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하는 한숨을 잠시 푹 내쉬면서 제 머리카락을 헤집었다. 설마하기는 했는데 아니, 확신하고는 있었지만 그것에 대한 증거를 눈앞에서 직접 보게 된다니. 앞머리를 느릿하게 쓸어올리면서 센하는 한쪽 입꼬리를 스윽 올렸다. 쓴웃음이었다. 왜 그래, 토오야. 방금까지의 여유는 어디 갔어? 응?
"...조금 많이 나가버렸다."
SSS급. 방금 상대했던 SS급보다 고작 한 단계 더 위이지만, 이건 절대로 '고작'의 수준이 아니었다. 익스파 탐지기가 꺼졌다. 다른 말로 이 강함을 더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오늘동안 거친 두 개의 전투로 꼴이 엉망이 된 센하가 권총을 쥔 손의 힘을 풀었다 주었다하는 모습은 어딘가 초조해보였다. 아아, 비굴한 자식.
쯧. 혀를 차는 소리가 나직히 들리는 듯했다. 이윽고 이를 살짝 가는 소리. 센하가 짓는 일그러진 미소는 묘하게 위태로운 듯했다. 그래, 그럴 줄 알았어. 고작 그 수준. 꼴사납다.
"......"
입을 벌렸으나 이상하게 말은 나오지 않았다. 도로 입을 다문다. 센하는 짜증난다는 듯이 시선을 다른쪽으로 옮겼다. 그래서 감상은 어때, 토오야?
월드 리크리에이터, 세계를 개변시키는 익스파. 그 행적을 듣노라면, 그야말로 신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전지전능한 힘이였다. 아마도 이전 소유자가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고, 나쁜 마음을 먹었더라면. 분명히 커다란 재앙을 불러 일으켰을 것이다. 지금 이 상황처럼.
"...결국은..."
발동 되려면 얼마나 남았지? 감조차 잡히지 않아 불안에 몸을 떤다. 완전히 개변이 일어나기 전에 막아야 한다. 그것도 S급 몇명이서 말이다. 정말이지, 말도 안되는 상황이 한 두가지가 아니였다. 하지만 할 수밖에 없었다. 100퍼센트 지는 싸움이라도 싸워야 한다. 그 앞에 죽음이 있더라도 불사해야 한다. ...떨림을 진정시키고서, 차유나...월드 리크리에이터에게 말을 걸었다.
"...신이라도 된 기분이겠군요."
그래, 신. 사람의 운명을 갖고 노는 것이 신과 똑같았다. 그리고, 우매한 인간의 목숨따윈 개미랑 똑같이 보는 것도. 그래서 난 신따윈 안 믿는다.
"...떨고 있는 거니? 후훗. 귀엽구나. 그리고 하고 싶은 말. 글쎄? 무슨 말을 할까? 여기까지 올라온 너희에게 포기하라는 말을 해도 안할 거잖아? 그리고 정상인을 찾기는 힘들다라. 후훗. 글쎄. 정상은 무엇이고 비정상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쪽의 가장 호전적인 이는...왜 아무런 말도 없을까? 겁 먹은거니? 이해해줄게. 하지만 경찰이 그렇게 시선을 돌리면 안되지 않을까? 그리고 신이 된 기분..? 글쎄? 외치면 좋을까? 나는 신세계의 신이라고 말이지. ...굳이 말하면 딱히, 그런 감정은 느껴지지 않아. ...굳이 말하면 분노와 슬픔이지. 고작 이런 힘 때문에 나의 언니는 희생되어야만 했으니까."
모두를 바라보며 조용히 그녀는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녀는 손가락을 퉁겼고 하늘 위에서 갑자기 빛 5줄기가 땅으로 떨어졌다. 그것이 어디로 떨어졌는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하윤은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이모... 그만두세요. 이런 일은... 이모는... 아무것도 못 느끼는 거예요? 아빠도 그렇고 이모도 그렇고..."
"...무리야..하윤아. ...애초에 그만둘 것 같으면 이런 일은 시작도 하지 않았어. ...저들은, 각오하고 하는 행동이야. 아니, 이것이 옳다고 믿는 행동이야."
"그래. 당연하잖아. 그쪽의 요원은 이해가 빠르네. ...그래. 이것은 언니가 바라는 일이야. 월드 리크리에이터. 그 큐브에는 나름의 의지가 담겨있지. 언니가 이런 것을 거부한다면, 나를 부정하고 나에게 들어오지 않았겠지. ...하지만 나는 언니의 힘을 손에 얻었어. 이것이야말로, 언니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 그래. 이 세상에 대한 복수를 언니는 바라는 거야."
김호민 경위와 김오진, 그리고 그 외 다른 익스퍼들은 일제히 R.R.F 5명을 밀어내고 있었다. 처음에는 대등하게 싸웠던 R.R.F도 조금씩 밀리면서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 중 먼저 입을 연 것은 다름 아닌 알파였다.
"...망할..!! 대체 이것들 뭐야! 평범한 민간인 주제에..! 경찰도 있지만 익스퍼도 아니고..!"
"보아하니, 더 늘어나고 있군요. 익스퍼가 아닌 이도 있어요."
