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시간. 조용히 병실을 빠져나와 옥상으로 향했다. 간호사 분들에게는 허락을 받았다. 잠이 안 오기에 잠시만 옥상에서 바람을 쐬고 싶다고, 당당하게 허락을 받았기에 몰래 온 것은 아니다. 딩동.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옥상의 모습이 보였다. 조용히, 정말로 조용한 분위기가 가득 차 있는 옥상의 풍경은 참으로 평화로웠다. 바닥에 깔려있는 녹색 잔디를 밟고 천천히 앞으로 걸어 근처에 있는 벤치에 앉았다. 그러자 시원한 바람이 내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갔다. 길게 풀린 머리카락은 가볍게 바람에 흔들리며 조용히 춤을 췄다.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의 움직임을 느끼며 조용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자 보이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별하늘의 모습이었다.
마냥 밝고 아름다운 별하늘이라고 생각했건만, 현실은 참으로 비극적인 별하늘이었다. 엄마가 이모를 위해서 만들었다는 그 별하늘은 지금도 그 자리에서 수많은 것들을 반짝이며 어둠 속을 반짝이는 보석이 되어 반짝였다. 처음에는 정말 아름답고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는 너무 슬프게만 보이는 저 별하늘의 모습에 그저 침묵이 지켜졌다. 그래. 너무 슬프고 안타까운 광경이었다.
아마, 성류시에 살고 있는 수많은 이들은 저 별하늘의 비밀을 알 수도 없고, 앞으로도 쭈욱 모르면서 살아가겠지. 그저 아름답다고, 정말로 낭만적인 풍경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겠지. 나도 아무것도 모를 때는 그저 아름답고 낭만적인 풍경이라고만 생각했으니까.
"...여기서 뭐하냐? 너?"
낯익은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조용히 고개를 돌려보니, 나른한 표정으로 하품을 하고 있는 서하 씨의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작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냥 잠이 안 와서요. 조금만 별을 보다가 자려고요."
"......옆에 앉아도 돼? ...뭐, 서 있어도 상관은 없지만..."
"어머. 이 벤치, 제가 전세 낸 거 아닌데요? 앉고 싶으면 앉으세요. 서에 돌아가면 늘 옆자리에 앉았는데 이제와서 그런 거 물을 필요 없지 않아요?"
"...일터하고 여기가 같냐? ...애초에 멋대로 앉는 거 싫어하는 이들도 있으니까 물어본 것 뿐이야. ...귀찮은 것은 질색이야."
투덜거리면서 말하던 서하 씨는 조심스럽게 내 옆자리에 앉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 옆에 바짝 달라붙은 것은 아니다. 조금 거리를 두고 앉은 서하 씨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조용히 고개를 돌려서 옆을 바라보니, 서하 씨는 방금 전의 나처럼 별하늘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자연히 나도 고개를 다시 돌려 별하늘을 바라보았다. 차가운 바람이 다시 한번 내 머리카락을 훑고 지나갔다. 시원하면서도 싸늘한 바람에 머리카락이 다시 한번 조용히 춤을 췄다. 내 머리카락, 그리고 서하 씨의 머리카락을 훑고 지나갔을 그 바람에 내 목소리를 태워 조용히 서하 씨에게 보냈다.
"여기서 퇴원하면 어쩔 거예요?"
"...너는 어쩔 건데?"
"아빠를 찾아야죠. 그리고 이모도요. R.R.F를 찾아서 다시 되찾아야죠. 월드 리크리에이터. 그 힘을 악용하게 둘 순 없어요. 자. 답했으니까 이제 서하 씨 차례에요."
"...알면서 굳이 묻지 마. ...답하기 귀찮아."
"어머. 그래도 굳이 물어보고 싶은데요? 서하 씨는 귀찮다고 도망칠지도 모르니까요."
"...바보도 아니고. ...익스레이버 아롱범 팀이 전부 한 마음 한 뜻으로 R.R.F를 잡으려고 할 텐데, 나 혼자 도망가서 뭐하겠냐. ...나도 경찰이야. ...그리고 아롱범 팀 멤버고..."
"......"
서하 씨의 말에 조용히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서하 씨의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지금도 참으로 나른해보이고 귀찮다는 느낌의 그 표정은 참으로 한결 같았다. 사무실에서 수도 없이 본 그 얼굴, 그 표정을 바라보며 작게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고마워요."
"...뭐가?"
"여러가지로요. 결국 요원이 아니라 우리를 동료로서 택했잖아요? ...그리고, 이러니저러니 해도 귀찮다고 하면서 도와주잖아요? 아롱범 팀 멤버라고 하면서 말이에요."
"......경찰로서의 일을 안하면, 연금이 안 나오잖아. 내 해피한 연금 라이프를 위해서라도 할 일을 해야지. 그 뿐이야."
"어머. 부끄러운 거예요? 후훗."
"누가 부끄럽다는 거야. 누가. 그냥 여기서 도망치면, 더 귀찮은 일이 생기고, 그 처리도 귀찮을게 뻔하니까 할 일을 하는 것 뿐이야."
