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그런 의도로 한 말이 아니라는 말에ㅡ알고 있었다ㅡ이어서 권주 선배는 나쁘지 않다는 말을 덧붙였다. 나쁘지 않다는 건가...이런, 거의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뻔했다. 역시 오늘은 사고가 느린 날이다. 반 박자 늦은 감으로, 나는 한쪽 눈을 살짝 찌푸리며 선배를 향한 얼굴에 황당한 기색을 조금 띄웠다. 도대체 나의 어느 말에 답한 것인지도 모르겠고, 애초에 지금껏 대화한 내용과 상관이 있기나 한 건지도 의문이었다. 하지만 굳이 그에 대해 물고 늘어지지는 않기로 하였다. 그래야하는 이유를 떠올려내지 못하였기에 나는 대충 수긍하는 척 표정을 재빨리 평소의 나른한 분위기로 바꾸면서 "네에, 그렇군요"라고 태평하게 답했다. 건성처럼 들릴 수도 있었지만, 딱히 신경쓰지 않았다.
ㅡ기왕 이렇게 되었으니 같이 돌아갈래요? 마침 하려던 일이 파토가 나버렸으니까요.
"상관 없어요. 그리고 참고로 파투가 표준어예요."
말한 그대로 별로 상관 없다고 생각했기에 제안에 응하면서 잘못된 단어를 굳이 지적하는 친절함(...?)을 보였다. 왠지 선배의 느낌이 단어를 내뱉고 난 뒤에도 맞는지 헷갈려하는 느낌이어서 더욱 그런 태도로 나왔던 것일지도 모른다. 뭐, 표준어인 파투라고 고쳐주지 않아도 의미가 통하는만큼 상관 없을 수도 있었지만 어째선지 고쳐주고 싶었을 뿐이었고, 그것이 잘못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식으로 일종의 합리화를 내심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권주 선배가 앗, 하고 말을 잇는 것이었다. 아아, 방향인가. 당연한 질문이었다.
"전 저쪽이예요."
천천히 움직이는 손가락이 무심하게 한쪽 방향을 가리킨다. 이내 손을 내리고는 선배를 돌아보며 질문을 돌려주었다. 선배는요? 여전히 무심하기 그지없는 어조였다.
//늦어서 죄송해요...!! 8ㅁ8(머리박)
처음에는 센하 원래 성격으로 가려다가 그냥 히라카와 토오야 시절 성격(feat.원래 히라카와 토오야보다 나이 먹어서 더 늙어버림)(...)이 되어버렸다는 후문..
그가 이름을 바꾼지 얼마 안 되었을 적의 일부터 이야기하자. 새카만 하늘을 향해 뻗어있는 가로등의 불빛이 주변을 밝히고 있었다. 모자를 눌러써 얼굴을 가리고 있는 센하와 어깨 아래까지 내려온 웨이브헤어를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고 있는 라이무는 그 불빛을 받고 있는 벤치 근처에 있었다. 대화를 나누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막상 여기기에는 역시 어딘가 어정쩡한 방향을 향해 각자 서 있었다.
"ㅡ그런데 한 가지 알 수 없는 게 있어."
센하는 화제를 돌렸다. 눈살을 살짝 찌푸리면서 미심쩍다는 듯이 라이무를 쏘아보았다.
"당신, 왜 그렇게 협조적인 거지?"
라이무는 그저 여유롭게 후후 웃어보였다.
"왜냐니. 오 그래, 요즘 한창 호기심이 많을 나이던가? 이해해. 응, 물론. 엄마도 그런 때가 있었거든."
그녀는 손가락을 턱 위에 얹었다. 검은색 매니큐어를 바른 기다란 손톱이 눈에 띈다. 입은 느긋한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센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반대로 불만스럽단 듯 표정을 더욱 찌푸리기만 하였다.
"말 돌리지 마. 질문에 대답해."
딱딱하게 울리는 목소리가 그렇게 차가울 수 없었다. 눈꼬리를 휘던 라이무는 설핏 진지한 분위기가 되는 듯 싶다가도 다시 웃는 낯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태평한 움직임으로 벤치 위에 살짝 걸터앉더니 다리를 포갰다.
"말이 너무하잖아, 토오. 역시 사춘기가 심하게 온 걸까..."
잿빛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면서 느긋하게 중얼거리던 라이무는 빙긋 미소를 지었다.
"별 것 아니란다. 엄마는 단지 재미있는 상황이 보고 싶을 뿐이야."
코미키 라이무는 마치 객석에 앉은 관중 같았다.
......
"그나저나 엄마가 개명도 도와주고, 한국 가는 비행기까지도 끊어줬는데 진짜로 너무하다. 토오. 우리 아들, 조금만 더 귀염성이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하, 당신은 헛소리가 심해."
"그.. 고마워요.." 처음으로 대충 맞춰 본 건데.. 라고 중얼거리다가 반짝거려서 예쁘다는 거에. 사실은 어릴 적엔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 눈을 싫어하진 않아요.. 라고 속삭이다가 침대가 넓다는 말에 갸웃.
"침대... 넓나요..?" 갸웃하기는 해도 아마도 괜찮은 듯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오오오으어어어어어어러러ㅓ아어러어 타미엘.. 나의 여신님.. 저런 남자의 꾐에 빠지지 말거라아아아... 홀랑 잡아먹힐 거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늩으아어어(시스템이 흙뿌렸다 카더라)어디선가 심연이 절규하는 듯한 소리가 들린 것 같지만 잠깐 눈을 깜박이면서 털어내려고 합니다.
"그러면.... 단둘이네요..." 라고 말하면서 날아가거나 자동차라는 말에 사람이 업다면 그것도 좋겠네요.. 라고 말하는 건 분명 예전의 공중에서의 그걸 떠올렸던 탓이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