는 기술 하나하나를 파악해간다.
"의술에도 일가견이 있는 모양이군. 난 그쪽으론 까막눈이라, 잘모르긴 하지만 혈자리에 독액을 맞으면 저리 미치는 광인을 본적은 있었군. 쓴사람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였나 혈을 기로 전환하는데 있어서 위화감이 있던것을 날리려고 했었는데, 그게 독초의 기운이었나."
그렇다면 혈도를 바꿔놓을 필요가 있었다.
"혈자리가 이상한모양인데, 혈관을 절제할줄은 알아? 내 검은 베고 찌르는데 특화되있어서 베어버리면 문제가 있을테고, 그쪽이 의학이 있다면 부탁하고싶은데. 나머지는 내가 방도를 찾을수는 있을거같네."
매일같이 술만 마시는 것도 슬슬 질려가기 시작한다. 정말, 시간이 왜 이렇게 안가는 건지 모를정도로 길게 느껴지니까 문제다. 좋게 말하자면 이 마을이 평온한 곳이라는 증거지만, 그만큼 정신이 몽롱해지는 느낌인지라. 원래부터 반쯤 정신이 나가있는 그로써는 신기하면서도 무서운 일이었다. 방에서 굴러다니다 보면 나가고 싶지 않고, 뭔가 먹고 싶지도 않고... 아무튼 위험한 상태다. 그래서인지 밖으로 나와, 아무 풀숲에나 털썩 앉고는 가만히 주변을 구경하고 있었다. 이대로 방 안에만 있다가는 평생 날계란처럼 늘어져 있을지도 모르니까.
" 고향으로 돌아온 느낌이구만. "
문득 든 생각은 그러했다. 고향과 똑 닮았구나. 하는 느낌말이다. 정작 고향이 평화롭다고 느낀 적은 평생에 딱 3번 뿐이었지만, 아무 일도 없을때의 분위기만 본다면 얼추 비슷해보였다. 넓게 펼쳐져있는 논밭이라던가. 유난히 하늘이 맑다던가.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주문했을 때, 음식이 있을까에 대한 생각부터 시작했다. 그 남자에게 주어진 시간은 아직 많았고, 파천의 곁에 있으면 충분히 오랫동안 즐길 수 있을거라는 확신을 받은 만큼 그는 의외로 얌전했다.
소태도로 겉 면이 까칠한 소나무에 칼자국을 내고 있을 즈음, 풀숲에 누군가 앉아있는 모습을 발견하자 그 남자는 소태도를 집어넣고 그쪽으로 다가갔다. 남자의 기억에 따르면 저 자는 이전 달이 둥글게 뜬 호수에서 마주친 사람이였다. 요괴 같은 것은 아니였다. 기억상에는 분명...
"음.. 당신은 이전에 봤던 사람이군요?"
남자의 몸에 비릿하게 남아있는 혈향을 사람들은 싫어했다. 그래서 웃는 모습을 연구해서 항상 지어보였는데 오히려 역반응을 불러 일으키는 경우가 많았다.
'이 사람은 어떨까?'
살수치곤 효율적이지 못하다, 검객치곤 피를 너무 좋아한다, 검이 미쳐살며, 강자와의 결투를 고대하는 그를 사람들은 괴물취급 하였다.
시원한 바람이 시골길을 스쳐지나가 두 사람을 훑고 지나간다. 남자는 눈웃음을 지어보이며 고개를 갸웃거리며 적의 없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 와중에도 상대방을 살피는 건, 투귀의 본능일지도 모른다.
"....기본적인 것 이외에는 할 줄 모르니 큰 기대는 안 하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만..."
월은 천옷사이의 주머니를 꺼내더니 작은 검은색의 상자를 꺼내 여는 오월. 안쪽에는 칠흑빛깔의 작은 목도를 비롯한 정체모를 목기들이 들어있었다. 오족의 주민들이 쓰는 간단한 의료도구의 모음으로 월이 쓰는 칠갑과 같은 과정을 통해 만든 것이었다. 어쩌면 신농께서는 이러한 용도로 쓰는 것을 더욱 환영하셨을지 모르지. 월은 조용히 범의 목을 더듬어가며 절제하기 좋을 만한 자리를 찾는다.
"그나저나 아까 전에는 피를 기마냥 흡수하시던거 같은데....저 서쪽 땅에는 피를 마시고 영생을 누리는 흡혈귀라는 요괴가 있다는데 혹시 아영님이 그 부류 아니십니까?"
월은 급박한 상황에서의 긴장을 덜려는 듯이 호랑이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힘을 주는 동시에, 목덜비 근처의 혈관에 단도를 대어 픽-하고 그어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쏟아져 나오는 피. 이야이야 이거 위험한데.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그리 무겁지는 않은 것이 짐승은 아니고, 그럼 사람이구나. 하며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보면 마침 저번에 봤던 남자가 서있다. 그때는 강가였고 이번에는 풀숲인가? 생각하면서 천천히 일어나려고 하는데, 너무 오랫동안 가부좌를 틀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몸이 말을 잘 안듣는다. 다리 힘만으로는 버거운지 손을 짚고 겨우 일어난뒤에 당신을 향해 손을 휙휙 흔든다.