"....솔직히 위험하군..."
하지만 여기서 물러설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지금은 그들도 최종작전 중이었으니까. 이 이상 누군가가 들어가는 것은 막아야만 했다. 그렇기에 필사적으로 그들은 입구를 사수하고 어떻게든 아롱범 팀을 돕는 이들을 밀어붙이려고 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갑자기 하늘 위에서 빛 다섯 줄기가 내려왔고 그것은 R.R.F 5명에게 정확하게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커다란 폭발이 일어났다. 그 후폭풍은 엄청나게 강력했고 주변 사람들을 날려버리기 충분했다.
"뭐...뭐냐! 저 빛은...!"
"경위님..! 익스파 탐지기가...!"
경찰 중에서 한 명이 호민에게 보고를 올렸다. 이어 자신이 들고 있는 탐지기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호민은 그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비치는 것은.....
"....말도 안돼..SS급...! 그것도 다섯체...무슨 소리냐..! 이건..!"
"...오오..뭔지 모르겠지만 엄청나게 힘이 솟구치는데..?"
"이건..틀림없이 그 분이 보낸 힘이로군요."
이어 연기 속에서 알파와 베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연기가 걷어지자, 방금 전까지 힘이 빠져서 지쳐있던 그들과는 오히려 쌩쌩하게 힘이 넘쳐나는 듯한 R.R.F의 모습이었다. 그들의 몸에는 하얀색 오라 같은 것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알파가 가장 먼저 앞장서서 손에 쥐고 있는 창을 휘둘렀다.
그러자 아까전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강한 물보라가 몰아쳤고 단번에, 자신들과 대치하던 이들을 밀어버렸다.
"크아아악...!!"
"으으윽..!"
"뭐, 뭐냐...! 이건..!"
"....SS급... 그 분이 우리에게 내려준 힘이다. ...알겠느냐..?"
호민의 말에, 감마가 조용히 대답했다. 이어 아연이 피식 웃으면서 모두를 바라보면서 비웃듯이 이야기했다.
"너희들에겐 더 이상 희망은 없다 이거야...! 자..포기하고 집에 돌아가서 운명이라도 받아들이지 그래? 하하하하하!!"
"...그럴 순 없지."
이어 호민과 다른 익스퍼들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익스퍼가 아닌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확실히 날아가긴 했지만 그래도 그들은 다시 어떻게든 자리에서 일어났고 다시 전투 태세를 갖추었다. 이어 호민은 피식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우리들을 믿고 나아간 이들이 있다. 그들은 우리보다 더 힘든 싸움을 하고 있겠지. 그런 판국에...우리가 물러산다고? 웃기지 마라. 익스퍼가 아닌 경찰이라고 해서 익스퍼를 보고 도망치면 누가 시민을 지킨단 말이냐! 우리 경찰들은 절대로 물러서지 않는다!!"
"그렇습니다. ...제 딸을 구해준 은인입니다. 그리고 제 딸은 익스퍼가 아니란 말입니다. ...딸을 잃을 순 없습니다. 그리고 그들에 대한 은혜도 갚아야 한단 말입니다."
"우리도야..! 그들이 지켜줬기에 우리는 그 지배에서 해방될 수 있었어!"
하나둘씩 말하는 목소리는 매우 거대하게 바뀌었고, R.R.F에 대치하는 이들은 다시 한번 기합소리를 내면서 앞으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베타는 피식 웃어보였다.
"...어리석네요. 아무리 해도, 이제는 승산이 없는 것을..."
"승산은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법이고, 경찰은... 승산이 없더라도 시민을 위해서 싸운다. ...너희가 시민을 상대로 테러를 저지른다면, 설사 이 목숨 다하는 날이 있더라도 경찰로서 너희들을 막을 뿐이다..! 각오해라...!!"
"...잘도 지껄이는군. 이봐, 당신의 언니잖아. 정말로 누군가의 존재를 소멸시키고, 세계를 누군가의 희생도 모르는 멍청이로 만들어놓는 것을 원할 것 같아? 고작 분노랑 슬픔에 넘어가서 복수를 결심 할 사람이였어?"
나도, 한번도 직접적으로 만나본 적 없지만, 그런 사람이 아닐 것이라는건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래 위기 상황에서 우리를 S급으로 승급시켜 줄 적에, 그 목소리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데.
"...하윤씨."
하윤의 각오를 듣고서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하윤이 쏜 테이저 건 공격을 로제의 익스파로 막는 것을 보고 얼굴을 찌푸렸다. 당연한 것이였다. 월드 리크리에이터에겐 그 정도 일따윈 어려운 일도 아니지. 아마도 나의 익스파도...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각기 다른 종류의 검 수십자루를, 공중에 전개시켜 놓는다.
죽음을 각오하고서라도 월드 리크리에이터를 막는다. 그것이 나의 최우선 목표이다. ...동생들에게 마지막으로 연락을 할걸 그랬구나. 후회해봤자 소용없었다. 내가 사라진다고 해도 잘 살아갈 것이라고 믿을 수 밖에 없다. 그렇지만, ...월하가 있는 곳을 바라보고 다시 결심을 한다. 죽음을 각오하고서라도 지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