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갱을 대신 챙기는 하윤을 주는 난감한 눈빛으로 쳐다봅니다. 아무래도 양갱 보다는 다른 간식이 낫다고 생각했을지도요. 동생들은 팥 특유의 단맛을 싫어하는 것 같으니까요. ...그래봤자 1살 차이이지요. 그러나 자신만만해보이는 하윤의 웃음은, 왠지 모르지만 멋있게 후광이 비춰서 하려던 말은 멈춥니다. 잠시 한호흡 입을 다물었다가 조심스래 말을 꺼내봅니다.
"...그렇지만 초콜릿... 더 못 사는건 아닌가 생각이 들어서요."
망설이지 말라 하니. 마지못해 양갱도 사기로 결정합니다. ...이정도 사치는 허용범위에 들어갈거에요. 아마도. 그렇게 생각하며, 주는 자신의 돈으로 살 참치캔을 고릅니다. 오늘은 특별히 참치가 들어간 김치찌개를 끓일 것입니다.
어느새 거대했던 포대 자루는 검정 비닐봉지와 간식들로 변했습니다. 아까보다 크기는 작아졌어도 그래도 주는 그 나름대로의 충만감에 뿌듯했습니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신나게 달려올 동생들이 눈에 선해서, 그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치킨을 사오던 아버지의 심정이 이런걸까요? 사실 주는 그런 아버지가 없어서 잘 몰랐지만요. 그래도 상관이 없다는듯 입가를 휘어 미소를 띄웁니다.
괜찮다고 말을 해도 주는 너무 눈치를 봐요. 1살 누나가 괜찮다면 괜찮은건데. 아빠도 그랬어요. 나이 많은 이가 주면 고맙습니다 하고 받는 거라고! 일단 1살 위라고 해도 하윤이가 나이가 더 높으니까 주는 그냥 고맙습니다 하고 받으면 되는데... 왜 저렇게 눈치를 보는지 하윤이로서는 알 수가 없었기에 고개를 갸웃했어요.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정말로 주의 기분이 좋아보인다는 것이었어요. 방금 전에는 꽤 힘들어보였는데.. 역시 간식을 먹게 되어서 기분이 매우 좋은가봐요. 후훗.
아무튼 용돈을 꺼내서 계산을 하고 거스름돈도 받고 슈퍼 아주머니에게 인사도 드렸어요. 그리고 초콜릿만 쏘옥 빼내서 따로 챙겼어요. 엄마, 아빠에게 걸리면 안되니까 몰래 가져갈 거예요. 이건... 주머니에 주섬주섬 집어넣고 안 보이게 나름대로 옷을 조절한 후에 주를 바라보았어요. 무려 초코파이를 준다고 그랬어요!
"초코파이? ...배급? 초코파이 공짜로 받는 거야? ....음....그럼 하나만! 후훗."
하나 정도는 받아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요. 사실 하윤이는 초코파이보다 몽쉘을 더 좋아하지만 너무 욕심은 부리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하나만 받겠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주머니에 넣어둔 초콜릿 중 하나를 꺼내서 입에 쏘옥 집어넣고 우물거렸어요. 우와! 맛있어!
"정말.....좋은걸요...사실처럼......네요" 아주 작게 속삭여서 말 중간중간만 들릴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다시 들려줄 생각은 없는 듯 화장하지 않았음에도 발그레하게 과즙미 뿜뿜하는 볼의 얼굴을 휙 돌렸습니다. 금방 다시 돌려서는 대답하였지만요.
"뭐라고 해야할까요... 현실과 같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분위기가 있다..라고 려나요..?" 분명히 현실과 동일하지만 심연 위의 것이기에 그런 탓일까. 아니면 그녀의 능력이 원래 그런 탓일까.. 그 곳들은 현실과 완전히 동일하면서도, 기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아마 닉시들의 소리 외엔 아무 소리 없는 고즈넉한 곳이어서 그런 것지도 모를 일이지. 그것을 생각한다 하여도 그것을 마구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넘기려 하곤 들어가볼까요. 란 말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사고싶은 게 있으면 꼭 말하라는 것에 잠옷 산 것만으로도 오늘 쇼핑은 성공했는걸요. 라고 중얼거리고는 그 안에 들어가서 여러가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뭐가 있으려나요? 평상복? 그치만 맞춤이 아니라면 타미엘의 사이즈는 없지 않으려나요? 엄청 박시한 게 아니라면 말이지요.
주말에 갑자기 여행이 가고싶어져 당일 새벽행 기차표를 끊어 무작정 서천으로 향했다. 그대가 자는동안 살짝 빠져나온건 미안했지만, 오늘 여행의 목적은 따로 있었기에 사과는 그걸로 대신하기로 하자. 목에 건 카메라, 무민 캐릭터 스티커를 가득 붙인 벚꽃색의 캐리어, 챙 넓은 밀짚모자와 정강이 까지 오는 하얀 원피스. 준비는 완벽하다.
"서천 갈대밭까지 가주세요."
