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그렇게 말하곤, 머리를 긁적였다. 아마 다들 밝혀진 세계쪽으로 기울지 않을까 싶었기에. 하지만 여기서 굳이 대세를 따른다거나 하고싶진 않았다. 그냥 자기가 하고싶은 말을 하고 싶었으니까.
"뭐 어차피 사태만 잠재우면 이런 대소동이 일어났으니 알만한 사람들을 다 알지도 모르지만 말입니다. 그래도 뭔가.. 절대적인 힘을 빌어서 세계를 완성한다는건 내키지 않네요. 세계를 인위적으로 바꾸는건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어쩌면 허무맹랑한 소리일지도 모르지만.. 바꾸는건 남아있는 사람들 손으로 해야 진정 의미있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뭐어~ 이건 그냥 제 생각이니까 들어지든 안 들어지든 어쩔 수 없고. 밝혀진 세계로 완성되면 그것도 나쁘진 않겠지만요."
"확실히, 계속 숨기는 편이 혼란이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밝혀진다면... 당장에 일어날 일은 불 보듯 뻔하지요."
숨을 한차례 들이 쉰다. 푸른 빛이 감도는 은색의 눈은 올곧게, 차유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는 익스퍼의, 사람들의 가능성을 믿고 있습니다. R.R.F단 같은 범죄조직이 또다시 나타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런 이들도 있듯이, 선한 목적을 가지고 자신의 익스파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사용하는 이들도 있을겁니다. 조금 전, 위기 상황에서 도움받았던 민간인 익스퍼들 처럼요. 저는 그들을 믿을겁니다."
어느 세계가 좋은지 모르겠다. 아니, 사실 애초부터 관심이 없었다. 여태껏 복수만 바라보고 살았으니 어느 것이 더 좋은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다.
"......"
센하는 입가에 한 손을 올리고 고민하였다. 어쩌면 사실 아무래도 좋았던 걸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문득 유혜를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함께 싸워준 사랑하는 이. 네가 바라는 세계는 어떤 세계야? 마음속으로 물어보았다. 그에 대한 대답은 아니었겠지만, 그녀는 그저 일상을 되돌려 받고 싶다고 했다. 그렇구나. 네가 원하는 세계는.
내가 이와 관련해서 바란 것은 없었으니까, 잃고 싶지 않은 사랑의 선택을 따라가기로 했다.
서하는 하윤이에게 답을 넘겼고, 하윤은 그에 잠시 생각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조용히 유리를 바라보면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저는, 원래의 세상을 원해요. 물론 다른 이들이 말하는 대로 익스퍼는 밝혀지고 익스파도 알려져야만 해요. 그렇지 않으면 이런 사건이 없어질 테니까요. 하지만 그것은 엄마의 힘이 아니라, 이 월드 리크리에이터의 힘이 아니라... 우리들의 손으로 해야만 한다고 생각해요. 엄마의 힘을 빌리는 것이...좋을지도 모르지만, 역시 우리들은 우리들의 힘으로 미래를 만들어가고 싶어요. 그것이 저의 생각이에요."
"......."
그 말을 끝까지 들으며, 유리는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모두를 바라보면서 이야기했다.
"...존재를 밝혀지길 원하는 이들도 있고, 원래의 세계를 원하는 이들도 있지요. 그렇다고 한다면... 저는 여러분들의 바람을 이뤄드리겠습니다. 원래의 세계. 이런 이변이 일어나기 전의 세계... 즉 개변을 막아서 원래의 세계를 돌려드릴게요. ...그 이후, 여러분들의 힘으로, 미래를 잡아보세요. 스스로, 익스퍼와 아닌 이들의 미래를 이뤄주세요. 그것이 제가 여러분들의 답을 듣고 낸 결론이에요."
그 와중에도 하늘은 천천히 깨져가고 있었다. 금은 금방이라도 산산조각 날 것처럼 커져갔고, 그 모습을 바라보며 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슬슬...힘을 써야만 하겠네요. 이 힘이, 저에게 남아있는 마지막 힘. 아마도 개변을 막는데 저의 힘을 마지막으로 활용하면... 저는 사라지게 되겠죠. ....더 이상 월드 리크리에이터의 힘으로 투쟁을 벌이는 세상은 없을 거예요. ....고마워요. 저를 해방시켜줘서. 하지만 마지막으로 미련이 있다면..."
이어 유리는 고개를 내려 하윤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에 하윤은 순간 움찔하며, 자신의 어머니인 유리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유리는 싱긋 웃어보였다. 그리고 하윤에게 이야기했다.
"내 딸. 하윤아. 많이 컸구나. ...정말로 잘 자랐구나. ...엄마는 그것으로 행복해. 정말로 행복해. ...마지막으로 떠나기 전에, 하윤이, 네가 잘 큰 것을 보고 갈 수 있어서...정말로 다행이야. 마지막으로..마지막으로...안을 수 있다면..그것만큼 좋은 것이 없을텐데..."
"...엄마..."
