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심호흡을 했다. 역순으로 흐르는, 제 과거들을 지나치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마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절망에서 빠져나왔을지도 모른다. 새하얀 빛과 함께 정신이 번쩍 들었다. 두려움은 없어진지 오래였다. 눈 앞의 여인은 하윤의 어머니인가.
"그 여자한테서 패배했다고 단정짓지 말아주시겠습니까."
패배는 얼어죽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이 X같은 인생을? 심지어 인연마저 끊어진다면...그는 이를 악 물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지만 그런 사람이 여럿 모이면 충분하다. S급이고 SSS고, 일단 근본은 사람이잖아. 여럿 모이면 못 이기는 게 있다고 해도 계속 도전해야했다. 문든 그는 두 눈을 깜빡였다.
"저희를 돕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익스퍼지만 한 나라의 경찰입니다. 저희를 도우던 시민을 모른 체 하고 여기에 안전하게 있을 수 없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면 무엇인지 모를 빛에 감싸져있었고, 또한 저도 모르게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었다. 어지간히도 무서웠나보지. 알 수 없는 발음으로 처절하게 사죄하더라고. 무엇에 대한 사죄였을지. 유리가 이야기한다. 돌아가도 소용이 없다. 이곳에 있는 것이 최선이다. 참 부정적인 이야기였다마는.
"...아무것도 이루어낼 수 없는 거야..."
자포자기의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눈물을 마저 닦아낸다. 복수도, 사랑도, 놀음도, 인생도. 전부 부질없었던 걸지도 모른다. 허탈과 실의를 느껴버리고 말았다. 처음의 오만과 나중의 두려움과 어둠 속에서 상기해버린 끔직한 과거와 포기하라는 말은 결국 이러한 결과를 낳았다. 그래, 그렇다면 자신은 여태껏 무엇을 위해 살아온 거지. 난 무엇을 바란 거야. 유혜를 잃기 싫다고, 끔찍한 미래를 상상해버리며 두려워하고 급기야 자신만이 가지고 싶다고 발버둥쳤는데. 지금은 그 감정조차 희미하다.
혼란한 속내. 굳이 설명해야하는가?
아무것도 이루어낼 수 없다. '이것으로는'.
"...있잖아. 당신 잘난 척은 그쯤하자고요. 월드 리크리에이터면 미래도 볼 수 있던가요?"
그렇게 말하더니 눈가가 새빨간 그대로 슬쩍 여유롭게 미소를 짓는다.
"어떤 근거로 지금이 가장 낫다고 이야기하는 건지 200자 원고지에 작성해주세요. 못하겠으면 그만 놓아주시고요. 무엇보다도 전 제 마음대로 하고 싶어요."
따스한 빛. 그제야 주변에 있던 동료들이 보였다. 월하도. 그리고... 진짜 월드 리크리에이터인, 차유리였다. 그제야 진정한다. 그쪽을 텅 빈 눈으로 바라보았다.
"...처음...부터..."
그 말이 가슴에 꽂힌 무엇이였을까? 아마도 흘러가는 시간 중에, 밝은 표정으로 웃고 있던 은혜와 눈이 마주쳤던 탓이겠지. 아니, 그저 그렇게 생각했을뿐. 애초에 나는 보이지도 않았을것이다. 만약, 만약 돌아간다면. 후회를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잠시 망설인다. 그럴리가 없잖아. 그리고, 돌아가지 말고 여기서 쉬고 있으라고? 웃기지 말라고 그래. 불안정한 호흡을 고르고. 힘없이 덜덜 떨리는 몸을 그녀의 앞으로 옮겼다.
"...정말로, 그게 최선인겁니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는데. 그저 무력하게 바라보고 있으라고요? 아직도, 그것때문에 사람들이 싸우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런 기대를 짊어진채. 그냥 도망가라고요?!"
지금 이 순간, 여기에 남겠다고 하는 이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서하와 하윤, 렛쉬도 마찬가지였다. 그 2명과 1마리는 유리를 바라보면서 이야기했다.
"...애석하게도, 이대로 쓰러지면... 편할지도 모르지만, 약속을 한 것이 있기에... 그렇게는 못하겠네요."
"왈!! 왈! 왈!!"
"엄마..저는...이모를 막을 거예요. 설사...또 이렇게 당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경찰이니까...우리는 경찰이니까...! 그러니까 그런 말은 먹히지 않아요. 아무리 엄마가...엄마가 막는다고 하더라도...그렇더라도...!"
가장 마지막에 말한 것은 다름 아닌 하윤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 유리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말할 수 있었다. 그녀에게 있어서는...겨우 만난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러니까...엄마...저는...."
"......."
모두의 말을 들으면서, 유리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조용히 모두와 거리를 띄운 후에 조용히 입을 열어 이야기했다.
"...당신들의, 그리고 하윤이의 익스파로는 그 힘을 감당할 수 없겠지요. 그것만큼은 여러분들도 알 거라고 믿어요. ...하지만, 익스파는 자고로, 마음의 힘. 정말로 간절히 바라면.. 정확히는 익스파 자체가 자신이 바라는 것을 뇌파로 바꿔서 형성화하는 힘. 지금 밖을 덮어버린, 어둠을 갈라버릴 빛. 그 빛을 여러분들을 잡고 싶다면... 정말로 간절한 바람이 있어야 할 거예요. 그것은, 그 앞의 미래를 잡고야 말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형성화 하는 힘. 그것은 또 하나의 익스파가 되어, 발현하게 될지도 모르죠."
"......."
"세계를 바꿀 빛으로의 카운트 다운, 그리고 세계를 지키고 다시 찾아올 빛으로의 카운트다운. 과연 실제로 실행되는 곳은 어디일까요. ...이 어둠을 갈라버리는 힘. 그것은..여러분들이 정말로 바랄 때 발하는 것. 세계를 지키고자 하는 여러분들이 정말로 물러서지 않고, 맞서겠다고 한다면, 그 빛은 여러분들은 안도를 하도록 하겠지요. 세계를 개변하는 힘. 이제는 어둠이 되어버린 그 힘을 갈라버릴 정도의 강한 의지. 그것이야말로 빛을 다시 되찾을 익스파."
조용히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모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용히 미소를 지으면서 다시 말을 천천히 이어나갔다.
"그때, 여러분들의 익스파가 발전하게 된 것. 그것은... 하윤이의 강한 바람이 있었지만, 그것을 넘어서서 거기서 포기하지 않았던 여러분들의 의지가 익스파로서 형상화된 것. 자....여러분들의 의지를 보여주세요. 이 어둠, 리부트의 어둠을 갈라버릴 빛의 의지를..."
"........."
"........."
조용히 서하와 하윤은 눈을 감았다. 의지...강한 의지...어둠을 갈라버릴 정도의 강한 의지. 그것은 사람마다 다를지도 모른다. 사람마다 이유가 다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의 근본은 하나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기에....
"...가도록 하죠. 여기는 편안하지만, 그래도...쉬었으니까..."
".....엄마....갈게요. ....더 보고 싶지만, 그렇지만...!! 저는 경찰이니까...! 그러니까 모두와 함께 할께요!"
눈을 뜬 두 사람의 앞에 보이는 것은 어둠을 가르고 나아가는 빛의 레일이었다. 그 하얗고 반짝이는 빛의 레일을 따라서 서하와 하윤, 그리고 자신의 레일을 만든 렛쉬는 달려가기 시작했다.
ㅡ당신들에게 그 빛의 의지가 있다면, 부디... 부디.... 제 동생을... 해방시켜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