" 또여.. 암튼 반가워잉. "
늘어지는 말투는 심히 나른해보여 마치 방금 전에 일어난 사람같다. 말이 끝난 뒤에는 당신의 웃음짓는 모습을 슬쩍 보더니, 팔짱을 끼면서 마주 입꼬리를 올려보인다. 웃는건지 웃는 척 하는건지. 감이 안 잡히는 느낌이다.
아영의 예측이 맞다면 피에서 독기를 걸러내기만 하면되는 부분이었기에, 혈관을 자르는것 자체가 필요했던것이다. 자신의 검으로는 파상풍을 일으키던 숨통을 끊어놓건 둘중하나기에 그것보다는 오월이 무언가 계책이나 도구가 있다면 하는 편이 나았다라고 말하고싶은 것이리라.
"좋아 그정도면. 그리고 흡혈귀라니 너무한거아닌가. 요괴는 아니라고. 그리고 남쪽에 산다는 비연마도 아니니까 이상한소리는 하지말아줄래. 내가 기억은 못해도 확실한건 마공의 영역에 걸친기술이라 잘못하면 피에 취해버린다고."
목기로 절제되는 광경을 보고는 안도했으나, 이윽고 들어온 오월의 농담같은 소리에 아영은 반쯤 눈을 가늘게 뜨고 노려본다.
"그럼 혈도의 길에서 독기를 제해보자고."
영수를 해하는건 마을에도 화를 불러올수도 있는 일이기에 응급처치를 하는것이 좋은 선택지라고 아영은 판단했다. 그렇기에 혈을 흡수하고 기로 바꾸는 이 마공에 있어 간단한 응용이라면 그것은 가능할 터이다. 자신의 무공의 경지를 확실히 아는것은 아니지만 간단한독이라면 기로 그것을 정화하는것은 가능했다.
"생각보다는 깊은것같지만.. 이정도라면."
아영의 오른손이 진홍빛으로 빛나며 흐르는 피를 멈추어내고는 정지된 피속에서 독기를 걸러내갔다. 그나마 아까전에 기로 전환한 양이 어느정도있고 영수의 피였던 모양인지 일에는 그 지장이 없어 이내, 호랑이의 거친 숨소리가 편하고 진정되어가는 것을 볼수있었다.
청조검을 잡고있는 상태로 느긋하게 팔짱을 낀다. 여전히 외모와 상당한 괴리감을 자랑하는 말투에 실소가 흘러나올뻔 했으나 고개를 살짝 숙여 올라가는 입꼬리를 진정시켰다. 남자는 손을 휙휙 흔드는 그에게 가볍게 고개를 대각으로 기울여 목례로 답하였고 이내 유수의 질문에 답변해주었다.
"파천이 말한 사산혈왕, 그리고 장군들을 습격하는 시기가 다가오는 만큼 진정하기 힘들더군요. 그래서 조금 기분전환을 위해서 나왔습니다."
남자는 되도록이면 파천의 무리들 대부분과 싸우고 싶었다. 그러나 멋대로 검을 뽑는다면 파천의 무리들에게 미움받을 것 같았기에 최대한 자제하기로 마음먹었다.
'조급해하지 말자. 어차피 싸울 기회는 많이 남아있으니까'
사산혈왕과 싸우는 생각만하고 기다렸다. 어떤 무공을 쓰는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아무것도 몰랐으나 그의 머릿속에는 싸움만이 들어차있었다. 과연, 얼마나 자신을 즐겁게 해줄까.
" 이 상황에서 긴장할 일이 뭐가 있겄어. 앞으로야 그럴지도 모르지마는, 지금은 하는 일이 밥 먹고 자고 술 들이붓고 자고. 반복이여. "
실제로, 최근 4일간의 행적이다. 다른 무인들이 홀로 수련한다던지, 서로 칼을 맞대어 본다던지 하는건 먼나라 이야기같은 말이다. 전투라는걸 도통 안해봤으니 그럴만도 하지. 진짜 전장에 나가봐도 칼 들고 싸울 일은 하나도 없을테고. 칼집에서 칼 꺼내는 날이 아마 저승길로 가는 날일거라 생각하고 있는 마당에, 긴장감이 있을래야 있을수 없는 것이다.
" 겁 집어먹은건 아닌거 같은디.. 아, 당장이라도 싸우고 싶은거구만. 대단허네잉. "
당신의 당당한 모습을 보아하니, 진정이 되지 않는다는 말은 싸우고 싶다. 의 준말으로 이해했다. 또한 실제로 비슷할지도 모르는 일이고. 겁이 없다는건 나쁘지 않은 일이다. 많은 것보다는 백배 낫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