택시를 잡아타고 향한 곳은 갈대밭이었다. 해 뜨기까지 앞으로 2시간, 빠르게 준비하면 맞춰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괜시리 불안해져, 왼손 약지의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한시간 여를 달려, 갈대밭에 도착하자마자 빠르게 계산을 하고 갈대밭 안으로 향한다. 얼마 지나자, 갈대밭 위로 세워진 나무 다리가 보였고, 적당히 들어가자 너른 휴식공간이 나왔다.
"어디보자, 해를 등지는 방향이..."
캐리어에서 삼각대를 꺼내 해가 뜨는 반대방향에 두고, 조명 두갤 꺼내 배치한다. 앞으로 해가 뜨려면 15분. 지금부터 시작이다.
"5...4...3...2...1..."
해가 갈대밭 위로 정수리를 드러내자마자, 바로 카메라의 타이머를 30초로 맞추고, 잽싸게 돌아간다. 무슨 포즈를 할까 고민하다, 5초전에 자세를 정하곤 곧바로 자세를 바꿨다.
찰칵-
"좋았어...!"
목적 달성...! 조명과 카메라를 다시 정리하고 카메라에 찍힌 내 모습에 만족스런 미소가 걸렸다. 그대가 이걸 보면 얼마나 좋아하려나.
"전송...완료!"
내가 그대에게 보낸 사진은, 갈대밭과 일출을 배겸삼아 함박웃음을 짓는 것이었다. 이제 다시 기차를 타괘 돌아가면, 그대는 얼마나 기뻐하려나.
사랑하는 나의 장미에게, 모닝키스라도 해 줄까 하는 행복한 고민을 안은 채로, 나는 다시 성류시로 돌아가는 기차에 올랐다.
아닌 밤중에 낡은 철문이 부숴질 듯 큰 소리를 낸다. 아무 기별도 없이 손님이라도 온 것인가. 얕은 잠에서 깨어버린 소년은 빛이 새어오는 방문 틈새 쪽으로 신경을 곤두새운다. 잘 알아 들을 수는 없었지만, 아버지와 낮선 목소리의 대화가 오가는 소리가 새었다. 잠시 침묵이 이어지더니 이어지는 발소리와 함께 어머니는 방의 구석에 미동도 없이 몸을 말고있던 소년을 불러 현관 앞에 세운다. 손님이 서있는 현관 앞에서 참으로 오랜만에 찾아온 듯한 화목함이였지만, 가라앉아 있는 공기는 연출이 불가했던건지 숨이 턱턱 막혀온다. 소년의 어깨를 잡고 있던 어머니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어깨가 아파와서 물그러미 어머니 쪽을 보고있던 소년은 다시 저희 집에 온 불청객-경찰-을 향하여 시선을 돌려 있는 힘을 짜내어 입술을 비튼다. 간신히 웃는 모양새가 된 것 같지만, 어수선하게 덮여있던 긴 머리칼 아래, 두려움으로 가득 차있는 색이 바랜 눈동자는 불안함에 여기저기 굴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망설이던 소년은 팔뚝을 잡고 있던 아버지가 뒤틀듯이 손아귀를 꽈악 쥐어버려서, 떨리는 입술을 떼어낸다.
"...괜찮...아요. 아무 일도 없었어요..."
정적인 상황에서 참으로 살벌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으나. 애석하게도 낌새를 못 챈걸까, 사실은 눈치를 채고도 일이 복잡스럽게 돌아가는 것은 귀찮아 했던 나이 든 경찰은, 만족스러운 대답을 한 소년을 향해 인자하게 웃어보이며 낡은 문 밖으로 나갔다. 소년의 아버지도 그의 뒤를 따라 나간다. 아버지는 또다시 술이라도 마시고 돌아올 작정인 듯 했지만... 일단 이것으로 상황은 종료. 방음이 전혀 안되어 소란을 고스란히 들은 주민의 신고였든, 아니면 순찰을 다니던 경찰이 차마 그냥 지나칠 수 없을정도로 커다란 고성방가를 들었었든 간에 이 가족은 조금 전과 비슷한 방식으로 '평화'를 지켜가고 있었다. 오늘만큼은 얌전히 방으로 보내진 소년은 다시 방구석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몸을 둥글게 웅크린다. 정말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아버지가 크게 화를 내는 날에는, 집안에 커다란 목소리가 쩡쩡 울려퍼져요. 어머니는 새된 비명을 내며 아버지와 말다툼을 하다가, 아버지가 먼저 손을 올리고 나면 결국 큰 싸움으로 번지고 말죠. 잡히는대로 던지고, 할퀴고, 때리고. 결국 아버지가 먼저 지쳐 잠에 들면, 그럴때마다 항상 어머니는 울부짖으며 저를 붙잡고 이야기 했어요. 저를 낳은 것이 가장 큰 실수라고요. 제가 우리 가족에게 불화를 불러온다고요. 알고있었어요. 저만 없었으면... 어머니도 아버지도 불행하지 않았을 거에요. 두분 다 싸우지 않고, 아프지도 않고, 행복하게요.