"안녕...하윤아.... 자랑스럽고 사랑하는 내 딸... 그리고 익스레이버 아롱범 팀...감사해요. ...부탁을 하나만 하자면...하윤이를 잘 부탁할게요.."
"엄마....! 엄마..! 저도...저도...!!"
이어 하윤은 유리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녀를 안으려는 듯이 팔을 벌렸지만, 그 팔에 잡히는 아무것도 없었다. 유리의 몸은 잡히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의 그녀는 실체가 없는 존재이니까...
"........미안해..하윤아...마지막 이 순간... 안아주질 못해서... 하지만,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마지막으로 하도록 할게. ...미래를, 빛을...끝까지 만들어가렴..."
"엄마.....!! 엄마...!!"
이내 유리의 몸이 천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몸은 곧 사라지며 한 줄기 빛으로 바뀌었고, 하늘로 솟아올랐다. 이어...갈라지는 하늘의 금이 다시 붙기 시작했다. 그것은..세계의 개변이 원래대로 돌아가는 과정이었다. 떨어질 것 같던 금은 사라지고, 천천히, 천천히...하늘에 떠 있는 별들이 사라져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하윤은 고개를 아래로 숙이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지은은 하윤이가 하는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은 단순하게 생각했는데 저런 생각을 하시고 계셨구나.
“...”
지은은 유리가 하는 말을 듣고 옅은 웃음으로 답해준 후 고개를 끄덕였다. 일종의 감사인사였다. 점점 금이 가는 하늘의 모습은 꿈이 아닌 현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비현실적여 보이기까지 했다. 평생 기억에 남을 관경이네. 상황에 맞지 않은 생각인 것 같아 헛웃음이 나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아냈다.
하윤과 유리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지은이 하늘을 보았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였다. 나랑 엄마도 저렇게 사랑했을까. 손을 올려 눈꼬리에 맺힌 울음을 훔쳐내고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평정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화장이 번지는 것이 느껴졌지만,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이걸로 세번째 맹세를 한다. 당신에게서도, 의미를 받았으니까. 보답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월드 리크리에이터와 오퍼레이터가 아닌, 어머니와 딸의 이별을 그저 말없이 바라본다.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뜬다. 나로서는 알 수 없는 것이였지만, 알 수 있었다. ...이건 무슨 의미일까?
다시, 월하의 곁으로 다가간다. 당신도, 나도 무사하구나. 정말 다행이야. 말없이 그녀의 손을 살포시 잡아준다. 눈가가 살짝 빨개져 있는 것은... 착각이 아니였을것이다.
울고 있는 하윤에게 렛쉬는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고, 천천히 다가가서, 그녀의 얼굴을 혀로 햝기 시작했다. 그것은 나름대로 기운을 복돋아주려는 모습인 것일까? 하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꼬옥 렛쉬의 머리를 안으면서 흐느끼기 시작했다.
"...나...나...엄마가...엄마가...엄마가..정말로... 정말로... 이 세계를 개변하는 것을 원하는 것이..아닐까 걱정했어... 그런데...아니었어...엄마는...엄마는.... 엄마...엄마...!! 엄마...!! ....엄마....! 마지막으로...마지막으로...한번만 더 안고 싶었어...! ...하지만...할 수 없었어.... 흑....흑흑...고마워요..엄마...저를...사랑해줘서...잘 자라줬다고 해줘서...저....저... 부끄럽지 않은 딸이 될 테니까..부끄럽지 않은 경찰이 되어 이 세계를 구할 테니까...!! 그러니까...!!!"
이어 하윤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서 크게 외쳤다.
"그곳에서 봐주세요!! 엄마가 살려준 목숨...!! 반드시 올바르게 써서, 이 세상에 도움이 될 테니까...! 미래를 반드시 올바르게 이끌테니까...! 더 이상 이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게 이끌테니까!!"
큰 그녀의 목소리가 조용히 울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람을 타고, 아주 멀리, 멀리 흐르기 시작했고, 앞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모두의 머리를 가볍게 훑고 나아가기 시작했다.
개변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별하늘에서 별이 사라지자, 어둠은 천천히 걷히기 시작했다. 그리고...그와 동시에 서하와 하윤은 작게 감탄을 할 수밖에 없었다.
"...우와..."
".....멋지네. 정말.."
어둠이 걷히자 보이는 것은, 주황빛 노을이었다. 정말로 부드럽고 부드러운 주황색 빛은, 방금 전까지 어두웠던 성류시를 비추기 시작했다. 어둠을 가르고, 모든 것을 비추는 그 빛은 정말로 평화롭고 또 평화로웠다.
밑에서 힘이 떨어져서 결국 체포된 R.R.F 멤버들과 마지막까지 싸운 경찰들과 민간인들은 물론이고, 익스레이버 아롱범 팀을 비추면서 노을빛은 더욱 더 아름답게 어둠을 가르고 모든 것을 비추기 시작했다.
"......."
"......."
서하와 하윤은 서로를 바라보면서 작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다른 이들을 돌아보면서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모두를 바라보면서 엄지 손가락을 척 위로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