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간만의 비번이다. 서하 씨가 일을 하니까 둘이서 데이트를 하지 못하는 것은 조금 아쉽긴 하지만 아무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하며 간만에 휴식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 나는 길거리로 나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여기저기로 돌아다니다보니 번화가로 올 수 있었다. 그 날 이후, 모든 것이 상당히 많이 바뀌었다. 거리를 둘러보면, 아무렇지도 않게 모두의 앞에서 익스파를 쓰는 익스퍼들이 상당히 많이 늘어났다.
그로 인한 혼란은 아직 현재진형행이며, 여러모로 충돌도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그 또한 우리가 만들어낸 미래였기에, 그 혼란을 극복하는 것도 다름 아닌 우리였다. 사실... 익스퍼가 비밀인 시절에도, 충돌은 있었으니까. 단지 그것이 좀 더 가시화 되었다는 느낌이다.
아무튼 지금 당장은 충돌하는 이들은 없었기에, 나도 갑자기 경찰로서 일을 하는 일 없이 그저 평범하게 돌아다니는 이로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이어 나는 무엇을 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기왕 나왔으니, 서하 씨에게 선물이나 하나 줄까 생각하며 길거리를 둘러보았다. 뭐가 좋을까? 악세사리가 좋을까? 반지는 빠를 것 같고...
권이 휴일을 갖게된 것은 다소 오랜만의 일이였다. 이제까지... 오, 휴일도 반납하고 나름대로 열심히 일했었나. 노력의 따른 성과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을 뿐이지만. 결국 사무실에서 강제로 내보내졌다. ...비번이라고 해도, 동생들은 이미 약속으로 나가버렸으니 집안일을 마치고 나면 할 일도 없었다. 그저 캔버스 앞에서 사부작거리다가, 결국 자리를 떠버린다.
평소와 같은, 아니 살짝 멍한 얼굴로 노천 카페의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있었다. 불쾌지수가 올라가는 여름날, 다행히 그늘이 있어 버틸만은 한 것 같다. 문득 권의 시선이 옆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가방 안에서 드로잉 북과 바짝 깎인 연필을 꺼내 무언가를 슥슥 빠르게 그렸다. 조금 전 지나가버린 사람의 크로키였다. ...이내 다시 수첩을 내려놓았지만.
그런 행동을 반복하기를 수십분인가, 음료와 얼음이 담겨있던 컵은 얼음이 녹은 물로만 채워질때까지. 가끔 드로잉 북을 꺼내 끄적이는 것 이외에는 권은 하염없이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아, 저기 하윤이 지나가고 있는데. 상사가 지나가는 것마저 그저 빤히 바라보며 고개를 돌리다, 이내 정신을 차렸는지 자리에서 일어난다. 말을 걸었다.
"...하윤씨? 안녕하세요."
...사무실 이외의 곳에서 직장 동료를 마주치는 것이 불편할 법도 한데. 별로 거리낌이 없었던 걸까.
거리를 지나는 도중, 카피의 테이블에서 주 씨를 만날 수 있었다. 무언가를 그리고 있었던 것일까. 드로잉 북이 보이는 것 같은데. 괜한 호기심이 들었지만 일단 넘기기로 했다. 개인적으로 무언가를 그리는 것일지도 모르니까. 아무튼, 나에게 인사를 하는 그를 바라보면서 나 역시 싱긋 웃으면서 인사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주 씨도 휴일이었지? 아마...?
"휴일에 만나는 것은 처음이네요. 후훗. 하긴, 같은 휴일을 가져본 적도 없는 것 같지만 말이에요."
반갑게 싱긋 웃으면서 정말로 큰 반가움을 표현했고, 나는 주 씨가 있는 곳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걸어오면서도 계속 보이는 것은 다름 아닌 드로잉 북이었다. 저 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궁금해. 너무 궁금해. 보고 싶어. 하지만 안돼. 하윤아. 참아야 해. 참아야 해. 그런 이야기를 속으로 계속 중얼거리면서 나는 주 씨의 앞에서 멈춰섰다.
"후훗. 휴일 잘 즐기고 계시나요? 물론 잘 지내고 계시는 것 같지만 말이에요. 요즘은 일이 많이 바빠졌으니, 이럴 때 푹 쉬어야 하기도 하고요."
일 아니면 그림을 그리리는 것 밖에 모르던 권에게는 휴일은 그저 일이 비어있는 날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않았었으니. 그나마 월하의 존재로 그런 답답한 생활이 조금 트이나 했었지만... 일은 많고 시간은 없었다. 모처럼의 휴일도 겹치는 경우가 거의 없었으니 모처럼 같이 있으려 해도 그 모처럼의 확률은 희박했었다.
"뭐... 그래도 푹 쉬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군요. 지금의 상황을 수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휴식도 중요한 법이니까요."
권은 염력으로 물건을 띄워 옮기고 있는 익스퍼를 흘긋 쳐다보며 대답을 한다. ...정말 강한 익스퍼들은 극 소수라지만, 그래도 100명중 한 두명 정도가 총을 계속 품속에 지니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걸 알게 되버린 비익스퍼들 중에는 불안에 떠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였다. 그 과정에서의 갈등은, 사무실에 쉼없이 걸려오는 전화로 증명할 수 있었으려나. ...이내 다시 하윤에게 시선을 두었다. 계속 하윤의 시선이 뒤쪽으로 가는 것을 깨달았다. 권은 뒤에 무엇이 있나... 해서 고개를 갸웃 기울이다가, 테이블 위에 두었던 드로잉 북을 집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