착한 아이였다면 이미 잠들 시간이에요. 온몸에서 느껴지는 격통을 이겨내려고 소년은 오늘도 구석에서 새우잠을 청해본다. 얇은 이불과 자신의 체온에 의지해서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잠에 빠지려는 순간에 쨍 울리는 비명소리에 다시 정신이 현실로 끌려온다. 아버지가 오늘따라 일이 잘 풀리지 않아서 더 화를 내고 있는걸까. 예상이 가는 상황들은 죄다 꺼내어 근심 한다. 두려움을 참고 방문을 열면, 거실에서는 생각보다 좋지 않은 상황이 벌어지고 잇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흔들리는 전등에 위협적으로 빛을 반사하는 식칼. 어머니가 그것을 제 목을 향해 들고 있었다. 겁을 먹어 덜덜 떨리는 다리가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 했지만 움직이지 않는 몸을 강제로 옮겨서 다급히 상황에 난입한다. 그리고 어머니가 정말로 찌르기 직전에 매달리었다. 갖은 폭력에 익숙해져, 이제는 미약한 반응만 내놓던 소년의 목청에서 짐승같은 울음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리고 어머니는 떨구려는 듯이 팔을 휘두르니 소년의 몸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한다. 그대로 그냥 넘어지기만 했다면 다행이였겠지만, 불행이였을까? 머리가 떨어지는 쪽에는 서랍장이 날카로운 모서리를 자랑하고 있었고, 이변은 없이 이마에 직격해버렸다. 힘없이, 힘없이 바닥으로 추락하는 소년을 보고 뭐라 욕을 하는 아버지와, 미친듯이 웃는 어머니. 이마에서 끈적한 검붉은 색이 흘러나와 검은 머리칼을 물들인다. 하지만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소년의 얼굴은, 보기힘들었던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저는 이미 눈치채고 있었어요. 부모님이 저를 싫어하는 이유는, 익스퍼라는 이름의 괴물이라서도 눈색이 불길해서도 아니라는걸요. 제가 있다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으니까요. 그래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저를 그렇게 대해주어도 이해 할 수 있었어요.아니, 사실은 이해할 수 없었어.하지만...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제가 부모님을 사랑하지 않는게 되버리니까요. 그건 무서워요... 저 참 나쁜 아이네요. 하하. 하지만, 그래도, 저 같은 아이에게도 소원을 들어준다면요. 부모님도 저도 다 같이 행복하게 살고싶다고 빌고 싶어요. 오순도순 소풍도 가고, 가족사진도 찍고, 대화도 나누고요. ...저도 다른 아이들처럼 사랑을 받고 싶어요. 불가능 하다는 건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저는 부모님을 사랑하니까요.어머니 말대로 차라리 저만 사라져버린다면...
흔들리는 시야에 가장 먼저 잡히는 것은, 눈부신 빛이였다. 어둠에 익숙하던 눈이 적응하지 못해서 아플 정도였다. 무의식적으로 욱신거리는 머리를 향해 손을 들어올리다가, 따끔한 감각에 움찔한다. 소년의 마른 손등에 형태가 드러날정도로 커다란 바늘이 꽂혀있었다. 팔을 움직일적마다 느껴지는 불쾌한 감각. 나는 아직 살아있구나. 소년은 텅 비인 눈으로 주변을 둘러본다. 어머니는 괜찮은걸까? 저만치 멀리서 의자에 힘없이 몸을 기대고 있던 어머니의 모습에 소년은 안심한 듯이 가슴을 쓸어내린다. 시선을 돌리자 그 다음에 보이는 것은 아버지와 예전부터 봐왔던 경찰이 대화하는 풍경이였다. 그러나 경찰의 얼굴에는 푸근함 대신에 엄격하고 딱딱한 표정만이 서려있었다. 경찰은 아버지의 팔에 수갑을 휘둘러 채운다. 아버지도 평소처럼 화를 내며 팔을 휘두르는 대신에 그저 가만히 수갑이 차인 팔목을 바라보다가, 소년에게는 시선도 주지 않은 채 경찰이 끌고가는 대로 따라간다. 등이, 어깨가 그날따라 무거워 보인다. 그 모습이 낯설어서, 소년은 직감한다. 자신이 잠든 사이에 일이 잘못 돌아가고 있었다고.
"아버지... 어디로 데려가는 거에요? 아... 안돼요! 아버지는 나쁜짓 안했어요...! 저를 두고 가지마세ㅇ... 아빠!!"
멀어지는 모습을 놓칠까 다급히 침대에서 내려가려한다. 하지만 손등에 연결되어있던 링거 줄과 몸이 꼬여 고꾸라질뻔한다. 그러나 아픈 이마도, 팔도 더이상 신경을 쓸 수 없이 마음만 급해져서, 넘어지듯 앞으로 달려가려하지만 당직 간호사가 소년의 앞을 막아선다. 그 팔에 막혀버린 소년은 울부짖으며 난동을 부린다. 그 옆의 다른 간호사는 안쓰럽다는 듯이 혀를 찼다. 붙잡혀버린 사이에, 아버지의 뒷모습이 점점 소년의 시야에서 사라져간다. 절망적인 울음소리가 응급실 로비에 울려퍼졌다.