작게 웃으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서하 씨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내 익스파를 쓴다고 해도 사람의 마음을 투시할 순 없으니까. 애초에 서하 씨가 귀찮다고 말하는 것이 정말로 귀찮은 것인지도 알 수 없으니까. 그렇기에, 그저 조용히 웃으면서 다시 별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물었던 입을 다시 열어 조용히 서하 씨에게 이야기했다.
"...아직 움직이지 않는 것 같은데, 왜일까요?"
"......월드 리크리에이터의 힘을 아직 못 다루는 거 아니야? 일단 그거, 익스파라고 해도 큐브 안에 담겨있잖아. ...그리고 요원 쪽에서는, 그 사람은 월드 리크리에이터의 힘을 제대로 쓰기 위해서 '익스파 주입 실험'을 지시했었어. ....어쩌면 R.R.F도 그것을 준비하는 것일지도 모르지."
"........"
익스파 주입 실험. 익스파를 인위적으로 다른 익스퍼에게 주입하는 비인간적인 실험. 그것만이 오로지 '월드 리크리에이터'. 엄마의 힘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일까.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퇴원하자마자, 빨리 추적을 해야겠네요."
"쉽지 않을 거야. ...애초에 추적이라고 해도 아무것도 없으면 추적을 할 수 없으니까. 어쩌면, 방법은 저들이 뭔가 반응을 보이면 그때 움직여서 막는 수밖에 없을지도 모르고..."
"그렇다고 한다면 아마도..."
"저들도 바보는 아닐테니까 필사적으로 방해를 못하게 막으려고 하겠지. ...아마도, 그 녀석들도, 그리고...그 사람도..."
그 녀석들은 틀림없이 알파,베타,감마. 그리고 S급 익스퍼 2명을 말하는 것이고 그 사람은 아빠를 말하는 것이겠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R.R.F도 그때는 어떻게든 방해를 하지 못하게 움직일테니, 소속원들이 전부 우리를 막으려고 들 것이다. 알파와 베타, 감마, 그리고 S급 익스퍼 2명도 만만치 않은 상대이고, 무엇보다 아빠는 SS급 익스퍼다. 절대로 쉽게 제압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아마도 이 싸움은, 이 세계를 지키기 위한 싸움은 엄청나게 가혹하고, 보통 힘든 싸움이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들, 아롱범 팀이 과연 막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아마도 그 작전이 시작되면, 우리들은 모든 것을 걸어야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목숨까지도...
"......"
나도 모르게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역시 누군가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무서웠다. 나는 그 누구도 죽지도 다치지도 않는 사실을 원하니까. 그러니까....조금 두려웠다.
그런 생각을 하는 도중, 갑자기 손이 덥썩 잡히는 느낌이 들어 깜짝 놀라 몸을 움찔해서 옆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내 손을 잡고 있는 서하 씨의 모습이었다. 여전히 별하늘을 바라보며 서하 씨는 조용히 나에게 이야기했다.
"...무서워하지 마. 모두 힘을 합치면 어떻게든 될 거야. ...아롱범 멤버들이 함께 할 거고, 나도 함께 할 거야. ...다치는 이는 있을지도 모르지만 죽는 이는 없을 거야. ...그저 언제나처럼 출동해서, 범죄자들을 체포하고 제압하고 사건을 해결하면 되는 거야. 그 뿐이야."
"......."
"...그러니까 무서워하지 마. 모두가 네 옆에 있을테니까."
"고마워요."
"...뭐가?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한 것 뿐이야. 이런 것으로 일일히 귀찮게 감사 표하지 마. ...나 참."
조용히 투덜거리는 서하 씨를 바라보면서 작게 웃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손을 돌려 나 역시 서하 씨의 손을 조용히 잡고 눈을 감았다. 모두가 함께 한다면 어떻게든 될 거라는 그 말이 지금은 심적으로 크게 안심이 되었다.
그래. 모두가 함께 하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그렇게 믿으며, 조용히 밤바람이 다시 한번 부는 것을 느꼈다. 길게 푼 머리카락이 다시 한번 춤을 추는 것을 느끼며 조용히... 조용히.... 그저, 조용히 그 바람을 느껴보았다.
부엌으로 간 헤세드는 고민에 빠졌다. 음료와 함께 빵을 대접하려고 하니, 있는 빵은 베이글 뿐이었으니. 그나마 친구가 일하는 카페에서 얻어온 유자 마들렌과 버터링이 생각난 그는 과일 쥬스가 담긴 컵 두 잔과 버터링, 마들렌이 담긴 접시를 갖고 오다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타미엘, 과일쥬스와 마들렌이라도 괜찮으신가요?"
아마도 알아채지 못했는지 헤세드가 소파 앞 탁자에 갖고온 것들을 내려놓고서 고개를 기울인 채로 물었다.
"그으리고.. 드시고 싶은 것, 있으면 말해줘요. 무엇이라도 만들어 드릴게요. 못 만드는 것이라면... 시키는 방법도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